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에는 곳곳에 마지막 종말 때에 있을 예언의 말씀들이 숨어 있다. 그 중에는, 가령, 호세아 5장 15절에서 6장 3절의 말씀처럼, 그 모습을 반쯤 표면에 노출시키고 있어서 웬만큼 주의를 해서 보면 곧 알 수 있는 것도 있지만, 반면, 그 모습을 깊이 숨기고 있어서 힘을 드려 파내려 가야만 비소서 알 수 있는 그런 것도 많이 있다.
호세아 4장 5절의 말씀을 보자.
“내가 네 어미를 멸하리라”
내가 네 어미를 멸하다니, 그게 대체 무슨 뜻인가?
내가 = 하나님이
네 = 이스라엘 백성들의. 또, 이 말씀을 읽는 우리들의.
하나님이 우리들의 어미를 멸하시겠다는 말씀이다.
그럼, 그 어미란 누구인가?
우리의 최초의 어미는 하와였다.
하와는 하나님 명령을 불순종하고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서 사단의 종이 되었다. 하와는 하나님을 버리고 사단과 간음함으로 인류 최초의“음녀”가 되었다.
이 인류 최초의 음녀인 하와는 그 음행한 죄로 인하여 에덴을 쫓겨 나온 후에, 자식을 낳는다. 이래서 인류는 죄 가운데서 태어난다. 사람은, 하나님을 떠나 사단과 간음한 음녀의 자식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태어날 때부터 죄인인 것이다.
다윗은 시편 51편 5절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우리 인류의 어미는 하나님을 떠나 사단과 간음을 한 “음녀”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음녀의 자손 중에서 하나를 택하여 그를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신다. 그가 아브라함이며, 그의 자손인 이스라엘 백성이다.
그런데, 그 택함 받은 민족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큰 민족을 이루자 또다시 하나님을 떠나 이방의 우상을 숭배하게 된다.
에스겔 16장 6-7절의 말씀을 보자.
“내가 네 곁으로 지나갈 때에 네가 피투성이가 되어 발짓하는 것을 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라 다시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라 하고 내가 너로 들의 풀 같이 많게 하였더니 네가 크게 자라고 심히 아름다우며 유방이 뚜렷하고 네 머리털이 자랐으나 네가 오히려 벌거벗은 적신이더라”
자, 이 말씀을 풀어보자.
길가에 버려져 피투성이가 되어 발짓하는 어린 것 같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시고 거두어 주신다.
그래서 그들은 들의 풀같이 많이 번성하였다. 그리고 심히 아름다운 처녀(하나님 앞에 우리는 다 여자다)로 자랐다. 그러나 아직은 들에서 버릇없이 마구 자란 거친 처녀였다.
벌거벗은 적신 = 의인이 되지 못한 상태. 영적으로 자라지 못한 상태.
적신(赤身) = 벌거벗은 알몸.
이어 16장 8절의 말씀을 보자.
“내가 네 곁으로 지나며 보니 네 때가 사랑스러운 때라 내 옷으로 너를 덮어 벌거벗은 것을 가리우고 네게 맹세하고 언약하여 너로 내게 속하게 하였었느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큰 민족으로 자라난 것을 기쁘게 여기시고 그들의 죄를 덮어 주시고 언약을 하여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소유로 만드신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신부가 된다.
“옷으로 덮다”
보호해주다. 결혼하다. 죄를 가려주다.
16장 9-13절의 말씀을 보자.
“내가 물로 너를 씻겨서 네 피를 없이 하며 네게 기름을 바르고 수 놓은 옷을 입히고 물돼지 가죽신을 신기고 가는 베로 띠우고 명주로 덧입히고 패물을 채우고 팔고리를 손목에 끼우고 사슬을 목에 드리우고 코고리를 코에 달고 귀고리를 귀에 달고 화려한 면류관을 머리에 씌웠나니 이와 같이 네가 금, 은으로 장식하고 가는 베와 명주와 수 놓은 것을 입으며 또 고운 밀가루와 꿀과 기름을 먹음으로 극히 곱고 형통하여 왕후의 지위에 나아갔느니라”
“물로 씻기고 피를 없이하여 기름을 바르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깨끗하게 씻기신다.
물로 씻기고 = 불의를 용서하고 정결하게 하다. 물은 성령. 성령으로 죄를 씻어 없애다.
피를 없이하여 = 상처를 치료하고. 죄를 용서하시고.
기름을 바르고 = 상처를 낫게 하다. 속죄하다. 회복시키다.
“수놓은 옷을 입히고 명주로 덧입히고”
신부의 옷을 입히다. 하나님의 신부 삼다.
예수로 옷 입고 하얀 세마포 옷을 덧입다.
우리가 입어야 할 두 가지 옷. 예수로 옷 입는 것과 하얀 세마포 옷을 입는 것.
“패물을 채우고 화려한 면류관을 머리에 씌웠더니”
신부를 아름답게 꾸미다.
패물 = 능력. 면류관 = 권세.
하나님의 신부에 어울리는 귀한 것들을 주시다.
벌거벗은 죄인인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데려다가, 죄를 없이하여 깨끗하게 해 주시고, 신부 단장을 시켜 주시고, 능력과 권세를 주시다.
이스라엘 신부의 예복은 제사장의 예복과 매우 비슷하다. 이것은 이스라엘 신부 단장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대한 예배를 상징하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하나님에 대한 예배는 내가 신부 단장을 하고 나를 하나님의 신부로 드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예배 = 신부 단장을 하고 나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
신부 단장을 하다 = 하나님 신부가 될 수 있는 믿음과 사랑과 헌신과 정결함과 순종을 갖추다.
“고운 밀가루와 꿀과 기름”
이스라엘 축제의 음식으로 이스라엘의 산물 중 가장 맛이 좋은 음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
고운 밀가루와 꿀과 기름 = (구약의 관점에서) 하나님의 의와 말씀과 성령.
“극히 곱고 형통하여 왕후의 지위에 나아갔느니라”
너무나 아름답게 자라서 왕후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하나님의 제사장 나라가 되다. 하나님의 신부로서의 자격을 얻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씻기시고, 신부 옷을 입히시고, 여러 가지 아름다운패물로 장식하게 하시고, 여러 가지 맛있는 음식을 먹게 해서 하나님의 신부로 부족함이 없게 해 주셨다.
그때까지 이스라엘이 한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다. 이렇게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일방적 은혜였다.
16장 14절
“네 화려함을 인하여 네 명성이 이방인 중에 퍼졌음은 내가 네게 입힌 영화로 네 화려함이 온전함이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스라엘의 명성은 이방 여러 나라에 퍼지게 되었다. 그것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크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화려함은 온전했다. 다른 것과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를 사랑하셔서 그에게 내리신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잠시 28장 12-17절의 말씀을 보자.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너는 완전한 인이었고 지혜가 충족하며 온전히 아름다왔도다 네가 옛적에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어서 각종 보석 곧 홍보석과 황보석과 금강석과 황옥과 홍마노와 창옥과 청보석과 남보석과 홍옥과 황금으로 단장하였었음이여 네가 지음을 받던 날에 너를 위하여 소고와 비파가 예비되었었도다 너는 기름 부음을 받은 덮는 그룹임이여 내가 너를 세우매 네가 하나님의 성산에 있어서 화광석 사이에 왕래하였었도다 네가 지음을 받던 날로부터 네 모든 길에 완전하더니 마침내 불의가 드러났도다 네 무역이 풍성하므로 네 가운데 강포가 가득하여 네가 범죄하였도다 너 덮는 그룹아 그러므로 내가 너를 더럽게 여겨 하나님의 산에서 쫓아 내었고 화광석 사이에서 멸하였도다 네가 아름다우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으며 네가 영화로우므로 네 지혜를 더럽혔음이여 내가 너를 땅에 던져 열왕 앞에 두어 그들의 구경거리가 되게 하였도다”
에스겔 28장의 이 말씀은 사단이 된 루시퍼 천사에 관한 말씀이다. 루시퍼 천사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천사였다. 하나님은 그를 각종 아름다운 보석으로 단장하게 하시고,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소고와 비파를 예비해 주셨다. 그는 완전한 인이었고 지혜가 충족하여 온전하여 온전히 아름다웠다. 그는 지음을 받던 날부터 모든 길에 완전하였다.
그런데, 마침내 불의가 들어 났다. 그는 무역이 풍성하므로 강포가 가득해졌고, 아름다우므로 마음이 교만해졌으며, 영화로우므로 지혜를 더럽혔다. 하나님은 그를 하나님의 성산에서 쫓아내셨고 화강석 사이에서 멸하셨다.
이 천사는 지상에 내려와 사단이 된다. 그는 하나님의 역사를 훼방하여 사람들을 미혹하고 마지막 때에는 천년 동안 무저갱 속에 묶여 있다가 끝내는 불과 유황 못 곧 영원한 지옥 속에 빠지게 된다.
자, 다시 에스겔 16장의 말씀으로 돌아가자.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입히신 영화로 그 화려함이 온전하여 그 명성이 이방 여러 나라에 퍼지게 되었다.
그때, 이스라엘은 어떻게 했는가? 이방에게 하나님을 증거하고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렸는가?
“그러나 네가 네 화려함을 믿고 네 명성을 인하여 행음하되 지나가는 자면 더불어 행음을 많이 행하므로 네 몸이 그들의 것이 되었도다”
피투성이가 되어 발짓하던 것을 보시고 불쌍히 여겨 살려 주시고, 씻어 주시고, 아름다운 신부 옷을 입혀 주시고, 아름답고 귀한 보석으로 단장시켜 주시고, 맛있는 음식을 먹여 키워서 하나님의 신부가 되게 하였더니 그 화려함과 명성으로 자만해져서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하나님을 배반하여 지나가는 자면 아무나 붙잡고 행음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신부, 이스라엘은 주변 이방 나라의 소유가 되고 말았다.
“자나가는 자면 아무나 붙잡고 행음하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 우상 신을 만나면 다 그것을 다 받아들여 자기들의 신으로 숭배했다.
“네 몸이 그들의 것이 되었도다”
하나님의 소유였던 이스라엘은 그만 이방 신의 소유가 되었다.
에스겔 16장 16-19절
“네가 네 의복을 취하여 색스러운 산당을 너를 위하여 만들고 거기서 행음하였나니 이런 일은 전무후무하니라 네가 또 나의 준 금, 은 장식품으로 너를 위하여 남자 우상을 만들어 행음하며 또 네 수 놓은 옷으로 그 우상에게 입히고 나의 기름과 향으로 그 앞에 베풀며 또 내가 네게 주어 먹게 한 내 식물 곧 고운 밀가루와 기름과 꿀을 네가 그 앞에 베풀어 향기를 삼았나니 과연 그렇게 하였느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때, 나는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된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것을 가지고 우상을 위해 사용할 때, 나는 어리석고 악한 종이 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그 귀한 것들을 우상을 섬기는데 사용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이방의 소유가 되고 말았다. 영적으로 우상과 사단의 종이 되었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려 정치적으로도 이방의 속국이 되고 만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신다.
16장 37-43절
37 내가 너의 즐거워하는 정든 자와 사랑하던 모든 자와 미워하던 모든 자를 모으되 사방에서 모아 너를 대적하게 할 것이요 또 네 벗은 몸을 그 앞에 드러내어 그들로 그것을 다 보게 할 것이며
38 내가 또 간음하고 사람의 피를 흘리는 여인을 국문함 같이 너를 국문하여 진노의 피와 투기의 피를 네게 돌리고
39 내가 또 너를 그들의 손에 붙이리니 그들이 네 누를 헐며 네 높은 대를 훼파하며 네 의복을 벗기고 네 장식품을 빼앗고 네 몸을 벌거벗겨 버려두며
40 무리를 데리고 와서 너를 돌로 치며 칼로 찌르며
41 불로 너의 집들을 사르고 여러 여인의 목전에서 너를 벌할지라 내가 너로 곧 음행을 그치게 하리니 네가 다시는 값을 주지 아니하리라
42 그리한즉 내가 네게 대한 내 분노가 그치며 내 투기가 네게서 떠나고 마음이 평안하여 다시는 노하지 아니하리라
43 네가 어렸을 때를 기억지 아니하고 이 모든 일로 나를 격노케 하였은즉 내가 네 행위대로 네 머리에 보응하리니 네가 이 음란과 네 모든 가증한 일을 다시는 행하지 아니하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은 간음하는 여인 이스라엘을 남과 북으로 갈라놓으신다.
하나님께서는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간음하는 북 이스라엘을 앗수르에 붙이신다. 북 왕국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 멸망당하는 것을 보고도 남 왕국 유다는 회개할 줄 모르고 계속 이방 우상들과 음행을 한다.
하나님은 바벨론이라는 몽둥이로 유다를 치신다. 70년 동안의 베벨론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그들은 또다시 우상 숭배에 빠지고 만다.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 신과 행음을 하는 구약 교회는 구약 성도들을 낳은 그들의 어미이다. 이 음란한 어미인 구약 교회는 결국 주후 70년 로마 군에 의해 멸망 당하고 만다.
호세아 4장 5절 “내가 네 어미를 멸하리라” 하신 말씀이 그대로 성취되었다.
가증한 것들의 어미
호세아 4장 5절 “내가 네 어미를 멸하리라” 하신 말씀은 이스라엘의 멸망으로 성취되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그 말씀이 완전히 성취된 것은 아니다. 마지막 때에 또다시 간음한 여자, 가증한 것들의 어미인 음녀 교회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마지막 때에, 신약 교회에서 대대적인 배도가 일어난다.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고 사람들은 하나님을 버리고 적그리스도를 따라가게 된다.
이 배도한 교회가 계시록 17장에 나오는 “큰 음녀”인 것이다.
계시록 17장 3-5절의 말씀을 보자.
“곧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광야로 가니라 내가 보니 여자가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 그 짐승의 몸에 참람된 이름들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으며 그 여자는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 그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
구약 성경은 이스라엘 구약 교회에 주신 말씀이고,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은 신약 교회에 주신 말씀이다. 바꿔 말하면, 구약 교회에는 구약 성경을 주셨고, 신약 교회에는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을 함께 주셨다.
만일, 구약 성경이 구약 교회에만 주신 말씀이라고 한다면, 신약 성도인 우리들은 구약을 읽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구약 성경의 여러 예언의 말씀들이 구약 교회 위에 성취되었을 뿐 아니라, 지금도 살아서 신약 교회 위에도 그대로 성취되고 있는 것이다.
그 옛날, 하나님께서 여러 구약 선지자들의 입을 통해서 주신 예언의 말씀들이 구약 교회 위에 성취되었을 뿐 아니라, 지금 우리 신약 교회 위에도 그대로 이루어지고 이으며, 또 마지막 때에도, 그대로 그렇게 이루어질 것이다,
호세아 4장 5절 “내가 네 어미를 멸하리라”하신 말씀은 구약 교회 멸망으로 성취되었으나, 이제 그 말씀은 다시 살아서 마지막 때에,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인 “큰 음녀” 위에 성취될 것이다.
그런데 어떤 모양으로 그것이 성취될 것인가?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는 어떤 모양으로 그것을 멸하실 것인가? 하는 것을 설명한 성경 말씀이 바로 에스겔 16장이다. 즉 에스겔 16장 1-43절의 말씀은, 호세아 4장 5절 “내게 네 어미를 멸하리라”하신 말씀에 대한 그 구체적 설명인 것이다.
하나님은 선지자 호세아의 입을 통해, 네 어미를 멸하시겠다고 말씀하시고, 선지자 에스겔의 입을 통해서는 그 멸하시는 구체적 방법을 말씀하신 것이다.
에스겔 16장 1-43절은 놀라운 예언의 말씀들을 숨겨 가지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구약 교회에 주신 말씀이지만, 그러나 그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모두가 신약 교회에 일어날 구체적 예언의 말씀들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에스겔 16장 1-43절의 말씀을 구약의 입장에서 읽으면 그것은 확실히 구약 교회 타락에 대한 하나님의 강한 책망의 말씀이며, 구약 교회 멸망에 대한 예언의 말씀이다.
그러나 신약의 입장에서 다시 들여다보면 그것은 신약 교회에 일어날 너무나도 생생하게 살아있는 예언의 말씀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 에스겔 16장 1-43절의 말씀을 신약의 입장에서 들여다보기로 하자.
에스겔 16장 6-14절의 예언
- 신약 교회를 택하심 -
6절의 말씀을 다시 한 번 일어보자.
“내가 네 곁으로 지나갈 때에 네가 피투성이가 되어 발짓하는 것을 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라 다시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라 하고”
하나님께서는 갈대아 우르에 사는 데라의 아들 아브람을 보시고 그를 택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택하신 것은 그가 각별한 의인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하나님 보시기에 피투성이가 되어 발짓하는 벌거숭이에 불과했다. 하나님은 그를 보시고 당신의 백성으로 택하신다.
아브라함의 자손들은 크게 번성한다.
7절의 말씀
“내가 너로 들의 풀 같이 많게 하였더니 네가 크게 자라고 심히 아름다우며 유방이 뚜렷하고 네 머리털이 자랐으나 네가 오히려 벌거벗은 적신이더라”
벌거벗은 적신 = 옷을 입지 않은 벌거숭이. 죄를 가리지 못한 죄인.
들의 풀 = 많기는 하나 별 쓸모가 없다.
아브라함의 자손은 큰 민족을 이룬다. 출애굽 후에, 광야에서 율법을 받고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갔으나 아직 그들은 하나님 앞에 의로운 상태에 이르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은 아직은 벌거벗은 어린것처럼 죄 가운데 있었다.
8절
“내가 네 곁으로 지나며 보니 네 때가 사랑스러운 때라 내 옷으로 너를 덮어 벌거벗은 것을 가리우고 네게 맹세하고 언약하여 너로 내게 속하게 하였었느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네 겉으로 지나며 보니”
6절에서는 피투성이가 되어 발짓하는 어린것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를 살려 주신다. 6절의 “내가 네 곁으로 지나갈 때에는”하신 말씀은 아브라함을 택하셨을 때에 하신 말씀이다.
그럼, 8절에서 “내가 네 곁으로 지나며 보니” 하신 말씀은 누구에게 하신 말씀인가?
8절의 말씀은 바로 우리 신약 교회를 향하신 말씀인 것이다.
6절의 말씀
“내가 네 곁으로 지나갈 때에 네가 피투성이가 되어 발짓하는 것을 보고”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태하심
8절의 말씀
“내가 네 곁으로 지나며 보니 네 때가 사랑스러울 때라”
하나님께서 신약 교회를 택하심.
자, 6절과 8절의 차이점을 보자.
6절에서는“네 겉으로 지나갈 때에”
8절에서는“네 곁으로 지나며 보니”
6절“지나갈 때에”지나갈 때에 우연히 보시다.
8절“지나며 보니” 지나면서 일부러 보다 .적극적인 관심.
6절 피투성이가 되어 발짓하는 어린것이었다.
8절 다 자란 사랑스런 처녀다.
6절에서는, 피투성이가 되어 발짓하는 어린것이 불쌍해서 돌보아 주신다.
8절에서는, 그 모습이 사랑스러워 옷으로 덮어 주신다.
이것이 바로 구약 교회와 신약 교회의 차이인 것이다.
또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이 피투성이 어린 것 같을 때에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돌보아 주시지만, 우리의 신앙이 자라서 사랑스러운 처녀처럼 되었을 때에는 우리를 사랑하신다.
계속해서 8절의 말씀을 풀어 보자.
“내 옷으로 너를 덮어”
옷으로 덮다 = 결혼하다. 보호하다. 죄를 덮다. 예수로 옷 입다. 우리는 예수로 옷이어야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얻는다.
“벌거벗은 것을 가리우고”
죄를 가리우다. 예수로 옷 입어야 우리는 죄를 가릴 수 있다.
“맹세하고 언약하여”
새로운 언약 곧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고 그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어 구원받게 되는 새로운 언약.
“너로 내게 속하게 하였었느니라”
우리를 곧 신약 교회를 하나님의 소유로 만드셨다.
9절의 말씀을 보자.
“내가 물로 너를 씻겨서 네 피를 없이 하며 네게 기름을 바르고”
물 = 예수님의 물과 피.
피 = 죄
기름 = 성령.
예수님의 십자가의 물과 필로 네 죄를 씻겨 죄를 없이하고 성령을 부어서.
놀랍게도 에스겔 16장 9절의 말씀 속에 우리 기독교의 구원의 원리가 숨어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피로 우리의 죄를 씻기시고, 성령을 주셔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신다.
이어 10-12절의 말씀.
“수 놓은 옷을 입히고 물돼지 가죽신을 신기고 가는 베로 띠우고 명주로 덧입히고 패물을 채우고 팔고리를 손목에 끼우고 사슬을 목에 드리우고 코고리를 코에 달고 귀고리를 귀에 달고 화려한 면류관을 머리에 씌웠나니”
아름답게 단장한 신부의 모습. 하나님께서 신약 교회에게 내려주신 갖가지 은혜와 은사.
누가 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를 보면, 회개하고 돌아오는 아들에게 아버지는 제일 좋은 옷을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워주고 신을 신기신다.
옷 = 우리의 죄를 덮어주는 의의 옷 = 예수
신 = 종은 신을 신지 못한다. 신을 신긴다는 것은 종의 신분에서 아들의 신분을 회복하는 것을 뜻한다.
출애굽기 3장 1-5절에 보면, 모세가 하나님의 산 호렙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장면이 나온다. 떨기나무에 붙은 불을 보려고 가까이 가는데,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죄인인 사람은 거룩한 땅에서는 신을 신을 수 없다. 그래서 여호와는 모세에게 신을 벗으라고 명령하신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다시 신을 신기신다.
누구나 예수에게로 돌아오는 자는 그의 피로 죄사함을 받기 때문에 거룩한 땅에서도 신을 신 수 있는 것이다.
13절의 말씀을 보자.
“이와 같이 네가 금, 은으로 장식하고 가는 베와 명주와 수 놓은 것을 입으며 또 고운 밀가루와 꿀과 기름을 먹음으로 극히 곱고 형통하여 왕후의 지위에 나아갔느니라”
“고운 밀가루와 꿀과 기름”
이스라엘 축제의 음식으로 이스라엘의 산물 중 가장 맛있는 음식.
그러나 다른 영적인 뜻이 숨어 있다. 고운 밀가루에 꿀을 섞고 기름을 발라 구우면 달콤하고 맛있는 과자가 된다.
출애굽기 16장 31절의 말씀을 보자.
“이스라엘 족속이 그 이름을 만나라 하였으며 깟씨 같고도 희고 맛은 꿀 섞은 과자 같았더라”
이스라엘 족속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다. 광야에서는 만나를 먹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광야 같은 이 세상에서도 만나를 먹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다. 광야 같은 이 세상에서 우리가 먹어야 할 만나는 예수님이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6장 47-51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
고운 밀가루와 꿀과 기름 = 만나 = 예수
꿀 = 진리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심령에 꿀처럼 달다. 꿀을 먹으면 눈이 밝아진다. 진리의 말씀을 먹으면 영안이 밝아진다.
기름 = 성령. 생명. 부활을 뜻한다.
고운 밀가루는 무엇인가?
고운 밀가루는 하나님께 화목제로 드리는 제물. 예수님은 하나님과 죄인인 우리 사이의 화목을 위해 희생 제물로 드려졌다. 따라서 고운 밀가루는 예수님의 몸을 뜻한다.
고은 밀가루는 예수님이요, 꿀은 말씀이요, 기름은 성령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중보자요, 말씀이요, 또한 성령이시다.
고운 밀가루와 꿀과 기름은 예수님이다.
“극히 곱고 형통하여”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며,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를 먹으면 극히 곱고 아름답게 변한다.
“왕후의 지위에 나아갔느니라”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인 예수를 먹고 극히 곱고 형통하여 왕이신 예수님의 신부가 되는 자격을 얻게 되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신부 단장을 시키시고, 하늘에서 내려온 산 떡이신 예수님을 먹게 해서 우리를 극히 곱고 형통하게 하여 우리를 예수님의 신부 삼으셨다.
왕후의 자리는 우리 성도가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자리이다. 우리는 예수님을 열심히 먹어야 그 최고의 자리, 왕후의 자리까지 오를 수 있다.
교만한 루시퍼는 자기가 스스로 왕에 자리에까지 오르려고 하다가 그만 지상으로 떨어져 마귀가 되고 말았다. 우리는 왕의 지리에는 오를 수 없다, 우리가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자리는 왕후의 지리이다.
“네가 금, 은으로 장식하고”
금은 하나님의 불변하는 본성을 뜻한다. 지성소의 벽은 금으로 입히고, 증거궤도 금을 입히다.
은은 금 다음으로 귀한 금속이며, 그 흰색으로 해서 성도들의 순결을 뜻한다. 신약 교회는 하나님의 권세와 영광을 힘입어 하나님의 거룩함과 성도의 순결함을 들어낸다.
“가는 베”
세마포 옷. 예수님 앞에 설 수 있는 성도의 바른 행실.
“명주와 수놓은 것”
예수로 옷 입는 것.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의의 옷.
우리가 입어야 하는 옷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하나님 아버지 앞에 설 수 있는 옷 곧 예수님으로 옷 입는 것. 우리는 우리의 노력이나 공로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예수님의 공로에 의지해서 그의 몸을 우리가 덧입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우리의 옳은 행실의 옷이다. 우리는 예수로 옷 입고 아버지 앞에 설 수는 있지만, 또한 옳은 행실의 옷을 입어야 예수님 앞에 설 수 있다.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아버지 앞에 서기 위해서는 예수로 옷 입어야 하지만, 예수님 앞에 서기 위해서는 우리의 옳은 행실이라는 옷을 입어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예수님 앞에 서기 위해서는 옳은 행실 곧 예수님 말씀에 대한 순종이 있어야 한다. 말씀에 대한 순종 없이 예수님과 동행할 수는 없는 것이다.
신약 교회는 하나님 아버지 앞에 설 수 있는 의의 옷을 입고, 예수님 앞에 설 수 있는 옳은 행실의 옷을 입고, 하나님의 권세와 영광을 힘입어 세상에 빛을 내며, 살아 있는 만나인 예수님을 먹고 극히 곱고 형통하여 죄사함을 받은 성결한 모습으로 예수님의 신부가 될 자격을 얻게 되었다.
이어 14절의 말씀을 보자.
“네 화려함을 인하여 네 명성이 이방인 중에 퍼졌음은 내가 네게 입힌 영화로 네 화려함이 온전함이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은 무엇이나 또 언제나 온전하다. 그 온전함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교회는 그 명성이 온 이방 나라에 멀리 퍼지게 되었다.
에스겔 16장 15-32절의 예언
- 신약 교회의 타락과 변질 -
하나님을 찬양하는 천사였던 루시퍼는 그 자신의 아름다움으로 인하여 마음이 교만해져서 타락했듯, 신약 교회도 그 화려함과 그 명성으로 인하여 타락하고 만다.
에스겔 16장 15-32절의 말씀은 신약 교회의 타락과 변질에 대한 예언의 말씀이다.
15절부터 보자.
“그러나 네가 네 화려함을 믿고 네 명성을 인하여 행음하되 무릇 지나가는 자면 더불어 음란을 많이 행하므로 네 몸이 그들의 것이 되도다”
교회는 하나님을 떠나 세상과 더불어 행음을 하게 된다. 교회가 신랑인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과 결혼을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과 결혼을 한 교회는 교회사적으로 보아 로마 국교 교회이다.
로마 국교 교회는 주변 나라들의 이단적이며 이교적인 요소들을 교회 안으로 마구 받아들인다. 말하자면 지나는 자면 더불어 음행을 한다. 뿐만 아니라, 세상 정치권력을 교회 안으로 가지고 들어온다.
“네 몸이 그들의 것이 되도다”
그 결과 하나님의 교회가 하나님을 떠난 이방의 교회, 세상의 교회가 되고 말았다.
16-19절의 말씀
“네가 네 의복을 취하여 색스러운 산당을 너를 위하여 만들고 거기서 행음하였나니 이런 일은 전무후무하니라 네가 또 나의 준 금, 은 장식품으로 너를 위하여 남자 우상을 만들어 행음하며 또 네 수 놓은 옷으로 그 우상에게 입히고 나의 기름과 향으로 그 앞에 베풀며 또 내가 네게 주어 먹게 한 내 식물 곧 고운 밀가루와 기름과 꿀을 네가 그 앞에 베풀어 향기를 삼았나니 과연 그렇게 하였느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네가 네 의복을 취하여 색스러운 산당을 만들고”
의복은 우리의 벌거벗은 수치를 가리기 위해 하나님께서 입혀 주신 것이다 그런데, 이 귀한 의복을 벗어 산당을 만든다. 의복을 취하여 산당을 만들기 위해서는 옷을 벗어 그 수치를 다시 들어내야 한다. 다시 죄인으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의 옷 = 예수님
예수님으로 산당을 만들다 = 예수님의 교회를 우상의 교회로 만든다.
“이런 이은 전무후무하니라”
이런 일은 일찍이 없었던 일이다. 도저히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였다.
“나의 준 금, 은 장식품으로 너를 위하여 남자 우상을 만들어”
금 = 하나님.
하나님으로 우상을 만들다. 그들은 예수로 우상을 만들었다.
은 = 성결한 성도. 뛰어난 믿음의 성인들로 우상을 만든다.
그들은 그렇게 우상을 만들어 놓고 그 우상을 숭배한다.
남자 우상 = 겸하여 섬기는 우상이 아니라 신으로 섬기는 우상.
여자 우상 = 하나님과 겸하여 섬기는 우상.
“우상을 만들어 행음하며”
하나님을 버리고 그 우상을 남편으로 섬긴다. 영적 간음.
“수놓은 옷으로 그 우상에게 입히고”
옷은 우리의 죄를 가리는 예수님이다. 그 옷(예수)을 우상에게 입히다 = 우상을 예수님 모습으로 만든다. 예수님 모습으로 우상을 만든 다음, 그 우상을 예수님이라고 말하며 경배한다. 그들이 경배하는 것은 예수님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만들어 놓은 우상인 것이다.
“너를 위하여”
그들이 이런 우상을 만든 것은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저기 자신들의 유익을 위해서이다. 모든 우상 숭배 행위는 하나님을 위하지 않고 나 지신을 위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하나님을 위하지 않고 나를 위하는 마음 곧 탐심이 우상 숭배를 낳는다.
“나의 기름과 향으로 그 앞에 베풀며 또 내가 네게 주어서 먹게 한 내 식물 곧 밀가루와 기름과 꿀을 네가 그 앞에 베풀어 향기를 삼았나니”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것들을 다 우상에게 바친다.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것들을 가지고 우상 숭배하는데 사용한다.
기름 = 생명. 향 = 기도. 고운 밀가루 = 충성 꿀 = 진리의 말씀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귀한 것들이다. 그런데, 그들은 이것들을 다 우상에게 바쳤다.
그들은 우상에게 생명을 바치고, 우상에게 기도를 하고, 우상에게 충성을 바치고,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우상의 말로 바꾸어버렸다.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변형시켜서 우상의 가르침으로 만들었다.
“과연 그렇게 하였느니라”
놀랍게도 그들은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하신 그 하나님의 아들을 우상으로 만든 것이다.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절대로 거짓은 말씀하시지 않는 여호와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다.
20절의 말씀
“또 네가 나를 위하여 낳은 네 자녀를 가져 그들에게 드려 제물을 삼아 불살랐느니라”
구약 시대 가나안 지방에서는 아들을 불에 살라 신에게 바치는 풍습이 있었다. 특히 몰랙신을 섬기는 지방에서 심했는데, 이것은 하나님이 가증이 여기고 금하시는 일이었다. 그러나 타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방신의 이 가증한 풍습을 따라 그들의 아들을 불살라 바치는 일을 행하게 되었다.
신약 교회에 들어와서도 중세 암흑시대 교회에서는 성령이 충만하여 하나님을 바르게 믿고 하나님의 참 뜻을 따르려는 성도(아들)들을 잡아다가 종교 재판을 통해 신성 모독죄 같은 죄목을 붙여 화형에 처하고 하였다.
이 20절 말씀의 영적인 뜻은, 하나님을 믿고 구원받을 사람들을 교회가 타락해서 그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영적으로 죽게 하는 일을 뜻한다. 이런 뜻에서, 교회사상(敎會史上) 참으로 많은 교회들이 믿음의 아들들을 죽였던 것이다.
“네가 나를 위하여”
교회가 하나님을 위하여.
“낳은 자녀”
교회가 하나님을 위하여 자녀를 낳다. 교회가 하나님의 위하여 믿음의 자녀를 낳다. 구원받을 생명을 낳다. 우리가 교회에 나와 하나님을 믿고 생명을 얻으면, 그 생명이 바로 교회가 하나님을 위해 낳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이다.
교회가 하나님과 함께 할 때에는 교회는 많은 자녀들(생명을 얻은 성도들)을 낳지만, 교회가 타락하면, 생명을 얻을 자녀들을 다 죽게 한다.
“그들에게 드려 제물을 삼아”
교회가 타라하면 그 교회는 사단에게 속하게 된다. 교회가 사단에게 가면, 교회가 하나님을 위해 낳은 자녀들을 죽여 사단에게 제물로 바치는 것이 된다.
지금 이 시대에도 참으로 많은 교회들이 타락하고, 하나님의 자녀들을 죽여 사단에게 제물로 바치고 있다.
23-24절의 말씀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는 화 있을진저 화 있을진저 네가 모든 악을 행한 후에 너를 위하여 누를 건축하며 모든 거리에 높은 대를 쌓았도다”
23절부터는 중세 암흑기 교회에 대한 예언의 말씀이다.
어째서 그렇다고 생각하는가?
23절 이하의 말씀을 풀어 나가면 그것을 알 수 있다.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를 창조한 너희의 주인인 나 하나님 여호와가 말한다. 그러니 정신을 차리고 들어라.
“네가 모든 악을 행한 후에”
지금까지의 모든 악을 행하고도 부족하여서.
지금까지의 모든 악 = 타락한 로마 국교가 저지른 죄 즉 주위 나라들의 이교적, 이단적 요소들을 마구 받아들이며, 또 세상 권력과 하나가 되어 교회의 순수성을 상실한 죄.
“너를 위하여 누를 건축하며 모든 거리에 높은 대를 쌓았도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가 아니라 교회 자체의 영광을 위하여, 혹은 성직자들의 영광을 위하여 높고 광대한 교회 건물을 짓고 또 수많은 조각상들을 만들어 세웠다.
“화 있을진저 화 있을진저”
이런 자들에게는 화가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교회를 타락시키고, 높고 광대한 교회 건물을 자기 자신의 영광을 위해 짓는 자들은 화가 있을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다.
“누와 높은 대”
구약 시대, 바알 산당이나 길거리 십자로에 세워진 작은 방인데, 이 방은 소위 “성스런 매춘 행위”를 위한 장소로 사용되었다.
여기서 참고삼아 가나안 종교의 대표격인 바알 신앙에 대해 간단히 알아 보자.
바알 신의 우두머리는 “엘”이며, 그의 아내는“아세라”이다.
그리고 엘과 아세라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바알”이다.
바알은 비와 식물의 신이며, 그의 아내 아나스는 사랑과 전쟁의 신이다. 그런데 이 바알과 아나스의 성적 결합에 의해서 자연의 풍요와 토지의 비옥함이 재생산된다고 믿었다. 그래서 백성들도 바알과 아나스와의 성관계를 모방하는 것에 의해 풍족한 산물을 얻는 것으로 생각하고 산당에서 분향이 끝나면 산당의 여자 신관들과 종교 의식의 하나로 성관계를 가졌던 것이다. 이것이 소위“성스러운 매춘”이며, 이런 매춘 행위가 행해진 곳이 바로 누와 높은 대였다.
그러므로 이 누와 높은 대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 우상을 숭배하는 영적 간음 뿐 아니라 실제적인 육신의 간음 행위까지를 행했던 장소였다.
이 누와 높은 대는 중세 암흑시대 교회에 들어와서 높고 거대한 성당 건물로 변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가 아니라 교권의 영광을 위하여 거대하고 화려한 건물을 짓는다. 중세 암흑시대의 교회는 변질된 교회요, 계시록의 7 교회사적으로 보면 “두아디라 교회”이다. 이것을 부정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주님은 변질된 교회인 두아디라 교회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신다.
계시록 2장 20절의 말씀을 잠시 보자.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이세벨은 이스라엘 왕 아합의 이방인 아내이다. 그녀는 열렬한 바알 숭배자로 아합 왕을 바알 숭배자로 만들고, 아합 왕을 통하여 온 이스라엘 이 바알을 섬기도록 만들었다.
여자 이세벨은 하나님의 교회에 이단적, 이교적 요소들을 가지고 들어와서 교회를 변절시키는 자들의 대표이며, 동시에 변질된 교회의 예표이기도 하다.
다시 에스겔로 돌아가자.
25절의 말씀
“네가 높은 대를 모든 길머리에 쌓고 네 아름다움을 가증하게 하여 모든 지나가는 자에게 다리를 벌려 심히 행음하고”
“높은 대를 모든 길머리에 쌓고”
높은 대는 바알의 여신관들과 성적인 관계를 갖는 곳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곳에 올라가 영과 육의 간음을 행하였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렇게 하나님을 배반하고 바알 신을 섬긴 것은, 바알 신은 물질의 복을 가져다주는 신이었기 때문이다.
바알 신은 농업의 신이었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서 농사를 지으며 풍요로운 수확을 얻기 위해서는 바알 신을 섬겨야 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물질적 풍요와 육체의 쾌락을 위해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 신을 섬기게 되었던 것이다.
암흑시대 중세 교회에서는 높은 가람들을 모든 길머리에 세우고 그 안에서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 자신들의 육신의 영달이나 명성이나 그 밖이 것들을 위해서 교인들과 민중들을 지배하며 정치적 권력까지도 장악하고 있었다.
중세 교회의 그 웅장하고 화려한 건축물들은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길 머리에 쌓고 그 안에서 행음하던 바로 그 높은 대와 같은 것이었다.
“네 아름다움을 가증하게 하여”
교회의 아름다움은 하나님의 아름다움이며, 하나님께서 주신 아름다움이다. 그것은 눈 같이 희고 순결하며 세상과는 구별되는 거룩함이며, 영적인 아름다움이다.
그런데, 교회는 이런 아름다움을 버리고 사람들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 표면적인 아름다움, 세속적인 아름다움으로 바꾸고 말았다. 쉽게 말하면, 하늘의 신령한 것을 땅의 썩어질 것으로 바꾸고 영적인 것을 가지고 육적인 것으로 바꾸었다.
하늘의 신령한 것은 하나님에게 속하고 땅의 썩어질 것은 사단에게 속한다. 교회가 하늘의 신령한 것을 땅의 썩어질 것과 바꾸었다는 것은 교회가 하나님을 버리고 사단을 섬기게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참으로 많은 지금의 교회들이 하늘의 신령한 것을 버리고 땅의 썩어질 것을 취한다. 하늘의 신령한 것을 땅의 썩어질 것과 바꾸어 갖는다. 하나님과 사단을 바꾸어 갖는다. 많은 교회들이 하나님과 사단을 구별하지 못한다. 하나님은 이런 행위를 가증한 행위라고 말씀하신다.
왜 많은 교회들이 이렇게 하늘의 신령한 것을 버리고 땅의 썩어질 것을 취하는가?
땅의 썩어질 것이 좋아 보이기 때문이다. 하늘의 신령한 것이 그들 눈에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보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썩어질 것만 보이기 때문이다. 교회가 눈에 보이는 것만을 쫓기 때문이다. 육의 눈에 보이는 것만을 보기 때문이다. 육의 눈밖에는 없는 자들이 교회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모든 지나가는 자에게 다리를 벌려 심히 행음하고”
다리를 벌려 행음하다 = 여자 쪽에서 먼저 자진해서 행음하다.
에덴동산에서 하와가 타락한 것은 뱀의 유혹을 받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유혹에 져서 그만 본의 아니게 타락했다. 믿는 우리들이 범죄하는 것은 유혹에 이끌려서 본의 아니게 범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 중세의 변질된 교회는 유혹에 져서 본의 아니게 행음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좋아서 먼저 다리를 벌려 행음을 한다. 그것도 선택해서 다리를 벌리는 것이 아니라 지나가는 자면 아무에게나 다리를 벌린다. 그것도 그냥 행음하는 것이 아니라 심히 행음한다.
변질된 교회인 중세 교회는 그 교세를 주변 나라로 확장해 가면서 이방 나라들의 이교적인 요소들을 받아들여 그것들과 동화해버렸던 것이다.
26절의 말씀
“하체가 큰 네 이웃나라 애굽 사람과도 행음하되 심히 음란히 하여 내 노를 격동하였도다”
남자의 하체가 크다는 것은 음행하는 여자들이 좋아하는 조건의 하나다. 이 말씀의 뜻은, 애굽에는 변질된 교회가 즐겨 받아들일만한 이단적인 요소들이 많이 있다는 뜻이다.
“하체가 큰 이웃나라 애굽”
이스라엘 민족은 애굽에서 400년 동안 종살이를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애굽에서 광야로 인도하여 내시고, 젖고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가셨다.
애굽 = 죄악 세상.
광야 = 교회 생활
가나안 = 천국
우리가 천국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죄악 세상에서 나와 광야 생활을 거쳐야 한다.
광야 생활에서 우리가 먹어야 하는 것은 만나와 생수다.
그런데, 이스라엘 자손들은 불평을 하가 시작한다. 애굽에서 고기 가마 옆에 있었을 때가 좋았다고 하며 오히려 애굽 종 사리하던 때를 그리워한다.
고기 = 육신의 정욕과 쾌락
광야를 가는 이스라엘 자손들은 만나는 맛이 없어 먹기 싫고 애굽에서 먹던 고기가 먹고 싶다고 불평하기 시작한다. 예수는 싫고 세상 육신의 쾌락이 좋다는 불평인 것이다.
만나는 싫고 고기가 좋다고 하는 자들은 다 애굽으로 되돌아가야 하는 자들이다. 교회가 가나안으로 가지 않고 되돌아 애굽으로 갈 때, 이 교회는 애굽과 행음하는 교회, 세상과 결혼하는 교회, 변질된 교회인 것이다.
애굽 곧 죄악 세상에는 변질된 교회들이 즐겨 받아들이고 싶은 것들이 너무나 많다. 변질된 교회, 타락한 교회를 매혹시킬 만한 세상의 좋은 것들이 바로 “하체가 큰 네 이웃 나라 애굽 사람”인 것이다.
참으로 많은 이 나라의 교회들이 하체가 큰 이웃 나라 애굽 사람들과 심히 음란히 행음을 하고 있다. 참으로 지금의 이 나라의 교회들이 만나는 버리고 고기만을 즐겨하고 있다. 광야는 버리고 애굽으로 되돌아가서 바로와 같은 집을 짓고 바로 왕 같이 고기를 먹으며 바로 왕 같은 사치를 누리고 있다.
애굽과 행음하는 교회, 세상과 결혼하는 교회, 곧 광야에서 되돌아 애굽으로 간 교회에는 만나가 없다. 만나는 오직 광야에만 있다. 교회는 광야에 있어야 한다. 광야에만 만나와 생수가 있고, 광야에만 구름기둥 불기둥이 있기 때문이다. 광야를 지나지 않고는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다.
“내 노를 격동하였도다”
구름기둥, 불기둥을 따라 가나안으로 향하지 않고 반대 방향인 애굽으로 향하는 교회는 하나님의 노를 격동시킨다.
여호와 하나님의 기적을 보고 출애굽을 직접 체험하고도 광야에서 하나님께 불평불만을 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 가나안 땅을 밟아보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 지금 이 시대에도, 교회 생활에서 만나와 생수 이외의 다른 것을 탐하고 먹겠다고 불평불만을 하는 자들과, 우리 교회에 오면 고기도 먹게 해 주겠다고 하는 교회들은 다 하나님의 노를 격동시켜 천국을 보지 못하고 죽고 만다.
종교 개혁에 대한 예언
타락하고 변질된 교회는 개혁되어야 한다.
에스겔 16장 27절은 종교 개혁에 대한 예언의 말씀이다.
27절의 말씀을 보자.
“그러므로 내가 내 손을 네 위에 펴서 네 일용 양식을 감하고 너를 미워하는 블레셋 여자 곧 네 더러운 행실을 부끄러워하는 자에게 너를 붙여 임의로 하게 하였거늘”
“그러므로”
교회가 이웃 애굽 사람과 심히 행음하고, 죄악 세상과 결혼하여 만나와 생수는 싫고 고기만 먹겠다고 하므로.
“내가 내 손을 네 위에 펴서”
하나님께서 그 능력의 손을 교회 위에 펴서.
“네 일용 양식을 감하고”
하나님이 교회에게 주시는 하늘의 신령한 은혜와 은사를 감하고.
“너를 미워하는 블레셋 여자”
여기서의 블레셋 여자는 누구를 가리켜 하신 말씀일까?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사사기 10장 6-7절의 말씀을 알아야 한다.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과 아스다롯과 아람의 신들과 시돈의 신들과 모압의 신들과 암몬 자손의 신들과 블레셋 사람의 신들을 섬기고 여호와를 버려 그를 섬기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블레셋 사람의 손과 암몬 자손의 손에 파시매”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의 신들을 섬길 때 하나님은 블레셋 사람의 손을 통해 그들을 징계하셨다.
앗수르와 바벨론이 하나님께 배역한 이스라엘을 징계하시는 큰 몽둥이라고 한다면, 블레셋은 하나님의 작은 몽둥이 중의 하나다.
그럼, 왜 그냥 블레셋이라 하지 않고 블레셋 여자라고 여자를 붙인 것일까? 그 까닭은, 여기의 이“블레셋 여자”는 블레셋 족속 그 자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블레셋과 같은 역할을 하는 자”를 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너를 미워하는 블레셋 여자 곧 네 더러운 행실을 부끄러워하는 자에게”
“블레셋 여자”는 중세 교회의 타락과 변질을 미워하고 그 더러운 행실을 부끄러워하는 자이다.
그럼, 중세 교회의 타락과 변질을 미워하고 그 더러운 행실을 부끄러워하는 자란 구체적으로 누군가?
종교 개혁자들이다.
블레셋 여자 = 중세 교회의 타락과 변질을 미워하고 그 더러운 행실을 부끄러워하는 자 = 종교 개혁자
“너를 붙여 임의로 하게 하였거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의 신들을 섬기게 되었을 때, 블레셋 족속들 손에 붙여 그들을 다시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신 것처럼, 타락하고 변질된 교회를 회복시키기 위해 블레셋 여자 곧 종교 개혁자들을 그들에게 보내신다.
에스겔 16장으로 돌아가서, 28-29절의 말씀
“네가 음욕이 차지 아니하여 또 앗수르 사람과 행음하고 그들과 행음하고도 오히려 부족히 여겨 장사하는 땅 갈대아에까지 심히 행음하되 오히려 족한 줄을 알지 못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종교 개혁자들을 보내어 변질된 교회에 대해 회개할 기회를 주신다. 그러나 그들은 회개할 줄 모를 뿐 아니라 더욱 더 심히 행음을 하고도 족한 줄을 몰랐다.
앗수르 = 원방에 있는 나라들. 원수 관계에 있는 나라들.
장사하는 땅 갈대아 = 문화적, 종교적으로 아무 관련도 없고, 단지 물자의 교역만을 위해 교류를 갖는 아주 먼 곳에 있는 나라들.
중세 교회는 온 세계로 교세를 확장해 나가면서 그 나라가 어떤 나라이든 관계없이 그 나라, 그 민족의 고유 신앙을 흡수하고 동화해 나간다. 또 그 나라 고유의 신앙과 합쳐져서 토착해버리기도 한다.
30절의 말씀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네가 이 모든 일을 행하니 이는 방자한 음부의 행위라 네 마음이 어찌 그리 약한지”
32절
“그 지아비 대신에 외인과 사통하여 간음하는 아내로다”
35절
“그러므로 너 음부(淫婦)야 여호와의 말을 들을찌어다”
하나님은 드디어 이 악하고 음란한 교회, 하나님 대신 외인과 사통하여 간음하는 아내 같은 교회, 음부 교회를 별 하신다.
어떻게 벌하시는가?
그것이 37절 이하에 나온다.
37-43절의 말씀
“내가 너의 즐거워하는 정든 자와 사랑하던 모든 자와 미워하던 모든 자를 모으되 사방에서 모아 너를 대적하게 할 것이요 또 네 벗은 몸을 그 앞에 드러내어 그들로 그것을 다 보게 할 것이며......내가 또 너를 그들의 손에 붙이리니 그들이 네 누를 헐며 네 높은 대를 훼파하며 네 의복을 벗기고 네 장식품을 빼앗고 네 몸을 벌거벗겨 버려두며 무리를 데리고 와서 너를 돌로 치며 칼로 찌르며 불로 너의 집들을 사르고 여러 여인의 목전에서 너를 벌할지라......내가 네 행위대로 네 머리에 보응하리니 네가 이 음란과 네 모든 가증한 일을 다시는 행하지 아니하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음란한 교회를 언제, 그렇게 벌하실 것인가?
또 누구의 손을 통해 그렇게 보응하실 것인가?
변잘된 교회인 중세 교회의 후신인 지금의 가톨릭교회는 오늘날도 전 세계에 수 없이 많은 교회들을 거느리며 전재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아직은 이 교회를 그냥 두고 계시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직은 이 말씀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정말로 이 예언의 말씀처럼 그 교회를 벌하시고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실 것인가?
만일 하신다면 언제? 어떻게?
신약 교회의 배도
종교 개혁자들 손에 의해서 개신 교회가 생겼다. 그런데, 이 개신 교회도 다시 타락의 길을 밟는다.
중세 교회는 그 두터운 담과 높은 지붕 속에 갇혀 있었다. 말하자면, 중세 교회는 일반 백성들과는 별 관계가 없었다. 개신 교회는 그 두터운 담을 허물고 높은 지붕을 깎아 내렸다.
그런데, 중세기 암흑시대 동안 교회가 그렇게 높은 지붕, 두터운 담 속에서 갇혀 있었기 때문에, 교회는 교회의 전통을 보존하고 유지시켜 내려올 수 있었다. 중세 교회에서 성경은 숨겨진 책이었다. 일반 백성들은 성경을 읽을 수도 없었고 소유할 수도 없었다. 성직자라 하도 성경을 마음대로 해석할 수도 없었다. 이것은 비난받아 마땅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랬기 때문에, 사람들 손이 닿지 않은 곳에 숨겨진 귀한 보물처럼, 성경 말씀이 세속적으로 오염되지 않은 채, 천 몇 백 년이란 긴 세월을 이어 내려올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개신 교회에서는 중세 교회의 그 높은 담과 높은 지붕을 다 허물어버렸다. 교회 안에 갇혀 있던 말씀이 교회 밖으로 나왔다. 성경이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되고 서민들도 다 성경을 일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바로 이 점 때문에 개신 교회는 아주 짧은 기간 동안에 급격히 세속화되고 중세 교회보다도 훨씬 빠른 속도로 타락하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 때에 교회 안에서 큰 배도가 일어난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 3절의 말씀을 보자.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라”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 적그리스도가 나타나기 전에 교회 안에 배도가 있게 된다.
배도(背道)가 무엇인가?
하나님을 믿던 자가 하나님을 버리고 사단에게 붙는 것이다. 하나님 교회에 속해 있던 자들이 하나님의 교회를 버리고 사단의 교회인 적그리스도 교회로 옮겨가는 것이다. 이것이 배도이다.
아무리 타락한 교회, 간음하는 교회, 세속화한 교회라고 해도, 그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이며, 그 안에서 믿음을 지키는 자들은 구원을 받는다. 그러나 배도하는 자들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이다.
마지막 때에, 개신교, 가톨릭, 할 것 없이 모든 종파, 모든 교파에서 적그리스도를 따르는 거짓 선지자들이 많이 나와 적그리스도 교회를 세운다.
하나님을 배반한 이 적그리스도 교회는 제일 먼저 가톨릭교회를 그들의 첫째 공격 대상으로 삼을 것이다. 전 세계에 널리 펴져 있는 그 방대한 기구와 조직과 힘을 가지고 있는 가톨릭교회는 그들의 가장 큰 장애이며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동시에 유럽 인구의 80% 이상을 점하고 있는 가톨릭 신자들을 적그리스도 교회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라도 가톨릭교회를 공격해서 그 조직과 권위를 파괴해버리는 것이 아주 효과적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마지막 때에, 가톨릭교회는 적그리스도 교회에 의해서 파괴되고 만다.
일부학자들 중에는 가톨릭교회를 적그리스도 교회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건 잘못이다.
또 한편에서는 로마 가톨릭교회를 배도하는 교회 곧 적그리스도 교회로 보기도 하지만, 그것도 잘못된 생각이다. 지금의 가톨릭교회는 마지막 때에 배도하는 교회가 아니며, 적그리스도 교회도 아니다. 가톨릭교회를 마지막 때의 적그리스도 교회로 보는 학자들이나 종말론자들은 교회의 타락과 배도를 구별 못하는 있는 것이다. 교회의 타락, 변질과 배도는 전혀 다른 것이다.
음녀와 큰 음녀
음녀(음녀 교회) 와 큰 음녀는 어떻게 다른가?
타락하고 세속화된 교회, 세상과 결혼한 교회, 우상 숭배를 하는 교회가 음녀이다. 이런 음녀 교회는 전 교회사를 통해 늘 있어왔다.
큰 음녀는 마지막 때에 나타날 적그리스도 교회가 큰 음녀이다.
음녀 교회는 비록 타락하고 세상이나 우상과 간음을 하긴 하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교회이다. 그리고 비록 음녀 교회라고 해도 그 안에서 참 믿음을 가진 자들이 있으며 그들은 그 믿음에 따라 구원을 받는다.
큰 음녀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마지막 때의 사단의 교회이다. 예수님은 바로 이 큰 음녀와 적그리스도를 멸하시기 위해 이 땅에 재림하신다.
그렇긴 하지만, 세상에 음녀 교회 곧 타락하고 세속화하고 우상을 숭배하는 교회가 있으므로 해서 마지막 때에 큰 음녀 곧 적그리스도 교회가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음녀 교회야말로 이 땅에 큰 음녀를 태어나게 하는 모체인 것이다. 그러므로 음녀 교회도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마땅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앗수르라는 큰 몽둥이를 들어 불순종하는 북 이스라엘을 징계하시고, 앗수르에게 별을 주어 멸망시키셨다. 또 바벨론이라는 큰 몽둥이로 남 유다를 때려 징계하신 다음 그 바벨론을 또 멸망시키셨다.
마지막 때에, 하나님은“큰 음녀”라는 몽둥이를 들어 타락하고 간음한 교회인“음녀”를 징계하신다. 그런 다음 “큰 음녀”를 쳐서 멸망시켜 버리신다. 큰 음녀가 멸망을 당하면 7년 환난은 끝이 나는 것이다.
가톨릭교회 파괴에 대한 예언
그럼, 마지막 때에 “음녀”인 가톨릭교회가 배도한 교회인“큰 음녀”에 의해 어떻게 파괴를 당하는지 에스겔 16장 37-41절의 말씀을 따라 알아보기로 하자.
37절의 말씀
“내가 너의 즐거워하는 정든 자와 사랑하던 모든 자와 미워하던 모든 자를 모으되 사방에서 모아 너를 대적하게 할 것이요 또 네 벗은 몸을 그 앞에 드러내어 그들로 그것을 다 보게 할 것이며”
“즐거워하는 정든 자”
이 교회가 즐겨 받아들인 우상 숭배자들과 이교적인 요소와 이단적인 교리,
“사랑하던 모든 자”
이 교회의 이교적인 요소와 이단적 교리를 믿고 따르던 신도들.
“미워하던 자”
가톨릭교회의 변질을 비판하여 가톨릭교회의 미움을 받던 개신교 교회.
“모든 자를 모으되 사방에서 모아 너를 대적하게 할 것이요”
마지막 때에, 교회의 대대적인 배교가 있을 때에, 가톨릭교회 안에서도 많은 사제들과 신도들이 빠져 나와 적그리스도 교회의 구성원이 된다.
이렇게 가톨릭교회에서 빠져 나온 사람들 중에는“즐겨워하던 정든 자” 곧 교회 안에서 이세벨의 교훈을 가르치고, 따르던 자들도 있을 것이고, 또 “사랑하던 모든 자” 곧 그 이단적 교리를 믿고 따르며 함께 신앙생활을 하던 자들도 있을 것이다.
반면, 개신교 교회에서도 많은 목회자, 신도들이 빠져 나와 적그리스도 교회로 들어온다.
이렇게, 가톨릭교회에서 빠져 나온 사람들 곧 “즐거워하는 정든 자”와 “사랑하던 모든 자”그리고 개신교에서 빠져 나온 “미워하던 모든 자”와 함께 각처로부터 몰려와서 가톨릭교회를 대적하게 된다.
한마디로 말한다면, 가톨릭교회에서 배도하여 나온 자들과 개신교에서 배도하여 나온 자들이 적그리스도의 앞잡이가 되어 가톨릭교회를 대적하게 된다는 말이다.
“너를 대적하게 할 것이요”
하나님께서는 변질한 교회를 징계하시는 도구로 하나님을 배역한 자들의 모임인 적그리스도 교회를 이용하신다는 말이다.
“또 네 벗은 몸을 그 앞에 드러내어 그들로 그것을 다 보게 할 것이며”
그 배역한 자들은 가톨릭교회가 가지고 있었던 많은 죄상들을 백일하에 들어낸다. 이 교회가 그때까지 숨겨 가지고 있던 많은 비밀들을 세상에 낱낱이 들어내어 고발한다.
38절의 말씀
“내가 또 간음하고 사람의 피를 흘리는 여인을 국문함 같이 너를 국문하여 진노의 피와 투기의 피를 네게 돌리고”
“간음하고 사람의 피를 흐리는 여인”
간음하고 사람의 피를 흘리는 여인이 누군가? 이세벨이다.
이 여자는 이스라엘로 하여금 바알 신을 숭배하게 만들고 여호와의 많은 선지자들을 죽였다. 마찬가지로 중세 교회는 이세벨의 교훈을 받아들여 우상을 숭배하고 하나님의 참 종들을 형틀에 달아 죽였다.
“여인을 국문함 같이”
간음하고 사람의 피를 흘린 여자 이세벨을 국무함 같이, 간음하고 사람의 피를 흘린 이 교회에 대해서도 하나님은 그렇게 국문하여 진노의 피와 투기의 피를 그에게 돌리신다.
(이세벨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예후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장면이 열왕가하 9장 30-37절에 나온다)
39절의 말씀
“내가 또 너를 그들의 손에 붙이리니 그들이 네 누를 헐며 네 높은 대를 훼파하며 네 의복을 벗기고 네 장식품을 빼앗고 네 몸을 벌거벗겨 버려두며”
가톨릭교회의 그 높고 화려한 대성당들을 닥치는 대로 파괴해버린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 교회에 주신 모든 은혜와 은사와 특권을 다 빼앗아 버린다. 하나님께서는 적그리스도 교회의 손을 통해 그 옛날 하나님이 교회에 내려주셨던 그 많은 은혜들을 다 빼앗겨 버린다.
또 문자적인 뜻으로는,
“의복을 빼앗고”
사제들이 입는 그 화려한 법복을 빼앗다. 벗겨버린다.
“장식을 빼앗고”
그들 몸에 붙어 있던 장식과 성당 건물에 붙인 장식과, 또 가톨릭교회의 가장 큰 장식이었던 마리아 상과 예수님 상을 없애버린다.
“몸을 벌거벗겨 벼려두며”
그들이 사제의 직분을 빼앗아 버리고, 또 사제들의 옷을 벗겨 벌거벗은 알몸으로 밖에 버려둔다.
40-41절
“무리를 데리고 와서 너를 돌로 치며 칼로 찌르며 불로 너의 집들을 사르고 여러 여인의 목전에서 너를 벌할지라 내가 너로 곧 음행을 그치게 하리니 네가 다시는 값을 주지 아니하리라”
“무리를 데리고 와서”
배도하여 적그리스도 교회의 앞잡이가 된 자들이 많은 무리를 데리고 와서.
“돌로 치며”
돌로 치는 행위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어긴 자들은 처형하는 방법이다. 적그리스도 교회의 무리들은 그들이 이 교회를 치는 이유를 이 교회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한 변질된 교회이기 때문이라고 말할 것이다. 배도한 적그리스도 교회의 무리들이 변질된 하나님의 교회를 정죄한다.
“칼로 찌르며”
종교적인 동기나 이유가 없는 단순한 폭력에 의한 살상 행위. 적그리스도 교회가 가톨릭교회를 칠 때, 신앙과는 아무 관련도 없는 사람들까지 싸우고 죽이고 하는 일이 생기게 될 것이다.
“불로 너의 집들을 사르고”
교회 건물에 방화하여 불태워버린다.
“여러 여인들 목전에서 너를 벌할찌라”
많은 교회들이 보고 있는 앞에서 그를 벌하신다.
여인 = 교회
거기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왜 하나님은 여러 교회들이 보는 앞에서 이 교회를 벌하시나?
이 교회가 적그리스도 교회에 의해 파괴되는 것을 보고 믿음이 적은 자들은 그만 겁을 먹고 자기들도 배도하여 적그리스도 교회의 일당이 되고 만다. 한편, 믿음이 강한 자들, 영안이 열려 있는 자들, 말씀을 깨달은 자들은, 변질된 교회가 하나님께서 성경에 예언하신 대로 정확하게 보응하시는 것을 보고는 더욱 말씀으로 무장하여 믿음을 지키게 된다. 하나님은 이 사건을 통해서도 알곡과 쭉정이를 갈라내신다.
“내가 너로 곧 음행을 그치게 하리니”
이제는 더 이상 음행을 할 수 없게 된다.
적그리스도 교회에 의한 가톨릭교회의 파괴가 끝나면, 가톨릭교회는 이제는 아주 없어지고 마는가?
아니다. 비록 표면적으로는 없어지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그 안에 있던 구원받는 참 성도들은 몸을 피하고 숨어서 계속 믿음을 지킬 것이다. 사람들 눈에는 가톨릭교회는 파괴되어 없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엄연히 살아 있는 것이다.
하나님 눈에는 이들만이 교회인 것이다. 하나님이 이 교회를 치신 것은 실은 교회를 치신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자리 잡고 앉아서 하나님의 역사를 방해하고 교회를 타락하게 했던 그 지저분한 존재들을 제거하신 것뿐인 것이다. 말하자면, 하나님께서는 적그리스도의 손을 통해 당신의 교회를 정케 하시고 교회 안에 있던 가라지와 쭉정이들을 제하여 버리신 것이다.
가톨릭교회가 파괴되는 모습
마지막 때에, 가톨릭교회가 적그리스도 교회의 의해 파괴되는 모습을 보자.
마지막 때에, 아직 적그리스도가 우리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내기 전, 7년 환난이 시작되기 적전에, 교회 일각에서 대대적인 회개 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그들은 지금까지의 안일했던 자신들의 믿음을 회개하고 이웃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며 주께서 어서 재림해 주실 것을 기도한다.
그들은 매일매일 모여서 기도하며 말씀을 묵상하며 주께서 재림하신다면 그 때가 바로 지금이 아니겠느냐 하며 생업도 버리고 있는 것을 서로 나누어 쓰며 오직 가도에 힘쓴다.
동시에, 여기에 때한 반발도 일어난다. 주님은 성경 말씀의 문자 그대로 구름을 타고 공중으로 재림하시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나오게 된다.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들 중에는 저명한 목회자, 유명한 신학자, 신학대학 교수들이 많이 있다.
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주님은 이미 성령의 모습으로 재림하셨다. 이미 성령의 모습으로 재림하신 예수님은 보지 못하고 육신을 입고 구름을 타고 오실 예수님을 바라며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어리석은 짓은 이제 그만 두라고 말한다.
하긴, 사람의 상식으로는 예수님이 몸을 입고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둥실둥실 내려오실 것이란 말이 믿어지지 않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말인 것이다.
다른 주장도 나온다. 이들은 주장하기를, 주님은 구름을 타고 공중으로 재림하시는 것이 아니라 초림 예수처럼 여자의 몸을 통해 태어나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재림 예수는 벌써 세상에 오셨다는 것이다.
다른 주장이 또 나온다. 이들은 주장하기를, 2000년 전, 나사렛에서 자란 목수의 아들 예수는 단지 목수의 아들일 뿐, 그리스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만일 그가 참 구세주였다고 한다면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당시 억압 속에 살았던 그 불쌍한 백성들을 구원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무력하게도 십자가에 달려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고 죽고 말았다. 그러므로 그는 그리스도가 아닌 것이다. 그런데, 이제 진짜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가 나타나서 이 어지러운 세상에 화평을 가져다주고, 지구상에 있는 많은 나라들을 한 나라로 통일하고, 그 통일된 단일 국가의 단일 대통령이 되어 우리를 통치해 줄 것이라, 라고 주장한다.
세계가 단일 국가로 통일이 되면 국가 간의 빈부의 차가 없어진다. 자원과 기술이 효율적으로 배분되어 사용되고 무역 불균형 같은 구시대적 근심거리도 없어진다. 무엇보다도 나라 사이의 전쟁이 없어진다. 그래서 군비 경쟁을 할 필요가 없어진다. 그 어마어마한 군비를 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복지비로 전용한다면 세상에 어렵게 사는 사람 없을 것이다.
국경이 없으므로, 인구와 물자의 유동이 자유로워 세계는 급속도로 생활수준이 평준화되어 간다.
그런데, 이런 세계 단일 정부를 만들고 이런 세계 단일 국가를 이끌어 나가기 위해서는 그 흔해빠진 직업 정치가 따위의 힘으로는 어림도 없고 좀더 강력한 지도력과 카리스마적 능력을 지닌 특출한 인물이 나와야만 하는 것이다.
만일, 이런 인물이 나온다면, 그래서 그가 세계를 한 나라로 통일을 하고 이 지상을 지상의 낙원, 지상의 천국으로 만들어 준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하나님의 아들이며, 우리가 기다리던 그리스도가 아니겠느냐, 하고 그들은 주장을 하게 된다. 그렇다. 그리스도가 구름을 타고 재림한다는 성경 구절은 2000년 전, 아무 것도 모르던 사람들이 생각해 낸 동화 같은 이야기일 뿐, 지금 그것을 문자 그대로 믿으라는 것은 너무나 유치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주장을 옳게 여기고 그들에게 동조하고 그들을 따라간다. 학문으로만 신학을 공부해서 목회자가 된 많은 주의 종이라는 사람들, 영을 모르는 유식한 많은 신도들, 아무 것도 모르면서 큰 소리 날 때마다 그 큰 소리 나는 쪽에 붙어서 이익을 챙기는 인간들과 매스컴 종사자들도 다 이들에게 동조하고 따라간다.
이때쯤이면 적그리스도가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낸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가리켜 그리스도라고 말하기 시작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그리스도라고 믿기 시작한다. 이들은 차츰 큰 집단을 이루기 시작하고, 기성 교회들을 압박하기 시작한다.
더욱 많은 목회자와 신도들이 교회를 버리고 이들 집단으로 몰려간다.
적그리스도 교회는 급속하게 그 세력을 확장하고 단시일에 전 세계적 조직을 완료한다.
이 적그리스도 교회 눈에 거슬리는 가장 큰 존재가 바로 가톨릭교회이다. 긴 역사와 세계적인 조직과 전 세계에 많은 신도들을 거느린 가톨릭교회가 적그리스도 교회의 말을 고분고분 들을 리가 없는 것이다.
물론, 가톨릭교회 안에서도 많은 성직자들과 신도들이 적그리스도 교회로 넘어갔지만, 그러나 또 다른 사람들은 오히려 적그리스도 교회를 경계하고 비난한다.
드디어 적그리스도 교회에 의한 가톨릭교회의 파괴가 자행된다. 세계 곳곳에서 천주교 성당이 파괴되고 방화 소실되고 기물이 약탈되고 사제들이 그 성스러운 옷이 벗겨져 알몸이 되어 거리로 끌려 다니고 돌에 맞아 죽고 더러는 화형에 처해지고 더러는 칼에 찔려 죽기도 한다,
이때에 가톨릭교회의 많은 성직자들과 평신도들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적그리스도 교회로 옮겨가게 된다.
그러나 끝까지 교회를 지키며 저항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렇게 끝까지 저항하는 사람들은 두 가지 부류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끝까지 목숨을 걸고 적그리스도 교회의 손에서 하나님의 교회를 지키려는 사람들인데, 이들은 결국은 잡혀서 죽음으로 순교를 하게 된다. 다른 하나에 속하는 사람들은 지금까지 교회 안에서 갖가지 귀한 특권을 누려온 사람들로 그 높고 귀한 자리를 내놓기가 싫어서 또는 내놓기가 너무 억울하고 분해서 끝가지 싸우다 죽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바로 하나님의 “보응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이다. 말하자면,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이다. 이런 인간들은 자기 일신의 이익이나 육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교회에 들어와서 성직자나 교역자가 되어 교회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거나 귀한 직분에 앉아 입신양명과 호화사치 생활을 누렸던 자들이다. 이런 자들 때문에 교회가 타락하고 변질된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런 자들에게 응보하시며 이들에게 분노를 쏟으신다.
한 가지 웃기는 일은, 이렇게 하나님의 분노의 대상이 되어 죽임을 당하는 자들과, 참으로 교회를 지키기 위해 적그리스도와 싸우다가 잡혀 죽는 순교자와 겉보기에는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만이 진실을 보신다. 사람의 눈은 믿을 것이 못 된다. 그런데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을 진실이라고 믿는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을 들어 배역한 이스라엘을 징계하신다. 그들은 바벨론으로 끌려가 70년 동안이나 포로 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포로 생활에서 풀려나게 하시고 다시 고국 땅으로 돌아오게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로마를 들어 이스라엘을 멸망시키신다. 그러나 2000년이 지나자 하나님은 그들을 다시 옛 고국 땅으로 돌아오게 하셨다.
하나님은 적그리스도 교회를 들어 변질된 가톨릭교회를 파괴하게 하신다. 그러나 그 파괴는 단지 표면적인 파괴에 불과한 것이다. 사단은 하나님의 교회를 파괴할 수가 없다. 적그리스도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를 파괴한 것이 아니라, 실은 하나님의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교회를 타락시키고 변질시킨 여자 이세벨을 적그리스도 교회의 손을 빌어 보응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이 교회에 남아 있는 성도들을 향해 계시록 2장 25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가지 굳게 잡으라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개신교 교회의 소멸
적그리스도 교회는 가톨릭교회 뿐 아니라 개신교 교회들도 다 파괴해버린다. 개신교 교회의 파괴는 아주 쉽게 이루어진다. 적그리스도 교회와 대항해서 싸우고자 하는 사람은 없다. 강력한 적그리스도 교회의 압력 앞에 스스로 와해되고 만다. 개신교의 많은 목회자들과 신도들이 속속 적그리스도 교회로 옮긴다.
이름난 목회자들이 더러는 강요에 못 이겨서, 더러는 자진해서, 또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할 수 없이, 더러는 적그리스도 교회에서 좋은 대우와 높은 지위를 얻기 위해서 하나님의 교회를 버리고 적그리스도 교회로 옮겨간다. 그 중에는 많은 신도들을 이끌고 자랑스럽게 적그리스도 교회로 옮겨가는 목회자들도 있다. 배도인 것이다. 대대적인 배도인 것이다. 바울 사도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교회가 대대적인 배도를 하게 되는 것이다.
끝까지 살아남아 믿음을 버리지 않으려는 소수의 주의 종들과 성도들은 적그리스도 교회의 핍박을 받게 되고 결국은 교회를 버리고 지하로 숨게 된다. 지상에 있는 모든 교회는 적그리스도 교회가 되고 만다.
이제 지상에는 환난 후 3년 반이 시작된다.
666표가 강제로 찍히기 시작한다. 거절하는 자들은 온갖 잔인한 고문을 당하고 죽임을 당한다.
택함 받은 자들은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산으로 가야 한다.
거룩한 곳에 짐승의 우상이 선다.
적그리스도 교회는 그를 하나님의 아들, 우리의 구주라고 찬양을 한다.
적그리스도를 찬양하는 적그리스도 교회를 가리켜 계시록은 “큰 음녀” “큰 바벨론”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고 부르고 있다.
16. 음녀 교회
<부르는 소리> 8부-16
음녀 교회
= 에스겔 16장의 예언 =
네 어미를 멸하리라
구약성경에는 곳곳에 마지막 종말 때에 있을 예언의 말씀들이 숨어 있다. 그 중에는, 가령, 호세아 5장 15절에서 6장 3절의 말씀처럼, 그 모습을 반쯤 표면에 노출시키고 있어서 웬만큼 주의를 해서 보면 곧 알 수 있는 것도 있지만, 반면, 그 모습을 깊이 숨기고 있어서 힘을 드려 파내려 가야만 비소서 알 수 있는 그런 것도 많이 있다.
호세아 4장 5절의 말씀을 보자.
“내가 네 어미를 멸하리라”
내가 네 어미를 멸하다니, 그게 대체 무슨 뜻인가?
내가 = 하나님이
네 = 이스라엘 백성들의. 또, 이 말씀을 읽는 우리들의.
하나님이 우리들의 어미를 멸하시겠다는 말씀이다.
그럼, 그 어미란 누구인가?
우리의 최초의 어미는 하와였다.
하와는 하나님 명령을 불순종하고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서 사단의 종이 되었다. 하와는 하나님을 버리고 사단과 간음함으로 인류 최초의“음녀”가 되었다.
이 인류 최초의 음녀인 하와는 그 음행한 죄로 인하여 에덴을 쫓겨 나온 후에, 자식을 낳는다. 이래서 인류는 죄 가운데서 태어난다. 사람은, 하나님을 떠나 사단과 간음한 음녀의 자식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태어날 때부터 죄인인 것이다.
다윗은 시편 51편 5절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우리 인류의 어미는 하나님을 떠나 사단과 간음을 한 “음녀”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음녀의 자손 중에서 하나를 택하여 그를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신다. 그가 아브라함이며, 그의 자손인 이스라엘 백성이다.
그런데, 그 택함 받은 민족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큰 민족을 이루자 또다시 하나님을 떠나 이방의 우상을 숭배하게 된다.
에스겔 16장 6-7절의 말씀을 보자.
“내가 네 곁으로 지나갈 때에 네가 피투성이가 되어 발짓하는 것을 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라 다시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라 하고 내가 너로 들의 풀 같이 많게 하였더니 네가 크게 자라고 심히 아름다우며 유방이 뚜렷하고 네 머리털이 자랐으나 네가 오히려 벌거벗은 적신이더라”
자, 이 말씀을 풀어보자.
길가에 버려져 피투성이가 되어 발짓하는 어린 것 같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시고 거두어 주신다.
그래서 그들은 들의 풀같이 많이 번성하였다. 그리고 심히 아름다운 처녀(하나님 앞에 우리는 다 여자다)로 자랐다. 그러나 아직은 들에서 버릇없이 마구 자란 거친 처녀였다.
벌거벗은 적신 = 의인이 되지 못한 상태. 영적으로 자라지 못한 상태.
적신(赤身) = 벌거벗은 알몸.
이어 16장 8절의 말씀을 보자.
“내가 네 곁으로 지나며 보니 네 때가 사랑스러운 때라 내 옷으로 너를 덮어 벌거벗은 것을 가리우고 네게 맹세하고 언약하여 너로 내게 속하게 하였었느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큰 민족으로 자라난 것을 기쁘게 여기시고 그들의 죄를 덮어 주시고 언약을 하여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소유로 만드신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신부가 된다.
“옷으로 덮다”
보호해주다. 결혼하다. 죄를 가려주다.
16장 9-13절의 말씀을 보자.
“내가 물로 너를 씻겨서 네 피를 없이 하며 네게 기름을 바르고 수 놓은 옷을 입히고 물돼지 가죽신을 신기고 가는 베로 띠우고 명주로 덧입히고 패물을 채우고 팔고리를 손목에 끼우고 사슬을 목에 드리우고 코고리를 코에 달고 귀고리를 귀에 달고 화려한 면류관을 머리에 씌웠나니 이와 같이 네가 금, 은으로 장식하고 가는 베와 명주와 수 놓은 것을 입으며 또 고운 밀가루와 꿀과 기름을 먹음으로 극히 곱고 형통하여 왕후의 지위에 나아갔느니라”
“물로 씻기고 피를 없이하여 기름을 바르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깨끗하게 씻기신다.
물로 씻기고 = 불의를 용서하고 정결하게 하다. 물은 성령. 성령으로 죄를 씻어 없애다.
피를 없이하여 = 상처를 치료하고. 죄를 용서하시고.
기름을 바르고 = 상처를 낫게 하다. 속죄하다. 회복시키다.
“수놓은 옷을 입히고 명주로 덧입히고”
신부의 옷을 입히다. 하나님의 신부 삼다.
예수로 옷 입고 하얀 세마포 옷을 덧입다.
우리가 입어야 할 두 가지 옷. 예수로 옷 입는 것과 하얀 세마포 옷을 입는 것.
“패물을 채우고 화려한 면류관을 머리에 씌웠더니”
신부를 아름답게 꾸미다.
패물 = 능력. 면류관 = 권세.
하나님의 신부에 어울리는 귀한 것들을 주시다.
벌거벗은 죄인인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데려다가, 죄를 없이하여 깨끗하게 해 주시고, 신부 단장을 시켜 주시고, 능력과 권세를 주시다.
이스라엘 신부의 예복은 제사장의 예복과 매우 비슷하다. 이것은 이스라엘 신부 단장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대한 예배를 상징하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하나님에 대한 예배는 내가 신부 단장을 하고 나를 하나님의 신부로 드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예배 = 신부 단장을 하고 나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
신부 단장을 하다 = 하나님 신부가 될 수 있는 믿음과 사랑과 헌신과 정결함과 순종을 갖추다.
“고운 밀가루와 꿀과 기름”
이스라엘 축제의 음식으로 이스라엘의 산물 중 가장 맛이 좋은 음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
고운 밀가루와 꿀과 기름 = (구약의 관점에서) 하나님의 의와 말씀과 성령.
“극히 곱고 형통하여 왕후의 지위에 나아갔느니라”
너무나 아름답게 자라서 왕후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하나님의 제사장 나라가 되다. 하나님의 신부로서의 자격을 얻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씻기시고, 신부 옷을 입히시고, 여러 가지 아름다운패물로 장식하게 하시고, 여러 가지 맛있는 음식을 먹게 해서 하나님의 신부로 부족함이 없게 해 주셨다.
그때까지 이스라엘이 한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다. 이렇게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일방적 은혜였다.
16장 14절
“네 화려함을 인하여 네 명성이 이방인 중에 퍼졌음은 내가 네게 입힌 영화로 네 화려함이 온전함이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스라엘의 명성은 이방 여러 나라에 퍼지게 되었다. 그것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크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화려함은 온전했다. 다른 것과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를 사랑하셔서 그에게 내리신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잠시 28장 12-17절의 말씀을 보자.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너는 완전한 인이었고 지혜가 충족하며 온전히 아름다왔도다 네가 옛적에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어서 각종 보석 곧 홍보석과 황보석과 금강석과 황옥과 홍마노와 창옥과 청보석과 남보석과 홍옥과 황금으로 단장하였었음이여 네가 지음을 받던 날에 너를 위하여 소고와 비파가 예비되었었도다 너는 기름 부음을 받은 덮는 그룹임이여 내가 너를 세우매 네가 하나님의 성산에 있어서 화광석 사이에 왕래하였었도다 네가 지음을 받던 날로부터 네 모든 길에 완전하더니 마침내 불의가 드러났도다 네 무역이 풍성하므로 네 가운데 강포가 가득하여 네가 범죄하였도다 너 덮는 그룹아 그러므로 내가 너를 더럽게 여겨 하나님의 산에서 쫓아 내었고 화광석 사이에서 멸하였도다 네가 아름다우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으며 네가 영화로우므로 네 지혜를 더럽혔음이여 내가 너를 땅에 던져 열왕 앞에 두어 그들의 구경거리가 되게 하였도다”
에스겔 28장의 이 말씀은 사단이 된 루시퍼 천사에 관한 말씀이다. 루시퍼 천사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천사였다. 하나님은 그를 각종 아름다운 보석으로 단장하게 하시고,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소고와 비파를 예비해 주셨다. 그는 완전한 인이었고 지혜가 충족하여 온전하여 온전히 아름다웠다. 그는 지음을 받던 날부터 모든 길에 완전하였다.
그런데, 마침내 불의가 들어 났다. 그는 무역이 풍성하므로 강포가 가득해졌고, 아름다우므로 마음이 교만해졌으며, 영화로우므로 지혜를 더럽혔다. 하나님은 그를 하나님의 성산에서 쫓아내셨고 화강석 사이에서 멸하셨다.
이 천사는 지상에 내려와 사단이 된다. 그는 하나님의 역사를 훼방하여 사람들을 미혹하고 마지막 때에는 천년 동안 무저갱 속에 묶여 있다가 끝내는 불과 유황 못 곧 영원한 지옥 속에 빠지게 된다.
자, 다시 에스겔 16장의 말씀으로 돌아가자.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입히신 영화로 그 화려함이 온전하여 그 명성이 이방 여러 나라에 퍼지게 되었다.
그때, 이스라엘은 어떻게 했는가? 이방에게 하나님을 증거하고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렸는가?
“그러나 네가 네 화려함을 믿고 네 명성을 인하여 행음하되 지나가는 자면 더불어 행음을 많이 행하므로 네 몸이 그들의 것이 되었도다”
피투성이가 되어 발짓하던 것을 보시고 불쌍히 여겨 살려 주시고, 씻어 주시고, 아름다운 신부 옷을 입혀 주시고, 아름답고 귀한 보석으로 단장시켜 주시고, 맛있는 음식을 먹여 키워서 하나님의 신부가 되게 하였더니 그 화려함과 명성으로 자만해져서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하나님을 배반하여 지나가는 자면 아무나 붙잡고 행음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신부, 이스라엘은 주변 이방 나라의 소유가 되고 말았다.
“자나가는 자면 아무나 붙잡고 행음하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 우상 신을 만나면 다 그것을 다 받아들여 자기들의 신으로 숭배했다.
“네 몸이 그들의 것이 되었도다”
하나님의 소유였던 이스라엘은 그만 이방 신의 소유가 되었다.
에스겔 16장 16-19절
“네가 네 의복을 취하여 색스러운 산당을 너를 위하여 만들고 거기서 행음하였나니 이런 일은 전무후무하니라 네가 또 나의 준 금, 은 장식품으로 너를 위하여 남자 우상을 만들어 행음하며 또 네 수 놓은 옷으로 그 우상에게 입히고 나의 기름과 향으로 그 앞에 베풀며 또 내가 네게 주어 먹게 한 내 식물 곧 고운 밀가루와 기름과 꿀을 네가 그 앞에 베풀어 향기를 삼았나니 과연 그렇게 하였느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때, 나는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된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것을 가지고 우상을 위해 사용할 때, 나는 어리석고 악한 종이 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그 귀한 것들을 우상을 섬기는데 사용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이방의 소유가 되고 말았다. 영적으로 우상과 사단의 종이 되었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려 정치적으로도 이방의 속국이 되고 만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신다.
16장 37-43절
37 내가 너의 즐거워하는 정든 자와 사랑하던 모든 자와 미워하던 모든 자를 모으되 사방에서 모아 너를 대적하게 할 것이요 또 네 벗은 몸을 그 앞에 드러내어 그들로 그것을 다 보게 할 것이며
38 내가 또 간음하고 사람의 피를 흘리는 여인을 국문함 같이 너를 국문하여 진노의 피와 투기의 피를 네게 돌리고
39 내가 또 너를 그들의 손에 붙이리니 그들이 네 누를 헐며 네 높은 대를 훼파하며 네 의복을 벗기고 네 장식품을 빼앗고 네 몸을 벌거벗겨 버려두며
40 무리를 데리고 와서 너를 돌로 치며 칼로 찌르며
41 불로 너의 집들을 사르고 여러 여인의 목전에서 너를 벌할지라 내가 너로 곧 음행을 그치게 하리니 네가 다시는 값을 주지 아니하리라
42 그리한즉 내가 네게 대한 내 분노가 그치며 내 투기가 네게서 떠나고 마음이 평안하여 다시는 노하지 아니하리라
43 네가 어렸을 때를 기억지 아니하고 이 모든 일로 나를 격노케 하였은즉 내가 네 행위대로 네 머리에 보응하리니 네가 이 음란과 네 모든 가증한 일을 다시는 행하지 아니하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은 간음하는 여인 이스라엘을 남과 북으로 갈라놓으신다.
하나님께서는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간음하는 북 이스라엘을 앗수르에 붙이신다. 북 왕국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 멸망당하는 것을 보고도 남 왕국 유다는 회개할 줄 모르고 계속 이방 우상들과 음행을 한다.
하나님은 바벨론이라는 몽둥이로 유다를 치신다. 70년 동안의 베벨론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그들은 또다시 우상 숭배에 빠지고 만다.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 신과 행음을 하는 구약 교회는 구약 성도들을 낳은 그들의 어미이다. 이 음란한 어미인 구약 교회는 결국 주후 70년 로마 군에 의해 멸망 당하고 만다.
호세아 4장 5절 “내가 네 어미를 멸하리라” 하신 말씀이 그대로 성취되었다.
가증한 것들의 어미
호세아 4장 5절 “내가 네 어미를 멸하리라” 하신 말씀은 이스라엘의 멸망으로 성취되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그 말씀이 완전히 성취된 것은 아니다. 마지막 때에 또다시 간음한 여자, 가증한 것들의 어미인 음녀 교회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마지막 때에, 신약 교회에서 대대적인 배도가 일어난다.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고 사람들은 하나님을 버리고 적그리스도를 따라가게 된다.
이 배도한 교회가 계시록 17장에 나오는 “큰 음녀”인 것이다.
계시록 17장 3-5절의 말씀을 보자.
“곧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광야로 가니라 내가 보니 여자가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 그 짐승의 몸에 참람된 이름들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으며 그 여자는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 그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
구약 성경은 이스라엘 구약 교회에 주신 말씀이고,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은 신약 교회에 주신 말씀이다. 바꿔 말하면, 구약 교회에는 구약 성경을 주셨고, 신약 교회에는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을 함께 주셨다.
만일, 구약 성경이 구약 교회에만 주신 말씀이라고 한다면, 신약 성도인 우리들은 구약을 읽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구약 성경의 여러 예언의 말씀들이 구약 교회 위에 성취되었을 뿐 아니라, 지금도 살아서 신약 교회 위에도 그대로 성취되고 있는 것이다.
그 옛날, 하나님께서 여러 구약 선지자들의 입을 통해서 주신 예언의 말씀들이 구약 교회 위에 성취되었을 뿐 아니라, 지금 우리 신약 교회 위에도 그대로 이루어지고 이으며, 또 마지막 때에도, 그대로 그렇게 이루어질 것이다,
호세아 4장 5절 “내가 네 어미를 멸하리라”하신 말씀은 구약 교회 멸망으로 성취되었으나, 이제 그 말씀은 다시 살아서 마지막 때에,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인 “큰 음녀” 위에 성취될 것이다.
그런데 어떤 모양으로 그것이 성취될 것인가?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는 어떤 모양으로 그것을 멸하실 것인가? 하는 것을 설명한 성경 말씀이 바로 에스겔 16장이다. 즉 에스겔 16장 1-43절의 말씀은, 호세아 4장 5절 “내게 네 어미를 멸하리라”하신 말씀에 대한 그 구체적 설명인 것이다.
하나님은 선지자 호세아의 입을 통해, 네 어미를 멸하시겠다고 말씀하시고, 선지자 에스겔의 입을 통해서는 그 멸하시는 구체적 방법을 말씀하신 것이다.
에스겔 16장 1-43절은 놀라운 예언의 말씀들을 숨겨 가지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구약 교회에 주신 말씀이지만, 그러나 그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모두가 신약 교회에 일어날 구체적 예언의 말씀들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에스겔 16장 1-43절의 말씀을 구약의 입장에서 읽으면 그것은 확실히 구약 교회 타락에 대한 하나님의 강한 책망의 말씀이며, 구약 교회 멸망에 대한 예언의 말씀이다.
그러나 신약의 입장에서 다시 들여다보면 그것은 신약 교회에 일어날 너무나도 생생하게 살아있는 예언의 말씀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 에스겔 16장 1-43절의 말씀을 신약의 입장에서 들여다보기로 하자.
에스겔 16장 6-14절의 예언
- 신약 교회를 택하심 -
6절의 말씀을 다시 한 번 일어보자.
“내가 네 곁으로 지나갈 때에 네가 피투성이가 되어 발짓하는 것을 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라 다시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라 하고”
하나님께서는 갈대아 우르에 사는 데라의 아들 아브람을 보시고 그를 택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택하신 것은 그가 각별한 의인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하나님 보시기에 피투성이가 되어 발짓하는 벌거숭이에 불과했다. 하나님은 그를 보시고 당신의 백성으로 택하신다.
아브라함의 자손들은 크게 번성한다.
7절의 말씀
“내가 너로 들의 풀 같이 많게 하였더니 네가 크게 자라고 심히 아름다우며 유방이 뚜렷하고 네 머리털이 자랐으나 네가 오히려 벌거벗은 적신이더라”
벌거벗은 적신 = 옷을 입지 않은 벌거숭이. 죄를 가리지 못한 죄인.
들의 풀 = 많기는 하나 별 쓸모가 없다.
아브라함의 자손은 큰 민족을 이룬다. 출애굽 후에, 광야에서 율법을 받고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갔으나 아직 그들은 하나님 앞에 의로운 상태에 이르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은 아직은 벌거벗은 어린것처럼 죄 가운데 있었다.
8절
“내가 네 곁으로 지나며 보니 네 때가 사랑스러운 때라 내 옷으로 너를 덮어 벌거벗은 것을 가리우고 네게 맹세하고 언약하여 너로 내게 속하게 하였었느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네 겉으로 지나며 보니”
6절에서는 피투성이가 되어 발짓하는 어린것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를 살려 주신다. 6절의 “내가 네 곁으로 지나갈 때에는”하신 말씀은 아브라함을 택하셨을 때에 하신 말씀이다.
그럼, 8절에서 “내가 네 곁으로 지나며 보니” 하신 말씀은 누구에게 하신 말씀인가?
8절의 말씀은 바로 우리 신약 교회를 향하신 말씀인 것이다.
6절의 말씀
“내가 네 곁으로 지나갈 때에 네가 피투성이가 되어 발짓하는 것을 보고”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태하심
8절의 말씀
“내가 네 곁으로 지나며 보니 네 때가 사랑스러울 때라”
하나님께서 신약 교회를 택하심.
자, 6절과 8절의 차이점을 보자.
6절에서는“네 겉으로 지나갈 때에”
8절에서는“네 곁으로 지나며 보니”
6절“지나갈 때에”지나갈 때에 우연히 보시다.
8절“지나며 보니” 지나면서 일부러 보다 .적극적인 관심.
6절 피투성이가 되어 발짓하는 어린것이었다.
8절 다 자란 사랑스런 처녀다.
6절에서는, 피투성이가 되어 발짓하는 어린것이 불쌍해서 돌보아 주신다.
8절에서는, 그 모습이 사랑스러워 옷으로 덮어 주신다.
이것이 바로 구약 교회와 신약 교회의 차이인 것이다.
또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이 피투성이 어린 것 같을 때에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돌보아 주시지만, 우리의 신앙이 자라서 사랑스러운 처녀처럼 되었을 때에는 우리를 사랑하신다.
계속해서 8절의 말씀을 풀어 보자.
“내 옷으로 너를 덮어”
옷으로 덮다 = 결혼하다. 보호하다. 죄를 덮다. 예수로 옷 입다. 우리는 예수로 옷이어야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얻는다.
“벌거벗은 것을 가리우고”
죄를 가리우다. 예수로 옷 입어야 우리는 죄를 가릴 수 있다.
“맹세하고 언약하여”
새로운 언약 곧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고 그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어 구원받게 되는 새로운 언약.
“너로 내게 속하게 하였었느니라”
우리를 곧 신약 교회를 하나님의 소유로 만드셨다.
9절의 말씀을 보자.
“내가 물로 너를 씻겨서 네 피를 없이 하며 네게 기름을 바르고”
물 = 예수님의 물과 피.
피 = 죄
기름 = 성령.
예수님의 십자가의 물과 필로 네 죄를 씻겨 죄를 없이하고 성령을 부어서.
놀랍게도 에스겔 16장 9절의 말씀 속에 우리 기독교의 구원의 원리가 숨어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피로 우리의 죄를 씻기시고, 성령을 주셔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신다.
이어 10-12절의 말씀.
“수 놓은 옷을 입히고 물돼지 가죽신을 신기고 가는 베로 띠우고 명주로 덧입히고 패물을 채우고 팔고리를 손목에 끼우고 사슬을 목에 드리우고 코고리를 코에 달고 귀고리를 귀에 달고 화려한 면류관을 머리에 씌웠나니”
아름답게 단장한 신부의 모습. 하나님께서 신약 교회에게 내려주신 갖가지 은혜와 은사.
누가 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를 보면, 회개하고 돌아오는 아들에게 아버지는 제일 좋은 옷을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워주고 신을 신기신다.
옷 = 우리의 죄를 덮어주는 의의 옷 = 예수
신 = 종은 신을 신지 못한다. 신을 신긴다는 것은 종의 신분에서 아들의 신분을 회복하는 것을 뜻한다.
출애굽기 3장 1-5절에 보면, 모세가 하나님의 산 호렙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장면이 나온다. 떨기나무에 붙은 불을 보려고 가까이 가는데,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죄인인 사람은 거룩한 땅에서는 신을 신을 수 없다. 그래서 여호와는 모세에게 신을 벗으라고 명령하신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다시 신을 신기신다.
누구나 예수에게로 돌아오는 자는 그의 피로 죄사함을 받기 때문에 거룩한 땅에서도 신을 신 수 있는 것이다.
13절의 말씀을 보자.
“이와 같이 네가 금, 은으로 장식하고 가는 베와 명주와 수 놓은 것을 입으며 또 고운 밀가루와 꿀과 기름을 먹음으로 극히 곱고 형통하여 왕후의 지위에 나아갔느니라”
“고운 밀가루와 꿀과 기름”
이스라엘 축제의 음식으로 이스라엘의 산물 중 가장 맛있는 음식.
그러나 다른 영적인 뜻이 숨어 있다. 고운 밀가루에 꿀을 섞고 기름을 발라 구우면 달콤하고 맛있는 과자가 된다.
출애굽기 16장 31절의 말씀을 보자.
“이스라엘 족속이 그 이름을 만나라 하였으며 깟씨 같고도 희고 맛은 꿀 섞은 과자 같았더라”
이스라엘 족속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다. 광야에서는 만나를 먹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광야 같은 이 세상에서도 만나를 먹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다. 광야 같은 이 세상에서 우리가 먹어야 할 만나는 예수님이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6장 47-51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
고운 밀가루와 꿀과 기름 = 만나 = 예수
꿀 = 진리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심령에 꿀처럼 달다. 꿀을 먹으면 눈이 밝아진다. 진리의 말씀을 먹으면 영안이 밝아진다.
기름 = 성령. 생명. 부활을 뜻한다.
고운 밀가루는 무엇인가?
고운 밀가루는 하나님께 화목제로 드리는 제물. 예수님은 하나님과 죄인인 우리 사이의 화목을 위해 희생 제물로 드려졌다. 따라서 고운 밀가루는 예수님의 몸을 뜻한다.
고은 밀가루는 예수님이요, 꿀은 말씀이요, 기름은 성령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중보자요, 말씀이요, 또한 성령이시다.
고운 밀가루와 꿀과 기름은 예수님이다.
“극히 곱고 형통하여”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며,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를 먹으면 극히 곱고 아름답게 변한다.
“왕후의 지위에 나아갔느니라”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인 예수를 먹고 극히 곱고 형통하여 왕이신 예수님의 신부가 되는 자격을 얻게 되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신부 단장을 시키시고, 하늘에서 내려온 산 떡이신 예수님을 먹게 해서 우리를 극히 곱고 형통하게 하여 우리를 예수님의 신부 삼으셨다.
왕후의 자리는 우리 성도가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자리이다. 우리는 예수님을 열심히 먹어야 그 최고의 자리, 왕후의 자리까지 오를 수 있다.
교만한 루시퍼는 자기가 스스로 왕에 자리에까지 오르려고 하다가 그만 지상으로 떨어져 마귀가 되고 말았다. 우리는 왕의 지리에는 오를 수 없다, 우리가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자리는 왕후의 지리이다.
“네가 금, 은으로 장식하고”
금은 하나님의 불변하는 본성을 뜻한다. 지성소의 벽은 금으로 입히고, 증거궤도 금을 입히다.
은은 금 다음으로 귀한 금속이며, 그 흰색으로 해서 성도들의 순결을 뜻한다. 신약 교회는 하나님의 권세와 영광을 힘입어 하나님의 거룩함과 성도의 순결함을 들어낸다.
“가는 베”
세마포 옷. 예수님 앞에 설 수 있는 성도의 바른 행실.
“명주와 수놓은 것”
예수로 옷 입는 것.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의의 옷.
우리가 입어야 하는 옷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하나님 아버지 앞에 설 수 있는 옷 곧 예수님으로 옷 입는 것. 우리는 우리의 노력이나 공로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예수님의 공로에 의지해서 그의 몸을 우리가 덧입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우리의 옳은 행실의 옷이다. 우리는 예수로 옷 입고 아버지 앞에 설 수는 있지만, 또한 옳은 행실의 옷을 입어야 예수님 앞에 설 수 있다.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아버지 앞에 서기 위해서는 예수로 옷 입어야 하지만, 예수님 앞에 서기 위해서는 우리의 옳은 행실이라는 옷을 입어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예수님 앞에 서기 위해서는 옳은 행실 곧 예수님 말씀에 대한 순종이 있어야 한다. 말씀에 대한 순종 없이 예수님과 동행할 수는 없는 것이다.
신약 교회는 하나님 아버지 앞에 설 수 있는 의의 옷을 입고, 예수님 앞에 설 수 있는 옳은 행실의 옷을 입고, 하나님의 권세와 영광을 힘입어 세상에 빛을 내며, 살아 있는 만나인 예수님을 먹고 극히 곱고 형통하여 죄사함을 받은 성결한 모습으로 예수님의 신부가 될 자격을 얻게 되었다.
이어 14절의 말씀을 보자.
“네 화려함을 인하여 네 명성이 이방인 중에 퍼졌음은 내가 네게 입힌 영화로 네 화려함이 온전함이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은 무엇이나 또 언제나 온전하다. 그 온전함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교회는 그 명성이 온 이방 나라에 멀리 퍼지게 되었다.
에스겔 16장 15-32절의 예언
- 신약 교회의 타락과 변질 -
하나님을 찬양하는 천사였던 루시퍼는 그 자신의 아름다움으로 인하여 마음이 교만해져서 타락했듯, 신약 교회도 그 화려함과 그 명성으로 인하여 타락하고 만다.
에스겔 16장 15-32절의 말씀은 신약 교회의 타락과 변질에 대한 예언의 말씀이다.
15절부터 보자.
“그러나 네가 네 화려함을 믿고 네 명성을 인하여 행음하되 무릇 지나가는 자면 더불어 음란을 많이 행하므로 네 몸이 그들의 것이 되도다”
교회는 하나님을 떠나 세상과 더불어 행음을 하게 된다. 교회가 신랑인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과 결혼을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과 결혼을 한 교회는 교회사적으로 보아 로마 국교 교회이다.
로마 국교 교회는 주변 나라들의 이단적이며 이교적인 요소들을 교회 안으로 마구 받아들인다. 말하자면 지나는 자면 더불어 음행을 한다. 뿐만 아니라, 세상 정치권력을 교회 안으로 가지고 들어온다.
“네 몸이 그들의 것이 되도다”
그 결과 하나님의 교회가 하나님을 떠난 이방의 교회, 세상의 교회가 되고 말았다.
16-19절의 말씀
“네가 네 의복을 취하여 색스러운 산당을 너를 위하여 만들고 거기서 행음하였나니 이런 일은 전무후무하니라 네가 또 나의 준 금, 은 장식품으로 너를 위하여 남자 우상을 만들어 행음하며 또 네 수 놓은 옷으로 그 우상에게 입히고 나의 기름과 향으로 그 앞에 베풀며 또 내가 네게 주어 먹게 한 내 식물 곧 고운 밀가루와 기름과 꿀을 네가 그 앞에 베풀어 향기를 삼았나니 과연 그렇게 하였느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네가 네 의복을 취하여 색스러운 산당을 만들고”
의복은 우리의 벌거벗은 수치를 가리기 위해 하나님께서 입혀 주신 것이다 그런데, 이 귀한 의복을 벗어 산당을 만든다. 의복을 취하여 산당을 만들기 위해서는 옷을 벗어 그 수치를 다시 들어내야 한다. 다시 죄인으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의 옷 = 예수님
예수님으로 산당을 만들다 = 예수님의 교회를 우상의 교회로 만든다.
“이런 이은 전무후무하니라”
이런 일은 일찍이 없었던 일이다. 도저히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였다.
“나의 준 금, 은 장식품으로 너를 위하여 남자 우상을 만들어”
금 = 하나님.
하나님으로 우상을 만들다. 그들은 예수로 우상을 만들었다.
은 = 성결한 성도. 뛰어난 믿음의 성인들로 우상을 만든다.
그들은 그렇게 우상을 만들어 놓고 그 우상을 숭배한다.
남자 우상 = 겸하여 섬기는 우상이 아니라 신으로 섬기는 우상.
여자 우상 = 하나님과 겸하여 섬기는 우상.
“우상을 만들어 행음하며”
하나님을 버리고 그 우상을 남편으로 섬긴다. 영적 간음.
“수놓은 옷으로 그 우상에게 입히고”
옷은 우리의 죄를 가리는 예수님이다. 그 옷(예수)을 우상에게 입히다 = 우상을 예수님 모습으로 만든다. 예수님 모습으로 우상을 만든 다음, 그 우상을 예수님이라고 말하며 경배한다. 그들이 경배하는 것은 예수님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만들어 놓은 우상인 것이다.
“너를 위하여”
그들이 이런 우상을 만든 것은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저기 자신들의 유익을 위해서이다. 모든 우상 숭배 행위는 하나님을 위하지 않고 나 지신을 위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하나님을 위하지 않고 나를 위하는 마음 곧 탐심이 우상 숭배를 낳는다.
“나의 기름과 향으로 그 앞에 베풀며 또 내가 네게 주어서 먹게 한 내 식물 곧 밀가루와 기름과 꿀을 네가 그 앞에 베풀어 향기를 삼았나니”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것들을 다 우상에게 바친다.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것들을 가지고 우상 숭배하는데 사용한다.
기름 = 생명. 향 = 기도. 고운 밀가루 = 충성 꿀 = 진리의 말씀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귀한 것들이다. 그런데, 그들은 이것들을 다 우상에게 바쳤다.
그들은 우상에게 생명을 바치고, 우상에게 기도를 하고, 우상에게 충성을 바치고,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우상의 말로 바꾸어버렸다.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변형시켜서 우상의 가르침으로 만들었다.
“과연 그렇게 하였느니라”
놀랍게도 그들은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하신 그 하나님의 아들을 우상으로 만든 것이다.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절대로 거짓은 말씀하시지 않는 여호와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다.
20절의 말씀
“또 네가 나를 위하여 낳은 네 자녀를 가져 그들에게 드려 제물을 삼아 불살랐느니라”
구약 시대 가나안 지방에서는 아들을 불에 살라 신에게 바치는 풍습이 있었다. 특히 몰랙신을 섬기는 지방에서 심했는데, 이것은 하나님이 가증이 여기고 금하시는 일이었다. 그러나 타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방신의 이 가증한 풍습을 따라 그들의 아들을 불살라 바치는 일을 행하게 되었다.
신약 교회에 들어와서도 중세 암흑시대 교회에서는 성령이 충만하여 하나님을 바르게 믿고 하나님의 참 뜻을 따르려는 성도(아들)들을 잡아다가 종교 재판을 통해 신성 모독죄 같은 죄목을 붙여 화형에 처하고 하였다.
이 20절 말씀의 영적인 뜻은, 하나님을 믿고 구원받을 사람들을 교회가 타락해서 그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영적으로 죽게 하는 일을 뜻한다. 이런 뜻에서, 교회사상(敎會史上) 참으로 많은 교회들이 믿음의 아들들을 죽였던 것이다.
“네가 나를 위하여”
교회가 하나님을 위하여.
“낳은 자녀”
교회가 하나님을 위하여 자녀를 낳다. 교회가 하나님의 위하여 믿음의 자녀를 낳다. 구원받을 생명을 낳다. 우리가 교회에 나와 하나님을 믿고 생명을 얻으면, 그 생명이 바로 교회가 하나님을 위해 낳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이다.
교회가 하나님과 함께 할 때에는 교회는 많은 자녀들(생명을 얻은 성도들)을 낳지만, 교회가 타락하면, 생명을 얻을 자녀들을 다 죽게 한다.
“그들에게 드려 제물을 삼아”
교회가 타라하면 그 교회는 사단에게 속하게 된다. 교회가 사단에게 가면, 교회가 하나님을 위해 낳은 자녀들을 죽여 사단에게 제물로 바치는 것이 된다.
지금 이 시대에도 참으로 많은 교회들이 타락하고, 하나님의 자녀들을 죽여 사단에게 제물로 바치고 있다.
23-24절의 말씀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는 화 있을진저 화 있을진저 네가 모든 악을 행한 후에 너를 위하여 누를 건축하며 모든 거리에 높은 대를 쌓았도다”
23절부터는 중세 암흑기 교회에 대한 예언의 말씀이다.
어째서 그렇다고 생각하는가?
23절 이하의 말씀을 풀어 나가면 그것을 알 수 있다.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를 창조한 너희의 주인인 나 하나님 여호와가 말한다. 그러니 정신을 차리고 들어라.
“네가 모든 악을 행한 후에”
지금까지의 모든 악을 행하고도 부족하여서.
지금까지의 모든 악 = 타락한 로마 국교가 저지른 죄 즉 주위 나라들의 이교적, 이단적 요소들을 마구 받아들이며, 또 세상 권력과 하나가 되어 교회의 순수성을 상실한 죄.
“너를 위하여 누를 건축하며 모든 거리에 높은 대를 쌓았도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가 아니라 교회 자체의 영광을 위하여, 혹은 성직자들의 영광을 위하여 높고 광대한 교회 건물을 짓고 또 수많은 조각상들을 만들어 세웠다.
“화 있을진저 화 있을진저”
이런 자들에게는 화가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교회를 타락시키고, 높고 광대한 교회 건물을 자기 자신의 영광을 위해 짓는 자들은 화가 있을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다.
“누와 높은 대”
구약 시대, 바알 산당이나 길거리 십자로에 세워진 작은 방인데, 이 방은 소위 “성스런 매춘 행위”를 위한 장소로 사용되었다.
여기서 참고삼아 가나안 종교의 대표격인 바알 신앙에 대해 간단히 알아 보자.
바알 신의 우두머리는 “엘”이며, 그의 아내는“아세라”이다.
그리고 엘과 아세라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바알”이다.
바알은 비와 식물의 신이며, 그의 아내 아나스는 사랑과 전쟁의 신이다. 그런데 이 바알과 아나스의 성적 결합에 의해서 자연의 풍요와 토지의 비옥함이 재생산된다고 믿었다. 그래서 백성들도 바알과 아나스와의 성관계를 모방하는 것에 의해 풍족한 산물을 얻는 것으로 생각하고 산당에서 분향이 끝나면 산당의 여자 신관들과 종교 의식의 하나로 성관계를 가졌던 것이다. 이것이 소위“성스러운 매춘”이며, 이런 매춘 행위가 행해진 곳이 바로 누와 높은 대였다.
그러므로 이 누와 높은 대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 우상을 숭배하는 영적 간음 뿐 아니라 실제적인 육신의 간음 행위까지를 행했던 장소였다.
이 누와 높은 대는 중세 암흑시대 교회에 들어와서 높고 거대한 성당 건물로 변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가 아니라 교권의 영광을 위하여 거대하고 화려한 건물을 짓는다. 중세 암흑시대의 교회는 변질된 교회요, 계시록의 7 교회사적으로 보면 “두아디라 교회”이다. 이것을 부정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주님은 변질된 교회인 두아디라 교회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신다.
계시록 2장 20절의 말씀을 잠시 보자.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이세벨은 이스라엘 왕 아합의 이방인 아내이다. 그녀는 열렬한 바알 숭배자로 아합 왕을 바알 숭배자로 만들고, 아합 왕을 통하여 온 이스라엘 이 바알을 섬기도록 만들었다.
여자 이세벨은 하나님의 교회에 이단적, 이교적 요소들을 가지고 들어와서 교회를 변절시키는 자들의 대표이며, 동시에 변질된 교회의 예표이기도 하다.
다시 에스겔로 돌아가자.
25절의 말씀
“네가 높은 대를 모든 길머리에 쌓고 네 아름다움을 가증하게 하여 모든 지나가는 자에게 다리를 벌려 심히 행음하고”
“높은 대를 모든 길머리에 쌓고”
높은 대는 바알의 여신관들과 성적인 관계를 갖는 곳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곳에 올라가 영과 육의 간음을 행하였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렇게 하나님을 배반하고 바알 신을 섬긴 것은, 바알 신은 물질의 복을 가져다주는 신이었기 때문이다.
바알 신은 농업의 신이었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서 농사를 지으며 풍요로운 수확을 얻기 위해서는 바알 신을 섬겨야 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물질적 풍요와 육체의 쾌락을 위해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 신을 섬기게 되었던 것이다.
암흑시대 중세 교회에서는 높은 가람들을 모든 길머리에 세우고 그 안에서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 자신들의 육신의 영달이나 명성이나 그 밖이 것들을 위해서 교인들과 민중들을 지배하며 정치적 권력까지도 장악하고 있었다.
중세 교회의 그 웅장하고 화려한 건축물들은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길 머리에 쌓고 그 안에서 행음하던 바로 그 높은 대와 같은 것이었다.
“네 아름다움을 가증하게 하여”
교회의 아름다움은 하나님의 아름다움이며, 하나님께서 주신 아름다움이다. 그것은 눈 같이 희고 순결하며 세상과는 구별되는 거룩함이며, 영적인 아름다움이다.
그런데, 교회는 이런 아름다움을 버리고 사람들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 표면적인 아름다움, 세속적인 아름다움으로 바꾸고 말았다. 쉽게 말하면, 하늘의 신령한 것을 땅의 썩어질 것으로 바꾸고 영적인 것을 가지고 육적인 것으로 바꾸었다.
하늘의 신령한 것은 하나님에게 속하고 땅의 썩어질 것은 사단에게 속한다. 교회가 하늘의 신령한 것을 땅의 썩어질 것과 바꾸었다는 것은 교회가 하나님을 버리고 사단을 섬기게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참으로 많은 지금의 교회들이 하늘의 신령한 것을 버리고 땅의 썩어질 것을 취한다. 하늘의 신령한 것을 땅의 썩어질 것과 바꾸어 갖는다. 하나님과 사단을 바꾸어 갖는다. 많은 교회들이 하나님과 사단을 구별하지 못한다. 하나님은 이런 행위를 가증한 행위라고 말씀하신다.
왜 많은 교회들이 이렇게 하늘의 신령한 것을 버리고 땅의 썩어질 것을 취하는가?
땅의 썩어질 것이 좋아 보이기 때문이다. 하늘의 신령한 것이 그들 눈에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보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썩어질 것만 보이기 때문이다. 교회가 눈에 보이는 것만을 쫓기 때문이다. 육의 눈에 보이는 것만을 보기 때문이다. 육의 눈밖에는 없는 자들이 교회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모든 지나가는 자에게 다리를 벌려 심히 행음하고”
다리를 벌려 행음하다 = 여자 쪽에서 먼저 자진해서 행음하다.
에덴동산에서 하와가 타락한 것은 뱀의 유혹을 받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유혹에 져서 그만 본의 아니게 타락했다. 믿는 우리들이 범죄하는 것은 유혹에 이끌려서 본의 아니게 범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 중세의 변질된 교회는 유혹에 져서 본의 아니게 행음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좋아서 먼저 다리를 벌려 행음을 한다. 그것도 선택해서 다리를 벌리는 것이 아니라 지나가는 자면 아무에게나 다리를 벌린다. 그것도 그냥 행음하는 것이 아니라 심히 행음한다.
변질된 교회인 중세 교회는 그 교세를 주변 나라로 확장해 가면서 이방 나라들의 이교적인 요소들을 받아들여 그것들과 동화해버렸던 것이다.
26절의 말씀
“하체가 큰 네 이웃나라 애굽 사람과도 행음하되 심히 음란히 하여 내 노를 격동하였도다”
남자의 하체가 크다는 것은 음행하는 여자들이 좋아하는 조건의 하나다. 이 말씀의 뜻은, 애굽에는 변질된 교회가 즐겨 받아들일만한 이단적인 요소들이 많이 있다는 뜻이다.
“하체가 큰 이웃나라 애굽”
이스라엘 민족은 애굽에서 400년 동안 종살이를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애굽에서 광야로 인도하여 내시고, 젖고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가셨다.
애굽 = 죄악 세상.
광야 = 교회 생활
가나안 = 천국
우리가 천국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죄악 세상에서 나와 광야 생활을 거쳐야 한다.
광야 생활에서 우리가 먹어야 하는 것은 만나와 생수다.
그런데, 이스라엘 자손들은 불평을 하가 시작한다. 애굽에서 고기 가마 옆에 있었을 때가 좋았다고 하며 오히려 애굽 종 사리하던 때를 그리워한다.
고기 = 육신의 정욕과 쾌락
광야를 가는 이스라엘 자손들은 만나는 맛이 없어 먹기 싫고 애굽에서 먹던 고기가 먹고 싶다고 불평하기 시작한다. 예수는 싫고 세상 육신의 쾌락이 좋다는 불평인 것이다.
만나는 싫고 고기가 좋다고 하는 자들은 다 애굽으로 되돌아가야 하는 자들이다. 교회가 가나안으로 가지 않고 되돌아 애굽으로 갈 때, 이 교회는 애굽과 행음하는 교회, 세상과 결혼하는 교회, 변질된 교회인 것이다.
애굽 곧 죄악 세상에는 변질된 교회들이 즐겨 받아들이고 싶은 것들이 너무나 많다. 변질된 교회, 타락한 교회를 매혹시킬 만한 세상의 좋은 것들이 바로 “하체가 큰 네 이웃 나라 애굽 사람”인 것이다.
참으로 많은 이 나라의 교회들이 하체가 큰 이웃 나라 애굽 사람들과 심히 음란히 행음을 하고 있다. 참으로 지금의 이 나라의 교회들이 만나는 버리고 고기만을 즐겨하고 있다. 광야는 버리고 애굽으로 되돌아가서 바로와 같은 집을 짓고 바로 왕 같이 고기를 먹으며 바로 왕 같은 사치를 누리고 있다.
애굽과 행음하는 교회, 세상과 결혼하는 교회, 곧 광야에서 되돌아 애굽으로 간 교회에는 만나가 없다. 만나는 오직 광야에만 있다. 교회는 광야에 있어야 한다. 광야에만 만나와 생수가 있고, 광야에만 구름기둥 불기둥이 있기 때문이다. 광야를 지나지 않고는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다.
“내 노를 격동하였도다”
구름기둥, 불기둥을 따라 가나안으로 향하지 않고 반대 방향인 애굽으로 향하는 교회는 하나님의 노를 격동시킨다.
여호와 하나님의 기적을 보고 출애굽을 직접 체험하고도 광야에서 하나님께 불평불만을 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 가나안 땅을 밟아보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 지금 이 시대에도, 교회 생활에서 만나와 생수 이외의 다른 것을 탐하고 먹겠다고 불평불만을 하는 자들과, 우리 교회에 오면 고기도 먹게 해 주겠다고 하는 교회들은 다 하나님의 노를 격동시켜 천국을 보지 못하고 죽고 만다.
종교 개혁에 대한 예언
타락하고 변질된 교회는 개혁되어야 한다.
에스겔 16장 27절은 종교 개혁에 대한 예언의 말씀이다.
27절의 말씀을 보자.
“그러므로 내가 내 손을 네 위에 펴서 네 일용 양식을 감하고 너를 미워하는 블레셋 여자 곧 네 더러운 행실을 부끄러워하는 자에게 너를 붙여 임의로 하게 하였거늘”
“그러므로”
교회가 이웃 애굽 사람과 심히 행음하고, 죄악 세상과 결혼하여 만나와 생수는 싫고 고기만 먹겠다고 하므로.
“내가 내 손을 네 위에 펴서”
하나님께서 그 능력의 손을 교회 위에 펴서.
“네 일용 양식을 감하고”
하나님이 교회에게 주시는 하늘의 신령한 은혜와 은사를 감하고.
“너를 미워하는 블레셋 여자”
여기서의 블레셋 여자는 누구를 가리켜 하신 말씀일까?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사사기 10장 6-7절의 말씀을 알아야 한다.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과 아스다롯과 아람의 신들과 시돈의 신들과 모압의 신들과 암몬 자손의 신들과 블레셋 사람의 신들을 섬기고 여호와를 버려 그를 섬기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블레셋 사람의 손과 암몬 자손의 손에 파시매”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의 신들을 섬길 때 하나님은 블레셋 사람의 손을 통해 그들을 징계하셨다.
앗수르와 바벨론이 하나님께 배역한 이스라엘을 징계하시는 큰 몽둥이라고 한다면, 블레셋은 하나님의 작은 몽둥이 중의 하나다.
그럼, 왜 그냥 블레셋이라 하지 않고 블레셋 여자라고 여자를 붙인 것일까? 그 까닭은, 여기의 이“블레셋 여자”는 블레셋 족속 그 자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블레셋과 같은 역할을 하는 자”를 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너를 미워하는 블레셋 여자 곧 네 더러운 행실을 부끄러워하는 자에게”
“블레셋 여자”는 중세 교회의 타락과 변질을 미워하고 그 더러운 행실을 부끄러워하는 자이다.
그럼, 중세 교회의 타락과 변질을 미워하고 그 더러운 행실을 부끄러워하는 자란 구체적으로 누군가?
종교 개혁자들이다.
블레셋 여자 = 중세 교회의 타락과 변질을 미워하고 그 더러운 행실을 부끄러워하는 자 = 종교 개혁자
“너를 붙여 임의로 하게 하였거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의 신들을 섬기게 되었을 때, 블레셋 족속들 손에 붙여 그들을 다시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신 것처럼, 타락하고 변질된 교회를 회복시키기 위해 블레셋 여자 곧 종교 개혁자들을 그들에게 보내신다.
에스겔 16장으로 돌아가서, 28-29절의 말씀
“네가 음욕이 차지 아니하여 또 앗수르 사람과 행음하고 그들과 행음하고도 오히려 부족히 여겨 장사하는 땅 갈대아에까지 심히 행음하되 오히려 족한 줄을 알지 못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종교 개혁자들을 보내어 변질된 교회에 대해 회개할 기회를 주신다. 그러나 그들은 회개할 줄 모를 뿐 아니라 더욱 더 심히 행음을 하고도 족한 줄을 몰랐다.
앗수르 = 원방에 있는 나라들. 원수 관계에 있는 나라들.
장사하는 땅 갈대아 = 문화적, 종교적으로 아무 관련도 없고, 단지 물자의 교역만을 위해 교류를 갖는 아주 먼 곳에 있는 나라들.
중세 교회는 온 세계로 교세를 확장해 나가면서 그 나라가 어떤 나라이든 관계없이 그 나라, 그 민족의 고유 신앙을 흡수하고 동화해 나간다. 또 그 나라 고유의 신앙과 합쳐져서 토착해버리기도 한다.
30절의 말씀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네가 이 모든 일을 행하니 이는 방자한 음부의 행위라 네 마음이 어찌 그리 약한지”
32절
“그 지아비 대신에 외인과 사통하여 간음하는 아내로다”
35절
“그러므로 너 음부(淫婦)야 여호와의 말을 들을찌어다”
하나님은 드디어 이 악하고 음란한 교회, 하나님 대신 외인과 사통하여 간음하는 아내 같은 교회, 음부 교회를 별 하신다.
어떻게 벌하시는가?
그것이 37절 이하에 나온다.
37-43절의 말씀
“내가 너의 즐거워하는 정든 자와 사랑하던 모든 자와 미워하던 모든 자를 모으되 사방에서 모아 너를 대적하게 할 것이요 또 네 벗은 몸을 그 앞에 드러내어 그들로 그것을 다 보게 할 것이며......내가 또 너를 그들의 손에 붙이리니 그들이 네 누를 헐며 네 높은 대를 훼파하며 네 의복을 벗기고 네 장식품을 빼앗고 네 몸을 벌거벗겨 버려두며 무리를 데리고 와서 너를 돌로 치며 칼로 찌르며 불로 너의 집들을 사르고 여러 여인의 목전에서 너를 벌할지라......내가 네 행위대로 네 머리에 보응하리니 네가 이 음란과 네 모든 가증한 일을 다시는 행하지 아니하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음란한 교회를 언제, 그렇게 벌하실 것인가?
또 누구의 손을 통해 그렇게 보응하실 것인가?
변잘된 교회인 중세 교회의 후신인 지금의 가톨릭교회는 오늘날도 전 세계에 수 없이 많은 교회들을 거느리며 전재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아직은 이 교회를 그냥 두고 계시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직은 이 말씀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정말로 이 예언의 말씀처럼 그 교회를 벌하시고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실 것인가?
만일 하신다면 언제? 어떻게?
신약 교회의 배도
종교 개혁자들 손에 의해서 개신 교회가 생겼다. 그런데, 이 개신 교회도 다시 타락의 길을 밟는다.
중세 교회는 그 두터운 담과 높은 지붕 속에 갇혀 있었다. 말하자면, 중세 교회는 일반 백성들과는 별 관계가 없었다. 개신 교회는 그 두터운 담을 허물고 높은 지붕을 깎아 내렸다.
그런데, 중세기 암흑시대 동안 교회가 그렇게 높은 지붕, 두터운 담 속에서 갇혀 있었기 때문에, 교회는 교회의 전통을 보존하고 유지시켜 내려올 수 있었다. 중세 교회에서 성경은 숨겨진 책이었다. 일반 백성들은 성경을 읽을 수도 없었고 소유할 수도 없었다. 성직자라 하도 성경을 마음대로 해석할 수도 없었다. 이것은 비난받아 마땅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랬기 때문에, 사람들 손이 닿지 않은 곳에 숨겨진 귀한 보물처럼, 성경 말씀이 세속적으로 오염되지 않은 채, 천 몇 백 년이란 긴 세월을 이어 내려올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개신 교회에서는 중세 교회의 그 높은 담과 높은 지붕을 다 허물어버렸다. 교회 안에 갇혀 있던 말씀이 교회 밖으로 나왔다. 성경이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되고 서민들도 다 성경을 일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바로 이 점 때문에 개신 교회는 아주 짧은 기간 동안에 급격히 세속화되고 중세 교회보다도 훨씬 빠른 속도로 타락하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 때에 교회 안에서 큰 배도가 일어난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 3절의 말씀을 보자.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라”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 적그리스도가 나타나기 전에 교회 안에 배도가 있게 된다.
배도(背道)가 무엇인가?
하나님을 믿던 자가 하나님을 버리고 사단에게 붙는 것이다. 하나님 교회에 속해 있던 자들이 하나님의 교회를 버리고 사단의 교회인 적그리스도 교회로 옮겨가는 것이다. 이것이 배도이다.
아무리 타락한 교회, 간음하는 교회, 세속화한 교회라고 해도, 그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이며, 그 안에서 믿음을 지키는 자들은 구원을 받는다. 그러나 배도하는 자들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이다.
마지막 때에, 개신교, 가톨릭, 할 것 없이 모든 종파, 모든 교파에서 적그리스도를 따르는 거짓 선지자들이 많이 나와 적그리스도 교회를 세운다.
하나님을 배반한 이 적그리스도 교회는 제일 먼저 가톨릭교회를 그들의 첫째 공격 대상으로 삼을 것이다. 전 세계에 널리 펴져 있는 그 방대한 기구와 조직과 힘을 가지고 있는 가톨릭교회는 그들의 가장 큰 장애이며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동시에 유럽 인구의 80% 이상을 점하고 있는 가톨릭 신자들을 적그리스도 교회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라도 가톨릭교회를 공격해서 그 조직과 권위를 파괴해버리는 것이 아주 효과적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마지막 때에, 가톨릭교회는 적그리스도 교회에 의해서 파괴되고 만다.
일부학자들 중에는 가톨릭교회를 적그리스도 교회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건 잘못이다.
또 한편에서는 로마 가톨릭교회를 배도하는 교회 곧 적그리스도 교회로 보기도 하지만, 그것도 잘못된 생각이다. 지금의 가톨릭교회는 마지막 때에 배도하는 교회가 아니며, 적그리스도 교회도 아니다. 가톨릭교회를 마지막 때의 적그리스도 교회로 보는 학자들이나 종말론자들은 교회의 타락과 배도를 구별 못하는 있는 것이다. 교회의 타락, 변질과 배도는 전혀 다른 것이다.
음녀와 큰 음녀
음녀(음녀 교회) 와 큰 음녀는 어떻게 다른가?
타락하고 세속화된 교회, 세상과 결혼한 교회, 우상 숭배를 하는 교회가 음녀이다. 이런 음녀 교회는 전 교회사를 통해 늘 있어왔다.
큰 음녀는 마지막 때에 나타날 적그리스도 교회가 큰 음녀이다.
음녀 교회는 비록 타락하고 세상이나 우상과 간음을 하긴 하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교회이다. 그리고 비록 음녀 교회라고 해도 그 안에서 참 믿음을 가진 자들이 있으며 그들은 그 믿음에 따라 구원을 받는다.
큰 음녀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마지막 때의 사단의 교회이다. 예수님은 바로 이 큰 음녀와 적그리스도를 멸하시기 위해 이 땅에 재림하신다.
그렇긴 하지만, 세상에 음녀 교회 곧 타락하고 세속화하고 우상을 숭배하는 교회가 있으므로 해서 마지막 때에 큰 음녀 곧 적그리스도 교회가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음녀 교회야말로 이 땅에 큰 음녀를 태어나게 하는 모체인 것이다. 그러므로 음녀 교회도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마땅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앗수르라는 큰 몽둥이를 들어 불순종하는 북 이스라엘을 징계하시고, 앗수르에게 별을 주어 멸망시키셨다. 또 바벨론이라는 큰 몽둥이로 남 유다를 때려 징계하신 다음 그 바벨론을 또 멸망시키셨다.
마지막 때에, 하나님은“큰 음녀”라는 몽둥이를 들어 타락하고 간음한 교회인“음녀”를 징계하신다. 그런 다음 “큰 음녀”를 쳐서 멸망시켜 버리신다. 큰 음녀가 멸망을 당하면 7년 환난은 끝이 나는 것이다.
가톨릭교회 파괴에 대한 예언
그럼, 마지막 때에 “음녀”인 가톨릭교회가 배도한 교회인“큰 음녀”에 의해 어떻게 파괴를 당하는지 에스겔 16장 37-41절의 말씀을 따라 알아보기로 하자.
37절의 말씀
“내가 너의 즐거워하는 정든 자와 사랑하던 모든 자와 미워하던 모든 자를 모으되 사방에서 모아 너를 대적하게 할 것이요 또 네 벗은 몸을 그 앞에 드러내어 그들로 그것을 다 보게 할 것이며”
“즐거워하는 정든 자”
이 교회가 즐겨 받아들인 우상 숭배자들과 이교적인 요소와 이단적인 교리,
“사랑하던 모든 자”
이 교회의 이교적인 요소와 이단적 교리를 믿고 따르던 신도들.
“미워하던 자”
가톨릭교회의 변질을 비판하여 가톨릭교회의 미움을 받던 개신교 교회.
“모든 자를 모으되 사방에서 모아 너를 대적하게 할 것이요”
마지막 때에, 교회의 대대적인 배교가 있을 때에, 가톨릭교회 안에서도 많은 사제들과 신도들이 빠져 나와 적그리스도 교회의 구성원이 된다.
이렇게 가톨릭교회에서 빠져 나온 사람들 중에는“즐겨워하던 정든 자” 곧 교회 안에서 이세벨의 교훈을 가르치고, 따르던 자들도 있을 것이고, 또 “사랑하던 모든 자” 곧 그 이단적 교리를 믿고 따르며 함께 신앙생활을 하던 자들도 있을 것이다.
반면, 개신교 교회에서도 많은 목회자, 신도들이 빠져 나와 적그리스도 교회로 들어온다.
이렇게, 가톨릭교회에서 빠져 나온 사람들 곧 “즐거워하는 정든 자”와 “사랑하던 모든 자”그리고 개신교에서 빠져 나온 “미워하던 모든 자”와 함께 각처로부터 몰려와서 가톨릭교회를 대적하게 된다.
한마디로 말한다면, 가톨릭교회에서 배도하여 나온 자들과 개신교에서 배도하여 나온 자들이 적그리스도의 앞잡이가 되어 가톨릭교회를 대적하게 된다는 말이다.
“너를 대적하게 할 것이요”
하나님께서는 변질한 교회를 징계하시는 도구로 하나님을 배역한 자들의 모임인 적그리스도 교회를 이용하신다는 말이다.
“또 네 벗은 몸을 그 앞에 드러내어 그들로 그것을 다 보게 할 것이며”
그 배역한 자들은 가톨릭교회가 가지고 있었던 많은 죄상들을 백일하에 들어낸다. 이 교회가 그때까지 숨겨 가지고 있던 많은 비밀들을 세상에 낱낱이 들어내어 고발한다.
38절의 말씀
“내가 또 간음하고 사람의 피를 흘리는 여인을 국문함 같이 너를 국문하여 진노의 피와 투기의 피를 네게 돌리고”
“간음하고 사람의 피를 흐리는 여인”
간음하고 사람의 피를 흘리는 여인이 누군가? 이세벨이다.
이 여자는 이스라엘로 하여금 바알 신을 숭배하게 만들고 여호와의 많은 선지자들을 죽였다. 마찬가지로 중세 교회는 이세벨의 교훈을 받아들여 우상을 숭배하고 하나님의 참 종들을 형틀에 달아 죽였다.
“여인을 국문함 같이”
간음하고 사람의 피를 흘린 여자 이세벨을 국무함 같이, 간음하고 사람의 피를 흘린 이 교회에 대해서도 하나님은 그렇게 국문하여 진노의 피와 투기의 피를 그에게 돌리신다.
(이세벨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예후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장면이 열왕가하 9장 30-37절에 나온다)
39절의 말씀
“내가 또 너를 그들의 손에 붙이리니 그들이 네 누를 헐며 네 높은 대를 훼파하며 네 의복을 벗기고 네 장식품을 빼앗고 네 몸을 벌거벗겨 버려두며”
가톨릭교회의 그 높고 화려한 대성당들을 닥치는 대로 파괴해버린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 교회에 주신 모든 은혜와 은사와 특권을 다 빼앗아 버린다. 하나님께서는 적그리스도 교회의 손을 통해 그 옛날 하나님이 교회에 내려주셨던 그 많은 은혜들을 다 빼앗겨 버린다.
또 문자적인 뜻으로는,
“의복을 빼앗고”
사제들이 입는 그 화려한 법복을 빼앗다. 벗겨버린다.
“장식을 빼앗고”
그들 몸에 붙어 있던 장식과 성당 건물에 붙인 장식과, 또 가톨릭교회의 가장 큰 장식이었던 마리아 상과 예수님 상을 없애버린다.
“몸을 벌거벗겨 벼려두며”
그들이 사제의 직분을 빼앗아 버리고, 또 사제들의 옷을 벗겨 벌거벗은 알몸으로 밖에 버려둔다.
40-41절
“무리를 데리고 와서 너를 돌로 치며 칼로 찌르며 불로 너의 집들을 사르고 여러 여인의 목전에서 너를 벌할지라 내가 너로 곧 음행을 그치게 하리니 네가 다시는 값을 주지 아니하리라”
“무리를 데리고 와서”
배도하여 적그리스도 교회의 앞잡이가 된 자들이 많은 무리를 데리고 와서.
“돌로 치며”
돌로 치는 행위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어긴 자들은 처형하는 방법이다. 적그리스도 교회의 무리들은 그들이 이 교회를 치는 이유를 이 교회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한 변질된 교회이기 때문이라고 말할 것이다. 배도한 적그리스도 교회의 무리들이 변질된 하나님의 교회를 정죄한다.
“칼로 찌르며”
종교적인 동기나 이유가 없는 단순한 폭력에 의한 살상 행위. 적그리스도 교회가 가톨릭교회를 칠 때, 신앙과는 아무 관련도 없는 사람들까지 싸우고 죽이고 하는 일이 생기게 될 것이다.
“불로 너의 집들을 사르고”
교회 건물에 방화하여 불태워버린다.
“여러 여인들 목전에서 너를 벌할찌라”
많은 교회들이 보고 있는 앞에서 그를 벌하신다.
여인 = 교회
거기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왜 하나님은 여러 교회들이 보는 앞에서 이 교회를 벌하시나?
이 교회가 적그리스도 교회에 의해 파괴되는 것을 보고 믿음이 적은 자들은 그만 겁을 먹고 자기들도 배도하여 적그리스도 교회의 일당이 되고 만다. 한편, 믿음이 강한 자들, 영안이 열려 있는 자들, 말씀을 깨달은 자들은, 변질된 교회가 하나님께서 성경에 예언하신 대로 정확하게 보응하시는 것을 보고는 더욱 말씀으로 무장하여 믿음을 지키게 된다. 하나님은 이 사건을 통해서도 알곡과 쭉정이를 갈라내신다.
“내가 너로 곧 음행을 그치게 하리니”
이제는 더 이상 음행을 할 수 없게 된다.
적그리스도 교회에 의한 가톨릭교회의 파괴가 끝나면, 가톨릭교회는 이제는 아주 없어지고 마는가?
아니다. 비록 표면적으로는 없어지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그 안에 있던 구원받는 참 성도들은 몸을 피하고 숨어서 계속 믿음을 지킬 것이다. 사람들 눈에는 가톨릭교회는 파괴되어 없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엄연히 살아 있는 것이다.
하나님 눈에는 이들만이 교회인 것이다. 하나님이 이 교회를 치신 것은 실은 교회를 치신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자리 잡고 앉아서 하나님의 역사를 방해하고 교회를 타락하게 했던 그 지저분한 존재들을 제거하신 것뿐인 것이다. 말하자면, 하나님께서는 적그리스도의 손을 통해 당신의 교회를 정케 하시고 교회 안에 있던 가라지와 쭉정이들을 제하여 버리신 것이다.
가톨릭교회가 파괴되는 모습
마지막 때에, 가톨릭교회가 적그리스도 교회의 의해 파괴되는 모습을 보자.
마지막 때에, 아직 적그리스도가 우리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내기 전, 7년 환난이 시작되기 적전에, 교회 일각에서 대대적인 회개 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그들은 지금까지의 안일했던 자신들의 믿음을 회개하고 이웃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며 주께서 어서 재림해 주실 것을 기도한다.
그들은 매일매일 모여서 기도하며 말씀을 묵상하며 주께서 재림하신다면 그 때가 바로 지금이 아니겠느냐 하며 생업도 버리고 있는 것을 서로 나누어 쓰며 오직 가도에 힘쓴다.
동시에, 여기에 때한 반발도 일어난다. 주님은 성경 말씀의 문자 그대로 구름을 타고 공중으로 재림하시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나오게 된다.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들 중에는 저명한 목회자, 유명한 신학자, 신학대학 교수들이 많이 있다.
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주님은 이미 성령의 모습으로 재림하셨다. 이미 성령의 모습으로 재림하신 예수님은 보지 못하고 육신을 입고 구름을 타고 오실 예수님을 바라며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어리석은 짓은 이제 그만 두라고 말한다.
하긴, 사람의 상식으로는 예수님이 몸을 입고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둥실둥실 내려오실 것이란 말이 믿어지지 않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말인 것이다.
다른 주장도 나온다. 이들은 주장하기를, 주님은 구름을 타고 공중으로 재림하시는 것이 아니라 초림 예수처럼 여자의 몸을 통해 태어나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재림 예수는 벌써 세상에 오셨다는 것이다.
다른 주장이 또 나온다. 이들은 주장하기를, 2000년 전, 나사렛에서 자란 목수의 아들 예수는 단지 목수의 아들일 뿐, 그리스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만일 그가 참 구세주였다고 한다면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당시 억압 속에 살았던 그 불쌍한 백성들을 구원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무력하게도 십자가에 달려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고 죽고 말았다. 그러므로 그는 그리스도가 아닌 것이다. 그런데, 이제 진짜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가 나타나서 이 어지러운 세상에 화평을 가져다주고, 지구상에 있는 많은 나라들을 한 나라로 통일하고, 그 통일된 단일 국가의 단일 대통령이 되어 우리를 통치해 줄 것이라, 라고 주장한다.
세계가 단일 국가로 통일이 되면 국가 간의 빈부의 차가 없어진다. 자원과 기술이 효율적으로 배분되어 사용되고 무역 불균형 같은 구시대적 근심거리도 없어진다. 무엇보다도 나라 사이의 전쟁이 없어진다. 그래서 군비 경쟁을 할 필요가 없어진다. 그 어마어마한 군비를 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복지비로 전용한다면 세상에 어렵게 사는 사람 없을 것이다.
국경이 없으므로, 인구와 물자의 유동이 자유로워 세계는 급속도로 생활수준이 평준화되어 간다.
그런데, 이런 세계 단일 정부를 만들고 이런 세계 단일 국가를 이끌어 나가기 위해서는 그 흔해빠진 직업 정치가 따위의 힘으로는 어림도 없고 좀더 강력한 지도력과 카리스마적 능력을 지닌 특출한 인물이 나와야만 하는 것이다.
만일, 이런 인물이 나온다면, 그래서 그가 세계를 한 나라로 통일을 하고 이 지상을 지상의 낙원, 지상의 천국으로 만들어 준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하나님의 아들이며, 우리가 기다리던 그리스도가 아니겠느냐, 하고 그들은 주장을 하게 된다. 그렇다. 그리스도가 구름을 타고 재림한다는 성경 구절은 2000년 전, 아무 것도 모르던 사람들이 생각해 낸 동화 같은 이야기일 뿐, 지금 그것을 문자 그대로 믿으라는 것은 너무나 유치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주장을 옳게 여기고 그들에게 동조하고 그들을 따라간다. 학문으로만 신학을 공부해서 목회자가 된 많은 주의 종이라는 사람들, 영을 모르는 유식한 많은 신도들, 아무 것도 모르면서 큰 소리 날 때마다 그 큰 소리 나는 쪽에 붙어서 이익을 챙기는 인간들과 매스컴 종사자들도 다 이들에게 동조하고 따라간다.
이때쯤이면 적그리스도가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낸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가리켜 그리스도라고 말하기 시작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그리스도라고 믿기 시작한다. 이들은 차츰 큰 집단을 이루기 시작하고, 기성 교회들을 압박하기 시작한다.
더욱 많은 목회자와 신도들이 교회를 버리고 이들 집단으로 몰려간다.
적그리스도 교회는 급속하게 그 세력을 확장하고 단시일에 전 세계적 조직을 완료한다.
이 적그리스도 교회 눈에 거슬리는 가장 큰 존재가 바로 가톨릭교회이다. 긴 역사와 세계적인 조직과 전 세계에 많은 신도들을 거느린 가톨릭교회가 적그리스도 교회의 말을 고분고분 들을 리가 없는 것이다.
물론, 가톨릭교회 안에서도 많은 성직자들과 신도들이 적그리스도 교회로 넘어갔지만, 그러나 또 다른 사람들은 오히려 적그리스도 교회를 경계하고 비난한다.
드디어 적그리스도 교회에 의한 가톨릭교회의 파괴가 자행된다. 세계 곳곳에서 천주교 성당이 파괴되고 방화 소실되고 기물이 약탈되고 사제들이 그 성스러운 옷이 벗겨져 알몸이 되어 거리로 끌려 다니고 돌에 맞아 죽고 더러는 화형에 처해지고 더러는 칼에 찔려 죽기도 한다,
이때에 가톨릭교회의 많은 성직자들과 평신도들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적그리스도 교회로 옮겨가게 된다.
그러나 끝까지 교회를 지키며 저항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렇게 끝까지 저항하는 사람들은 두 가지 부류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끝까지 목숨을 걸고 적그리스도 교회의 손에서 하나님의 교회를 지키려는 사람들인데, 이들은 결국은 잡혀서 죽음으로 순교를 하게 된다. 다른 하나에 속하는 사람들은 지금까지 교회 안에서 갖가지 귀한 특권을 누려온 사람들로 그 높고 귀한 자리를 내놓기가 싫어서 또는 내놓기가 너무 억울하고 분해서 끝가지 싸우다 죽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바로 하나님의 “보응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이다. 말하자면,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이다. 이런 인간들은 자기 일신의 이익이나 육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교회에 들어와서 성직자나 교역자가 되어 교회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거나 귀한 직분에 앉아 입신양명과 호화사치 생활을 누렸던 자들이다. 이런 자들 때문에 교회가 타락하고 변질된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런 자들에게 응보하시며 이들에게 분노를 쏟으신다.
한 가지 웃기는 일은, 이렇게 하나님의 분노의 대상이 되어 죽임을 당하는 자들과, 참으로 교회를 지키기 위해 적그리스도와 싸우다가 잡혀 죽는 순교자와 겉보기에는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만이 진실을 보신다. 사람의 눈은 믿을 것이 못 된다. 그런데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을 진실이라고 믿는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을 들어 배역한 이스라엘을 징계하신다. 그들은 바벨론으로 끌려가 70년 동안이나 포로 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포로 생활에서 풀려나게 하시고 다시 고국 땅으로 돌아오게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로마를 들어 이스라엘을 멸망시키신다. 그러나 2000년이 지나자 하나님은 그들을 다시 옛 고국 땅으로 돌아오게 하셨다.
하나님은 적그리스도 교회를 들어 변질된 가톨릭교회를 파괴하게 하신다. 그러나 그 파괴는 단지 표면적인 파괴에 불과한 것이다. 사단은 하나님의 교회를 파괴할 수가 없다. 적그리스도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를 파괴한 것이 아니라, 실은 하나님의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교회를 타락시키고 변질시킨 여자 이세벨을 적그리스도 교회의 손을 빌어 보응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이 교회에 남아 있는 성도들을 향해 계시록 2장 25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가지 굳게 잡으라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개신교 교회의 소멸
적그리스도 교회는 가톨릭교회 뿐 아니라 개신교 교회들도 다 파괴해버린다. 개신교 교회의 파괴는 아주 쉽게 이루어진다. 적그리스도 교회와 대항해서 싸우고자 하는 사람은 없다. 강력한 적그리스도 교회의 압력 앞에 스스로 와해되고 만다. 개신교의 많은 목회자들과 신도들이 속속 적그리스도 교회로 옮긴다.
이름난 목회자들이 더러는 강요에 못 이겨서, 더러는 자진해서, 또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할 수 없이, 더러는 적그리스도 교회에서 좋은 대우와 높은 지위를 얻기 위해서 하나님의 교회를 버리고 적그리스도 교회로 옮겨간다. 그 중에는 많은 신도들을 이끌고 자랑스럽게 적그리스도 교회로 옮겨가는 목회자들도 있다. 배도인 것이다. 대대적인 배도인 것이다. 바울 사도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교회가 대대적인 배도를 하게 되는 것이다.
끝까지 살아남아 믿음을 버리지 않으려는 소수의 주의 종들과 성도들은 적그리스도 교회의 핍박을 받게 되고 결국은 교회를 버리고 지하로 숨게 된다. 지상에 있는 모든 교회는 적그리스도 교회가 되고 만다.
이제 지상에는 환난 후 3년 반이 시작된다.
666표가 강제로 찍히기 시작한다. 거절하는 자들은 온갖 잔인한 고문을 당하고 죽임을 당한다.
택함 받은 자들은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산으로 가야 한다.
거룩한 곳에 짐승의 우상이 선다.
적그리스도 교회는 그를 하나님의 아들, 우리의 구주라고 찬양을 한다.
적그리스도를 찬양하는 적그리스도 교회를 가리켜 계시록은 “큰 음녀” “큰 바벨론”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고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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