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도 어느덧 30대 중반을 훌쩍 지나 40으로 향하는데
요즘 가족과 연 끊었다는 얘기가 심심치 않게 보인다.
내 주변에 실제로 그런 사람들도 제법 있고.
사실 나도 가족과 인연 끊고 사는데 벌써 3년째다.
주변에는 내색 안 하고 사니까 내가 이런 아픔이 있는지 모르는데
정말 심각한 거 아니면 가족과 연 끊는거 함부로 하지마라.
정신적인 고통이 상당히 크고 정말 힘들 때 기댈 곳이 없다는 거 만큼 힘든 게 없더라.
나는 그나마 아내와 딸이 있고 부모님 같은 장인어른, 장모님이 계셔서 버티고 있는데 그래도 남모를 아픔이 있다.
아내도 내가 이렇게 힘들어하는지 모른다.
내가 가족과 연을 끊은 이야기를 해보자면 상당히 긴데
우리 부모님은 여러 가지 이유로 내가 중학교 1학년 때 이혼하셨다. 어리다면 어린 나이지만 그래도 두 분 인생이 있으니 이해하기로 했고 그때부터 여동생과 둘이 지냈다.
경제적인 지원은 아버지로부터 받았고 부모님과 떨어져 살면서 간간히 교류는 했다. 좋은 친구들을 만난 덕분에 보통의 학생처럼 대학교를 갔고 대학교를 졸업하면서 어려운 직업을 택했다.
경제적인 이유도 있었고 빨리 자립해서 내 가족을 만들고 싶었다.
이후 내가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늦게 대학교를 간 동생의 기숙사 비와 용돈도 주고 등록금도 몇 번 내주고 살았다.
어머니가 차를 구매하실 때는 절반을 부담하기도 했고 가끔 휴가를 나오면 어머니 힘든 모습이 싫어 좋은 옷도 사드리고 좋은 곳에서 맛있는 음식도 사드렸다.
재혼하신 아버지에게도 아들로서 도리를 다했는데 새어머니와 이복 형제들과 자주 만났고 그쪽 행사가 있으면 꼭 참석을 했다.
이렇게 헌신적으로, 그래도 우리 가족이라고 챙겼는데
내가 결혼한 이유로 많은 것이 달라졌다.
1. 먼저 상견례 당시 양가부모님께 부담드리기 싫다고 결혼식은 최소한으로 할 것이고 내가 모은 돈으로 최대한 하겠다고 했는데 정말 아무것도 안해주더라.
축의금만 내가 가져가게 해달라 했는데 식이 끝나니까 아버지나 어머니나 그것마저 가져가려고 하더라.
2. 어렵게 모은 돈으로 20대 중반에 첫 차를 구매했는데 친척들에게는 마치 아버지가 사주신 것처럼 소문이 나있었다. 그러려니 했다.
3. 결혼 이후 가족들과 떨어져 경북에서 5년 정도 근무를 하게 되었는데 타향살이가 외로웠고 딸이 태어나면서 경제적으로 힘든 상태에서도 열심히 살았다. 보통 손녀가 보고 싶으면 연락도 자주하고 보고싶어서라도 종종 찾아올텐데 5년 간 딱 한 번 있었다. 여행가는데 지나가다가.
4. 나한테는 연락도 안하면서 새어머니쪽 형, 누나 가족 그리고 내 동생의 가족과는 자주 모여 식사를 하고 여행 다니는 사진을 나 보란듯이 SNS에 올리더라. 여기서 실망감이 극에 달했고 정이 많이 떨어졌다. 나와 아내, 딸의 생일에는 연락도 없었다.
5. 정말 열심히 살았고 주택청약에 당첨이 되어서 부모님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나는 그 동안 고생 많았다 이런 소리를 듣고 싶었는데 '거기에 집을 왜사냐, 뭐가 있다고'이렇게 말하시더라.
어머니는 '네가 무슨 돈이 있다고' 이렇게 말하셨다.
이때부터였다. 내가 가족에게 완전히 돌아선 게.
어린 나이에 부모님과 떨어져 살았어도 말썽 한 번 부리지 않고 성실히 살았고 어떤 도움 없이도 스스로 잘 살았다고 자부했는데 참 허무했다.
6. 작년과 올해 큰 사고가 두 번 있었다. 동료들과 지인들에게 괜찮냐고 연락이 올 만큼 큰 사고였다. 뉴스에서 봤으면 아무리 연을 끊고 살았어도 연락 한 번쯤은 올 줄 알았다. 그러나 전혀 없었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내 여동생은 내가 죽어도 찾아오지 않은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위에 언급한 내용 말고도 참 많지만 입만 아프지.
가족들은 물론이고 주변 친척들은 내가 어떤 아픔이 있었는지도 모르면서 마치 천하의 개XX이고 불효자처럼 얘기하는게 들리던데 전혀 게의치 않는다.
이제 나도 아쉬운 소리 안해도 될만큼 자리 잡았고 그 누구보다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다.
가끔 부모님 모시고 가족끼리 여행하는 거 보면 부럽기도 한데 내딸에게는 나같은 아픔을 물려주기 싫어 처가 식구들과 여행도 다니고 많은 추억을 만들고 있다.
서운함이 쌓이니까 미움이 되고 미움이 커지니까 오히려 그들이 불쌍해졌다.
이런 감정들의 변화가 꽤 오랜 시간에 걸쳐 반복되고 이제는 아무렇지 않게 되었다.
내 얘기를 길게 써봤는데 난 돌이킬 수 없고 돌아갈 마음도 없다.
만약에 가족과 연 끊을 생각이 있으면 후회하지 말기 바란다.
상상 이상으로 고통이 크다.
나는 힘들 때 주변에 아무도 없고 너무 외로웠지만
딸에게 만큼은 비빌 언덕이 되어주고 싶다.
가족과 연 끊는거 함부로 하지마라.
요즘 가족과 연 끊었다는 얘기가 심심치 않게 보인다.
내 주변에 실제로 그런 사람들도 제법 있고.
사실 나도 가족과 인연 끊고 사는데 벌써 3년째다.
주변에는 내색 안 하고 사니까 내가 이런 아픔이 있는지 모르는데
정말 심각한 거 아니면 가족과 연 끊는거 함부로 하지마라.
정신적인 고통이 상당히 크고 정말 힘들 때 기댈 곳이 없다는 거 만큼 힘든 게 없더라.
나는 그나마 아내와 딸이 있고 부모님 같은 장인어른, 장모님이 계셔서 버티고 있는데 그래도 남모를 아픔이 있다.
아내도 내가 이렇게 힘들어하는지 모른다.
내가 가족과 연을 끊은 이야기를 해보자면 상당히 긴데
우리 부모님은 여러 가지 이유로 내가 중학교 1학년 때 이혼하셨다. 어리다면 어린 나이지만 그래도 두 분 인생이 있으니 이해하기로 했고 그때부터 여동생과 둘이 지냈다.
경제적인 지원은 아버지로부터 받았고 부모님과 떨어져 살면서 간간히 교류는 했다. 좋은 친구들을 만난 덕분에 보통의 학생처럼 대학교를 갔고 대학교를 졸업하면서 어려운 직업을 택했다.
경제적인 이유도 있었고 빨리 자립해서 내 가족을 만들고 싶었다.
이후 내가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늦게 대학교를 간 동생의 기숙사 비와 용돈도 주고 등록금도 몇 번 내주고 살았다.
어머니가 차를 구매하실 때는 절반을 부담하기도 했고 가끔 휴가를 나오면 어머니 힘든 모습이 싫어 좋은 옷도 사드리고 좋은 곳에서 맛있는 음식도 사드렸다.
재혼하신 아버지에게도 아들로서 도리를 다했는데 새어머니와 이복 형제들과 자주 만났고 그쪽 행사가 있으면 꼭 참석을 했다.
이렇게 헌신적으로, 그래도 우리 가족이라고 챙겼는데
내가 결혼한 이유로 많은 것이 달라졌다.
1. 먼저 상견례 당시 양가부모님께 부담드리기 싫다고 결혼식은 최소한으로 할 것이고 내가 모은 돈으로 최대한 하겠다고 했는데 정말 아무것도 안해주더라.
축의금만 내가 가져가게 해달라 했는데 식이 끝나니까 아버지나 어머니나 그것마저 가져가려고 하더라.
2. 어렵게 모은 돈으로 20대 중반에 첫 차를 구매했는데 친척들에게는 마치 아버지가 사주신 것처럼 소문이 나있었다. 그러려니 했다.
3. 결혼 이후 가족들과 떨어져 경북에서 5년 정도 근무를 하게 되었는데 타향살이가 외로웠고 딸이 태어나면서 경제적으로 힘든 상태에서도 열심히 살았다. 보통 손녀가 보고 싶으면 연락도 자주하고 보고싶어서라도 종종 찾아올텐데 5년 간 딱 한 번 있었다. 여행가는데 지나가다가.
4. 나한테는 연락도 안하면서 새어머니쪽 형, 누나 가족 그리고 내 동생의 가족과는 자주 모여 식사를 하고 여행 다니는 사진을 나 보란듯이 SNS에 올리더라. 여기서 실망감이 극에 달했고 정이 많이 떨어졌다. 나와 아내, 딸의 생일에는 연락도 없었다.
5. 정말 열심히 살았고 주택청약에 당첨이 되어서 부모님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나는 그 동안 고생 많았다 이런 소리를 듣고 싶었는데 '거기에 집을 왜사냐, 뭐가 있다고'이렇게 말하시더라.
어머니는 '네가 무슨 돈이 있다고' 이렇게 말하셨다.
이때부터였다. 내가 가족에게 완전히 돌아선 게.
어린 나이에 부모님과 떨어져 살았어도 말썽 한 번 부리지 않고 성실히 살았고 어떤 도움 없이도 스스로 잘 살았다고 자부했는데 참 허무했다.
6. 작년과 올해 큰 사고가 두 번 있었다. 동료들과 지인들에게 괜찮냐고 연락이 올 만큼 큰 사고였다. 뉴스에서 봤으면 아무리 연을 끊고 살았어도 연락 한 번쯤은 올 줄 알았다. 그러나 전혀 없었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내 여동생은 내가 죽어도 찾아오지 않은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위에 언급한 내용 말고도 참 많지만 입만 아프지.
가족들은 물론이고 주변 친척들은 내가 어떤 아픔이 있었는지도 모르면서 마치 천하의 개XX이고 불효자처럼 얘기하는게 들리던데 전혀 게의치 않는다.
이제 나도 아쉬운 소리 안해도 될만큼 자리 잡았고 그 누구보다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다.
가끔 부모님 모시고 가족끼리 여행하는 거 보면 부럽기도 한데 내딸에게는 나같은 아픔을 물려주기 싫어 처가 식구들과 여행도 다니고 많은 추억을 만들고 있다.
서운함이 쌓이니까 미움이 되고 미움이 커지니까 오히려 그들이 불쌍해졌다.
이런 감정들의 변화가 꽤 오랜 시간에 걸쳐 반복되고 이제는 아무렇지 않게 되었다.
내 얘기를 길게 써봤는데 난 돌이킬 수 없고 돌아갈 마음도 없다.
만약에 가족과 연 끊을 생각이 있으면 후회하지 말기 바란다.
상상 이상으로 고통이 크다.
나는 힘들 때 주변에 아무도 없고 너무 외로웠지만
딸에게 만큼은 비빌 언덕이 되어주고 싶다.
가족들과 사이가 틀어진 사람들아 힘내.
오해가 쌓이기 전에 대화로 잘 풀어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