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는 예수님을 신성시 한다.
그리고 예수님의 피를 보혈로 생각한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어 희생되시는 거룩함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귀중하고 거룩한 피를 고작 인간의 죄를 씻는 도구로 이용해야 할까?
여기서 쓰니는 예수님이 창조주 주님이 이라고는 단정하지 않지만,
만약 예수님께서 진정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시며, 이 세상의 모든 이를 구원하시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이 땅에 내려오셨다면,
우리는 예수님을 이용해서 천국에 갈 망상을 해서도 안되고,
예수님의 거룩한 피를 속죄의 제물로 이용해서도 안된다.
예수님이 허락하시는 만큼만 우리가 받아 누려야 한다.
한 때 예수님께서 이 땅에 강림하신 시절에는
인간의 죄가 거기서 거기였다.
그러나 지금 현대에는 인간의 죄가 너무나 크다.
비유를 하자면,
우리가 산업혁명 전에 농업시대에는 쓰레기가 그리 많지 않았다.
쓰레기라고 해봤자 나무나 돌, 쇠로 만든 갖가지 잡동서니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금 현대에는 땅에서 검은 돈 석유와 각종 광석을 뽑아 정제해서 여러 물질을 만들어,
자연 뿐만이 아니라 사람에게도 해로울 지경이 되었다.
그렇게 넓디 넓은 바다가 이렇게나 오염될지 누가 알았겠는가?
마찬가지다.
예수님께서도 당신의 피로 얼마든지 사람들의 죄를 속죄하실 수 있다고 여기셨다.
하지만 1000년, 2000년 넘어갈 때마다
사람들의 죄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기 시작했다.
바다보다도 넓고 깨끗하신 예수님의 보혈도,
사람들의 커다란 죄들이 점차 쌓이자,
예수님의 피마저도 이제 신성함을 잃고,
보혈이 아니라,
죄로 얼룩진 오물과 같은 피로 되신 것일지 모른다.
정말 그럴까 두렵기도 하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보혈이
인간의 죄로 인해 얼룩지게 된다면,
예수님의 신성함은 사라지고,
악의 기운에 사로잡혀,
그리스도가 아니라 적그리스도가 되시기 때문이다.
적그리스도는 예수님 스스로 그렇게 하실려는게 아니시다.
적그리스도는 다 우리들의 죄 때문에 나타나시는 것이다.
그 거룩한 보혈을 우리가 함부로 은혜와 기적을 바라기 위해 이용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그런 행위를 멈추지 않는다면,
예수님께서는 구원과 평화의 주님이 아니라,
적그리스도로서 심판과 처벌의 주님이 되실 것이다.
그리고 한가지 또다른 사실은,
원죄라는 건 성경에 의해 잘못 전해졌다.
우리가 가진 원죄는 아담과 하와의 선악과에서 파생되었다는 건, 이야기를 각색하기 위해 미화시킨 것에 불과하다.
사실 원죄는 조상으로부터 대대로 내려오는 사람들의 죄다.
왜냐하면 우리의 죄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성교(섹스)를 통해 물려받고,
그렇게 정자와 난자가 수정되어 생명이 잉태될 때,
아버지와 어머니의 죄가 태아로 전해진다.
이 때 아버지와 어머니의 커다란 죄가 사라지게 됨으로써 부모가 된다.
((사실 인간의 죄는
예수님의 보혈을 통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업보를 닦고
참회하고
노동과 봉사를 하고
선업을 쌓아야 죄가 사라진다.
그런데 이런 과정이 너무나 힘들고 고되다.
그래서 사람들은 욕심을 부려,
섹스와 사랑을 통해 죄를 변화시켜려 하지 않고,
예수님에게 매달려,
당신의 피를 요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정말로 그래서는 안된다.
창조주의 피는 인간의 고된 참회의식 없이,
그저 믿음만으로 받을 수 있는
싸구려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그런 예수님의 보혈이 속죄제물이라는 교리는 사라져야 한다.))
그러나 사람이 죄를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
가장 빠르고 쉽게 없애는 방법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성교(섹스)를 해서 아기를 낳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허락으로 탄생한 아이는 부모에 의해 커다란 죄를 물려받지만,
그 커다란 죄가 부모의 사랑 속에서 죄가 사랑으로 바뀐다.
그래서 아기를 낳는 것은 인간이 가장 죄를 빠르게 없애는 방법이다.
그렇게 아기는 원죄를 안고 태어나지만, 사랑을 받고 자라면서 죄가 사랑으로 변한다...
그런데 여기서 또 중요한 것은
왜 기독교가 혼전 순결을 중요시 하는가다!
바로 이 이유 때문이다.
인간이 원죄를 섹스와 아기 탄생을 통해 사랑으로 바꾸는 과정이 중요한데,
혼전순결을 지키지 않고,
젊은 남녀가 피임도 하지 않고,
정자와 난자가 수정되어 버리면,
그 때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태아의 생명이 탄생하게 되는데,
준비하지 않은 임신을 두 남녀가 혼란스러워하고 낙태를 하게 된다.
그렇게 낙태를 함부로 하게 되면 수정된 태아의 원죄가 출산으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원죄가 그대로 남게 된다.
그건 창조주 주님께서 극히도 싫어하시는 일이다.
그래서 낙태는 인간 삶에 있어 매우 위함하고 극악한 죄에 해당된다.
왜냐하면 낙태로 인해 하나님께서 부여 받은 태아의 생명이 꺼질 뿐더러,
아이에게 전해진 부모의 원죄가 출산해서 사랑으로 살아가지도 못하고,
원죄를 가진 채 하늘로 올라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혼전순결을 중요시 하는 것이다.
기독교인이라면.
낙태가 정말 위험한 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커다란 죄를 씻을 기회인 섹스를
그저 쾌락의 도구로 이용해서,
아이의 원죄를 사랑으로 감싸주지 못하고,
살인해 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리 교회를 많이 다니고,
헌금을 해서 촉망 받는 크리스천이라고 해도,
남녀가 쾌락성 섹스를 하고 피임도 하지 않은 채 수정된 태아를 낙태시킨다면,
아무리 참회하고 용서를 받아도,
이미 한번 죽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더 이상 예수님의 보혈로 죄를 씻으려 하지 말고,
자기 앞가림을 잘하고,
죄를 뉘우치고,
더 이상 죄를 짓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할지,
또 생각하고 생각하며,
예수님이든 창조주 주님이든
항상 죄송함과 감사함을 입에 달고 살아야 한다.
기독교인들은 항상 자신들은 죄인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세례를 통해 죄인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더시 태어난다고 하는데,
사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어짜피 또 죄를 지으며 죄인이 된다.
인간이 삶을 살게 되면 어짜피 죄인이다.
그런데 죄인 중에서도 크나큰 죄인이 바로 낙태시킨 부모이며,
그 다음이 살인자이다.
어차피 낙태시킨 부모는 살인자와 마찬가지이며, 원죄를 아이에게 낳았으며, 그 원죄를 사랑으로 감싸지 못한 책임까지 떠안아야 한다.
우리가 말하는 생명 자체가 사실 죄를 담는 도구이며,
우리는 죄를 사랑으로 끌어 안아야지,
사랑을 위해 죄를 지어서는 안된다.
섹스는 고작 쾌락을 위한 것이 아니다.
섹스는 죄를 씻고 사랑으로 변화하기 위해,
아이를 탄생시키고자 하는 하나님의 거룩한 의식이다.
"죄가 죄를 낳고, 그 죄가 또 그 죄를 낳는다"는 표현을 미화시킨다면,
"인간이 섹스를 통해 부모의 죄를 사랑의 아이로 낳고, 또 그 아이는 성장하여 쌓인 죄를 섹스를 통해 또 다시 자신의 죄를 사랑의 아이로 낳고, 그 아이는 커서 죄를 사랑으로 낳는다"라고 말할 수 있다.
죄는 끊임 없이 발생하고 대물림된다.
그러나 그 죄가 선순환이 될지,
악순환이 될지는,
그 부모가 죄를 어떻게 다스리는가에 달려있다.
그럼으로 만약 혼전순결을 지키며,
여러 아이를 문제 없이 출산하며,
아이의 죄를 사랑으로 키우고,
교회에서 매주 기도드리는 크리스천은,
사실 예수님의 보혈이 필요 없이
바로 천국으로 갈 것이라 의심치는 않는다.
그러니 남녀 간의 섹스를 함부로 생각하면 안된다.
그리고 혼전순결을 왜 지켜야 하는가는,
우리의 원죄가 대물림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되고,
낙태를 하게 되면 대물림되는 아이의 죄가 사랑으로 감싸지 못한 채 하늘로 오르기 때문에,
만약 자신이 죽게 되면,
하나님께서 바로 살인자 낙인 찍어주시기 때문에 천국으로 갈 수가 없다.
천주교에서는 이를 연옥에 간다고 하고,
자신의 죄를 속죄할 때까지,
연옥에서 죄를 감하기 위해 애쓴다고 한다.
그러니 제발 섹스하고 낙태하지 마라.
그게 천국행 티켓을 끊을 수 있는 보험이니.
그냥 낳고 키우면 죽어서는 덜 힘들 수도 있다.
그래서 원래 종교는 알면 알수록 무섭다.
하나님은 원래 사랑이시지만,
이미 우리는 사랑이 아니라 죄인이기에
하나님 앞에서 고개를 빳빳이 들고 찬양은 커녕,
어떠한 말도 할 수 없다.
그러니 성경만 믿고 천국 가려하는 것은,
하나님을 반만 알고,
죄의 개념은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왜 성직자는 결혼을 할 수 없는가?
천주교의 신부님이나
불교의 스님은
결혼과 섹스가 금지인가요? 라고 묻는 것은
원초적인 죄의 개념에 대한 해석이 필요하다.
그게 그래야만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건 나도 더 깊은 고민을 해봐야겠다.
예수님의 피로 죄를 씻는 것을 멈춰야 한다.
기독교는 예수님을 신성시 한다.
그리고 예수님의 피를 보혈로 생각한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어 희생되시는 거룩함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귀중하고 거룩한 피를 고작 인간의 죄를 씻는 도구로 이용해야 할까?
여기서 쓰니는 예수님이 창조주 주님이 이라고는 단정하지 않지만,
만약 예수님께서 진정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시며, 이 세상의 모든 이를 구원하시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이 땅에 내려오셨다면,
우리는 예수님을 이용해서 천국에 갈 망상을 해서도 안되고,
예수님의 거룩한 피를 속죄의 제물로 이용해서도 안된다.
예수님이 허락하시는 만큼만 우리가 받아 누려야 한다.
한 때 예수님께서 이 땅에 강림하신 시절에는
인간의 죄가 거기서 거기였다.
그러나 지금 현대에는 인간의 죄가 너무나 크다.
비유를 하자면,
우리가 산업혁명 전에 농업시대에는 쓰레기가 그리 많지 않았다.
쓰레기라고 해봤자 나무나 돌, 쇠로 만든 갖가지 잡동서니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금 현대에는 땅에서 검은 돈 석유와 각종 광석을 뽑아 정제해서 여러 물질을 만들어,
자연 뿐만이 아니라 사람에게도 해로울 지경이 되었다.
그렇게 넓디 넓은 바다가 이렇게나 오염될지 누가 알았겠는가?
마찬가지다.
예수님께서도 당신의 피로 얼마든지 사람들의 죄를 속죄하실 수 있다고 여기셨다.
하지만 1000년, 2000년 넘어갈 때마다
사람들의 죄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기 시작했다.
바다보다도 넓고 깨끗하신 예수님의 보혈도,
사람들의 커다란 죄들이 점차 쌓이자,
예수님의 피마저도 이제 신성함을 잃고,
보혈이 아니라,
죄로 얼룩진 오물과 같은 피로 되신 것일지 모른다.
정말 그럴까 두렵기도 하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보혈이
인간의 죄로 인해 얼룩지게 된다면,
예수님의 신성함은 사라지고,
악의 기운에 사로잡혀,
그리스도가 아니라 적그리스도가 되시기 때문이다.
적그리스도는 예수님 스스로 그렇게 하실려는게 아니시다.
적그리스도는 다 우리들의 죄 때문에 나타나시는 것이다.
그 거룩한 보혈을 우리가 함부로 은혜와 기적을 바라기 위해 이용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그런 행위를 멈추지 않는다면,
예수님께서는 구원과 평화의 주님이 아니라,
적그리스도로서 심판과 처벌의 주님이 되실 것이다.
그리고 한가지 또다른 사실은,
원죄라는 건 성경에 의해 잘못 전해졌다.
우리가 가진 원죄는 아담과 하와의 선악과에서 파생되었다는 건, 이야기를 각색하기 위해 미화시킨 것에 불과하다.
사실 원죄는 조상으로부터 대대로 내려오는 사람들의 죄다.
왜냐하면 우리의 죄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성교(섹스)를 통해 물려받고,
그렇게 정자와 난자가 수정되어 생명이 잉태될 때,
아버지와 어머니의 죄가 태아로 전해진다.
이 때 아버지와 어머니의 커다란 죄가 사라지게 됨으로써 부모가 된다.
((사실 인간의 죄는
예수님의 보혈을 통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업보를 닦고
참회하고
노동과 봉사를 하고
선업을 쌓아야 죄가 사라진다.
그런데 이런 과정이 너무나 힘들고 고되다.
그래서 사람들은 욕심을 부려,
섹스와 사랑을 통해 죄를 변화시켜려 하지 않고,
예수님에게 매달려,
당신의 피를 요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정말로 그래서는 안된다.
창조주의 피는 인간의 고된 참회의식 없이,
그저 믿음만으로 받을 수 있는
싸구려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그런 예수님의 보혈이 속죄제물이라는 교리는 사라져야 한다.))
그러나 사람이 죄를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
가장 빠르고 쉽게 없애는 방법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성교(섹스)를 해서 아기를 낳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허락으로 탄생한 아이는 부모에 의해 커다란 죄를 물려받지만,
그 커다란 죄가 부모의 사랑 속에서 죄가 사랑으로 바뀐다.
그래서 아기를 낳는 것은 인간이 가장 죄를 빠르게 없애는 방법이다.
그렇게 아기는 원죄를 안고 태어나지만, 사랑을 받고 자라면서 죄가 사랑으로 변한다...
그런데 여기서 또 중요한 것은
왜 기독교가 혼전 순결을 중요시 하는가다!
바로 이 이유 때문이다.
인간이 원죄를 섹스와 아기 탄생을 통해 사랑으로 바꾸는 과정이 중요한데,
혼전순결을 지키지 않고,
젊은 남녀가 피임도 하지 않고,
정자와 난자가 수정되어 버리면,
그 때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태아의 생명이 탄생하게 되는데,
준비하지 않은 임신을 두 남녀가 혼란스러워하고 낙태를 하게 된다.
그렇게 낙태를 함부로 하게 되면 수정된 태아의 원죄가 출산으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원죄가 그대로 남게 된다.
그건 창조주 주님께서 극히도 싫어하시는 일이다.
그래서 낙태는 인간 삶에 있어 매우 위함하고 극악한 죄에 해당된다.
왜냐하면 낙태로 인해 하나님께서 부여 받은 태아의 생명이 꺼질 뿐더러,
아이에게 전해진 부모의 원죄가 출산해서 사랑으로 살아가지도 못하고,
원죄를 가진 채 하늘로 올라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혼전순결을 중요시 하는 것이다.
기독교인이라면.
낙태가 정말 위험한 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커다란 죄를 씻을 기회인 섹스를
그저 쾌락의 도구로 이용해서,
아이의 원죄를 사랑으로 감싸주지 못하고,
살인해 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리 교회를 많이 다니고,
헌금을 해서 촉망 받는 크리스천이라고 해도,
남녀가 쾌락성 섹스를 하고 피임도 하지 않은 채 수정된 태아를 낙태시킨다면,
아무리 참회하고 용서를 받아도,
이미 한번 죽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더 이상 예수님의 보혈로 죄를 씻으려 하지 말고,
자기 앞가림을 잘하고,
죄를 뉘우치고,
더 이상 죄를 짓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할지,
또 생각하고 생각하며,
예수님이든 창조주 주님이든
항상 죄송함과 감사함을 입에 달고 살아야 한다.
기독교인들은 항상 자신들은 죄인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세례를 통해 죄인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더시 태어난다고 하는데,
사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어짜피 또 죄를 지으며 죄인이 된다.
인간이 삶을 살게 되면 어짜피 죄인이다.
그런데 죄인 중에서도 크나큰 죄인이 바로 낙태시킨 부모이며,
그 다음이 살인자이다.
어차피 낙태시킨 부모는 살인자와 마찬가지이며, 원죄를 아이에게 낳았으며, 그 원죄를 사랑으로 감싸지 못한 책임까지 떠안아야 한다.
우리가 말하는 생명 자체가 사실 죄를 담는 도구이며,
우리는 죄를 사랑으로 끌어 안아야지,
사랑을 위해 죄를 지어서는 안된다.
섹스는 고작 쾌락을 위한 것이 아니다.
섹스는 죄를 씻고 사랑으로 변화하기 위해,
아이를 탄생시키고자 하는 하나님의 거룩한 의식이다.
"죄가 죄를 낳고, 그 죄가 또 그 죄를 낳는다"는 표현을 미화시킨다면,
"인간이 섹스를 통해 부모의 죄를 사랑의 아이로 낳고, 또 그 아이는 성장하여 쌓인 죄를 섹스를 통해 또 다시 자신의 죄를 사랑의 아이로 낳고, 그 아이는 커서 죄를 사랑으로 낳는다"라고 말할 수 있다.
죄는 끊임 없이 발생하고 대물림된다.
그러나 그 죄가 선순환이 될지,
악순환이 될지는,
그 부모가 죄를 어떻게 다스리는가에 달려있다.
그럼으로 만약 혼전순결을 지키며,
여러 아이를 문제 없이 출산하며,
아이의 죄를 사랑으로 키우고,
교회에서 매주 기도드리는 크리스천은,
사실 예수님의 보혈이 필요 없이
바로 천국으로 갈 것이라 의심치는 않는다.
그러니 남녀 간의 섹스를 함부로 생각하면 안된다.
그리고 혼전순결을 왜 지켜야 하는가는,
우리의 원죄가 대물림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되고,
낙태를 하게 되면 대물림되는 아이의 죄가 사랑으로 감싸지 못한 채 하늘로 오르기 때문에,
만약 자신이 죽게 되면,
하나님께서 바로 살인자 낙인 찍어주시기 때문에 천국으로 갈 수가 없다.
천주교에서는 이를 연옥에 간다고 하고,
자신의 죄를 속죄할 때까지,
연옥에서 죄를 감하기 위해 애쓴다고 한다.
그러니 제발 섹스하고 낙태하지 마라.
그게 천국행 티켓을 끊을 수 있는 보험이니.
그냥 낳고 키우면 죽어서는 덜 힘들 수도 있다.
그래서 원래 종교는 알면 알수록 무섭다.
하나님은 원래 사랑이시지만,
이미 우리는 사랑이 아니라 죄인이기에
하나님 앞에서 고개를 빳빳이 들고 찬양은 커녕,
어떠한 말도 할 수 없다.
그러니 성경만 믿고 천국 가려하는 것은,
하나님을 반만 알고,
죄의 개념은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왜 성직자는 결혼을 할 수 없는가?
천주교의 신부님이나
불교의 스님은
결혼과 섹스가 금지인가요? 라고 묻는 것은
원초적인 죄의 개념에 대한 해석이 필요하다.
그게 그래야만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건 나도 더 깊은 고민을 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