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받아 거듭난 성별 된 하나님의 자녀들이 세상 사람들, 곧 성령 받지 못하고 짐승처럼 육신의 쾌락만을 좇는 사람들의 그 육적 쾌락이나 호화 사치 생활에 그만 미혹되어 성령의 역사를 거역하고 그들의 생활을 따라간다.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마음에 드는 대로 아무하고나 마구 동침을 했다.
3절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 이십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아담에게 하나님은 입김을 불어 넣어 주셨다. 곧 하나님의 신을 함께 하게 해 주셨다.
그러나 이들은 하나님을 떠났다. 그래서 하나님의 신(영)을 상실하고 흙이 되고 말았다.
사람이 하나님을 떠남으로 하나님의 영도 그들을 떠나고 말았다.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하나님의 영이 그들을 떠남으로 사람은 단지 육체일 뿐,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존재가 되었다.
사람이 하나님과 멀어질 때 성령은 그를 떠나신다.
성령이 사람을 떠나면 그는 짐승의 차원으로 전략해 버린다.
이 사건 이후, 성령은 늘 사람과 함께 하시지 않게 되었고, 성령은 일시적, 임시적으로만 역사하게 되었다.
예수가 오심으로 성령은 다시 모든 믿는 자들 위에 오셨다 = 성령 시대.
그러나 지금도 우리가 성령의 역사를 거스르면 내게 와 계시던 성령은 나를 떠나신다.
사람의 타락
1) 첫 번째 타락 = 에덴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먹다.
에덴을 쫓겨났다.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모든 복을 놓치고 만다.
2) 두 번째 타락 = 카인은 살인을 하고 영영 하나님 앞을 떠나다.
하나님의 보호와 은총에서 멀어지다.
3) 세 번째 타락 = 육신의 정욕으로 인해 하나님의 아들의 자격 박탈.
1) 첫 번째 타락 = 먹는 것으로 타락.
먹는 것을 잃다. 노동하지 않고 먹고 살 수 있는 에덴을 상실.
2) 두 번째 타락 = 미움과 질투로 타락.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를 잃고 세상을 방황하게 되었다.
3) 세 번째 타락 = 육의 정욕으로 타락.
짐승 같은 정욕으로 사람의 딸들을 취하여 아내로 삼다.
이렇게 해서 사람은 짐승처럼 되었다.
이것을 이기기 위해서는
1) 하늘의 신령한 것을 먹고,
2)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며,
3)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4절
“당시에 땅에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하여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이 용사라 고대에 유명한 사람이었더라”
당시는 물론 그 후에도 네피림 곧 거인족이 살았는데, 이들은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을 사이에 태어난 자식들이었다.
네피림 = 타락한 자. 폭군들. 침략자. 거인.
민수가 13장 32-33절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탐지한 땅을 악평하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그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대장부 = 타락한 세상에서 오직 육신의 힘으로 이름을 떨친 장사들. 이들은, 하나님은 안중에도 없고, 오직 그 육신의 힘만을 의지하고 믿고 자랑하였다.
현대판 거인들 = 거대한 기업주들. 정치 권력자들. 유명한 예술가들. 대중적 인기인들. 거대 교회
여기에 비하면, 하나님만을 열심히 섬기고 하나님 은혜 가운데서 성령의 역사만을 따라가는 자들은 참으로 메뚜기처럼 보인다.
현대판 거인 족들을 보고 서글퍼 하거나 하나님을 원망하지 말라.
거인 족 = 하나님의 아들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의 것을 탐하고 세상과 하나로 결합하여 그 결과로 태어난 것들.
거인 골리앗을 죽이는 다윗 ..........이들을 심판하시는 예수님.
거인의 결정판 = 마지막 때의 적그리스도.
예수님이 마지막 때에 그들을 심판하신다.
5-8절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 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하나님은 사람이 타락할 것을 모르셨나? 모르셨다면 하나님의 전능성에 의심이 간다.
물론 하나님은 사람이 타락할 것을 알고 계셨다.
하나님은 사람이 타락할 수도, 타락하지 않을 수도 있게 만드셨다.
같은 아담의 자손 중에 가인도 나오고 에녹도 나온다.
타락한 자는 버리시고 타락하지 않은 자들만 골라 천국 백성 만드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성경 전체의 주제이다.
창세기 1장과 6장의 비교
1장
1) 하나님은 사람을 당신 형상대로 만드셨다.
26절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2) 사람은 모든 피조물을 통치하도록 위임을 받았다.
28절 “땅을 정복하라”
3) 심히 좋아 하셨다.
31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6장
1) 하나님은 짐승처럼 된 사람을 보셨다.
5절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
2) 하나님은 그들을 없애 버리기로 작정하였다.
6절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3) 하나님은 탄식하셨다.
7절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7절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 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사람이 범죄 했는데, 왜 짐승과 새까지 없애 버리시나?
1) 이것들은 사람을 위해 창조되었기 때문.
2) 이것들을 사람들이 다스리도록 하셨는데, 사람은 스스로 이들과 같은 차원으로 즉 짐승의 차원으로 전락하고 말았기 때문.
8절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모든 사람은 멸망당해 마땅하지만, 노아만은 하나님 마음에 들었다.
노아 = 안위라는 뜻.
인류의 희망. 그의 씨가 모든 인류를 낳게 된다.
하나님 마음에 들어야 한다.
하나님 마음에 들면 구원. 하나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멸망.
너무나 간단한 공식. 그런데, 사람들은 이렇게 간단명료한 공식을 잊고 있다.
하나님 마음에 들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께 외치기만 한다.
하나님 마음에 들지 않는 자 = 사단 마음에 드는 자.
우리의 신앙생활 = 오직 하나님 마음에 들고자 하는 것.
9-12절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그가 세 아들을 낳았으니 셈과 함과 야벳이라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여 강포가 땅에 충만한지라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패괴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패괴함이었더라”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여 강포가 땅에 충만한지라”
패괴하다 = 부패하다. 썩다.
강포 = 포악.
온 세상은 극도로 썩었고 죄악으로 가득했다.
그런데 노아 한 사람만은 그렇지 않았다.
노아는 의인이요 당시에 완전한 자요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였다.
세상이 극도로 썩었고 죄악으로 가득하다.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가까이 다가 왔다는 것을 뜻한다.
하나님의 심판은 세상이 가장 심하게 썩었을 때 임한다.
이 때, 하나님은 이 썩은 세상에서 올바르고 흠 없는 사람을 찾으신다.
“다른 사람들도 다 그러는데” 라고 말하지 말라.
그 다른 사람들은 다 멸망당할 사람이라는 것을 알라.
멸망당할 사람은 많고 구원 받을 사람은 적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속속들이 썩고 타락한 세상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하나님의 심판이 바로 눈앞에 임박했다는 사실을 깨달아라.
에녹 = 노아 =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
하나님과 동행 =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 뜻대로 사는 것.
13-14절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그 안에 간들을 막고 역청으로 그 안팎에 칠하라”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동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계시를 주시고, 명령을 내리신다.
그리고 그 계시는 믿기 어려운 것, 명령은 매우 실행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노아에게 주신 계시
1) 썩은 세상. 부패한 시대에 대한 계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세상의 끝 날이 이르렀다. 하나님의 심판의 날이 눈앞에 이르렀다.
2) 세상 멸망에 대한 계시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계획을 노아에게 알게 하셨다.
3) 그런 다음 노아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명령 = 그 멸망을 이길 방법에 대한 계시(명령).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그 안에 간들을 막고 역청으로 그 안팎에 칠하라”
1)을 깨닫고. 세상이 극도로 부패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2)를 믿고. 하나님이 이 세상을 심판하신다는 말씀을 믿고.
3)을 순종하면, 구원을 받는다.
방주를 만들다.
배는 물 위에 뜬다. 물 = 죽음. 배를 타야 죽음을 면한다.
배를 만들어야 산다. 배를 만들다 = 하나님 명령에 순종하다.
노아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그 명령에 순종해서 배를 만든다.
그 순종의 결과인 배가 나를 구원한다.
명령에 대한 순종이 나를 구원한다.
순종 곧 구원.
큰 배를 만들다 = 오랜 시간 동안 작업을 해야 한다.
오랜 시간동안 믿음을 잃지 않고 괴로움과 고통을 참고 계속 일을 해야 한다.
아브라함은 하나님 명령에 순종해서 아들 이식을 바치기 위해 삼일 길을 걸어서 모리아 산까지 간다.
믿음과 실천과 인내 =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한다.
우리는 지금 다 배를 만드는 노아.
방주 = 항해를 하기 위한 배가 아니라, 물 위에 떠 있기 위한 배.
우리의 노력은 물(죄악 세상, 죽음) 위에 떠 있기만 하면 된다.
썩고 타락한 세상 속에 빠져 들지만 않으면 된다.
우리를 천국까지 이끄시는 것은 하나님이 하실 일.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오직 배를 만들고 물 위에 더 있는 것.
14-16절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그 안에 간들을 막고 역청으로 그 안팎에 칠하라 그 방주의 제도는 이러하니 장이 삼백 규빗, 광이 오십 규빗, 고가 삼십 규빗이며 거기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지니라”
배를 만들어야 우리는 구원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배는 우리 마음대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그대로 만들어야 한다.
= 내 뜻대로 믿고 내 마음대로 행하는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 뜻대로 믿고 하나님 뜻대로 행하는 믿음이라야 한다.
14-16절은 배 만드는 방식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
배는 이 명령을 따라 그대로 만들어야 한다.
순종은 하나님 뜻에 정확하게 맞는 것이라야 순종이라고 할 수 있다.
순종한답시고, 또 하나님 일 한답시고, 제 마음대로 하는 것은 아무 소용도 없다.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잣나무 = 하나님 성전을 짓는 나무. 잣나무는 똑바로 하늘을 향해 자라 오른다. 줄기가 이리저리 휘지 않는다. 잣나무 = 믿는 우리들.
믿는 우리들로 성전을 짓는다.
배 = 하나님의 성전 = 우리를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영역.
나무와 나무 사이에 틈새가 있으면 그 곳으로 물이 새어 들어 온다.
나무와 나무 사이에 틈새가 있으면 그 틈새로 세상의 더러운 것들이 교회 안으로 들어와 교회를 타락시킨다.
“역청으로 그 안팎에 칠하라”
역청은 물과 섞이지 않는다. 물을 막아 준다.
안과 밖을 역청으로 칠하다 = 물(우리를 멸망으로 이끄는 세상적인 것)을 막을 수 있는 믿음과 말씀으로 안과 밖을 무장하다.
안 = 내면적 믿음. 내면적 영적 능력
밖 = 외형적 믿음의 태도. 행함.
이 두 가지로 물이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
“그 방주의 제도는 이러하니 장이 삼백 규빗, 광이 오십 규빗, 고가 삼십 규빗이며”
방주의 크기와 모양
길이 = 300 규빗
폭 = 50 규빗
높이 = 30 규빗
삼층으로 만들다. 각 층마다 높이가 각각 10 규빗
어떤 사람은 말한다. 이 방주의 치수는 현대 조선술의 기본적인 수치. 가장 안정된 배의 설계의 모형으로, 하나님은 얼마나 지혜가 많으신가.
그러나 이런 식으로 성경을 해석하면 안 된다.
왜냐하면, 그런 식으로 하면 성경을 인간의 지혜로 판단하는 것이 된다.
또 어떤 비평가는 길이 300 규빗, 폭 50 규빗, 높이 30 규빗 방주로는 그 많은 짐승들을 다 태울 수 없고, 그 많은 먹이를 다 실을 수 없다고 말한다.
또 노아가 어떻게 그 많은 짐승들을 모을 수 있었는가? 라고 말하며 성경의 진실성을 의심한다.
방주의 크기를 알아보자.
1 규빗 = 45.6 cm
길이 300 규빗 45.6cm ☓ 300 = 136.8m 중형 유조선 규모
이 배의 실제적 크기가 문제가 아니라, 이 배의 크기가 뜻하고 있는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건축에 있어서 하나님의 기본 숫자는 언제나 3과 5이다.
300 규빗 50 규빗 3층...
3 = 하나님의 숫자.
5 = 은총. 구원 받은 성도의 수. 슬기로운 5 처녀.
하나님의 수인 3 + 구원 받은 사람의 수 5 = 8
8은 새로운 탄생. 영원 천국에 들어가는 해 8000 년.
사내 아이 = 태어 난지 8일 만에 할례
방주 = ark = 궤 ark = 법궤.
방주와 법궤는 영적으로 같은 것.
법궤의 크기
길이 = 2.5 규빗 폭 = 1.5 규빗 높이 = 1.5규빗
5의 반 3의 반 3의 반
법궤는 하나님의 1/2의 임재.
율법은 하나님의 반만의 임재. 법궤는 율법을 뜻한다.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율법은 완성되고 구원이 완성된다.
방주 =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예수님 자신을 상징.
또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세우실 교회를 상징.
방주는 교회의 모형이요, 예수님의 모형이다.
법궤 = 사람이 만지면 죽는다. 법궤 = 율법 = 율법을 어기면 죽는다.
방주 = 사람이 그 속에 들어가야 산다. 노아와 그 가족을 받아들여 그들을 구원하다. = 예수님의 상징
그래서 방주는 3. 5.의 숫자로 기록되지만, 법궤는 그 반이 수치로 표현된다.
방주는 3 층으로 지어졌다.
성령은 우리를 아들에게로 인도하고,
아들은 우리를 아버지에게로 인도한다.
1층은 성령
아들인 예수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한다. 곧 1층으로 들어가야 한다.
2층은 아들이다.
아들을 알면 3층인 아버지에게로 올라갈 수 있다.
3층은 아버지다. 아들은 우리를 아버지에게로 인도하는 분이다.
우리는 먼저 1층으로 들어가서 3층으로 올라가야 한다.
방주에 들어간 노아와 그 아내와 아들들과 자부들은 틀림없이 3층에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낮은 짐승일수록 아래층에 있었을 것이다.
“거기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지붕 한 규밧 아래 하늘을 향해 창을 하나 내다.
히브리어의 창이라는 단어와 낮이라는 단어는 어원이 같다.
창 = 낮 = 빛
빛 = 하나님
창을 하늘을 향해 곧 하나님을 향해 내다.
땅에 홍수가 흉용할 때, 우리는 하나님만을 올려다보아야 한다.
베드로 = 밤에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바다 물 위를 걷다가 물결치는 파도를 보고 물속으로 빠지다.
방주에는 하늘을 향한 창이 하나 밖에 없다.
흉용하는 물을 볼 수가 없다 = 보아서는 안 된다.
우리의 믿음은 오직 하나. 하늘 곧 하나님을 향한 단 하나의 믿음.
이것저것 볼 것이 없다. 엎을 보면 물에 빠진다. 뒤를 보면 소금 기둥이 된다.
세상의 파도를 보지 말라. 오직 하늘만 올려다보아라.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옆으로 난 한 개의 문. 방주에는 문이 하나뿐이다.
방주로 들어가는 문은 하나 뿐.
문 = 구원으로 들어가는 문 = 천국으로 들어가는 문 = 예수
천국으로 들어가는 문은 오직 하나 예수 뿐.
방주 = 우리를 구원하는 믿음을 상징
나무 = 성전을 짓는 재료
동시에 나무는 믿는 우리들.
그 나무를 산에 가서 베어내다. 베어내면 나무는 죽는다.
그러나 나무는 죽어야 성전을 짓는 재목이 된다.
산에 가서 베다 = 산 = 하나님 계신 곳.
하나님 계신 앞에서 내 몸이 죽어 성전을 짓는 재목이 된다.
나무는 물에 뜬다 = 죄악 세상에 침몰하지 않는다.
방주는 하나님의 성전 = 교회.
교회는 방주가 되어야 한다.
마지막 때의 타락한 교회는 다 바다 물속에 가라앉는다.
왜? 역청으로 틈을 막지 않았기 때문에 교회 안으로 더러운 세상 물이 안으로 들어왔기 때문.
방주는 교회의 모습이다.
방주는 3 층으로 짓는다. 1 층 = 성령 2층 = 아들 3층 = 아버지
하늘을 향한 단 하나의 창. 창으로 빛이 들어온다. =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는 믿음.
옆으로 난 하나의 문 = 예수님. 구원으로 들어가는 문.
방주는 교회의 모형이요, 예수님의 모형이요.
방주의 말씀을 읽고 방주의 크기에 놀라거나, 그 큰 방주를 노아가 어떻게 지었는가? 하고 의아해 하거나, 혹은 방주의 척수가 현대 조선 기술의 모형이라든가....하는 것은 성경을 바르게 보는 자세가 아니다.
성경 말씀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영적인 원리들, 구원의 원리를 영적으로 둔한 사람들에게 쉽게 풀어서 알게 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17절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식 있는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자가 다 죽으리라”
하나님의 홍수 심판.
지상의 모든 사람들과 동물들은 다 죽는다.
노아와 그 가족도....물론 다 죽는다. 왜? 기식 있는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신다고 하셨으니까.
노아 = 물속에 빠져 죽었다(죄 속에 빠져 죽었다가)가 다시 사는 것을 뜻함.
홍해를 건너는 이스라엘 백성 = 물에 빠져 죽었다가 다시 하는 것.
예수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사심.
우리도 죽었다가 다시 살다 = 부활
우리는 죄로 죽었다가, 예수로 인해 다시 살다 = 중생
우리의 육신은 죄로 죽었고 영은 다시 살다 = 구원.
누가 구원을 받았는가? 하나님 마음에 드는 사람.
18절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자부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구원의 약속.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계약에 의한 것.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의로움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약에 의한 것.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자부들”
구원 받을 사람의 범위.
노아와 그 아내, 세 아들, 세 며느리의 구원 = 역사적 사실.
이들의 영적인 뜻.
노아 = 하나님의 계시를 받는 선지자.
그 아내 = 그를 따르는 신령한 교회.
아들 = 신령한 교회가 낳은 성도.
며느리 = 생명을 낳을 신령한 교회, 성도.
노아로 인하여, 아내와 아들들과 며느리들이 구원을 받는다.
노아 한 사람의 순종으로 그의 아내와 그 아들들과 며느리들이 구원에 이르게 된다.
예수 한 사람으로 인하여 그를 따르는 교회와 성도들이 구원을 받게 된다.
19절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너는 각기 암 수 한쌍씩 방주로 이끌어 들여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케 하되”
온갖 동물들은 사람을 위하여 창조되었다. 장차 이 지상에 살아야 할 인류를 위해 노아와 함께 짐승들도 살아남게 해 주신다.
짐승들이 살아남지 못한다면, 홍수 이후에는 오직 식물과 사람만이 있게 될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짐승들도 노아 때문에 살아남게 되었다.
20-21절
“새가 그 종류대로, 육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각기 둘씩 네게로 나아오리니 그 생명을 보존케 하라 너는 먹을 모든 식물을 네게로 가져다가 저축하라 이것이 너와 그들의 식물이 되리라”
어느 신학자는 이렇게 많은 동물들을 노아가 모을 수 있느냐? 먼 거리에 살고 있는 짐승들을 그 먼 곳에서 어떻게 끌어 왔느냐? 그러므로 이 노아의 이야기는 신빙성이 없다, 고 주장.
“각기 둘 씩 네게로 나오리니”
하나님께서 짐승들을 노아에게로 오게 하신다. 하나님의 큰 능력으로 세상 끝에서부터 각종 짐승들을 노아에게 보내 주신다.
“네게로 나오리니 그 생명을 보존케 하라”
짐승들을 보내주시는 분은 하나님. 그러나 그들을 방주 안으로 들여서 먹여 주고 살려 주는 것은 노아의 일.
사람은 짐승들을 살려 주고 보호해 주어야 한다.
왜? 그것들은 사람을 위해 창조되었기 때문.
동시에, 영적 뜻 = 짐승 = 믿지 않는 사람들.
노아 =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선지자. 주의 종.
하나님께서 그에게 보내 주시는 믿지 않는 자들을 방주(교회) 안으로 들이고, 그들에게 먹일 양식(말씀)을 준비하고 먹여야 한다.
22절
“노아가 그와 같이 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다. 이것이 노아와 그를 따르는 가족과 짐승들을 구원하게 한다.
창세기 6 장
창세기 6장
6장 1-2절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여기의 이 사람의 딸들은 누구고, 하나님의 아들들은 누구인가?
1) 사람의 딸들은 아벨을 죽이고 세상으로 나간 가인의 후손의 딸들이고, 하나님의 아들들은 아담의 아들 셋의 후손의 아들들이다.
2) 사람의 딸들은 아담의 자손이 낳은 딸들이고, 하나님의 아들들은 타락한 천사들이다.
바른 해석 = 사람의 딸들은 1장에서 창조된 사람들과 가인의 후손들의 딸들이요, 하나님의 아들들은 아담의 후손들의 아들들이다.
성령 받아 거듭난 사람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다. 곧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며, 하나님의 아들들이다.
신명기 14장 1절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자녀니”
호세아 11장 1절
“이스라엘의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 내었거늘”
아담은 하나님의 입김을 받아 산 영(영을 가진 사람)으로 태어났다. 따라서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의 후손들도 하나님의 아들들이다.
하나님의 아들들과 이방 여인들
민수기 25장 1-3절
“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물러 있더니 그 백성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하니라 그 여자들이 그 신들에게 제사할 때에 백성을 청하매 백성이 먹고 그들의 신들에게 절하므로 이스라엘이 바알브올에게 부속된지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시니라”
이스라엘 백성의 남자들 곧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 곧 이방 족속의 딸들과 음행을 한다. 이 사건으로 해서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브올세불(마귀)의 소유가 되었다.
여호와께서 이 일로 해서 백성의 수령들을 다 죽이신다.
왕상 16장 31절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행하는 것을 오히려 가볍게 여기며 시돈 사람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로 아내를 삼고 가서 바알을 섬겨 숭배하고”
이스라엘 왕 아합이 바알을 믿는 이방 여인 이세벨과 결혼, 이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은 바알을 숭배하게 되었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진노를 받는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 여인과 결혼함으로 이방의 우상 숭배가 들어오고 이로 인해 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에 범죄하게 된다.
솔로몬 왕은 많은 이방 여인들을 처첩으로 두었다. 그들에 의해 궁중에서 이방 신에게 올리는 제사가 행해졌고, 이로 인해 이스라엘은 남과 북으로 분단된다.
다시 1-2절의 말씀을 보자.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여기의 이 사람은 1장에서 창조된 사람들과 가인의 후손들이다.
이들이 지상에서 번성하기 시작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하나님을 섬기며 검소한 생활을 하던 셋의 자손들이 사치하며 육적인 쾌락만을 쫓는 세상 여자(사람의 딸들)의 관능적인 육체의 아름다움을 보고는 그만 전신을 빼앗겼다.
이 말씀의 현대적 해석
성령 받아 거듭난 성별 된 하나님의 자녀들이 세상 사람들, 곧 성령 받지 못하고 짐승처럼 육신의 쾌락만을 좇는 사람들의 그 육적 쾌락이나 호화 사치 생활에 그만 미혹되어 성령의 역사를 거역하고 그들의 생활을 따라간다.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마음에 드는 대로 아무하고나 마구 동침을 했다.
3절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 이십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아담에게 하나님은 입김을 불어 넣어 주셨다. 곧 하나님의 신을 함께 하게 해 주셨다.
그러나 이들은 하나님을 떠났다. 그래서 하나님의 신(영)을 상실하고 흙이 되고 말았다.
사람이 하나님을 떠남으로 하나님의 영도 그들을 떠나고 말았다.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하나님의 영이 그들을 떠남으로 사람은 단지 육체일 뿐,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존재가 되었다.
사람이 하나님과 멀어질 때 성령은 그를 떠나신다.
성령이 사람을 떠나면 그는 짐승의 차원으로 전략해 버린다.
이 사건 이후, 성령은 늘 사람과 함께 하시지 않게 되었고, 성령은 일시적, 임시적으로만 역사하게 되었다.
예수가 오심으로 성령은 다시 모든 믿는 자들 위에 오셨다 = 성령 시대.
그러나 지금도 우리가 성령의 역사를 거스르면 내게 와 계시던 성령은 나를 떠나신다.
사람의 타락
1) 첫 번째 타락 = 에덴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먹다.
에덴을 쫓겨났다.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모든 복을 놓치고 만다.
2) 두 번째 타락 = 카인은 살인을 하고 영영 하나님 앞을 떠나다.
하나님의 보호와 은총에서 멀어지다.
3) 세 번째 타락 = 육신의 정욕으로 인해 하나님의 아들의 자격 박탈.
1) 첫 번째 타락 = 먹는 것으로 타락.
먹는 것을 잃다. 노동하지 않고 먹고 살 수 있는 에덴을 상실.
2) 두 번째 타락 = 미움과 질투로 타락.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를 잃고 세상을 방황하게 되었다.
3) 세 번째 타락 = 육의 정욕으로 타락.
짐승 같은 정욕으로 사람의 딸들을 취하여 아내로 삼다.
이렇게 해서 사람은 짐승처럼 되었다.
이것을 이기기 위해서는
1) 하늘의 신령한 것을 먹고,
2)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며,
3)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4절
“당시에 땅에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하여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이 용사라 고대에 유명한 사람이었더라”
당시는 물론 그 후에도 네피림 곧 거인족이 살았는데, 이들은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을 사이에 태어난 자식들이었다.
네피림 = 타락한 자. 폭군들. 침략자. 거인.
민수가 13장 32-33절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탐지한 땅을 악평하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그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대장부 = 타락한 세상에서 오직 육신의 힘으로 이름을 떨친 장사들. 이들은, 하나님은 안중에도 없고, 오직 그 육신의 힘만을 의지하고 믿고 자랑하였다.
현대판 거인들 = 거대한 기업주들. 정치 권력자들. 유명한 예술가들. 대중적 인기인들. 거대 교회
여기에 비하면, 하나님만을 열심히 섬기고 하나님 은혜 가운데서 성령의 역사만을 따라가는 자들은 참으로 메뚜기처럼 보인다.
현대판 거인 족들을 보고 서글퍼 하거나 하나님을 원망하지 말라.
거인 족 = 하나님의 아들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의 것을 탐하고 세상과 하나로 결합하여 그 결과로 태어난 것들.
거인 골리앗을 죽이는 다윗 ..........이들을 심판하시는 예수님.
거인의 결정판 = 마지막 때의 적그리스도.
예수님이 마지막 때에 그들을 심판하신다.
5-8절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 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하나님은 사람이 타락할 것을 모르셨나? 모르셨다면 하나님의 전능성에 의심이 간다.
물론 하나님은 사람이 타락할 것을 알고 계셨다.
하나님은 사람이 타락할 수도, 타락하지 않을 수도 있게 만드셨다.
같은 아담의 자손 중에 가인도 나오고 에녹도 나온다.
타락한 자는 버리시고 타락하지 않은 자들만 골라 천국 백성 만드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성경 전체의 주제이다.
창세기 1장과 6장의 비교
1장
1) 하나님은 사람을 당신 형상대로 만드셨다.
26절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2) 사람은 모든 피조물을 통치하도록 위임을 받았다.
28절 “땅을 정복하라”
3) 심히 좋아 하셨다.
31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6장
1) 하나님은 짐승처럼 된 사람을 보셨다.
5절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
2) 하나님은 그들을 없애 버리기로 작정하였다.
6절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3) 하나님은 탄식하셨다.
7절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7절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 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사람이 범죄 했는데, 왜 짐승과 새까지 없애 버리시나?
1) 이것들은 사람을 위해 창조되었기 때문.
2) 이것들을 사람들이 다스리도록 하셨는데, 사람은 스스로 이들과 같은 차원으로 즉 짐승의 차원으로 전락하고 말았기 때문.
8절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모든 사람은 멸망당해 마땅하지만, 노아만은 하나님 마음에 들었다.
노아 = 안위라는 뜻.
인류의 희망. 그의 씨가 모든 인류를 낳게 된다.
하나님 마음에 들어야 한다.
하나님 마음에 들면 구원. 하나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멸망.
너무나 간단한 공식. 그런데, 사람들은 이렇게 간단명료한 공식을 잊고 있다.
하나님 마음에 들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께 외치기만 한다.
하나님 마음에 들지 않는 자 = 사단 마음에 드는 자.
우리의 신앙생활 = 오직 하나님 마음에 들고자 하는 것.
9-12절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그가 세 아들을 낳았으니 셈과 함과 야벳이라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여 강포가 땅에 충만한지라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패괴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패괴함이었더라”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여 강포가 땅에 충만한지라”
패괴하다 = 부패하다. 썩다.
강포 = 포악.
온 세상은 극도로 썩었고 죄악으로 가득했다.
그런데 노아 한 사람만은 그렇지 않았다.
노아는 의인이요 당시에 완전한 자요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였다.
세상이 극도로 썩었고 죄악으로 가득하다.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가까이 다가 왔다는 것을 뜻한다.
하나님의 심판은 세상이 가장 심하게 썩었을 때 임한다.
이 때, 하나님은 이 썩은 세상에서 올바르고 흠 없는 사람을 찾으신다.
“다른 사람들도 다 그러는데” 라고 말하지 말라.
그 다른 사람들은 다 멸망당할 사람이라는 것을 알라.
멸망당할 사람은 많고 구원 받을 사람은 적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속속들이 썩고 타락한 세상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하나님의 심판이 바로 눈앞에 임박했다는 사실을 깨달아라.
에녹 = 노아 =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
하나님과 동행 =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 뜻대로 사는 것.
13-14절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그 안에 간들을 막고 역청으로 그 안팎에 칠하라”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동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계시를 주시고, 명령을 내리신다.
그리고 그 계시는 믿기 어려운 것, 명령은 매우 실행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노아에게 주신 계시
1) 썩은 세상. 부패한 시대에 대한 계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세상의 끝 날이 이르렀다. 하나님의 심판의 날이 눈앞에 이르렀다.
2) 세상 멸망에 대한 계시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계획을 노아에게 알게 하셨다.
3) 그런 다음 노아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명령 = 그 멸망을 이길 방법에 대한 계시(명령).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그 안에 간들을 막고 역청으로 그 안팎에 칠하라”
1)을 깨닫고. 세상이 극도로 부패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2)를 믿고. 하나님이 이 세상을 심판하신다는 말씀을 믿고.
3)을 순종하면, 구원을 받는다.
방주를 만들다.
배는 물 위에 뜬다. 물 = 죽음. 배를 타야 죽음을 면한다.
배를 만들어야 산다. 배를 만들다 = 하나님 명령에 순종하다.
노아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그 명령에 순종해서 배를 만든다.
그 순종의 결과인 배가 나를 구원한다.
명령에 대한 순종이 나를 구원한다.
순종 곧 구원.
큰 배를 만들다 = 오랜 시간 동안 작업을 해야 한다.
오랜 시간동안 믿음을 잃지 않고 괴로움과 고통을 참고 계속 일을 해야 한다.
아브라함은 하나님 명령에 순종해서 아들 이식을 바치기 위해 삼일 길을 걸어서 모리아 산까지 간다.
믿음과 실천과 인내 =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한다.
우리는 지금 다 배를 만드는 노아.
방주 = 항해를 하기 위한 배가 아니라, 물 위에 떠 있기 위한 배.
우리의 노력은 물(죄악 세상, 죽음) 위에 떠 있기만 하면 된다.
썩고 타락한 세상 속에 빠져 들지만 않으면 된다.
우리를 천국까지 이끄시는 것은 하나님이 하실 일.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오직 배를 만들고 물 위에 더 있는 것.
14-16절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그 안에 간들을 막고 역청으로 그 안팎에 칠하라 그 방주의 제도는 이러하니 장이 삼백 규빗, 광이 오십 규빗, 고가 삼십 규빗이며 거기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지니라”
배를 만들어야 우리는 구원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배는 우리 마음대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그대로 만들어야 한다.
= 내 뜻대로 믿고 내 마음대로 행하는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 뜻대로 믿고 하나님 뜻대로 행하는 믿음이라야 한다.
14-16절은 배 만드는 방식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
배는 이 명령을 따라 그대로 만들어야 한다.
순종은 하나님 뜻에 정확하게 맞는 것이라야 순종이라고 할 수 있다.
순종한답시고, 또 하나님 일 한답시고, 제 마음대로 하는 것은 아무 소용도 없다.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잣나무 = 하나님 성전을 짓는 나무. 잣나무는 똑바로 하늘을 향해 자라 오른다. 줄기가 이리저리 휘지 않는다. 잣나무 = 믿는 우리들.
믿는 우리들로 성전을 짓는다.
배 = 하나님의 성전 = 우리를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영역.
나무와 나무 사이에 틈새가 있으면 그 곳으로 물이 새어 들어 온다.
나무와 나무 사이에 틈새가 있으면 그 틈새로 세상의 더러운 것들이 교회 안으로 들어와 교회를 타락시킨다.
“역청으로 그 안팎에 칠하라”
역청은 물과 섞이지 않는다. 물을 막아 준다.
안과 밖을 역청으로 칠하다 = 물(우리를 멸망으로 이끄는 세상적인 것)을 막을 수 있는 믿음과 말씀으로 안과 밖을 무장하다.
안 = 내면적 믿음. 내면적 영적 능력
밖 = 외형적 믿음의 태도. 행함.
이 두 가지로 물이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
“그 방주의 제도는 이러하니 장이 삼백 규빗, 광이 오십 규빗, 고가 삼십 규빗이며”
방주의 크기와 모양
길이 = 300 규빗
폭 = 50 규빗
높이 = 30 규빗
삼층으로 만들다. 각 층마다 높이가 각각 10 규빗
어떤 사람은 말한다. 이 방주의 치수는 현대 조선술의 기본적인 수치. 가장 안정된 배의 설계의 모형으로, 하나님은 얼마나 지혜가 많으신가.
그러나 이런 식으로 성경을 해석하면 안 된다.
왜냐하면, 그런 식으로 하면 성경을 인간의 지혜로 판단하는 것이 된다.
또 어떤 비평가는 길이 300 규빗, 폭 50 규빗, 높이 30 규빗 방주로는 그 많은 짐승들을 다 태울 수 없고, 그 많은 먹이를 다 실을 수 없다고 말한다.
또 노아가 어떻게 그 많은 짐승들을 모을 수 있었는가? 라고 말하며 성경의 진실성을 의심한다.
방주의 크기를 알아보자.
1 규빗 = 45.6 cm
길이 300 규빗 45.6cm ☓ 300 = 136.8m 중형 유조선 규모
이 배의 실제적 크기가 문제가 아니라, 이 배의 크기가 뜻하고 있는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건축에 있어서 하나님의 기본 숫자는 언제나 3과 5이다.
300 규빗 50 규빗 3층...
3 = 하나님의 숫자.
5 = 은총. 구원 받은 성도의 수. 슬기로운 5 처녀.
하나님의 수인 3 + 구원 받은 사람의 수 5 = 8
8은 새로운 탄생. 영원 천국에 들어가는 해 8000 년.
사내 아이 = 태어 난지 8일 만에 할례
방주 = ark = 궤 ark = 법궤.
방주와 법궤는 영적으로 같은 것.
법궤의 크기
길이 = 2.5 규빗 폭 = 1.5 규빗 높이 = 1.5규빗
5의 반 3의 반 3의 반
법궤는 하나님의 1/2의 임재.
율법은 하나님의 반만의 임재. 법궤는 율법을 뜻한다.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율법은 완성되고 구원이 완성된다.
방주 =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예수님 자신을 상징.
또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세우실 교회를 상징.
방주는 교회의 모형이요, 예수님의 모형이다.
법궤 = 사람이 만지면 죽는다. 법궤 = 율법 = 율법을 어기면 죽는다.
방주 = 사람이 그 속에 들어가야 산다. 노아와 그 가족을 받아들여 그들을 구원하다. = 예수님의 상징
그래서 방주는 3. 5.의 숫자로 기록되지만, 법궤는 그 반이 수치로 표현된다.
방주는 3 층으로 지어졌다.
성령은 우리를 아들에게로 인도하고,
아들은 우리를 아버지에게로 인도한다.
1층은 성령
아들인 예수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한다. 곧 1층으로 들어가야 한다.
2층은 아들이다.
아들을 알면 3층인 아버지에게로 올라갈 수 있다.
3층은 아버지다. 아들은 우리를 아버지에게로 인도하는 분이다.
우리는 먼저 1층으로 들어가서 3층으로 올라가야 한다.
방주에 들어간 노아와 그 아내와 아들들과 자부들은 틀림없이 3층에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낮은 짐승일수록 아래층에 있었을 것이다.
“거기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지붕 한 규밧 아래 하늘을 향해 창을 하나 내다.
히브리어의 창이라는 단어와 낮이라는 단어는 어원이 같다.
창 = 낮 = 빛
빛 = 하나님
창을 하늘을 향해 곧 하나님을 향해 내다.
땅에 홍수가 흉용할 때, 우리는 하나님만을 올려다보아야 한다.
베드로 = 밤에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바다 물 위를 걷다가 물결치는 파도를 보고 물속으로 빠지다.
방주에는 하늘을 향한 창이 하나 밖에 없다.
흉용하는 물을 볼 수가 없다 = 보아서는 안 된다.
우리의 믿음은 오직 하나. 하늘 곧 하나님을 향한 단 하나의 믿음.
이것저것 볼 것이 없다. 엎을 보면 물에 빠진다. 뒤를 보면 소금 기둥이 된다.
세상의 파도를 보지 말라. 오직 하늘만 올려다보아라.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옆으로 난 한 개의 문. 방주에는 문이 하나뿐이다.
방주로 들어가는 문은 하나 뿐.
문 = 구원으로 들어가는 문 = 천국으로 들어가는 문 = 예수
천국으로 들어가는 문은 오직 하나 예수 뿐.
방주 = 우리를 구원하는 믿음을 상징
나무 = 성전을 짓는 재료
동시에 나무는 믿는 우리들.
그 나무를 산에 가서 베어내다. 베어내면 나무는 죽는다.
그러나 나무는 죽어야 성전을 짓는 재목이 된다.
산에 가서 베다 = 산 = 하나님 계신 곳.
하나님 계신 앞에서 내 몸이 죽어 성전을 짓는 재목이 된다.
나무는 물에 뜬다 = 죄악 세상에 침몰하지 않는다.
방주는 하나님의 성전 = 교회.
교회는 방주가 되어야 한다.
마지막 때의 타락한 교회는 다 바다 물속에 가라앉는다.
왜? 역청으로 틈을 막지 않았기 때문에 교회 안으로 더러운 세상 물이 안으로 들어왔기 때문.
방주는 교회의 모습이다.
방주는 3 층으로 짓는다. 1 층 = 성령 2층 = 아들 3층 = 아버지
하늘을 향한 단 하나의 창. 창으로 빛이 들어온다. =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는 믿음.
옆으로 난 하나의 문 = 예수님. 구원으로 들어가는 문.
방주는 교회의 모형이요, 예수님의 모형이요.
방주의 말씀을 읽고 방주의 크기에 놀라거나, 그 큰 방주를 노아가 어떻게 지었는가? 하고 의아해 하거나, 혹은 방주의 척수가 현대 조선 기술의 모형이라든가....하는 것은 성경을 바르게 보는 자세가 아니다.
성경 말씀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영적인 원리들, 구원의 원리를 영적으로 둔한 사람들에게 쉽게 풀어서 알게 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17절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식 있는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자가 다 죽으리라”
하나님의 홍수 심판.
지상의 모든 사람들과 동물들은 다 죽는다.
노아와 그 가족도....물론 다 죽는다. 왜? 기식 있는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신다고 하셨으니까.
노아 = 물속에 빠져 죽었다(죄 속에 빠져 죽었다가)가 다시 사는 것을 뜻함.
홍해를 건너는 이스라엘 백성 = 물에 빠져 죽었다가 다시 하는 것.
예수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사심.
우리도 죽었다가 다시 살다 = 부활
우리는 죄로 죽었다가, 예수로 인해 다시 살다 = 중생
우리의 육신은 죄로 죽었고 영은 다시 살다 = 구원.
누가 구원을 받았는가? 하나님 마음에 드는 사람.
18절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자부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구원의 약속.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계약에 의한 것.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의로움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약에 의한 것.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자부들”
구원 받을 사람의 범위.
노아와 그 아내, 세 아들, 세 며느리의 구원 = 역사적 사실.
이들의 영적인 뜻.
노아 = 하나님의 계시를 받는 선지자.
그 아내 = 그를 따르는 신령한 교회.
아들 = 신령한 교회가 낳은 성도.
며느리 = 생명을 낳을 신령한 교회, 성도.
노아로 인하여, 아내와 아들들과 며느리들이 구원을 받는다.
노아 한 사람의 순종으로 그의 아내와 그 아들들과 며느리들이 구원에 이르게 된다.
예수 한 사람으로 인하여 그를 따르는 교회와 성도들이 구원을 받게 된다.
19절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너는 각기 암 수 한쌍씩 방주로 이끌어 들여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케 하되”
온갖 동물들은 사람을 위하여 창조되었다. 장차 이 지상에 살아야 할 인류를 위해 노아와 함께 짐승들도 살아남게 해 주신다.
짐승들이 살아남지 못한다면, 홍수 이후에는 오직 식물과 사람만이 있게 될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짐승들도 노아 때문에 살아남게 되었다.
20-21절
“새가 그 종류대로, 육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각기 둘씩 네게로 나아오리니 그 생명을 보존케 하라 너는 먹을 모든 식물을 네게로 가져다가 저축하라 이것이 너와 그들의 식물이 되리라”
어느 신학자는 이렇게 많은 동물들을 노아가 모을 수 있느냐? 먼 거리에 살고 있는 짐승들을 그 먼 곳에서 어떻게 끌어 왔느냐? 그러므로 이 노아의 이야기는 신빙성이 없다, 고 주장.
“각기 둘 씩 네게로 나오리니”
하나님께서 짐승들을 노아에게로 오게 하신다. 하나님의 큰 능력으로 세상 끝에서부터 각종 짐승들을 노아에게 보내 주신다.
“네게로 나오리니 그 생명을 보존케 하라”
짐승들을 보내주시는 분은 하나님. 그러나 그들을 방주 안으로 들여서 먹여 주고 살려 주는 것은 노아의 일.
사람은 짐승들을 살려 주고 보호해 주어야 한다.
왜? 그것들은 사람을 위해 창조되었기 때문.
동시에, 영적 뜻 = 짐승 = 믿지 않는 사람들.
노아 =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선지자. 주의 종.
하나님께서 그에게 보내 주시는 믿지 않는 자들을 방주(교회) 안으로 들이고, 그들에게 먹일 양식(말씀)을 준비하고 먹여야 한다.
22절
“노아가 그와 같이 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다. 이것이 노아와 그를 따르는 가족과 짐승들을 구원하게 한다.
모든 일을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하다 = 믿음과 순종.
순종 없는 믿음은 믿음이 아니다.
순종 없는 믿음으로는 구원 받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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