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가) 내가 자기 자존감 깎아먹었다는 남편

ㅇㅇ2022.10.05
조회7,146
추가)

댓글들 감사해요. 

사실 이렇게 글 적으면서도 내가 부족한건가에 대한 죄책감이 있었는데 거의 대부분 분들이 글만 읽고도 저랑 비슷한 생각과 답답함을 표현해 주셔서 저에 대한 의심은 거뒀어요.

너무 늦었고 글이 길어질꺼 같아 읽으실 분들이 계실진 모르겠지만, 후기 아닌 후기를 얘기 해 보자면,

지팔지꼰 맞아요.

연애 할때부터 이런 모습들을 보여줬고, 심지어 연애 짧게 한것도 아니고 몇년 연애 하고 결혼 한거에요.

사실 갓 스물에 만나서 이상한 형들이랑 놀면서 형들이 요즘 대학 졸업 증명서 다 소용 없다 그랬다고 그래서 자기는 일찍 장사 배울꺼라고 하는 애 설득해서 대학 입학 시키고 졸업까지 시켰어요.
(대학 안가고 일찍 장사 시작하는게 문제가 아니라, 얘기 들어보니까 진지하게 비전이 있는것도 아니고, 그냥 뜬구름 잡는 소리 하길래 나중에 뭐라도 하려면 대학 졸업장이라도 따놓으라고 한 거 였어요.)

졸업 시켰다고 표현한 이유는 제가 입학 준비랑 입학 시험 도와주고 저랑 같은 학교에 등록시켜서 제가 옆에서 계속 챙겨주고 같이 졸업 했거든요.
(해외라 수능 같은건 없어서 가능 했던거 같아요)

그 때 부터 이런 사람인거 알고 있었는데, 솔직히 저는 사람이 처음엔 부족할 수 있어도 이렇게 옆에서 도와주고 어떻게 하는지 알려주면 점점 뭔가 하는 것에도 익숙해지고 성취감도 생겨서 나중에는 스스로 알아서 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 줄 알았어요.

그냥 10대 시절에 가정사 때문에 방치되어 자랐고, 이끌어줄 사람 하나 없이 자란 사람이라 지금은 못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저도 비슷한 가정 환경이였지만, 그냥 저는 원래 혼자서 잘 배워서 하는 스타일이고, 가르쳐줘야 할 수 있는 스타일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배울 의지도 능력도 없는 사람이 있을꺼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그래서 신랑이 조금씩 성장하기만 해도 제가 옆에서 도와주는 건 기꺼이 감내할 생각으로 결혼 했어요.

심지어 결혼 하기 직전 까지는 학교도 잘 다니면서 제가 추천해준 직장에서 적성을 발견해서 그쪽으로 더 공부하고 발전하고 싶다는 진취적인 모습까지 보여줬었기에 이대로 제가 옆에서 도와주면 같이 성장해 가면서 살 수 있을 줄 알았어요.

근데 10년이 지나도 그대로는 커녕 더 퇴화해서 더 사소한거까지 저한테 의지 하고 저 없이는 더 아무것도 못하고 맨날 자신의 한심한 모습에 말도 안되는 핑계 되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 실망스럽고 절망 했던거 같아요. 
같이 성장하기는 커녕 저까지 같이 밑으로 끌려가는 느낌이니까요.


물론 남편 좋은점도 많으니까 그래도 계속 좋아했고 결혼 생활 유지 했어요.

참 애교도 많고 사랑 표현도 잘하고 다정하거든요.
쇼파에서 낮잠자고 있으면 이불 덮어주고, 밥먹으면 간식 챙겨주고 등등.

밖에서도 엄청 인정 받아요. 엄청 성실하고 희생정신이 강하거든요.
사회 생활도 엄청 잘해서 항상 어딜가나 이쁨받고.
(병원에서 일해서 제가 환자로도 많이 갔었고, 가족 동반 모임에도 초대 받아서 직접 다 봤어요. 평소에 챙김 많이 받아서 음식이나 선물들도 많이 받아오구요.)


근데 그런 사람이 진짜 이중인격처럼 구니까 제가 더 햇갈렸던거 같아요.

일얘기만 하면 자신감 뿜뿜 하던 사람이 일 외에 모든 부분에 자존감 바닥 찍는 모습만 보여주고

평소에는 자기가 머리가 안좋은거 같다고 징징댔으면서,
한번 싸우기 시작하면 태도부터 둘변해서 다리 꼬고 삐딱하게 앉아서 자기는 엄청 똑똑한데 멍청한 저를 맞춰주고 있다는 식으로 말하면서 제가 하는 모든말을 비웃고 한숨 쉬고

또 평소에는 저보고 똑똑하다고 멋있다고 했던 사람이 마찬가지로 싸우면 사람을 생각 짧고 자기 말도 못알아 듣는 등신 취급하고
(싸우는 내내 지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계속 말을 바꿔서 대화를 진행 할 수 없음)


평소에 저를 그렇게 사랑한다고 하고 밖에선 여왕처럼 받들어주는 척 하면서 막상 제가 너무 힘들다고 하면 모른척 하고


그냥 저랑 결이 너무 다른 사람인거 같아요.

저는 사랑하는 사람이 안힘들었으면 좋겠고, 항상 웃었으면 좋겠어서 기꺼이 힘든 일들은 제가 다 처리하고 혼자 삼키는게 제 사랑 표현 이였고,
결혼 생활 내내 제가 할 수있는것 이상으로 감내하고 살았던거 같은데, 남편은 제가 애정 표현이 적어서 제 사랑을 느낀적이 없어서 불만이래요.
(사실 점점 저한테만 의지하는게 너무 한심하게 느껴지고 힘든 저를 외면하는게 점점 정떨어져서 애정 표현이 줄었던건 사실이에요.) 


반대로 남편은 무조건적으로 애정표현도 많이하고 스킨쉽도 많이 하는게 사랑의 표현이고 본인도 결혼 생활 내내 최선을 다해서 저한테 표현 했을텐데,
막상 저는 본인이 힘들때 마다 저를 방패막이 삼아 제가 더 힘들고 고통스러워질때 편하게 도망가는 남편을 보면서 남편이 하는 애정 표현 조차 점점 기만으로 느껴졌네요.



사실 그래도 글 쓰고 나서도 마음이 흔들렸어요.

남편이 키도 크고 얼굴도 호감형에 이미지 관리를 엄청 잘해서, 사람들이 다 좋아하고 밖에서는 제가 공주 대접 받고 사는줄 알아요.
남편은 곰같고 유한 사람이라 저한테 잡혀 사는 줄 알구요.
주변에서 남편 잘 만났다 신랑이 너무 착하다 그러니까 저도 자꾸 내가 역시 이해심이 부족 한걸까 나한테 뭔가 문제가 있는걸까 하는 생각도 자꾸 들게 되구요.

아무래도 둘이 서로 어렸을때부터부터 함께였고, 10년 동안 둘만의 추억도 많고 또 같이 있을땐 개그 코드도 잘 맞고 신나고 즐거웠거든요.
그러니까 남편이 변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망상같은 희망을 저도 모르게 품게 되더라구요.

근데 댓글들을 읽으면서 차분히 계속 생각해보니까,점점 명확해지더라구요.

남편은 절대 변하지 않겠죠.
계속 같이 살면 앞으로도 제가 모든 일을 처리하는게 제가 힘들던 말던 효율 거라서 당연한거고, 본인이 아무것도 혼자 못하는건 그때마다 사정이 있는거니 당연히 제가 이해해줘야하고,
본인이 자기 의견이 없어서 제 의견대로 한 일들에는 저를 맞춰주기 위해 희생 한거고,
이 모든 상황을 포함 저런 말같지도 않은 소리를 듣고도 이해하고 품어줘야 하고 못하면 이해심 부족한 이기적인 사람으로 살면서 원망만 듣겠죠.

더 괴로운건 저도 하나도 잘나지 않고 똑똑하지 않은데, 남편을 보면서 자꾸 저도 모르게 지능 문제가 있는거 같다고 무시하고 낮게보는 못된 제 자신을 마주해야하는거구요.


게다가 사실 결혼 생활 내내 남편이 보여주는 공감 능력이나 이해력, 판단력 등이 부족한 모습들을 보면서 남편 닮은 애를 낳을까봐 무서워서 안낳고 살기로 마음먹은 이 상황이 말이 안되는거 같아요.
남들한텐 이런저런 핑계 되며 딩크라고 했지만 사실은 저도 아이를 가지고 싶거든요.


사실 아직도 뭐가 뭔지 햇갈려요.

진짜 지능이 떨어지는건지 편하게 살고 싶어서 그런 척 하는건지... 
진짜 지능이 그렇게 떨어지는데 저렇게 이미지 관리를 잘 하고 사회 생활을 할 수 있는건지...


뭐가 됐든 저는 이제 그만 하고 싶어요.

자꾸 좋았던 기억 때문에 마음이 흔들리지만,
댓글들 덕분에 정신차리고 마음 정리부터 하려고 별거 준비 하고 있습니다.


쓰다보니 하소연 하듯이 횡설수설에 글이 길어졌네요.읽어주셔서 감사하고 댓글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