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크만 박사의 목회서신 주석을 읽으면서 참으로 독튿하지만 가슴에 와 닿는 부분이 있어서 이 불러그에 소개하고자 한다. 우선 그 부분은 인용하기로 하자. 디모데전서 4장 1절을 주석한 부분이다.
"이제 성령께서 분명히 말씀하시나니, 마지막 때에 어떤 자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들과 마귀들의 교리들을 따르리라."
이 성경 구절에 대한 러크만의 주석 내용은 다음과 같다.
"미혹의 역사는 4000년이나 된다. 미혹은 견고하지 못한 혼들을 유혹함으로 이루어진다. 로마카톨릭에서는 이런 미혹으로 죄인들은 안심시키는데, 그것은 죄인이 구원받으려면 교회가 필요하다고 확신시키는 것이며 또 죄인이 교회에 순종하는 한 그 죄인은 안전하다고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이런 미혹은, 순종해야 하는 분 즉 하나님과, '교회'를 간접적으로 서로 바꿔치기 한 것이다."
얼핏 읽으면 평범한 내용의 주석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미혹은 비단 로마카톨릭이 써먹은 수법일 뿐만 아니라 성경대로믿는 지역교회에서도 얼마든지 사용될 수 있는 아주 교묘한 수법이기 때문에 좀더 언급하고자 한다. 그의 주석 중의 특히 마음에 와 닿는 표현은 줄친 부분이다.
목회자가 잘못을 범했을 경우를 가정해 보자. 그런데 목사가 자신의 허물을 인정하는 것은 곧 목사 자격 상실이라는 생각으로 다음과 같은 미혹의 논리로 자신의 권위를 지키는 보루로 삼았다고 가정해보자. "하나님의 일을 하려면 지역교회 중심으로 해야하며 교인이 목사의 말에 순정하는 한 그는 가장 안전하게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다"라고 지역교회의 원칙을 세워놓고 끊임없이 세뇌시킨다고 생각해 보라. 그러한 사고 체계는 악의 축을 형성하는 틀인데 그것은 목회자가 악행을 저지를 때마다 목회자를 옹호하는 자들이 바로 그러한 미혹의 논리로 목회자를 보호하려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목사 옹호자들은 항상 목회자의 악행은 작은일로 치부하고 그가 맡아 행하는 교회 전체 운영의 중차대한 면만을 강조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사의 말을 따라야 한다"는 궤변을 늘어놓는다. 이런 일은 지역교회에서 아주 자주 발생하는 상황이다. 결과적으로 악의 축이 구축되고 목사는 양심에 화인을 맡고 끊임없이 악의 축을 돌리게 된다. 결과적으로 그 교회에 하나님께서 악취로 인하여 도저히 견디지 못하시고 떠나는 불행한 사태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것이 마지막 때, 배교한 교회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따라서 무엇보다 성도가 깨어 있어야 한다. 목사가 깨어있어야 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여기서는 만일 목사가 타락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가 본 글의 촛점이다. 목사 옹호자들처럼 행동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딤전 4:1의 미혹하는 영에 걸린 경우이다. 로마카톨릭이 지금까지 세상의 속인 수법이 바로 그런 것이다. 교회밖에는 구원이 없다고 일단의 울타리를 친 다음, 신부의 말이 곧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절대적으로 순종해야 한다. 이런 논리는 비단 로마카톨릭의 전유물인가? 그건 개신교 지역교회에서는 아주 흔하게 듣는 말이 아닌가? 만약 상기와 같은 미혹으로 교회를 운영한다면 그 교회가 카톨릭이든 개신교이든 침례교든 성경대로믿는 교회이든 상관 없다. 그 개신교는 프로테스탄트-카톨릭교회이다.그 침례교회는 침례카톨릭 교회이다. 그 성경대로믿는교회는 "성경대로믿는카톨릭교회"인 것이다. 말이 이상한가? 빈정거리는 표현이다. 말로는 침례교회이지만 결과적으로 카톨릭과 다름없는 침례교회라는 말이다. 말로는 성경대로믿는 교회라지만 결과적으로 카톨릭과 다를바 없는 교회라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목회자가 범죄하였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잘못을 지적해야 한다. 잘못의 지적도 품격이 있다. 그리스도인 다운 방법으로 지적해야 한다.
2. 미혹에 빠지지 않도록 그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3. 고치지 않으면 교제를 잠시 끊어야 한다.(교회를 떠나라는 의미가 아님) 목사라고 특별하지 않다. 죄 중에 있으면 권면하고 그래도 말 안들으면 교제하지 말라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다만 영적으로 가르치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보다 신중하고 이례적이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4. 목사가 잘못했다하여 '목사 자격이 없다'고 함부로 단정해서는 안된다. 목사의 자격심사는 성도들의 소관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기다려야 한다. 교인이 목사와 소원하고 교제를 멀리한다면, 목사에 대한 사랑과 존경이 식는다면 정신이 올바로 박힌 목사라면 곧 알아차릴 것이다. 그 원인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를 알게 되어 있다. 그 때 목사가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하고 성경적으로 바로 서면 교인들의 목사를 향한 존경은 곧 회복될 것이다.
5. 목사가 잘못을 인정하고 성경적으로 돌이킬 수 있는 목사라면 언제든지 교제를 해야하며 목사로 인정하고 존경해야 한다.
이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목사도 사람이기 때문에 실수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어떤 자들은 바리새인같이 끊임없이 정죄만 하는 인간이 있다. 이런 자는 마귀의 종들이다.) 또한 목사도 자신의 실수나 죄를 인정할 줄 아는 은혜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목사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고 해서 영적 권위가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가 회개 후 양무리의 본이 되어 준다면 그는 성경적으로 목사의 자격을 가진 자이다. 성경에 '목사는 단 한번의 실수도 없어야 하고' 라는 단서조항이 있는가? 그런 것은 없다. 중요한 것은 그가 양무리의 본이 되고 있는가이다. 그가 돌이키고 열심히 목회하여 양무리의 본이 된다면 누가 그를 정죄하겠는가?
목사의 잘못은 비단 목사만의 허물이 아니라 그 교회에 속한 모든 교인들도 공동으로 책임이 있음을 알고 기도하지 못한 죄를 함께 회개하고 다시는 마귀의 올무에 걸리지 않도록 재무장해야 한다.
목회자가 범죄하였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러크만 박사의 목회서신 주석을 읽으면서 참으로 독튿하지만 가슴에 와 닿는 부분이 있어서 이 불러그에 소개하고자 한다. 우선 그 부분은 인용하기로 하자. 디모데전서 4장 1절을 주석한 부분이다.
"이제 성령께서 분명히 말씀하시나니, 마지막 때에 어떤 자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들과 마귀들의 교리들을 따르리라."
이 성경 구절에 대한 러크만의 주석 내용은 다음과 같다.
"미혹의 역사는 4000년이나 된다. 미혹은 견고하지 못한 혼들을 유혹함으로 이루어진다. 로마카톨릭에서는 이런 미혹으로 죄인들은 안심시키는데, 그것은 죄인이 구원받으려면 교회가 필요하다고 확신시키는 것이며 또 죄인이 교회에 순종하는 한 그 죄인은 안전하다고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이런 미혹은, 순종해야 하는 분 즉 하나님과, '교회'를 간접적으로 서로 바꿔치기 한 것이다."
얼핏 읽으면 평범한 내용의 주석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미혹은 비단 로마카톨릭이 써먹은 수법일 뿐만 아니라 성경대로믿는 지역교회에서도 얼마든지 사용될 수 있는 아주 교묘한 수법이기 때문에 좀더 언급하고자 한다. 그의 주석 중의 특히 마음에 와 닿는 표현은 줄친 부분이다.
목회자가 잘못을 범했을 경우를 가정해 보자. 그런데 목사가 자신의 허물을 인정하는 것은 곧 목사 자격 상실이라는 생각으로 다음과 같은 미혹의 논리로 자신의 권위를 지키는 보루로 삼았다고 가정해보자. "하나님의 일을 하려면 지역교회 중심으로 해야하며 교인이 목사의 말에 순정하는 한 그는 가장 안전하게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다"라고 지역교회의 원칙을 세워놓고 끊임없이 세뇌시킨다고 생각해 보라. 그러한 사고 체계는 악의 축을 형성하는 틀인데 그것은 목회자가 악행을 저지를 때마다 목회자를 옹호하는 자들이 바로 그러한 미혹의 논리로 목회자를 보호하려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목사 옹호자들은 항상 목회자의 악행은 작은일로 치부하고 그가 맡아 행하는 교회 전체 운영의 중차대한 면만을 강조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사의 말을 따라야 한다"는 궤변을 늘어놓는다. 이런 일은 지역교회에서 아주 자주 발생하는 상황이다. 결과적으로 악의 축이 구축되고 목사는 양심에 화인을 맡고 끊임없이 악의 축을 돌리게 된다. 결과적으로 그 교회에 하나님께서 악취로 인하여 도저히 견디지 못하시고 떠나는 불행한 사태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것이 마지막 때, 배교한 교회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따라서 무엇보다 성도가 깨어 있어야 한다. 목사가 깨어있어야 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여기서는 만일 목사가 타락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가 본 글의 촛점이다. 목사 옹호자들처럼 행동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딤전 4:1의 미혹하는 영에 걸린 경우이다. 로마카톨릭이 지금까지 세상의 속인 수법이 바로 그런 것이다. 교회밖에는 구원이 없다고 일단의 울타리를 친 다음, 신부의 말이 곧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절대적으로 순종해야 한다. 이런 논리는 비단 로마카톨릭의 전유물인가? 그건 개신교 지역교회에서는 아주 흔하게 듣는 말이 아닌가? 만약 상기와 같은 미혹으로 교회를 운영한다면 그 교회가 카톨릭이든 개신교이든 침례교든 성경대로믿는 교회이든 상관 없다. 그 개신교는 프로테스탄트-카톨릭교회이다.그 침례교회는 침례카톨릭 교회이다. 그 성경대로믿는교회는 "성경대로믿는카톨릭교회"인 것이다. 말이 이상한가? 빈정거리는 표현이다. 말로는 침례교회이지만 결과적으로 카톨릭과 다름없는 침례교회라는 말이다. 말로는 성경대로믿는 교회라지만 결과적으로 카톨릭과 다를바 없는 교회라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목회자가 범죄하였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잘못을 지적해야 한다. 잘못의 지적도 품격이 있다. 그리스도인 다운 방법으로 지적해야 한다.
2. 미혹에 빠지지 않도록 그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3. 고치지 않으면 교제를 잠시 끊어야 한다.(교회를 떠나라는 의미가 아님) 목사라고 특별하지 않다. 죄 중에 있으면 권면하고 그래도 말 안들으면 교제하지 말라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다만 영적으로 가르치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보다 신중하고 이례적이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4. 목사가 잘못했다하여 '목사 자격이 없다'고 함부로 단정해서는 안된다. 목사의 자격심사는 성도들의 소관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기다려야 한다. 교인이 목사와 소원하고 교제를 멀리한다면, 목사에 대한 사랑과 존경이 식는다면 정신이 올바로 박힌 목사라면 곧 알아차릴 것이다. 그 원인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를 알게 되어 있다. 그 때 목사가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하고 성경적으로 바로 서면 교인들의 목사를 향한 존경은 곧 회복될 것이다.
5. 목사가 잘못을 인정하고 성경적으로 돌이킬 수 있는 목사라면 언제든지 교제를 해야하며 목사로 인정하고 존경해야 한다.
이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목사도 사람이기 때문에 실수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어떤 자들은 바리새인같이 끊임없이 정죄만 하는 인간이 있다. 이런 자는 마귀의 종들이다.) 또한 목사도 자신의 실수나 죄를 인정할 줄 아는 은혜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목사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고 해서 영적 권위가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가 회개 후 양무리의 본이 되어 준다면 그는 성경적으로 목사의 자격을 가진 자이다. 성경에 '목사는 단 한번의 실수도 없어야 하고' 라는 단서조항이 있는가? 그런 것은 없다. 중요한 것은 그가 양무리의 본이 되고 있는가이다. 그가 돌이키고 열심히 목회하여 양무리의 본이 된다면 누가 그를 정죄하겠는가?
목사의 잘못은 비단 목사만의 허물이 아니라 그 교회에 속한 모든 교인들도 공동으로 책임이 있음을 알고 기도하지 못한 죄를 함께 회개하고 다시는 마귀의 올무에 걸리지 않도록 재무장해야 한다.
오늘날 이렇게 솔직하고 은혜로운 교회가 과연 얼마나 남아있을까?
[출처] 교회를 떠나는 교인들|작성자 뚜버기
http://cafe.daum.net/kjvbible1611/bcci/30?q=%B1%B3%C8%B8%C0%C7%20%C0%DF%B8%F8%20%B8%B6%B1%CD%C0%C7%20%BC%F6%B9%F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