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부터 어떻게 글을 써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제게는. 오랫동안 마음에 품었던 친구가 있습니다. 경제적인 사정. 집이 너무 멀었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그 아이와의 첫만남이 너무나도 좋지 않아서.. 지울래야 지울수가 없는 끔찍한 일이라서. 몇번이나 내게 내민 손을. 딱 잘라 거부하였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아이에 대한 내 마음을 알았지만. 그땐 너무 늦어버렸어요. 상처 받은 그 아이가. 일 핑계로 해외엘 갔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슬픈들. 마음이 아픈들. 내가 버린 그 아이. 내가 상처준 그 아이. 미안한 마음이 너무나도 커서 먼저 연락 한번 못했습니다.. 지금 제게는 남자친구가 있습니다. 하루하루가 숨쉬기 조차 많이 힘든 제게, 항상 힘이 되어주던 사람입니다. 핑계.. 겠지요? 나이차 다섯살 정도.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세대 차이 인건지. 생각의 차이 인건지. 독불장군. 무조건 우기고 보고.. 남성 우월주의. 시골을 좋아하는 순박한 사람..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만 자랐고. 부모도 없이 혼자 자라서, 정이란걸 전혀 모르는 저랑은 너무나 달랐어요. 참는게 습관인지라.. 참고 참고.. 상처가 쌓이다 보니 결국 백여일만에 제 마음은 완전히 닫혀버렸습니다. 헤어지자고 몇번이나 얘길해도 놓아주질 않는 그사람. 그것때문에 더 질려버린것 같아요.. 언젠가 해외에 간 그 아이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한국에 잠깐 들어왔는데, 심심하다며, 쇼핑해야 되는데 물건을 좀 골라달라며, 전 그 아이가 그저 친구라도 괜찮았기에.. 일년만에 온 연락이 너무나도 반가워서, 그 아이를 만나 잠깐 쇼핑하고, 밥 먹고. 그렇게 그냥 헤어졌습니다. 그 아이는 연락도 없이 다시 해외에 나가버렸구요.. 참 무서운 타이밍에.. 그 아이에게서 다시 연락이 왔습니다. 병때문에 많이 변해버린 내모습은 아무렇지도 않은듯이. 니가 염려하던, 우리가 사귈 수 없었던 사정들은 다 사라졌다며. 올해 6월에 한국에 완전히 들어오면. 진지하게 만나주지 않겠냐며.. 그렇게 얘길 하대요. 솔찍히 기뻤습니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응했습니다. 전. 많이 아픕니다. 사지육신 멀쩡한데, 그것만으로도 감사해라 하실지 모르겠지만, 정말 많이 아파요. 숨이 턱턱 막혀와도, 숨을 어떻게 셔야할지 조차 모를만큼.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많이 아픕니다. 12월 25일. 양귀비 두알과, 수십알의 수면제. 신경안정제. 그것들을 먹고, 높이 걸린 로프에 목을 매었습니다. 튼튼할거라 믿었던 로프는 끊어져버렸고 한참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난 저는. 기절중 깨물고 있었던 혀와, 가슴과 배가 너무 아파서 한참을 울다가. 부엌에서 칼이란 칼은 다 들고 다시 방에 들어왔어요. 이미 약에 취한 상태라, 조금의 고통조차 느끼지 못한채 손목을 긋기 시작했습니다. 막 거센 피가 나기 시작했을 무렵, 지금의 남자친구가 들이닥쳤고, 제지당한 저는 그것에 너무 화가나서, 던지고 부수고. 심지어 그사람 목까지 졸라 죽일뻔 했습니다. 지금은.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걸 보면 살아있나봐요. 오랫동안 마음에 품었던 그 아이도 그 아이지만. 그런일을 당하고서도,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옆에 있는 남자친구. 어느한쪽 버릴 수 없어요.. 가뜩이나 정상적인 상태도 아닌데.. 당연한 얘기겠지만. 둘다 한사람은 빨리 정리해주길 나한테 바래요. 내 몸 내가 다스릴 힘도 없는데. 어떻게 해야 될지 머리속이 새하얀데. 제가 못된 아이인거 잘 아는데요.. 지금은, 빨리 정리하라는 그사람들이 그저 밉기만 해요. 처음으로 제게 남자친구란것은 과분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저 사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근데 저 외로움도 너무 많고, 의지할만한 부모님이나 친구도 없고. 제일 큰 문제는 지금 제가 정상이 아니라는거고.. 혼자서는 더 버텨할 수 없을텐데. 라는 생각에 어느 한쪽 정리하지 못하고. 오늘도 눈물뿐인 하루를 보내고 있네요. 둘다 만나지 않거나, 어느 한쪽을 정리하는건 지금 제겐 너무 힘든 일입니다. 뭘 바라는건지.. 악플 뿐이란걸 예상하고 있는데, 머리는 아는데.. 그저 답답한 마음에.. 글을 올려 봅니다.
제게 남자란.. 사치인건가요?
어디서 부터 어떻게 글을 써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제게는. 오랫동안 마음에 품었던 친구가 있습니다.
경제적인 사정. 집이 너무 멀었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그 아이와의 첫만남이 너무나도 좋지 않아서..
지울래야 지울수가 없는 끔찍한 일이라서.
몇번이나 내게 내민 손을. 딱 잘라 거부하였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아이에 대한 내 마음을 알았지만.
그땐 너무 늦어버렸어요.
상처 받은 그 아이가. 일 핑계로 해외엘 갔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슬픈들. 마음이 아픈들.
내가 버린 그 아이. 내가 상처준 그 아이.
미안한 마음이 너무나도 커서 먼저 연락 한번 못했습니다..
지금 제게는 남자친구가 있습니다.
하루하루가 숨쉬기 조차 많이 힘든 제게, 항상 힘이 되어주던 사람입니다.
핑계.. 겠지요?
나이차 다섯살 정도.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세대 차이 인건지. 생각의 차이 인건지.
독불장군. 무조건 우기고 보고.. 남성 우월주의. 시골을 좋아하는 순박한 사람..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만 자랐고.
부모도 없이 혼자 자라서, 정이란걸 전혀 모르는 저랑은 너무나 달랐어요.
참는게 습관인지라.. 참고 참고.. 상처가 쌓이다 보니
결국 백여일만에 제 마음은 완전히 닫혀버렸습니다.
헤어지자고 몇번이나 얘길해도 놓아주질 않는 그사람.
그것때문에 더 질려버린것 같아요..
언젠가 해외에 간 그 아이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한국에 잠깐 들어왔는데, 심심하다며,
쇼핑해야 되는데 물건을 좀 골라달라며,
전 그 아이가 그저 친구라도 괜찮았기에..
일년만에 온 연락이 너무나도 반가워서,
그 아이를 만나 잠깐 쇼핑하고, 밥 먹고.
그렇게 그냥 헤어졌습니다.
그 아이는 연락도 없이 다시 해외에 나가버렸구요..
참 무서운 타이밍에..
그 아이에게서 다시 연락이 왔습니다.
병때문에 많이 변해버린 내모습은 아무렇지도 않은듯이.
니가 염려하던, 우리가 사귈 수 없었던 사정들은 다 사라졌다며.
올해 6월에 한국에 완전히 들어오면. 진지하게 만나주지 않겠냐며..
그렇게 얘길 하대요. 솔찍히 기뻤습니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응했습니다.
전. 많이 아픕니다.
사지육신 멀쩡한데, 그것만으로도 감사해라 하실지 모르겠지만,
정말 많이 아파요.
숨이 턱턱 막혀와도, 숨을 어떻게 셔야할지 조차 모를만큼.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많이 아픕니다.
12월 25일.
양귀비 두알과, 수십알의 수면제. 신경안정제.
그것들을 먹고, 높이 걸린 로프에 목을 매었습니다.
튼튼할거라 믿었던 로프는 끊어져버렸고
한참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난 저는.
기절중 깨물고 있었던 혀와, 가슴과 배가 너무 아파서 한참을 울다가.
부엌에서 칼이란 칼은 다 들고 다시 방에 들어왔어요.
이미 약에 취한 상태라, 조금의 고통조차 느끼지 못한채
손목을 긋기 시작했습니다.
막 거센 피가 나기 시작했을 무렵, 지금의 남자친구가 들이닥쳤고,
제지당한 저는 그것에 너무 화가나서,
던지고 부수고. 심지어 그사람 목까지 졸라 죽일뻔 했습니다.
지금은.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걸 보면 살아있나봐요.
오랫동안 마음에 품었던 그 아이도 그 아이지만.
그런일을 당하고서도,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옆에 있는 남자친구.
어느한쪽 버릴 수 없어요..
가뜩이나 정상적인 상태도 아닌데..
당연한 얘기겠지만. 둘다 한사람은 빨리 정리해주길 나한테 바래요.
내 몸 내가 다스릴 힘도 없는데. 어떻게 해야 될지 머리속이 새하얀데.
제가 못된 아이인거 잘 아는데요..
지금은, 빨리 정리하라는 그사람들이 그저 밉기만 해요.
처음으로 제게 남자친구란것은 과분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저 사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근데 저 외로움도 너무 많고, 의지할만한 부모님이나 친구도 없고.
제일 큰 문제는 지금 제가 정상이 아니라는거고..
혼자서는 더 버텨할 수 없을텐데. 라는 생각에
어느 한쪽 정리하지 못하고. 오늘도 눈물뿐인 하루를 보내고 있네요.
둘다 만나지 않거나, 어느 한쪽을 정리하는건
지금 제겐 너무 힘든 일입니다.
뭘 바라는건지.. 악플 뿐이란걸 예상하고 있는데, 머리는 아는데..
그저 답답한 마음에.. 글을 올려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