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뱅이 나의 이야기2

가난뱅이2023.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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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중학생 시절에 부모님은 함바집을 하느라 바빠서 따로 살았고, 언니랑 나랑 둘이 살았다.
대로변에 쓰러져가는 1층건물인데 분식집이던 빈건물이 집이 된거라 밖엔 분식집 간판이 그대로 있었다.어느날인가 차가 집을 들이받고 가서, 문이 망가져서 문도 제대로 열리지 닫히지도 않고 잠금장치도 없었다.여자애 둘이 완벽하게 범죄에 노출되어 있었지만, 다행히 무서운일은 일어나지 않았다.월세가 얼마 였나 모르지만 집주인이 늘 찾아와서 너네 부모 도망갔냐? 월세 달라 집비워라 독촉하기 일수였다.
겨울에는 돈도 없어서 난방을 못하고 전기장판에 의지하면서 언니랑 이불속에서 꼭 끌어안고 버텼다.수도가 얼어서 물을 전혀 못쓰기도 하고, 가스가 끊겨서 부르스타에 라면을 먹거나 물을 데워서 씻기도 했다.청소년기라 예민하던 시기인데, 초딩때처럼 더럽게 다니진 않고.. 그나마 물을 끓여서라도 매일 씻으면서 살았다.하지만, 빨래는 제대로 못하니 교복이 늘 더려웠던거 같다.
그집의 기억은 너무 생생하다.여기저기 구멍이 숭숭난 집으로 바람이 들어오고, 외출 후 돌아왔을때 불을켜면 바퀴벌레들이 샤샤샥 흩어지고쥐똥이 여기저기.. 자고있으면 쥐들이 움직이는 소리도 들리고, 비누는 늘 쥐가 갉아놨다.그런집에 너무 오래 살았다. 정말로 최악이었다.
고등학교때 돈을 좀 벌어서 돌아온 엄마,아빠가 재개발 확정된 쓰러져가는 빌라를 전세로 얻었다.남들에게는 거지같은 빌라였지만, 우리 가족에게는 처음으로 거실,방,화장실이나눠진 집다운 입이라.. 이사한 첫날 언니랑 행복하다고 끌어안고 울었다.돈을 조금 더 벌어서 2층짜리 전원주택을 또 샀다. 내가 진짜 부자가 된 줄 알았다.대문을 열면 작은 마당과 돌계단이 있고 2층을 다른가족에게 전세를 주고 우리는 집주인이었다.그 행복은 딱 2년만 갔다.
힘들게 일했던 엄마,아빠는 몸이 아팠고 전재산 털어서 산 집인데 .. 더이상 수입이 생길만한 일이 없었다.그 와중에 고물상을 하겠다고 트럭을 몰고 쓰레기를 뒤지면서 다녔지만 힘이 부쳤는지..또 엄마,아빠는 매일 싸우고 매일 울었다.결국 내가 20살이 된 3월에 아빠는 못마시는 술을 한병비우고 근처 야산에서 목을 메고 자살했다.아빠의 장례를 치루고 나니 엄마가 그동안 너무 힘들었다며 자식이고 뭐고 다 필요없고 나가살고 싶다고 집팔고 남은돈 1천만원만 달라고 하고 정말로 집을 나갔다.집을팔고 1억 조금 넘게 남은걸로 아는데.. 딱 그때 언니가 암에 걸렸고, 형부가 회사를 그만두고 언니를 케어한다며 집판돈으로 생활을 했다.형부와 함께 살던 동생과 나는 너무 맞지않는 생활패턴에 독립을 했다.나는 작은 회사에 취직을 하고 대출을 받아서 월세를 얻어 나오고 동생과 둘이 살았다.
이제 대출금을 갚으면서 살아야 하는 사회초년생이 되었고, 동생도 건사해야 했다.그렇게 20대 중반쯤 되니 그래도 살만 해 졌다. 그냥 내가 벌어서 내가 살고 동생 용돈정도 주면 되니까..그럴때 엄마가 연락이 왔다. 미안하다고.. 너무 보고싶다고.. 같이 살자고..엄마는 빈몸으로 아니 아픈몸으로 내 월세방에 들어왔고 난 부양할 가족이 동생과 엄마까지 생겼다.엄마는 어린시절 무당에 빠지더니, 나중엔 교회에 미쳤고 본인이 목사가 되겠다고 신학대학도 다니고.. 별걸 다했다.나는 엄마가 일하느라 망가진 몸들이 불쌍해서 최대한 뒷받침을 했지만 너무 버거웠다.그러다가 엄마가 쓰러졌다. 가난해서 보험도 전혀 없던 엄마인데...심장수술, 뇌졸중.. 뭐 돈 많이드는 수술들을 해서 또 대출을 받고 살려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