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이 날던 날

럽이2006.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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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이 날던 날

난초


한 쌍의 학이
툇마루 디딤돌 위에
날개를 접고 앉아있다

가만 숨죽여 들여다보면
낯익은 모습
읍내 가는 날이면
뽀얗게 닦여져 깃털처럼 빛나던
아버지 하얀 고무신

오일장이 서던 어느 날
꽃 고무신 살 설렘에
툇마루에 앉아 방문 열리기만 기다리다
행여 잠들면 아버지가 학 되어 홀로 갈까
두려움에 신발을 와락 끌어안았었다

달빛에 하얗게 질린 박꽃
별똥별처럼 지붕 위에 떨어지던 날
월식 같은 밤이 왔고 두려움의 실체를 보았다

한 쌍의 학이
접었던 날개를 펴고 날아갔다
그 후로 내 집엔 학이 오지 않았다
어느덧 나도 가지런히 놓아둘
신 한 켤레와 마음의 디딤돌을 준비할 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