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설교2 그가 오신 이유(미5 4 6 유튜브 교회 #활공교회, 설교원본-BAND: 활공교회)

주품이2023.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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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설교2 그가 오신 이유(미5 4 6 유튜브 교회 #활공교회, 설교원본-BAND: 활공교회)
https://youtu.be/rDTqMwggKxo


주제설교*2-1 그가 오신 이유
https://youtu.be/NkPYmhEvpGk


말씀:
4 그가 여호와의 능력과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의 위엄을 의지하고 서서 그 떼에게 먹여서 그들로 안연히 거하게 할 것이라 이제 그가 창대하여 땅 끝까지 미치리라
5 이 사람은 우리의 평강이 될 것이라 앗수르 사람이 우리 땅에 들어와서 우리 궁들을 밟을 때에는 우리가 일곱 목자와 여덟 군왕을 일으켜 그를 치리니
6 그들이 칼로 앗수르 땅을 황무케 하며 니므롯 땅의 어귀를 황무케 하리라 앗수르 사람이 우리 땅에 들어와서 우리 지경을 밟을 때에는 그가 우리를 그에게서 건져 내리라
(미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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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461 십자가를 질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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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맥읽기:
a. 메시야의 사역
1. 여호와의 위엄을 가지심
(요10 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14 9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빌2 6 11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마28 18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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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평안의 근원이 되심
(요14 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갈5 22 23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사9 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창조주)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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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자기 백성을 구원하심
(요1 12 13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 14 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행4 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16 31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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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풀이:
평강이:
!/lv;(7965, 샬롬)
평화, 복지, 번영
샬롬(명남)은 샬람(!l'v; , 7999)에서 유래했으며, '평화, 복지, 번영, 행복, 건강, 완전, 안전' 등을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250회 나온다.
샬롬은 헬라어 에이레네(1515)의 개념을 확장시키는데 영향을 미침으로 이 헬라어도 성장과 번영이라는 셈어 개념을 함축하기에 이르렀다(신구약에 나타난 평화-샬롬/에이레네-에 대한 더 상세한 연구는 신약편의 1515 에이레네를 참고요).
샬롬은 대략 50-60회 용례에서 '분쟁의 부재'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왕상 4:25은 온 땅과 그 이웃 국가들이 복종하였던 태평한 솔로몬 시대의 국가의 안녕을 반영하고 있다.
이 경우에 '평화'는 단순한 전쟁의 부재 그 이상을 의미한다. 오히려 동사 샬렘의 어근 의미가 샬롬의 진정한 개념을 더 잘 표현해 준다. 완전, 무결, 조화, 완성이 그 개념에 더 가깝다. 다른 이와의 손상이 없는 관계라는 개념과 맡은 일의 완수 개념이 샬롬에 내재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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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은 약 2회에 걸쳐 인사말 또는 작별의 인사로 사용된다(삿 19:20, 삼상 25:6, 삼상 25:35). 남에게 샬롬을 비는 것은 축복을 내포한다(삼하 15:27). 샬롬을 주지 않는 것은 저주를 뜻한다. 현대 히브리어에서 *샬롬은 '안녕하세요' hello와 '안녕히 가세요(계세요)' goodbye의 뜻으로 사용된다. 동족 아랍어 salaam을 유의해 보라.

샬롬은 **하나님의 언약(베리트)적 행위의 결과이며, 의의 결과이다(사 32:17). 샬롬은 거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용례가 하나님의 임재의 결과인 완전한 충족의 상태를 묘사하고 있다. 이 점은 특히, 하나님이 택한 대리자들 즉 아론 계통의 제사장들 및 다윗 계통의 왕들과 맺은 '평화의 언약'(베리트 샬롬, 민 25:12, 사 54:10, 겔 34:25, 말 2:5)에 관한 구절들에 잘 지적되어 있다. 적대자들(이삭과 아비멜렉, 창 26:29), 사업상의 양측 당사자들(솔로몬과 히람, 왕상 5:12) 및 인간과 하나님(아브라함, 창 15:15) 사이의 협약 체결의 표시가 되는 평화가 언약적 협정의 관점에서 묘사되고 있다.
이러한 종류의 평화는 그 근원이 하나님 안에 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샬롬을 말씀하실 것이다(시 85:8). 대상 22:9-10에서 다윗에게 준 하나님의 약속은 샬롬을 메누하(평온), 누아흐(안식) 및 셰케트(평온하다)와 함께 문맥 중에 두고 있으며 이것들을 *하나님의 선물로 묘사하였다.
이 개념에 대한 고전적 진술이 아론과 그의 자손들의 축도에 등장한다(민 6:24-26).
이 축도문은 하나님이 샬롬을 부여한 그 사람을, 여호와에 의해 복을 받는(바라크) 자, 보호받는(샤마르) 자 및 은혜를 받는(하난) 자와 동일시하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사를 통한 완전한 충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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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의 의미에는 또한 *강한 종말론적 요소가 존재한다. '다윗의 자손' 메시야는 특별히 평화의 왕(사르 샬롬)-땅 위에 완성과 의를 가져오시는 분으로 인지되고 있다.
바울은(엡 2:14) 그리스도를 우리의 화평으로 인지하는 가운데 이 주제들을 연결시키고 있다. 그는 *완전성을 가져오는 메시야이자 왕이다. 그러나 그는 또한 하나님의 마지막 말씀-인류에게 구속을 가져오신 "종결짓는 희생제물"이시다.
(참조: G. L. Carr; BDB).

(주품이의 풀이: 샬롬이라는 단어는 한국어로 말하자면 안녕하세요 이다. 이를 샬롬이라는 여러 의미로 표현하자면, 평화하세요, 분쟁없이 사세요, 복지를 누리세요, 번영하세요, 행복하세요, 건강하세요, 완전을 누리세요, 안전하세요 라며 상대를 축복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샬롬의 다양한 축복은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온전하여 지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대속의 언약 속에 이를 누리는 것이다. 예수님의 희생으로 우리는 이 복을 누리며 이 복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하나님의 희생을 통한 완전한 충족이며 하나님의 재림을 통하여 완전한 샬롬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아무 생각없이 안녕하세요 하기 보다는 이런 하나님 안에서의 안녕을 외치면 더 의미 있고 깊고 밝은 인사가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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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수르 사람이:
rWVa'(804, 앗슈르)
앗수르 Asslur, Assyria
앗슈르는 '한 걸음 a step'을 의미한다.
1. 셈의 아들로 앗수르인의 조상.
창 10:22, 대상 1:17.
2. 앗수르의 한 도시 혹은 국가.
창 10:11, 민 24:22, 민 24:24, 시 83:8, 겔 27:23, 렘 32:22.
3. 앗수르 나라.
앗수르는 뒤에 언급한 1, 2와 관련되어 있다.
앗시리아 나라는 앗수르라는 도시에서 그 이름을 취하였는데, 이 도시는 현 이라크에 있는 티그리스의 *서쪽 기슭에 있었다. 이 도시의 이름은 본래 전사요 정복자였던 신 아슈르(Ashur)에게서 따온 것인데 그 신의 상징은 날개 달린 원반을 가진 궁술가였다. 이 신은 이 도시와 국가의 상징이다. 신 앗수르는 국가 앗수르이다.
비록 짧은 시기이긴 하지만, 처음에 앗시리아는 우르(Ur) 3왕조의 뒤를 이어, 주전 2,000년경 한 독립 국가로 출현하였다. 이런 자치 시기 이후에 앗시리아 국가는 약 500년동안 이방 통치자들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아모리인들, 다음에는 후리인들의 지배 하에 있었다.
"앗시리아 나라의 왕"이란 칭호를 맨처음 주장한 사람은 앗수루발리트(Assuruballit, 대략 B.C. 1362-1327)였다. 이 제국은 투쿨티니누르타 Ⅰ세(Tukultininurta, 약 B.C. 1244-1208) 하에서 행해졌던 영토 확장 초기, 즉 정복시기와 사사시대에 그 절정에 달하였다. 그러나 이 시기에 이스라엘과 접촉했던 것 같지는 않다. 디글랏벨레셀 Ⅰ세(Tiglathpileser, 약 B.C. 1115-1077)의 통치 시기를 제외하고는 앗시리아는 또 다시 수세기 동안 나약하고 빛을 잃은 상태에 빠져 있었다. 그들은 통일 왕정 시기의 이스라엘에게 결코 위협적인 존재가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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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앗시리아인들의 부흥이 일어난 것은 왕정이 분열된 시기, 특히 주전 9세기였는데 이 시기에 이스라엘은 이전에 결코 직면하지 않았던 위협, 즉 이전에 블레셋인들이나 모압인들 등으로부터 결코 직면하지 않았던 위협에 처하게 되었다. 위협적인 것은 호전적인 사람, 즉 세계를 정복하려는 야망을 가진 적대적인 사람들의 불길한 출현이다. 더 이상 관심은 단순히 국경지대의 전초전에 머무를 수 없었다. 이제 이것은 생존권을 얻기 위한 싸움이었다. 앗시리아의 이러한 부흥 운동 직후에, 이스라엘에 새로운 제도, 즉 이런 거대한 국가들을 역사적, 신학적 관점으로 끌어들이고자 한 전형적인 문서 선지자들이 출현했다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이 부흥의 조상이자 장차 이스라엘에 닥칠 아주 좋지 못한 일의 선구자는 앗시리아 왕 살만에셀 3세(Ahalmaneser, B.C. 859-825)이다. 최초의 불꽃은 주전 853년에 시리아의 오론테스(Orontes) 강변에 있던(성경에 언급되어 있지 않은) 카카(Qar qar) 전투에서 튀었다. 이것은 살만에셀과, 특히 시리아와 이스라엘(아합왕 치하의)을 포함한 연합군 사이의 대결이었다. 이스라엘이 살아남기 위해 가졌던 어떤 희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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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글랏빌레셀 Ⅲ세(Tiglath-pileser, B.C. 745-727)에 의해 사실상 일소되고 말았다. 정복된 지역을 영(領)으로서 제국에 편입시키는 정책을 시작한 사람은 그였다. 그 이전의 어떤 사람들보다도 큰 이익을 얻기 위해 피정복 주민들을 이주시키는 정책을 이용한 사람도 그였다. 주전722년, 살만에셀 5세의 통치하에서 이스라엘은 멸망하였는데, 이때 이미 이것은 거의 형식적인 것에 불과했다.
문서 선지자들은 주전 722년에 끝난 이런 시대적인 사건들에서 자신들이 공동으로 행한 역사 해석이 가장 결정적으로 실현된 것으로 보았다. *이사야는 앗시리아를 자기 백성을 징벌하기 위한 하나님의도구로 여겼다
(사 5:26-29, 사 10:5-19[개역개정][사 10:6]
내가 그를 보내어 경건하지 아니한 나라를 치게 하며 내가 그에게 명령하여 나를 노하게 한 백성을 쳐서 탈취하며노략하게 하며 또 그들을 길거리의 진흙 같이 짓밟게 하려 하거니와 ). 그러나 재미있는 것은 앗시리아의 어떤 왕도 바벨론의 느부갓네살('나의 종')이나 바사의 고레스('나의 기름부음 받은 자')와 같이 칭호를 부여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결국 앗시리아는 하나님의 백성들 스스로가 멸망한 후에야 비로소 하나님의 백성들을 멸망시킬 수 있었다.(V. P. Hamil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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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품이의 풀이: 지금의 나라로 옮겨보자면 앗수르는 이스라엘 위와 바벨론 서쪽의 시리아, 바벨론은 현재의 이라크, 페르시아는 바벨론 동쪽 현재의 이란을 의미한다. 이스라엘의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분열하고 우상을 섬기며 스스로 약해졌고 이틈을 타 강해진 시리아는 북이스라엘을 bc 722년 완전히 멸망을 시킨다. 이들은 서로 통혼을 하거나 이주를 시키었고 이 징계는 때가 차매 회복 되기전 이 나라를 통해 하나님의 징벌의 도구였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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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므롯:
/rminI(5248, 니므로드)
니므롯 Nimrod
니므로드(명남)는 외국어에서 유래했으며, '반역' 또는 '우리 반란을 일으킵시다'를 의미한다.
니므롯은 함의 장자 구스의 아들이다(창 10:8, 대상 1:10).
그는 세상에 처음 있는 영걸이었다. '영걸'이라는 말은 '강하거나 용감한 자'를 가리킨다(창 10:8).
그는 특이한 사냥꾼이었다(창 10:9). "특이한 사냥꾼"이란 말은 '능한 사냥꾼'을 가리킨다.
니므롯은 강한 자, 곧 폭군 내지 전제군주였으며, '능한 사냥꾼', 분명히 사람을 사냥하여 그들을 노예로 삼은 자였다. 그의 이름은 그의 시대의 사회에서 악을 뜻하는 속담이 되었는데 이는 마치 금세기에 히틀러의 이름이 악과 잔인성을 뜻하는 속담이 된 바와 같다.
니므롯의 왕국은 알려진 바 최초의 제국이었다. 그는 시날 땅의 바벨과 엘렉, 악갓, 갈레를 접수하고 그것들을 그의 왕국이 시초로 삼았다. 바벨론부터 그는 앞으로 나아가 니느웨와 르호보딜, 갈라, 레센을 건설했다. 니느웨는 모세 시대에도 거대한 도시였다. 이 성은 계속 성장하여 요나 시대에는 "삼일 길"(욘 3:3)의 큰 성읍이 되었다. 그의 성의 창설자를 따라 니느웨는 그 잔인성과 호전성으로 유명했다
(창 10:10 이하 6 함의 아들은 구스와 미스라임과 붓과 가나안이요
7 구스의 아들은 스바와 하윌라와 삽다와 라아마와 삽드가요 라아마의 아들은 스바와 드단이며
8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처음 영걸이라
9 그가 여호와 앞에서 특이한 사냥군이 되었으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는 여호와 앞에 니므롯 같은 특이한 사냥군이로다 하더라
10 그의 나라는 시날 땅의 바벨과 에렉과 악갓과 갈레에서 시작되었으며
11 그가 그 땅에서 앗수르로 나아가 니느웨와 르호보딜과 갈라와
(창1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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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5:6에서 니므롯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예언한다: "그들이 칼로 앗수르 땅을 황무케 하며 니므롯 땅의 어귀를 황무케 하리라 앗수르 사람이 우리 땅에 들어와서 우리 지경을 밟을 때에는 그가 우리를 그에게서 건져 내리라".
(주품이의 풀이: 니므롯은 그 이름 답게 가장 하나님의 나라에 반역을 일으킨 나라가 아닌가 싶다. 니므롯의 셈족은 잔인성의 대명사가 되어 가장 바벨론에서 서쪽에 위치하여 그들의 일부 후손인 시리아를 중심으로 터키의 이슬람, 북아프리카의 이슬람에 민족의 영향을 끼친 존재일 것이다. 그 후손들이 세력을 형성 할 때 예수님이 복음이 북아프리카와 유럽에 영향을 끼칠 때에도 서쪽의 셈족은 이스라엘과 북아프리카 스페인을 정복하여 예수님이 아닌 사이비 마호매트를 전파 하였고 북으로는 터키를 중심으로 기독교 국가인 동유럽을 정복하고 마지막 오스트리아 빈까지 이르러 복음을 훼방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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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귀를:
jt'P,(6607, 페타흐)
문간, 출입구
페타흐(명남)는 파타흐(jt'P; , 6605: 열다)에서 유래했으며, '열린 구멍, 통로, 문간, 출입구'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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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자와:h[;r;(7462, 라아) /
=황폐하게 하리라:
h[;r;(7462, 라아)
풀을 뜯기다, 먹이다, 사귀다,친구가 되다
라아(동사)는 기본어근이며, (a) '풀을 뜯기다, 방목하다, 풀을 뜯다', (b) '교제하다, 사귀다, 친구가 되다'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170회 이상 나온다.
1. 칼형에서.
(a) '먹이다, 방목하다, ~을 돌보다', 창 37:13, 창 30:13, 민 14:33, 삼상 16:11, 삼상 17:34.
분사로 '목자', 창 13:7, 창 26:20, 창 29:9.
비유적으로 ① '다스리다, 통치하다', 군주에 대해, 삼하 5:2, 삼하 7:7, 렘 23:2, 시 78:1, 하나님에 대해, 시 23:1, 시 28:9, 시 80:1, 교사에 대해, 잠 10:21.
② '양육하다, 부양하다', 호 9:2.
(b) '먹다', 사 5:17, 사 11:7, 사 56:25, 렘 50:19, 겔 34:14, 겔 34:18, 겔 34:19, 미 7:14.
비유적으로, '뜯어 먹거나 먹는다'는 의미에서 '황폐케하다, 삼키다', 미 5:6, 렘 22:22, 렘 2:16, 욥 24:21.
(주품이의 풀이: 라아라는 단어는 오늘 본문에서 극단적으로 두 번 쓰이게 된다. 앗수르에서 이스라엘을 구하는 7목자에서 목자 라아는 이스라엘을 먹이는 목자로 부양하는 의미가 강하고 황폐하게 하리라는 것은 앗수르를 먹어버리다가 되어 황폐하게 된다는 의미를 가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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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절, 그가 여호와의 능력과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의 위엄을 의지하고 서서 그 떼에게 먹여서 그들로 안연히 거하게 할 것이라 이제 그가 창대하여 땅 끝까지 미치리라

-> 이 구절들은 역사적 의미, 예수님 초림의 의미, 재림의 의미로 3가지로 해석이 되어질 것입니다. 앗수르와 그 이후 초기 바벨론은 이스라엘과 유다를 징벌하기만 하였지만 바벨론의 느브갓네살(나의 종), 페르시아의 고레스(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는 바벨론의 유다 민족을 마치 목자와 같이 유화정책을 펴고 고위직에 등용을 하였으며 고레스는 오히려 유다지역으로 그 민족을 돌려보내기까지 하고 예루살렘을 건축하게 하여 이스라엘을 회복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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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예수님 안에서 복음을 땅끝까지 전파가 되어 예수님안에서 복음을 받아들인 영적 이스라엘 백성은 번영과 평화를 누리고 있습니다. 물론 니므롯(이슬람, 히틀러, 스탈린, 푸틴등)같은 인물들이 기독국가든 어디든 일어나 하나님께 반역을 일으키며 완전하지는 못하기는 합니다. 이제는 재림의 시기 예수님의 통치로 완전함에 가까우며 이후 새하늘과 새땅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나라를 재창조하여 완전한 나라로 옮기우게 될 것입니다.

또 한가지, 4차적 해석은 우리 삶의 해석일 것입니다. 우리 삶에서 징계로 우리 삶이 고로할 때 따가차매 주님은 온전한 회복으로 주님의 구원영생의 소망안에서 샬롬을 누리게 하실 것입니다. 아멘!

/

5절, 이 사람은 우리의 평강이 될 것이라 앗수르 사람이 우리 땅에 들어와서 우리 궁들을 밟을 때에는 우리가 일곱 목자와 여덟 군왕을 일으켜 그를 치리니

-> 7은 완전 숫자와 목자는 양육과 먹이다를 의미 함으로 우리로 하여금 창대하고 번창을 누리게 하시어 내적인 충만함을 누리게 하시고 8은 동서남북 4의 두배로서 사방에서 우리를 위한 군인들과 천사들이 가득히 둘러싸여 우리를 보호한다는 것입니다. 즉, 종교, 군사, 정치, 경제, 복지, 사회, 문화, 산업, 교육, 의학, 예술, 건축, 공학, 생태, 환경, 자연등 모든 분야에서 온전함과 완전함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

6절, 그들이 칼로 앗수르 땅을 황무케 하며 니므롯 땅의 어귀를 황무케 하리라 앗수르 사람이 우리 땅에 들어와서 우리 지경을 밟을 때에는 그가 우리를 그에게서 건져 내리라

-> 역사적 배경으로는 앗수르는 바벨론과 페르시아의 정복으로 이스라엘의 회복에 도움을 주었으며 또한, 앗수르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세력을 의미함으로 예수님을 대적하는 유대인을 의미 할 수도 있습니다. 유대인과 로마인의 핍박을 받은 디아스포라는 유럽에 동화되어 스페인까지 복음을 전함으로 기독국가로서 땅끝까지의 번영을 누리며 예수님의 재림과 새하늘과 새땅의 하나님 아버지의 때에 완전하여질 것이며 지금의 앗수르를 민족은 말씀대로 황무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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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군과 반군이 들어서 쪼개지며 미국과 러시아, 이스라엘, 이란등 국제사회에 여러 가지 지원을 받으며 사분오열되고 is 세력까지 들어서며 완전한 황폐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들의 이슬람 영향력인 서쪽 북아프리카 리비아도 동쪽 이라크도 북쪽 터키도 남쪽 요르단도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강대국의 반열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니므롯의 원래 나라도 그 민족이 퍼져 있는 주변 국가도 황폐하거나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이미 이루었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완전하며 하나님의 지리적 육적 이스라엘과 기독 국가인 영적 이스라엘은 징계의 시기가 있기는 하여도 회복하고 건져냄을 받을 것이며 우리 삶에도 반영한다면 무력에서 다시 창대하고 번창함의 날이 오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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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주님이 오신 이유를 다시 우리를 회복하기 위함 이신 줄 믿습니다. 우리가 징계 속에 있어도 낙심하지 아니함을 주님은 이 땅에 또한 죽어서도 다시 재림의 시기에도 새하늘과 새땅의 시기에도 우리의 온전함과 완전함을 위하여 오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2천년전 이미 그 예언을 이루시었고 주님의 희생으로 우리에게는 모든 분야에서 내적으로 외적으로 우리의 샬롬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 대속의 완전한 샬롬 속에 우리 삶에 우리 이웃에 나라에 세계에 전하는 도구로 땅끝까지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