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절강해(막6 47 49 유튜브 교회 #활공교회, 설교원본-BAND: 활공교회)

주품이2022.11.20
조회71



구절강해(막6 47 49 유튜브 교회 #활공교회, 설교원본-BAND: 활공교회)
https://youtu.be/2QSlTBNw3P4


말씀:
47 저물매 배는 바다 가운데 있고 예수는 홀로 뭍에 계시다가
48 바람이 거스리므로 제자들의 괴로이 노 젓는 것을 보시고 밤 사경 즈음에 바다 위로 걸어서 저희에게 오사 지나가려고 하시매
49 제자들이 그의 바다 위로 걸어 오심을 보고 유령인가 하여 소리지르니
막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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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345 캄캄한 밤 사나운 바람 불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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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풀이:
바다:
qavlassa(2281, 달랏사)
바다 sea, 호수 lake.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명사 달랏사(Homer. 이래)는 헬라어로 대양(ocean), 즉 양양한 '바다'를 의미한다. '깊게 하다'라는 의미의 어근 달라에서 유래되었다는 어원상의 설명은 가설로서 남아있다.
2. 70인역본의 용법
달랏사는 70인역본에서 370회 나오며 대부분의 경우에 '바다'를 뜻하는 얌을 번역한다. 구약성경에서 *달랏사는 대양과 내륙의 호수를 구분해서 사용되지는 않는다. 지중해(수 1:4; 수 19:26, 70인역본; 겔 48:28)와 홍해(출 23:31; 민 33:10f, 삿 11:16; 왕상 9:26) 뿐만 아니라, 사해(창 14:3)와 게네사렛 호수(긴네렛, 민 34:11; 수12:3; 수 13:27; 참조: 마 4:18; 막 1:16), 즉 갈릴리 바다도 달랏사(thalassa)로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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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신약성경의 용법
달랏사는 신약성경에서 91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
(a) 일반적 의미로서 '바다' 마 9:42; 마 11:23; 눅 17:2, 눅 17:6; 마 23:15; 땅과 바다는 전 우주를 가리킨다, 행 4:24; 행 14:15; 계 5:13; 계 10:6; 계 14:7. 고후 11:26; 롬 9:27(사 10:22); 히 11:12(창 22:17); 마 18:6.
요한계시록은 특히 유대 묵시적인 전통을 계승하여 *바다를 마지막 날에 정복될 인격적 세력으로 생각하며(계 7:2이하), 그러므로 바다는 다나토스(죽음)와 음부와 마찬가지로 죽은자들을 내어주고(계 20:13), 마침내 존재할 권리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계 21:1). 유대교의 묵시에서처럼(참조: 단 7:3) 요한계시록에서도 *바다는 귀신같은 괴물들의 집이다(계 13:1[개역개정][계 13:1]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왕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신성 모독 하는 이름들이 있더라; 참조: 용이 물을 토함, 계 12:13이하). 최후의 날의 재앙에서 바닷물은 피로 변할 것이다(계 8:8이하; 참조: 강들과 샘들, 계8:10; 계 16:4); 건국 초기에 애굽에서의 재앙이 이곳의 배경에 드러나 있다(참조: 출 7:14이하). 바다의 불은(계15:2) 하늘의 뇌우와 더불어 번쩍이는 번갯불인데, 여기서는 → 심판을 알리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참조: R. H. Charles). 하늘의 바다에 서있는 승리자들의 광경은 홍해변에서 이스라엘이 애굽에 대한 승리를 찬송한 것을 상기시킨다(출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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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품이 주:바다는 호수와 대양을 구분하지 않는 히브리단어의 특징을 보여준다. 이외 더 중한 것은 바다라는 의미가 성경에서는 괴물의 집, 사망의 집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이 바다를 걸으시는 예수님은 뭘 의미 할까 사망과 괴물의 정복자인 것을 의미한다. 창조주로서 중력을 다스리는 창조주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사망과 괴물도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거스릴 수 없으며 홍해변의 이스라엘의 노래와 같이 예수님은 사망을 이기신 승리자이신 것임을 상기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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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
favntasma(5326, 판타스마)
현상 phenomenon, 유령 ghost.
1. 고전 헬라어 문헌
명사 판타스마(Aeschyl.이래)는 판타조(fantavzw, 5324: 나타나다, 보이게 하다)에서 유래하며, '출현, 현상'을 뜻하며, 현몽, *영의 출현, 유령(ghost)에대하여 사용되었다(Aesch.Sept.; Plat.Phaed.; Luc.Philops 등).
2. 70인역본의 용법
명사 판타스마는 70인역본에서 3회 나타난다. 이 단어는 히브리어 힛자온(환상)을 번역하여, 사 28:7; 욥 20:8에서 '허상'이나 '환상'을 의미한다. 지혜서 17:14에서 '환영이나 유령'을 의미한다.
(주품이 주: 예수님은 영만이 아니란 것을 더욱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 예수님은 말씀이시고 육을 입으시고 육으로 활동하시고 육으로 부활을 하시고 육으로 다시 재림하시고 육으로 천국에서 영원히 활동을 하신다. 우리가 죽어 영만이 낙원을 가나 예수님은 영만이 존재하시는 것은 아니다. 신성의 영육을 가지신다. 우리의 육은 불완전 기간을 지나 예수님의 재림으로 육이 바다에서 사망을 이기고 나올 때 낙원에 있는 영과 육이 결합을 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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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맥읽기:
a. 바다 위로 걸어오시는 예수님
2.제자들의 삶의 현주소
(눅19 37
이미 감람산에서 내려가는 편까지 가까이 오시매 제자의 온 무리가 자기의 본바 모든 능한 일을 인하여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여,
요8 31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
-15:8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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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절, 저물매 배는 바다 가운데 있고 예수는 홀로 뭍에 계시다가

-> 예수님은 제자들의 믿음을 더욱 북돋기 위한 계획을 가지고 계신거 같다 오병이어로도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는 백성인데 물위를 걸으시는 예수님을 본다면 아연실색하기에 12제자에게만 보이시고마는 계획인거 같다. 중력을 거스르는 창조주(중력을 만드셨기에 중력을 멈추게도 하는 창조주인 것이다.) 이외도 주님은 바다는 사망의 집, 용의 집이라 계시록에 표현되기에 이 위를 걸으시는 지배자 정복자, 승리자이심을 나타내는 것이라 여겨진다.

홀로 뭍에 계심은 백성들의 왕이 되게 하려는 흥분을 가라 앉히고 육을 가진 몸으로서 휴식을 취하시고 진정한 힘의 공급인 기도를 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말씀 자체이시기에 말씀 읽기는 필요가 없으실 것이다. 우리는 힘을 공급 받기 위해 영과 육의 쉼이 동시에 필요함을 기억하자. 쉬는 기간 영화관람 안방에서도 영화시청, 게임하기가 일상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저도 경험하지만 더욱 피곤함만을 가중할 뿐이다. 그래서 기도원이 있는 것이다. 진정함 쉼을 위해 기도와 말씀으로 충족하는 기간은 누구나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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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두레 수도원의 김진홍 목사님의 말씀을 1주 5번 정도는 청취하는거 같습니다. 말씀과 기도로서 여러분의 아침을 깨우시면 참으로 영적 힘을 공급 받으시리라 봅니다. 이외 날기새 날마다 기막힌 새벽이라는 김동호 은퇴 목사님 설교도 듣고 있습니다. 다같이 동참하여 참된 영적 쉼도 얻고 김동호 목사님 설교는 잠시 찬송가가 나오는 부분에 지하철 안이라도 마음으로 기도하는 시간을 갖으셨으면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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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절, 바람이 거스리므로 제자들의 괴로이 노 젓는 것을 보시고 밤 사경 즈음에 바다 위로 걸어서 저희에게 오사 지나가려고 하시매

->이스라엘은 밤을 삼경으로 구분하다 로마식으로 사경으로 구분하게 되었다 한다. 일경(저녁6~9시), 이경(밤9시~12시), 삼경(12시~새벽3시), 사경(새벽3시~6시) 일 것이다. 시간을 잠시 인생에 빗대어 묵상 해보자 사경은 최고로 어두우면서도 가장 희망이 넘치는 시간이기도 하다. 바로 여명의 시간이다. 가장 괴로이 노젓는 제자들의 모습은 가장 어려운 때를 지나는 우리 인생의 모습과도 같다. 이제는 더 이상 희망이 없고 자포자기하고 싶은 순간 주님은 역사하신다. 죽음의 순간에도 역사하신다. 죽음의 정복자, 지배자, 승리자 되시는 예수님께서 가장 절망의 때에 다가 오시기 때문이다.

다음은 그들의 위치를 알아보자 그들은 갈릴리 호수의 한 복판에 있는 것이다. 저녁 즈음에 헤어졌으니 6시부터 새벽3시까지 6~9시간 풍랑이는 바다에 오도가도 못하고 진전이 없는 것이다. 고작 9시간 쯤 노저어 4키로를 간 것이다. 갈릴리 폭이 8키로이니 말이다. 이것이 인생이고 사역이 아니던가. 분명 목표가 있어 출항한 우리의 인생 우리의 계획은 마치 늪과 같이 더욱 깊어 지는 바다 한복판에 노여 헤어 나오지를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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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명령으로 시작한 우리의 사역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닌가봐 하나님 사역을 포기 해야지 하는 때가 얼마나 많은가 풍랑의 바다는 이미 사망의 집, 용의 집이라 표현을 하였다. 제자들의 사역, 인간의 일반적인 활동에서 사단의 훼방은 끊이지 않는 것이다. 이 풍랑이 사단의 훼방만을 의미할 까 우리 내면의 풍랑이는 바다는 여러분 자신이 더 잘 안다. 우리의 목표를 포기하고푼 하나님의 명령을 의심하고푼 우리의 상황에 주님은 구원의 이름으로 직접 다가 오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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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절, 제자들이 그의 바다 위로 걸어 오심을 보고 유령인가 하여 소리지르니

-> 단순히 주님만이 창조주임만을 기억하는 일화로 보아서는 아니됨을 오늘 처움 묵상해 본다. 주님은 사망에 매인 제자들 용의 노예로 살아가는 인생들에게서 사망의 정복자 용을 이긴 승리자로서 오신 것이다. 제자들을 삼키려는 사단의 울부짖음에 주님은 그들의 정복자로서 발로 밟으시며 제자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베푸시는 것이다. 이는 십자가 사역의 승리를 향한 예표이기도 하다. 우리의 마침내의 도움자 변호자 상담자는 오직 완벽한 예수님이신 것이다. 다른 노력으로 아무리 헤어다니며 찾아 보아도 정답은 예수님이신 것이다.

마구 노저어 우리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해도 아무런 진전이 없는 제자리인 것이 우리의 노력이요 인생인 것이다. 이 상황은 재림하러 오시는 예수님의 진격의 때와 같은 것이다. 우리는 그날에 휴거되며 주님과 동행하는 날을 경험하게 된다. 휴거의 날, 죽어 있는 육체는 생명을 얻으며 낙원의 영과 결함하여 진정한 영혼육이 죄짓지 않는 대속의 영으로 영원히 천국에 있게 되는 것이다. 부활의 육은 활공하여 완전한 희락에 거하게 된다. 이 날을 품고 소망하는 것이 활공교회의 목표요 주님안에서 이루어지는 꿈인 것이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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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사망의 바다 마귀의 세력의 바다와 같은 세상이 항상 우리의 계획을 주님의 계획을 훼방하며 우리를 괴롭게 합니다. 항상 우리의 나약함을 보시고 도우시고 망하지 아니하게 지켜 주시옵소서 풍랑이는 바다에 제자를 찾으시는 주님! 우리에게도 가까이 오시고 도와 주시고 허물 가운데 변호자가 되시며 외로울 때 즐거움의 상담자가 되어 주시며 우리도 풍랑이는 사망에 바다에 놓인 많은 자들의 전도자, 상담자 도움자 변호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