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 장

새로미2023.01.11
조회110
창세기 3장

                                                  

3장 1-3절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에덴에서의 타락

타락의 원인

사단(뱀)의 유혹 = 외적 원인

뱀 =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에덴에 살게 하신 들짐승 중 하나.

사단 = 유혹하는 자. 거짓말 하는 자.

간교하다 = 자신의 정체를 숨겨 사람을 속이다.

사단은 뱀 속으로 들어가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있었다.

예수님 = 사람의 육신 속에서 당신이 하나님이심을 숨기고 있었다.

소경  같은 하와는 뱀을 보고도 그 속에 숨어 있는 사단을 보지 못했다.

소경 같은 유대의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보고도 그 분 속에 있는 하나님을 보지 못했다.

영의 눈을 뜨고 보아야 한다.  보지 못하면 하와처럼, 구약 유대인들처럼 멸망한다.

하나님도 사단도 눈에 보이는 몸이 없다.

사람들 앞에 나타나기 위해서는 몸을 입어야 한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장에서 사람으로 옷을 입으셨다.

요한복음 1장 14절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그러나 사단은 이미 창세기 1장에서 뱀으로 옷을 입었다.

사단은 하나님이 하실 일을 미리 알고 언제나 한 발 앞서 비슷한 방법으로 악한 역사를 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사단에게 속는다. 분별력을 가져야 한다.


사단이 사람을 유혹하는 방법.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게 만든다.

그것이 잘 안 되면 하나님의 말씀을 믿게 하지만, 잘 못된 말씀을 주어 그잘 못된 말씀을 믿게 한다. 여기에 대부분의 믿는 자들이 넘어 간다.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2장 16-17절의 하나님의 말씀과, 3장 1절의 뱀의 말을 비교해 보자.

2:16-17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3: 1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하시더냐”

뱀은 여자에게 말을 걸어 여자와 대화를 유도한다.

그리고는 하나님의 말씀의 반대 되는 말을 하여 여자의 마음을 떠 본다.

사단의 앞잡이들은 하나님(성경) 말씀과 정반대의 말을 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혼란케 한다.

가령, 하나님의 말씀 =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시다.

세상 학문 = 사람은 원숭이가 진화되어 된 것이다 = 하나님의 말씀과 반대 되는 말은 사단의 말.

사람들은 이런 말을 듣고 성경 말씀을 의심한다.

성경 말씀과 반대되는 세상의 모든 말이나 학문이나 사상 = 뱀의 유혹


뱀의 이 말에 대해 여자는 뭐라고 대답했는가?

“동산 나무의 실과는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동산 중앙에 있는” “만지지도 말라”

나무의 위치와 만지지도 말라, 라는 말을 마음대로 추가했다.

“동산 중앙에” 선악과의 비중을 높인 것.  = 인간 중심 사상.

인간들은 하나님의 말씀보다도 자기들의 의견이나 사상을 더 높인다.

하나님의 뜻보다는 인간의 선과 악을 가치 기준으로 삼는다. 

성경 말씀을 인간의 지식이나 세상 지식으로 분별하려고 한다.

“만지지도 말라” 하나님의 금지 사항을 강조하다.

인간의 심보 = 금지 사항에 대한 호기심과 금지한 것에 대한 반감 = 죄를 잉태한다.

하나님 말씀에 대한 추가 = 성경 말씀에 대한 인간 지식의 추가. 성경 말씀에 대한 인본주의적 해석.  

성경 말씀에 인간의 의견을 추가하다.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그러나 2장 17절에서 하나님이 아담에게 하실 말씀은 이렇다. 

2장 17절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죽을까 하노라 = 형벌을 일부러 가볍게 말한다.

인간의 악한 속성.  

받을 복은 과장해서 말하고 받을 형벌은 일부러 가볍게 말한다.

믿기만 하면 이 세상에서는 복을 받아 잘 살고 죽어 천국 간다.  믿는 자들은 죄를 범해도 회개기도만 하면 다 용서받는다.

= 교회가 많은 신도들을 교회로 끌어들이기 위한 수법. 

= 타락한 증거.


하와는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들었는가?

듣지 못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그 명령을 내리신 때는 하와는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이다.

하와는 듣지도 못했으면서 뱀에게 마음대로 말한다.

하와가 하나님 말씀에 대해 멋대로 자기 의견을 추가하고, 반감과 금지에 대해 호기심을 보이자. 뱀은 옳다! 하고 본격적으로 하와를 유혹한다.

사단은 언제 우리를 유혹하는가?

1) 하나님 말씀에 인간적 지식을 추가할 때.

2) 하나님의 금지 사항에 대해 반감이나 호기심을 보일 때.

3) “설마 사랑의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겠어?” 하며 하나님의 형벌을 일부러 가볍게 생각할 때. 

 

4-5절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하나님 = 정녕 죽으리라.

하와 = 죽을까 하노라.

뱀 =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적당히 흐려버리고,

사단은 하나님의 말씀을 강하게 부정한다.

사단 = 하나님의 말씀과 반대 되는 말을 하는 자. 

하나님과 반대 되는 말 = 비 진리, 악한 말, 우리의 영을 죽이는 말.

이 세상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과 반대 되는 모든 학문, 사상은 다 비 진리이며, 악한 말이며, 우리의 생명(영)을 죽이는 악한 사상이다.

정녕 죽으리라 = 우리가 듣고 싶지 않은 말.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 중에서 사람에게 불리한 말씀은 다 그것을 적당히 흐려 버린다.

“정녕 죽으리라” - “죽을까 하노라”

그러나 뱀은 사람에게 더욱 유리하게 들리는 말을 한다.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나에게 합당치 아니하고”

이 말씀은 적당히 믿고 축복 받고 구원 받겠다는 사람들에게는 별로 달콤한 말씀이 아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이 말씀을 이렇게 수정한다.

“모든 고난은 이미 예수님이 다 받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더 이상 고난 받을 필요가 없다”

이 말을 듣고 고난 받기 싫어하는 사람들은 "참으로 은혜로운 말씀" 이라고 생각한다.

“예수 믿으면 축복 받아 잘 먹고 잘 살게 된다.”

그래서 이런 설교를 하는 교회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그러나 이런 소리는 뱀이 하는 소리.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뱀이 여자를 유혹한 가장 강한 무기 = 눈이 밝아져 하나님처럼 된다.

하나님처럼 되려는 것 = 가장 큰 죄악.

사단 = 하나님처럼 되려다가 하늘에서 쫓겨나 타락했다.

하나님처럼 되려는 마음 = 교만.

인간의 문명과 역사는 사람이 하나님처럼 되려고 한 역사.

중세에는 교회가 하나님처럼 되었고, 종교 개혁 후에는 사람이 하나님처럼 되었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이 말을 들은 여자는 눈을 들어 그 나무를 본다.

“너희 눈이 밝아”

분별력이 생겨서.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당시에 선악을 아는 자는 하나님과 사단뿐이었다.

따라서 하나님처럼 선악을 안다는 것은 인간으로써는 여간 부러운 것이 아닐 것이라고 하와는 생각했을 것이다.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하나님이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금하신 것은 너희들로 하나님처럼 되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은 나쁘시다. 하나님은 선악과를 먹으면 죽는다고 하셨지만 그것은 거짓말이고 먹어도 죽지 않는다. 그러니 한 번 따 먹어보렴. = 사단의 은근한 유혹. 


6절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자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는 그 나무를 본다.

뱀의 말을 듣고 보니 그 실과는 과연 먹음직하고 보암직도 하고 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 보였다.

“할만큼.....한지라” 

추측.  할 것 같았다.

같았다 = 그렇게 생각되었다 = 사람의 추측 내지는 착각.

뱀이 여자를 유혹한 세 가지 사람의 욕망

1) 먹고 싶은 욕망

2) 보고 싶은 욕망

3) 알고 싶은 욕망

먹고, 보고, 알고, 는 하나님이 정해 주신 범위 내에서 허락되는 것.

그 범위를 넘어서면, 시림은 죄를 짓게 된다.

육적으로, 

잘 못 먹으면 죽고, 잘 못 보면 실수하고, 잘 못 알면 실패한다.

영적으로,

말씀을 잘 못 먹다. 거짓 진리의 말씀을 먹고 멸망.

잘 못 보다. 곧 분별을 못하면 실수, 적그리스도를 그리스도로 본다. 거짓 종을 참 종으로 본다.

잘 못 알다.  말씀을, 진리를 잘 못 알면 지옥행.

하와는 뱀의 유혹을 받아 잘 못 보고, 잘못 알고, 잘 못 먹었다.

잘 못 보다 = 선악과를 보고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게 보았다.

참으로 먹음직하고 보아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것은 생명나무 열매이다.

잘 못 보았다. 선악과를 잘 못 보았다.

잘 못 알다 = 뱀의 말을 참말로 알았다.

잘 못 먹었다 = 생명나무를 먹지 않고 선악과를 먹었다.

하와는 왜 이런 실수를 했는가?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고 뱀의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눈이 밝아져”

사람은 하나님께 순종해서 성령을 받아 영의 눈이 밝아져야 하는데, 뱀의 말을 듣고 선악과를 먹었기 때문에 육의 눈이 밝아지고 영의 눈은 소경이 되어 육의 눈에 보이는 것만을 보게 되었다.

“선악을 알게 되어”

사람은 하나님을 알고 영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선악과를 먹었기 때문에 하늘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고 땅에서의 선과 악만을 알게 되었다.

어리석은 하와(사람) 눈에는 하나님을 떠난 선과 악이, 그토록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매력적으로 보였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인간의 선과 악, 인간의 정의, 인도주의, 민주주의 따위를 가장 가치 있는 것으로 숭상하고 있다.

예수님을 제외한 모든 인류 역사상의 성인군자들은 다 선악과를 먹은 자들이다. 아무리 위대한 사상이라 해도 그것은 다 인간의 선과 악에 대한 해석일 뿐이다.

하나님만이 오직 선이시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모든 선, 정의는 다 악이다.

왜?  그것들은 우리의 영혼을 구원할 수 없기 때문.

 

선악과를 먹기 전에는 세상에는 악아 없었다. 죄가 없었다.

세상에 선과 악이 있게 됨으로, 사람들은 선을 행하고 악을 피해야 할 의무가 생겼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율법을 주신다.

율법 =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를 알게 하는 법

율법에서의 선 = 선악과의 선

참 선 = 하나님

생명과 = 예수 = 생명 = 참 선

선악과 = 율법 = 땅의 선 = 인간의 선 = 멸망. 이것을 열심히 지켜도 결국은 멸망.

인간의 모든 사상, 지식, 학문, 정의, 등은 이 선악과를 기준으로 한 것.

인간은 이 선악과의 선을 기준으로 해서 하나님까지 판단한다.

율법은 선을 행하고 실천하는 것을 통해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을 배우고,  그것을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되고  예수를 영접할 준비를 하게 된다.


생명과 = 예수 = 영생

선악과 =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것은 선이고, 사단을 따르는 것이 악이라는 것을 알게 하는 것.

그러나 이런 선악이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에 의해 세상적인 선과 악을 분별하는 것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선악과 = 생명이 없다.


6절 후반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여자가 타락한 첫째 원인 = 뱀의 유혹

여자가 타락한 둘째 원인 = 여자가 주인이 되었기 때문.

아담은 가만히 있었고, 하와가 주역이 되어 뱀과 대화를 나누었다.

여자 = 하와 = 교회. 육신

아담 = 영 = 예수님

에덴에서 하와가 뱀에게 유혹을 받았을 때, 하와가 주인노릇을 했다.

하와가 뱀과 이야기를 했고, 남편 의견도 묻지 않았고, 혼자 결정을 했다.

하와는 남편에 등을 돌리고 뱀 쪽을 향하고 있었다.

뱀이 우리를 유혹할 때, 우리는 남편 예수님 등 뒤로 숨어야 한다.

사람이 사단 쪽을 향하고 있을 때,

예수님에게 등을 돌리고 있을 때,

교회가 예수님께 등을 돌리고 주인 노릇을 할 때, 사단의 유혹을 받으며, 그 유혹에 넘어간다.


에덴에서의 하와가 범죄한 원인

1) 사단의 유혹 = 외적 원인

2) 하와의 실패 = 내적 원인

하나님의 입김을 받고 명령을 받은 남편을 뒤에 두고 자기가 주인 노릇을 했기 때문.

교회의 실패 = 예수님 이름만 빌리고 교회가 주인이 된 교회.

큰 교회 = 실패한 교회. 교회가 주인이 되어 있다.

예수님이 참 주인인 교회는 그 규모가 그렇게 클 수 없다.

왜? 

참 믿는 자들만 모이기 때문.

계시록 <7 교회>에 주시는 말씀 중,

예수님의 칭찬만 있는 교회인 빌라델비아 교회는 아주 작은 교회.

칭찬은 없고 책망만 있는 교회, 라오디게아 교회는 매우 큰 교회 = 실패한 교회

큰 교회의 실패 요인

1) 외적 요인 = 세상적인 자랑

2) 내적 요인 = 예수님의 부재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남편 = 예수님.  그러나 동시에 우리의 영.

우리의 영은 우리의 육의 남편 곧 주인이다. 

아내인 육이 주인이 되면 우리는 멸망당한다.

하와 = 여자 = 육신

여자가 먹고 범죄.  = 육이 먹고 범죄.

죄는 여자가 범했다. 그러나 남편도 자동적으로 죄를 범하게 된다.

죄는 우리 육이 짓는다. 그러나 나의 육이 범죄 했을 때, 나의 영은 자동적으로 함께 범죄한 것이 된다.   

뱀은 하와를 유혹했다. 곧 사단은 우리의 육을 유혹한다.

하나님은 아담 곧 우리 영에게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명령했다.

하나님은 우리 영에게 명령을 하시고, 사단은 우리의 육을 유혹한다.

우리의 육신이 그 유혹에 져서 범죄하면, 하나님으로부터 벌을 받는 것은 나의 영이다.

교회의 머리는 예수님인 것처럼, 나의 주인은 나의 영이다.

영이 육을 누르고 내 주인 노릇을 해야 한다. 육이 나의 주인이 되면 사단의 유혹에 넘어 간다.

영이 나의 주인이 되고, 그 나의 영은 예수님의 종이 되어야 한다.

육은 예수님을 알지도 못하고 믿지도 못한다.

육의 유익을 위해서 예수를 믿는 사람은 예수를 믿는 사람이 아니다. 육을 위해서 믿는 사람은 그의 육이 그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7절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선악과를 먹고 선과 악을 구별하게 되었다.

그들을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그 결과 죄가 무엇인지 일게 되었다.

알몸 = 부끄러운 죄인의 모습.

죄를 아는 것도 하나님의 은총

죄를 알아야 회개할 수 있다.

불신자 =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모르는 자.

믿는 자들 중에도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자가 너무나 많다

사람이 범죄 했는데도 즉시 멸하시지 않고 눈을 밝게 해 주시고 죄를 알게 해 주시다.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다 = 하나님의 은총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사람은 죄를 지으면 그 죄를 가리려고 한다.

사람들은 자기들의 노력으로 죄를 가리려고 한다.

무화과나무 잎 = 곧 마르고 시든다.  잎으로는 알몸을 가리지 못한다.

무화과나무 잎 = 종교의식. 종교적 계율. 제사. 선행 등.

이런 것들로는 내 죄를 가릴 수 없다.

  

8절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의 낮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날이 서늘할 때에”

날이 서늘하다 = 날이 저물다.

날이 저물다 = 하루가 가다 = 날이 바뀌다.  한 시대가 가다. 

이들의 범죄로 인해 에덴의 시대는 가고 고난의 시대가 시작된다.

날이 서늘하다 = 기온이 낮아지다 = 이들은 벌거벗었다 = 고난의 시작.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범죄한 두 사람 앞에 하나님께서 오신다.

죄인은 하나님 앞에 설 수가 없다. 죄인이 하나님을 만나면 죽는다.

옷을 입어야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있다.

옷 입다 = 예수로 옷 입다.

“여호와 하나님의 낮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죄를 범하면 하나님이 두려워진다. 그래서 하나님에게서 멀리 떨어지려고 한다.

아담과 하와는 그래서 나무 사이에 숨었다.

     = 죄로 인해 하나님과 사람 사이가 벌어지게 되었다.

하나님 = 생명 

하나님과 멀어지다 = 생명과 멀어지다 = 멸망


9-10절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원래 사람은 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사이. 하나님께서 사람을 당신 모습대로 지으셨기 때문.

그러나 사람이 범죄하고 나서부터 사람에게 하나님은 가장 두려운 존재가 되었다.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벗은 몸 = 죄지은 몸.

이들은 선악과를 먹고 눈이 밝아져서 자기들이 벗은 것 곧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하나님이 두려워 숨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아담을 부르셨다.   죄인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목소리.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죄인인 우리를 부르고 계시다.

“네가 어디 있느냐”

네가 어디 있느냐? 

어디 = 장소 = 처소.  내가 있어야 할 자리.  내가 지켜야 할 직분. 

각자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가 있다. = 사명

범죄한 아담은 하나님의 눈을 피해 나무 사이에 숨었다 = 자기 자리를 떠났다.

루시퍼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기 자리(처소)를 떠나 하나님의 자리에 오르려고 하였다.  그 결과, 그는 천사라는 직분을 잃고 마귀가 되어 땅으로 쫓겼다.

처소를 떠나는 것 = 하나님을 떠나는 것 = 범죄.

생명이신 하나님을 떠나는 것 = 사망.

자기 처소를 떠나 마귀가 된 루시퍼는 이번에는 사람들을 유혹해서 사람으로 하여금 그 처소를 떠나게 만든다. 자기처럼 하나님을 떠나 멸망할 자들을 찾는다.

루시퍼는 그 처소를 떠났을 때, 마귀가 되었다.

나의 자리를 떠날 때, 나는(영적으로) 나 아닌 다른 존재로 변한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한, 나는 나의 처소를 지키는 것이다.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는 순간, 나는 처소를 떠나는 것이 된다.


루시퍼의 처소 =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영원히 찬양하는 것.

아담과 하와의 처소 = 에덴에 살며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실과만은 안 먹는 것.

처소를 떠난 루시퍼는 하늘 보좌 앞에서 땅으로 떨어졌다.

처소를 떠난 아담과 하와는 에덴을 잃고 세상으로 떨어졌다.

지금 믿는 우리들이 처소를 떠나면, 죄악 세상으로 떨어진다.   


10-13절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가라사대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고하였느냐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 아담이 가로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가로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9절에서 하나님은 아담을 부르신다.“네가 어디 있느냐”

아담의 대답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네가 어디 있느냐 = 네가 지금 있는 장소가 어디냐?

있는 장소 = 처소. 내가 있어야 할 자리.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죄를 범하다. 부끄러움과 두려움이 생기다  하나님 앞에 숨다.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고하였느냐”

아무도 일러준 사람은 없다. 선악과를 먹고 자신들이 벗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가 자신이 벗었다는 사실을 알았다는 것은 그가 선악과를 따 먹었다는 증거이다.

우리는 부끄러움을 안다.  우리가 선악과를 먹었다는 증거이다.

부끄러움조차 모르는 사람 = 선악과조차 먹지 못한 사람.

짐승은 선악과를 못 먹었다. 그들은 죄를 모른다. 또 죄가 없다.

하나님은 그래서 아담에게 이렇게 물었다.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실과를 먹었느냐”

문제는 여기에 대한 아담의 답변이다.

아담은 핑계를 댄다.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1) 여자가 먹으라고 주어서 그냥 먹었을 뿐, 나에게 별 책임이 없다.

2)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여자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도 책임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와에게 물으신다.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도 핑계를 댄다.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주장한다.

이들은 이렇게 핑계를 대지 말고 스스로의 잘못을 하나님 앞에 뉘우치고 회개를 했어야 했다고. 

그러나 이런 해석은 적절하지 않다.

이들은 변명을 했다.

아담은 여자에게, 여자는 뱀에게. 그러나 뱀은 핑계를 댈 대상이 없다.

뱀이 모든 죄의 원천이다.

뱀이 없었다면 하와도 아담도 범죄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담도 하와도 핑계를 댈 수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죄는 장차 용서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 죄의 전가.

뱀은 그 죄를 영원히 용서받을 수 없다. 그가 죄의 원천이기 때문.    

인간의 죄가 예수님에게 전가 된다.

죄가 예수님에게 전가됨으로 우리는 구원받을 수 있다.

 그러나 사단은 그 죄를 전가할 수가 없다. 그래서 영벌에 들어간다.


14-15절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을지니라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앞서,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이렇게 물으신다.

아담에게 “네가 어디 있느냐”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고하였느냐”

“그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

하와에게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그러나 뱀에게는 이런 질문은 하지 않으신다. 즉시 정죄하신다.

사람은 용서받지만, 뱀은 정죄를 당한다. 하나님의 뜻.

사람은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다시 돌아오기만 하면 모든 죄가 다 용서받는다. 사단은 죄의 원천이다. 사단은 회개할 수가 없다. 


뱀에 대한 하나님의 정죄

1) 배로 기어 다니다.  땅에서만 움직이도록 제한되다.

사단은 그 활동 범위가 땅으로 제한되다 = 사단에게는 땅을 지배할 권세를 주셨다.

2) 흙을 먹다 = 땅에 속한 것을 먹도록 제한되다.

흙은 사단의 음식이다. 우리의 육은 흙으로 만들어졌다.

사단은 우리의 육에만 역사할 수 있다. 우리가 땅에 속하고, 땅의 방법으로 산다면, 사단의 밥이 될 뿐이다. 

뱀은 땅 보다 위로는 오를 수 없고, 흙 외의 것을 먹을 수 없다.

우리의 영은 땅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단의 밥이 될 수 없다.

내가 육신만을 위해 살 때에는 사단의 밥이 되지만, 영을 위해 살 때, 결코 사단의 밥이 되지 않는다.  

사단은 땅에 있기 때문에, 우리가 하늘에 속한 자가 되면 사단을 쉽게 밟아 버릴 수 있다.

사단은 땅에 제한되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다. 하늘에 속한 자가 될 수 있다. 

= 사람에게만 주시는 축복.

사람은 비록 범죄 했지만, 하나님의 축복 아래에 있다.

아담은 범죄하고 하나님의 심판이 두려워 숨어서 하나님의 죽음의 선고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은 정죄하지 않으시고 뱀을 심판하신다.

“내가 너로 여자의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사람과 사단은 이때부터 원수가 된다. 그리고 양자의 싸움이 시작된다.

네 후손 = 용. 사단.

여자의 후손 = 예수님

신약 성경은 여자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와 뱀의 후손인 사단과의 싸움이다.

우리도 이 싸움에서 예수 편에 서서 승리하면 구원이요, 사단 편에 서거나, 사단에 지면 멸망이다.

믿음이란 예수를 힘입어 사단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다.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그 발꿈치를 상하게 하다 = 뱀의 후손인 사단이 여자의 후손인 예수를 십자가에 죽게 한다.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 재림 예수에 의해서 사단은 유황불 못에 던져진다.

여자의 후손 = 예수님. 예수님은 사단을 멸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다.

그런데, 그 예수님은 여자가 낳는다.(마리아는 동정의 몸으로 예수를 낳다)

하나님은 사단을 멸하러 땅에 오시는 예수를 낳게 하기 위해 사람을 창조하신다.

구약 성경 = 예수님을 낳게 하실 배(腹)를 택하시는 역사.

동정녀 마리아가 예수를 낳으심으로 구약의 역사는 끝난다.


16절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하와에게 주시는 벌

1) 고통을 받으며 자식을 낳는다.

2)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린다.

출산할 때, 사람만이 심한 산통을 당한다.

결혼을 하면 여자는 남자에게 순종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가지나 외형적인 뜻.

참 뜻.

1) 고통을 받으며 자식을 낳는다.

인간은 에덴에서 범죄했기 때문에 생명을 잃었다.

생명을 낳기 위해서는 많은 고통을 인내야 한다.

여자인 교회는 생명을 얻기 위해 많은 고통을 당해야 했다.

구약 교회의 고통 =  예수를 낳게 하기 위한 산통.

2) 교회, 성도는 그의 남편인 예수님을 사모하고, 예수님은 여자 곧 교회와 성도를 다스린다.

에덴에서 하와가 범죄한 것은 남편을 마음대로 주물렀기 때문.

여자(교회)는 고생해서 자손(예수)을 낳고, 그 자손(예수)은 여자(교회)의 남편이 되어 교회(성도)를 다스리신다.

이로써 인간은 죄를 벗고 구원 받는다.


17-19절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 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아담에게(남자에게) 주시는 벌

너는 아내의 말에 넘어가 = 영이 육의 꾐에 넘어가

땅이 저주를 받다 = 땅이 저주를 받아 풍족한 산물을 내지 않는다.

저주를 받기 전에는 사람은 아무 노동도 하지 않고 먹고 살 수가 있었다.

그러나 죄로 인해 땅이 저주를 받아 사람들은 그 땅에서 살기 위해 고생을 죽도록 해야 한다.

생명을 자라게 하는 땅이 저주를 받아 땅에 사는 인생들이 다 생명을 잃고 육의 생명을 유지하다가 멸망을 당하게 되었다.

가시덤불과 엉겅퀴 = 고생과 방해

들에서 나는 곡식을 먹어야 하는데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낸다 = 원하는 것은 나오지 낳고 버려야 할 것들, 우리를 괴롭게 하는 것들만 나온다.

생명은 나오지 않고, 우리의 영을 해칠 것들만 나온다.

인간의 문명(文明) = 작은 것을 얻으려고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들만 만들어 낸다.

공업의 발달 = 이것들이 가져다 준 것 = 약간의 풍족함과 편리함 뒤에 얼마나 많은 부조리가 있는가?

= 공해, 질병, 범죄, 이기주의, 빈부의 격차. 전쟁...등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 = 채소 = 육신을 위한 식물

땅이 저주를 받아 생명을 낳지 못하기 때문.

땅은 생명을 잉태하고 그 생명이 자라서(영의 생명) 천국으로 가기 위한 장소.

그러나 땅이 죄로 저주를 받아 그런 생명을 낳지 못하게 되었다.

흙에서 난 몸이니 = 사람은 흙으로 빚어졌다. 죽으면 육신은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

죄로 인하여 사람의 육신을 죽을 수밖에 없다.

아담이 생명과 나무 열매를 먹었다면 하늘나라로 갔을 텐데 죄 때문에 생명을 잃고 다시 원래의 모습인 흙으로 돌아 갈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마에 땀을 흘려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이마에 땀을 흘리고 애써야 먹고 사는데 그래 봤자 결국은 죽어 흙으로 돌아가고 만다.


20절

“아담이 그 아내를 하와라 이름하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미가 됨이러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하와 = 히브리어로 [생명]이란 뜻

인류의 어머니 = 여자. 이 여자의 배에서 인류가 태어난다.

아담 = 예수님의 모형. 그러나 첫 아담은 불완전한 아담. 시험에 져서 실패

둘째 아담 = 사단의 시험을 이기시는 예수님.

하와 = 동정녀 마리아의 모형. 첫 하와는 시험에 실패

둘째 하와(동정녀 마리아)는 시험을 이기고 예수님을 잉태.


에덴의 하와 = 육적인 모든 사람을 낳다.

동정녀 마리아 = 예수를 낳음으로 영적인 모든 사람을 낳는다.


에덴의 하와 = 타락한 교회.   남편인 아담을 죽게 한다.

타락한 교회인 구약 교회는 남편인 예수를 죽게 한다.

동정녀 마리아 = 신령한 교회.   세상을 구원할 아들을 낳는다.

아들은 타락한 교회를 회복한다.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가죽옷을 만들어 아담과 하와에게 입혀 주시다.

= 가죽옷으로 이들의 죄를 가려 주시다.

양으로 가죽옷을 만들기 위해 양이 죽어야 한다.  

= 속죄를 위해서는 희생 제물이 있어야 한다.

아담과 하와의 죄를 가리기 위해 아담과 하와 앞에서 양을 잡다.

이것은 장차 하나님께서 인류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아들 어린양을 잡을 것을 미리 보여주신 것.


양이 죽다 = 예수님이 우리 대신 죽다.

양이 죽다 = 피를 흘리다. 그 피가 죄를 씻다.

양으로 옷을 만들어 입혀 주시다 = 벌거벗은 죄를 가려 주시다 = 예수를 믿어 예수로 옷 입다.


아담의 에덴에서의 범죄, 속죄, 구원, 이 모든 것이 처음부터 하나님의 예정 가운데 있었다.


22-24절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그 사람을 내어 보내어 그의 근본된 토지를 갈게 하시니라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사람은 선과 악을 알게 되었고, 선과 악을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왜, 이들은 생명나무 실과를 먹고 영생하면 안 되는가?

마귀처럼, 죄인으로 영원히 살아야 하기 때문. 

하나님은 동산에서 두 사람을 내쫓으시고, 그룹들을 세우시고, 돌아가는 화염검으로 생명나무에 이르는 길을 지키게 하셨다.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그룹.  불.  검(칼), 이 셋으로 생명나무에 이르는 길을 막다.

그룹 = 천사. 하나님의 영광을 상징한다.

하나님의 영광으로 길을 막다.  죄인이 하나님을 보면 죽는다.

불 = 하나님의 거룩성.  부정하고 세속적인 것은 불에 의해 소멸된다.

부정하고 죄스럽고 세속적인 것은 그 길을 통과해서 생명나무로 갈 수가 없다.

검 = 죽음. 칼에 의한 죽음은 하나님의 의를 상징한다.

하나님의 의가 없는 자는 하나님의 심판의 칼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거룩성과, 하나님의 의가 생명나무로 가는 길을 막고 있다.

그러므로

  생명나무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죄가 없고, 부정하지 않고, 의로워야 한다.

  죄가 있고, 부정하며, 불의한 자는 생명나무로 가지 못한다.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의 죄를 가려 주셨고, 거룩하고 의롭게 되는 길을 열어 주셨다.

예수님 = 죄 없으시고, 거룩하고, 의로우신 분.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예수님을 따라 생명나무 길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