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란전인지 환란후인지........ 휴거의 시기에 관한 논란의 완벽한 답변 ....

새로미2022.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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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는 소리> 10부-2


주님 계시록



마태복음 24장은 주님 계시록이라 불린다.

마태복음 24장(1-31절)은 마지막 때에 일어날 일들에 대해 주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예언이다.

종말론을 한다는 사람들 중에는 요한 계시록에 그 중심을 두고 마태복음 24장은 경시하는 경향이 있지만, 사도 계시록이라고도 불리는 요한 계시록은, 알고 보면 실은 이 주님 계시록인 마태복음 24장의 보다 자세한 설명에 불과 할 뿐이다.

주님 계시록은 요한 계시록의 굵은 뼈대이며, 종말에 대한 신, 구약 모든 예언의 말씀의 뿌리이며, 동시에 그 줄기인 것이다. 그러니까, 주님 계시록 이외의 모든 기록된 종말에 대한 예언들은 그 모두가 주님 계시록을 그 줄기로 하여 그 줄기에 붙어 있는 가지들이며, 그 잎사귀에 불과한 것이다. 신구약 모든 성경에 기록된 종말에 관한 예언들은 모두가 이 주님 계시록인 마태복음 24장의 자세한 설명 내지는 그 보충 설명일 뿐인 것이다.

주님 계시록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그 모든 사건들이 정확하게 그 일어날 시간적 순서를 따라 배열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종말의 때에 일어날 사건들은, 때로는 사건 그 자체보다도 그 사건이 일어날 시기 내지는 순서가 더욱 중요한 뜻을 갖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성경에 기록된 많은 종말의 예언들은 여러 토막으로 나뉘어서 여기저기에 분산되어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그것들을 한데 모아 각각 그것들이 들어가야 할 시간적 위치와 순서를 매겨야 한다. 그런데, 그 시점과 순서를 매기는 기준이 되는 것이 바로 주님 계시록인 마태복음 24장인 것이다. 예를 든다면, 휴거가 환난 전이냐 환난 후냐 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를 주님 계시록에서 찾아야 한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주님 계시록은 정확하게 그 일어날 일들이 시간적 순서를 따라 기술되어 있기 때문이다.

주님 계시록이야말로 모든 종말의 예언들의 기초요, 그 기본이요, 또 그 줄기이다. 그 어느 선지자의 예언도 또 어느 사도의 예언도 주님의 예언을 초월할 수는 없으며, 주님 계시록을 넘어설 수 있는 종말의 예언은 없기 때문이다.  







    


마지막 때의 징조


마태복음 24장 3-4절

“예수께서 감람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와서 가로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제자들은 주님께 두 가지 일에 대해 묻고 있다.

1) 어느 때에 성전이 그렇게 파괴되는가?

2)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는가?

제자들은 성전의 파괴와 세상 끝이 함께 오는 줄 알고 있었다.

헤롯 성전이 파괴되고, 주가 다시 임하시면, 세상은 끝이 나는 줄로 알고 있었다.

제자들은 이제 임하게 될 신약 교회 2000년 동안의 이방 시대를 모르고 있었다. 성전이 파괴되고, 세상이 끝나고, 주가 재림하시면 곧 메시아가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나라, 지상 천국이 임할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향해 그렇게 물었던 것이다.

성전이 파괴되는 때가 세상의 종말이요, 그 종말의 때에는 어떤 징조가 있는가?

그런데, 제자들의 이런 질문에 대해 예수님은 마지막 때, 신약 교회 시대 2000년이 차서 지상 6000년의 역사가 끝나게 되는 종말의 때에 일어날 일들로 답변을 하신다. 

제자들은 성전이 파괴되고 이스라엘이 멸망하는 그 시기와 그 징조를 물었지만, 예수님은 마지막 종말 때에 일어날 일들로 답변을 하신다.

왜냐하면, 제자들은 이미 신약 사도들이며, 그들은 구약 성전의 파괴와는 이제는 더 이상 관계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신약 성경은 신약 성도들에게 주시는 말씀이다. 따라서 신약 교회의 마지막 파괴에 대해, 또 그 마지막 때에 있을 징조에 대해 예수님은 말씀하셨던 것이다.

4-5절의 말씀을 보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

예수님은 마지막 때에 있을 징조에 대해 말씀하신다.

그 가장 큰 징조의 하나는 거짓 그리스도들이 많이 나타나서 많은 사람들을 미혹하는 것이다.

놀랍게도 지금 현재 이 나라에도 자칭 그리스도가 벌써 여러 사람 나왔다. 언젠가 필자에게도 편지가 왔다. 아무 곳에 재림 예수가 와 계시니 와서 보고 믿으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것은 아직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거짓 그리스도는 아니다. 그런 터무니없는 가짜 그리스도에 속을 사람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예언하신 거짓 그리스도는 참으로 그리스도 같은 모습을 하고 우리 앞에 나타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들에게 속고 미혹을 당하는 것이다.

이들은 온갖 감언이설과 그럴 사하게 변조된 성경 말씀과 그리고 얕은 기적이나 이적을 행해 보이며 사람들을 미혹할 것이다. 참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을 믿는 목적을 세상 것에 두고 있는 자들은 이들을 보고 속아 이들 거짓 그리스도들을 따라갈 것이다.

마지막 때에, 우리나라에도 많은 이 따위 거짓 그리스도들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믿음이 약한 자들, 하나님을 바르게 알지 못하고 세상 것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예수를 믿는 자들, 말씀을 바르게 깨닫지 못하고 감성적으로만 믿는 자들은 다 이들의 유혹에 넘어간다.

이런 거짓 그리스도들이 세운 교회가 한 때, 세상을 휩쓸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마치, 한 때, 시한부 교회가 그랬던 것처럼, 그들도 그렇게 뜨겁게 열렬하게 그리고 아주 자랑스럽게, 그리고 너무나도 고집불통으로 자기들만 구원받는 것처럼, 그렇게 세상을 향해 떠들어 댈 것이다.

그러므로 마지막 때에는 분별의 능력이 있어야 한다. 분별의 능력이 없으면, 종말 시대에는 참 믿음을 지키기가 어렵다.

이런 분별의 능력은 어디서 오는가?

말씀에서 온다. 바른 말씀에서 온다. 다시 말하거니와 바른 말씀에서 온다. 껍데기뿐인 종교 철학 같은 신학적 성경 해석이 아니라, 참 살아 있는 능력 있는 말씀에서 온다. 참으로 살아 계시는 예수님의 살(肉)인 말씀에서 온다. 말씀을 바르게 깨달아야 한다.

우리나라만큼 교회가 많고 믿는 사람들이 많은 나라도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만큼 교회에 이단적, 무속적 요소들을 많이 가지고 있는 나라도 흔치 않다. 우리나라의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의 많은 수가 우상 숭배적 기복 신앙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고 한다. 믿기만 하면 기적이 일어난다고 한다. 무조건 믿기만 하면 다 된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믿는 사람들은 믿는 것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다. 교회 목사가 하는 말이라면 무슨 소리건 다 믿는다. 간증하는 자가 단 위에 올라가서 무슨 소리를 해도 듣고 다 믿는다. 무조건 믿기만 하도록 교회가 그렇게 훈련을 시켜 놓았다. 그래서 마지막 때에 거짓 그리스도나 거짓 선지자가 나와 터무니없는 소리를 해도 이 나라의 믿는 자들은 다 그 소리를 듣고 아멘하며 믿고 따라갈 것이다. 참 말씀을 먹고, 참 말씀 위에 서 있는 얼마간의 참 성도들을 빼고는 다 넘어가고 말 것이다.


거짓 그리스도와 적그리스도, 거짓 선지자


거짓 그리스도들. 이들은 누구인가?

자기를 그리스도라고 말하는 자들이다. 곧 자칭 그리스도요, 가짜 그리스도들이다. 이들은 환난 직전에 세계 도처에서 대량으로 나타난다.

그럼, 적그리스도. 그는 누구인가? 

마지막 때에 나타날 멸망의 아들이다.(살후 2:3-4)  

계시록에 의하면 그는 바다에서 올라오는 짐승이다.(계 13:1-9)

그는 오직 한 사람이며, 사단의 영을 받은 자이다.

거짓 선지자. 그는 누구인가?

마지막 때에 적그리스도를 도와 성도들을 미혹하는 자이다. 이 거짓 선지자는 땅에서 올라오는 짐승이다.(계 13:11-17)

적그리스도는 사단의 영을 받은 자요, 거짓 선지자는 적그리스도로부터 능력을 받은 자로, 이 둘은 계시록에서 짐승으로 표현된다. 이들은 사람들을 향해 잘 먹게 해 주고 잘 살게 해 준다고 미혹을 한다. 이들은 다 함께 힘을 합해 좋은 세상, 아름다운 세상, 이상적 세상, 지상 천국을 건설하자고 주장한다.

반면, 거짓 그리스도들은 <짐승>이 아니라 <사람>이다.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는 사단의 영을 받은 사단의 하수인이요, 참 그리스도에 대항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훼방하여 사람들로 멸망에 빠지게 하는 자들이요, 이들은 오직 한 사람씩이지만, 거짓 그리스도들은 자신들의 인간적 욕심과 영적 야심을 채우기 위해 그리스도를 가장하여 사람들을 속이고 그들의 생명을 죽이는 자들로 이들은 여러 명이다.

어느 시대에도 이런 거짓 그리스도는 있었다. 그러나 마지막 때에는 세계 도처에 아주 대량으로 쏟아져 나올 것이다.

거짓 그리스도들이 대량으로 출현하기 시작하면, 이제 환난은 눈앞에 다가온 것이다.


재난의 시작


6-7절의 말씀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끝은 아직 아니니라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라”

이제 환난은 시작되었다.

환난의 시작은 난리와 난리의 소문이다. 지구 도처에서 크고 작은 전쟁이 일어난다. 이것이 환난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이런 전쟁이나 소요 사건은 처음에는 아직은 국지적일 것이다. 그러나 그 규모가 차츰 커지고 또 그것이 세계 각처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나고 그리고는 지구적 규모로 확산되기 시작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보고 이제는 종말이구나, 이제는 죽었구나, 이제는 세상 끝이구나, 하고 탄식하며 두려워한다. 하지만, 믿는 자들은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너희는 삼가 두려워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끝은 아직 아니니라”

대대적인 지역 전쟁과 소요 사건은 다만 재난 곧 환난의 시작일 뿐이다. 두려워 말라. 마음을 굳게 하고 믿음을 굳게 잡아라.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지구촌 각처에서 일어나기 시작한 전쟁과 소요는 차츰 여러 지역으로 확산되면서 대규모 민족 분쟁과 국가간의 전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런 전쟁의 열풍이 지구 전체를 휩쓸게 된다.   

이 전쟁은 몇 몇 강대국 사이의 전쟁이 아니라 세계 모든 나라가, 모든 민족이, 각 이웃한 나라 사이의, 혹은 경쟁 관계에 있는 나라 사이의 전쟁이며, 동시에 이민족 사이의 전쟁인 것이다.

아마도, 이 지구상의 모든 나라가 이 전쟁에 휘말리게 될 것이다. 또한, 여러 민족으로 형성되어 있는 나라들, 가령 미국 같은 나라들은 민족끼리 대립하여 인종끼리 대립하며 처절한 내전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나라와 나라 사이의 전쟁과, 나라 안에서의 민족, 인종간의 싸움으로 전 세계는 일시에 대혼란에 빠지게 될 것이다. 미국과 캐나다가 국가간의 전쟁을 하고, 미국의 흑인들과 캐나다의 흑인들이 연합하여 미국 및 캐나다에 있는 백인들과 전쟁을 하는 그런 혼란스러운 전쟁이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게 된다.

또 미국 안에서는 아프리카 흑인들과 홍인종계 흑인들이 서로 적대하여 싸움을 벌이고, 황인종 같은 소수 민족들은 흑인과 백인들에 의해 박해와 학살을 당하게 될 것이다. 온 세계는 모두가 적이며, 모든 나라가 다 적국인 가운데 이웃 나라와 무차별 전쟁을 하고, 안으로는 민족적 내란에 휘말리게 된다.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라”

전쟁에 더하여 전 세계적 규모의 기근이 일어난다.

종말의 환난이 일어날 즈음이면, 이미 모든 나라들의 국경이 개방되고, 국가간의 무역이 완전히 자유로우며 모든 물자와 노동력이 자유로이 국가간을 이동하고, 화폐는 세계 단일 화폐가 사용되게 될 것이다.

지구 인구의 80% 가까이를 먹이는 곡물 산지인 캐나다, 북미, 호주 등 대규모 곡물 생산국에는 홍수와 한발이 교대로 일어나서 흉작이 거듭되고 세계적 규모의 기근이 시작된다.

한국 같은 작은 나라들의 곡물 생산은 국제 경쟁력을 잃고 곡물 생산능력을 상실한지 이미 오래다. 기근은 지구 전체를 엄습하게 된다.

기근에 더하여 지구 곳곳에서 지진이 일어난다.

세계 도처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크고 작은 지진들이 일어난다. 화산대는 물론이고 지금까지 지진 안전지대로 여겨졌던 지역에서도 대규모 지진이 일어난다. 여기저기서 땅이 흔들리고 갈라지고, 그 때까지 쉬고 있던 휴화산들이 활동을 시작하여 불을 뿜기 시작한다. 지구 전체가 흔들린다.

전쟁과 기근과 지진, 이제 환난은 시작되었다.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


9절의 말씀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전쟁과 기근과 지진, 이것들로 환난은 시작된다. 전 세계는 말할 수 없는 대혼란에 빠진다.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는 피비린내 나는 전쟁과 살육, 기근으로 인한 굶주림과 식수 오염으로 인한 기갈, 예고 없이 일어나는 지진과 화산 폭발과 해일, 이미 일상사가 되어버린 살인과 약탈, 인류의 멸망이 코앞에 다다랐다는 위기감이 온 지구인들의 가슴을 뒤덮는다.

인류 과학 문명의 결실이라고 하던 그 온갖 최첨단 문명의 이기들은 인류가 처한 이 위기를 극복하는데 아무런 쓸모도 없다. 그것들은 그저 쓰다 버린 쓰레기장의 폐품처럼 여기저기 나뒹굴고, 사람의 목숨을 빼앗거나 상하게 하는 대소 각종 무기들만이 식량을 약탈하거나 혹은 광기 어린 살인의 도구로 사용 당하고 있을 뿐이다.

이 때, 한 사람의 사나이가 세상의 주목을 끌기 시작한다. 그는 세계를 향해 외치기 시작한다. 온 세계가 싸움을 중단하고 하나로 뭉쳐 이 멸망의 위기에서 인류를 구원하자고 소리친다.

그는 놀라운 웅변가요, 보기에도 아름다운 미남자요, 놀라운 정치 수완가이며,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신비한 능력을 가졌으며, 거기에 더하여 무서운 초능력과 사태 해결에 대한 뜨거운 정렬을 가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많은 나라들이, 민족들이, 그의 말을 경청하고, 찬성하고, 그를 지지하고 그에게 설득 당하고 그에게 찬사를 보내고 그를 따라가고 그에게 동조하고, 세계는 그로 인하여 차츰 질서를 회복하기 시작한다.  

그는 매스컴의 총아가 되고 온 인류의 희망이 되고, 모든 이들의 영웅이 되기 시작한다. 다시는 이 세상에 전쟁과 기근을 없애기 위해 강력한 세계 단일 정부, 세계 단일 국가를 건설하자고 그는 주장한다.

온 인류는 한 깃발 아래 하나가 되자고 그는 역설한다. 지구 위에 이제는 많은 정부는 필요 없다. 하나의 국가, 하나의 정부가 있으면 족하다. 또 온 이류는 <지구인> 이라는 단일 민족이다. 백인종도 황인종도 흑인종도 오직 지구인이라는 이름의 단일 민족인 것이다.

아마도, 그는 이렇게 주장할 것이다. 우리는 각각 다른 민족끼리, 각각 다른 족속끼리 서로 결혼을 하자. 이렇게 자식들을 낳아 지구인이라는 단일 혈통, 단일 민족을 만들자. 그래서 다시는 국가간, 민족간의 분쟁을 없애자. 민족차별 같은 비인간적인 못된 버릇도 없애버리자.

이렇게 주장하는 그는 누군가? 이렇게 주장하여 전 세계인들의 주목과 총애와 존경과 찬사를 한 몸에 받을 그는 누군가?

적그리스도이다.

그는 기독교도들을, 기독교 교회를 핍박하기 시작한다.

네로 왕이 로마를 불사르고 그 죄를 기독교도들에게 뒤집어씌운 것처럼, 적그리스도도 전쟁과 기근과 지진과 살육과 폭력 속에서 살아남고자 몸부림치고 있는 사람들 마음속에 불타고 있는 그 이유 없는 그 증오와 적개심을 기독교신자들에게 돌리게 한다.

전쟁의 공포와 피비린내 나는 살육의 흥분에서 아직도 덜 깬 사람들은 그들의 이유 없는 분노와 증오심을 기독교도들을 향해 마구 쏟아 붓기 시작한다.

큰일을 하기 위해서는 힘을, 방향을, 목적을, 한 곳으로 모아야 한다. 세계 단일 정부를 수립하고 전쟁을 종식시키고, 식량 증산을 도모하고, 그것을 고루 분배하는 일, 지진으로 파괴된 도시를 재건하고 생산 시설을 복구하고, 말하자면 이류를 이 위기에서 구원하기 위한 이런 일들에 온 지구의 힘을 집결하기 위해서는, 그리고 나아가 적그리스도 자신이 온 지구를 지배하고 온 지구인의 영원한 우상이 되어 신처럼 숭상 받기 위해서는, 세상의 모든 인간들이 열광적인 광기를 가지고 매달려야 하는 일이 하나 꼭 있어야 하는 것이다. 

적그리스도는 이것을 기독교 박해와 기독교도 학살에 둔다.  

왜 하필 기독교를 핍박하는 방법을 택하나?

그는 예수 재림에 앞서 교회를 핍박하고 자신이 재림 예수라고 주장하며 믿는 자들을 넘어지게 하기 위해 예수님 보다 한 발 앞서 나타난 적그리스도, 사단의 영을 받은 자, 하나님에 의해서 악의 도구로 선택된 <짐승>이기 때문이다.

10-12절의 말씀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시험에 빠져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적그리스도의 사주를 받은 광적인 그의 추종자들은 무리를 지어 <인류의 새로운 번영과 평화>를 외치며 흉기와 무기를 들고 교회를 습격하고 교회 건물을 부수고 방화하고 믿는 자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 죽인다.

어제까지 다정했던 이웃이었고 사랑했던 친구들, 친척과 친지였던 사람들이 단지 예수를 믿고 안 믿고의 차이만으로 오늘은 원수로 바뀐다.

사람들은 믿는 자들을 잡아 주고 숨은 곳을 밀고하여 잡혀 죽게 만든다. 이런 기독교 박해는 전 세계적으로 확산된다. 많은 믿는 자들이 잠시 잠간의 육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영원한 생명을 버리고 배도하여 적그리스도에게로 달려간다. 믿는 자가 믿는 자를 고발하여 자기에 육신의 목숨을 보존한다.

일부 용기 있는 참 믿는 자들은 그가 성경에 예언된 적그리스도라는 것을 알고 믿는 자들로 하여금 그를 다르지 말도록 설득하고, 또 소수의 깨어 있는 교회에서는 용기와 사명을 가지고 공공연하게 적그리스도를 비난하며 목숨을 걸고 적그리스도에게 저항한다.

그런데, 적그리스도를 비난하거나 그의 정책에 동조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가 내걸고 힘차게 추진하고 있는, 온 지구인들의 희망인 새로운 세계, 새로운 평화와 새로운 세계 질서 수립을 반대하는 것이 된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들이 또 모든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 때에 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나타난다. 그들은 적그리스도가 재림 예수라고 선전을 하며 믿는 자들을 미혹하기 시작한다. 이 즈음에 666표가 나온다. 많은 믿는 자들이 저들의 미혹을 받아 믿음을 버리고 666표를 받는다.

세상에는 불법이 성행한다. 하나님의 진리는 없어지고 적그리스도가 하는 일이 곧 진리요, 적그리스도의 말이 곧 법이 된다.

사람들 가슴에서 사랑이 식어진다. 사랑은 무가치한 것이 되고 만다. 폭력과 힘의 논리만이 세상을 지배한다.

그리고 폭력이 미화된다. 왜?  인류의 새로운 희망인 새 세계 질서의 건설을 방해하는 자들을 제거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폭력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13-14절의 말씀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만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믿는 자는 이 모든 일들을 끝까지 견디어야 구원을 받는다.

그런데, 그 끝이 언제인가?

주님 재림하실 때이다. 어떤 미혹에도 넘어가지 않으며, 어떤 협박과 위협에도 굴복하지 않으며, 어떤 위험이나 고통도 참으며 주님 재림하실 때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 

이 지구상에서 마지막까지 복음을 거부할 나라가 둘이 있다. 하나는 중동 아랍 국가들이요, 또 하나는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종 아브라함의 직계 자손이요, 중동 국가는 그의 서자인 이스마엘의 자손들이다. 생각해 보면 참으로 묘하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들이 가장 끝까지 복음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생각하셔서 이스라엘에게는 두 증인과 두 증인들을 보내어 마지막 택함 받은 자들을 구원하신다.


산으로 도망할 찌어다


15-16절의 말씀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찌어다”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바”

선지자 다니엘이 무엇을 말했는가?

다니엘은 다니엘 9장 27절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겠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광포하여 미운 물건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미운 물건 = 적그리스도의 우상

날개를 의지하여 서다 = 날개는 군사력을 뜻한다. 적그리스도는 거룩한 곳 곧 성전 마당에 무력을 의지하여 자기의 우상을 세우고 사람들로 경배하게 만든다.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 이 성경 말씀을 읽는 자들은 깨달아 알아라.

무엇을?   

성전 마당에 적그리스도의 우상이 서면, 이제 모든 것이 끝이라는 것을!

이제, 믿는 자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서둘러 산으로 도망을 해야 한다. 이제 지상에는 전무후무한 대재앙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찌어다”

산이 어디인가?

피난처이다.

피난처는 어디에 있는가?

(피난처에 대해서는 부르는 소리 제6부 종말과 예언 <하> “피난처”를 참조할 것)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이란 누구를 가리켜 하신 말씀일까?     

다음과 같은 자들을 가리켜 하신 말씀이다.

1) 이스라엘 영토 안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성전 마당에 가증한 것이 섰을 당시, 예수를 영접하고 거짓 선지자가 주는 666표를 받지 않은 자들.  

2) 이스라엘 이외의 땅에 사는 예수 믿고 666표 받지 않은 구원받은 이방인들. 이들은 영적 이스라엘이며, 이들이 사는 곳은 그 곳이 어느 곳이든 영적 유대 땅인 것이다.

17-18절의 말씀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안에 있는 물건을 가질러 내려가지 말며 밭에 있는 자는 곁옷을 가질러 뒤로 돌이키지 말찌어다”

지붕 위에 있는 자가 누군가?

이스라엘 사람들의 집 옥상에는 골방이 있는데, 이 방에는 곡식을 쌓아 두기도 하지만, 주로 기도를 한다.

그러므로 “지붕 위에 있는 자”란 가정에서 편안한 생활을 버리고 지붕 위에 올라가 기도하는 자란 뜻이다.

지붕 위에 있는 자 = 방에 편안히 있지 않고 지붕 위 골방에 올라가 기도하는 자 = 기도를 많이 하는 신령한 자.

지붕 위에 있는 자가 집안으로 내려오다 = 기도를 많이 하는 신령한 사람이 기도를 중단하고 일반 가정생활로 돌아오다.

지붕 위에 있는 자가 물건을 가지러 내려가다 = 기도를 많이 하는 신령한 자가 생활에 대한 염려나 물질에 대한 염려 때문에 그 신앙이 떨어지다.

그럼, “밭에 있는 자”란 또 누군가?

밭에 있는 자는 농사를 짓는 농부를 말한다.

농부는 또 무엇을 뜻하는가? 

농부란 복음의 씨를 땅(세상)에 뿌리고 땀 흘려 그것을 가꾸는 자, 곧 복음 농사꾼, 주의 종이다.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라”

곁 옷은 그 사람의 신분을 나타낸다. 주의 종이라는 자기의 신분으로 해서 도망가는 일을 주저하거나 돌이키지 말라는 뜻이다.

적그리스도의 우상이 성전 마당에 서는 것을 보거든, 주의 종이건 기도를 많이 하는 신령한 사람이건, 체면이나 책임 다 던져버리고 도망가라는 말씀이다.

저 사람들을 버리고 어떻게 나 혼자 도망을 가나, 하고 주저하거나 돌이키지 말라는 말씀인 것이다.

성전 마당에 가증한 적그리스도의 우상이 섰을 때, 곧 7년 환난의 전 3년 반이 지나고 이제 막 그 후 3년 반이 시작되려는 그 때까지 666표 받기를 거부한 사람들이란 바로 집안에 있지 않고 지붕 위에 있는 사람과 밭에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집 안에 있지 않고 지붕 위에 있는 사람들이란 어떤 사람들인가?

산에 가서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집에 사는 사람들이다. 말하자면 보통 사람들처럼 일상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편안하게 집 안에서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지붕 위에서 사는 사람들이다. 말하자면, 보통 사람들처럼 집에서 살기는 하지만, 세상의 희로애락을 초월해서 가도와 간구로 높은 영적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지붕 위에 있는 사람들이다. 지붕은 집에서 제일 높은 곳이다. 영적 높은 곳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럼 밭에 있는 사람들이란 또 어떤 사람들인가?

평안한 가정생활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복음과 그의 의를 위하여 그 때까지 밖에서 일을 하고 있는 참 주의 일군이다.

밭은 일터이다. 성경에서 밭은 하나님의 일터를 뜻한다.

이제, 거룩한 곳에 적그리스도의 우상이 서는 것을 보면(이런 소식을 들으면) 이 두 사람들은(이 두 종류의 종들은) 빨리 산으로 도망을 가야 한다. 사실이지, 산으로 도망 갈 사람은 바로 이 두 종류의 사람들뿐이다.

이 두 종류의 사람 외의 사람들은 그때까지는 이미 다 믿음을 버리고 변질되어 666표를 받았을 것이다. 그 때까지 믿음을 지키며 666표 받기를 거부한 사람들이란, 지붕 위에 있거나 밭에 있는 사람들뿐인 것이다.

19절의 말씀

“그 날에는 아이 벤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그 날에는”

그 날이 언젠가?

가증한 물건이 거룩한 곳에 서고, 후 3년 반이 시작된 날이다. 이 지상을 향해 하나님의 진노가 막 쏟아지기 시작한 날이다.

그 날에는 아이 벤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다.

그 무서운 환난 날에 빨리 산으로 도망을 가야 하는데 아이들 배서 배가 부른 여자와 젖먹이를 데리고 있는 여자는 몸이 무겁고 힘이 들어서 빨리 가지 못하고 잡혀 죽거나 고생을 더 하게 되니 화이다, 라고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런 사람들은 성경을 무슨 어린이 동화책 읽듯 하는 사람들이다.

아이 밴 자와 젖먹이는 자는 둘 다 여자다. 여자는 성도를 뜻한다.

성도는 성령과 하나가 되어 생명을 낳아야 한다. 생명을 낳을 뿐 아니라 그 생명을 키워야 한다.

아이 밴 자란 생명을 잉태하기는 했으나 아직 낳지는 못한 자요, 젖먹이는 자란 생명을 낳기는 했으나 예수님을 신랑으로 맞을 만큼은 그 영이 성장하지 못한 자들을 말한다.

그럼 그 영이 성장한 자란 어떤 자들인가?

지붕 위에 있는 자와 밭에 있는 자가 바로 그 생명이, 영이 성장한 자들이다.

다 자란 자들은 지붕 위에 있거나 밭에 있다. 영적으로 높은 경지에 올라 있거나 땀을 흘리며 밭에 있다.

젖먹이는 자와 이이 밴 자들은 집 안에 있다. 지붕 위에 있거나 밭에 있는 자들은 말씀을 따라 산으로 도망을 간다. 그러나 젖먹이는 자나 아이 밴 자들은 거룩한 곳에 우상이 서는 것을 보고도 그냥 집에 남아 있다. 그러다가 잡혀 화를 당하고 만다.

다시 말하면, 신앙이 미숙한 자들은 환난 날에는 화를 당하게 된다는 말씀이다. 모든 것을 버리고 산으로 도망 갈 만큼의 믿음은 없고, 그렇다고 하나님을 버리고 선뜻 적그리스도나 거짓 선지자를 따라갈 만큼의 믿음이 없지도 않을 때, 이런 사람들에게 화가 있다는 말씀이다.

결국 이들은 적그리스도나 거짓 선지자에게 잡혀 배도를 강요당하고 배도를 하게 되지만. 그렇다고 그 육신의 목숨조차도 부지하지 못하고 적그리스도 일당에게 심한 고통만을 당한 다음 무참히 살해되고 만다. 그러니 화 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육신의 죽음이나 고통이 화가 아니라 믿음을 갖고도 그 믿음이 부족해서 영생을 잃고 마는 것이 화인 것이다.

마지막 때에 우리는 집에 있으면 안 된다. 지붕 위에 있거나 밭에 나가 있어야 한다. 지붕 위에 있거나 밭에 나가 있는 자만이 그 때 산으로 갈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 때에는 산으로 가야 한다.

산 = 광야

광야에는 아무 것도 없다.

그러나 광야에는 피난처가 있다. 애굽 같은 죄악 세상을 떠나 광야로 나와야 한다. 광야를 통하지 않고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이를 수 없다.

지금부터 산으로 갈 준비를 하라.

어떻게 하는가?

지붕 위로 올라가든가 아니면 밭으로 가라.


큰 환난


20-21절의 말씀을 보자.

“너희의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드디어 그 무서운 후 3년 반의 환난이 시작된다. 이 환난은 전무후무한, 말씀 그대로 창세부터 지금까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그런 무서운 환난이다. 그러므로 믿는 자들은 다 피난처를 향해 산으로 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의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겨울이 무슨 뜻인가?

겨울은 만물이 잠을 자며 활동을 정지하고 있는 계절이다. 만물이 성장과 활동을 멈추고 잠을 자고 있는 계절이다. 우리의 신앙생활에서도 겨울잠을 자는 시기가 있다. 우리가, 우리 교회가, 믿음의 겨울잠을 자고 있을 때에, 도망을 가야 하는 날이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는 말씀인 것이다. 믿음의 겨울이 오지 않도록 계속 깨어서 기도하라는 말씀인 것이다. 환난에 대비해서 너희의 믿음을 계속 여름으로 있게 하라는 말씀인 것이다. 우리가 깨어서 영의 눈을 크게 뜨고 뜨겁게 활동할 때에 도망가는 날이 오도록 계속 기도하고 있으라는 말씀인 것이다.

그럼, 안식일은 또 무슨 뜻인가?

구약의 안식일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꼼짝 못하고 앉아 있어야 하는 날이다. 하지만, 안식일은 그런 날이 아니다. 외식하는 바리새인들이 안식일을 그런 날로 만들어 버렸다.

이런 뜻에서 안식일이란 종교적 계율 때문에 아무 것도 못하고 형식과 계율에 매어서 참 하나님을 떠나버린 형식화되고 격식화 되어버린 신앙을 뜻한다.   

지금, 알맹이 없는 형식적인 예배나 드리고 있는 교회들이 너무나 많다. 대형 교회들이 특히 그렇다. 주일이 안식일도 변했다.

우리들의 신앙과 우리의 교회가 이렇게 격식화되고 형식화되어서 참 하나님을 잃어버렸을 때에 도망하는 날이 오지 않도록 기도하라는 뜻이다. 너희의 교회가 마지막 환난의 날에 그렇게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는 말씀인 것이다.

22절의 말씀을 읽어보자.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할 것이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

전무후무한 대 환난으로 인해 이 땅에 살아남을 사람은 한 사람도 없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환난 가운데에 있을 당신의 택하신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해 그 날들을 감해 주신다. 그 덕에 택함 받지 못한 사람들까지 살아남게 된다.

여기서의 구원은 영의 구원이 아니라 육체의 구원이다. 그래서 그 무서운 대 환난이 지난 후에도 육신을 가지고 살아남는 사람들이 있게 되는 것이다.

23-24절의 말씀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또다시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나타난다. 참으로 끈질기게 그것들이 나타나서 믿는 사람들과 심지어는 택하신 자들까지 미혹하려고 한다.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자들을 위해 그 날들을 감하신다. 그 덕에 못된 자들도 살아남아서 마지막까지 믿는 자들을 미혹하려고 한다. 그들은 악한 영으로부터 악한 능력을 받아 표적과 기사를 보이며 참 그리스도와 참 선지자를 가장한다.

아직 피난처에 도착하지 못한 자들, 혹은 피난처로 가지 않고 끝까지 복음 전파를 위해 환난을 살아서 통과하는 자들, 또는 피난처 길을 가지 못하고 숨어서 환난을 통과하는 자들, 이들이 바로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의 표적인 것이다.

이 때가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의 핍박과 유혹이 최고조에 달하는 때이다. 이리 피하고 저리 숨고 죽을 고비를 수 없이 넘겨야 한다.

믿는 자들은 하루가 천년 같이 주 재림을 기다린다. 그리고 하루에도 수 백 번 이렇게 속으로 외치고 또 외칠 것이다.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 빨리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소서”

바로 이 때에,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의 앞잡이들이 믿는 자를 가장하고 나타나서 간절히 주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들을 미혹하려 든다.

누가 와서 이렇게 속삭인다.

“형제여, 주님이 벌써 오셨습니다. 저기 와 계시다고 합니다. 우리 가서 뵙시다.”

듣기에 가장 반가운 소리이다. 이 보다 더 반가운 소식이 어디 있겠는가.

환난에 지친 믿는 자들이 이 말에 쉽게 속는다.

하지만,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환난이 시작되기 전에 나타나는 거짓 그리스도나 거짓 선지자에게는 환난을 두려워하는 자들이 쉽게 속는다.

그러나 환난 중에 나타나는 거짓 그리스도나 거짓 선지자에게는 환난에 지친 자들이 쉽게 속는다.

25-26절의 말씀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그러면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고 말한다.

그럼 광야가 어디인가?

광야는 선지자가 있는 곳이며(세례 요한), 금식하는 곳이며(예수님의 40일 금식), 세례를 주는 곳이다. 

그럼 골방은 또 어디인가?

골방은 기도하는 곳이다.

광야도 골방도 모두 종교 행위를 하는 곳이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혹 골방에 있다, 하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한다. 재림 예수는 왕으로 오신다. 심판 주로 오신다. 따라서 예수님은 광야나 골방 같은 곳에 계시지 않는다. 재림 예수는 천사들과 함께 오셔서 우리를 다스리시고 원수들을 심판하시는 영광의 보좌에 앉으신다. 광야에 있는 그리스도, 골방에 있는 그리스도는 다 가짜 그리스도들인 것이다.

 

주 재림의 모습


27-28절의 말씀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들이 모일찌니라”

주님 재림의 모습이다.

주님 재림은 번개가 동편에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다. 온 세상이 동시에 주 재림을 보고 알게 된다. 결코 주 재림은 비밀리에 몇 사람만 알게 그렇게 임하지는 않는다.  골방에도, 광야에도 몰래 와 계시지 않는다.

주 재림은 모든 사람이 눈으로 보고 알 수 있게 그렇게 임하신다. 주 재림은 전 우주적이다. 계시록 1장 7절은 주 재림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신다.

“볼찌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주님의 재림은 그 때에 이 지구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동시에 볼 수 있게, 동시에 알 수 있게, 그렇게 임하신다.

주님의 재림은 초림 예수처럼 사람의 모습으로 오시지 않는다. 하나님으로 오시는 것이다. 온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 심판 주 하나님으로 오시는 것이다.

이어서 하신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들이 모일지니라” 하신 이 묘한 말씀의 뜻은 또 무엇인가?

주검 = 송장. 여기서는 영적인 송장을 뜻한다.

하나님을 믿지 않아 그 영이 죽어 있는 자들, 또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그 영이 죽어 있는 자들이 주검인 것이다.

독수리 = 죽은 송장들을 뜯어먹으려고 모여드는 사단과 귀신의 세력, 곧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을 뜻한다.

이 세상에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이 나오는 것은 그들에게 속아  넘어가는 어리석은 신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영적으로 송장 같은 어리석은 신자들이 있으니까 그것을 뜯어먹으려는 독수리 같은 거짓 목회자들이 활개를 치고 있는 것이다.

독수리는 하나님의 신성을 상징한다. 하지만, 여기서는 주검을 보고 그것을 먹겠다고 모여드는 가짜 신령한 자들, 신령한 것을 가장하는 자들을 뜻한다.

29절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어떤 사람들은 이 말씀을 상징적인 뜻으로만 해석하려고 한다. 정말로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빛을 잃고,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그런 사건들이 정말로 문자 그대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도저히 그런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상상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오시는 사건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것은 인간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다. 어떻게 예수님이 몸을 입고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내려오시는가?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믿는다.

예수님이 몸을 가지시고 공중에서 지상으로 강림하신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어서 그것을 영적인 것으로 해석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예수님은 성령의 모습으로 이미 강림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주의 재림은 역사적 사건인 것이다. 실제로 우리 육신의 눈에 보이게, 우리 눈앞에서 일어나게 되는 사건인 것이다. 예수님은 몸, 천사와 같은 몸을 입으시고, 부활하셨을 때의 모습처럼, 승천하실 때의 모습처럼, 이 땅에 오실 것이다.

어떻게 그것을 믿는가?  성경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29절의 말씀도 실제로, 문자 적으로, 우리 육신의 눈에 보이게, 그렇게 일어나는 사건이다.

말씀 그대로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 곧 천체의 운행 질서가 무너지고 한 동안 천체에 큰 이변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30절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환난이 지나가고 즉시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하늘의 별들이 떨어진다. 천체의 질서가 흔들린다. 그 때, 하늘에서 주님 재림의 징조가 보인다.

해가 빛을 잃고 캄캄해진 저 하늘 멀리 황금빛으로 빛나는 눈부신 빛이 보이며 주님 강림의 징조가 나타나기 시작할 것이다. 그것은 너무나 밝고 찬란한 빛일 것이다.

누구의 눈에도 그것은 예수님 재림의 징조로 보일 것이다. 그래서 예수를 믿지 않던 자들과 예수를 핍박했던 자들이 통곡을 하게 된다.

그 찬란히 빛나는 황금 빛 저 너머에서 예수님이 구름을 타시고 능력과 큰 권능으로 내려오시는 모습이 보인다.

재림하시는 예수님의 영광은 햇빛보다도 달빛보다도 별빛보다도 더 밝고 찬란하다. 그래서 해도 미리 빛을 잃고 달도 빛을 잃고 하늘의 별들도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이 흔들렸을 것이다.

31절

“저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예수님께서 지상에 도착하시기 전, 잠시 공중에 머물러 계신다.

천사들의 큰 나팔 소리(혹 하나님의 나팔 소리)가 들리고 휴거가 일어난다. 주를 위해 죽었던 자들이 부활하여 들어 올려지고, 이어 그 때까지 살아서 환난을 통과한 자들이 홀연히 변화되어 휴거 된다. 곧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신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는 큰 나팔 소리가 난다.

하나님께서 땅으로 강림하실 때에는 언제나 나팔 소리가 난다.

고린도전서 15장 51-52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절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마태복음 24장 31절

“저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위의 세 말씀은 같은 시점의 동일한 사건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다. 곧 환난 후에 있을 휴거를 말씀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나팔> <하나님의 나팔> <큰 나팔>은 다 같은 나팔, 주님 재림을 알리는 나팔 소리이다.

 

이제 환난은 끝나면, 해와 달이 어두워지고 별들이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이 흔들리며,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 보이며, 인자가 구름을 타고 오시는 모습이 보인다.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이 내려오며, 휴거가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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