(+추가) 그냥 주절주절 쓴 글에 이렇게 많은 분들이 봐주시고 댓글 달아주실줄 몰랐어요 퇴근 하기 전에 잠깐 들어와봤는데 많은 관심에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ㅎㅎ댓글들 모두 읽으며 힘이 되었습니다! 정말 감사드려요 :) 이제 곧 추석인데 행복한 한가위 보내시고, 항상 일상에 행복함이 곳곳 묻어나길 바랄게요 저희 가족 앞으로도 행복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 안녕하세요 20대 초반 직장인입니다.
저희 가족은 세 식구 입니다. 엄마, 남동생이랑 도란도란 잘 지내고 있어요. 고1때 부모님은 이혼하셨어요. 이유는 아빠의 가정폭력때문이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술만 먹으면 폭언+폭력 일삼았고, 이 때문에 회식 한다거나 술 약속이 있다는 연락을 받을 때면 저희 가족은 두려움에 떨어야 했습니다. 혹시 부모님을 경찰에 신고해보신 분 계실까요? 뉴스에서만 보던 일이라고 생각하고 어떻게 자기를 낳아준 부모님을 경찰에 신고하지? 라고 생각했었는데 정말 이대로 가만히 있다간 죽겠다 싶으니 신고하게 되더라고요.
고등학교때는 입학하자마자 일주일동안 학교를 못 나갔던 적이 있어요. 친구들은 지금까지도 제가 아파서 못 나간줄 알지만.. 사실은 아빠를 피해 도망 다녔기 때문에 등교할 수 없었습니다.이때 기억은 선명해요. 술에 취해 엄마를 때리고 있으면 초등학생 밖에 안 된 동생은 조그만 몸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아빠를 말리고 있고 저는 그 틈을 타서 제 책가방에다 무작위로 옷을 주워 담고 엄마 지갑과 차키를 챙깁니다. 잠시 아빠가 화장실에 간 사이에 뒤도 안 돌아보고 셋이서 무작정 집을 뛰쳐나왔어요. 이대로 이 집에서 오늘 밤을 보내다가는 엄마가 정말 맞아 죽을 것 같았거든요. 문 열리는 소리에 바로 따라서 뛰쳐 나오는 아빠 때문에 신발 신을 생각도 없이 그냥 신발을 손에 들고 미친듯이 비상 계단으로 뛰어 내려간 다음에 지하 주차장으로 가서 차에 타고 문을 잠궜습니다. 정신 없이 시동을 걸고 빠져 나가려고 하는데 주차장 출구에 우두커니 서서 못나가게 막던 아빠의 모습은 아마 죽을 때까지 잊혀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도망치고 나서는 친한 이모 집에서 한동안 신세를 지며 학교 다니곤 했어요.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었습니다. 이젠 괜찮겠지 하고 하루 학교 나가보면 자기를 피해 도망간 우리 가족을 찾겠다며 제 하교 시간에 맞춰 학교 앞에서 잠복하고 있었거든요. 이때 정신적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새학기인지라 애들은 입학과 동시에 벌써부터 학교 적응하고 친구들 사귀기 바빴고, 일주일만에 등교하고 보니 이미 무리가 많이 형성 되어 있어서 제가 낄 곳은 없었거든요. (그래도 3월 말에 친구들 사귀어서 지금까지도 만나고 매일 연락하며 지내고 있습니다ㅎㅎ)
쨌든 더이상 도망칠수만은 없겠다라는 생각이 들어 결국 그 집에 다시 들어갔어요. 들어가기 전에 저녁으로 설렁탕을 먹으러 갔는데, 동생이 좋아하는 음식인데도 불구하고 한입도 먹지 못하고 집 들어갈 때까지 내내 울더군요. 집 들어가기 무섭고 아빠가 괴물 같다면서요. 그래도 집 안에 남아있는 짐도 있고 언제까지 친한 이모네 집에서 신세를 질 수만은 없으니 들어가서 또 그러면 바로 경찰에 신고하자, 다시 집에서 나오자라고 어찌저찌 달래서 들어갔습니다. 집에 들어가니 식탁 유리는 다 깨져서 널브러져 있고, 티비도 엎어져서 떨어져있고 .. 아마 혼자 분에 못 이겨서 그런 짓을 했겠죠. 예상은 했지만 저희가 집에 들어가자마자 다시 전처럼 난리치는 모습에 동생이 바로 경찰에 신고를 했습니다. 그 이후로 경찰을 수도 없이 부르고, 결국에는 접근 금지 신청하고 저랑 동생은 경찰서 가서 진술서도 썼습니다. 이런 일들 다 겪은 후에야 우여곡절 끝에 이혼을 했는데, 한참이 지난 지금도 아빠는 도대체 왜 이혼까지 했어야 했냐며 자신의 잘못을 모르고 인정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친가에서도 절대 자기 아들이 술먹고 그럴 애가 아니라며 극구 부인했습니다. 삼남매중에 혼자만 아들이었던 아빠였기에 얼마나 애지중지 키웠는지 알아요. 고지식하시고 가부장적인 집안이라 아들이 최고고 남편이 곧 법인 집안입니다. 그래서 당연히 저런 반응 나올줄 알았습니다. 저런 이유 때문도 있지만, 처음 아빠를 피해 도망 나왔던 날 갈 곳이 없었던 저희는 너네 아들이 이렇다는걸 보여줘야겠다며 무작정 밤에 친가로 갔습니다. 이때 엄마 운전 연수 받은지 얼마 안 됐을때라 고속도로 탄 건 처음이셨어요. 그렇게 어렵게 어둠을 헤치고 미숙한 운전으로 갔는데 가자마자 저희 가족에게 했던 할아버지의 말씀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어요. 버릇 없이 밤 늦게 남편 집에 혼자 두고 애들이랑 집 나왔다고, 남편이 그럴수록 더 보듬어주고 참아가며 남편을 진정 시킬 생각을 해야지 라고 하셨습니다. 이때 할아버지에게 정이 정말 다 떨어졌어요. 엄마는 절규하다시피 울었고, 저도 할아버지한테 울며 미친듯이 대들었습니다. 할아버지가 그 집에 가서 단 10분만이라도 같이 있어보라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특별히 아빠와의 추억이 없는 것 같습니다. 사랑 받는다고 느꼈던 적도 없구요. 아이러니한 일들도 많았던 것 같아요. 아직 저는 모성애, 부성애에 대해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도저히 부모로서는 할 수 없는 행동들을 했던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아빠랑 자전거 나들이를 나갔던 날 양갈래 길이 나와서 제가 왼쪽으로 가야 한다고 했는데 오른쪽 길로 가야 된다고 계속 우겨서 따라갔는데 결국은 제가 말했던 길이 옳은 길이었죠. 그래서 내 말이 맞지 않았냐, 너무 힘들어서 더이상 못가겠다 라는 말에 뺨을 맞았어요. 이때 겨우 중1이였습니다. 이 일 말고도 기억은 흐릿하지만 뺨 맞은 적은 두 세번 정도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혼낼때면 정말 무식하게 혼을 냈어요. 초등학생, 중학생 밖에 안 된 저를 정말 죽도로 팼습니다. 목을 조르기도 했어서 잠깐이지만 호흡이 안 되어서 죽다 살아났던 적도 있어요.
지금 보니 정말 다사다난하게 청소년기를 보냈네요. 마음은 힘들었지만 절대 삐뚤어지게 행동하지는 않았어요. 제가 삐뚤어지는 순간 친가에서는 분명히 엄마가 애를 잘못 키워서 라고 얘기할게 뻔했기 때문에 바르게 살았습니다. 주변 친구들 아무도 이혼하고, 제가 이렇게 자라온거 몰라요. 그런데도 학창시절때나, 지금이나 항상 듣는 말은 밝고, 웃음이 많고, 사랑 받고 자란 티가 난다 등등 좋은 얘기 늘상 듣습니다.
대학생 때는 교통비 포함하여 2~30만원 용돈 엄마에게만 받았고 부족한 나머지 돈은 알바하며 채워갔습니다. 아빠한테는 딱히 매달 용돈 받은적은 없습니다. 기껏해야 생일때 10만원 정도.. 취업하고 나서는 아예 용돈도 주지 않고 얼마전에 생일이었는데 생일선물도 주지 않더군요. 그저 제가 직장생활을 하고 있고 이젠 다 컸다는 이유에서만요. 사실 큰 기대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한테 해주는게 없으면 아빠도 저에게 기대하거나 바라는게 없어야 하는거 아닌가요? 취업했으니 동생 용돈 챙겨줘라, 동생 대학 들어가면 등록금 보태라 등등 원하는 게 많습니다. 물론 그냥 흘러가는 식으로 얘기 한거일 수도 있겠지만 정말 싫고 스트레스 받아요. 참고로 저 대학 다닐때 등록금 대준 적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저 고등학교때 학원비도 대준 적 없어요. 그리고 아빠와는 단둘이 절대 만나지 않아요. 저는 불편해서 단둘이 만나는걸 꺼려하지만, 아빠는 그저 동생만 보고싶어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때가 많아요. 그래서 만나게 되면 무조건 셋이서 만나거나 동생만 보거나 입니다. 그리고 저한테 연락 오는 이유도 동생이 연락이 안된다, 동생은 공부 열심히 하고 있냐 등입니다. 물론 어렸을때부터 친가쪽이 동생만 예뻐하는거 알고 있었어요. 저 태어났을때 아들이 아니라 실망했다는 얘기도 들었었고, 하나밖에 없는 아들의 손주이기도 하고 대를 이어갈 사람은 제 동생뿐이니 동생을 엄청 예뻐라 하세요. 그러니 아빠도 저한테와는 달리 동생한테 용돈도 매달 챙겨주고, 학원비 지원도 해주고 열과 성의를 다 하는거겠죠.
대학은 진로 + 빨리 돈 벌어야겠다 라는 이유로 전문대 졸업했고,운이 좋게도 조기 취업해서 현재 1년 6개월 정도 직장 생활 하고 있습니다. 월급은 세후 210 정도 받아요.. 작은 돈이지만 취업과 동시에 매달 엄마에게 30만원씩 용돈 드리고 있구요, 적금도 넣고 예금으로 돈도 묶어놓고 남은 돈으로 주식도 합니다. 동생 필요한 거, 갖고 싶은 거 있다 하면 사주기도 하고요. 쓸 때는 확실하게 쓰고 남은 돈 악착같이 모아서 지금까지 2000만원 정도 모았네요. 누군가에겐 큰 돈이 아닐진 몰라도 저한텐 크고 소중한 돈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열심히 모아서 결혼할 때 엄마한테 손 안 벌리고 싶고, 가족끼리 해외여행도 가고 싶어요. 아! 여행 하니까 생각 난 건데 연말에 제주도 가족여행 갈 예정입니다. 가족끼리 제대로 된 여행 한 번 가보지도 못했고 해서.. 동생이 지금 고3이라 수능 끝나고 가려고 합니다 ㅎㅎ 동생이 초등학교때 이혼을 하게 되어서 그 후에 엄마는 아득바득 어떻게서든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돈을 벌러 다니셔서 가족끼리 추억 쌓을 일이 전혀 없었거든요. 동생은 비행기를 타 본 적도 없어요. 또 얼마나 안쓰럽냐면 학교에서 수련회, 수학여행도 가 본적 없습니다ㅠㅠ 그때마다 계속 사회적으로 일이 터졌어서 .. 놀아도 맨날 동네에서만 놀지 멀리 나가본 적이 없는 애라 혹여나 대학 가면 친구들과 놀때, 여행 다닐때 괜히 주눅 들고 어울리지는 못할까 걱정도 되구요. 아 그리고 다행히 동생은 저랑 좀 달라서 공부를 꽤 해요 ㅎㅎ 어제 본 9모도 221 뭐 이런식으로 나왔다 하더라고요. 이 상황에서도 아빠는 기껏 학원비 몇십만원 대줬다고 모든 지원을 다 해줬다고 생각하는지 공부 잘 하는게 자기 때문이라고 떵떵 거리고 있네요..
그냥 앞으로의 일에 대해서도 벌써부터 걱정이 많아요. 아직 먼 미래이지만 제 결혼식 때 자리에 앉힐 건지 말건지 결혼하는걸 알릴건지에 대해서도.. 친가 할머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게 되면 장례식에 가야 되는지, 아빠가 죽게 되면 과연 내가 슬플까? 눈물이 날까? 이런 생각도 들고 점점 커갈수록 이런 사회적인 문제에 부딪힐 걸 생각하니 벌써부터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동생도 대학 잘 못가면 친가에서 엄마 탓이라고 할까봐 은근 부담감도 큰 것 같더라고요.
그냥 지금 이 순간에도 그저 우리 가족이 별 탈 없이 잔잔하게 계속 행복했으면 하는 바램뿐이에요. 지금도 가끔 엄마랑 얘기 할때면 이렇게 마음 편히 살 줄 알았으면 진작 일찍 이혼할걸 그랬다고 얘기하곤 하세요. 그때는 가정을 지키려고 계속 참고 살았지만 이혼하는게 우리 가족을 지키는 일이었다고 얘기를 들으면 정말 맞는 말인 것 같아서 씁쓸하기도 하네요.
그나저나 이 글을 쓰면서 왜 이리 눈물이 나나 모르겠네요. 몇년이 지난 일이지만 아직도 그때의 상황, 분위기, 말투, 표정 등 선명하게 기억 되는 걸 보면 시간은 계속 흘러가지만 저는 아직도 상처 받았던 그때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상처는 무뎌지겠지만 아마 제가 살면서 계속 안고 갈 평생의 숙제인 것 같아요.
어린애 투정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갑자기 삶이 너무 답답하고 요즘 들어 인생에 회의감도 들고 저 빼고 다 행복한 것 같아서 한 번 써봤어요. 그냥 스스로에게 그동안 잘 버텼으니 앞으로도 힘내라는 말을 하고 싶기도 했고 누군가에게 듣고 싶기도 했나봐요. 지금 보니 내용이 많이 길어졌네요..ㅎㅎ 다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제발 잘 살고 있다고 말 좀 해주세요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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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20대 초반 직장인입니다.
저희 가족은 세 식구 입니다. 엄마, 남동생이랑 도란도란 잘 지내고 있어요. 고1때 부모님은 이혼하셨어요. 이유는 아빠의 가정폭력때문이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술만 먹으면 폭언+폭력 일삼았고, 이 때문에 회식 한다거나 술 약속이 있다는 연락을 받을 때면 저희 가족은 두려움에 떨어야 했습니다. 혹시 부모님을 경찰에 신고해보신 분 계실까요? 뉴스에서만 보던 일이라고 생각하고 어떻게 자기를 낳아준 부모님을 경찰에 신고하지? 라고 생각했었는데 정말 이대로 가만히 있다간 죽겠다 싶으니 신고하게 되더라고요.
고등학교때는 입학하자마자 일주일동안 학교를 못 나갔던 적이 있어요. 친구들은 지금까지도 제가 아파서 못 나간줄 알지만.. 사실은 아빠를 피해 도망 다녔기 때문에 등교할 수 없었습니다.이때 기억은 선명해요. 술에 취해 엄마를 때리고 있으면 초등학생 밖에 안 된 동생은 조그만 몸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아빠를 말리고 있고 저는 그 틈을 타서 제 책가방에다 무작위로 옷을 주워 담고 엄마 지갑과 차키를 챙깁니다. 잠시 아빠가 화장실에 간 사이에 뒤도 안 돌아보고 셋이서 무작정 집을 뛰쳐나왔어요. 이대로 이 집에서 오늘 밤을 보내다가는 엄마가 정말 맞아 죽을 것 같았거든요. 문 열리는 소리에 바로 따라서 뛰쳐 나오는 아빠 때문에 신발 신을 생각도 없이 그냥 신발을 손에 들고 미친듯이 비상 계단으로 뛰어 내려간 다음에 지하 주차장으로 가서 차에 타고 문을 잠궜습니다. 정신 없이 시동을 걸고 빠져 나가려고 하는데 주차장 출구에 우두커니 서서 못나가게 막던 아빠의 모습은 아마 죽을 때까지 잊혀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도망치고 나서는 친한 이모 집에서 한동안 신세를 지며 학교 다니곤 했어요.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었습니다. 이젠 괜찮겠지 하고 하루 학교 나가보면 자기를 피해 도망간 우리 가족을 찾겠다며 제 하교 시간에 맞춰 학교 앞에서 잠복하고 있었거든요. 이때 정신적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새학기인지라 애들은 입학과 동시에 벌써부터 학교 적응하고 친구들 사귀기 바빴고, 일주일만에 등교하고 보니 이미 무리가 많이 형성 되어 있어서 제가 낄 곳은 없었거든요. (그래도 3월 말에 친구들 사귀어서 지금까지도 만나고 매일 연락하며 지내고 있습니다ㅎㅎ)
쨌든 더이상 도망칠수만은 없겠다라는 생각이 들어 결국 그 집에 다시 들어갔어요. 들어가기 전에 저녁으로 설렁탕을 먹으러 갔는데, 동생이 좋아하는 음식인데도 불구하고 한입도 먹지 못하고 집 들어갈 때까지 내내 울더군요. 집 들어가기 무섭고 아빠가 괴물 같다면서요. 그래도 집 안에 남아있는 짐도 있고 언제까지 친한 이모네 집에서 신세를 질 수만은 없으니 들어가서 또 그러면 바로 경찰에 신고하자, 다시 집에서 나오자라고 어찌저찌 달래서 들어갔습니다. 집에 들어가니 식탁 유리는 다 깨져서 널브러져 있고, 티비도 엎어져서 떨어져있고 .. 아마 혼자 분에 못 이겨서 그런 짓을 했겠죠. 예상은 했지만 저희가 집에 들어가자마자 다시 전처럼 난리치는 모습에 동생이 바로 경찰에 신고를 했습니다. 그 이후로 경찰을 수도 없이 부르고, 결국에는 접근 금지 신청하고 저랑 동생은 경찰서 가서 진술서도 썼습니다. 이런 일들 다 겪은 후에야 우여곡절 끝에 이혼을 했는데, 한참이 지난 지금도 아빠는 도대체 왜 이혼까지 했어야 했냐며 자신의 잘못을 모르고 인정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친가에서도 절대 자기 아들이 술먹고 그럴 애가 아니라며 극구 부인했습니다. 삼남매중에 혼자만 아들이었던 아빠였기에 얼마나 애지중지 키웠는지 알아요. 고지식하시고 가부장적인 집안이라 아들이 최고고 남편이 곧 법인 집안입니다. 그래서 당연히 저런 반응 나올줄 알았습니다. 저런 이유 때문도 있지만, 처음 아빠를 피해 도망 나왔던 날 갈 곳이 없었던 저희는 너네 아들이 이렇다는걸 보여줘야겠다며 무작정 밤에 친가로 갔습니다. 이때 엄마 운전 연수 받은지 얼마 안 됐을때라 고속도로 탄 건 처음이셨어요. 그렇게 어렵게 어둠을 헤치고 미숙한 운전으로 갔는데 가자마자 저희 가족에게 했던 할아버지의 말씀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어요. 버릇 없이 밤 늦게 남편 집에 혼자 두고 애들이랑 집 나왔다고, 남편이 그럴수록 더 보듬어주고 참아가며 남편을 진정 시킬 생각을 해야지 라고 하셨습니다. 이때 할아버지에게 정이 정말 다 떨어졌어요. 엄마는 절규하다시피 울었고, 저도 할아버지한테 울며 미친듯이 대들었습니다. 할아버지가 그 집에 가서 단 10분만이라도 같이 있어보라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특별히 아빠와의 추억이 없는 것 같습니다. 사랑 받는다고 느꼈던 적도 없구요. 아이러니한 일들도 많았던 것 같아요. 아직 저는 모성애, 부성애에 대해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도저히 부모로서는 할 수 없는 행동들을 했던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아빠랑 자전거 나들이를 나갔던 날 양갈래 길이 나와서 제가 왼쪽으로 가야 한다고 했는데 오른쪽 길로 가야 된다고 계속 우겨서 따라갔는데 결국은 제가 말했던 길이 옳은 길이었죠. 그래서 내 말이 맞지 않았냐, 너무 힘들어서 더이상 못가겠다 라는 말에 뺨을 맞았어요. 이때 겨우 중1이였습니다. 이 일 말고도 기억은 흐릿하지만 뺨 맞은 적은 두 세번 정도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혼낼때면 정말 무식하게 혼을 냈어요. 초등학생, 중학생 밖에 안 된 저를 정말 죽도로 팼습니다. 목을 조르기도 했어서 잠깐이지만 호흡이 안 되어서 죽다 살아났던 적도 있어요.
지금 보니 정말 다사다난하게 청소년기를 보냈네요. 마음은 힘들었지만 절대 삐뚤어지게 행동하지는 않았어요. 제가 삐뚤어지는 순간 친가에서는 분명히 엄마가 애를 잘못 키워서 라고 얘기할게 뻔했기 때문에 바르게 살았습니다. 주변 친구들 아무도 이혼하고, 제가 이렇게 자라온거 몰라요. 그런데도 학창시절때나, 지금이나 항상 듣는 말은 밝고, 웃음이 많고, 사랑 받고 자란 티가 난다 등등 좋은 얘기 늘상 듣습니다.
대학생 때는 교통비 포함하여 2~30만원 용돈 엄마에게만 받았고 부족한 나머지 돈은 알바하며 채워갔습니다. 아빠한테는 딱히 매달 용돈 받은적은 없습니다. 기껏해야 생일때 10만원 정도.. 취업하고 나서는 아예 용돈도 주지 않고 얼마전에 생일이었는데 생일선물도 주지 않더군요. 그저 제가 직장생활을 하고 있고 이젠 다 컸다는 이유에서만요. 사실 큰 기대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한테 해주는게 없으면 아빠도 저에게 기대하거나 바라는게 없어야 하는거 아닌가요? 취업했으니 동생 용돈 챙겨줘라, 동생 대학 들어가면 등록금 보태라 등등 원하는 게 많습니다. 물론 그냥 흘러가는 식으로 얘기 한거일 수도 있겠지만 정말 싫고 스트레스 받아요. 참고로 저 대학 다닐때 등록금 대준 적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저 고등학교때 학원비도 대준 적 없어요. 그리고 아빠와는 단둘이 절대 만나지 않아요. 저는 불편해서 단둘이 만나는걸 꺼려하지만, 아빠는 그저 동생만 보고싶어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때가 많아요. 그래서 만나게 되면 무조건 셋이서 만나거나 동생만 보거나 입니다. 그리고 저한테 연락 오는 이유도 동생이 연락이 안된다, 동생은 공부 열심히 하고 있냐 등입니다. 물론 어렸을때부터 친가쪽이 동생만 예뻐하는거 알고 있었어요. 저 태어났을때 아들이 아니라 실망했다는 얘기도 들었었고, 하나밖에 없는 아들의 손주이기도 하고 대를 이어갈 사람은 제 동생뿐이니 동생을 엄청 예뻐라 하세요. 그러니 아빠도 저한테와는 달리 동생한테 용돈도 매달 챙겨주고, 학원비 지원도 해주고 열과 성의를 다 하는거겠죠.
대학은 진로 + 빨리 돈 벌어야겠다 라는 이유로 전문대 졸업했고,운이 좋게도 조기 취업해서 현재 1년 6개월 정도 직장 생활 하고 있습니다. 월급은 세후 210 정도 받아요.. 작은 돈이지만 취업과 동시에 매달 엄마에게 30만원씩 용돈 드리고 있구요, 적금도 넣고 예금으로 돈도 묶어놓고 남은 돈으로 주식도 합니다. 동생 필요한 거, 갖고 싶은 거 있다 하면 사주기도 하고요. 쓸 때는 확실하게 쓰고 남은 돈 악착같이 모아서 지금까지 2000만원 정도 모았네요. 누군가에겐 큰 돈이 아닐진 몰라도 저한텐 크고 소중한 돈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열심히 모아서 결혼할 때 엄마한테 손 안 벌리고 싶고, 가족끼리 해외여행도 가고 싶어요.
아! 여행 하니까 생각 난 건데 연말에 제주도 가족여행 갈 예정입니다. 가족끼리 제대로 된 여행 한 번 가보지도 못했고 해서.. 동생이 지금 고3이라 수능 끝나고 가려고 합니다 ㅎㅎ 동생이 초등학교때 이혼을 하게 되어서 그 후에 엄마는 아득바득 어떻게서든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돈을 벌러 다니셔서 가족끼리 추억 쌓을 일이 전혀 없었거든요. 동생은 비행기를 타 본 적도 없어요. 또 얼마나 안쓰럽냐면 학교에서 수련회, 수학여행도 가 본적 없습니다ㅠㅠ 그때마다 계속 사회적으로 일이 터졌어서 .. 놀아도 맨날 동네에서만 놀지 멀리 나가본 적이 없는 애라 혹여나 대학 가면 친구들과 놀때, 여행 다닐때 괜히 주눅 들고 어울리지는 못할까 걱정도 되구요. 아 그리고 다행히 동생은 저랑 좀 달라서 공부를 꽤 해요 ㅎㅎ 어제 본 9모도 221 뭐 이런식으로 나왔다 하더라고요. 이 상황에서도 아빠는 기껏 학원비 몇십만원 대줬다고 모든 지원을 다 해줬다고 생각하는지 공부 잘 하는게 자기 때문이라고 떵떵 거리고 있네요..
그냥 앞으로의 일에 대해서도 벌써부터 걱정이 많아요. 아직 먼 미래이지만 제 결혼식 때 자리에 앉힐 건지 말건지 결혼하는걸 알릴건지에 대해서도.. 친가 할머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게 되면 장례식에 가야 되는지, 아빠가 죽게 되면 과연 내가 슬플까? 눈물이 날까? 이런 생각도 들고 점점 커갈수록 이런 사회적인 문제에 부딪힐 걸 생각하니 벌써부터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동생도 대학 잘 못가면 친가에서 엄마 탓이라고 할까봐 은근 부담감도 큰 것 같더라고요.
그냥 지금 이 순간에도 그저 우리 가족이 별 탈 없이 잔잔하게 계속 행복했으면 하는 바램뿐이에요. 지금도 가끔 엄마랑 얘기 할때면 이렇게 마음 편히 살 줄 알았으면 진작 일찍 이혼할걸 그랬다고 얘기하곤 하세요. 그때는 가정을 지키려고 계속 참고 살았지만 이혼하는게 우리 가족을 지키는 일이었다고 얘기를 들으면 정말 맞는 말인 것 같아서 씁쓸하기도 하네요.
그나저나 이 글을 쓰면서 왜 이리 눈물이 나나 모르겠네요. 몇년이 지난 일이지만 아직도 그때의 상황, 분위기, 말투, 표정 등 선명하게 기억 되는 걸 보면 시간은 계속 흘러가지만 저는 아직도 상처 받았던 그때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상처는 무뎌지겠지만 아마 제가 살면서 계속 안고 갈 평생의 숙제인 것 같아요.
어린애 투정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갑자기 삶이 너무 답답하고 요즘 들어 인생에 회의감도 들고 저 빼고 다 행복한 것 같아서 한 번 써봤어요. 그냥 스스로에게 그동안 잘 버텼으니 앞으로도 힘내라는 말을 하고 싶기도 했고 누군가에게 듣고 싶기도 했나봐요. 지금 보니 내용이 많이 길어졌네요..ㅎㅎ 다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