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왼쪽이 마비가 왔다. 장애인이 되었다. 엄마는 뚱뚱하고 누가 봐도 별로인 노인네인데 신학공부 하면서 만난 남자목사님이 엄마를 좋다고 한다며 또 집을 나갔다. 그 목사님과 살겠다고... 난 이해가 안되지만 이제 엄마를 건사하지 않아도 되겠네 라는 마음에 솔찍한 마음으로 좋기도 했다.그치만 그것도 오래가지 않았다. 엄마는 1년쯤 지났을까 다시 자기를 받아달라고 했다. 난 거절했다. 드디어 엄마를 버렸다.결국 엄마는 가족들도 건사하지 않는 버려진 장애노인이 되어서 국가에서 도움을 받는다. 그래도 엄마랑 연락은 완전 끊은게 아니라.. 엄마가 뭐 필요하다고 하면 배달을 해 주곤 하는데 이 연민이 넘치면 엄마는 기가 막히게 아는것 같다.시도때도 없이 전화해서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하고 나를 귀찮고 힘들게 한다.전화를 안받으면 받을때까지 아침이고 밤이고 한다. 그래도 완전히 엄마를 끊어내지 못하는 내 마음은 나도 잘 모르겠다.
언니는 어려운 집안형편에 빨리 그집에서 탈출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인가 일찍 결혼해서 나갔다.하지만 내가 보기엔 더 지옥으로 들어갔다.언니가 암에걸린 후부터 형부는 아픈언니를 케어한다며 직장을 그만두고 야금야금 있는돈을 다 쓰고 그 후에도 제대로 된 직장을 못다녔다.몇달 다니다 그만두고 몇달 다니다 그만두고.. 결국 언니가 직장생활을 다시 시작했다.그러다가 나중엔 주식에 빠져서 나에게 언니몰래 돈 빌려달라고 연락도 오기도 하고 ,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지만 어른이라고 생각을 안한다. 엄마가 쓰러져서 중환자실에 있을때 내가 엄마를 케어했지만 형부도 도와주겠다고 내 집으로 왔고, 그날밤 술 마시고 나를 강간하려고 했다.내가 저항했고, 아무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무릎꿇고 빌면서 자기가 잠시 미쳤었나 보다고 빌었다.어린나이에 당황스러웠고 언니에게 알리지도 못하고 혼자 끙끙 앓았다. 그후에도 무슨 낯짝인지 나에게 돈 빌려달라고 전화 많이 하고, 나중엔 언니를 어떻게 하겠다는 둥 협박을 해댔다.참다참다 언니에게 알렸고 언니는 이혼을 하겠다고 했지만 .. 언니는 아이가 셋이나 된다.언니와 형부가 어떻게 이야기 했는지 모르지만 언니는 여전히 형부와 살고있다.언니가 어떤마음으로 그렇게 견뎌내고 있는지 가늠이 안되지만 언니가 늘 불쌍하다.결국 집이 가난해서 많은걸 포기하고, 인생을 망친건 내가 아니고 언니같아서다. 언니는 여전히 불행하다.
남동생은 엄마,아빠가 돈 벌러 다닐때 그나마 늘 데리고 다녔다.어려서 였을까? 남자 아이라서 그랬을까? 내가 보기엔 동생도 힘들게 살았을 거 같은데 유년시절의 이야기를 하다보면동생은 그래도 부모님이 바빠도 뭘 사주고 그랬는지 나처럼 불행한 기억은 아닌 것 같아서 다행이다.그래도 미성년시절의 아빠의자살과 엄마의 잘못들은 많은 상처가 되어 30대인 지금 자기는 결혼을 안할거라고 한다.
불행한 내 인생에서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는 남자친구가 하나 있었다.고등학교 1학년때 만나서 11년을 연애하다가 바람나서 헤어졌지만 그래도 힘든시간 도움을 많이 준 친구였다. 나의 가난한 모든 상황을 알고있던 친구고, 부유한 가정에서 자라서 늘 뭐든 좋은건 나에게 다 해주었다.덕분에 가난해서 못해본 많은 경험들을 해 봤다. 그래서 당연히 그친구와 결혼하고 싶었고 그렇게 되는건지 알았는데내가 멀쩡하게 살수있을 쯤 남자친구는 바람을 피웠고, 그 여자가 임신을 해서 나랑 헤어졌다.내인생 유일하게 행복이란걸 느끼게 해 준 사람이었지만, 그 연애의 끝도 너무 최악이라 마음의 정리도 많이 힘들었다.헤어지고 1년정도 나는 방황하고 매일 술도 마셨다. 몸무게가 30키로나 늘었고 완전 돼지 폐인이 되었다.그래도 곁에 있어줬던 고등학교시절 친구들덕분에 정신도 많이 차리고, 매일 운동하고 조절하면서 제자리를 찾았다.이후 결국 전 남자친구는 그여자랑도 이혼하고, 집도 망했다고 전해 들었다. 그나마 지금처럼 평범하게 산다고 이야기 할 수 있는건 잘풀렸던 직장생활인거 같다. 20살에 아빠가 자살하고 취직하겠다고 무턱대고 찾아간 회사가 제법 규모가 큰 회사였고 거기서 많이 배웠다.그 회사를 다니면서 그나마 사람답게 살 수 있었고, 그 다음에도 잘 풀렸다.고졸이지만 운좋게 은행으로 이직을 했고 10년넘게 다니면서 적성도 잘 맞아서 정말로 사람답게 살 수 있어졌다.이제 돈은 제법 벌지만 엄마가 아팠기에 결혼도 포기하고 그냥 엄마랑 살아야지 했었는데,, 엄마가 집을 나갔을 때 좋은사람을 소개 받았다.착한사람이라 내게 짐같은 엄마의존재도 알았지만 나와 결혼을 했다.집도샀고, 아이도 낳았고, 남편과도 잘 살고 있는 지금이다.
내가 이런 글을 써 본 이유는 내가 아이를 양육할수록 잊고있던 내 어린시절이 자꾸 떠올라서 괴로워서 이다. 내가 직업의 특성상도 있겠지만 늘 웃고, 주변인에게 살갑게 대하는 사람이라 그런가 "사랑 많이 받고 자라셨죠? 고생이라곤 모르고 자랐죠?" 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뭔가 도둑질하다가 들킨 기분이든다.정말 사랑이라곤 모르고 거지같이 빈곤하게 자란 내가 .. 지금은 남들눈에 평범하게 자란 사람처럼 보이는게 또 알 수없는 마음이 든다. 나는 남편과 아이를 한명만 낳기로 하고 아들을 키우고 있다.나처럼 고생하면서 아이를 키우기 싫고, 내아이를 보호하고 사랑을 주면서 아주 풍족하진 못해도 내가 느낀 고통들은 한감정도 느끼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다.내가 보고 자란게 없어서내가 몰라서.. 무지해서 아이에게 해가 될까 뭔가 잘못가르칠가 늘 두렵다.그리고 내 아이를 키우면서 살아갈수록 내 부모가 더 원망스럽고 이해가 가지 않는다. 요즘 날씨가 너무 추워서 어디선가 추위에 떨고, 씻는것도 먹는것도 자유롭지 못한 아이들이 있을까봐 그렇게 방치하는 부모들이 있을까봐 걱정이 되서 잠을 못자기도 한다.뉴스에라도 그런 사람들이 나오면 감정이입이 심각하게 되서 가슴이 애리고 아프기도 한다.내가 자란 그 시절에도 나처럼 빈곤하게 자란 사람이 거의 없는데, 지금 이런 시대에도 나처럼 어디선가 자라는 아이도 있겠지?신이 있다면 그런 아이들이 보호 받았음 좋겠다. 그리고 내 마음도 좀 더 평온해 지고 나를 괴롭히는 모든 기억이 사라지면 좋겠다.
가난뱅이 나의 이야기3
엄마는 뚱뚱하고 누가 봐도 별로인 노인네인데 신학공부 하면서 만난 남자목사님이 엄마를 좋다고 한다며 또 집을 나갔다. 그 목사님과 살겠다고... 난 이해가 안되지만 이제 엄마를 건사하지 않아도 되겠네 라는 마음에 솔찍한 마음으로 좋기도 했다.그치만 그것도 오래가지 않았다.
엄마는 1년쯤 지났을까 다시 자기를 받아달라고 했다. 난 거절했다. 드디어 엄마를 버렸다.결국 엄마는 가족들도 건사하지 않는 버려진 장애노인이 되어서 국가에서 도움을 받는다. 그래도 엄마랑 연락은 완전 끊은게 아니라.. 엄마가 뭐 필요하다고 하면 배달을 해 주곤 하는데 이 연민이 넘치면 엄마는 기가 막히게 아는것 같다.시도때도 없이 전화해서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하고 나를 귀찮고 힘들게 한다.전화를 안받으면 받을때까지 아침이고 밤이고 한다. 그래도 완전히 엄마를 끊어내지 못하는 내 마음은 나도 잘 모르겠다.
언니는 어려운 집안형편에 빨리 그집에서 탈출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인가 일찍 결혼해서 나갔다.하지만 내가 보기엔 더 지옥으로 들어갔다.언니가 암에걸린 후부터 형부는 아픈언니를 케어한다며 직장을 그만두고 야금야금 있는돈을 다 쓰고 그 후에도 제대로 된 직장을 못다녔다.몇달 다니다 그만두고 몇달 다니다 그만두고.. 결국 언니가 직장생활을 다시 시작했다.그러다가 나중엔 주식에 빠져서 나에게 언니몰래 돈 빌려달라고 연락도 오기도 하고 ,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지만 어른이라고 생각을 안한다.
엄마가 쓰러져서 중환자실에 있을때 내가 엄마를 케어했지만 형부도 도와주겠다고 내 집으로 왔고, 그날밤 술 마시고 나를 강간하려고 했다.내가 저항했고, 아무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무릎꿇고 빌면서 자기가 잠시 미쳤었나 보다고 빌었다.어린나이에 당황스러웠고 언니에게 알리지도 못하고 혼자 끙끙 앓았다. 그후에도 무슨 낯짝인지 나에게 돈 빌려달라고 전화 많이 하고, 나중엔 언니를 어떻게 하겠다는 둥 협박을 해댔다.참다참다 언니에게 알렸고 언니는 이혼을 하겠다고 했지만 .. 언니는 아이가 셋이나 된다.언니와 형부가 어떻게 이야기 했는지 모르지만 언니는 여전히 형부와 살고있다.언니가 어떤마음으로 그렇게 견뎌내고 있는지 가늠이 안되지만 언니가 늘 불쌍하다.결국 집이 가난해서 많은걸 포기하고, 인생을 망친건 내가 아니고 언니같아서다. 언니는 여전히 불행하다.
남동생은 엄마,아빠가 돈 벌러 다닐때 그나마 늘 데리고 다녔다.어려서 였을까? 남자 아이라서 그랬을까? 내가 보기엔 동생도 힘들게 살았을 거 같은데 유년시절의 이야기를 하다보면동생은 그래도 부모님이 바빠도 뭘 사주고 그랬는지 나처럼 불행한 기억은 아닌 것 같아서 다행이다.그래도 미성년시절의 아빠의자살과 엄마의 잘못들은 많은 상처가 되어 30대인 지금 자기는 결혼을 안할거라고 한다.
불행한 내 인생에서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는 남자친구가 하나 있었다.고등학교 1학년때 만나서 11년을 연애하다가 바람나서 헤어졌지만 그래도 힘든시간 도움을 많이 준 친구였다.
나의 가난한 모든 상황을 알고있던 친구고, 부유한 가정에서 자라서 늘 뭐든 좋은건 나에게 다 해주었다.덕분에 가난해서 못해본 많은 경험들을 해 봤다. 그래서 당연히 그친구와 결혼하고 싶었고 그렇게 되는건지 알았는데내가 멀쩡하게 살수있을 쯤 남자친구는 바람을 피웠고, 그 여자가 임신을 해서 나랑 헤어졌다.내인생 유일하게 행복이란걸 느끼게 해 준 사람이었지만, 그 연애의 끝도 너무 최악이라 마음의 정리도 많이 힘들었다.헤어지고 1년정도 나는 방황하고 매일 술도 마셨다. 몸무게가 30키로나 늘었고 완전 돼지 폐인이 되었다.그래도 곁에 있어줬던 고등학교시절 친구들덕분에 정신도 많이 차리고, 매일 운동하고 조절하면서 제자리를 찾았다.이후 결국 전 남자친구는 그여자랑도 이혼하고, 집도 망했다고 전해 들었다.
그나마 지금처럼 평범하게 산다고 이야기 할 수 있는건 잘풀렸던 직장생활인거 같다.
20살에 아빠가 자살하고 취직하겠다고 무턱대고 찾아간 회사가 제법 규모가 큰 회사였고 거기서 많이 배웠다.그 회사를 다니면서 그나마 사람답게 살 수 있었고, 그 다음에도 잘 풀렸다.고졸이지만 운좋게 은행으로 이직을 했고 10년넘게 다니면서 적성도 잘 맞아서 정말로 사람답게 살 수 있어졌다.이제 돈은 제법 벌지만 엄마가 아팠기에 결혼도 포기하고 그냥 엄마랑 살아야지 했었는데,, 엄마가 집을 나갔을 때 좋은사람을 소개 받았다.착한사람이라 내게 짐같은 엄마의존재도 알았지만 나와 결혼을 했다.집도샀고, 아이도 낳았고, 남편과도 잘 살고 있는 지금이다.
내가 이런 글을 써 본 이유는 내가 아이를 양육할수록 잊고있던 내 어린시절이 자꾸 떠올라서 괴로워서 이다.
내가 직업의 특성상도 있겠지만 늘 웃고, 주변인에게 살갑게 대하는 사람이라 그런가 "사랑 많이 받고 자라셨죠? 고생이라곤 모르고 자랐죠?" 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뭔가 도둑질하다가 들킨 기분이든다.정말 사랑이라곤 모르고 거지같이 빈곤하게 자란 내가 .. 지금은 남들눈에 평범하게 자란 사람처럼 보이는게 또 알 수없는 마음이 든다.
나는 남편과 아이를 한명만 낳기로 하고 아들을 키우고 있다.나처럼 고생하면서 아이를 키우기 싫고, 내아이를 보호하고 사랑을 주면서 아주 풍족하진 못해도 내가 느낀 고통들은 한감정도 느끼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다.내가 보고 자란게 없어서내가 몰라서.. 무지해서 아이에게 해가 될까 뭔가 잘못가르칠가 늘 두렵다.그리고 내 아이를 키우면서 살아갈수록 내 부모가 더 원망스럽고 이해가 가지 않는다.
요즘 날씨가 너무 추워서 어디선가 추위에 떨고, 씻는것도 먹는것도 자유롭지 못한 아이들이 있을까봐 그렇게 방치하는 부모들이 있을까봐 걱정이 되서 잠을 못자기도 한다.뉴스에라도 그런 사람들이 나오면 감정이입이 심각하게 되서 가슴이 애리고 아프기도 한다.내가 자란 그 시절에도 나처럼 빈곤하게 자란 사람이 거의 없는데, 지금 이런 시대에도 나처럼 어디선가 자라는 아이도 있겠지?신이 있다면 그런 아이들이 보호 받았음 좋겠다. 그리고 내 마음도 좀 더 평온해 지고 나를 괴롭히는 모든 기억이 사라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