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비 청구가 전부 정의(Justice)는 아니다 1화

그냥살아2022.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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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화. 나의 친모는 나의 친부에게 양육비를 청구했다.



이것이 내가 쓰는 글의 시작이다.


나는 몇개월 전, 생일이 지나서 만 27세가 되었다. 현재는 일본에서 대학원에 재학 중이며, 일본 생활을 한지는 약 9년이 되어가고 있다.


나는, 이혼 가정의 장녀이고, 6살 차이의 여동생과 8살 차이의 남동생이 있다.

나의 두 동생들은, 부모님의 이혼 소송 전 별거 생활 때 외갓집으로 들어간 후, 쭉 그곳에서 살아왔고, 나는 고등학교 2학년 2학기에 접어들 즈음, 큰외삼촌과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의 난폭한 언행과 굶김, 그리고 나를 낳아준 그녀의 무신경함이 만연한 환경을 견디지 못하고 도망 나왔다.


나를 낳아준 그녀는 나를 지켜주지 않았고, 욕설을 퍼붓는 큰외삼촌의 행동에 대해 “너무 힘들어서 그러니 너가 좀 참아라”라는 날카로운 화살을 쏘아왔다. 큰외삼촌은 나와 내 동생들에게 아빠의 험담을 늘어놓았고, 꽤 일상적으로 욕설을 뱉어왔다. 나와 내 동생들은 그러한 환경에서 그 누구의 보호도 받지 못했다. 당시의 나에게는 아무것도 없었다. 동생들을 지킬 힘도, 나를 지켜줄 “엄마”도, 나를 사랑해줄 “어른”도.

그렇게 그 많은 화살들은 나와 내 동생들에게로 날아와서 착실하게도 상처를 입혀갔다.


이러한 생활을 견디지 못했던 나는, 결국 나를 어릴 때부터 아껴준, 일본에 있는 막내고모에게 전화를 했고, 이러한 사실을 거실 이불 속에서 속삭이며 털어놓으며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나는 온실 속에서 커온 화초 마냥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아이였고, 나와 내 동생들을 상처 입히던 사람들은, 더 이상 가족이 아니었기에, 난 그 곳이 죽을 만큼 싫었다.


나의 전화를 받은 나의 막내고모는 자신을 믿고 기다리라고 해주었고, 며칠 지나지 않은 날, 우리학교의 축제날에 그렇게 갑작스럽게 나타났다. 그때의 나는 부모님의 이혼 후 트라우마와 우울증으로 정신병원에 다니고 있었고, 그런 나에게 가까이 다가올 친구도 없었다. 


그렇게 나는 축제 때, 혼자였던 나의 모습을 온전하게 들키고 말았다. 이러한 내 모습은 막내고모를 분노하도록 하기에 충분했고, 막내고모는 나를 일본으로 데려가 주었다. 나의 막내고모는, 그 후 그렇게 약 9년을 내게 사랑과 애정을 주었다. 이 모든 상황을, 나는 이렇게 살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