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이 그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잉태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이었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이었더라”
3장 15절의 말씀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라”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죽게 안 하신다는 것을 뜻한다. 그들이 죽는다면 어떻게 그들의 후손이 태어날 수 있는가?
하나님 앞에 죽을죄를 짓고 죽을 줄로만 알았던 아담은 하나님의 이 말씀을 듣고 그만 기뻐서 이렇게 말했다.
3장 20절의 “아담이 그 아내를 하와라 이름하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미가 됨이라”
하와 = 하와의 어원은 <하야>로 ‘사는 것, 존재하는 것’이란 뜻으로 하와는 모든 산 자의 어미가 되다, 라는 뜻이다.
“아담이 그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아담과 하와의 결합.
남녀의 결합 = 하나님과 교회의 결합.
아들 가인을 낳다 = 예수님과 교회가 하나가 되어 아들(성도)을 낳다.
가인 = 얻었다, 라는 뜻. 아들을 얻었다. 여자가 후손을 얻었다.
하와는 죄를 지었기 때문에 아담과 동침을 하고 아들을 낳았다.
= 죄인인 사람들은 예수님과 하나가 되어야 생명을 낳는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후에 아들을 낳는다. 왜 범죄한 후에 아들을 낳는가?
그 후손에서 메시아가 오시고 그들이 구원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이렇게 외쳤다.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할 메시아를 보내 주시는 구나!
가인과 아벨 두 아들을 낳다.
하나는 뱀의 씨. 다른 하나는 여자의 씨(여자의 후손)
성경은(인류의 역사는) 뱀의 씨와 여자의 씨(여자의 후손)의 싸움의 역사.
뱀의 씨 = 사단의 영을 받은 자, 사단의 유혹을 받은 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
여자의 씨 = 성령을 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된 자.
“아벨은 양 치는 자이었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이었더라”
가인 = 농사하는 자 = 땅을 섬기다.
= 나의 양식을 위해 땅을 섬기다 = 뱀의 줄기가 되다.
아벨 = 양을 치는 목자.
양 = 당시에는 사람이 양 고기를 먹지 않았다. 또 양 젖도 먹지 않았다
사람이 짐승의 고기나 젖을 먹기 시작한 것은 홍수 이후.
아벨은 자신을 육을 위한 양식을 위해 일하지 않았다.
양 = 죽어서 사람의 몸을 가리는 가죽을 남기는 짐승.
양 = 장차 임하실 예수의 모습.
양을 치다 = 어린양 예수님이 오실 길을 예비하다.
3-5절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가인 = 얻었다, 라는 뜻
아벨 = 공허
왜, 하나님은 아벨의 제물은 열납하시고 가인과 그 드린 제물을 열납하시지 않은 것일까?
히브리서 11장 4절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
히브리서 9장 22절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아벨이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렸다. 그 더 나은 제사가 무엇이냐?
어린양을 잡아 피 제사를 드렸다는 것이다.
피로써 거의 모든 것이 깨끗해지고, 피 흘림으로 죄는 용서 받는다.
이것이 율법이요, 하나님의 법이다.
그런데, 아벨은 이런 사실을 믿음으로 알았다. 그래서 그는 가인보다 나은 제물을 하나님께 바쳤다.
아벨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알았고, 또 그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믿음으로 하나님께 드렸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와 그의 제물을 열납하셨다.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분별하고 기뻐하시는 것을 드려야 한다.
아벨이 태어났을 때, 아담과 하와는 양 가죽옷을 입고 있었다. 그는 그 가죽옷에 대해 부모에게 물었을 것이고, 부모는 하나님께서 그 옷을 지어 주셨다는 사실을 이야기 해 주었을 것이다.
이것을 통해 아벨은 하나님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아벨은 늘 하나님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하나님에 대해 늘 알고자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우리도 늘 하나님에게 관심을 두고 있어야 하며, 하나님에 대해 알고자 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알 수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에게 늘 관심을 가지며, 하나님에 대해 알고자 하는 그 자체를 하나님은 또한 기뻐하신다.
아벨이 드린 제물 = 첫 새끼와 그 기름
첫 새끼 = 양의 첫 배의 수컷 새끼 기름 = 양 내장에 낀 기름
1) 피 = 생명 피로 죄를 씻다.
2) 기름 기름은 하나님의 것.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것. 구약에서 제사를 드릴 때, 짐승을 잡아 그 피는 단 아래 땅에 쏟고 그 기름은 불에 태워 하나님께 드린다.
피 =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 땅에 쏟다 = 사단에게 주다.
기름 = 우리가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것. 우리의 힘과 노력.
우리 몸속에 있는 지방질을 다 태워서 곧 체내에서 연소시켜 그 노력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 이것만이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이 태워지는 기름만이 참으로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것.
물질은 드려도 다시 사람에게로 내려온다.
아벨은 믿음으로 기름을 하나님께 드렸다.
예수님의 피 = 우리 대신 사단에게 주고 우리를 찾아오시다.
우리는 나의 기름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다.
가인은 땅에서 난 곡식을 하나님께 드렸다.
곡식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이 아니다.
곡식을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서는 고운 가루로 만들든가 아니면 곱게 빻아 기름을 발라 불에 구워야 한다.
고운 가루 = 나를 가루로 만들다. 가루로 만들어 기름(성령)을 발라 불(환난)에 구운 떡을 하나님께 드리다.
그냥 곡식은 하나님이 받으시지 않는다.
또 곡식을 빻아 만든 가루나 가루로 만든 떡도 단지 화목 제물로 드릴 수 있을 뿐이다.
또, 그 드린 소제(곡식 예물)는 다시 사람들이 나누어 먹는다.
오직 기름만이 불에 태워 온전히 하나님께 올라간다.
가인은 이런 하나님의 뜻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땅에서 난 곡식을 하나님께 드렸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의 제물을 반기시지 않았다.
내 마음대로 드리면 많은 물질을 드려도 하나님은 그것을 기뻐하시지 않으신다.
당시에는 양은 사람이 먹는 식물이 아니다. 양은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기 위해서 키운다.
예수님 = 양을 먹이시는 목자. 아버지를 위해 양을 먹인다.
“내 양을 먹이라”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
베드로는 예수님을 위해 예수님의 양을 먹인다.
양을 먹이는 것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주를 위해서 이다.
양을 키워서 제단에 드리고 사람이 얻는 것은 그 가죽 뿐.
양 가죽 = 몸을 가리는 옷. 곧 죄를 가리는 옷. 예수님.
양을 치는 목자 = 나를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주를 위해 일하며, 그 얻은 것은 다 하나님께 드리고 다만 옷(구원의 옷) 만을 얻는다.
우리는 하나님만을 위해 일하고, 그래서 얻은 것은 오직 내 죄를 가릴 옷(예수님) 뿐이다.
가인은 밭을 가는 농부
밭 = 땅
곡식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이 아니라, 사람이 먹는 것.
가인은 땅(세상)에서 자기 자신을 위해 일 하는 자.
그는 농사를 짓기 위해 땅을 의지한다 = 그는 세상 것을 얻기 위해 세상을 의지한다.
우리는 하늘의 것을 얻기 위해 하나님을 의지한다 = 하나님 믿는 것.
땅에서 난 곡식 = 세상을 의지하고 세상에서 얻은 세상적인 물질.
가인은 하나님의 뜻은 생각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제물을 선택하고 그 것을 하나님께 드렸다. 그리고 자기는 하나님을 잘 섬겼다고 생각했다.
가인 같은 신자 = 땅에 속한 것을 탐내며, 자신의 육신만을 위해 일하며, 하나님의 뜻을 모르며, 자기 마음대로, 자기 방식대로 하나님을 섬기며, 그러면서도 자기는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다고 생각하는 자.
아벨 같은 성도 = 오직 하나님께 드릴 것을 얻기 위해 일하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분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며 자신은 오직 가죽옷만을 얻고자 하는 사람.
5-8절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가인이 그 아우 아벨에게 고하니라 그 후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 아우 아벨을 쳐 죽이니라”
가인은 왜 분해했나?
자기 제물을 하나님이 받지 않으셨기 때문.
가인의 억지 = 인간의 억지 =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며, 하나님은 드린 것을 받으시고도 소원을 이루어 주시지 않는다고 화를 낸다.
새벽 기도를 계속했는데도 왜 내 소원을 안 들어 주냐고 불평을 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믿는 사람들이 너무나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을 믿으려고 한다.
가인은 자기가 드린 제물을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자 화를 냈다.
하나님께서 왜 그것을 기뻐하시지 않는지 생각하지 않았다. 하나님에 대해 내 마음대로 생각하고, 내 뜻대로 행하고, 거기에 하나님이 응하시지 않는다고 화를 낸다.
“어찌 낮을 들지 못하겠느냐”
네가 한 일이 옳은 일이라면 왜 고개를 숙이고 있느냐?
고개를 숙이고 있다는 것은 네 스스로 잘못을 알고 있는 것이 아니냐?
고개를 떨어뜨리다 = 아래를 보다 = 땅을 보다.
땅에 대해서만 관심을 두다. 내 육신만을 생각하다.
가인은 땅만 보고 있다.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땅만 볼 때(우리가 세상 것에만 관심을 쏟을 때), 우리는 하나님을 볼 수가 없다.
죄인은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한다. 가인이 얼굴을 쳐들지 못하고 있는 것은 그의 죄(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그래서 잘 못 드리고, 그러면서도 화를 낸 죄) 때문이다.
그렇다면 빨리 깨닫고 회개해야 한다. 지금 하나님은 그에게 그의 죄과를 생각나게 하고 계시다.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우리의 죄 때문이다.
우리 죄 때문에 하나님을 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그래서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하고, 그래서 하나님을 잘 못 알고, 잘 못 믿고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하나님이 우리 뜻대로 안 해 주신다고 하나님을 원망한다.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를 깨달아 회개하지 않고 계속 화를 내고 있으면 죄가 네 바로 앞에서 너로 범죄하도록 너를 노릴 것이다.
어떤 범죄를 하도록 그를 노리는가? 아벨을 죽이도록.
죄가 문 앞에서 = 사단이 문 앞에서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찌니라”
네 속에 범죄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구나. 너는 그 마음을 억누르라.
“가인이 그 아우 아벨에게 고하니라 그 후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 아우 아벨을 쳐 죽이니라”
가인은 결국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듣지 않고 아우를 죽이는 죄를 짓고 만다.
들에 있을 때에,
들과 성(城)
성은 하나님의 영역을 뜻함.
들은 성 밖. 곧 하나님의 보호 영역 밖을 뜻한다.
성 안에서는 죽임을 당하지 않는다. 예수님도 성 밖에서 십자가에 달리시다.
우리도 성 밖에 나가면 사단의 해를 받는다.
가인은 아벨을 들로 데라고 나가 쳐 죽였다.
들로 나가자는 꾐에 넘어가지 말라.
내 영이 맞아 죽는다.
아벨 = 공허
아벨은 오직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 양을 쳤고, 그것을 하나님께 드려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렸다. 그런데, 그가 얻은 것은 형에게 맞아 죽는 것이었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아벨의 생애는 참으로 공허한 것이었다.
아벨 = 최초의 의인 아벨의 죽음 = 의인의 죽음
장차 있을 예수님의 죽음의 예표
성경 = 인간의 눈에는 크나큰 모순. 그러나 참 진리.
의인 = 하나님만을 위해 일하고,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 나의 것을 다 드리고, 그리고 악인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
= 예수님의 생애.
가인,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사단의 본성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사단의 본성을 아울러 가지고 나온다.
사단의 유혹에 져서 죄를 범한 아담의 자손이기 때문.
동시에 아담은 하나님이 입김을 불어넣어 창조하신 하나님의 피조물이기 때문에 그에게서는 아벨 같은 의인도 태어난다.
우리 안에는 가인과 아벨이 공존하고 있다.
아담이 가인과 아벨을 낳은 것처럼, 우리도 우리 안에서 가인과 아벨을 낳고 있다.
내 안에 있는 가인을 죽이고, 아벨을 살려라.
가인 = 예수를 십자가에 달아 죽이는 구약 이스라엘의 대제사장, 바리새인, 서기관들. 그리고 가룟 유다의 예표.
남을 죽이는 것 보다 내가 죽는 것이 낫다.
남을 때리기 보다는 내가 맞는 것이 좋다.
남의 것을 빼앗기 보다는 내 것을 빼앗기는 것이 낫다.
마태복음 5장 40절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때리는 자 = 가인의 줄기
왼뺨도 돌려대는 자 = 아벨의 줄기
악인인 가인이 의인인 아벨을 죽인다. 이것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 이것이 세상이다.
그러나 이제 가인이 죽고, 아벨이 산다. = 심판과 구원.
이것을 믿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9-11절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가로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가라사대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범할 때, 그 죄에 대해 물으신다.
죄를 생각나게 하고 회개할 기회를 주시기 위해.
“그가 가로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가인은 딱 잡아뗀다. 사단의 씨. 죄에 대한 가책이 없다.
아담과 하와 = 죄를 가리려고 했다.
가인 = 죄를 모른다고 잡아뗀다.
아담과 하와 = 선악과 차원
가인 = 짐승 차원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형은 마땅히 아우를 지켜야 한다.
그런데, 가인은 아우를 지키기는커녕 죽였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잡아뗀다.
“가라사대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가 어찌 그런 일을 저질렀느냐.
하나님은 우리가 저지른 죄에 대해 다 알고 계시다. 우리가 죄를 부정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너무나 간단한 이치지만, 이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그러나 우리의 대부분은 내 죄를 하나님 앞에서도 숨기려고 한다.
하나님 앞에서도 나는 죄인이 아닌 것 같은 모습을 하려고 하고 있다.
하나님은 가인에게 벌을 주신다.
그 벌을 주시는 이유를 가인에게 설명하신다.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무죄한 피는 땅에서 원수를 갚아 달라고 하나님께 호소한다.
계시록 6장 9-10절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 있어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제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
신명기 19장 10절
“무죄한 피를 흘림이 없게 하라 이같이 하면 그 피가 네게로 돌아가지 아니하리라”
무죄한 피를 흘리는 자는 반드시 그 죄 값을 받게 된다.
무죄한 피를 흘리게 하지 말라 = 예수님의 피를 흘리게 할 것에 대한 예언의 말씀.
가룟 유다 = 예수께서 정죄 되는 것을 보고 그는 무죄한 예수님의 피를 흘리게 한 것을 깨닫고 후회하며 스스로 목을 매어 죽는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의 무죄한 피를 흘리게 하고 멸망당한다.
사단은 무죄한 많은 성도들의 피를 흘린 죄 값을 받아 영원한 유황 불못에 들어간다.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땅이 피를 받다 = 땅이 , 곧 음부가 죽은 자의 생명을 받다.
네 손에서 받다 = 가인이 아벨의 생명을 땅(음부)에게 내주었다.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하나님이 창조하신 땅은 모든 생물들이 살기 좋은 축복 받은 곳이었다. 그러나 사람의 범죄로 저주 받은 땅이 된다.
아벨과 가인의 비교
아벨
1) 양치는 자. 목자. 하나님을 아는 자
예수님도 우리들 양을 먹이시는 목자시다.
2) 하나님의 계시를 따라 하나님을 섬기다.
첫배의 기름을 드리다.
양은 죽어 그 피는 땅에 쏟아졌고, 그 내장의 기름은 불태워져 하나님께 바쳐졌다. 하나님의 방식대로 하나님을 섬겼다.
3) 그는 하나님을 바른 방식으로 섬긴 최초의 제사장이었다.
4) 그는 가인의 핍박을 받아 죽임을 당했다.
5) 그는 예수님의 예표이다.
가인
1) 자신을 위해 일 했다. (그는 땅을 섬겼다 = 자신의 육신을 섬겼다)
2) 사람의 생각에 따라 자기 방식대로 하나님을 섬겼다.
3) 그는 회개하지 않았고, 하나님을 떠나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자기 방식대로 살았다.
4) 그는 의로운 자를 핍박했다.
5) 그는 하나님을 떠나 세상을 위해 살다가 멸망당하는 자의 예표이다.
12-14절
“네가 밭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가인이 여호와께 고하되 내 죄벌이 너무 중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 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이겠나이다”
무죄한 피를 흘린 자가 받는 형벌
1) 아무리 애를 써도 땅이 소출을 내지 않는다.
영적으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영적 소득을 얻지 못한다. 영이 구원 받지 못한다.
2) 세상을 떠돌아다닌다.
세상 = 광야 길 = 광야 길을 가는 것은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들어가기 위해서다. 그러나 가인은 광야 길을 떠돌아다닐 뿐,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는 못한다.
세상을 떠돌아다니다 = 목적 없이 방황하다.
출애굽 시,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불평을 하여 광야 길을 떠돌아 다녔을 뿐,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다.
세상을 떠돌아다니다 = 의지할 하나님 없이 세상을 방황하다. 하나님 없이 사는 인생은 목적 없이 방황하는 삶.
애쓰고 땀 흘리고 고생하여도 아무 것도 얻지 못하고 죽어 흙으로 돌아가고 마는 삶.
“내 죄벌이 너무 중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자기가 저지른 죄의 무게는 생각하지 않고, 받을 죄의 무게만을 생각하고 있다.
즉시 죽어야 하는데, 하나님께서 그 자비로 살게 해 주시는 것을 행각하지 않고 있다.
우리는 다 죽어야 하는 죄인. 그러나 하나님의 자비로 이렇게 살아 있다. 이것만도 감사한 일인데 늘 하나님에 대해 불만이 많고 요구 사항이 너무 많다.
“무릇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이겠나이다”
남을 죽인 자는 자기도 남에게 죽임을 당할까 늘 불안해한다.
가인으로 해서 살인이 인류에게 들어왔고, 이로부터 사람들은 사람을 죽이게 되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서로 경계하고, 성을 쌓고, 무기를 만들고, 나라들은 군비를 확장하고, 내가 죽지 않기 위해 남을 죽인다.
가인 같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죄한 예수님의 피를 흘리게 하고,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주신 땅을 떠나 전 세계로 떠돌아다니는 신세가 되었다.
그리고 세계 도처에서 그들을 만나는 사람마다 그들을 죽이려고 했고, 또 죽였다.
아벨을 죽인 가인 = 예수님을 죽인 이스라엘 백성
15-16절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않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만나는 누구에게든지 죽임을 면케 하시니라 가인이 여호와의 앞을 떠나 나가 에덴 동편 놋 땅에 거하였더니”
“가인에게 표를 주사”
표를 찍어 주시다 = 이 표는 무엇을 뜻하는가?
그는 비록 하나님께 범죄하고 하나님 앞을 떠나지만, 그러나, 그래도 하나님의 입김을 받아 창조된 아담의 아들이다.
하나님은 가인을 다른 인간들과 구별하신다.
이스라엘 민족은 비록 하나님을 거역하고 결국은 예수를 못 박아 죽이고 하나님 앞을 떠났고, 그로 인해 많은 고난을 당했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지켜 주신다.
“가인을 죽이는 자”
이스라엘이 예수를 죽인 후 로마에 의해 나라가 망했고, 이들은 하나님의 선민의 자격을 상실, 하나님을 모르는 다른 사람들(이방인들) 안에 들어가 그들처럼 살게 되었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가인을 죽이는 자 = 예수를 죽이고 사방으로 흩어진 이스라엘 백성을 죽이는 자들.
또 하나님께 불순종한 이스라엘을 괴롭힌 역사상 나라들. 애굽, 앗수르, 바벨론, 메대파사, 로마, 히틀러 등.
하나님은 이들에게 그 죄를 물어 칠 배로 벌을 주시고 다 멸망 받게 하셨다.
“가인이 여호와의 앞을 떠나”
가인은 하나님 앞을 떠나다. 그는 세상에 나가 하나님 없는 삶을 산다.
세상 = 하나님이 안 계시는 세상.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사는 곳 = 죄악 세상
“에덴 동편 놋 땅에 거하였더니”
놋은 “유리하다” 라는 뜻.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면 유리하는 자가 된다.
에덴 동쪽 = 하나님의 역사는 동쪽에서 서쪽을 향해 이동한다.
동쪽을 향하다 = 하나님과 반대 방향을 향해 가다.
가인은 동쪽으로 옮겨 갔다. 하나님의 역사하시는 방향과 반대되는 쪽으로 옮겨 갔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을 따라 동쪽에서 서쪽으로 옮겨 갔다.
롯은 그 반대 방향인 동쪽으로 이동하여 소돔까지 이른다. (창 13:10-11)
하나님의 역사하시는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가면 죄악 세상에 이른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바벨론 포로로 잡혀 갈 때에, 그들은 아브라함이 왔던 그 길을 반대 방향으로 걸어갔다.
바울 사도는 복음을 가지고 동쪽으로 가려다가 성령의 제지를 받고 서쪽으로 향했다.
가인은 하나님 앞을 떠나 세상(동쪽)으로 갔다.
에서 = 야곱의 장자였으나, 이스라엘 백성 중에 들지 못하고 동쪽으로 가서 에돔 족속을 이루다.
이스마엘 = 아브라함의 장자였으나 하나님의 구원 밖으로 나가다.
가인 = 아담의 장자였으나 하나님의 구원 밖으로 나가다.
우리들 = 하나님의 구원 밖에 있는 이방이었으나, 믿음으로 하나님의 구원 안으로 들어왔다.
17절
“아내와 동침하니 그가 잉태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가인이 성을 쌓고 그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였더라”
가인이 아들 에녹을 낳다.
가인은 하나님 앞을 떠나 (1장에서 창조된) 사람들이 사는 세상으로 나간다. 그리고 그 곳 여자를 아내로 얻는다.
“가인이 성을 쌓고 그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였더라”
아들의 이름 = 에녹
에녹 = 시작한
가인은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이 안 계시는 삶을 시작.
가인이 하나님 앞을 떠나 제일 먼저 한 일이 고을을 세우고 성을 쌓는 것이었다.
성(고을)의 이름 = 에녹
에녹 성 =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문명의 시작.
에녹 성은 바벨탑, 바벨론, 큰 성 바벨론으로 발전한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들 = 하나님의 보호를 상실한 인간들.
이들이 제일 먼저 한 일은 자기들을 지키기 위해 성을 쌓는 일.
“여호와는 나의 산성이시요”(시 18:2)
이 산성을 상실한 인간들은 불안해서 성을 쌓는다.
인류의 문명 = 하나님을 버리고 그 대신 얻은 것.
그래서 인류의 문명은 하나님을 부정하고, 자신들을 하나님 자리에 올려놓는다. 그러나 그들은 늘 불안하다.
18-22절
“에녹이 이랏을 낳았고 이랏은 므후야엘을 낳았고 므후야엘은 므드사엘을 낳았고 므드사엘은 라멕을 낳았더라 라멕이 두 아내를 취하였으니 하나의 이름은 아다요 하나의 이름은 씰라며 아다는 야발을 낳았으니 그는 장막에 거하여 육축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 그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으니 그는 동철로 각양 날카로운 기계를 만드는 자요 두발가인의 누이는 나아마이었더라”
가인의 가계
가인...에녹...이랏...므후야엘...므두사엘...라멕
라멕 = 두 아내 = 아다. 씰라
1) 아다. 아들 야발 = 양을 치는 목자의 조상.
유발 = 거문고와 퉁소 부는 모든 자의 조상.
2) 씰라. 아들 두발가인 = 동철로 각양 날카로운 기계를 만드는 자.
딸 나아마.
가인이 하나님을 떠나서 한 일
1) 성을 쌓았다 = 자신을 지키기 위해 성을 건축함
인간의 울타리를 두르다. = 남을 인정하지 않는다.
담을 쌓다 = 인간 이외의 것은 다 배격하다.
2) 생계를 위한 유목을 하다.
유목자 = 방랑자
성을 쌓는다는 것은 울타리를 두르고 그 안에 들어가 있는 것.
유목은 땅을 찾아 넓은 곳으로 떠돌아다니는 것.
1) + 2) = 고립과 확장. 내 주장을 고집하고 그것을 남에게 강요하면서 넓은 세상을 향해 나의 세력을 확장해 나가는 것.
= 인간 문명의 특성이요, 인간 문명의 모순점.
3) 거문고와 퉁소 곧 오락을 위한 음악을 하는 자의 조상이 되다.
양은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 키우는 것. 그런데, 이들은 생계를 위해 목축을 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
음악은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한 것. 그런데, 이들은 인간의 오락을 위해 음악을 창안했다.
하나님에게 드려야 할 것을 가지고 자기들이 이용한다.
먹을 것을 얻기 위해 목축을 하다.
또 즐거움이나 위로를 받을 대상인 하나님을 상실하고 그것들을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을 해야 하기 때문.
왜, 우리는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가? 공허하기 때문.
왜 공허한가? 내 안에 계실 하나님을 상실했기 때문.
4) 날카로운 기계(각양 날카로운 무기)를 만드는 대장장이가 되다.
무기 = 다른 사람을 죽이기 위한 것. 나를 지키기 위한 것.
내가 살기 위해 남을 죽이는 것은 정당한 행위라고 생각한다.
5) 씰라가 낳은 딸 나아마.
나아마 = 자신을 사랑스럽고 즐거운 존재로 만들다, 라는 뜻.
여자의 화장. 패션. 여자의 성의 상품화의 시작.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 마음속에 이런 것들이 싹텄다는 뜻)
인간의 문명 = 도시의 형성. 생계를 위한 각종 수단.
각종 오락. 전쟁과 무기. 성의 상품화.
도시, 생산, 오락, 전쟁, sex. = 인류의 문명
가인은 하나님을 떠나서 산 자들의 조상이요, 그 시작이다.
하나님을 떠나다 = 하나님의 나라와 은혜와 기쁨과 보호와 사랑에서 떠나다.
하나님의 나라 대신 성을 쌓다 = 하나님의 나라를 상실하고 사람의 나라를 세우다.
하나님의 공급이 없기 때문에 목축을 하다 = 먹을 것을 스스로 해결
기쁨이 없기 때문에 음악을 하다 = 음악은 원래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한 것. 그러니 하나님을 떠난 인간들은 그 음악을 통해 위로를 받으려고 한다.
하나님의 보호가 없기 때문에 무기를 만들다 = 하나님의 보호를 떠났기 때문에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 그래서 무기를 만든다.
사랑이 없기 때문에 (신랑이 없기 때문에) 성적으로 타락하고 성(性)을 사고판다.
23-24절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창상을 인하여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을 인하여 소년을 죽였도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 칠배이리로다 하였더라”
라멕 = 난폭한 자라는 뜻. 가인의 6 대 손.
가인은 최초의 살인자.
그의 6 대 손인 라멕도 사람을 죽인 살인자.
“나의 창상을 인하여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을 인하여 소년을 죽였도다”
두 삭람을 죽였다는 뜻이 아니라 같은 사건의 중복적 표현.
한 사람이 나에게 상처를 입혀서 나는 그 젊은이를 죽이고 말았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 칠배이리로다 하였더라”
자신은 사람을 죽이고서도 누가 자기를 죽일까 두려워한다. 그리고 자기를 죽이는 자는 77 배의 보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죄로 인해 영적으로는 멸망을 받은 자들이다. 그러나 이들의 공통점은 영의 죽음은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육의 죽음만을 두려워한다.
하나님을 떠난 자들은 늘 죽음을 두려워하고 있다.
인간들의 불안.
하나님이 안 계시기 때문. 그들에게는 영의 생명이 없기 때문.
자기가 받은 상처나 손해 때문에 남을 죽인다.
그러면서도, 또 하나님을 믿지도 않으면서도, 자기를 죽이는 자는 하나님이 보복해 주실 것을 바라고 있다.
침략 전쟁에 나가는 영국군 장군이 하나님의 가호를 비는 장면이 생각난다.
인간의 첫 번째 타락 = 에덴에서의 불순종
두 번째 타락 = 가인이 아벨을 죽이고(최초의 살인) 하나님을 떠난 삶을 살며,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문명을 세운 것.
25-26절
“아담이 다시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의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셋도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셋 = 보상
죽은 아벨 대신 셋을 주시다.
아벨 = 허무
셋의 아들 에노스
에노스 = 부서지기 쉬운. 죽어야 할.
인생이란 허무하고, 부서지기 쉬운 것, 죽기 쉬운 존재.
인생의 허무함과 연약함을 알고....
가인의 후손은 성을 쌓고, 무기를 만들고, 목축을 하고, 노래를 불러 그것을 잊고자 했다.셋의 아들 에노스는 어떻게 했는가?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인생의 허무함과 덧없음을 알고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
두 종류의 사람들.
자신을 의지하는 자와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
아담(사람)
가인(얻다) = 죄를 짓고 세상으로 나가고,
아벨(허무) = 죽고
셋(보상) 에노스(깨어지기 쉬운, 죽어야 할)
사람은 허무하고, 부서지기 쉽고 죽기 쉬운 존재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면 하나님께서 보상해 주신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부르짖을 수밖에 없다.
에노스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예배했다.
여호와 = 인간을 구원하시려고 인간에게 오시는 하나님. 인간의 구원과 관련된 하나님.
우리가 부르는 대상은 이런 여호와 하나님.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에노스가 처음으로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면서 예배를 드렸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다 =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종교의 시작.
가인과 그의 후손들은 자신들을 위해 성을 쌓고, 도구를 만들고, 음악을 즐기고, 목축을 하고 하는 동안,
창세기 4 장
4장 1-2절
“아담이 그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잉태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이었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이었더라”
3장 15절의 말씀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라”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죽게 안 하신다는 것을 뜻한다. 그들이 죽는다면 어떻게 그들의 후손이 태어날 수 있는가?
하나님 앞에 죽을죄를 짓고 죽을 줄로만 알았던 아담은 하나님의 이 말씀을 듣고 그만 기뻐서 이렇게 말했다.
3장 20절의 “아담이 그 아내를 하와라 이름하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미가 됨이라”
하와 = 하와의 어원은 <하야>로 ‘사는 것, 존재하는 것’이란 뜻으로 하와는 모든 산 자의 어미가 되다, 라는 뜻이다.
“아담이 그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아담과 하와의 결합.
남녀의 결합 = 하나님과 교회의 결합.
아들 가인을 낳다 = 예수님과 교회가 하나가 되어 아들(성도)을 낳다.
가인 = 얻었다, 라는 뜻. 아들을 얻었다. 여자가 후손을 얻었다.
하와는 죄를 지었기 때문에 아담과 동침을 하고 아들을 낳았다.
= 죄인인 사람들은 예수님과 하나가 되어야 생명을 낳는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후에 아들을 낳는다. 왜 범죄한 후에 아들을 낳는가?
그 후손에서 메시아가 오시고 그들이 구원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이렇게 외쳤다.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할 메시아를 보내 주시는 구나!
가인과 아벨 두 아들을 낳다.
하나는 뱀의 씨. 다른 하나는 여자의 씨(여자의 후손)
성경은(인류의 역사는) 뱀의 씨와 여자의 씨(여자의 후손)의 싸움의 역사.
뱀의 씨 = 사단의 영을 받은 자, 사단의 유혹을 받은 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
여자의 씨 = 성령을 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된 자.
“아벨은 양 치는 자이었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이었더라”
가인 = 농사하는 자 = 땅을 섬기다.
= 나의 양식을 위해 땅을 섬기다 = 뱀의 줄기가 되다.
아벨 = 양을 치는 목자.
양 = 당시에는 사람이 양 고기를 먹지 않았다. 또 양 젖도 먹지 않았다
사람이 짐승의 고기나 젖을 먹기 시작한 것은 홍수 이후.
아벨은 자신을 육을 위한 양식을 위해 일하지 않았다.
양 = 죽어서 사람의 몸을 가리는 가죽을 남기는 짐승.
양 = 장차 임하실 예수의 모습.
양을 치다 = 어린양 예수님이 오실 길을 예비하다.
3-5절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가인 = 얻었다, 라는 뜻
아벨 = 공허
왜, 하나님은 아벨의 제물은 열납하시고 가인과 그 드린 제물을 열납하시지 않은 것일까?
히브리서 11장 4절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
히브리서 9장 22절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아벨이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렸다. 그 더 나은 제사가 무엇이냐?
어린양을 잡아 피 제사를 드렸다는 것이다.
피로써 거의 모든 것이 깨끗해지고, 피 흘림으로 죄는 용서 받는다.
이것이 율법이요, 하나님의 법이다.
그런데, 아벨은 이런 사실을 믿음으로 알았다. 그래서 그는 가인보다 나은 제물을 하나님께 바쳤다.
아벨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알았고, 또 그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믿음으로 하나님께 드렸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와 그의 제물을 열납하셨다.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분별하고 기뻐하시는 것을 드려야 한다.
아벨이 태어났을 때, 아담과 하와는 양 가죽옷을 입고 있었다. 그는 그 가죽옷에 대해 부모에게 물었을 것이고, 부모는 하나님께서 그 옷을 지어 주셨다는 사실을 이야기 해 주었을 것이다.
이것을 통해 아벨은 하나님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아벨은 늘 하나님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하나님에 대해 늘 알고자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우리도 늘 하나님에게 관심을 두고 있어야 하며, 하나님에 대해 알고자 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알 수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에게 늘 관심을 가지며, 하나님에 대해 알고자 하는 그 자체를 하나님은 또한 기뻐하신다.
아벨이 드린 제물 = 첫 새끼와 그 기름
첫 새끼 = 양의 첫 배의 수컷 새끼 기름 = 양 내장에 낀 기름
1) 피 = 생명 피로 죄를 씻다.
2) 기름 기름은 하나님의 것.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것.
구약에서 제사를 드릴 때, 짐승을 잡아 그 피는 단 아래 땅에 쏟고 그 기름은 불에 태워 하나님께 드린다.
피 =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 땅에 쏟다 = 사단에게 주다.
기름 = 우리가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것. 우리의 힘과 노력.
우리 몸속에 있는 지방질을 다 태워서 곧 체내에서 연소시켜 그 노력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 이것만이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이 태워지는 기름만이 참으로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것.
물질은 드려도 다시 사람에게로 내려온다.
아벨은 믿음으로 기름을 하나님께 드렸다.
예수님의 피 = 우리 대신 사단에게 주고 우리를 찾아오시다.
우리는 나의 기름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다.
가인은 땅에서 난 곡식을 하나님께 드렸다.
곡식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이 아니다.
곡식을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서는 고운 가루로 만들든가 아니면 곱게 빻아 기름을 발라 불에 구워야 한다.
고운 가루 = 나를 가루로 만들다. 가루로 만들어 기름(성령)을 발라 불(환난)에 구운 떡을 하나님께 드리다.
그냥 곡식은 하나님이 받으시지 않는다.
또 곡식을 빻아 만든 가루나 가루로 만든 떡도 단지 화목 제물로 드릴 수 있을 뿐이다.
또, 그 드린 소제(곡식 예물)는 다시 사람들이 나누어 먹는다.
오직 기름만이 불에 태워 온전히 하나님께 올라간다.
가인은 이런 하나님의 뜻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땅에서 난 곡식을 하나님께 드렸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의 제물을 반기시지 않았다.
내 마음대로 드리면 많은 물질을 드려도 하나님은 그것을 기뻐하시지 않으신다.
당시에는 양은 사람이 먹는 식물이 아니다. 양은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기 위해서 키운다.
예수님 = 양을 먹이시는 목자. 아버지를 위해 양을 먹인다.
“내 양을 먹이라”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
베드로는 예수님을 위해 예수님의 양을 먹인다.
양을 먹이는 것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주를 위해서 이다.
양을 키워서 제단에 드리고 사람이 얻는 것은 그 가죽 뿐.
양 가죽 = 몸을 가리는 옷. 곧 죄를 가리는 옷. 예수님.
양을 치는 목자 = 나를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주를 위해 일하며, 그 얻은 것은 다 하나님께 드리고 다만 옷(구원의 옷) 만을 얻는다.
우리는 하나님만을 위해 일하고, 그래서 얻은 것은 오직 내 죄를 가릴 옷(예수님) 뿐이다.
가인은 밭을 가는 농부
밭 = 땅
곡식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이 아니라, 사람이 먹는 것.
가인은 땅(세상)에서 자기 자신을 위해 일 하는 자.
그는 농사를 짓기 위해 땅을 의지한다 = 그는 세상 것을 얻기 위해 세상을 의지한다.
우리는 하늘의 것을 얻기 위해 하나님을 의지한다 = 하나님 믿는 것.
땅에서 난 곡식 = 세상을 의지하고 세상에서 얻은 세상적인 물질.
가인은 하나님의 뜻은 생각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제물을 선택하고 그 것을 하나님께 드렸다. 그리고 자기는 하나님을 잘 섬겼다고 생각했다.
가인 같은 신자 = 땅에 속한 것을 탐내며, 자신의 육신만을 위해 일하며, 하나님의 뜻을 모르며, 자기 마음대로, 자기 방식대로 하나님을 섬기며, 그러면서도 자기는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다고 생각하는 자.
아벨 같은 성도 = 오직 하나님께 드릴 것을 얻기 위해 일하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분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며 자신은 오직 가죽옷만을 얻고자 하는 사람.
5-8절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가인이 그 아우 아벨에게 고하니라 그 후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 아우 아벨을 쳐 죽이니라”
가인은 왜 분해했나?
자기 제물을 하나님이 받지 않으셨기 때문.
가인의 억지 = 인간의 억지 =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며, 하나님은 드린 것을 받으시고도 소원을 이루어 주시지 않는다고 화를 낸다.
새벽 기도를 계속했는데도 왜 내 소원을 안 들어 주냐고 불평을 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믿는 사람들이 너무나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을 믿으려고 한다.
가인은 자기가 드린 제물을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자 화를 냈다.
하나님께서 왜 그것을 기뻐하시지 않는지 생각하지 않았다. 하나님에 대해 내 마음대로 생각하고, 내 뜻대로 행하고, 거기에 하나님이 응하시지 않는다고 화를 낸다.
“어찌 낮을 들지 못하겠느냐”
네가 한 일이 옳은 일이라면 왜 고개를 숙이고 있느냐?
고개를 숙이고 있다는 것은 네 스스로 잘못을 알고 있는 것이 아니냐?
고개를 떨어뜨리다 = 아래를 보다 = 땅을 보다.
땅에 대해서만 관심을 두다. 내 육신만을 생각하다.
가인은 땅만 보고 있다.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땅만 볼 때(우리가 세상 것에만 관심을 쏟을 때), 우리는 하나님을 볼 수가 없다.
죄인은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한다. 가인이 얼굴을 쳐들지 못하고 있는 것은 그의 죄(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그래서 잘 못 드리고, 그러면서도 화를 낸 죄) 때문이다.
그렇다면 빨리 깨닫고 회개해야 한다. 지금 하나님은 그에게 그의 죄과를 생각나게 하고 계시다.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우리의 죄 때문이다.
우리 죄 때문에 하나님을 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그래서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하고, 그래서 하나님을 잘 못 알고, 잘 못 믿고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하나님이 우리 뜻대로 안 해 주신다고 하나님을 원망한다.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를 깨달아 회개하지 않고 계속 화를 내고 있으면 죄가 네 바로 앞에서 너로 범죄하도록 너를 노릴 것이다.
어떤 범죄를 하도록 그를 노리는가? 아벨을 죽이도록.
죄가 문 앞에서 = 사단이 문 앞에서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찌니라”
네 속에 범죄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구나. 너는 그 마음을 억누르라.
“가인이 그 아우 아벨에게 고하니라 그 후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 아우 아벨을 쳐 죽이니라”
가인은 결국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듣지 않고 아우를 죽이는 죄를 짓고 만다.
들에 있을 때에,
들과 성(城)
성은 하나님의 영역을 뜻함.
들은 성 밖. 곧 하나님의 보호 영역 밖을 뜻한다.
성 안에서는 죽임을 당하지 않는다. 예수님도 성 밖에서 십자가에 달리시다.
우리도 성 밖에 나가면 사단의 해를 받는다.
가인은 아벨을 들로 데라고 나가 쳐 죽였다.
들로 나가자는 꾐에 넘어가지 말라.
내 영이 맞아 죽는다.
아벨 = 공허
아벨은 오직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 양을 쳤고, 그것을 하나님께 드려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렸다. 그런데, 그가 얻은 것은 형에게 맞아 죽는 것이었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아벨의 생애는 참으로 공허한 것이었다.
아벨 = 최초의 의인 아벨의 죽음 = 의인의 죽음
장차 있을 예수님의 죽음의 예표
성경 = 인간의 눈에는 크나큰 모순. 그러나 참 진리.
의인 = 하나님만을 위해 일하고,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 나의 것을 다 드리고, 그리고 악인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
= 예수님의 생애.
가인,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사단의 본성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사단의 본성을 아울러 가지고 나온다.
사단의 유혹에 져서 죄를 범한 아담의 자손이기 때문.
동시에 아담은 하나님이 입김을 불어넣어 창조하신 하나님의 피조물이기 때문에 그에게서는 아벨 같은 의인도 태어난다.
우리 안에는 가인과 아벨이 공존하고 있다.
아담이 가인과 아벨을 낳은 것처럼, 우리도 우리 안에서 가인과 아벨을 낳고 있다.
내 안에 있는 가인을 죽이고, 아벨을 살려라.
가인 = 예수를 십자가에 달아 죽이는 구약 이스라엘의 대제사장, 바리새인, 서기관들. 그리고 가룟 유다의 예표.
남을 죽이는 것 보다 내가 죽는 것이 낫다.
남을 때리기 보다는 내가 맞는 것이 좋다.
남의 것을 빼앗기 보다는 내 것을 빼앗기는 것이 낫다.
마태복음 5장 40절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때리는 자 = 가인의 줄기
왼뺨도 돌려대는 자 = 아벨의 줄기
악인인 가인이 의인인 아벨을 죽인다. 이것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 이것이 세상이다.
그러나 이제 가인이 죽고, 아벨이 산다. = 심판과 구원.
이것을 믿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9-11절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가로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가라사대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범할 때, 그 죄에 대해 물으신다.
죄를 생각나게 하고 회개할 기회를 주시기 위해.
“그가 가로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가인은 딱 잡아뗀다. 사단의 씨. 죄에 대한 가책이 없다.
아담과 하와 = 죄를 가리려고 했다.
가인 = 죄를 모른다고 잡아뗀다.
아담과 하와 = 선악과 차원
가인 = 짐승 차원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형은 마땅히 아우를 지켜야 한다.
그런데, 가인은 아우를 지키기는커녕 죽였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잡아뗀다.
“가라사대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가 어찌 그런 일을 저질렀느냐.
하나님은 우리가 저지른 죄에 대해 다 알고 계시다. 우리가 죄를 부정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너무나 간단한 이치지만, 이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그러나 우리의 대부분은 내 죄를 하나님 앞에서도 숨기려고 한다.
하나님 앞에서도 나는 죄인이 아닌 것 같은 모습을 하려고 하고 있다.
하나님은 가인에게 벌을 주신다.
그 벌을 주시는 이유를 가인에게 설명하신다.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무죄한 피는 땅에서 원수를 갚아 달라고 하나님께 호소한다.
계시록 6장 9-10절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 있어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제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
신명기 19장 10절
“무죄한 피를 흘림이 없게 하라 이같이 하면 그 피가 네게로 돌아가지 아니하리라”
무죄한 피를 흘리는 자는 반드시 그 죄 값을 받게 된다.
무죄한 피를 흘리게 하지 말라 = 예수님의 피를 흘리게 할 것에 대한 예언의 말씀.
가룟 유다 = 예수께서 정죄 되는 것을 보고 그는 무죄한 예수님의 피를 흘리게 한 것을 깨닫고 후회하며 스스로 목을 매어 죽는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의 무죄한 피를 흘리게 하고 멸망당한다.
사단은 무죄한 많은 성도들의 피를 흘린 죄 값을 받아 영원한 유황 불못에 들어간다.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땅이 피를 받다 = 땅이 , 곧 음부가 죽은 자의 생명을 받다.
네 손에서 받다 = 가인이 아벨의 생명을 땅(음부)에게 내주었다.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하나님이 창조하신 땅은 모든 생물들이 살기 좋은 축복 받은 곳이었다. 그러나 사람의 범죄로 저주 받은 땅이 된다.
아벨과 가인의 비교
아벨
1) 양치는 자. 목자. 하나님을 아는 자
예수님도 우리들 양을 먹이시는 목자시다.
2) 하나님의 계시를 따라 하나님을 섬기다.
첫배의 기름을 드리다.
양은 죽어 그 피는 땅에 쏟아졌고, 그 내장의 기름은 불태워져 하나님께 바쳐졌다. 하나님의 방식대로 하나님을 섬겼다.
3) 그는 하나님을 바른 방식으로 섬긴 최초의 제사장이었다.
4) 그는 가인의 핍박을 받아 죽임을 당했다.
5) 그는 예수님의 예표이다.
가인
1) 자신을 위해 일 했다. (그는 땅을 섬겼다 = 자신의 육신을 섬겼다)
2) 사람의 생각에 따라 자기 방식대로 하나님을 섬겼다.
3) 그는 회개하지 않았고, 하나님을 떠나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자기 방식대로 살았다.
4) 그는 의로운 자를 핍박했다.
5) 그는 하나님을 떠나 세상을 위해 살다가 멸망당하는 자의 예표이다.
12-14절
“네가 밭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가인이 여호와께 고하되 내 죄벌이 너무 중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 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이겠나이다”
무죄한 피를 흘린 자가 받는 형벌
1) 아무리 애를 써도 땅이 소출을 내지 않는다.
영적으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영적 소득을 얻지 못한다. 영이 구원 받지 못한다.
2) 세상을 떠돌아다닌다.
세상 = 광야 길 = 광야 길을 가는 것은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들어가기 위해서다. 그러나 가인은 광야 길을 떠돌아다닐 뿐,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는 못한다.
세상을 떠돌아다니다 = 목적 없이 방황하다.
출애굽 시,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불평을 하여 광야 길을 떠돌아 다녔을 뿐,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다.
세상을 떠돌아다니다 = 의지할 하나님 없이 세상을 방황하다. 하나님 없이 사는 인생은 목적 없이 방황하는 삶.
애쓰고 땀 흘리고 고생하여도 아무 것도 얻지 못하고 죽어 흙으로 돌아가고 마는 삶.
“내 죄벌이 너무 중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자기가 저지른 죄의 무게는 생각하지 않고, 받을 죄의 무게만을 생각하고 있다.
즉시 죽어야 하는데, 하나님께서 그 자비로 살게 해 주시는 것을 행각하지 않고 있다.
우리는 다 죽어야 하는 죄인. 그러나 하나님의 자비로 이렇게 살아 있다. 이것만도 감사한 일인데 늘 하나님에 대해 불만이 많고 요구 사항이 너무 많다.
“무릇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이겠나이다”
남을 죽인 자는 자기도 남에게 죽임을 당할까 늘 불안해한다.
가인으로 해서 살인이 인류에게 들어왔고, 이로부터 사람들은 사람을 죽이게 되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서로 경계하고, 성을 쌓고, 무기를 만들고, 나라들은 군비를 확장하고, 내가 죽지 않기 위해 남을 죽인다.
가인 같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죄한 예수님의 피를 흘리게 하고,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주신 땅을 떠나 전 세계로 떠돌아다니는 신세가 되었다.
그리고 세계 도처에서 그들을 만나는 사람마다 그들을 죽이려고 했고, 또 죽였다.
아벨을 죽인 가인 = 예수님을 죽인 이스라엘 백성
15-16절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않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만나는 누구에게든지 죽임을 면케 하시니라 가인이 여호와의 앞을 떠나 나가 에덴 동편 놋 땅에 거하였더니”
“가인에게 표를 주사”
표를 찍어 주시다 = 이 표는 무엇을 뜻하는가?
그는 비록 하나님께 범죄하고 하나님 앞을 떠나지만, 그러나, 그래도 하나님의 입김을 받아 창조된 아담의 아들이다.
하나님은 가인을 다른 인간들과 구별하신다.
이스라엘 민족은 비록 하나님을 거역하고 결국은 예수를 못 박아 죽이고 하나님 앞을 떠났고, 그로 인해 많은 고난을 당했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지켜 주신다.
“가인을 죽이는 자”
이스라엘이 예수를 죽인 후 로마에 의해 나라가 망했고, 이들은 하나님의 선민의 자격을 상실, 하나님을 모르는 다른 사람들(이방인들) 안에 들어가 그들처럼 살게 되었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가인을 죽이는 자 = 예수를 죽이고 사방으로 흩어진 이스라엘 백성을 죽이는 자들.
또 하나님께 불순종한 이스라엘을 괴롭힌 역사상 나라들. 애굽, 앗수르, 바벨론, 메대파사, 로마, 히틀러 등.
하나님은 이들에게 그 죄를 물어 칠 배로 벌을 주시고 다 멸망 받게 하셨다.
“가인이 여호와의 앞을 떠나”
가인은 하나님 앞을 떠나다. 그는 세상에 나가 하나님 없는 삶을 산다.
세상 = 하나님이 안 계시는 세상.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사는 곳 = 죄악 세상
“에덴 동편 놋 땅에 거하였더니”
놋은 “유리하다” 라는 뜻.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면 유리하는 자가 된다.
에덴 동쪽 = 하나님의 역사는 동쪽에서 서쪽을 향해 이동한다.
동쪽을 향하다 = 하나님과 반대 방향을 향해 가다.
가인은 동쪽으로 옮겨 갔다. 하나님의 역사하시는 방향과 반대되는 쪽으로 옮겨 갔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을 따라 동쪽에서 서쪽으로 옮겨 갔다.
롯은 그 반대 방향인 동쪽으로 이동하여 소돔까지 이른다. (창 13:10-11)
하나님의 역사하시는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가면 죄악 세상에 이른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바벨론 포로로 잡혀 갈 때에, 그들은 아브라함이 왔던 그 길을 반대 방향으로 걸어갔다.
바울 사도는 복음을 가지고 동쪽으로 가려다가 성령의 제지를 받고 서쪽으로 향했다.
가인은 하나님 앞을 떠나 세상(동쪽)으로 갔다.
에서 = 야곱의 장자였으나, 이스라엘 백성 중에 들지 못하고 동쪽으로 가서 에돔 족속을 이루다.
이스마엘 = 아브라함의 장자였으나 하나님의 구원 밖으로 나가다.
가인 = 아담의 장자였으나 하나님의 구원 밖으로 나가다.
우리들 = 하나님의 구원 밖에 있는 이방이었으나, 믿음으로 하나님의 구원 안으로 들어왔다.
17절
“아내와 동침하니 그가 잉태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가인이 성을 쌓고 그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였더라”
가인이 아들 에녹을 낳다.
가인은 하나님 앞을 떠나 (1장에서 창조된) 사람들이 사는 세상으로 나간다. 그리고 그 곳 여자를 아내로 얻는다.
“가인이 성을 쌓고 그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였더라”
아들의 이름 = 에녹
에녹 = 시작한
가인은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이 안 계시는 삶을 시작.
가인이 하나님 앞을 떠나 제일 먼저 한 일이 고을을 세우고 성을 쌓는 것이었다.
성(고을)의 이름 = 에녹
에녹 성 =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문명의 시작.
에녹 성은 바벨탑, 바벨론, 큰 성 바벨론으로 발전한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들 = 하나님의 보호를 상실한 인간들.
이들이 제일 먼저 한 일은 자기들을 지키기 위해 성을 쌓는 일.
“여호와는 나의 산성이시요”(시 18:2)
이 산성을 상실한 인간들은 불안해서 성을 쌓는다.
인류의 문명 = 하나님을 버리고 그 대신 얻은 것.
그래서 인류의 문명은 하나님을 부정하고, 자신들을 하나님 자리에 올려놓는다. 그러나 그들은 늘 불안하다.
18-22절
“에녹이 이랏을 낳았고 이랏은 므후야엘을 낳았고 므후야엘은 므드사엘을 낳았고 므드사엘은 라멕을 낳았더라 라멕이 두 아내를 취하였으니 하나의 이름은 아다요 하나의 이름은 씰라며 아다는 야발을 낳았으니 그는 장막에 거하여 육축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 그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으니 그는 동철로 각양 날카로운 기계를 만드는 자요 두발가인의 누이는 나아마이었더라”
가인의 가계
가인...에녹...이랏...므후야엘...므두사엘...라멕
라멕 = 두 아내 = 아다. 씰라
1) 아다. 아들 야발 = 양을 치는 목자의 조상.
유발 = 거문고와 퉁소 부는 모든 자의 조상.
2) 씰라. 아들 두발가인 = 동철로 각양 날카로운 기계를 만드는 자.
딸 나아마.
가인이 하나님을 떠나서 한 일
1) 성을 쌓았다 = 자신을 지키기 위해 성을 건축함
인간의 울타리를 두르다. = 남을 인정하지 않는다.
담을 쌓다 = 인간 이외의 것은 다 배격하다.
2) 생계를 위한 유목을 하다.
유목자 = 방랑자
성을 쌓는다는 것은 울타리를 두르고 그 안에 들어가 있는 것.
유목은 땅을 찾아 넓은 곳으로 떠돌아다니는 것.
1) + 2) = 고립과 확장. 내 주장을 고집하고 그것을 남에게 강요하면서 넓은 세상을 향해 나의 세력을 확장해 나가는 것.
= 인간 문명의 특성이요, 인간 문명의 모순점.
3) 거문고와 퉁소 곧 오락을 위한 음악을 하는 자의 조상이 되다.
양은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 키우는 것. 그런데, 이들은 생계를 위해 목축을 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
음악은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한 것. 그런데, 이들은 인간의 오락을 위해 음악을 창안했다.
하나님에게 드려야 할 것을 가지고 자기들이 이용한다.
먹을 것을 얻기 위해 목축을 하다.
또 즐거움이나 위로를 받을 대상인 하나님을 상실하고 그것들을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을 해야 하기 때문.
왜, 우리는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가? 공허하기 때문.
왜 공허한가? 내 안에 계실 하나님을 상실했기 때문.
4) 날카로운 기계(각양 날카로운 무기)를 만드는 대장장이가 되다.
무기 = 다른 사람을 죽이기 위한 것. 나를 지키기 위한 것.
내가 살기 위해 남을 죽이는 것은 정당한 행위라고 생각한다.
5) 씰라가 낳은 딸 나아마.
나아마 = 자신을 사랑스럽고 즐거운 존재로 만들다, 라는 뜻.
여자의 화장. 패션. 여자의 성의 상품화의 시작.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 마음속에 이런 것들이 싹텄다는 뜻)
인간의 문명 = 도시의 형성. 생계를 위한 각종 수단.
각종 오락. 전쟁과 무기. 성의 상품화.
도시, 생산, 오락, 전쟁, sex. = 인류의 문명
가인은 하나님을 떠나서 산 자들의 조상이요, 그 시작이다.
하나님을 떠나다 = 하나님의 나라와 은혜와 기쁨과 보호와 사랑에서 떠나다.
하나님의 나라 대신 성을 쌓다 = 하나님의 나라를 상실하고 사람의 나라를 세우다.
하나님의 공급이 없기 때문에 목축을 하다 = 먹을 것을 스스로 해결
기쁨이 없기 때문에 음악을 하다 = 음악은 원래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한 것. 그러니 하나님을 떠난 인간들은 그 음악을 통해 위로를 받으려고 한다.
하나님의 보호가 없기 때문에 무기를 만들다 = 하나님의 보호를 떠났기 때문에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 그래서 무기를 만든다.
사랑이 없기 때문에 (신랑이 없기 때문에) 성적으로 타락하고 성(性)을 사고판다.
23-24절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창상을 인하여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을 인하여 소년을 죽였도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 칠배이리로다 하였더라”
라멕 = 난폭한 자라는 뜻. 가인의 6 대 손.
가인은 최초의 살인자.
그의 6 대 손인 라멕도 사람을 죽인 살인자.
“나의 창상을 인하여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을 인하여 소년을 죽였도다”
두 삭람을 죽였다는 뜻이 아니라 같은 사건의 중복적 표현.
한 사람이 나에게 상처를 입혀서 나는 그 젊은이를 죽이고 말았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 칠배이리로다 하였더라”
자신은 사람을 죽이고서도 누가 자기를 죽일까 두려워한다. 그리고 자기를 죽이는 자는 77 배의 보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죄로 인해 영적으로는 멸망을 받은 자들이다. 그러나 이들의 공통점은 영의 죽음은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육의 죽음만을 두려워한다.
하나님을 떠난 자들은 늘 죽음을 두려워하고 있다.
인간들의 불안.
하나님이 안 계시기 때문. 그들에게는 영의 생명이 없기 때문.
자기가 받은 상처나 손해 때문에 남을 죽인다.
그러면서도, 또 하나님을 믿지도 않으면서도, 자기를 죽이는 자는 하나님이 보복해 주실 것을 바라고 있다.
침략 전쟁에 나가는 영국군 장군이 하나님의 가호를 비는 장면이 생각난다.
인간의 첫 번째 타락 = 에덴에서의 불순종
두 번째 타락 = 가인이 아벨을 죽이고(최초의 살인) 하나님을 떠난 삶을 살며,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문명을 세운 것.
25-26절
“아담이 다시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의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셋도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셋 = 보상
죽은 아벨 대신 셋을 주시다.
아벨 = 허무
셋의 아들 에노스
에노스 = 부서지기 쉬운. 죽어야 할.
인생이란 허무하고, 부서지기 쉬운 것, 죽기 쉬운 존재.
인생의 허무함과 연약함을 알고....
가인의 후손은 성을 쌓고, 무기를 만들고, 목축을 하고, 노래를 불러 그것을 잊고자 했다.셋의 아들 에노스는 어떻게 했는가?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인생의 허무함과 덧없음을 알고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
두 종류의 사람들.
자신을 의지하는 자와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
아담(사람)
가인(얻다) = 죄를 짓고 세상으로 나가고,
아벨(허무) = 죽고
셋(보상) 에노스(깨어지기 쉬운, 죽어야 할)
사람은 허무하고, 부서지기 쉽고 죽기 쉬운 존재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면 하나님께서 보상해 주신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부르짖을 수밖에 없다.
에노스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예배했다.
여호와 = 인간을 구원하시려고 인간에게 오시는 하나님. 인간의 구원과 관련된 하나님.
우리가 부르는 대상은 이런 여호와 하나님.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에노스가 처음으로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면서 예배를 드렸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다 =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종교의 시작.
가인과 그의 후손들은 자신들을 위해 성을 쌓고, 도구를 만들고, 음악을 즐기고, 목축을 하고 하는 동안,
셋의 자손인 에노스는 하나님을 경배하는 예배 양식을 고안하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다.
사람이 세상을 따르는 자와 하나님을 따르는 자로 갈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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