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때 만났던 띠동갑 전남자친구에게 10년 뒤 연락이 왔어요

쓰니2022.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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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모 프로그램으로 말들이 많잖아요.미성년자 때 성인 만나 아이낳고 사는 부부 이야기요.
그 프로그램이나 부부에게는 관심이 딱히 없었지만 듣지 않으려해도 인터넷에서 많이 보여문득 제 옛날이 생각났어요.
정말 아무것도 모르던 철부지 여고 시절에 만난 남자친구가 있었어요.제목에는 띠동갑이라고 적어 놨지만 띠동갑에 가까운 나이 차이, 나보다 아는 것도 많고 똑똑해 보이던 사람이었어요.
고등학생이었던 저와 서른에 가까운 그 사람이 연애를 시작했고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헤어졌지만 저는 정말 운명적인 사랑이라고 믿었던 것 같아요.그 사람은 운전도 할 줄 알고, 대학교도 이미 졸업했고,  직장이 있는 사람이었으니 듬직하고 멋있어 보여서 제게는 정말 백마탄 왕자님이었던거죠.
저희 집 사정이 어렵지는 않았지만 부모님이 몸에 좋은 음식이 아니라며 잘 데려가지 않으셨던샐러드바 있는 피자집, 스파게티가 만원이 넘던 식당 등등, 생일 선물로 받았던 십만원 짜리 지갑, 저는 용돈을 모아야 살 수 있던 자잘한 악세사리..


지금 생각하면 서른이 가까운 나이었던 그 사람에게 삼사만원 하는 피자는 아무것도 아니었겠지만 저는 고등학생이었고 그 사람이 정말로 나를 너무나 사랑하고 나에게는 아까운게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였어요.
그러다가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수능을 다시 준비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헤어졌어요.
정말 잊고 살았고, 그 사람은 제 인생에 어떤 흔적도 남질 않았어요. 그냥 어릴 때 잠깐 만난 사이라고 생각했고미성년자인 저도 제정신이 아니었지만 서른의 나이에 여고생을 만났던 그 남자가 더 제정신이 아니라며 저에게는 그냥 잊으면 잊혀지고, 아님 말고, 비중이 하나도 없었던 기억이었어요.

10년이 지나 제가 당시의 그 사람의 나이가 된 지금, 어쩌다가 미디어에 제 모습이 한번 스쳐지나갔는데 그걸 어떻게 본 건지 제 연락처를 찾아 연락을 해왔더라구요.
내용은 정말 미안했다, 자기 때문에 친구 관계도 소홀해졌고 대학 입시도 망한 것만 같아 너무 미안해서 그동안 연락을 못했다. 몇 번 동네에서 본 적 있었는데 너무 미안해서 아는 척도 못했다 그러다가 방송에 나온게 신기해서 연락해본다, 나는 이번에 부모님에게서 독립한다.. 10년 전 주고 받은 연애편지 아직도 못 버렸다 생각난다 뭐 이런 내용들이었어요.

그 사람은 이제 불혹인 마흔이 가까운 나이일텐데 솔직히 우스웠어요.





10년 전, 그 사람이 정말 대단해 보였었는데 제가 올해 딱 그 사람 나이가 되고 보니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그 사람은 정말 보잘것 없었어요, 정말, 아무것도.
그 사람이 공공기관에서 일하거나 공무원이 되는 건 정말 하늘의 별 따기라며 저는 못할 거라고 그런식으로 얘기를 주구장창 했었고 제가 졸업하면 곧바로 임신 시켜 같이 살고 싶다는 이야기를 종종 했었는데..
운이 따라준 덕도 있지만 저는 대학 졸업하자마자 공공기관에 정규직으로 입사해서 다녀요. 제가 지금 받는 월급이 당시 그 사람 월급의 두 배가 넘고, 부모님이 보태주고 대출도 받았지만 제 이름으로 된 차도, 전세집도 있어요.샐러드바 있는 피자집에서 피자 사먹는 것도 쉬운 일이고 십만원짜리 지갑 고민 없이 살 수도 있어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미성년자는 이성으로 보이질 않아요,그때 그 사람하고 했던 애정행각들을 생각해보면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아요. 열몇살 차이나는 애가 어떻게 여자로 보였으며 그 애하고 스킨쉽 할 생각을 어떻게 했는지.나이가 들고 보니 그 때 그 사람이 제정신이 아니라 정말 미쳤다고밖에 생각되지 않아요.

그 사람과의 연애, 이별은 제 인생에 하나도 영향을 미치지 못했어요,그 사람은 제 인생에서 절대적으로 비중이 하나도 없어요. 지금까지도요.
자신 때문에 대학을 못 갔다고 이야기하는데 집안 사정이 있어서 다시 수능을 준비했던 것이고 그 사람 때문에 소원해진 친구 관계 하나도 없어요. 저는 그 사람과의 연애편지, 선물들 하나도 갖고 있는 것이 없고 그 사람이 연락해오기 전까지 단 한번도 그 사람을 떠올린 적이 없어요.

그 사람이 구구절절 적어 놓은 미안했다는 표현은 미성년자였던 저와 그런 관계를 가졌던 것에 대한 미안함이 아니라 연애 후, 제가 잘 지내지 못했을 거라는 추측에서 오는 미안함이더라구요.정말 정신 똑바로 박힌 어른이었다면 미성년자였던 저를 그런 식으로(그런 관계를 갖고 임신시키고 싶다는 표현을 주변인들한테 자주 했었고 졸업해도 제대로된 일자리 갖기 힘들 것이라고 세뇌시킴) 휘둘렀던 것에 대해 미안함을 먼저 표현했을 거에요. 사실 자신의 행동이 부끄러웠다면 연락을 해오지도 않았겠죠..


그 사람의 연락 끝에는 자랑 아닌 자랑이 있더라구요.드디어 집 사서 부모님에게서 독립한다구요. 나이 마흔에, 첫 독립이라구요.
나이 마흔에 하는 첫 독립에 제가 박수라도 쳐줘야 하는 걸까요.
솔직히 우스워요.그래서 나이 차이 많이 나는 연애, 특히 미성년자 때 성인이랑 하는 연애를 로맨스로 포장하는게 너무 보기 싫고 그런 고민을 하는 학생들이 있다면 꼭 말해주고 싶어서 글을 적고 싶었어요.
지금 당장은 성인인 상대방이 갖고 있는게 너무 대단해보이겠지만, 몇 년만 더 지나보면절대적으로 아닐 거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당장 그 상대방이 나를 '만나 주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정상적인 성인들은 미성년자에게 호감 안느껴요. 정말 부족하고 못나서 또래한테 쫓겨난 비정상적인 인간들이 괜히 미성년자 데리고 다니면서 삼만원짜리 선물 사주고 허세부리는거에요.
17살에 10만원은 큰 돈 같아 보이겠지만 30살, 40살한테 10만원은 그리 큰돈이 아니에요.
그 나이 또래 사람들에게 10만원가지고 으스대질 못하니까 어린애한테 선심쓰듯 10만원 써면서 온갖 허세 부리고 있는거에요 정말로.

십년 전 저처럼, 성인인 상대방 만나 운명적인 사랑 같고 그 사람 없으면 안 될 것 같아서 본인 인생 팽개칠 생각 하는 어린 여자아이들에게 얘기해주고싶어요.
아무 일도 안 일어나요.그 사람하고 헤어진다고 정말 아무 일도 안 일어나요.10년 뒤, 20년 뒤, 그 사람하고 헤어진거 후회 할 일 하나도 없어요.그 사람은 인생에 깨알보다도 작은 존재일거고 몇 년 뒤 상대방보다 훨씬 잘난 사람이 되어 있을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