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없다

럽이2006.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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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없다

김영언

가을을 켠다,
단풍 구경을 떠나고 싶다,
설악산이 불타는 걸 구경했다,
치악산 내장산 한라산도 다녀왔다,
묘향산 금강산도 다녀왔다,
또 이름 모를 산들을 서너 군데나 두루 다녀왔다,
아름다운 외국도 다녀왔다,
하루에 이 많은 곳들을 다 다녀왔다,
편리하게 사무실 의자에 앉아서 다 다녀왔다,
해마다 벼르고 별러도
회사일이 바빠서 못갔었는데
재미없이 사는 게 억울했었는데
이제는 정말 안심이다,
꼭 가을에만 가을이 오는 것은
아니다 가을은 이제 내 맘대로 켠다,
내가 원할 때마다 계절은 충성스럽게 켜진다,
계절보다 더 충성스러운 것은 사실
사무실 책상 위에서 종일 깜빡거리고 있는
삼성 매직스테이션 M2950 한 대다,
계절이 가려진 유리창 안에서
일년 내내 변함 없는 답답한 일과도
요놈의 퍼스널컴퓨터가 부리는 요술 덕택에
지루하지 않고 행복해진다,
가을은 마우스 끝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클릭하는 순간 깜빡깜빡 모니터 가득 물든다,
나는 아무 불편도 없이
모니터 속으로 난 길을 걸어서
단풍 숲을 노닐다 온다,
때는 바야흐로 사계절 단풍 시대
이제 굳이 가을은 필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