훔쳐본 일기-28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2004.03.11
조회377

"경민아,  그 친구 올라왔다. 나가봐."

나른한 일요일 오후 독서실에서 열심히 졸고 있는데 옆자리의 우영이가 툭 치며 말했다.

"어? 어..."

자고 일어난 티를 조금이라도 덜 내려고 눈꼽을 떼고 부스스한 머리를 정리하며 휴게실에 들어섰다.

"너 또 잤지?"

바나나 우유를 물고 있던 그녀는 텔레비젼에서 시선조차 떼지않고 핀잔을 주듯 말했다.

"넌 공부 안하고 왜 올라왔냐?" 

내말에 대꾸 없이 싱긋 웃어보이곤 그녀는 말없이 텔레비젼을 계속 봤다.

 

중학교 졸업식 날, 창수 땜에 졸업하기 싫다고 펑펑 울던 그녀는 Y여고로 배정받게되었고, 중3 막바지에 갑작스런 이사로 강남의 한 아파트로 옮긴 나는 그녀와는 학군이 전혀 다른 K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되었다.

이제 그녀를 자주 못보게되어 서운하겠구나 싶었지만, 무슨 생각이었는지 그녀는 내가 다니던 독서실까지 주말타임으로 끊고는 매주 주말마다 날 괴롭혔다.

우리가 다니던 독서실은 낡은 사층 건물이었고 그  맨 윗층이 남학생 열람실이었는데, 이게 또 무시못할 행운이었다.

고등학교에 막 입학하고 어울린 친구들에게서 막 담배를 배우기 시작했던 내게 이 독서실 옥상이야 말로 누군가의 감시를 받지 않고 마음껏 끽연에 빠질 수 있는 파라다이스 였던 것이다.

물론 같은 독서실이지만, 아래층 여자 열람실에 쳐벅혀서 옥상으로 올라올일이 없던 그녀는 내가 담배에 입을 댓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굳이 그녀에게 숨기려고 했던 건 아닌데, 자랑할 것도 아니어서 어찌어찌 하다보니 이제껏 그녀앞에서 드러내놓고 담배를 물은 적이 없었다. 

 

자다 일어나니 담배 생각이 간절했다.

'벌써 중독인가...'

문득, 니코틴 중독의 무서움이 일었지만 그 강한 유혹을 물리치기는 더 힘들었기에 그녀를 끌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와~! 여기, 생각보다 좋다. 음... 따뜻한 봄볕두 느낄수 있구 넘 좋아. 경민이 너 여기 언제 와봤어?"

"임마, 난 너처럼 주말타임이 아니잖냐. 공부하다 밤에 바람쐬러 한두번씩 올라온다."

"그래? 아~, 상쾌해. 날아갈거 같다. 그렇게 높은 편이 아닌데도 좋네. 히히히..." 

그녀에게 내가 담배를 핀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될것 같아 옥상 배수구 옆에 숨겨놓은 담배를 꺼내 한개피 입에 물었다.

"뭐야? 경민이,  너.  담배펴?"

옥상 난간에 기대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던 그녀의 작은 눈이 동그래졌다.  

"어."

"언제부터? 왜? 너 날라리야?"

헉.

날라리라니.

와일드한 성격과는 달리 정말 순진무구한 그녀가 내린 판단이다. 

"야. 촌스럽게 왜 그래? 그리고, 날라린 또 뭐냐? 요새 애들 그런 말 안쓴다."

라이타를 꺼내 불을 키며 말했다.

"뭐? 너 웃긴다. 이모한테 일른다!! 어휴~! 이 철딱서니. 공부잘한다고 다 모범생이 아니라지만, 넌 너무 의외야."

"됐어. 엄마한테 얘기 안할거지? 가끔 한두대씩 피니까 걱정마."

"그래. 어련하겠니."

"그림 좋다!!"

그녀 목소리에 이어 굵직한 목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봤다.

"뭐야?"

말릴사이도 없이, 그녀는 겁없이 인상을 쓰며 맞받아쳤다.

이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