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에 벼린 쇠나 칼로 깍은 나무나 돌로 깨뜨린 유리 같은 것들만 흉기가 될 수 있다고 하지 마라 눈빛이나 언어도 날카롭게 갈면 깊은 상처를 낼 수 있겠다 일부러 눈길 돌리며 외면했던 은행나무 잎사귀들이 한꺼번에 후두둑 떨어져 내린다 화를 참지 못하고 삿대질했던 화분 속 꽃들이 고개를 푹 숙이며 시들어간다 내가 송곳이나 죽창 못지않은 흉기를 들이민 것이다 이른 봄 아닌 데도 내 안에 핀 꽃 많이 꺾었다 늦 가을 아닌 데도 내 바깥에 진 낙엽 많이 밟았다 날카로운 마음이 생을 깎아 놓았는지 눈에 핏발이 서고 손이 부르르 떨렸다 그냥 사계절 푸른 잡초처럼 당신에게 무뎌졌으면 좋겠다 그냥 잠깐 동안의 소나기 빗물처럼 당신에게 스며들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살과 살을, 피와 피를 나누는 흉기가 되고 싶은 것이다
흉기
불에 벼린 쇠나
칼로 깍은 나무나
돌로 깨뜨린 유리 같은 것들만
흉기가 될 수 있다고 하지 마라
눈빛이나 언어도 날카롭게 갈면
깊은 상처를 낼 수 있겠다
일부러 눈길 돌리며 외면했던
은행나무 잎사귀들이
한꺼번에 후두둑 떨어져 내린다
화를 참지 못하고 삿대질했던
화분 속 꽃들이
고개를 푹 숙이며 시들어간다
내가 송곳이나 죽창 못지않은
흉기를 들이민 것이다
이른 봄 아닌 데도
내 안에 핀 꽃 많이 꺾었다
늦 가을 아닌 데도
내 바깥에 진 낙엽 많이 밟았다
날카로운 마음이 생을 깎아 놓았는지
눈에 핏발이 서고
손이 부르르 떨렸다
그냥 사계절 푸른 잡초처럼
당신에게 무뎌졌으면 좋겠다
그냥 잠깐 동안의 소나기 빗물처럼
당신에게 스며들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살과 살을, 피와 피를 나누는
흉기가 되고 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