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머슴이었다. 다만 오해할 것 같아 사전설명을 좀 덧붙여야겠는데 나는 정확히 일제 강점기인 1930년대에 젊은시절을 보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조선시대 양반,상놈 가리는 신분제도가 철폐된건 갑오경장이 있던 1894년 그러니 일제 강점기가 한참 진행중인 1930년대 기준으로도 이미 40년전 일이지 그러나 사람들의 습관이나 문화,가치관 이런것들이 제도가 하루아침에 바뀌었다고 확 바뀌는 것이 아니라 비단 1930년대뿐만 아니라...가령 1960-70년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만 보아도 나이많은 등장인물중엔 예전에 자신이 모시던 양반이나 이런 사람들을 만나면 ‘마님’이니 ‘아씨’니 하는 호칭을 여전히 쓰는 것을 볼수있을정도로 그때까지만 해도 조선시대식 신분제의 잔재나 생활습관은 일정부분 남아있었다 그러니 그보다 한세대전인 1930년대라면 비록 제도적으론 양반,상놈 가리는 신분제도가 사라졌을지언정 그 시절의 문화나 인식은 많이 남아있던 시대로 봐야겠지 하지만 실제로 우리나라 양반가 대다수는 조선이 망하고 일제를 거치면서 몰락의 길을 걸었다고 보면 된다 내가...정확히는 우리집안이 대대로 일을보던 OO고을의 이진사댁도 마찬가지라 말이 양반가지 그때는 이미 자기네 끼니때도 연명하기 쉽지가 않은 그런 처지가 되어있었고 그리고 학교다닐 때 국사시간에 졸지만 않은 사람이라면 외거노비,솔거노비 하는 구분은 들어봤을 것이다 이중 솔거노비는 집안에 함께 살면서 일을보는 노비를 말하는것이고 외거노비는 가족과 따로나와 살면서 출퇴근하듯 양반집 일을 하는 하인을 말하는것인데 굳이 그런 개념구분이 이때쯤엔 무의미했을정도로 까놓고말해 하인들한테 새경도 제대로 못주는 가난한 양반댁에 계속 남아있을 하인이 누가 있겠다 그것도 어쨌든 공식적으론 이미 신분제 폐지된지 오래된 시대에 따라서 우리집의 경우에도 이미 사실상 외거노비나 다름없는 따로나와 사는 상태에서 아버진 오래전에 돌아오셨고 어머니가 삯바느질이라도 하시면서 생계를 유지하며 아들이라고 하나 있는 나만 보시며 그래도 이젠 양반,상놈 가릴것없이 학교가서 공부만 잘하면 출세할수 있는 시절이라니 우리 수만이 그저 좋은학교 나와 어여 출세해서 더 이상 양반집 노비,머슴소리 안 듣는 그런 멀쩡한 사람으로 자라기만 바라는 그런 시절을 살고 있었다 물론 나 역시 어엿이 읍내에 있는 중학교(지금의 고등학교나 마찬가지)를 다니며 어여 출세해 고생하시는 어머니 그만 호강시켜드려야지 그 일념으로 공부만 하던 그런 10대 시절을 보냈고 다만 두가지 그늘이 있었다면 그렇게 사는 나일지언정 주위에선 여전히 날 보면 ‘저거 아무개댁 머슴살이하던집 수만이 아녀 ?’ 이런식으로 수군거리는 손가락질은 분명 존재했고 또 하나는...민망하고 무안하게도 주인집 아씨...정확이 이젠 더 이상 주인집 아씨라고는 할 수 없는 이진사어른댁 외동따님인 아씨를 짝사랑했던 것이다 아무리 신분제가 철폐되었고 머슴집 아들도 공부만 잘하면 출세할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지만 그래도 아직 신분제의 잔재가 많이 남아있는 시절에 그것도 생판 남도 아닌 적어도 아버지,어머니대에까진 분명히 모시던 양반댁인 이진사어른댁 따님을 내가 짝사랑하는 것은 실은 가당치도 않은일이었지...적어도 그 시절에는... 사실 우리때만 해도 다른 지역으로의 이동은 그리 쉽지 않던 시절이라 (* 기차나 전차 정도는 있었지만 오히려 지금의 택시나 시외버스 같은 기능을 하는 대중교통수단은 거의 전무하던 시절이니...어느정도 떨어진 지역까진 도보나 말을타고 가는 것 그 외엔 거의 방법이 없었지) 맘에드는 여자나 이성이 있어봐야 고작 가까운 동네처자 그 정도 수준이 될 수밖에 없었어 헌데 적어도 내 경우엔 그래도 어린시절부터 쭉 보고 살았던 사실 예전같으면 그냥 일개 머슴에 불과한 내가 모시는 주인집 따님인 아씨를 짝사랑한것이니 실로 가당찮은짓이지 법적으론 이미 신분제가 폐지되었으니 문제될 것은 없지만 사회통념적으로 아직 불가능한 짓이니...근데 알고보면 사실 이게 더 사람 환장하게 만드는거다 !!! - 아니 신분제가 폐지된게 언젠데 아직도 양반집딸과 결혼하면 안된다는 거냐 !!! 딱 이 억울함 생기기 좋은 상황인거아냐 !!! 무엇보다 어느덧 아씨도 혼기가 다 차가고 무엇보다 이진사댁은 몰락한 양반가라 가세가 날로 기우는 상황이라서 더 어려워지기전에 딸을 시집보낼 궁리를 하고 계셨다 아씨나이 그때 10대 후반(18-19세 정도)일때니 지금으로 치면 아직 학교다닐 나이지만 그 시절엔 오히려 늦었다면 늦은때지 여하튼 읍내에서 과수원과 정미소를 운영하는 그런 부자집인 박선생댁 외동아들에게 시집을 보낼 생각이었지 사실 박선생댁도 예전 사농공상(士農工商)식의 또다른 신분아닌 신분개념이 존재하던 시절엔 당치도 않은일이었지만... 이미 돈 많이벌면 양반이나 다름없는 대접받는 시대가 된지는 꽤 되었는지라 (* 조선 영,정조시대 이후로 신분제가 무너지면서 특히 장사로 돈번이들은 심지어 돈주고 가짜 족보를 사기까지 하면서 그렇게 양반이나 다름없이 행세했더라는 이야긴 다들 한번 씩 들어봤을거다) 여하튼 박선생댁은 과수원도 하고 정미소도 하는 그런 부작집이니 양반은 아니지만 사실상 양반행세 하고 다닌지 오래된 그런 집안인거지 허나 적어도 조선시대 통념상으로는 그런 뼈대있고 족보있는 이진사댁에서...그런 근본도 없이 돈만 많이번 천한 장사치한테 딸을 시집보낸다는 것은 굴욕이라면 굴욕이야 요즘의 통념이라면 여하튼 가난한집 외동딸이 여하튼 중소기업쯤은 하는 집안에 시집가게된 모양새니 대박은 아니라도 중박정도는 터진게 분명하지만 그 시절엔 적어도 뼈대있는 몰락한 양반가문이 천한 장사치 집안에 딸 시집보내는거 진짜 굴욕인거다 나는 진짜 아픈 가슴을 쥐어짤 수밖에 없는 시간이 될 수밖에 없었지 그래도 아직까지는...아씨를 가슴에 품는다는게 사회통념상으론 문제가 되어도 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될게 없는 상황이지만 이제 시간이 얼마 더 지나 아씨의 그와같은 혼사가 이뤄지면 이제 법적으로도 사회통념적으로도 모두 문제가 되는 일이니 아픈 가슴이 더더욱...그 고통이 미어질 수밖에... 동네사람 모두 아씨의 혼사를 경축하는데 나혼자 동구밖에서 혼자 피눈물 삼킬 수밖에 없는 그런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어 다만...그래도 울 엄니와 같이 이진사댁 하녀노릇 하던 시절부터 (* 근데 까놓고 말해 외거고 솔거고 나발이고 간에 하인노릇을 더 이상 안하면 그냥 이웃주민이지 더 이상 머슴이 아닌거다. 무슨말인지 알간 !!!) 성님,동상 하던 가천댁 아주머니란 분이 계셔서 나도 이모님이나 다름없이 여기던 분이었는데 그 가천댁 아주머니가 막걸리 한잔 사주시며 위로를 해 주시더라 ‘그만 아씨는 잊어버려라. 그리고 수만이 니도 효성 지극하고 성실한 몸이니 어찌 하늘이 무심하리냐. 머지않아 니한테도 좋은 배필이 생길터이니 아씨는 그만 마음에서 지우라 하더라’ 여하튼 아씨는 그렇게 강건거 마을인 OO 고을에 과수원하고 정미소 하는 박선생 집으로 시집을 갔던거지 사실 난 박선생 집안에 대해 대충은 알고 있었어 어차피 그 시절 시골마을은 다 거기서 거기니까 물어물어 한두계단만 넘어가면 어느집 누구네가 식구가 몇이고 어찌 사는지 정도는 다 소문처럼 알수있던 시절이니까 그리고 난 사실 이따금 등하교길에 대충 아씨 혼사말이 나오던 무렵부터 아씨 혼담이 나오고 있다는 박선생네를 이따금 기웃거리며 어떤집인지 좀 알아보려 했거든 (요즘식으로 말하면 완전 스토커에 신상털이짓을 한거지 모...) 일단 아씨가 시집갈 집에는... 나이 칠순을 넘긴 노마님이 계셨고 나이 40대 후반 정도의 박선생 부부 그리고 아씨가 시집을 가게될 상대인 역시 나이 17-18세 정도 된 그 집 박선생댁 아들인 청년 그리고 대개 돈많은 남자들이 그러하듯이 박선생도 바람기가 좀 있어서 첩실이 둘이나 있더군...그중 하나는 이미 첩실로 들어앉은지가 꽤 되어서 어느덧 박선생과 사이 열 살남짓한 딸을 둘을 낳았고 그것도 모자라 박선생은 최근에 스무살도 채 안된 어린 이웃집 여자애를 또 건드려 새로 첩을 들였다더군. 그리고 그 새 첩실은 지금 임신중이라 하더라 현재 박선생은 그 스무살도 채 안된 새 어린첩실한테 푹 빠져 어쩔줄 모르고 있고 다만 집안 분위기는...그래도 아직은 정실인 그집 본부인이 꽉 붙잡고 있는 분위기더군 뭐 이것도 대략 하늘의 도우심이라면 도우심인지 적어도 가부장 중심에 ‘대를 이을 아들은 있어야 한다’는 그런 가치관들이 하늘가득한 시절에 그래도 정실부인은 아들을 하나 낳았고 첩은 딸만 둘을 낳았으니 아들낳은 정실부인이 충분히 시어머니 한테도 며느리 대접 제대로 받으며 그 집에서 큰소리 치며 다닐수 있는 실권자가 될수 있었던거다 - 진정한 반전은 아씨가 시집가면 그분이 시어머니가 된다는 소리지. -.-;;;; 그리고 그 외 식솔로는 마름 또는 청지기라고도 보통 부르는 오서방이란 집안일을 보는 집사격인 하인 그리고 부엌일을 보는 용인댁과 점례와 끝순이란 젊은 하녀 그리고 과수원 일을 보는 하인 3인방이 있는데 이 과수원 3인방은 나하고도 원래 호형호제하며 친분이 있는 사이였어 내가 아씨가 시집갈 집안의 정보를 알아낼수 있었던것도 다 이 과수원 3인방 덕분이었으니까 한녀석은 억보란 녀석으로 이름처럼 진짜 억세고 힘만 센 우직한 녀석이고 만돌이란 녀석은 반대로 체구는 마른편이지만 잔머리와 잔꾀를 잘부려서 사실상 내가 아씨네집 안사정을 속속들이 일수 있었던것도 다 이 만돌이 녀석 협조가 있었던 덕분으로 봐야할정도로 또 하나는 철수란 녀석으로 억보나 만돌이보다 상대적으로 어린 아이였는데 나이도 어리지만 어릴 때 사고로 뇌를 다쳐 좀 덜떨어진데가 있지만 그래도 형님뻘인 억쇠나 만돌이가 일 시키면 고분고분하는 좀 덜떨어졌지만 성정은 착해보이는 그런 녀석이었지. 아씨가 시집을 간 이후로도 난 억보나 만돌이를 통해 아씨의 소식은 간간히 들을수 있엇지 그리고 그 내용은 대충 짐작했던것보다 훨씬 더 말이 아니더군 일단 70 넘은 그 집 시할머니는 이미 치매증상이 온지 오래라 특히 아침만 되면 때때옷입고 집안 어른들게 세배드리러 간다고 생 난리를 쳐서 가족들을 힘들게 만들고 시아버지는 뭐 대체로 여전히 과수원과 정미소일에 열심히시지만 집안에선 이미 정실부인은 외면하고 나이어린 첩실에게 푹 빠져있어 시아버지 첩들은 심지어 자신들도 아씨한테 시어머니 행세한답시고 오만가지로 괴롭힌다더군 딸 둘을 낳은 이미 중년 아줌마가 된 첩은 물론 최근에 아이를 배어 새로 들였다는 나이어린 첩까지 어이없게 아씨 앞에서 시어머니 행세를 한다는게야 아씨 입장에선 그야말로 시어머니를 셋이나 모서야 하는 어이없는 상황이 벌어진게지 사실 그중에서도 절정은 그래도 집안에서 여전히 실권자인 시어머니. 시아버지한테도 아들낳은 정실부인이기도 하지만 그래서...사실상 모든 시집살이의 근본은 이 시어머니에게서 시작되는거니까 사실 이런 분위기에서 신랑이라도 좀 색시를 감싸주면 그런대로 견딜수도 있는데 어느덧 중학교(지금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할 나이가 된 이 신랑은... 아마 원치않는 결혼이었는지...심지어 신혼 첫날에도 제 친구들이랑 술먹고 밤늦게 들어와 신부를 독수공방 시켰다는게야 헌데 이건...사실 이 시절...30년대 젊은 남자들의 정서는 좀 이해할필요가 있는게 사실 이보다 한세대전인 한마디로 20세기 초엽만 되었어도 집안에서 짝지워주는 결혼을 그게 다 운명이고 사는모습이라 생각하고 순종하며 받아들이고 살았을텐데 1930년대 정도면 어느정도 사는집 청년들이야 이미 신교육 다 받고 일본이나 서양을 통해 들어오는 온갖 선진문물,선진문명에 한참 눈돌아갈 그런 나이지 무엇보다 서울 올라가 신교육 받으며 공부하면 비슷한 또래의 그리고 이야기도 잘 통할 것 같은 젊고 이쁜 신여성들을 무진장 만날 수 있는데...원하지도 않았던 10대 후반 나이에 집안끼리 짝지워저 결혼시켜준 아씨가 눈에 들어오겠나 차라리 신랑이 어디 바람이라도 피우거나 걸핏하면 폭행이라도 하는 그런 사람이었다면 그런식으로라도 신랑욕을 하며 하소연을 할텐데 사실 제3자가 볼 때 아씨의 신랑은 그런대로 공부도 잘하고 부모님께 효성도 그런대로 지극하고 뭐 하나 흠잡을데없는 그런 청년이라는거야 근데 이게 사실 사람 더 환장하게 만드는거다 차라리 대놓고 바람을 피운다던가 폭력을 쓴다던가 이런거면 몰라도 애초에 제 색시한테 관심이 없어 일부러라도 밖으로 나도는 것 (* 꼭 여자때문만 아니더라도 공부핑계든 일핑계든 밖으로 나돌 핑계는 대면 얼마든지 댈수 있는거니까) 어쨌든...아씨와 결혼한지 얼마 안가서(합방도 하지 않은채) 서울로 올라간 그댁 도련님 서울에서 공부하는데 바쁜지 뭐가 그리 바쁜지 아씨한텐 소식한장,편지한장 없고 아씨는 정작 신랑은 서울간 사이에 집에 혼자 남아 온갖 시댁식구 수발이며 구박이며 오만 것 다 받으며 속울음만 삼켜야하는 그런 시간이 계속되었던거지 한 1년정도의 시간이 지났어 사실 아씨보단 그보다 앞서 우리집에 먼저 변동사항이 있었는데 그 사이 우리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젊은시절 고생을 많이 하신 탓인지(일찍 아버지 즉 당신 남편이 돌아가신거니까) 아직 연세 40을 좀 넘은 아직은 한참 나이라면 나이지만 사실 1-2년전부터 지병으로 고생하시다 돌아가셨어 (* 그리고 이 시절 40-50대면 지금 60-70대쯤으로 봐야하는거다. 이 시절 60-70대면 지금 80넘은 노인과 하나 다름없는걸로 봐야하는거고) 그러니 그 정도 나이때 돌아가신 어머니 사실 이때도 여하튼 웬만하면 60-70까지 살던 시절이니 40 조금 넘겨 세상 떠나신거면 아직 한창 더 사셔도 되는 나이에 일찍 돌아가시긴 한건데 여하튼 그렇게 어머니마저 돌아가시고 난 세상에 혼자 남은채로 여전히 간간히 과수원 만돌이형과 억쇠한테 아씨 소식을 들으며 그렇게 살았던거지 사실 난 견딜수가 없었어. 어쨌든 한동안 내가 마음에 품었던 아씨 그런 집안에 시집가서 시댁식구들은 물론 심지어 시아버지 첩들한테까지 오만 구박,수모,설움 다 당하고 게다가 신랑이라는 남자는 자기한테 눈길한번 안주고 심지어 오늘이 설인지 추석인지 봄인지 여름인지도 구분할지 모르는 치매걸린 노 시할머니 수발까지 하며 오만고생하는 아씨의 모습... 아씨를 그 지옥의 수렁에서 내가 꺼내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머니만 살아계셨어도 내가 병든 그리고 아들하나 출세하는것만 바라보며 사시던 어머니를 생각해서라도 내가 참았을텐데 이미 어머니까지 돌아가시고 세상에 나 혼자뿐이니 더 이상 거리낄게 뭐가 있으랴 그 생각을 했다. 나는 낫과 몽둥이를 들고 우선 시할머니 방으로 달려들어가 병으로 몸져 누워있는(* 치매 때문에 아침에는 때떄옷입고 성묘가야 한다, 차례지내러 가야한다 난리치는 노인이긴 하지만) ① 시할머니의 등뼈부터 꺾어 쓰러트렸다 그리고 무슨소린가 놀라 달려온 ② 시아버지(박선생 또는 박사장)와 ③ 시어머니를 낫으로 찔러 죽였고, 역시 놀라서 달려온 ④ 청지기 오서방 역시 마찬가지 방식으로 해치웠다. 사실 청지기 오서방은 덩치도 좀 있고 소싯적엔 힘도 좀 쓰던 사람이라 들었는데, 하지만 이땐 이미 나이 50을 넘긴데다가 워낙 창졸간의 일이라 맥없이 고꾸라지더라. 난 청지기 오서방의 시체를 우물에 던져버렸다 이어 부엌일하는 하녀들 이때는 마침 식구들 아침식사가 다 마무리된 시간이라 한참 부엌에서 설거지 하는데 여념이 없는 ⑤ 용인댁 아주머니와 ⑥ 점례 그리고 ⑦ 끝순이까지 모두 해치워버렸지 하녀 3인방 시신은 그대로 부엌에 널려지게 되었고 그 다음 타겟은 정실도 아닌 첩실인 주제에 우리 아씨 괴롭힌다는 첩년 가족들...마침 별채에는 박사장 첩이 이제 막 소학교(지금의 초등학교) 다니는 두 딸과 아침식사를 마치고 학교갈 아이들 배웅을 하던 중인데 ⑧ 그 첩실(40대)과 ⑨,⑩ 소학교 다닌다는 두 딸까지 모두 해치워버렸지 그 다음엔 아직 나이 어리다는 박사장의 마지막 새끼첩 아씨 시집갈 무렵에 임신중이었다는 그 새끼첩은 출산한지 얼마되지않아 아직 생후 몇 개월 정도된 제 아기와 함께 다른 별채에 있더군 그래서 그 ⑪ 새끼첩까지 해치워버렸다. 다만 그 새끼첩이 낳았다는 갓난아기까진 차마 처단을 할 수가 없어 살려두고 나왔다. 사실 이제 진짜 난코스가 남았는데 바로 과수원 3인방 억쇠,만돌이,철수...게다가 덜떨어진 철수도 그렇거니와 억쇠와 만돌이형은 사실 지금껏 나랑 호형호제하면서 특히 아씨 시댁에 대한 이런저런 정보를 쭉 알려준 은인이고 친군데...은혜를 원수로 갚는 격이라 그렇긴 하다만...난 물불가를 겨를이 못되었어 무엇보다 이들이 당장 주재소(지금의 경찰서)로 달려가 신고라도 해버리면 큰일 아닌가. 따라서 지금까지 정리를 무릎쓰고 게다가 지금까진 모두 힘없는 노인이나 여성,나이든 아저씨 이런 사람들이었지만...이젠 힘 쓰는 장정 셋을 나혼자 상대해야하는 진짜 힘든 난코스가 남은거지 일단 소란을 듣고 달려온 과수원 하인 3인방 그 피비린내나는 살육현장에 이미 질려있었고 난 일단 그들을 유인해내기위해 달아나는척 집을 나와 과수원쪽으로 달렸지 그러자 우선 그 덜떨어진 ⑫ 철수X이... ‘도둑이야 !!! 도둑잡아라 !!!’ 하며 달려오는거야 (X신아 !!! 도둑이 아니고 잔혹한 살인범이다 !!! 그것도 연쇄살인마 !!!) 어쨌거나 날 도둑(?)이라며 달려오는 덜떨어진 철수를 먼저 나꿔채 해치워버린뒤 배나무숲 저쪽으로 던져버렸고 그 다음엔 힘센 ⑬ 억쇠가 무식하게 무작정 몽둥이를 들고 식식거리며 달려오는거야 난 녀석의 힘을 최대한 빼놓을 요랑으로 과수원 나무 뒤 여기저기로 숨어 돌아다니며 억쇠가 최대한 힘이 빠질때까지 요리조리 잘 피해 돌아다녔지 그리고 마침내 힘이 다 빠진 억쇠가 대충 인근 과일나무 근처에서 지쳐 쓰러져 숨을 돌리며 쉬고 있을 때 그때 숨겨놓은 낫을 들고 뒤에서 달려가 단번에 억쇠녀석 모가지도 잘라버렸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⑭ 만돌이형 3인방중 덩치는 제일 작지만 잔꾀 잘부리고 잔머리 잘굴리는 형 무엇보다 그 잔머리로 박사장댁 이런저런 정보를 모두 내게 전해주었던 고마운...형... 만돌이형은 일단 무식하게 덤벼들어선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는지 저만치 떨어져 웃는얼굴로 마치 이리 오라는 듯 손짓하며 이렇게 말하더라 ‘수만아...왜 그래 ? 진정하고 우리 조용히 말로하자. 형한테 와. 우리 조용히 이야기나 좀 해보자니까. 우리 원래 이런 사이 아니잖아. 그러니 이리와봐. 착하지 수만아. 형이라니까...이리 와봐 수만아...’ 허나 나도 그 잔머리 대장의 잔꾀에 안 넘어갈 머리정도는 있기에 쉬이 넘어가지 않고 여전히 낫과 몽둥이를 손에 든채 몇발자국 떨어진 상황에서 대치하는 형국이 되었지 난 일단 만돌이형이 주재소로 달려가 신고하는걸 막아야했기에 대치하는척 하면서 조금씩 방향을 틀어 방향을 반대쪽으로 주재소로 달려갈수 있는 방향이 아닌 과수원 담벼락쪽이 있는곳으로 만돌이형을 몰려고 했어 물론 만돌이형도 그 정도 수법은 충분히 눈치챌만한 사람이라 ‘수만아...왜 그래 ? 이쪽은 길 없는거 너도 알잖아. 그치 ? 그러니... 형하고 이야기나 좀 해보자니까...’ 이런식으로 날 계속 말로 설득해 안심시키려 하면서 도망갈 기회든 날 제압시킬 기회든 그걸 엿보는 것 같더라 허나 내가 한발 빨랐어. 마침 저쪽에 아까 억쇠와의 추격전(?)때 얼핏 구덩이 비슷한곳 하나를 본게 있어 대충 함정 비슷한 역할을 할수 있겠다싶어 그쪽으로 유인해냈지. 만돌이형이 달려드는순간 살짝 피했고...사실 이런 구덩이 같은 함정이 있을거라는건 당연히 원래 과수원 하인인 만돌이형이 더 잘 알텐데 상황이 급박해서 그걸 판단 못했는지 맥없이 구덩이속으로 빠져버리더라 난 구덩이에 빠진 형을 영원히 나오지못하도록 그 자리에서 암매장을 시켜버렸지 아직 끝난건 아니야 아씨 시댁식구들이며 하인들은 모두 처치했지만 일종의 객식구라고나 할까... 같이 한집에 사는건 아니지만 식구나 다름없이 매일은 아니더라도 2-3일에 한번은 꼭 드나드는 이가 두명정도 더 있어 그중 하나는 아씨 시아버지인 박사장 ⑮ 첩의 동생으로 꼴에 그래도 처남(?)이라고 거의 매일같이 이 집에 드나들며 제 누나한테 노름빚이며 술값이며 용돈 받아가듯 타가는이가 하나 있는걸로 알고있어 나도 그 친구에 대해선 대충 들어 아는게 있는데 보통 평상시엔 읍내에서 술마시고 노름하고 그러며 돌아다니는 흔한 건달이더군. 근데 다섯 살 차이나는 손윗누나가 그 유명한(과수원,정미소) 박사장 집에 첩으로 들어갔다니까 이 집이 진짜 제 매형집이라도 되는양 드나드는거야 (* 동생인데도 이 지경인데 오래비면 어쩔뻔했냐 ? 그야말로 이 집 주인 손윗처남 행세하며 아씨한테까지 오만 갑질 다했을거아냐 !!!) 사실 나도 면식이 없는 청년은 아니고 사실 좀 꺼림칙하긴 했는데 오늘같은날 찾아오는일은 없길 바랬는데 아니나 다를까 집으로 들어가보니 그 첩실 동생은 용돈받으러 누나한테 왔다가 용돈은커녕 누나며 조카 둘 전부 그 지경이 된걸보고 기겁해있더군 그때 나와 눈이 마주쳤고 난 첩실 동생도 저 세상으로 보내주는수밖에 없었지 그리고 마지막 또 한사람 이건 좀 사연이 있는데 아씨한테는 시이모님이 되는분이야 그러니까 아씨 시어머니가 그분 친정에선 8남매중 막내인데 큰언니와 스무살 가까이 나이터울이 지고 게다가 어린시절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큰언니가 사실상 동생들을 자식처럼 거두다시피하며 생계를 이어갔다더군 동생들 다 시집,장가 보낼때까지 게다가 공교롭게도 이댁 시할머니와는 고향에서부터 ‘성님,동생’하며 아는사이였다 하더군 사실 아씨 시어머니가 시집갈땐 그 시이모님도 나이가 40 거의 다 되었을텐데 그런식으로 어찌어찌 알고 지내는 고향언니네 아들한테 자기 막내동생을 시집보낸격이라고나 할까 그러니...아씨 시어머니한테는 큰언니고 시할머니한테는 고향 후배니 이 집에서 충분히 할소리,못할소리 다하며 큰소리 뻥뻥칠 수 있는 일종의 아웃사이더형 권력자라고나 할까 이야기가 잠깐 곁길로 샜지만 그렇게 아씨 시댁의 또다른 아웃사이더 권력자 시어머니에겐 큰언니고 시할머니에겐 고향동생인 ⑯ 시이모님... 역시...매일같인 아니더라도 2-3일에 한번은 이 집에 드나드는 사람 그러니 오늘같은날 웬만하면 안 들르길 바랐는데...이 노인도 죽을자리를 찾았는지 역시 들어와서는 기겁해있더군 이미 피비린내 자욱해있는 동생(아씨 시어머니)네 집 광경에 그렇게 집안에 들어서서는 기겁하는 시이모의 모습을 내가 목격했고 미안하지만 역시 바로 달려들어서 이미 막내동생(아씨 시어머니)과 고향언니(아씨 시할머니)가 몇분 먼저 떠나간곳으로 뒤따르게 해줄 수밖에 없었다 아씨는 그때까지 아씨 방에서 겁에질려 울고 있더군 아씨에게 바로 달려들어가서는 이렇게 말다 ‘아씨...다 아씨를 지옥에서 꺼내드리고자 저지른일입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아씨를 이 깊은 수렁속에서 꺼내드릴수 없을거 같아...아씨를 구하는길이라고 생각하고 저지른짓입니다.’ 아씨는 내게 시키는대로 다 할테니 목숨만 살려달라 울며불며 빌더군 나는 미리 준비해온 마대자루를 하나 갖고와서 아씨의 입과 손발을 묶은뒤 마대자루 안으로 들어가시라고 했다 아씨가 궁금해서 ‘어쩌려고 이러는것이냐 ?’고 물었고 나는 다정스레 아씨손을 잡으며 말했다 ‘아씨와 저 우리 둘만이 함께할 수 있는 우리만의 낙원으로 찾아가는겁니다’ ‘아아~~~!!! 이 얼마나 끔찍한 학살극인가 !!! 게르니카의 학살도 이보다 더 전혹하진 못했으리~~~’ 80년대 민중시인 고 김남주씨가 5.18을 소재로 썼다는 시의 싯구 한줄이라도 삽입하면 어울릴 것 같은 한 장면이라고나 할까 수호지에 나오는 무송이란 친구는 자신을 모함하여 누명을 씌워 죽이려한 고관대작의 식솔들 17명을 살해한거지만 솔직히 난 그보다 훨씬 명분이 적다는 것 인정한다 사실 아씨 시댁식구들이 나한테 무슨 해꼬지를 한것도 아니고 심지어 그집 하녀들은 무슨죄며 나이어린 첩실 딸들까지... 게다가 과수원 만돌이형과 억쇠는 한때 나랑 호형호제 말동무하며 심지어 아씨 시댁네 이런저런 근황을 알려주기까지 한 은인이기도 한데.... 그리고 솔직히 1930년대니까 가능한 범죄이 요즘같으면 어림도 없다. 대번에 목격자가 전화로 신고해버려 경찰차 출동하면 끝이지만 그 시절엔 경찰도 무슨 특별한 차량같은게 없던때라 신고를 받는다 하더라도 무작정 달려오는수밖에 없기에 그 걸리는 시간이 있고 또 부잣집이 일반적으로 일반인들 민가와는 거리가 다소 떨어져 위치해있음을 감안하면...그래서 더더욱 목격자가 발생할 위험이 적고 CCTV나 스마트폰 같은게 존재하기 훨씬전의 일이니 가능했던일이라고 본다 나는 아씨를 마대자루에 넣고 기차역으로 향했다 아씨와 함께 정처없는 끝없는 여행을 떠나기위해 사실 이것 역시 이 시절이니까 가능한일이다 근본적으로 농사짓는 사람이 많던 시절이니 그냥 누가 농산물 같은거 가득 넣어서 어디 팔러가나보다 그 정도로 생각하겠지 허나 요즘 도시 한복판에서 누가 저러고 다닌다면 대번에 의심을 살 터... 결정적으로 아씨가 날 믿고 조용히 있어 협조해 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OO역에서 기차를 타고 목적지도 정하지 않은 정처없는 여행을 떠났다. 일제때니 남북분단도 되기전이니 기차타고 만주쪽으로 가는것도 가능하고 솔직히 극단적으로는 아예 진짜 시베리아 벌판 지나 유럽까지라도 가볼까 그 생각까지 하고 시작한 기차여행이다 아씨와 함께... 아, 참 그러고보니... 하필이면 아씨의 신랑만...운이 좋은것인지 서울에 공부하러 떠나서 집에 없는 상태라 화를 면할수 있었네 그래서 난...아씨의 부탁으로 마지막 17번째 살인극을 벌이기로 했다. 일단 우리고향 기차역에선 거리가 좀 있는 역까지 가서 - 이때쯤엔 이미 시간이 한참 지났을떄니 아무리 1930년대 교통 불편한 시골마을이라도 이미 난리가 났을터이니 고향에선 거리가 좀 많이 떨어진 기차역에서 내려 일단 인근 시장에서 인삼을 샀다. 독약도 샀다 그리고 ‘꿀에 잰 인삼’이 아니라 독약을 잔뜩 바른 인삼을 소포에 정성껏 쌌다. 마치 도련님 어머니가 객지에서 고생하는 아들에게 보내는 선물인양 편지도 그리 길지는 않게 짧고 간단명료하게 대신 객지에서 고생하는 아들 걱정하는 모정이 잔뜩담긴 문장으로 ‘우리아들에게 보내는 선물’이라며 아씨 시어머니 이름과 함께 편지 필적은 아씨가 적당히 위조해서 써넣었고 도련님 서울 주소는 아씨가 아니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인근 우체국으로 가서 소포를 서울 도련님한테 보냈다 다만... 17번째 살인극은 내 눈으로 당사자의 사망을 직접 확인할수 없어서 그게 유감이다 그것도 사실상 주인공격인 아씨 신랑한테 보낸건데... 아무리 1930년대라도 시골마을과 달리 서울 한복판에서 그런 살인극을 벌이는 것은 위험하기에 소포만 보내고 그대로 아씨와는 다시 정처없는 기차여행을 시작하기로 했다 도련님이 죽을 팔자라면 그 소포를 받아 정말로 당신 어머니가 보낸걸로 알고 감사히(?) 받아먹을것이고 아직 죽을 운명이 아니라면 안 먹게 되겠지 뭐... 어쨌든 그것만은 일단 하늘에 맡기고 그렇게 아씨와의 정처없는 기차여행을 떠났다 (* 아, 참 비용은 어떻게 마련했냐면 애초에 집을 나와 아씨집으로 갈 때 살인극에 성공하든 실패하든 난 마을을 떠날 생각이었기에 집에서 적당히 여비를 챙겨왔고 아씨 시댁인 박사장집에서 살인극을 다 마친뒤에도 돈이 부족할수도 있겠다 싶어 박사장네 돈도 소량이나마 좀 슬쩍했다 불가피한 일이었다. 그리고 돈은 아씨를 넣은 마대자루에 함께 넣었기에 기차역에 당도할때까지 들키지 않을수 있었고 무엇보다 아씨가 날 믿고 내 일에 잘 협조해주었기에 성공할수 있었던 완전 범죄였다...) 기차가 어둠을 헤치고 은하수를 건너면~~~ 이렇게 나갈 수 있는 분위기는 분명 아니고... 난 아씨와 함께 머나먼 기차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왜정때니 남북분단은 되기전 따라서 북한땅이든 중국이든 소련땅이든 심지어 아예 더 화끈하게 시베리아 건너 유럽가지도 기차타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갈 수 있는 시대니 (* 이미 말했지만 돈은 충분히 챙겨가지고 나왔다) 아씨와 함께 우리 둘만의 보금자리를 마련할수 있는곳이라면 어디든 갈 작정으로 있다 내 고향 OO고을엔 17인의 피비린내나는 살육극을 남겨둔채로 언제쯤 다시 돌아올수 있을까 언제쯤 나의 이후 소식을 전할길이 있을까 일단 그렇게 끔찍한 살육극을 저지르고 떠나는거니 당분간은 조선땅으론 돌아오지 못한다고 봐야겠지 ? 시간이 아주아주 많이 흘러 통일된 다음이나 하다못해 동구 공산권이 망하고 중국이 개혁개방으로 나가 연변교포들과의 소통이 수월해지는 그런 시대가 오기전까진 사실상 나의 소식을 전할길은 없을 것이다 내가 잘했다고 하지는 않겠다 내가 잘난놈이라고 자랑하지도 않겠다 다만 난 어느어느 막장드라마의 사랑하는 여자친구를 위해선 그게 아무리 비상식적이고 비윤리적인 막장행각이라도 무엇이든 해줄수 있는것처럼 나오는 일일연속극 주인공처럼 나 역시 아씨의 행복을 위해 선택한 것이다 아씨를 지옥같은 그곳에서 질곡의 수렁속에서 꺼내주어 아씨를 행복하게 해주어 선택한 것이다 그 말만 전하고 싶다 잘 있거라 내 고장 OO고을... 어쩌면 이제 영원히 돌아갈수 없는곳이 될 그곳을 뒤로한채 나는 이렇게 아씨와 우리 둘만의 행복을 위한 머나먼 기차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일제시대에 있었던 일
나는 머슴이었다.
다만 오해할 것 같아 사전설명을 좀 덧붙여야겠는데
나는 정확히 일제 강점기인
1930년대에 젊은시절을 보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조선시대 양반,상놈 가리는 신분제도가 철폐된건
갑오경장이 있던 1894년
그러니 일제 강점기가 한참 진행중인 1930년대 기준으로도
이미 40년전 일이지
그러나 사람들의 습관이나 문화,가치관 이런것들이
제도가 하루아침에 바뀌었다고 확 바뀌는 것이 아니라
비단 1930년대뿐만 아니라...가령 1960-70년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만 보아도 나이많은 등장인물중엔
예전에 자신이 모시던 양반이나 이런 사람들을 만나면
‘마님’이니 ‘아씨’니 하는 호칭을 여전히 쓰는 것을 볼수있을정도로
그때까지만 해도 조선시대식 신분제의 잔재나 생활습관은
일정부분 남아있었다
그러니 그보다 한세대전인 1930년대라면
비록 제도적으론 양반,상놈 가리는 신분제도가 사라졌을지언정
그 시절의 문화나 인식은 많이 남아있던 시대로 봐야겠지
하지만 실제로 우리나라 양반가 대다수는
조선이 망하고 일제를 거치면서 몰락의 길을 걸었다고 보면 된다
내가...정확히는 우리집안이 대대로 일을보던 OO고을의 이진사댁도 마찬가지라
말이 양반가지 그때는 이미 자기네 끼니때도 연명하기 쉽지가 않은
그런 처지가 되어있었고
그리고 학교다닐 때 국사시간에 졸지만 않은 사람이라면
외거노비,솔거노비 하는 구분은 들어봤을 것이다
이중 솔거노비는 집안에 함께 살면서 일을보는 노비를 말하는것이고
외거노비는 가족과 따로나와 살면서 출퇴근하듯 양반집 일을 하는 하인을 말하는것인데
굳이 그런 개념구분이 이때쯤엔 무의미했을정도로
까놓고말해 하인들한테 새경도 제대로 못주는 가난한 양반댁에
계속 남아있을 하인이 누가 있겠다
그것도 어쨌든 공식적으론 이미 신분제 폐지된지 오래된 시대에
따라서 우리집의 경우에도 이미 사실상 외거노비나 다름없는 따로나와 사는 상태에서
아버진 오래전에 돌아오셨고 어머니가 삯바느질이라도 하시면서 생계를 유지하며
아들이라고 하나 있는 나만 보시며
그래도 이젠 양반,상놈 가릴것없이 학교가서 공부만 잘하면 출세할수 있는 시절이라니
우리 수만이 그저 좋은학교 나와 어여 출세해서
더 이상 양반집 노비,머슴소리 안 듣는 그런 멀쩡한 사람으로 자라기만 바라는
그런 시절을 살고 있었다
물론 나 역시 어엿이 읍내에 있는 중학교(지금의 고등학교나 마찬가지)를 다니며
어여 출세해 고생하시는 어머니 그만 호강시켜드려야지
그 일념으로 공부만 하던 그런 10대 시절을 보냈고
다만 두가지 그늘이 있었다면 그렇게 사는 나일지언정
주위에선 여전히 날 보면 ‘저거 아무개댁 머슴살이하던집 수만이 아녀 ?’
이런식으로 수군거리는 손가락질은 분명 존재했고
또 하나는...민망하고 무안하게도
주인집 아씨...정확이 이젠 더 이상 주인집 아씨라고는 할 수 없는
이진사어른댁 외동따님인 아씨를 짝사랑했던 것이다
아무리 신분제가 철폐되었고
머슴집 아들도 공부만 잘하면 출세할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지만
그래도 아직 신분제의 잔재가 많이 남아있는 시절에
그것도 생판 남도 아닌 적어도 아버지,어머니대에까진 분명히 모시던
양반댁인 이진사어른댁 따님을
내가 짝사랑하는 것은
실은 가당치도 않은일이었지...적어도 그 시절에는...
사실 우리때만 해도 다른 지역으로의 이동은 그리 쉽지 않던 시절이라
(* 기차나 전차 정도는 있었지만 오히려 지금의 택시나 시외버스 같은 기능을
하는 대중교통수단은 거의 전무하던 시절이니...어느정도 떨어진 지역까진 도보나
말을타고 가는 것 그 외엔 거의 방법이 없었지)
맘에드는 여자나 이성이 있어봐야 고작 가까운 동네처자 그 정도 수준이 될 수밖에 없었어
헌데 적어도 내 경우엔 그래도 어린시절부터 쭉 보고 살았던
사실 예전같으면 그냥 일개 머슴에 불과한 내가 모시는 주인집 따님인 아씨를
짝사랑한것이니 실로 가당찮은짓이지
법적으론 이미 신분제가 폐지되었으니 문제될 것은 없지만
사회통념적으로 아직 불가능한 짓이니...근데 알고보면 사실 이게 더 사람 환장하게
만드는거다 !!! - 아니 신분제가 폐지된게 언젠데 아직도 양반집딸과 결혼하면 안된다는
거냐 !!! 딱 이 억울함 생기기 좋은 상황인거아냐 !!!
무엇보다 어느덧 아씨도 혼기가 다 차가고
무엇보다 이진사댁은 몰락한 양반가라 가세가 날로 기우는 상황이라서
더 어려워지기전에 딸을 시집보낼 궁리를 하고 계셨다
아씨나이 그때 10대 후반(18-19세 정도)일때니 지금으로 치면 아직 학교다닐 나이지만
그 시절엔 오히려 늦었다면 늦은때지
여하튼 읍내에서 과수원과 정미소를 운영하는
그런 부자집인 박선생댁 외동아들에게 시집을 보낼 생각이었지
사실 박선생댁도 예전 사농공상(士農工商)식의 또다른 신분아닌 신분개념이 존재하던
시절엔 당치도 않은일이었지만...
이미 돈 많이벌면 양반이나 다름없는 대접받는 시대가 된지는 꽤 되었는지라
(* 조선 영,정조시대 이후로 신분제가 무너지면서 특히 장사로 돈번이들은 심지어 돈주고
가짜 족보를 사기까지 하면서 그렇게 양반이나 다름없이 행세했더라는 이야긴 다들 한번
씩 들어봤을거다)
여하튼 박선생댁은 과수원도 하고 정미소도 하는 그런 부작집이니
양반은 아니지만 사실상 양반행세 하고 다닌지 오래된 그런 집안인거지
허나 적어도 조선시대 통념상으로는
그런 뼈대있고 족보있는 이진사댁에서...그런 근본도 없이 돈만 많이번 천한 장사치한테
딸을 시집보낸다는 것은 굴욕이라면 굴욕이야
요즘의 통념이라면 여하튼 가난한집 외동딸이 여하튼 중소기업쯤은 하는 집안에
시집가게된 모양새니 대박은 아니라도 중박정도는 터진게 분명하지만
그 시절엔 적어도 뼈대있는 몰락한 양반가문이 천한 장사치 집안에 딸 시집보내는거
진짜 굴욕인거다
나는 진짜 아픈 가슴을 쥐어짤 수밖에 없는 시간이 될 수밖에 없었지
그래도 아직까지는...아씨를 가슴에 품는다는게 사회통념상으론 문제가 되어도
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될게 없는 상황이지만
이제 시간이 얼마 더 지나 아씨의 그와같은 혼사가 이뤄지면
이제 법적으로도 사회통념적으로도 모두 문제가 되는 일이니
아픈 가슴이 더더욱...그 고통이 미어질 수밖에...
동네사람 모두 아씨의 혼사를 경축하는데
나혼자 동구밖에서 혼자 피눈물 삼킬 수밖에 없는
그런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어
다만...그래도 울 엄니와 같이 이진사댁 하녀노릇 하던 시절부터
(* 근데 까놓고 말해 외거고 솔거고 나발이고 간에 하인노릇을 더 이상 안하면
그냥 이웃주민이지 더 이상 머슴이 아닌거다. 무슨말인지 알간 !!!)
성님,동상 하던 가천댁 아주머니란 분이 계셔서
나도 이모님이나 다름없이 여기던 분이었는데
그 가천댁 아주머니가 막걸리 한잔 사주시며 위로를 해 주시더라
‘그만 아씨는 잊어버려라. 그리고 수만이 니도 효성 지극하고 성실한 몸이니
어찌 하늘이 무심하리냐. 머지않아 니한테도 좋은 배필이 생길터이니
아씨는 그만 마음에서 지우라 하더라’
여하튼 아씨는 그렇게 강건거 마을인 OO 고을에
과수원하고 정미소 하는 박선생 집으로 시집을 갔던거지
사실 난 박선생 집안에 대해 대충은 알고 있었어
어차피 그 시절 시골마을은 다 거기서 거기니까 물어물어 한두계단만 넘어가면
어느집 누구네가 식구가 몇이고 어찌 사는지 정도는 다
소문처럼 알수있던 시절이니까
그리고 난 사실 이따금 등하교길에
대충 아씨 혼사말이 나오던 무렵부터
아씨 혼담이 나오고 있다는 박선생네를 이따금 기웃거리며
어떤집인지 좀 알아보려 했거든
(요즘식으로 말하면 완전 스토커에 신상털이짓을 한거지 모...)
일단 아씨가 시집갈 집에는...
나이 칠순을 넘긴 노마님이 계셨고
나이 40대 후반 정도의 박선생 부부
그리고 아씨가 시집을 가게될 상대인
역시 나이 17-18세 정도 된 그 집 박선생댁 아들인 청년
그리고
대개 돈많은 남자들이 그러하듯이 박선생도 바람기가 좀 있어서
첩실이 둘이나 있더군...그중 하나는 이미 첩실로 들어앉은지가 꽤 되어서
어느덧 박선생과 사이 열 살남짓한 딸을 둘을 낳았고
그것도 모자라 박선생은 최근에 스무살도 채 안된 어린 이웃집 여자애를 또 건드려
새로 첩을 들였다더군. 그리고 그 새 첩실은 지금 임신중이라 하더라
현재 박선생은 그 스무살도 채 안된 새 어린첩실한테 푹 빠져 어쩔줄 모르고 있고
다만 집안 분위기는...그래도 아직은 정실인 그집 본부인이 꽉 붙잡고 있는 분위기더군
뭐 이것도 대략 하늘의 도우심이라면 도우심인지
적어도 가부장 중심에 ‘대를 이을 아들은 있어야 한다’는 그런 가치관들이
하늘가득한 시절에
그래도 정실부인은 아들을 하나 낳았고 첩은 딸만 둘을 낳았으니
아들낳은 정실부인이 충분히 시어머니 한테도 며느리 대접 제대로 받으며
그 집에서 큰소리 치며 다닐수 있는 실권자가 될수 있었던거다
- 진정한 반전은 아씨가 시집가면 그분이 시어머니가 된다는 소리지. -.-;;;;
그리고 그 외 식솔로는 마름 또는 청지기라고도 보통 부르는
오서방이란 집안일을 보는 집사격인 하인
그리고 부엌일을 보는 용인댁과 점례와 끝순이란 젊은 하녀
그리고 과수원 일을 보는 하인 3인방이 있는데
이 과수원 3인방은 나하고도 원래 호형호제하며 친분이 있는 사이였어
내가 아씨가 시집갈 집안의 정보를 알아낼수 있었던것도 다
이 과수원 3인방 덕분이었으니까
한녀석은 억보란 녀석으로 이름처럼 진짜 억세고 힘만 센 우직한 녀석이고
만돌이란 녀석은 반대로 체구는 마른편이지만 잔머리와 잔꾀를 잘부려서
사실상 내가 아씨네집 안사정을 속속들이 일수 있었던것도 다 이 만돌이 녀석
협조가 있었던 덕분으로 봐야할정도로
또 하나는 철수란 녀석으로 억보나 만돌이보다 상대적으로 어린 아이였는데
나이도 어리지만 어릴 때 사고로 뇌를 다쳐 좀 덜떨어진데가 있지만
그래도 형님뻘인 억쇠나 만돌이가 일 시키면 고분고분하는
좀 덜떨어졌지만 성정은 착해보이는 그런 녀석이었지.
아씨가 시집을 간 이후로도 난
억보나 만돌이를 통해 아씨의 소식은 간간히 들을수 있엇지
그리고 그 내용은 대충 짐작했던것보다 훨씬 더 말이 아니더군
일단 70 넘은 그 집 시할머니는 이미 치매증상이 온지 오래라
특히 아침만 되면 때때옷입고 집안 어른들게 세배드리러 간다고
생 난리를 쳐서 가족들을 힘들게 만들고
시아버지는 뭐 대체로 여전히 과수원과 정미소일에 열심히시지만
집안에선 이미 정실부인은 외면하고 나이어린 첩실에게 푹 빠져있어
시아버지 첩들은 심지어 자신들도 아씨한테 시어머니 행세한답시고
오만가지로 괴롭힌다더군
딸 둘을 낳은 이미 중년 아줌마가 된 첩은 물론
최근에 아이를 배어 새로 들였다는 나이어린 첩까지
어이없게 아씨 앞에서 시어머니 행세를 한다는게야
아씨 입장에선 그야말로 시어머니를 셋이나 모서야 하는
어이없는 상황이 벌어진게지
사실 그중에서도 절정은 그래도 집안에서 여전히 실권자인
시어머니. 시아버지한테도 아들낳은 정실부인이기도 하지만
그래서...사실상 모든 시집살이의 근본은 이 시어머니에게서 시작되는거니까
사실 이런 분위기에서
신랑이라도 좀 색시를 감싸주면 그런대로 견딜수도 있는데
어느덧 중학교(지금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할 나이가 된 이 신랑은...
아마 원치않는 결혼이었는지...심지어 신혼 첫날에도 제 친구들이랑
술먹고 밤늦게 들어와 신부를 독수공방 시켰다는게야
헌데 이건...사실 이 시절...30년대 젊은 남자들의 정서는 좀 이해할필요가 있는게
사실 이보다 한세대전인 한마디로 20세기 초엽만 되었어도
집안에서 짝지워주는 결혼을 그게 다 운명이고 사는모습이라 생각하고
순종하며 받아들이고 살았을텐데
1930년대 정도면 어느정도 사는집 청년들이야
이미 신교육 다 받고 일본이나 서양을 통해 들어오는 온갖 선진문물,선진문명에
한참 눈돌아갈 그런 나이지
무엇보다 서울 올라가 신교육 받으며 공부하면
비슷한 또래의 그리고 이야기도 잘 통할 것 같은 젊고 이쁜 신여성들을
무진장 만날 수 있는데...원하지도 않았던 10대 후반 나이에
집안끼리 짝지워저 결혼시켜준 아씨가 눈에 들어오겠나
차라리 신랑이 어디 바람이라도 피우거나 걸핏하면 폭행이라도 하는
그런 사람이었다면 그런식으로라도 신랑욕을 하며 하소연을 할텐데
사실 제3자가 볼 때 아씨의 신랑은 그런대로 공부도 잘하고
부모님께 효성도 그런대로 지극하고 뭐 하나 흠잡을데없는 그런 청년이라는거야
근데 이게 사실 사람 더 환장하게 만드는거다
차라리 대놓고 바람을 피운다던가 폭력을 쓴다던가 이런거면 몰라도
애초에 제 색시한테 관심이 없어 일부러라도 밖으로 나도는 것
(* 꼭 여자때문만 아니더라도 공부핑계든 일핑계든 밖으로 나돌 핑계는 대면
얼마든지 댈수 있는거니까)
어쨌든...아씨와 결혼한지 얼마 안가서(합방도 하지 않은채) 서울로 올라간 그댁 도련님
서울에서 공부하는데 바쁜지 뭐가 그리 바쁜지 아씨한텐 소식한장,편지한장 없고
아씨는 정작 신랑은 서울간 사이에 집에 혼자 남아 온갖 시댁식구 수발이며 구박이며
오만 것 다 받으며 속울음만 삼켜야하는
그런 시간이 계속되었던거지
한 1년정도의 시간이 지났어
사실 아씨보단 그보다 앞서 우리집에 먼저 변동사항이 있었는데
그 사이 우리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젊은시절 고생을 많이 하신 탓인지(일찍 아버지 즉 당신 남편이 돌아가신거니까)
아직 연세 40을 좀 넘은 아직은 한참 나이라면 나이지만
사실 1-2년전부터 지병으로 고생하시다 돌아가셨어
(* 그리고 이 시절 40-50대면 지금 60-70대쯤으로 봐야하는거다. 이 시절 60-70대면
지금 80넘은 노인과 하나 다름없는걸로 봐야하는거고)
그러니 그 정도 나이때 돌아가신 어머니
사실 이때도 여하튼 웬만하면 60-70까지 살던 시절이니 40 조금 넘겨 세상 떠나신거면
아직 한창 더 사셔도 되는 나이에 일찍 돌아가시긴 한건데
여하튼 그렇게 어머니마저 돌아가시고 난 세상에 혼자 남은채로
여전히 간간히 과수원 만돌이형과 억쇠한테 아씨 소식을 들으며
그렇게 살았던거지
사실 난 견딜수가 없었어. 어쨌든 한동안 내가 마음에 품었던 아씨
그런 집안에 시집가서 시댁식구들은 물론 심지어 시아버지 첩들한테까지
오만 구박,수모,설움 다 당하고 게다가 신랑이라는 남자는 자기한테 눈길한번 안주고
심지어 오늘이 설인지 추석인지 봄인지 여름인지도 구분할지 모르는
치매걸린 노 시할머니 수발까지 하며 오만고생하는 아씨의 모습...
아씨를 그 지옥의 수렁에서 내가 꺼내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머니만 살아계셨어도 내가 병든 그리고 아들하나 출세하는것만 바라보며 사시던
어머니를 생각해서라도 내가 참았을텐데
이미 어머니까지 돌아가시고 세상에 나 혼자뿐이니
더 이상 거리낄게 뭐가 있으랴 그 생각을 했다.
나는 낫과 몽둥이를 들고 우선 시할머니 방으로 달려들어가
병으로 몸져 누워있는(* 치매 때문에 아침에는 때떄옷입고 성묘가야 한다, 차례지내러
가야한다 난리치는 노인이긴 하지만) ① 시할머니의 등뼈부터 꺾어 쓰러트렸다
그리고 무슨소린가 놀라 달려온 ② 시아버지(박선생 또는 박사장)와 ③ 시어머니를
낫으로 찔러 죽였고, 역시 놀라서 달려온 ④ 청지기 오서방 역시 마찬가지 방식으로
해치웠다. 사실 청지기 오서방은 덩치도 좀 있고 소싯적엔 힘도 좀 쓰던 사람이라
들었는데, 하지만 이땐 이미 나이 50을 넘긴데다가 워낙 창졸간의 일이라
맥없이 고꾸라지더라. 난 청지기 오서방의 시체를 우물에 던져버렸다
이어 부엌일하는 하녀들
이때는 마침 식구들 아침식사가 다 마무리된 시간이라
한참 부엌에서 설거지 하는데 여념이 없는 ⑤ 용인댁 아주머니와
⑥ 점례 그리고 ⑦ 끝순이까지 모두 해치워버렸지
하녀 3인방 시신은 그대로 부엌에 널려지게 되었고
그 다음 타겟은 정실도 아닌 첩실인 주제에 우리 아씨 괴롭힌다는
첩년 가족들...마침 별채에는 박사장 첩이 이제 막 소학교(지금의 초등학교) 다니는
두 딸과 아침식사를 마치고 학교갈 아이들 배웅을 하던 중인데
⑧ 그 첩실(40대)과 ⑨,⑩ 소학교 다닌다는 두 딸까지
모두 해치워버렸지
그 다음엔 아직 나이 어리다는 박사장의 마지막 새끼첩
아씨 시집갈 무렵에 임신중이었다는 그 새끼첩은
출산한지 얼마되지않아 아직 생후 몇 개월 정도된 제 아기와 함께
다른 별채에 있더군
그래서 그 ⑪ 새끼첩까지 해치워버렸다. 다만 그 새끼첩이 낳았다는 갓난아기까진
차마 처단을 할 수가 없어 살려두고 나왔다.
사실 이제 진짜 난코스가 남았는데
바로 과수원 3인방 억쇠,만돌이,철수...게다가 덜떨어진 철수도 그렇거니와
억쇠와 만돌이형은 사실 지금껏 나랑 호형호제하면서 특히 아씨 시댁에 대한
이런저런 정보를 쭉 알려준 은인이고 친군데...은혜를 원수로 갚는 격이라
그렇긴 하다만...난 물불가를 겨를이 못되었어
무엇보다 이들이 당장 주재소(지금의 경찰서)로 달려가 신고라도 해버리면
큰일 아닌가. 따라서
지금까지 정리를 무릎쓰고 게다가 지금까진 모두 힘없는 노인이나 여성,나이든 아저씨
이런 사람들이었지만...이젠
힘 쓰는 장정 셋을 나혼자 상대해야하는 진짜 힘든 난코스가 남은거지
일단 소란을 듣고 달려온 과수원 하인 3인방
그 피비린내나는 살육현장에 이미 질려있었고
난 일단 그들을 유인해내기위해 달아나는척 집을 나와 과수원쪽으로 달렸지
그러자 우선 그 덜떨어진 ⑫ 철수X이...
‘도둑이야 !!! 도둑잡아라 !!!’ 하며 달려오는거야
(X신아 !!! 도둑이 아니고 잔혹한 살인범이다 !!! 그것도 연쇄살인마 !!!)
어쨌거나 날 도둑(?)이라며 달려오는 덜떨어진 철수를 먼저 나꿔채
해치워버린뒤 배나무숲 저쪽으로 던져버렸고
그 다음엔 힘센 ⑬ 억쇠가 무식하게 무작정 몽둥이를 들고
식식거리며 달려오는거야
난 녀석의 힘을 최대한 빼놓을 요랑으로 과수원 나무 뒤 여기저기로
숨어 돌아다니며 억쇠가 최대한 힘이 빠질때까지
요리조리 잘 피해 돌아다녔지
그리고 마침내 힘이 다 빠진 억쇠가 대충 인근 과일나무 근처에서
지쳐 쓰러져 숨을 돌리며 쉬고 있을 때
그때 숨겨놓은 낫을 들고 뒤에서 달려가
단번에 억쇠녀석 모가지도 잘라버렸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⑭ 만돌이형
3인방중 덩치는 제일 작지만 잔꾀 잘부리고 잔머리 잘굴리는 형
무엇보다 그 잔머리로 박사장댁 이런저런 정보를 모두 내게 전해주었던
고마운...형...
만돌이형은 일단 무식하게 덤벼들어선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는지
저만치 떨어져 웃는얼굴로 마치 이리 오라는 듯 손짓하며 이렇게 말하더라
‘수만아...왜 그래 ? 진정하고 우리 조용히 말로하자. 형한테 와. 우리 조용히
이야기나 좀 해보자니까. 우리 원래 이런 사이 아니잖아. 그러니 이리와봐.
착하지 수만아. 형이라니까...이리 와봐 수만아...’
허나 나도 그 잔머리 대장의 잔꾀에 안 넘어갈 머리정도는 있기에
쉬이 넘어가지 않고 여전히 낫과 몽둥이를 손에 든채 몇발자국 떨어진 상황에서
대치하는 형국이 되었지
난 일단 만돌이형이 주재소로 달려가 신고하는걸 막아야했기에
대치하는척 하면서 조금씩 방향을 틀어 방향을 반대쪽으로
주재소로 달려갈수 있는 방향이 아닌 과수원 담벼락쪽이 있는곳으로
만돌이형을 몰려고 했어
물론 만돌이형도 그 정도 수법은 충분히 눈치챌만한 사람이라
‘수만아...왜 그래 ? 이쪽은 길 없는거 너도 알잖아. 그치 ? 그러니...
형하고 이야기나 좀 해보자니까...’
이런식으로 날 계속 말로 설득해 안심시키려 하면서
도망갈 기회든 날 제압시킬 기회든 그걸 엿보는 것 같더라
허나 내가 한발 빨랐어.
마침 저쪽에 아까 억쇠와의 추격전(?)때 얼핏 구덩이 비슷한곳 하나를
본게 있어 대충 함정 비슷한 역할을 할수 있겠다싶어
그쪽으로 유인해냈지. 만돌이형이 달려드는순간
살짝 피했고...사실 이런 구덩이 같은 함정이 있을거라는건
당연히 원래 과수원 하인인 만돌이형이 더 잘 알텐데
상황이 급박해서 그걸 판단 못했는지 맥없이 구덩이속으로 빠져버리더라
난 구덩이에 빠진 형을
영원히 나오지못하도록 그 자리에서 암매장을 시켜버렸지
아직 끝난건 아니야
아씨 시댁식구들이며 하인들은 모두 처치했지만
일종의 객식구라고나 할까...
같이 한집에 사는건 아니지만 식구나 다름없이
매일은 아니더라도 2-3일에 한번은 꼭 드나드는 이가 두명정도 더 있어
그중 하나는 아씨 시아버지인 박사장 ⑮ 첩의 동생으로
꼴에 그래도 처남(?)이라고 거의 매일같이 이 집에 드나들며
제 누나한테 노름빚이며 술값이며 용돈 받아가듯 타가는이가 하나 있는걸로 알고있어
나도 그 친구에 대해선 대충 들어 아는게 있는데
보통 평상시엔 읍내에서 술마시고 노름하고 그러며 돌아다니는
흔한 건달이더군. 근데
다섯 살 차이나는 손윗누나가 그 유명한(과수원,정미소) 박사장 집에 첩으로 들어갔다니까
이 집이 진짜 제 매형집이라도 되는양 드나드는거야
(* 동생인데도 이 지경인데 오래비면 어쩔뻔했냐 ? 그야말로 이 집 주인 손윗처남 행세하며
아씨한테까지 오만 갑질 다했을거아냐 !!!)
사실 나도 면식이 없는 청년은 아니고 사실 좀 꺼림칙하긴 했는데
오늘같은날 찾아오는일은 없길 바랬는데 아니나 다를까
집으로 들어가보니 그 첩실 동생은
용돈받으러 누나한테 왔다가 용돈은커녕 누나며 조카 둘 전부
그 지경이 된걸보고 기겁해있더군
그때 나와 눈이 마주쳤고
난 첩실 동생도 저 세상으로 보내주는수밖에 없었지
그리고 마지막 또 한사람
이건 좀 사연이 있는데 아씨한테는 시이모님이 되는분이야
그러니까 아씨 시어머니가 그분 친정에선 8남매중 막내인데
큰언니와 스무살 가까이 나이터울이 지고 게다가 어린시절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큰언니가 사실상 동생들을 자식처럼 거두다시피하며
생계를 이어갔다더군 동생들 다 시집,장가 보낼때까지
게다가 공교롭게도 이댁 시할머니와는 고향에서부터 ‘성님,동생’하며 아는사이였다 하더군
사실 아씨 시어머니가 시집갈땐 그 시이모님도 나이가 40 거의 다 되었을텐데
그런식으로 어찌어찌 알고 지내는 고향언니네 아들한테
자기 막내동생을 시집보낸격이라고나 할까
그러니...아씨 시어머니한테는 큰언니고
시할머니한테는 고향 후배니
이 집에서 충분히 할소리,못할소리 다하며 큰소리 뻥뻥칠 수 있는
일종의 아웃사이더형 권력자라고나 할까
이야기가 잠깐 곁길로 샜지만 그렇게 아씨 시댁의 또다른 아웃사이더 권력자
시어머니에겐 큰언니고 시할머니에겐 고향동생인 ⑯ 시이모님...
역시...매일같인 아니더라도 2-3일에 한번은 이 집에 드나드는 사람
그러니 오늘같은날 웬만하면 안 들르길 바랐는데...이 노인도 죽을자리를 찾았는지
역시 들어와서는 기겁해있더군
이미 피비린내 자욱해있는 동생(아씨 시어머니)네 집 광경에
그렇게 집안에 들어서서는 기겁하는 시이모의 모습을 내가 목격했고
미안하지만 역시 바로 달려들어서
이미 막내동생(아씨 시어머니)과 고향언니(아씨 시할머니)가 몇분 먼저 떠나간곳으로
뒤따르게 해줄 수밖에 없었다
아씨는 그때까지 아씨 방에서 겁에질려 울고 있더군
아씨에게 바로 달려들어가서는 이렇게 말다
‘아씨...다 아씨를 지옥에서 꺼내드리고자 저지른일입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아씨를 이 깊은 수렁속에서 꺼내드릴수 없을거 같아...아씨를 구하는길이라고 생각하고
저지른짓입니다.’
아씨는 내게 시키는대로 다 할테니 목숨만 살려달라 울며불며 빌더군
나는 미리 준비해온 마대자루를 하나 갖고와서
아씨의 입과 손발을 묶은뒤 마대자루 안으로 들어가시라고 했다
아씨가 궁금해서 ‘어쩌려고 이러는것이냐 ?’고 물었고
나는 다정스레 아씨손을 잡으며 말했다
‘아씨와 저 우리 둘만이 함께할 수 있는 우리만의 낙원으로 찾아가는겁니다’
‘아아~~~!!! 이 얼마나 끔찍한 학살극인가 !!!
게르니카의 학살도 이보다 더 전혹하진 못했으리~~~’
80년대 민중시인 고 김남주씨가 5.18을 소재로 썼다는 시의
싯구 한줄이라도 삽입하면 어울릴 것 같은 한 장면이라고나 할까
수호지에 나오는 무송이란 친구는
자신을 모함하여 누명을 씌워 죽이려한 고관대작의 식솔들
17명을 살해한거지만
솔직히 난 그보다 훨씬 명분이 적다는 것 인정한다
사실 아씨 시댁식구들이 나한테 무슨 해꼬지를 한것도 아니고
심지어 그집 하녀들은 무슨죄며
나이어린 첩실 딸들까지...
게다가 과수원 만돌이형과 억쇠는 한때 나랑 호형호제 말동무하며
심지어 아씨 시댁네 이런저런 근황을 알려주기까지 한
은인이기도 한데....
그리고 솔직히 1930년대니까 가능한 범죄이
요즘같으면 어림도 없다. 대번에 목격자가 전화로 신고해버려
경찰차 출동하면 끝이지만
그 시절엔 경찰도 무슨 특별한 차량같은게 없던때라
신고를 받는다 하더라도 무작정 달려오는수밖에 없기에 그 걸리는 시간이 있고
또 부잣집이 일반적으로 일반인들 민가와는 거리가 다소 떨어져 위치해있음을
감안하면...그래서 더더욱 목격자가 발생할 위험이 적고
CCTV나 스마트폰 같은게 존재하기 훨씬전의 일이니
가능했던일이라고 본다
나는 아씨를 마대자루에 넣고
기차역으로 향했다
아씨와 함께 정처없는 끝없는 여행을 떠나기위해
사실 이것 역시 이 시절이니까 가능한일이다
근본적으로 농사짓는 사람이 많던 시절이니 그냥 누가
농산물 같은거 가득 넣어서 어디 팔러가나보다 그 정도로 생각하겠지
허나 요즘 도시 한복판에서 누가 저러고 다닌다면 대번에 의심을 살 터...
결정적으로 아씨가 날 믿고 조용히 있어 협조해 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OO역에서 기차를 타고
목적지도 정하지 않은 정처없는 여행을 떠났다.
일제때니 남북분단도 되기전이니 기차타고 만주쪽으로 가는것도 가능하고
솔직히 극단적으로는 아예 진짜 시베리아 벌판 지나 유럽까지라도 가볼까
그 생각까지 하고 시작한 기차여행이다
아씨와 함께...
아, 참 그러고보니...
하필이면 아씨의 신랑만...운이 좋은것인지
서울에 공부하러 떠나서 집에 없는 상태라
화를 면할수 있었네
그래서 난...아씨의 부탁으로
마지막 17번째 살인극을 벌이기로 했다.
일단 우리고향 기차역에선 거리가 좀 있는 역까지 가서
- 이때쯤엔 이미 시간이 한참 지났을떄니 아무리 1930년대 교통 불편한
시골마을이라도 이미 난리가 났을터이니
고향에선 거리가 좀 많이 떨어진 기차역에서 내려
일단 인근 시장에서 인삼을 샀다. 독약도 샀다
그리고 ‘꿀에 잰 인삼’이 아니라 독약을 잔뜩 바른 인삼을
소포에 정성껏 쌌다.
마치 도련님 어머니가 객지에서 고생하는 아들에게 보내는 선물인양
편지도 그리 길지는 않게 짧고 간단명료하게
대신 객지에서 고생하는 아들 걱정하는 모정이 잔뜩담긴 문장으로
‘우리아들에게 보내는 선물’이라며 아씨 시어머니 이름과 함께
편지 필적은 아씨가 적당히 위조해서 써넣었고
도련님 서울 주소는 아씨가 아니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인근 우체국으로 가서 소포를 서울 도련님한테 보냈다
다만...
17번째 살인극은 내 눈으로 당사자의 사망을 직접
확인할수 없어서 그게 유감이다
그것도 사실상 주인공격인 아씨 신랑한테 보낸건데...
아무리 1930년대라도 시골마을과 달리 서울 한복판에서
그런 살인극을 벌이는 것은 위험하기에
소포만 보내고 그대로 아씨와는 다시
정처없는 기차여행을 시작하기로 했다
도련님이 죽을 팔자라면 그 소포를 받아 정말로 당신 어머니가
보낸걸로 알고 감사히(?) 받아먹을것이고
아직 죽을 운명이 아니라면 안 먹게 되겠지 뭐...
어쨌든 그것만은 일단 하늘에 맡기고
그렇게 아씨와의 정처없는 기차여행을 떠났다
(* 아, 참 비용은 어떻게 마련했냐면 애초에 집을 나와 아씨집으로 갈 때
살인극에 성공하든 실패하든 난 마을을 떠날 생각이었기에 집에서 적당히
여비를 챙겨왔고 아씨 시댁인 박사장집에서 살인극을 다 마친뒤에도
돈이 부족할수도 있겠다 싶어 박사장네 돈도 소량이나마 좀 슬쩍했다
불가피한 일이었다. 그리고 돈은 아씨를 넣은 마대자루에 함께 넣었기에
기차역에 당도할때까지 들키지 않을수 있었고
무엇보다 아씨가 날 믿고 내 일에 잘 협조해주었기에
성공할수 있었던 완전 범죄였다...)
기차가 어둠을 헤치고 은하수를 건너면~~~
이렇게 나갈 수 있는 분위기는 분명 아니고...
난 아씨와 함께 머나먼 기차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왜정때니 남북분단은 되기전 따라서
북한땅이든 중국이든 소련땅이든 심지어 아예 더 화끈하게
시베리아 건너 유럽가지도
기차타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갈 수 있는 시대니
(* 이미 말했지만 돈은 충분히 챙겨가지고 나왔다)
아씨와 함께 우리 둘만의 보금자리를 마련할수 있는곳이라면
어디든 갈 작정으로 있다
내 고향 OO고을엔 17인의 피비린내나는 살육극을 남겨둔채로
언제쯤 다시 돌아올수 있을까
언제쯤 나의 이후 소식을 전할길이 있을까
일단 그렇게 끔찍한 살육극을 저지르고 떠나는거니
당분간은 조선땅으론 돌아오지 못한다고 봐야겠지 ?
시간이 아주아주 많이 흘러
통일된 다음이나 하다못해 동구 공산권이 망하고 중국이 개혁개방으로 나가
연변교포들과의 소통이 수월해지는 그런 시대가 오기전까진
사실상 나의 소식을 전할길은 없을 것이다
내가 잘했다고 하지는 않겠다
내가 잘난놈이라고 자랑하지도 않겠다
다만 난 어느어느 막장드라마의 사랑하는 여자친구를 위해선
그게 아무리 비상식적이고 비윤리적인 막장행각이라도
무엇이든 해줄수 있는것처럼 나오는 일일연속극 주인공처럼
나 역시 아씨의 행복을 위해 선택한 것이다
아씨를 지옥같은 그곳에서 질곡의 수렁속에서 꺼내주어
아씨를 행복하게 해주어 선택한 것이다
그 말만 전하고 싶다
잘 있거라 내 고장 OO고을...
어쩌면 이제 영원히 돌아갈수 없는곳이 될 그곳을 뒤로한채
나는 이렇게
아씨와 우리 둘만의 행복을 위한
머나먼 기차여행을 떠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