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 2022년 04월 07일 방송
꼬꼬무 출연진들 및 시청자들 눈물샘
성인이된 생존 학생들 및 유가족 눈물의 인터뷰
딸의 유품을 아직까지 간직 하고 있는 아버지도
대한민국 역사상 3번째로 많은 인명 피해를 낸 인천 인현동 화재 참사
인천 지역내 10대 중고등학생 56명 사망 78명 중상 비극
지상 4층 건물 지하 1층서 당시 공사중 사용한 시너가 유증기가 되어 밀폐된 공간에 가득차 있다가 알바생의 담배불로 인한 발화로 불에 잘타는 내장제로 인해 건물 전체로 불이 번져 2층 호프집에 있던 학생들 대거 희생
창문도 막혀 있고 유일한 출입구였던 출입문을 호프집 매니저가 계산 하고 가라며 막아 탈출 하지 못했고 비상구로 표시된곳에는 화장실로 이곳에서 학생들의 시신이 겹겹이 싸인체 발견돼 수습돼 병원에 안치
합동영결식이 치뤄지고 학생들의 시신은 화장 되어 인천 서해 앞바다에 뿌려지고 정부에서 보상금 지급
인천학생교육문화회관에 위령비 세워져
미성년자들을 상대로 불법 영업을한 호프집 사장은 일주일만에 자수 징역형 선고 받아
호프집 사장과 유착 관계였던 경찰 및 관할 구청 시청 공무원들도 들어나
미성년자들이 호프집에 드나들었다는 사실에 사회에서 곱지 않은 시선도 있어 유족들을 두번 슬프게 하기도
희생자중 학생커플이 있었는데 남자친구가 마지막까지 여자친구를 살리고 희생 되고 살아남은 여학생이 남자친구를 잃은 상실감을 극복하지 못하고 끝내 스스로 생을 마감 이 사연을 뮤직비디오로 만든 가수 SAT-이게 나에요 애절한 슬픈 발라드 추모곡 발매
당시 학교 축제 기간으로 이 사건 이후 학교 축제는 한동안 중단 되고 인천 지역 학교 교사와 학생들은 큰슬픔에 빠져 눈물바다
학생들은 어른들의 잘못으로 친구들이 희생 됐다며 교실문을 걸어 잠그고 취재진의 인터뷰를 거절 하기도
인천 최대 번화가였던 사건 장소 이사건 이후 상권 몰락
이사건은 이태원참사가 일어난 날과 같은 10월 30일
1999년 10월 30일 오후 6시 55분에 서울지하철1호선 동인천역 인근 인천광역시 중구 우현로83번길 10(인현동 27-43)에 있던 무허가 불법 주점 '라이브2'에서 일어난 대형 화재 사고.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 사고가 일어난 후 4개월밖에 안 된 시점에서 일어난 사고이자 사망 56명, 부상 78명의 대참사로 정부 수립 이래 3번째로 피해가 큰 대형 화재 사고였다.[2]
해당 주점은 인천 시내 번화가 한가운데에서 불법 무허가 영업 및 미성년자 주류 판매를 버젓이 자행하던 곳이었다. 본래 영업 정지 처분을 받고 폐쇄되어야 했으나, 해당 점포 주인[3]이 지역 공무원과 경찰을 뇌물을 찔러가며 회유하여 영업을 묵인해 주고 있던 상태였다. 설상가상으로 해당 주점은 인천 지역 일대의 중고등학교 앞에서 버젓이 전단을 돌려가며 점포 홍보를 하고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불법 주류 판매를 하고 있었으나, 미성년자 주류 판매 신고가 들어와도 해당 점포와 유착하던 경찰들은 제대로 현장에 출동하지도 않은 채 신고를 묵살했다고 한다. 이러한 주점 주인의 비리와 탈법, 지역 공권력의 부패와 묵인, 방조로 인해 당시 인천 번화가 한복판에서 '학생들한테도 술을 파는 집'으로 소문이 퍼지며 인천 일대의 학생들이 교복을 입고도 드나드는 명소가 되었고, 이는 참사 당시 대부분의 희생자들이 중고등학생이 되고 마는 결과를 낳았다.
인천 최대의 유흥가였던 동인천역 인근의 구도심 상권은 이 사고로 인해[4] 단순히 상권 위축 수준을 넘어 도심 지위가 구월동과 관교동으로 완전히 넘어가는 큰 타격을 입었으며, 이 타격은 경인선으로 나란히 연결된 제물포역을 거쳐 주안역[5]과 동암역의 상권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쳐 결국에는 세 지역 상권이 같이 망하다시피 하는 결과를 낳았다. 다른 도시의 원도심과 다르게 인천 원도심에 해당하는 중구와 동구가 무척 피폐한[6]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제의 인현동 '라이브2호프'는 4층짜리 상가 건물로 지하에는 노래방, 1층에는 고깃집, 2층에는 호프, 3층에는 당구장이 있었다. 당시 지하 노래방은 내부 수리 공사 중이었는데, 이곳에서부터 불이 나 올라오기 시작했다. 화재의 원인은 노래방에서 일하던 10대 남자 아르바이트생의 담배.[7] 노래방에서 시작된 불은 진압되었으나, 화염과 유독가스가 지상 입구에서 지하 노래방을 잇는 벽의 소재를 타고 3층까지 올라간 것이 문제였다. 화염과 가스가 출입구를 가득 채웠으니 위층에서는 출입구를 통해 내려올 수도 없는 상태였다.
다행히 1층은 현관이 발화지점의 반대 방향에 있는 데다 화재를 금방 알아채 대피했고, 3층 NBA당구장에 있던 사람들도 창문을 깨고 뛰어내리면서 부상자는 있었지만 사망자는 없었다. 모든 사망자는 2층 호프집에 집중되었다.
당시 호프집에는 마침 학교 축제가 끝난 뒤 뒤풀이를 하던 인천 지역 고등학생들이 꽉꽉 들어차 있었다. 사망자의 대부분도 이들이었다.[8] 이 때는 10월 말이라 인천 지역 고등학교들의 축제가 몰려 있던 시즌이었는데, 축제가 끝난 직후라 모두 학생임을 드러내는 교복을 입고 있었다. 이 때문에 사고 후에 미성년자들이 술집에 출입한 것에 대해서 계속 질타가 나왔다.
특히 사고가 난 동인천 권역에는 여러 학교들 주변에 유흥가가 많았던 것도 문제이다. 당시 뉴스 동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마땅히 놀 곳이 없다"[9]며 한탄하는 해당 지역 학생 인터뷰도 있었다.
사고 당일 SBS 8 뉴스에선 한수진 앵커가 말미에 속보 형식으로 먼저 보도했고, 이후 KBS 뉴스 9와 MBC 뉴스데스크에서도 다루게 됐다.
'사용 가능한' 비상구가 있었다면 이 정도로 심각한 규모의 사망자가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실 불 자체는 30분 만에 진압되었고[10], 모두 비상구로 탈출하는 것만 남은 상태였는데 있던 비상구를 베니어 합판으로 막아 버렸다. 또 호프집이 2층이었던 만큼 창문에서 뛰어내린다면 어딘가가 부러질지언정 죽지는 않았겠지만, 내부 수리를 하면서 창문을 개폐식이 아닌 통유리로 바꿔 버렸던 데다 간판으로 쓰려고 모두 판자를 붙여 놓은 상태였다 보니 그 방법을 택하는 것 역시 어려웠다.[11] 보다 못한 건물주 측에서 이를 지적했지만 묵살하였다고 한다.
거기다가 호프집 매니저[12]의 정신 나간 조치로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화재로 고등학생들이 빠져나가려고 하자 대왕코너 화재사고 처럼 "돈 내고 나가라."며 유일한 출입구를 막은 것이다. 출입구에서 매니저와 학생들 간의 실랑이가 벌어지는 사이 불길은 치솟아 결국 출입구로 대피할 수 없게 되었고,[13] 결국 유독가스에 노출된 학생들은 대부분 순식간에 질식사하였다.[14][15]
당시 화재가 발생하자 비상구등이 켜져 학생들은 유독가스에 질식되어 죽기 일보 직전인 상황에서 필사적으로 비상구등이 켜진 쪽으로 향했으나 알고 보니 그 비상구등은 가라였고, 비상탈출구인 줄 알았던 곳은 화장실이었다. 따라서 화재 구조 당시 화장실과 그 앞에 시신들이 쌓여 있었다고 한다.
당시 호프집 내부는 탁자와 의자가 꽉꽉 들어차 있었고, 50여 평 정도 규모의 공간에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앉아 있었으며, 사람이 돌아다닐 만한 통로는 겨우 한 사람이 빠져나갈 만한 아주 좁은 수준이었다.[16] 게다가 유일한 창문은 석고보드로 막아 놓아 창문으로 탈출할 수 없었으며, 비상구표식은 화장실 문 쪽에 붙여 놓았다. 계단 역시 폭 1~2m 정도의 아주 좁은 계단이라 겁에 질려 우왕좌왕하는 사람들 때문에 완전히 정체 상태였으며, 불이 나자 계단이 굴뚝 역할을 해 연기를 위층으로 올려보냈다.
내부 구조물들 역시 주로 인화성 물질로 만들어져 있던 탓에 불이 붙으면서 치명적인 유독가스를 뿜어냈다. 사고 후 경찰의 부검 결과 밝혀진 사망자 대부분의 사인도 유독가스로 인한 질식사였다.[17] 일부 사람들은 환풍구를 통해 탈출하려는 시도를 하기도 했고 그로 인해 시신들이 층을 이룰 정도로 꽉꽉 메워져 있었다고 한다.[18]
게다가 처음 화재가 시작된 지하 노래방 천장에 설치된 비상 소화 장치인 스프링클러도 수리한다는 명목으로 모두 제거된 상태였다. 스프링클러만 제대로 달려 있었어도 초기 진화가 가능했을 것이다.
이 업소는 1999년 3월에 안전 기준 미달로 적발되어 중구청으로부터 영업장 폐쇄 명령을 받은 상태였으나, 화재 당시 업소 주인[19]이 인수하여 무허가 영업을 하고 있었다. 뇌물로 공무원들을 매수했기에 가능한[20] 불법 영업이었고, 사고 후 뇌물을 받은 공무원들 역시 구속되었다. 사장의 집에서 임대료 없이 전세를 살고 있던 사람도 있었는데 그 또한 직위가 경위인 경찰이었으며 전경을 동원해서 참사가 발생했던 술집의 보수를 돕기까지 했다.
해당 업소 주인은 당시 노래방, 호프집, PC방, 콜라텍 등 운영하던 가게만 8곳이었고 사고 당시 발화점이었던 지하노래방도 이 사람이 운영하던 곳이었다. 업소 주인은 인근 학교 교문 앞에서 전단지를 배포하고 자신의 가게를 이용하면 자신이 운영하는 다른 가게(이를테면 PC방) 이용권을 지급하는 등 노골적으로 청소년들을 타겟으로 영업을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로 인해 청소년에게 술을 판다는 신고가 많이 접수되었으나 당시 업소 주인에게 뇌물 등을 상납받은 경찰이 제대로 단속하지 않아 계속 영업이 가능했고, 심지어 업소 주인이 운영하던 업소 8곳 모두 무허가 업소였는데 이 또한 관할 구청 공무원들에게 뇌물을 주고 공무원들이 눈감아 주었기에 가능했다.
당시 같은 건물 지하 노래방의 인테리어 공사를 하고 있었는데 사고 당일은 페인트작업을 했던 날이었다. 그날 작업을 마친 인부들이 뒷정리 후 철수하려 했는데 주인이 인건비를 아껴볼 요량으로 그냥 두고 철수하라고 하였고 뒷정리를 노래방 알바생들에게 지시하였는데 알바생들이 바닥 등에 떨어진 페인트 자국들을 지우기 위해 인부들이 두고 간 시너를 뿌려가며 닦았고 이후 지하실의 특성상 환기도 제대로 되지 않은 상황에서 담배불로 인해 발화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 사고로 건물 지하 노래방 사망 1명, 1층 식당 사망 0명, 부상 0명, 2층 호프집 사망 56명, 부상 62명, 3층 당구장 사망 0명, 부상 17명의 인명피해가 집계되었다.
사고수습 후 피해 학생들의 유가족들에게는 정부로부터 보상금이 지급되었다고 하며[21], 이후 이루어진 재판에서 업소 주인과 매니저는 법원으로부터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각각 징역 5년과 징역 3년 6개월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노래방 인테리어 시공업자[22], 업소 주인으로부터 상납을 받고 결탁했던 비리 공무원과 경찰들은 아무도 실형을 선고받지 않았다.
2004년 사고 지점 인근에 인천학생교육문화회관이 생기면서 위령비가 건립되었다.[23] 참고로 2022년 최신 로드뷰에는 위령비 앞에 쓰레기가 쌓여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사망한 학생들의 90% 가량은 화장 후 인천 앞바다에 유골이 뿌려지는 형태로 장례가 치러졌다.
1990년대까지 인천의 중심지로 잘 나갔던[24] 인현동은 이 사건으로 인해 도심으로서의 상징성을 관교동·구월동에 넘겨줬고, 상권도 몰락했다.[25][26]
만악의 근원인 호프집 사장 정성갑은 사고 직후 도주했다가 며칠 후에 자수했는데도 불구하고 변호사 타령이나 하거나 뇌물 같은 건 주지 않았다는 등 당당한 태도를 유지해 사방팔방에서 어그로를 끌었다. 5년간 교도소에서 복역한 후 CCM 가수로 변신하면서 교도소 등을 돌며 찬양 사역을 하고 있다는 기사(댓글 달린 기사)가 2007년에 보도되면서 피해자들과 대중들을 다시 분노케 했다. 후술된 2014년 기사에 따르면 그래도 몇 년간은 공연 때마다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는 발언을 해왔긴 한 듯. 물론 이와 별개로 분노의 반응은 당연하며, 이 정도로 면죄부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CCM 가수가 된 주인과 화재 현장에서 돈 내고 나가라고 입구를 막았다가 혼자 도망친 자는 별개의 인물이니 혼동하거나 왜곡하지는 말 것. 뭐 이놈이나 그놈이나 그게 그거지만... 2013년도까지는 꾸준히 활동한 모양이나 이후 행적은 불분명하다. #
호프집 주인(당시 34살)은 인근에서 '청년 재벌'이라 불릴 정도로 그 동네에서 사업을 엄청 크게 하던 사람이었는데, 사고가 난 호프집 이외에도 그 호프집 길 건너 맞은편에 있는 노래방, PC방, 콜라텍 등 여러 개의 사업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이 사람네 업장만 돌아도 유흥이 완벽하게 해결된다는 얘기가 있었다. 하지만 이 사고로 인해 나머지 사업도 같이 몰락했다. 이게 인과응보인 게 사고가 난 호프집에는 '내부 수리 중'이라는 팻말을 걸어놓고 미성년자에게 술을 판매하고 있었다. 이렇게 미성년자에게 술을 판매하고 있어서 그 동안 청소년보호법 위반 등의 혐의로 10번 이상 입건되었으나 입건만 되고 처벌은 받지 않았는데, 이 때문에 이 사람이 혹시 조직폭력배 내지는 경찰의 비호를 받고 있는 게 아닌가 의심하는 사람들이 생겼다.[27]
반면 참사 당시의 건물주는 참사 이후에도 건물주로서의 도의적인 책임을 지고 매번 학생교육문화회관 앞 위령비에 가서 피해자들의 넋을 위로해주고 있다. 건물주 본인도 화재 당시 3층 당구장에서 뛰어내려 전치 3개월의 부상을 입었으며, 친구의 조카도 이 참사로 희생되었다고 한다.
2011년 SK 와이번스의 김성근 감독 해임 후 이만수 감독대행이 자리를 메꿀 적에 SK 와이번스 갤러리의 갤러들이 통구이 드립을 치자 이에 대항하여 이 사고로 고인드립을 치는 사례가 있었다.
당시 피해자로 전신 3도 화상을 입은 곽은희 씨는 이후 2000년 방송된 그것이 알고 싶다-화상 그 후 편에 등장하여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한동안은 공부를 위해서 안면 성형수술도 하지 않은 채 학업에 전념하여 일리노이 주립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귀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방송에서 곽은희 씨는 얼굴을 드러내고 생활하고 있으며 화상 환자들은 전염병을 가진 사람이 아니니 노골적으로 피하지만 말아 달라고 호소했다.
2007년 2월 20일에 공개된 당시 신인 가수 SAT의 '이게 나예요'[28] 뮤직비디오는 이 사건을 소재로 만들어졌으며, 호프집 장면 이후에 나온 내용은 모두 실제 있었던 일이었다고 한다. 업타운이 동년 12월에 발표한 노래 'UPT Paradoxxx'에서 이 사건을 비판하는 내용이 등장하였으며, 김금희의 소설 '경애의 마음'은 이 사건을 모티브로 하였다.
이 사건이 1981년 인천직할시(현 광역시)가 승격된 이래 인천 지역의 최악의 인명사고이기도 한다. 2위는 9명이 숨지고 6명이 다친 세일전자 화재이며, 번외로 2002년에 있었던 북성동 여인숙 화재 및 매몰 사고와 2015년 강화도에 있었던 캠핑장 화재 사고도 있으며 당시 사망자는 각각 6명, 5명으로 기록되었다.
사고 당시엔 미성년자 주제에 감히 대놓고 호프집에 갔다는 이유로 학생들에 대해 예의가 없다느니 자업자득이라느니 등의 여론도 많았다.[29] 이에 인천시내 15개 고등학교의 학생 대표들이 이러한 여론 및 교육계, 기성세대에게 항의하는 성명서를 만들고 토론회 등을 열려 했으나, 인천시교육청은 이를 저지했다.
미성년자의 음주 및 주점 출입은 21세기에도 시선이 곱지 않지만 이 당시 기성세대들이 오히려 청소년들이 건전하게 즐길 수 있을 만한 문화시설을 세우는 데 관심이 있었다면 이렇게까진 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인현동 화재 참사는 청소년혐오 사건이다, 인천in
당시의 사회 분위기상 예의 바르게 행동하고 공부에만 집중하는 것이 거의 절대적인 선으로 취급받았고 오락실이나 PC방이나 노래방, 아이돌 콘서트 등에 대한 시선이 2020년대에 비하면 상당히 곱지 않았다.[30] 만약 이 당시에 청소년을 음주, 흡연, 성폭력 등의 위험에 노출되지 않을 만큼 건전한 여가시설들을 여럿 세워 주거나 기성세대들이 적극적으로 아이돌 콘서트나 여러 가지 행사들을 유치시키고 진행했다면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편 사고가 발생한 상가 건물은 사고 이후에도 수리를 거치고 나서 영업하고 있다. 네이버 거리뷰 참조. 파란 건물이 당시 사고가 났던 건물이다. 그리고 그 건물 2층이 당시 사고가 났던 호프집 자리다. 사고 당시 손님들이 주먹으로 유리창을 깨고 탈출했던 3층 NBA 당구장은 사고 이후에도 한동안 같은 이름으로 계속 영업하다가 폐업하였다. 거리뷰 최신 시점 기준으로 1층엔 요리주점이 있고 2층은 현재는 공실(空室)이며 3층은 신학대학이 있다. 주변을 보면 노래방도 PC방도 다 있고 유흥가로서의 기능은 계속하는 것으로 보이나 성인도박장이 제법 들어선 풍경을 보았을 때 상권이 좀 더 어두운 방향으로 침체되었음을 시사하는 풍경이기도 하다.
2019년은 참사 20주기가 되는 해[31]였지만 유가족들은 10월 30일 인천 중구청의 지원을 받지 못하고 연안부두에서 팔미도를 가는 유람선에 탑승해서 추모 의식을 치러야 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다. 당초 유족들은 30인승 배를 지원해 줄 것을 요구했지만 중구청은 자체 행정선이 없어 인천시에 지원을 요청했는데, 30인승 이상 행정선은 어로 단속 때문에 지원이 불가해 11인승 배만 줄 수 있다 해서 벌어진 일이었다고 한다. #
2019년 11월 참사 20주기를 맞아 오마이뉴스에서 특별기획 기사들을 냈다.
① "사고 나면 언제나 힘없는 사람들이 희생양" 젊은이 57명 앗아간 참사... 학교는 죽은 아이들을 퇴학시키려 했다
② 이재원 유족회장 "인현동 화재 참사로 기억해야" 질식사한 내 아들... 국가는 20년을 침묵했다
③ 눈물의 배삯 12,000원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야" 그 부모들은 왜, '뽕짝 춤판' 옆에서 오열했나
④ 고 이지혜양 어머니 "알바생이라며 보상에서 제외" 아르바이트 첫 날 죽은 열여덟 내 딸... 나라가 두번 죽였다
2020년 넷플릭스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에 이 사건을 모티브로 한 설정이 있다. 은영이 학생일 때 일어난 사건으로 대사로만 언급되지만, 화재 당시 처참한 모습으로 죽은 선배들이 은영의 눈에 보였다고 한다.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 사고로 아들[32]을 잃은 전 여자 하키 국가대표 김순덕[33]은 안 그래도 정부의 무책임한 태도에 환멸을 느끼고 있었는데 이 사건까지 터지자 '이 나라는 달라질 게 없다. 어린아이 하나 지키지 못하는 이딴 나라에서 내 자식을 키우지 않겠다.'며 훈장을 반납하고 뉴질랜드로 이민을 가 버렸다. 15년 후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가 터지자 '여전하다. 우리 때와 달라진 게 없다.'는 씁쓸한 비난을 하기도 했다. 다만 그저 어른들이 하란 대로 해서 벌어진 안타까운 두 사고와 다르게 이 사건의 희생자들은 이들의 선택으로 그 곳에 있었다는 차이점은 있다. 이것은 마치 시간이 그렇게 많이 흘렀는데도 망가진 외양간을 전혀 고칠 생각도 안 하고 거기서 계속 소를 키우고 있으니 소가 다치거나 병들어 버린 셈이다.
2022년 4월 7일,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 이 사건을 다뤘다. 방송에서 나온 생존자 및 유족들은 호프집을 둘러싼 좋지 못한 인식 때문에 사건명에서 호프집이란 단어를 떼 달라는 부탁을 했다. '어떻게 학생이 호프집에서 술을 마시냐', '죽어도 싸다' 등의 폭언까지 무차별적으로 들었다고 한다. 심지어 유가족들이 책임자의 처벌과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시위를 하자 자식을 팔아 돈 벌려고 한다며 비난하는 몰상식한 이들도 있었다고 한다.
상술된 씨랜드를 다룬 12월 9일 자 방송에서도 짤막하게 언급된 바 있다. 학생이 술을 마신 것이 떳떳하다고 할 수는 없겠으나 그것이 죽을 죄는 결코 아니다. 위에서도 언급되다시피 그 당시엔 청소년들이 모여서 건전하게 놀 수 있는 곳이 없었다. 무엇보다 해당 참사는 업소 주인의 탈법과 이를 관리해야 할 공권력의 부패가 결합된 것이 주 원인이니만큼 피해자에게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
중고등학생 56명이 희생된 인천 인현동 화재 참사 비극 꼬꼬무
꼬꼬무 출연진들 및 시청자들 눈물샘
성인이된 생존 학생들 및 유가족 눈물의 인터뷰
딸의 유품을 아직까지 간직 하고 있는 아버지도
대한민국 역사상 3번째로 많은 인명 피해를 낸 인천 인현동 화재 참사
인천 지역내 10대 중고등학생 56명 사망 78명 중상 비극
지상 4층 건물 지하 1층서 당시 공사중 사용한 시너가 유증기가 되어 밀폐된 공간에 가득차 있다가 알바생의 담배불로 인한 발화로 불에 잘타는 내장제로 인해 건물 전체로 불이 번져 2층 호프집에 있던 학생들 대거 희생
창문도 막혀 있고 유일한 출입구였던 출입문을 호프집 매니저가 계산 하고 가라며 막아 탈출 하지 못했고 비상구로 표시된곳에는 화장실로 이곳에서 학생들의 시신이 겹겹이 싸인체 발견돼 수습돼 병원에 안치
합동영결식이 치뤄지고 학생들의 시신은 화장 되어 인천 서해 앞바다에 뿌려지고 정부에서 보상금 지급
인천학생교육문화회관에 위령비 세워져
미성년자들을 상대로 불법 영업을한 호프집 사장은 일주일만에 자수 징역형 선고 받아
호프집 사장과 유착 관계였던 경찰 및 관할 구청 시청 공무원들도 들어나
미성년자들이 호프집에 드나들었다는 사실에 사회에서 곱지 않은 시선도 있어 유족들을 두번 슬프게 하기도
희생자중 학생커플이 있었는데 남자친구가 마지막까지 여자친구를 살리고 희생 되고 살아남은 여학생이 남자친구를 잃은 상실감을 극복하지 못하고 끝내 스스로 생을 마감 이 사연을 뮤직비디오로 만든 가수 SAT-이게 나에요 애절한 슬픈 발라드 추모곡 발매
당시 학교 축제 기간으로 이 사건 이후 학교 축제는 한동안 중단 되고 인천 지역 학교 교사와 학생들은 큰슬픔에 빠져 눈물바다
학생들은 어른들의 잘못으로 친구들이 희생 됐다며 교실문을 걸어 잠그고 취재진의 인터뷰를 거절 하기도
인천 최대 번화가였던 사건 장소 이사건 이후 상권 몰락
이사건은 이태원참사가 일어난 날과 같은 10월 30일
1999년 10월 30일 오후 6시 55분에 서울지하철1호선 동인천역 인근 인천광역시 중구 우현로83번길 10(인현동 27-43)에 있던 무허가 불법 주점 '라이브2'에서 일어난 대형 화재 사고.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 사고가 일어난 후 4개월밖에 안 된 시점에서 일어난 사고이자 사망 56명, 부상 78명의 대참사로 정부 수립 이래 3번째로 피해가 큰 대형 화재 사고였다.[2]
해당 주점은 인천 시내 번화가 한가운데에서 불법 무허가 영업 및 미성년자 주류 판매를 버젓이 자행하던 곳이었다. 본래 영업 정지 처분을 받고 폐쇄되어야 했으나, 해당 점포 주인[3]이 지역 공무원과 경찰을 뇌물을 찔러가며 회유하여 영업을 묵인해 주고 있던 상태였다. 설상가상으로 해당 주점은 인천 지역 일대의 중고등학교 앞에서 버젓이 전단을 돌려가며 점포 홍보를 하고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불법 주류 판매를 하고 있었으나, 미성년자 주류 판매 신고가 들어와도 해당 점포와 유착하던 경찰들은 제대로 현장에 출동하지도 않은 채 신고를 묵살했다고 한다. 이러한 주점 주인의 비리와 탈법, 지역 공권력의 부패와 묵인, 방조로 인해 당시 인천 번화가 한복판에서 '학생들한테도 술을 파는 집'으로 소문이 퍼지며 인천 일대의 학생들이 교복을 입고도 드나드는 명소가 되었고, 이는 참사 당시 대부분의 희생자들이 중고등학생이 되고 마는 결과를 낳았다.
인천 최대의 유흥가였던 동인천역 인근의 구도심 상권은 이 사고로 인해[4] 단순히 상권 위축 수준을 넘어 도심 지위가 구월동과 관교동으로 완전히 넘어가는 큰 타격을 입었으며, 이 타격은 경인선으로 나란히 연결된 제물포역을 거쳐 주안역[5]과 동암역의 상권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쳐 결국에는 세 지역 상권이 같이 망하다시피 하는 결과를 낳았다. 다른 도시의 원도심과 다르게 인천 원도심에 해당하는 중구와 동구가 무척 피폐한[6]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제의 인현동 '라이브2호프'는 4층짜리 상가 건물로 지하에는 노래방, 1층에는 고깃집, 2층에는 호프, 3층에는 당구장이 있었다. 당시 지하 노래방은 내부 수리 공사 중이었는데, 이곳에서부터 불이 나 올라오기 시작했다. 화재의 원인은 노래방에서 일하던 10대 남자 아르바이트생의 담배.[7] 노래방에서 시작된 불은 진압되었으나, 화염과 유독가스가 지상 입구에서 지하 노래방을 잇는 벽의 소재를 타고 3층까지 올라간 것이 문제였다. 화염과 가스가 출입구를 가득 채웠으니 위층에서는 출입구를 통해 내려올 수도 없는 상태였다.
다행히 1층은 현관이 발화지점의 반대 방향에 있는 데다 화재를 금방 알아채 대피했고, 3층 NBA당구장에 있던 사람들도 창문을 깨고 뛰어내리면서 부상자는 있었지만 사망자는 없었다. 모든 사망자는 2층 호프집에 집중되었다.
당시 호프집에는 마침 학교 축제가 끝난 뒤 뒤풀이를 하던 인천 지역 고등학생들이 꽉꽉 들어차 있었다. 사망자의 대부분도 이들이었다.[8] 이 때는 10월 말이라 인천 지역 고등학교들의 축제가 몰려 있던 시즌이었는데, 축제가 끝난 직후라 모두 학생임을 드러내는 교복을 입고 있었다. 이 때문에 사고 후에 미성년자들이 술집에 출입한 것에 대해서 계속 질타가 나왔다.
특히 사고가 난 동인천 권역에는 여러 학교들 주변에 유흥가가 많았던 것도 문제이다. 당시 뉴스 동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마땅히 놀 곳이 없다"[9]며 한탄하는 해당 지역 학생 인터뷰도 있었다.
사고 당일 SBS 8 뉴스에선 한수진 앵커가 말미에 속보 형식으로 먼저 보도했고, 이후 KBS 뉴스 9와 MBC 뉴스데스크에서도 다루게 됐다.
'사용 가능한' 비상구가 있었다면 이 정도로 심각한 규모의 사망자가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실 불 자체는 30분 만에 진압되었고[10], 모두 비상구로 탈출하는 것만 남은 상태였는데 있던 비상구를 베니어 합판으로 막아 버렸다. 또 호프집이 2층이었던 만큼 창문에서 뛰어내린다면 어딘가가 부러질지언정 죽지는 않았겠지만, 내부 수리를 하면서 창문을 개폐식이 아닌 통유리로 바꿔 버렸던 데다 간판으로 쓰려고 모두 판자를 붙여 놓은 상태였다 보니 그 방법을 택하는 것 역시 어려웠다.[11] 보다 못한 건물주 측에서 이를 지적했지만 묵살하였다고 한다.
거기다가 호프집 매니저[12]의 정신 나간 조치로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화재로 고등학생들이 빠져나가려고 하자 대왕코너 화재사고 처럼 "돈 내고 나가라."며 유일한 출입구를 막은 것이다. 출입구에서 매니저와 학생들 간의 실랑이가 벌어지는 사이 불길은 치솟아 결국 출입구로 대피할 수 없게 되었고,[13] 결국 유독가스에 노출된 학생들은 대부분 순식간에 질식사하였다.[14][15]
당시 화재가 발생하자 비상구등이 켜져 학생들은 유독가스에 질식되어 죽기 일보 직전인 상황에서 필사적으로 비상구등이 켜진 쪽으로 향했으나 알고 보니 그 비상구등은 가라였고, 비상탈출구인 줄 알았던 곳은 화장실이었다. 따라서 화재 구조 당시 화장실과 그 앞에 시신들이 쌓여 있었다고 한다.
당시 호프집 내부는 탁자와 의자가 꽉꽉 들어차 있었고, 50여 평 정도 규모의 공간에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앉아 있었으며, 사람이 돌아다닐 만한 통로는 겨우 한 사람이 빠져나갈 만한 아주 좁은 수준이었다.[16] 게다가 유일한 창문은 석고보드로 막아 놓아 창문으로 탈출할 수 없었으며, 비상구표식은 화장실 문 쪽에 붙여 놓았다. 계단 역시 폭 1~2m 정도의 아주 좁은 계단이라 겁에 질려 우왕좌왕하는 사람들 때문에 완전히 정체 상태였으며, 불이 나자 계단이 굴뚝 역할을 해 연기를 위층으로 올려보냈다.
내부 구조물들 역시 주로 인화성 물질로 만들어져 있던 탓에 불이 붙으면서 치명적인 유독가스를 뿜어냈다. 사고 후 경찰의 부검 결과 밝혀진 사망자 대부분의 사인도 유독가스로 인한 질식사였다.[17] 일부 사람들은 환풍구를 통해 탈출하려는 시도를 하기도 했고 그로 인해 시신들이 층을 이룰 정도로 꽉꽉 메워져 있었다고 한다.[18]
게다가 처음 화재가 시작된 지하 노래방 천장에 설치된 비상 소화 장치인 스프링클러도 수리한다는 명목으로 모두 제거된 상태였다. 스프링클러만 제대로 달려 있었어도 초기 진화가 가능했을 것이다.
이 업소는 1999년 3월에 안전 기준 미달로 적발되어 중구청으로부터 영업장 폐쇄 명령을 받은 상태였으나, 화재 당시 업소 주인[19]이 인수하여 무허가 영업을 하고 있었다. 뇌물로 공무원들을 매수했기에 가능한[20] 불법 영업이었고, 사고 후 뇌물을 받은 공무원들 역시 구속되었다. 사장의 집에서 임대료 없이 전세를 살고 있던 사람도 있었는데 그 또한 직위가 경위인 경찰이었으며 전경을 동원해서 참사가 발생했던 술집의 보수를 돕기까지 했다.
해당 업소 주인은 당시 노래방, 호프집, PC방, 콜라텍 등 운영하던 가게만 8곳이었고 사고 당시 발화점이었던 지하노래방도 이 사람이 운영하던 곳이었다. 업소 주인은 인근 학교 교문 앞에서 전단지를 배포하고 자신의 가게를 이용하면 자신이 운영하는 다른 가게(이를테면 PC방) 이용권을 지급하는 등 노골적으로 청소년들을 타겟으로 영업을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로 인해 청소년에게 술을 판다는 신고가 많이 접수되었으나 당시 업소 주인에게 뇌물 등을 상납받은 경찰이 제대로 단속하지 않아 계속 영업이 가능했고, 심지어 업소 주인이 운영하던 업소 8곳 모두 무허가 업소였는데 이 또한 관할 구청 공무원들에게 뇌물을 주고 공무원들이 눈감아 주었기에 가능했다.
당시 같은 건물 지하 노래방의 인테리어 공사를 하고 있었는데 사고 당일은 페인트작업을 했던 날이었다. 그날 작업을 마친 인부들이 뒷정리 후 철수하려 했는데 주인이 인건비를 아껴볼 요량으로 그냥 두고 철수하라고 하였고 뒷정리를 노래방 알바생들에게 지시하였는데 알바생들이 바닥 등에 떨어진 페인트 자국들을 지우기 위해 인부들이 두고 간 시너를 뿌려가며 닦았고 이후 지하실의 특성상 환기도 제대로 되지 않은 상황에서 담배불로 인해 발화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 사고로 건물 지하 노래방 사망 1명, 1층 식당 사망 0명, 부상 0명, 2층 호프집 사망 56명, 부상 62명, 3층 당구장 사망 0명, 부상 17명의 인명피해가 집계되었다.
사고수습 후 피해 학생들의 유가족들에게는 정부로부터 보상금이 지급되었다고 하며[21], 이후 이루어진 재판에서 업소 주인과 매니저는 법원으로부터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각각 징역 5년과 징역 3년 6개월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노래방 인테리어 시공업자[22], 업소 주인으로부터 상납을 받고 결탁했던 비리 공무원과 경찰들은 아무도 실형을 선고받지 않았다.
2004년 사고 지점 인근에 인천학생교육문화회관이 생기면서 위령비가 건립되었다.[23] 참고로 2022년 최신 로드뷰에는 위령비 앞에 쓰레기가 쌓여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사망한 학생들의 90% 가량은 화장 후 인천 앞바다에 유골이 뿌려지는 형태로 장례가 치러졌다.
1990년대까지 인천의 중심지로 잘 나갔던[24] 인현동은 이 사건으로 인해 도심으로서의 상징성을 관교동·구월동에 넘겨줬고, 상권도 몰락했다.[25][26]
만악의 근원인 호프집 사장 정성갑은 사고 직후 도주했다가 며칠 후에 자수했는데도 불구하고 변호사 타령이나 하거나 뇌물 같은 건 주지 않았다는 등 당당한 태도를 유지해 사방팔방에서 어그로를 끌었다. 5년간 교도소에서 복역한 후 CCM 가수로 변신하면서 교도소 등을 돌며 찬양 사역을 하고 있다는 기사(댓글 달린 기사)가 2007년에 보도되면서 피해자들과 대중들을 다시 분노케 했다. 후술된 2014년 기사에 따르면 그래도 몇 년간은 공연 때마다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는 발언을 해왔긴 한 듯. 물론 이와 별개로 분노의 반응은 당연하며, 이 정도로 면죄부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CCM 가수가 된 주인과 화재 현장에서 돈 내고 나가라고 입구를 막았다가 혼자 도망친 자는 별개의 인물이니 혼동하거나 왜곡하지는 말 것. 뭐 이놈이나 그놈이나 그게 그거지만... 2013년도까지는 꾸준히 활동한 모양이나 이후 행적은 불분명하다. #
호프집 주인(당시 34살)은 인근에서 '청년 재벌'이라 불릴 정도로 그 동네에서 사업을 엄청 크게 하던 사람이었는데, 사고가 난 호프집 이외에도 그 호프집 길 건너 맞은편에 있는 노래방, PC방, 콜라텍 등 여러 개의 사업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이 사람네 업장만 돌아도 유흥이 완벽하게 해결된다는 얘기가 있었다. 하지만 이 사고로 인해 나머지 사업도 같이 몰락했다. 이게 인과응보인 게 사고가 난 호프집에는 '내부 수리 중'이라는 팻말을 걸어놓고 미성년자에게 술을 판매하고 있었다. 이렇게 미성년자에게 술을 판매하고 있어서 그 동안 청소년보호법 위반 등의 혐의로 10번 이상 입건되었으나 입건만 되고 처벌은 받지 않았는데, 이 때문에 이 사람이 혹시 조직폭력배 내지는 경찰의 비호를 받고 있는 게 아닌가 의심하는 사람들이 생겼다.[27]
반면 참사 당시의 건물주는 참사 이후에도 건물주로서의 도의적인 책임을 지고 매번 학생교육문화회관 앞 위령비에 가서 피해자들의 넋을 위로해주고 있다. 건물주 본인도 화재 당시 3층 당구장에서 뛰어내려 전치 3개월의 부상을 입었으며, 친구의 조카도 이 참사로 희생되었다고 한다.
2011년 SK 와이번스의 김성근 감독 해임 후 이만수 감독대행이 자리를 메꿀 적에 SK 와이번스 갤러리의 갤러들이 통구이 드립을 치자 이에 대항하여 이 사고로 고인드립을 치는 사례가 있었다.
당시 피해자로 전신 3도 화상을 입은 곽은희 씨는 이후 2000년 방송된 그것이 알고 싶다-화상 그 후 편에 등장하여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한동안은 공부를 위해서 안면 성형수술도 하지 않은 채 학업에 전념하여 일리노이 주립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귀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방송에서 곽은희 씨는 얼굴을 드러내고 생활하고 있으며 화상 환자들은 전염병을 가진 사람이 아니니 노골적으로 피하지만 말아 달라고 호소했다.
2007년 2월 20일에 공개된 당시 신인 가수 SAT의 '이게 나예요'[28] 뮤직비디오는 이 사건을 소재로 만들어졌으며, 호프집 장면 이후에 나온 내용은 모두 실제 있었던 일이었다고 한다. 업타운이 동년 12월에 발표한 노래 'UPT Paradoxxx'에서 이 사건을 비판하는 내용이 등장하였으며, 김금희의 소설 '경애의 마음'은 이 사건을 모티브로 하였다.
이 사건이 1981년 인천직할시(현 광역시)가 승격된 이래 인천 지역의 최악의 인명사고이기도 한다. 2위는 9명이 숨지고 6명이 다친 세일전자 화재이며, 번외로 2002년에 있었던 북성동 여인숙 화재 및 매몰 사고와 2015년 강화도에 있었던 캠핑장 화재 사고도 있으며 당시 사망자는 각각 6명, 5명으로 기록되었다.
사고 당시엔 미성년자 주제에 감히 대놓고 호프집에 갔다는 이유로 학생들에 대해 예의가 없다느니 자업자득이라느니 등의 여론도 많았다.[29] 이에 인천시내 15개 고등학교의 학생 대표들이 이러한 여론 및 교육계, 기성세대에게 항의하는 성명서를 만들고 토론회 등을 열려 했으나, 인천시교육청은 이를 저지했다.
미성년자의 음주 및 주점 출입은 21세기에도 시선이 곱지 않지만 이 당시 기성세대들이 오히려 청소년들이 건전하게 즐길 수 있을 만한 문화시설을 세우는 데 관심이 있었다면 이렇게까진 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인현동 화재 참사는 청소년혐오 사건이다, 인천in
당시의 사회 분위기상 예의 바르게 행동하고 공부에만 집중하는 것이 거의 절대적인 선으로 취급받았고 오락실이나 PC방이나 노래방, 아이돌 콘서트 등에 대한 시선이 2020년대에 비하면 상당히 곱지 않았다.[30] 만약 이 당시에 청소년을 음주, 흡연, 성폭력 등의 위험에 노출되지 않을 만큼 건전한 여가시설들을 여럿 세워 주거나 기성세대들이 적극적으로 아이돌 콘서트나 여러 가지 행사들을 유치시키고 진행했다면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편 사고가 발생한 상가 건물은 사고 이후에도 수리를 거치고 나서 영업하고 있다. 네이버 거리뷰 참조. 파란 건물이 당시 사고가 났던 건물이다. 그리고 그 건물 2층이 당시 사고가 났던 호프집 자리다. 사고 당시 손님들이 주먹으로 유리창을 깨고 탈출했던 3층 NBA 당구장은 사고 이후에도 한동안 같은 이름으로 계속 영업하다가 폐업하였다. 거리뷰 최신 시점 기준으로 1층엔 요리주점이 있고 2층은 현재는 공실(空室)이며 3층은 신학대학이 있다. 주변을 보면 노래방도 PC방도 다 있고 유흥가로서의 기능은 계속하는 것으로 보이나 성인도박장이 제법 들어선 풍경을 보았을 때 상권이 좀 더 어두운 방향으로 침체되었음을 시사하는 풍경이기도 하다.
2019년은 참사 20주기가 되는 해[31]였지만 유가족들은 10월 30일 인천 중구청의 지원을 받지 못하고 연안부두에서 팔미도를 가는 유람선에 탑승해서 추모 의식을 치러야 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다. 당초 유족들은 30인승 배를 지원해 줄 것을 요구했지만 중구청은 자체 행정선이 없어 인천시에 지원을 요청했는데, 30인승 이상 행정선은 어로 단속 때문에 지원이 불가해 11인승 배만 줄 수 있다 해서 벌어진 일이었다고 한다. #
2019년 11월 참사 20주기를 맞아 오마이뉴스에서 특별기획 기사들을 냈다.
① "사고 나면 언제나 힘없는 사람들이 희생양" 젊은이 57명 앗아간 참사... 학교는 죽은 아이들을 퇴학시키려 했다
② 이재원 유족회장 "인현동 화재 참사로 기억해야" 질식사한 내 아들... 국가는 20년을 침묵했다
③ 눈물의 배삯 12,000원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야" 그 부모들은 왜, '뽕짝 춤판' 옆에서 오열했나
④ 고 이지혜양 어머니 "알바생이라며 보상에서 제외" 아르바이트 첫 날 죽은 열여덟 내 딸... 나라가 두번 죽였다
2020년 넷플릭스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에 이 사건을 모티브로 한 설정이 있다. 은영이 학생일 때 일어난 사건으로 대사로만 언급되지만, 화재 당시 처참한 모습으로 죽은 선배들이 은영의 눈에 보였다고 한다.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 사고로 아들[32]을 잃은 전 여자 하키 국가대표 김순덕[33]은 안 그래도 정부의 무책임한 태도에 환멸을 느끼고 있었는데 이 사건까지 터지자 '이 나라는 달라질 게 없다. 어린아이 하나 지키지 못하는 이딴 나라에서 내 자식을 키우지 않겠다.'며 훈장을 반납하고 뉴질랜드로 이민을 가 버렸다. 15년 후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가 터지자 '여전하다. 우리 때와 달라진 게 없다.'는 씁쓸한 비난을 하기도 했다. 다만 그저 어른들이 하란 대로 해서 벌어진 안타까운 두 사고와 다르게 이 사건의 희생자들은 이들의 선택으로 그 곳에 있었다는 차이점은 있다. 이것은 마치 시간이 그렇게 많이 흘렀는데도 망가진 외양간을 전혀 고칠 생각도 안 하고 거기서 계속 소를 키우고 있으니 소가 다치거나 병들어 버린 셈이다.
2022년 4월 7일,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 이 사건을 다뤘다. 방송에서 나온 생존자 및 유족들은 호프집을 둘러싼 좋지 못한 인식 때문에 사건명에서 호프집이란 단어를 떼 달라는 부탁을 했다. '어떻게 학생이 호프집에서 술을 마시냐', '죽어도 싸다' 등의 폭언까지 무차별적으로 들었다고 한다. 심지어 유가족들이 책임자의 처벌과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시위를 하자 자식을 팔아 돈 벌려고 한다며 비난하는 몰상식한 이들도 있었다고 한다.
상술된 씨랜드를 다룬 12월 9일 자 방송에서도 짤막하게 언급된 바 있다. 학생이 술을 마신 것이 떳떳하다고 할 수는 없겠으나 그것이 죽을 죄는 결코 아니다. 위에서도 언급되다시피 그 당시엔 청소년들이 모여서 건전하게 놀 수 있는 곳이 없었다. 무엇보다 해당 참사는 업소 주인의 탈법과 이를 관리해야 할 공권력의 부패가 결합된 것이 주 원인이니만큼 피해자에게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