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37세 기혼여성 입니다.지금은 그저 평범한 아이엄마 입니다. 그런데 이런 평범해 보이는 사람이 평범하지 못한 불우한 시절을 보내면서 자랐는데 그시절 어린 나를 감싸 안아주고 보살펴 주고 싶은데.. 치유의 방법으로 글쓰기를 선택 했어요.글을 쓰면 조금 치유가 되더라구요. 그래서.. 혼자 주절 주절 써 봅니다. 댓글에 나와 비슷한 연령대의 사람들은 내 삶을 어떻게 볼지도 궁금하하구요 ----------------------------------------------------------- 엄마는 나를 병원이 아닌 집에서 낳았다. 그시절 집에서 낳는 아이가 흔하지 않았을 것이다.나는 시골도 아닌 서울 및 수도권에서 태어나고 자랐다.나는 어려서부터 아파도 병원에 가 본 적이 없다. 수두, 홍역에 걸려도 엄마는 나를 케어하지 않았다.홍역에 걸려서 아픈 나의 손을잡고 학교에 등교시키다가 운동장에서 선생님을 만나 전염병이니 결석처리 안된다는 이야기를 듣고서야 집에 데려갔다. 우리 부모님은 너무 무식했다. 내 기억에 초등학교 고학년까지 양치질을 해 본적이 없다. 집에 내 칫솔은 있었을까? 모르겠다.어린나이지만 이는 이미 다 썩었고, 어금니가 매일 썩어서 깨지고 아픈데 .. 병원에도 안데려가고 뜨겁게 달군 마늘을 물고 참으라고 했다.얼음을 물거나, 선풍기에서 나오는 찬바람에 입을 벌리고 있으면 잠깐 통증이 가시곤했다. 아빠는 평범해 보이는 사람이었고, 직장에 다니며 주변인에게 친절한 스타일 이었지만엄마는 동네에서 쌈닭으로 불리며 온동네 싸우고 다녀서 아빠한테도 많이 맞았다. 장농속에 신당을 차리고 점집을 드나들다가 집을 나기가기도 일수.. 집 나갈때 늘 나를 데려갔던거 같다.둘은 정말로 안맞아 보였다. 엄마는 늘 아빠가 돈을 벌어도 집에 생활비를 주지 않아서 우리 생활이 이렇다고 푸념하고, 아빠는 멀쩡 해 보였는데 엄마랑 매일 싸우고 때렸다.항상 먹을게 없는데 밥먹으라고 윽박지르고, 계란후라이가 최고의 반찬이자 특식이었다.난 초등학교 1학년떄 18키로 나갔던 몸무게 기억난다.
난 그 시절 세상에 샴푸,린스라는게 있는 지 몰랐다.머리는 일주일에 한번 정도 비누로 감았고, 목욕탕은 일년에 한두번 갔던거 같다. 학교에 가면 온몸에 때가 덕지덕지 굳어있어서 친구들이 나를 "때" 라고 불렀다.선생님도 늘 교실에서 "00아 내일은 꼭 씻고와. 귀 뒤에 떼가 너무 많구나.." 라고 하셨다.집에가서 이야기 하면 엄마가 알아서 씻으라고 했고, 찬물로 여기저기 씼어 봤지만 다음날 학교에 가면 여전히 다들 내가 더럽다고 했다.학교가면 늘 놀림받던게 싫었다.
집에는 화장실이 없었다. 공용화장실을 이용해야 했다.소변은 주방 하수구에 해결했고 대변은 참았다.배변훈련이란걸 제대로 해 본적이 없이 그냥 막 자란 나에게는 큰 문제가 생겼다.유아기 시절은 기억이 안나니 모르겠고, 초등학교 시절에도 내 스스로 대변을 본 적이 없었다.참고 참다가 팬티에 늘 지렸고, 그 팬티에 지린똥이 굳으면 손으로 떼어내고 그냥 입고 다녔다.팬티를 갈아입은 기억도 없다. 그러니 나에게는 늘 똥냄새가 났다.그러다 초등학교 5학년에 복통이 심해서 학교에서 쓰러졌고, 병원에 갔지만 관장을 해도 대변이 나오지 않았다. 엄마가 좌약을 얼마나 넣었는지 아주 고통스럽게 배변이 이뤄졌지만, 그래도 고쳐지지 않고 난 계속 대변을 참았다.
아빠는 직장을 그만두고 돈을 벌겠다며 아빠랑 공사장에서 밥 해주는 함바집을 차렸다.먹고살기 힘들었던 부모님은 여기저기 다니면서 열심히 노력하며 살았던건 맞다. 무식하게 온몸으로 부딪치면서 살았던거 같다.초등학교까지 전학을 4번정도 다녔는데, 전학도 부모님이 따라가지 못해서 늘 이웃아줌마 손에 맡겼다.선생님은 애가 처음 전학 오는데도 안오는 부모가 있냐며 대놓고 나를 무시하고, 부모욕을 했다.그렇게 전학을 많이 다니다보니 별별일도 많이 겪고 왕따도 겪고 그랬는데 자세한건 기억이 안난다.잊고싶다 잊고싶다 하면서 살다보니 정말로 어린시절 기억은 드문드문만 기억이 난다.
초등학교 6학년때 졸업을 일주일 남긴 학교에 전학을 가기도 했는데, 하도 전학을 많이 다니니 교실에 들어가면 뭔가 서열이랄까? 분위기랄까? 그런게 금방 느껴졌다.어느날은 흔히 그반에 찐따라고 느껴지는 남자아이가 나를 이유없이 때렸다. 순간 여기서 그냥 맞으면 남은시간 매일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래서 그 남자아이를 심하게 때려버렸다. 그리고 다음에도 다른 시비가 있었지만 늘 배로 갚아주면서 때려버렸다.일주일동안 학교를 다니고 졸업식을 마쳤는데 가족은 단한명도 오지 않았다. 집에 가니 아빠가 기다리고 있었고 짜장면이라도 사 줄지 알았는데..흰밥에 물말고 김치랑 먹으라고 했다. 얼른 먹고 일하는데 가야한다며 ... 울면서 졸업식날 물에말은 밥을 먹은 기억은 있다.
가난뱅이 나의 이야기 1
저는 37세 기혼여성 입니다.지금은 그저 평범한 아이엄마 입니다.
그런데 이런 평범해 보이는 사람이 평범하지 못한 불우한 시절을 보내면서 자랐는데 그시절 어린 나를 감싸 안아주고 보살펴 주고 싶은데.. 치유의 방법으로 글쓰기를 선택 했어요.글을 쓰면 조금 치유가 되더라구요. 그래서.. 혼자 주절 주절 써 봅니다. 댓글에 나와 비슷한 연령대의 사람들은 내 삶을 어떻게 볼지도 궁금하하구요
-----------------------------------------------------------
엄마는 나를 병원이 아닌 집에서 낳았다. 그시절 집에서 낳는 아이가 흔하지 않았을 것이다.나는 시골도 아닌 서울 및 수도권에서 태어나고 자랐다.나는 어려서부터 아파도 병원에 가 본 적이 없다. 수두, 홍역에 걸려도 엄마는 나를 케어하지 않았다.홍역에 걸려서 아픈 나의 손을잡고 학교에 등교시키다가 운동장에서 선생님을 만나 전염병이니 결석처리 안된다는 이야기를 듣고서야 집에 데려갔다. 우리 부모님은 너무 무식했다.
내 기억에 초등학교 고학년까지 양치질을 해 본적이 없다. 집에 내 칫솔은 있었을까? 모르겠다.어린나이지만 이는 이미 다 썩었고, 어금니가 매일 썩어서 깨지고 아픈데 .. 병원에도 안데려가고 뜨겁게 달군 마늘을 물고 참으라고 했다.얼음을 물거나, 선풍기에서 나오는 찬바람에 입을 벌리고 있으면 잠깐 통증이 가시곤했다.
아빠는 평범해 보이는 사람이었고, 직장에 다니며 주변인에게 친절한 스타일 이었지만엄마는 동네에서 쌈닭으로 불리며 온동네 싸우고 다녀서 아빠한테도 많이 맞았다. 장농속에 신당을 차리고 점집을 드나들다가 집을 나기가기도 일수.. 집 나갈때 늘 나를 데려갔던거 같다.둘은 정말로 안맞아 보였다.
엄마는 늘 아빠가 돈을 벌어도 집에 생활비를 주지 않아서 우리 생활이 이렇다고 푸념하고, 아빠는 멀쩡 해 보였는데 엄마랑 매일 싸우고 때렸다.항상 먹을게 없는데 밥먹으라고 윽박지르고, 계란후라이가 최고의 반찬이자 특식이었다.난 초등학교 1학년떄 18키로 나갔던 몸무게 기억난다.
난 그 시절 세상에 샴푸,린스라는게 있는 지 몰랐다.머리는 일주일에 한번 정도 비누로 감았고, 목욕탕은 일년에 한두번 갔던거 같다. 학교에 가면 온몸에 때가 덕지덕지 굳어있어서 친구들이 나를 "때" 라고 불렀다.선생님도 늘 교실에서 "00아 내일은 꼭 씻고와. 귀 뒤에 떼가 너무 많구나.." 라고 하셨다.집에가서 이야기 하면 엄마가 알아서 씻으라고 했고, 찬물로 여기저기 씼어 봤지만 다음날 학교에 가면 여전히 다들 내가 더럽다고 했다.학교가면 늘 놀림받던게 싫었다.
집에는 화장실이 없었다. 공용화장실을 이용해야 했다.소변은 주방 하수구에 해결했고 대변은 참았다.배변훈련이란걸 제대로 해 본적이 없이 그냥 막 자란 나에게는 큰 문제가 생겼다.유아기 시절은 기억이 안나니 모르겠고, 초등학교 시절에도 내 스스로 대변을 본 적이 없었다.참고 참다가 팬티에 늘 지렸고, 그 팬티에 지린똥이 굳으면 손으로 떼어내고 그냥 입고 다녔다.팬티를 갈아입은 기억도 없다. 그러니 나에게는 늘 똥냄새가 났다.그러다 초등학교 5학년에 복통이 심해서 학교에서 쓰러졌고, 병원에 갔지만 관장을 해도 대변이 나오지 않았다. 엄마가 좌약을 얼마나 넣었는지 아주 고통스럽게 배변이 이뤄졌지만, 그래도 고쳐지지 않고 난 계속 대변을 참았다.
아빠는 직장을 그만두고 돈을 벌겠다며 아빠랑 공사장에서 밥 해주는 함바집을 차렸다.먹고살기 힘들었던 부모님은 여기저기 다니면서 열심히 노력하며 살았던건 맞다. 무식하게 온몸으로 부딪치면서 살았던거 같다.초등학교까지 전학을 4번정도 다녔는데, 전학도 부모님이 따라가지 못해서 늘 이웃아줌마 손에 맡겼다.선생님은 애가 처음 전학 오는데도 안오는 부모가 있냐며 대놓고 나를 무시하고, 부모욕을 했다.그렇게 전학을 많이 다니다보니 별별일도 많이 겪고 왕따도 겪고 그랬는데 자세한건 기억이 안난다.잊고싶다 잊고싶다 하면서 살다보니 정말로 어린시절 기억은 드문드문만 기억이 난다.
초등학교 6학년때 졸업을 일주일 남긴 학교에 전학을 가기도 했는데, 하도 전학을 많이 다니니 교실에 들어가면 뭔가 서열이랄까? 분위기랄까? 그런게 금방 느껴졌다.어느날은 흔히 그반에 찐따라고 느껴지는 남자아이가 나를 이유없이 때렸다. 순간 여기서 그냥 맞으면 남은시간 매일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래서 그 남자아이를 심하게 때려버렸다. 그리고 다음에도 다른 시비가 있었지만 늘 배로 갚아주면서 때려버렸다.일주일동안 학교를 다니고 졸업식을 마쳤는데 가족은 단한명도 오지 않았다. 집에 가니 아빠가 기다리고 있었고 짜장면이라도 사 줄지 알았는데..흰밥에 물말고 김치랑 먹으라고 했다. 얼른 먹고 일하는데 가야한다며 ... 울면서 졸업식날 물에말은 밥을 먹은 기억은 있다.
유년시절엔 늘 가난하고, 힘들었던 기억들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