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나이 13살에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아버지는 홀로 장사를 하며, 매일 술을 드셨다. 술주정은 없으셨지만아버지는 저축,저금,재테크 라는걸 아예 모르고 사셨다.귀도얇고, 가족한텐 무심해도 밖에나가서 남에게는 예의바르고 잘하시는,,,그런분이셨다중학생이였던 당시엔 몰랐지만, 아버지는 내가 16살이 되던 해에 사기를 크게 당해신용불량자가 되셨고, 고등학생 시절엔 파산신청을 해서 내가 20살이 되던 해에 면책을 받으셨다고한다.20살, 집근처 공대에 붙었다.아버지께선 돈이 없다는 말을 돌려서 말씀하셨다."은행 대출금리가 5%인데, 학자금대출이 3%면 돈이 있어도 학자금대출을 받는게 나은거야" 나는 그렇게 학자금대출을 받아 대학에 갔다.21살, 군입대를 해 22개월 군복무를 마치고23살이 되자마자 제대를 했다.3월, 학교에 복학했다. 한학기를 마치고.. 9월 추석이 지난 어느날 갑자기 아버지께서 쓰러지셨다. 간암3기라고했다.16시간 대수술과 1달간의 입원 후 아버지께선 퇴원하셨고, 항암치료를 시작하셨다.아버지 병간호를 하면서 학교를 다녔다.그 많은 병원비와 수술비를 어찌했는지 물어봐도 아버지께선 아무말씀이 없었다 항암치료는 지켜보는것 조차도 고통스러웠다.후유증으로 합병증이 생겨서 10번 가까이 응급실로 실려오셨고결국 암은 다른곳으로 전이되셨다.그렇게 3년 후 아버지는 이세상을 떠나셨다. 지갑속에 단돈 3만원을 남기시고.. 3년이란 시간동안 나는 학교공부를 마저 마치고 사는지역의 한 중견기업에 취직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 알게된 사실은 아버지께선 신용불량자였기에 본인 통장도,신용카드도 없었고, 면책 후 감사기간때문에 여동생(고모) 2명 앞으로 통장과 카드를 만들어 쓰고계셨고 그 통장과 카드로 마통,카드론,장기대출을 받아 병원비와 치료비를 내고있었단 사실을 알았다.머릿속이 캄캄했다. 내가 눈감고 등돌리면 고모들을 오빠(아버지) 때문에 빚이 생기는걸 외면할수없었다. 제가 다 책임 질테니까 걱정말라고 당부드렸다.계산해보니.. 대충 1억4천만원 정도 되는 금액이였다. 장례 치루고 남은 조의금 1000만원으로 이자가 가장 비싼 카드론부터 갚아나가기 시작했다.직장인이라 내앞으로 나오는 신용대출이 마통,카드론,장기대출 보다 훨씬 이자가 덜나와서내앞으로 대출을 개설해서 대출을 하나씩 없애나갔다.매달 학자금대출과 교통비,공과금,생활비 내고 남은돈은 모두 빚을 상환했다.명절 성과급이라도 받으면, 하고싶고 사고싶고 가고싶은데가 많았지만 꾹 참고 돈을 모았다.들어오는 소개팅도 자존심이 상해서 다 거절하고 그래도 너무 외로울땐 친한친구들과술한잔 하면서 견디곤했다. 3년후 학자금대출을 다 상환했다.주변사람 결혼할때 축의금을 낼 걱정을 덜어서 너무 좋았다.4년이 지나자 이제 계절마다 옷몇벌은 살수가 있었다.6년이 지나자 처음으로 여권을 만들고 일본으로 해외여행을 가봤다태어나서 처음타본 비행기,,ㅎㅎㅎ 아직도 그때 기분은 잊혀지지않는다이때부턴 빚만 갚는게 아니라, 미래를 위한 돈도 따로 모으기 시작했다 7년하고 2개월 되던 달, 마지막 남은 대출금을 상환했다.투룸 월세방에서 사는게 지겨웠다.8년치 퇴직금을 중간정산을 받고, 2년간 모은돈과 보금자리론 도움을 받아 작은 아파트 하나를 구해서 빚이 60% 였지만 내집도 생겼다.그러고 두달 뒤, 직장동료의 주선으로 소개팅을 했고 그녀는 나와 연인이 되었다. 나는 3달후인 내년 3월에 결혼을 한다. 박복한 내인생에 재미있게도 여자친구 집은 사랑이 넘치고 유복한 집안이라 여자친구와 여자친구 가족들과 함께할때면 그동안 내가 잊고살았던 웃음과 미소라는걸나도모르게 내입에서 피어나곤한다. 요즘 자려고 누우면,,,아버지 생각이 자주 난다.그립고,보고싶고 가 아니다 아직도 원망만이 가득하다행복한 여자친구 집을 보면 마음속에서 악마가 사는지 아버지가 원망스럽단 생각이 피어난다나이들면 부모가 이해되고 그립고 보고싶다는데,,, 왜 나는 30중반에도 아버지가 원망스럽고 왜 그렇게밖에 못사셨는지 따지고 화내고 싶을까?나는 할말이 많은데, 돌아가신 아버지는 대답이 없다. 이렇게 평생 아버지를 원망하고 살수밖에 없는걸까 싶은 오늘이다 20213
아직도 아버지가 원망스러운 나
내나이 13살에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홀로 장사를 하며, 매일 술을 드셨다. 술주정은 없으셨지만
아버지는 저축,저금,재테크 라는걸 아예 모르고 사셨다.
귀도얇고, 가족한텐 무심해도 밖에나가서 남에게는 예의바르고 잘하시는,,,그런분이셨다
중학생이였던 당시엔 몰랐지만, 아버지는 내가 16살이 되던 해에 사기를 크게 당해
신용불량자가 되셨고, 고등학생 시절엔 파산신청을 해서
내가 20살이 되던 해에 면책을 받으셨다고한다.
20살, 집근처 공대에 붙었다.
아버지께선 돈이 없다는 말을 돌려서 말씀하셨다.
"은행 대출금리가 5%인데, 학자금대출이 3%면 돈이 있어도 학자금대출을 받는게 나은거야"
나는 그렇게 학자금대출을 받아 대학에 갔다.
21살, 군입대를 해 22개월 군복무를 마치고
23살이 되자마자 제대를 했다.
3월, 학교에 복학했다. 한학기를 마치고.. 9월 추석이 지난 어느날
갑자기 아버지께서 쓰러지셨다.
간암3기라고했다.
16시간 대수술과 1달간의 입원 후 아버지께선 퇴원하셨고, 항암치료를 시작하셨다.
아버지 병간호를 하면서 학교를 다녔다.
그 많은 병원비와 수술비를 어찌했는지 물어봐도 아버지께선 아무말씀이 없었다
항암치료는 지켜보는것 조차도 고통스러웠다.
후유증으로 합병증이 생겨서 10번 가까이 응급실로 실려오셨고
결국 암은 다른곳으로 전이되셨다.
그렇게 3년 후 아버지는 이세상을 떠나셨다.
지갑속에 단돈 3만원을 남기시고..
3년이란 시간동안 나는 학교공부를 마저 마치고 사는지역의 한 중견기업에 취직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 알게된 사실은 아버지께선 신용불량자였기에
본인 통장도,신용카드도 없었고, 면책 후 감사기간때문에
여동생(고모) 2명 앞으로 통장과 카드를 만들어 쓰고계셨고 그 통장과 카드로
마통,카드론,장기대출을 받아 병원비와 치료비를 내고있었단 사실을 알았다.
머릿속이 캄캄했다. 내가 눈감고 등돌리면 고모들을 오빠(아버지) 때문에
빚이 생기는걸 외면할수없었다. 제가 다 책임 질테니까 걱정말라고 당부드렸다.
계산해보니.. 대충 1억4천만원 정도 되는 금액이였다.
장례 치루고 남은 조의금 1000만원으로 이자가 가장 비싼 카드론부터 갚아나가기 시작했다.
직장인이라 내앞으로 나오는 신용대출이 마통,카드론,장기대출 보다 훨씬 이자가 덜나와서
내앞으로 대출을 개설해서 대출을 하나씩 없애나갔다.
매달 학자금대출과 교통비,공과금,생활비 내고 남은돈은 모두 빚을 상환했다.
명절 성과급이라도 받으면, 하고싶고 사고싶고 가고싶은데가 많았지만
꾹 참고 돈을 모았다.
들어오는 소개팅도 자존심이 상해서 다 거절하고 그래도 너무 외로울땐 친한친구들과
술한잔 하면서 견디곤했다.
3년후 학자금대출을 다 상환했다.
주변사람 결혼할때 축의금을 낼 걱정을 덜어서 너무 좋았다.
4년이 지나자 이제 계절마다 옷몇벌은 살수가 있었다.
6년이 지나자 처음으로 여권을 만들고 일본으로 해외여행을 가봤다
태어나서 처음타본 비행기,,ㅎㅎㅎ 아직도 그때 기분은 잊혀지지않는다
이때부턴 빚만 갚는게 아니라, 미래를 위한 돈도 따로 모으기 시작했다
7년하고 2개월 되던 달, 마지막 남은 대출금을 상환했다.
투룸 월세방에서 사는게 지겨웠다.
8년치 퇴직금을 중간정산을 받고, 2년간 모은돈과 보금자리론 도움을 받아
작은 아파트 하나를 구해서 빚이 60% 였지만 내집도 생겼다.
그러고 두달 뒤, 직장동료의 주선으로 소개팅을 했고 그녀는 나와 연인이 되었다.
나는 3달후인 내년 3월에 결혼을 한다.
박복한 내인생에 재미있게도 여자친구 집은 사랑이 넘치고 유복한 집안이라
여자친구와 여자친구 가족들과 함께할때면 그동안 내가 잊고살았던 웃음과 미소라는걸
나도모르게 내입에서 피어나곤한다.
요즘 자려고 누우면,,,아버지 생각이 자주 난다.
그립고,보고싶고 가 아니다
아직도 원망만이 가득하다
행복한 여자친구 집을 보면 마음속에서 악마가 사는지 아버지가 원망스럽단 생각이 피어난다
나이들면 부모가 이해되고 그립고 보고싶다는데,,,
왜 나는 30중반에도 아버지가 원망스럽고 왜 그렇게밖에 못사셨는지 따지고 화내고 싶을까?
나는 할말이 많은데, 돌아가신 아버지는 대답이 없다.
이렇게 평생 아버지를 원망하고 살수밖에 없는걸까 싶은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