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지박약인 사람 들어와 봐

ㅇㅇ2023.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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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울증+의지박약으로 정말 쓰레기처럼 살았어. 나랑 비슷하게 살고 있는 사람한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함! 기니까 천천히 봐. 특히 재수 예정하고 있지만 공부는 못 하고 하기도 싫은 사람들한테 추천함.

1. 샤워
무조건 7시에는 일어나야 함. 10분 간격으로 여러 개 맞춰두지 말고 7시 알림 딱 하나만 맞춰서 화장실에 놓고 자러 가. 침대 근처에 두면 괜히 새벽에 폰 하다가 늦게 자게 되는데 이게 생패 망치는 주범임. 알림 소리 들리면 윗옷 벗으면서! 화장실 들어가서 알림 끄고 바로 샤워기 물 틀어서 머리 감아. 나 같은 경우엔 샤워 하겠다고 들어가면 따뜻한 물 틀어놓고 한 시간씩 몸에 물 뿌리면서 멍 때리고 앉아서 머리 감기+몸 씻기(10분)를 따로 했음. 머리 감은 후에 몸 후딱 씻고 나와서 머리 말려. 로션 바르면서 멍 때리지 말 것!

2. 아침
평소에 아침 안 먹는 타입이었어도 뭐라도 입에 넣어! 내가 추천하는 건 에그스크램블임. 뭐 곁들이는 거 말고 그냥 계란 하나 풀어서 저어서 먹음 돼. 먹고 눕지 말고 바로 양치하기!

3. 산책
여기까지 하면 진짜 잘 한 거임. 어차피 겨울이니까 대충 안에 내복 입고 롱패딩 걸치고 딱 노래 세 곡 듣는 동안만 집 주변 돌아. 그리고 집 들어와서 옷 걸어놓고 스스로한테 칭찬을 좀 해 줘. 새벽 4시에 자서 오후에 비실비실 일어나고 점저로 라면 하나 띡 끓여 먹다가 이렇게 하는 거 쉬운 거 아님.

4. 공부
하겠다고 자리에 앉아서 유튜브 쇼츠만 의미없이 계속 내리고 인스타 한 번 들어갔다가 카톡 한 번 들어갔다가 그렇게 살았으면 공부 시작하기 진짜 어려움. 우선 책상 정리부터 해. 대청소를 하라는 게 아니고 (하루 날 잡아서 하는 것도 나쁘지 않긴 함 근데 대부분은 시간 끌기로 그치더라) 뭐 먹고 나온 쓰레기 버리기, 샤프/지우개/빨간 펜/스탑워치 외의 필기구는 치우기, 널부러진 화장품 혹은 드라이기 등 대충 어디다 쑤셔넣어 두기 정도만 하면 돼. 특히! 뭐 먹고 나온 쓰레기는 반드시 바로 바로 버려!

정리 다 했으면 폰+태블릿(있다면) 꺼내. 폰은 각도 잡아서 양손+문제집 보이게 각도 세팅하고 (난 아예 책받침 같은 거 가져와서 폰을 테이프로 붙여서 세팅함) 만약 태블릿이 있다면 폰이랑 미러링을 하든지 같은 줌 방에 들어가든지 해서 폰이 송출하는 화면이 태블릿으로 보이게끔 해 놔. 그니까 네가 태블릿을 보면 네 손하고 문제집이 보이는 거임. 없어도 상관 없어! 일단 폰을 못 하는 상태라는 게 중요.

스탑워치를 앞에 두고 10분 세팅해. 일단 내 경험에 의거했을 때 이 글이 도움이 될 정도의 의지박약한 삶을 살았다면 공부를 잘하기는 많이 힘들 거라고 봄. 어차피 너 말고 아무도 안 보니까 부끄러워 하지 말고 수준에 맞는 문제집 가져와서 펼쳐. 5분 카운트 다운하는 동안 풀어. 반 페이지 정도 풀 수 있을 거임. 만약 10분 가지고 택도 없다? 15분으로 늘려. 15분 이상은 금지! 그 정도 넘어가면 슬슬 내가 굳이 이래야 하나··· 생각 들면서 폰 꺼내고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게 되더라. 10분이든 15분이든 다 채우면 펜 내려놓고 바로 채점해. 바로 채점하면 뭐 긴장감이 떨어지고 어쩌고 하는데 우선 우리한테는 앉아 있는 것 자체가 목적이기 때문에 신경 쓰지 마. 몇 문제 안 풀었으니까 당연히 오답할 것도 몇 개 없음. 다 틀려봤자 몇 문제나 된다고? 오답은 카운트 업으로 시간 재서 몇 분 걸렸는지 옆에다가 적어.

하다 보면 이게 한 세트처럼 느껴질 거임. 10분 카운트 다운 - 채점 - 오답 후 시간 적기. 이거 딱 다섯 세트만 해! 포스트잇에 동그라미 다섯 개 그려놓고 하나 할 때마다 지우는 것도 좋아. 아무리 힘들어도 이 다섯 세트는 끝낸다는 마음으로 해. 그럼 너는 적어도 50분에다가 플러스 알파 공부를 한 거임. 스스로한테 칭찬해 줘! 남들이 12시간씩 공부하고 뭐 이런 거랑 절대 비교하지 마. 네가 어제보다 나아졌다는 게 중요함. 재수생인 내가~ 고작 한 시간 공부하고~ 요딴 생각 하지 마. 그전까지 넌 한 시간도 안 했으니까!

5. ~숙면
다섯 세트 단위로 끊어가는 게 중요해. 한 바퀴 다 돈 다음에는 쉬는데 이때 쉬는 시간이 20분 넘어가면 다시 공부하기 좀 힘들어져. 하지만 생패는 엉망이겠다 공부는 간만이겠다 점심 때 즈음 되면 슬슬 잠도 오고 지겹고 하겠지? 낮잠 자도 됨! 대신 꼭 지켜야 할 것. 점심 먹기 전에 자지 마! 아무리 졸려도 일단 점심은 먹어. 씹어서 삼키고 양치하면 신기하게 잠이 깨. 근데 그래도 한 삼십 분쯤 지나니까 너무 졸리다? 그럼 자. 다만 침대는 안 됨. 지금까지의 엉망인 생활이 침대 위에서 이루어졌을 확률이 높기 때문에, 거기 누워 있으면 몸이 알아서 긴장 풀고 게으르게 돌아가더라. 경험담임. 잘 거면 소파에서 한 시간 정도 자. 두 시간 넘어가면 밤잠 안 온다.

초반에는 집중 못 하고 멍 때리는 시간+밥 먹으면서 시간 끌기+낮잠 등등의 요소로 인해 많아 봤자 세네 바퀴 돌고 나면 저녁 먹을 시간일 거야. 저녁 먹고 나서는 놀아! 사람이 하루아침에 개과천선 절대 못 함. 달아놨던 폰 꺼내서 (이 전에 쉴 때는 웬만해선 폰은 하지 마) 영화나 드라마 보고 게임도 하고 해. 낮잠 잤으면 잠도 잘 안 오겠지? 그래도 무조건 10시 반에는 알림 세팅 된 폰 화장실에 갖다 둬. 그리고 마지막 한 바퀴! 이거 진짜 중요해. 폰 없이 다섯 세트짜리 딱 한 번만 더 하고 동그라미 다 채우고 자리에 누워. 그럼 12시에는 침대에 누울 수 있을 거임. 스스로 엄청 뿌듯해 하면서 자도 돼. 잠이 안 와도 다시 일어나지 말고 그냥 이불 안에서 뒤척거려. 방에 야광 시계 같은 거 있으면 그거 치워. 잠이 안 와도 몇 시인지 확인하려고 하지 말고 누워 있어.


읽으면서 엥? 이렇게 간단한 걸 못 한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을 거임. 근데 나는 그 고작이 너무 힘들었어. 그래서 나 말고 이런 무기력한 상실감을 경험해 본 사람이 있으면 한 명이라도 돕고 싶어. 고등학교 3년을 정말 걸어다니는 쓰레기처럼 살았고, 체력이고 성적이고 다 바닥 찍었는데 수능 한 달 전에 조금 정신 차리고 여기 적은대로 하려고 노력했어. 학교 내신 평균 8등급 찍었는데 수능에서 국수영과탐 순으로 34466 나왔더라. 과탐은 버렸고 국영수만 했어. 빈말로라도 잘 봤다고 못 할 점수인 거 알지만 내 나름의 결과야. 요새는 재수 비용 벌려고 알바 다녀. 올해는 더 열심히 1년 살아보려고. 나처럼 패배의식과 우울감, 의지박약인 사람한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