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순아 부탁해

정태조2004.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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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재산 목록은 차암 많다. 수많은 꽃과 나무들 모두가 재산목록이다.

그중에 재산 목록 1호를 꼽으란다면 어떤 것을 꼽을꺼나.

꽃중의 꽃 천상의 꽃 옥잠화를 꼽을건가.

 

아직껏 이름을 몰라 그냥 별꽃이라 이름지어준 꽃.

그 향을 음미하려면 땅 바닥에 납작 엎드려 코를 박아야만 허락하는

그러면서도 결코 도도하지 않는 꽃을 꼽아야 할 것인가.

 

9가지 향이 난다 하여 구상나무라 불리는 나무를 꼽아야 할 것인가.

그게 아니면 마로니에를 꼽아야 할 것인지 매실을 꼽아야 할 것인가.

그러나 노심초사할 하등의 건덕지는 없다. 그 모두가 다 나의 재산목록 1호이니 말이다.

재산목록 1호의 범주 넣기에 손색이 없는 것은 또 있다.

 

수명이 30년 이라는 거순이. 그 거순이와 한 솥밥을 먹게 된지도 어연 15년 째다.

한 식구가 된지 얼마 되지 않아 동네 개 녀석에게 물려 한쪽 날개가 뒤틀린 탓에

보기는 흉해도

 

거순아! 하고 부르면 꽥꽥! 하고 대답하는 거순이도 나의 재산목록 1호임에 틀림없다.

내 주먹 만큼씩 만한 알을 3-40십개씩은 쑥쑥 뽑아주어

한 철 이나마 닭알 걱정은 놓게 해주며 친지들과 나누어 기쁨을 안겨주는 거순이는

아마도 나보다 더 오래 살련지도 모른다.

 

그 거순이 새깽이들이 보고 싶어 십 수년간 부화를 시켜 보았지만

그때마다 번번히 실패를 거듭하고 말았다.

거순이의 포란 기간은 40일 전후 어떤 해는 부화에 성공을 했는데

오살헐녀러 도둑 괭이한테 다 빼앗겨버렸고

 

거숙이와 거순녀와 함께 동거를 할때엔 둥지 차지 싸움에

자기가 낳은 알 아니면 굴려내고 굴려내고 하는 통에 실패를 했었고

몽돌이와 몽실이에게 거숙이와 거순녀가 물어 뜯겨 피칠갑을 하고 죽어 나갔던 작년에는

 

비 가림 하나 제대로 해주지 못한 주인 넘 택에

품기 시작한지 32일 만에 시작된 장마 통에 젖어버렸던 둥지였기에 실패했었다.

올해엔 기필코 거순이 새깽이들을 보겠노라는 염원에 작심하고 둥지를 만들어 주었다.

 

졸래졸래 흐르는 마알간 시냇물도 넘치게 퍼다 안겼다.

근 이십여 그루나 되는 매실나무 가지가지마다엔

어느 한 곳 눈 비빌 틈새없을 정도로 지천이었던 꽃 망울

 

꽃이 피면 열매가 맺는 것은 필연

나의 기쁨이 되어줄 꽃망울들을 흐믓한 마음으로 바라기 하던 순간

첨버덩! 첨버덩!

 

그 소리는 거순이 물장구 치던 소리였다.

목하 목욕재게 중이었다.

생명을 잉태하는 봄날 아침이면 언제나 목욕부터 하던 거순이 임을 익히 알고 있던 터

 

미안하기 그지 없었다.

겨우내 꽁꽁 얼어 붙었던 냇물 탓하랴.

말로만 재산목록 1호가 아닌 다음에야 무쇠인들 어떠했겠던가.

 

제 아무리 도타웁게 얼어 붙었다 한들 돌덩이라도 줏어들어

거순이에게 물을 안겼어야 옳은 일이었다.

참새가 죽어도 짹! 한다고 인간이 게으른 탓은 아니하고

 

물 절약입네, 밥 찌꺼기며 허드렛물 하수구로 내보내지 아니하면

그것도 환경을 살리는 일에 일조는 아니겠느냐는 일환으로

허구 헌날 허드렛 물만 안겼던가.

 

착하고 순하기만 한 거순이 주인 잘못 만나 그 지경을 당하면서도

까탈 한번 부리지 아니 하였다.

입장 바꿔 내가 거순이였다면

쏘아도 수 십번은 쏘았을 것이다.

 

야! 네가 인간이냐.

 인간이 인간다우려면 인간 구실좀 하거라.

 내 아무리 네 손아귀에 생명줄이 걸렸기로 목마른 짐승에게 물 한모금 주는 것 또한 보시라 했거늘

 

허구 헌날 허드렛 물만 안겨서야 쓰겠느냐.

거순아! 이제부터라도 인간 구실 제대로 할 터이니

올해엔 네 새깽이들 부탁혀..

알았찌.. 거순아 부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