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제목을 적어야 똑똑하신 토커들께서 해결책을 내려 주실 수 있을까요? 제가 지금 온전치 못한 상태라서..
astra2023.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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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을 먼저 해야 할까 거의 처음으로 익명성을 빌려서 내 이야기를 해볼까 해 존대말을 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정말 죄송해요ㅠ 글쓰는게 너무 어렵네요
일단 지금 나의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자면 나는 중증 우울 그리고 양극성장애, 불안장애 환자야. 거기에는 주변 환경과 사람 그리고 나약하게 태어난 나 자신 등등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것 같아
우리 가족 간의 문제도 있었을 것 같고, 예민한 나의 모습도 있었을것이고,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하고 싶은 말은 오랫동안 사귀었던, 그리고 지금은 나의 남편인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
서론이 조금 길것 같아
읽기 힘들면 남편 이야기만 한번만 봐줘
일단 큰일만 몇개 적어볼게
나는 작은 교회 목사님이셨던 친할아버지와 친할머니와 어릴때 함께 살았어. 아빠는 제대로 된 직업이 없었고 엄마는 과외로 생활비를 마련하느라 바빴었어.
따뜻한 마음을 가지셨던 할아버지는 동네의 노숙자들 알콜중독 주정뱅이들을 교회에 데려와서 먹이고 입히셨고 내가 기억하는건 그중 한명이 너무 냄새가 나고 행색이 좋지 못해서 삼촌들이 별명으로 ’박테리아‘ 라고 불렀던게 기억이나. 나쁜 별명이지 정말.. 그때 당시 삼촌들은 학생들이었고 철이 없었어.
그리고 겨울에 술취해서 교회 문앞에서 자다가 동사한 사람도 몇번 봤던 기억이 있어
그때가 나의 4살때 까지의 기억이야
어릴 때 엄마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 과외를 했었고 우리 집에서 했던 일이기 때문에 나의 개인적인 프라이버시는 전혀 없었던 것 같아. 항상 집에 학생들이 왔다갔다 거렸으니깐...
그리고 아빠도 수익이 일정치 못하고 일도 계속 바뀌고 일을 또 다 해내지 못하고 그래서 가정 형편이 많이 좋지 않았어 요즘도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급식비라든지 아니면 고등학교 때 내는 어떤 공과금 같은 거 그런 것들을 한 번도 제때 낸 적이 없어서 늘 행정실에 불려갔던 기억이 있어
아무튼 내가 9살 때 좀 큰 일을 당했는데 그때 엄마는 바빴고 나랑 동생은 다섯 살 차이가 나. 엄마가 동생을 병원에 데려다 주고 오라고 해서 동생을 병원에 데려다 주고 데려 오는 골목길이었어. 그 골목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나. 물론 지금은 재개발을 했지만 내가 기억을해.
그때 한 부부가, 남편과 아기를 업은 아내가 다정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가벼운 스킨십을 하면서 남편은 담배를 피려고 골목에 계속 있고 아내는
다른쪽 골목 끝에 있는 본인의 집으로 들어갔어
근데 그때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동생이 갑자기 그 골목을 막 달려가더라고. 나는 걔를 붙잡으려고 했는데 내 동생을 붙잡기 전에 내가 먼저 붙잡혔어 그 아저씨한테
아저씨는 나한테 ‘이쁘네 공손하네 착하네’ 등의 칭찬을 하며 나의 이름과 학교와 반과 어쨌든 뭐 모든 나에대한 호구조사를 다 했었던 것 같아 그러고 어떠한 설명 없이 갑자기 나에게 키스를 하기 시작했어. 혀를 돌리고 꽉 껴안은 채로 그리고 내 바지랑 팬티를 벗긴 후에 본인의 바지도 벗고 성기를 앞에서 삽입하려고 노력을 했었던 것 같아. 나는 그 행동이 어떤 의미인지도 몰랐고 그냥 공포스러웠기만 했어. 그리고 안 되니까 뒤에서도 나를 뒤로 돌려서 다리 사이에 또 그렇게 했던 것 같아 들어가질 않으니까
이리저리 비비고 나는 그렇게 성폭행을 당한 채 그 사람을 뿌리치고 바지도 제대로 입지 못한 채로 도망쳤어. 아직도 기억이 나는 게 너무 무서운데 너무 무서우면 계속 다리 힘이 풀리잖아
뛰면서 넘어지면서 뛰면서 넘어지면서 정말 많이 넘어지면서 죽을 힘을 다해 뛰어갔던 것 같아
나는 아직도 그렇게 죽을힘을다해 뛰다가 넘어지는걸 반복하는 꿈을 꿔 30대 인데도 말이야
그때 당시 나는 그 행위가 무슨 행위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굉장히 부끄러워야 할 치부라고 생각을 했었고 당연하게도 부모님한테는 얘기하지 않았어 . 그리고 아무한테도 얘기하지 않았어
단지 내가 무서웠던 건 나에 대한 모든 것을 다 물어봤던 아저씨였기에 혹여나 학교에 찾아올까 봐 그게 너무 너무 겁이 나고 불안하고 두려웠던 거야 그게 내가 기억하는 두 번째 인생에서 있었던 큰일이야
대학을 갔는데 남초 학과였고 남자들은 무슨 발정난 개처럼 들이댔고, 여중 여고를 나와서 남자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전혀 몰랐던 나는 정말 마음에도 없는 선배와 사귀게 돼. 근데 사실 오티때였나? 그 학교에 좀 잘생긴 선배가 있었고 술김에 그 선배랑 키스를 하게 됐는데 알고 보니 그 선배는 여자친구가 있었더라고. 그리고 나한테 비밀로 해달라고 하는데 나는 수치스럽고 부끄러워서 빨리 기억에서 지우자 생각을 했고 그리고 얼떨결에 다른 선배랑 사귀게 된 거야. 사귀는 동안이 너무 고통이었고 힘들었고 무엇보다 최악이었던 건 마지막 헤어질 때 ‘야 니 땡땡이랑 잤다매’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끝냈는데 나는 그 사실이 너무 끔찍하고 부끄럽고 숨고만 싶었어. 아 그 선배새끼가 자랑 처럼 애들한테 다 이야기하고 애들도 다 알겠구나 라는 사실에..
이때부터였던 것 같아 나의 우울은. 강박에 시달리고 미친듯이 운동했어 거의 쓰러질듯이..
그러다가 정말 친했던 학교친구가 휴학을 하고 내가 사이비라고 알고 있는 집단에서 살게되고 자퇴를 해. 2학년때 나는 학교를 다니지 못할 정도로 우울증이 정말 심해져서 그때 휴학을 했었던 것 같아
휴학하고 처음엔 우울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만 길 고양이를 입양하고 삶이 좀 달라졌어. 다시 밝은 모습으로 돌아갔고 친구들과 어울리고 공부도 하고 알바도 하고 아주 어른스럽고 나에게 일깨움을 많이 주는 남자친구를 만나서 많이 배울 수 있었어
그 아이를 입양했을때 이미 나이가 좀 들어서 지금은 무지개 다리를 건넜고 펫로스가 너무 심했지만 그 애는 내 인생에서 아주 사랑스럽고 내 삶에 동력을 주는 동생이었어
그리고 이제 현 남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 우리는 2016년도에 처음 만났고 그때 당시 나는 승무원 준비를 하고 있었어. 그때 내가 나이가 좀 있어서 국내보다는 외항사 승무원 준비를 하고 있었고 남편은 공시생이었어 지지리 그지에 궁상일때 만났었어
나는 피임을 늘 철저하게 하는 편이었고 당신 남친이었던 남편은, 본인이 말은 안 하지만 지금까지는 노콘으로 관계를 했었던 것 같아
나는 생리주기가 너무 불규칙해서 정확하지가 않아서 확실한 피임을 해야했어
근데 그때가 가임기였나봐. 관계를 가지다가 조금 놀랐던 건 중간에 콘돔이 빠져버린 거야. 내가 끼워주다가 직접 껴보라고 했는데 남자친구가 자기 스스로 콘돔을 껴본 적이 없어서 제대로 끼우지도 않고 관계를 했던 거지
그러고 나서 얼마 안되서 엄마 나 그리고 동생 이렇게 셋이서 발리 여행을 갔고 갔다가 돌아오는 항공편이었는데 내 표랑 여권 이름이 잘못되어 있는 바람에 시큐리티가 입국을 못하게 붙잡았고, 나 홀로 말레이시아 공항에 남겨졌어. 엄마랑 내 동생 먼저 가버리고 그때 정말 큰일 날 뻔도 했었고 이상한 사람이 계속 쫓아오고 자기 집에 가자는 이상한 남자도 있고 해서 나는 공항 안에 있는 사원에서 잠을 잤고 그리고 호텔을 하루 빌려서 거기서 외항사 비디오 면접을 봤어.
서류는 통과된 상태였고 비디오 면접이 있었는데 비디오 면접을 말레이시아에서 봤고 합격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어. 그때 당시 남자친구가 굉장히 많이 도와주고 금전적으로도 여러모로 도와주고 너무 고맙고 착하고 친절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나봐.
그러고 나서 비디오 면접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기쁜 도중에 생리 날짜가 지난 것 같은데 생리를 하지 않더라고. 나는 그때 콘돔이 빠졌을 때 그때가 계속 마음에 걸렸었는데 혹시나 해서 임태기를 사서 테스트를 해보니 두줄이 나왔어 잘못 나왔을 수도 있으니까 산부인과에서 검사를 해보니까 4주 차라고 하더라고 나는 정말 몰랐어
몸에 이상이 있다거나 그런 것도 내가 못 느꼈었던 것 같아. 어떻게 할까 고민했는데 그때 당시 남자친구는 공시생이었고 나도 취준생이었기 때문에 중절을 결심했어. 돈이 둘 다 없을 땐데 남자친구가 중절 수술 비용을 다 내겠다고 이야기를 했고, 내가 이곳 저곳 산부인과를 다 돌아다녔는데 제일 저렴하게 해주신 곳이 현금으로 65만 원이었어 근데 본인은 30만 원밖에 없대. 충격이지만 어쩔수가 없잖아.. 그래서 내가 돈이 없는데 당시 외항사 과외를 하고 있었고 그 과외비로 충당을 해서 결국 중절을 하게 됐어 그때당시 중절은 불법이었고 나는 커뮤니티라는 곳을 전혀 몰랐기때문에, 내가 겨우 찾아 낸곳이 너무너무 허름하고 너무 오래된 산부인과고 중절 위주로 몰래 하던 곳이었던 것 같아
수술은 세상에 생각 이상으로 너무 고통스러웠고 아팠고 중간에 계속 울면서 ‘그만할게요 그만할게요’ 라고 소리를 지르기 까지 했어. 참고로 이 의사선생님은 처음에는 우리 보고 아기를 낳으라고 계속 설득을 시켰어. 둘이 지금 너무 보기좋고 아기가 정말 이쁠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절을 하게 되면 여자 몸에 너무안 좋기 때문에, 그리고 아기 심장 소리가 들린다고 얘기했어 생명의 소중함을 이야기하려고 했던 거지.
이것에 대해 불편하다면 스루 해줘. 그 의사분이 정말 우리를 생각해서 말한 거라서... 하지만 일단 나는 수술대 위로 올라갔고 그 고통이 너무 끔찍했고 그만해 달라고 울면서 소리 질렀던 게 기억이 나
이게 내 세번째 큰일이야.
2016년 남자친구를 만나기전까지의 나는 정말 활발하고 에너지가 넘치던 사람이었어. 물론 내가 양극성 장애가 있어서 그 기분에 고저가 좀 있는 편이긴 했지만 2016년도에는 취준생이었고 패기가 있었지. 그런데 그렇게 중절 수술을 받고 몸도 제대로 돌보지 못한 채로 나는 서울에 면접을 보러 가게 됐고(부산사람이야) 안타깝게도 1대1 면접에서 떨어지게 됐어 그 이후에도 사실 여러 번 지원을 해봤지만
서류가 된다고 하더라도 토론이나 면접에서 계속 떨어지는 일이 생기고 나는 너무 지치고 돈을 벌고 싶었어. 그렇게 해서 이제 회사 해외 영업팀으로 들어가게 돼 내 수중에 돈이 있으니까 여유롭고 좋더라고... 그때도 남자친구는 공시생이었어
근데 내가 앞에서 이야기 하지 않았던 얘기가 하나 있어 임신 중절을 하고 내가 싱가포르 항공사에서 떨어지고 그리고 그 남자친구는 고시원에 있었어 그때 남자친구의 어머니랑 시누가 우리 사이에 대해서 이상한 말을 밉게 오해하게 조금 자주 하는 것 같았고 그걸 중재하지 못하는 남자친구가 되게 미웠던 것 같아 그게 쌓이고 쌓여서 같은 고시원에 있는 나랑 친한 친구한테 이야기를 했는데, 그 친구가 충격적인 이야기를 했어.
친구가 말하기를 내가 너무 상처를 받을까 봐 내가 너무 충격을 받을까 봐 말을 하지 못했는데 지금에서야 말을 한다고 하면서 이야기를 꺼냈어
남자친구는 그 고시원에서 총무 였는데
CCTV로 여자들 방을 보고 어느 비어있는 여자 방을 들어갔다가 나왔다고 하더라고 안에서 무슨 행동을 했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인데 그 장면을 고시원에 있는 다른 여자가 보게 되었고 그 이야기를 내 친구에게 해준 거야. 나는 이 모든 상황들이 내가 남자친구를 만나고 임신 중절을 하고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몸살을 앓고 취업에서도 낙방을 한 상태에서 그 이야기를 들으니까 너무 가슴이 찢어질 것 같더라고.. 끝낼 생각이었어 그래서 전화해서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있냐 남의 방에 왜 들어가냐 다른 여자 방에 왜 들어가냐 소리를 지르고 헤어지자고 이야기를 했는데 어느 날 장문의 편지가 왔더라고 그런데 이건 내가 등신같이서 욕이 나오겠지만 텍스트로 적지는 말아줘ㅠ 미안해
일단 내가 남자친구를 너무너무 좋아했고 부모에게 받지 못했던 사랑에 대한 결핍이 항상 있었는데 내가 의지하고 날 지탱해주고 나한테 많은 표현을 해줬던 그 남자친구를 잊을 수가 없는 거야. 나는 그 장문의 편지를 받고 다시 연락을 했고 우리는 다시 그렇게 만나게 됐어
그러다가 이제 남자친구는 공시를 그만두고 일을 하게 됐는데 그 일이 힘들어서 또 그만두고 공시 준비를 했어 그때 내가 회사에 취직이 됐었던 거야
남자친구는 나를 회사 앞까지 자주 데리러 왔었고 나한테 많이 힘이 되어 줬고 나는 그 남자친구가 정말 고맙다고 그렇게 느꼈어. 그러다가 내가 집 가까운 대학교에사 교직원을 뽑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쪽에 취직을 하게 됐고 남자친구는 나를 더 자주 보고 싶다라고 생각해서 남자친구 어머니가 내가 일하는 대학교 근처에 자취방을 잡아주셨어. 그러니까 우리는 거의 반 동거 상태였어.(참고로 시어머니는 당시에 모르셨대) 내가 조금힘들고 피곤하면 거기서 쉬고 가고 자주 자고
그 사실을 우리 엄마 아빠도 알고 있었고 그 때가 2018년도였는데 2018년도 7월부터 갑자기
우울증이 너무너무 심하게 왔어. 이유가 없었어. 남자친구랑 계속 싸우게 되고 나는 그냥 걷다가 길에 주저앉아서 울고.. 결국 나는 정신과에서 상담을 받게 됐고 약을 처방받게 됐어
그리고 많이 좋아졌어 이렇게 왔다갔다 하는 기분도 괜찮아졌어
그런데 어느 날 주말이었나? 남자친구 옆에서 자다가 눈을 떠보니 새벽인데 남자친구가 없더라고 근데 쎄한 거 있잖아...전화를 걸어도 연결이 안돼.. 그때가 새벽 대여섯시쯤이었나 했는데 한 8시 9시쯤에 남자친구가 집에 들어왔고 나는 전화도 안 받고 이게 뭐 하는 짓이냐고 이야기를 했는데 남자친구가 갑자기 무릎을 꿇었어 나한테...
내가 무슨 일이냐 왜 그러냐라고 물어보니까 경찰서에 갔다 왔다고 하더라고 나는 심장이 정말 철렁 내려앉을 것 같았고 도대체 뭐 때문에 경찰서에 갔다 왔냐고 이 새벽 시간에!! 하고 물어보니 옆집 여자를 불법 촬영했다고 하더라고 나는 충격이 너무 컸고 이전에 이런 일이 한 번 있었기 때문에 사람은 변하지 않는구나 그렇게 생각해서 헤어지자 했어
사랑했던 기억들이 계속 남아 있고 아프니까 나는 그냥 울면서 술로 지세웠어. 그러다가 이주뒤에 남자친구가 울면서 전화가 왔어. 자기가 다 잘못했다고 자기가 모든 걸 망쳤다고.. 내가 너무 보고 싶은데 본인이 염치가 없어서 전화도 못하고 울기만했다 라고 말하는 걸 내가 또 참지 못하고 다시 만났어.
사건 때문에 그 전셋방에서도 나와야 하는 상황이 된 거야 그 피해자 여자분이 그렇게 해달라고 했고. 미안해 내가 두서가 없지..
아무튼 그러고 방을 빼줬고 나는 우울증이 좀 더 심해졌어 정확하게 말하자면 양극성 장애가 조금 더 심해졌던 것 같아 그리고 불안장애가 생겼어 나는 요인은 여러 가지라고 생각해. 어릴 때 나를 닦달했던 엄마, 가정을 돌보지 않는 아빠, 성폭행 당했던일, 학교에서 수치 당한일 등등 여러 가지 요인이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남자친구와 만나면서 트리거가 됐던 것 같아. 그런데도 나는 정말 바보 같게도 아니 내 스스로 내가 등신이라는걸 알면서도 그 사람을 계속 만난 거야
내 빈곳을 채워줄 수 있는 사람이 그 사람밖에 없다고 생각했어
그 불법촬영 사건 이후에는 우리는 관계를 가지지 않았어 나는 의아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냥 그렇게 넘겼어 그러고 이 모든 상황을 다 겪고 나서도 이 사람과 결혼을 했어. 사실 우리 집이 가진 게 너무 없어서 그쪽에서 집도 해주고 혼수도 챙겨주고 그리고 필요시에 쓰라고 생활자금도 주시고 그랬어
나는 내가 가진 돈으로 혼수나 그 외 기타 등등을 메꾸려고 엄청 노력을 했지. 그런데 시어머니는 본인한테 재산이 있고 본인한테 건물이 있는데 그걸 나중에 아들한테 물려줄 생각이다. 그런데 아들이 매달 갚았다라는 증거가 없으면 증여세랑 뭐 상속세 때문에 법에 걸릴 수 있으니 남편이 월급을 타면 그걸 시어머니한테 주고 그리고 시어머니는 그걸 현금으로 찾아서 나한테 주는 방식으로 매달 생활비를 주셨어 남편 월급이 쥐똥만 했는데 한 260정도였고 나한테 주는 돈(우리생활비)은 청년저축 50만원이랑 110만원이었어
거기서 자기 엄마한테 주는 돈이 30 본인 용돈 40
내 생활비, 그러니까 두식구가 살아가는 생활비 한 달에 110만원, 그리고 나는 우울증이 너무너무 심해져서 일을 제대로 할 수가 없어서 시간적으로 여유로울 수 있는 일을 하게 됐고 그 일을 지금도 하고 있는데 그렇게 해서 우리가 서로 맞춰서 한 달에 200으로 생활비를 충당하는 거야 그런데 전기세 수도세 관리비 그 모든 것들뿐만이 아니라 한 달에 두 식구가 먹고 자고 그렇다고 뭐를 아껴서 재료를 가지고 요리를 할 수도 없는 상황이고 자주 시켜 먹기도 하고, 200만 원으로는 생활 하기가 적은 돈이었어 너무 힘들었어. 어느 순간부터는 시어머니가 결혼때 주신 돈으로 조금씩 메꾸다가 점점 펑크가 날 지경인거야.
그런데 나는 좀 위축감이 있었던 게 뭐냐면 내가 남자친구 쪽에서 받은 게 너무 많으니까.. 집도 받고 혼수도 많이 받았고 그렇기 때문에 내가 많은 것을 해오지 못했다는 생각에 어떻게든 그 200만 원을 200만 원 안에서 쓰려고 노력을 했는데 어느 순간 그걸 메꾸는게 너무 버거웠어
그리고 말을 안 한 게 있는데 내가 2019년도부터 독주를 마시기 시작했어
나는 술을 젛아하지 않아. 쓰고 먹기 싫어. 그런데 독주를 마셨던 이유는 내가 잡생각이나 하기 싫은 생각을 할 때 회피하는 내 도피처라고 생각해서 그랬어. 그걸 마시면 걍 기절할 수 있으니까 19년부터 계속 있어왔고 남편도 그 사실을 알았어. 그런데 남편이 보기엔 우리 부모님이 내 보호자가 되기는 힘들것 같고 자기가 보호자가 되겠다고 이야기를 해서 결혼을 하게 됐어.
나는 알코올 중독 상태였어. 맨날 마시는 건 아니었지만 너무 힘들고 어떤 잡 생각들이 날때 때 그걸 마시고 그냥 뻗어 버리는 거야
이 사건이 몇 번 있었고 그때마다 남편은 이혼을 하겠다 관두겠다 장모님이 와서 케어해라 등등의 연락을 계속 했었고 그러고나서 남편은 나를 정신병원에 보냈어. 물론 나는 거기서 꽤 잘 지냈어. 밥도 맛있었고 사람들도 다 좋았고 독주때문에 망가진 몸도 치유하고 말이야.
잘 지내다가 나와서 외래 진료를 받는데, 내가 병원에서 지낼때 IQ 테스트랑 뭐 심리 검사랑 이것저것 테스트를 많이 했는데 그 검사에 대한 결과가 나오는 날이었고 그걸 읽으니까 너무 마음이 힘들고 옛날 기억이 계속 생각이 나서, 독주를 끊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입원도 했었는데 그날 또 마셔버렸어. 그리고 남편이 예전에 술을 마시지 말고 차라리 담배를 피워라라고 얘기한 적도 있기 때문에 내가 담배도 사서 피웠어
그날 남편이 그걸 보고 우리 암마한테 전화해서
‘ㅇㅇ이가 위스키 마신것도 모잘라 담배까지 피네요’ 라고 하면서 못 하겠습니다. 관두겠습니다 라고 얘기를 했어 우리 부모님은 또 놀라서 달려왔는데 나는 술 취한 채로 집에서 쫓겨나서 사실 내가 어떤 상태로 쫓겨났는지는 잘 기억은 안 나는데 엄마 말로는 집 앞에서 맨발로 옷도 제대로 못 껴입고 집 앞에 앉아서 울고 있었다라고 얘기를 하더라고. 그러다가 이제 엄마랑 아빠가 화가 나서 오빠한테 간 거지
부모님의 말은 우리가 도와줄 수는 있겠지만 네가 보호자 역할을 하겠다 결혼 시켜달라고 우리한테 이야기를 했었는데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얘를 집 나가라고 얘기를 한다든가 아니면 우리한테 다 전화를 해서
그만하겠다라는 말로 협박을 한다던지 그런 부분들이 매우 실망스럽다.
이야기를 하니 남편은 본인도 할 말이 많은 건지, 그렇게 마시지 말라 했는데 먹고 정신병원까지 갔다.
갔다왔는데 이런다 이렇게 얘기했는데 아빠가 화가 밤에 밖에서 울고 았던 내 모습에 화가 많이 났있는 상태였어.
이 말까지 하려고 한 건 아닌데 나는 항상 내 딸 편을 안 들고 ㅇ서방 당신 편을 들었다.
그래 남자가 그럴 수 있지 그걸가지고 독주를 마셔서 사람을 힘들게 하냐 늘 딸한테 이렇게 얘기했는데 얘가 지금 이렇게 아픈것에 트리거가 된 건 네가 한 행동들이다 하고 소리를 쳤는데
남편은 ’제가 죗값은 다 받았는데요. 사회봉사도 하고 ‘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이렇게 된게 부모의 책임도 있는거 아니냐 이렇게 얘기했고 아빠가 화가 나서 ‘죗값을받았다고!?’ 하고 남편의 뺨을 때렸어. 그건 무조건 아빠잘못이야 아무리 화가 나도 선찌검을 하면 안됐었는데.. 나는 그와중에 남편의 맞은 뺨이 너무 걱정스럽고 너무 눈물이 나서 괜찮냐고 이렇게 얘기하고 남편은 바로 경찰을 불렀어
그 날은 아빠 엄마가 나보고 나가라고 하지 말고 ㅇ서방 네가 나가라고 얘기했고 그때 남편은 자기 엄마가 있는 집으로 간 거야 새벽이었나 어머니가 소리 소리 지르면서 전화가 왔어
땡땡이가 도대체 너에게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귀하게 키운 자식 손찌검 한번 한적 없는 애가 지금 뺨이 빨갛게 부어올라서 나도 지금 손이 떨리고 입술이 떨린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 하고 나한테 소리 치셨고 결국 그다음 날 가족들이 다 모였어 가족들 다 모이고 지금까지 있었던 부분들에 대해서 하나씩 다 얘기를 하고 있었던 거야
내가 임신 중절했던 이야기 그리고 동거했다는 이야기 그리고 여자 방에 몰래 들어갔던 이야기 그리고 여자 집에서 불법 촬영을 한 이야기, 신혼인데 섹스리스 뭐 그런 이야기들까지 그 이야기뿐만이 아니라 지금이 조선시대도 아닌데 왜 시어머니가 돈을 관리하고 그리고 관리해서 쓸 수 있는 돈도 아니다. 110만 원은 이런이야기..
한 달에 절대 그걸로 살 수가 없다.
그걸 얘기를 하니 이제 시어머니는 나를 보면서 그럴 거면 왜 결혼을 했는데 결혼을 왜 했어 하고 소리를 지르시더라고
나는 할 말이 없었어 내가 계속 옆에 같이 있고 싶으니까 결혼을 한 거라 정말 할 말이 없더라고
그러고 나랑 부모님은 집에서 나와서 본가로 들어갔고 나는 지금 일주일째 요양 중이야 독주를 많이 마셔서 몸살도 계속 있었고 근육통도 계속 있었고
너무 많은 약을 먹어야만 일상생활이 가능할 정도가 됐어 하지만 한 가지 탈출구가 있었어. 남편이 결혼을 하고 남편이 본인이 한 불법촬영 일 때문에 앞으로 관계는 절대 못할것 같다. 우리는 섹스리스 부부가 될 거다 라고 선언을 했어 내가 거기에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 라고는 자존심 때문에 얘기 못했던 것 같아 알겠다고 얘기했어. 그래서 우리 사이에는 아기가 절대로 태어날 수가 없어. 그런데 나는 그 중절에 대한 상실감이 있었고 대신 고양이를 데려와야겠다 해서 우리가 11월에 길고양이를 구조해서 입양했거든.
이 난장판이 일어나기 전에 시어머니가 전화가 와서 고양이 사람처럼 키우면 안 된다고 집에 고양이 용품이 이렇게 많냐고 사람 사는 집 같지 않다고 이제 나한테 화를 내셨어
그래서 일단은 나는 죄송하다고 하고 그냥 끊었는데 이 사단이 나고 나서 너무 몸이 아프고 약도 많이 먹지만 그나마 나의 비상구는 나의 고양이였어 지금도 내 옆에서 자고 있는데 너무 예쁘거든
나는 우리 가족 옆에 있어도 불안하고 남편이랑 있어도 불안해 너무 힘든 상태야 지금 주절주절 이렇게 써봤지만
쓰고 나니까 나 왜 이렇게 등신 같았지 나 왜 그렇게 살았지 우리가 7년을 사귀고 결혼을 했는데 그러니까 내가 바보였던 거야.. 그런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내가 결혼을 한 거니까
남편 어머니도, 우리 부모님도 이혼을 하라고 하고 나는 결혼 1년 만에 이혼 당하는 사람이 돼 버렸는데 그걸 생각하니 더 손이 떨리고 무섭더라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지가...
지금 사는 게 고통스럽고 생각하는 게 고통스러워
친구를 만나면 내가 또 조증이 있어서 너무 좋고 행복하고 재밌고 그렇게 해서 집에 돌아오면 또 남편은 게임하고 있고 남편이랑은 어떠한 대화도 안 되고 소통이 안 되고 공감을 바라도 공감하지 못하는 그런 모습들 로보트 같은 모습들이 있었는데 그냥 내가 어떻게 견디고 살았는지 잘 모르겠어 그리고 그런 허탈감과 상실감이 들 때마다 독주를 마시고 기절했었던 것 같아
남편은 술 담배를 아예 안 하는 사람이라서 그냥 술 먹는 모습조차 다 싫었던 거야
그리고 남편의 이혼 사유는 나의 알콜 중독이고 아빠한테 그 이혼 사유에 대해서 증거물이 있다고 내가 술 마시고 기절했을 때 모습을 찍어 놓은 그런 영상들이 있다고 아빠를 협박했다고 하더라고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나 어디서 부터 어떻게 해야할지, 지금의 내 상태는 약없이 일상이 불가능한데 약을 먹어도 고통스러운데 어떻게 해야할까
어떻게 제목을 적어야 똑똑하신 토커들께서 해결책을 내려 주실 수 있을까요? 제가 지금 온전치 못한 상태라서..
무슨 말을 먼저 해야 할까 거의 처음으로 익명성을 빌려서 내 이야기를 해볼까 해 존대말을 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정말 죄송해요ㅠ 글쓰는게 너무 어렵네요
일단 지금 나의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자면 나는 중증 우울 그리고 양극성장애, 불안장애 환자야. 거기에는 주변 환경과 사람 그리고 나약하게 태어난 나 자신 등등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것 같아
우리 가족 간의 문제도 있었을 것 같고, 예민한 나의 모습도 있었을것이고,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하고 싶은 말은 오랫동안 사귀었던, 그리고 지금은 나의 남편인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
서론이 조금 길것 같아
읽기 힘들면 남편 이야기만 한번만 봐줘
일단 큰일만 몇개 적어볼게
나는 작은 교회 목사님이셨던 친할아버지와 친할머니와 어릴때 함께 살았어. 아빠는 제대로 된 직업이 없었고 엄마는 과외로 생활비를 마련하느라 바빴었어.
따뜻한 마음을 가지셨던 할아버지는 동네의 노숙자들 알콜중독 주정뱅이들을 교회에 데려와서 먹이고 입히셨고 내가 기억하는건 그중 한명이 너무 냄새가 나고 행색이 좋지 못해서 삼촌들이 별명으로 ’박테리아‘ 라고 불렀던게 기억이나. 나쁜 별명이지 정말.. 그때 당시 삼촌들은 학생들이었고 철이 없었어.
그리고 겨울에 술취해서 교회 문앞에서 자다가 동사한 사람도 몇번 봤던 기억이 있어
그때가 나의 4살때 까지의 기억이야
어릴 때 엄마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 과외를 했었고 우리 집에서 했던 일이기 때문에 나의 개인적인 프라이버시는 전혀 없었던 것 같아. 항상 집에 학생들이 왔다갔다 거렸으니깐...
그리고 아빠도 수익이 일정치 못하고 일도 계속 바뀌고 일을 또 다 해내지 못하고 그래서 가정 형편이 많이 좋지 않았어 요즘도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급식비라든지 아니면 고등학교 때 내는 어떤 공과금 같은 거 그런 것들을 한 번도 제때 낸 적이 없어서 늘 행정실에 불려갔던 기억이 있어
아무튼 내가 9살 때 좀 큰 일을 당했는데 그때 엄마는 바빴고 나랑 동생은 다섯 살 차이가 나. 엄마가 동생을 병원에 데려다 주고 오라고 해서 동생을 병원에 데려다 주고 데려 오는 골목길이었어. 그 골목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나. 물론 지금은 재개발을 했지만 내가 기억을해.
그때 한 부부가, 남편과 아기를 업은 아내가 다정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가벼운 스킨십을 하면서 남편은 담배를 피려고 골목에 계속 있고 아내는
다른쪽 골목 끝에 있는 본인의 집으로 들어갔어
근데 그때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동생이 갑자기 그 골목을 막 달려가더라고. 나는 걔를 붙잡으려고 했는데 내 동생을 붙잡기 전에 내가 먼저 붙잡혔어 그 아저씨한테
아저씨는 나한테 ‘이쁘네 공손하네 착하네’ 등의 칭찬을 하며 나의 이름과 학교와 반과 어쨌든 뭐 모든 나에대한 호구조사를 다 했었던 것 같아 그러고 어떠한 설명 없이 갑자기 나에게 키스를 하기 시작했어. 혀를 돌리고 꽉 껴안은 채로 그리고 내 바지랑 팬티를 벗긴 후에 본인의 바지도 벗고 성기를 앞에서 삽입하려고 노력을 했었던 것 같아. 나는 그 행동이 어떤 의미인지도 몰랐고 그냥 공포스러웠기만 했어. 그리고 안 되니까 뒤에서도 나를 뒤로 돌려서 다리 사이에 또 그렇게 했던 것 같아 들어가질 않으니까
이리저리 비비고 나는 그렇게 성폭행을 당한 채 그 사람을 뿌리치고 바지도 제대로 입지 못한 채로 도망쳤어. 아직도 기억이 나는 게 너무 무서운데 너무 무서우면 계속 다리 힘이 풀리잖아
뛰면서 넘어지면서 뛰면서 넘어지면서 정말 많이 넘어지면서 죽을 힘을 다해 뛰어갔던 것 같아
나는 아직도 그렇게 죽을힘을다해 뛰다가 넘어지는걸 반복하는 꿈을 꿔 30대 인데도 말이야
그때 당시 나는 그 행위가 무슨 행위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굉장히 부끄러워야 할 치부라고 생각을 했었고 당연하게도 부모님한테는 얘기하지 않았어 . 그리고 아무한테도 얘기하지 않았어
단지 내가 무서웠던 건 나에 대한 모든 것을 다 물어봤던 아저씨였기에 혹여나 학교에 찾아올까 봐 그게 너무 너무 겁이 나고 불안하고 두려웠던 거야 그게 내가 기억하는 두 번째 인생에서 있었던 큰일이야
대학을 갔는데 남초 학과였고 남자들은 무슨 발정난 개처럼 들이댔고, 여중 여고를 나와서 남자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전혀 몰랐던 나는 정말 마음에도 없는 선배와 사귀게 돼. 근데 사실 오티때였나? 그 학교에 좀 잘생긴 선배가 있었고 술김에 그 선배랑 키스를 하게 됐는데 알고 보니 그 선배는 여자친구가 있었더라고. 그리고 나한테 비밀로 해달라고 하는데 나는 수치스럽고 부끄러워서 빨리 기억에서 지우자 생각을 했고 그리고 얼떨결에 다른 선배랑 사귀게 된 거야. 사귀는 동안이 너무 고통이었고 힘들었고 무엇보다 최악이었던 건 마지막 헤어질 때 ‘야 니 땡땡이랑 잤다매’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끝냈는데 나는 그 사실이 너무 끔찍하고 부끄럽고 숨고만 싶었어. 아 그 선배새끼가 자랑 처럼 애들한테 다 이야기하고 애들도 다 알겠구나 라는 사실에..
이때부터였던 것 같아 나의 우울은. 강박에 시달리고 미친듯이 운동했어 거의 쓰러질듯이..
그러다가 정말 친했던 학교친구가 휴학을 하고 내가 사이비라고 알고 있는 집단에서 살게되고 자퇴를 해. 2학년때 나는 학교를 다니지 못할 정도로 우울증이 정말 심해져서 그때 휴학을 했었던 것 같아
휴학하고 처음엔 우울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만 길 고양이를 입양하고 삶이 좀 달라졌어. 다시 밝은 모습으로 돌아갔고 친구들과 어울리고 공부도 하고 알바도 하고 아주 어른스럽고 나에게 일깨움을 많이 주는 남자친구를 만나서 많이 배울 수 있었어
그 아이를 입양했을때 이미 나이가 좀 들어서 지금은 무지개 다리를 건넜고 펫로스가 너무 심했지만 그 애는 내 인생에서 아주 사랑스럽고 내 삶에 동력을 주는 동생이었어
그리고 이제 현 남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 우리는 2016년도에 처음 만났고 그때 당시 나는 승무원 준비를 하고 있었어. 그때 내가 나이가 좀 있어서 국내보다는 외항사 승무원 준비를 하고 있었고 남편은 공시생이었어 지지리 그지에 궁상일때 만났었어
나는 피임을 늘 철저하게 하는 편이었고 당신 남친이었던 남편은, 본인이 말은 안 하지만 지금까지는 노콘으로 관계를 했었던 것 같아
나는 생리주기가 너무 불규칙해서 정확하지가 않아서 확실한 피임을 해야했어
근데 그때가 가임기였나봐. 관계를 가지다가 조금 놀랐던 건 중간에 콘돔이 빠져버린 거야. 내가 끼워주다가 직접 껴보라고 했는데 남자친구가 자기 스스로 콘돔을 껴본 적이 없어서 제대로 끼우지도 않고 관계를 했던 거지
그러고 나서 얼마 안되서 엄마 나 그리고 동생 이렇게 셋이서 발리 여행을 갔고 갔다가 돌아오는 항공편이었는데 내 표랑 여권 이름이 잘못되어 있는 바람에 시큐리티가 입국을 못하게 붙잡았고, 나 홀로 말레이시아 공항에 남겨졌어. 엄마랑 내 동생 먼저 가버리고 그때 정말 큰일 날 뻔도 했었고 이상한 사람이 계속 쫓아오고 자기 집에 가자는 이상한 남자도 있고 해서 나는 공항 안에 있는 사원에서 잠을 잤고 그리고 호텔을 하루 빌려서 거기서 외항사 비디오 면접을 봤어.
서류는 통과된 상태였고 비디오 면접이 있었는데 비디오 면접을 말레이시아에서 봤고 합격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어. 그때 당시 남자친구가 굉장히 많이 도와주고 금전적으로도 여러모로 도와주고 너무 고맙고 착하고 친절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나봐.
그러고 나서 비디오 면접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기쁜 도중에 생리 날짜가 지난 것 같은데 생리를 하지 않더라고. 나는 그때 콘돔이 빠졌을 때 그때가 계속 마음에 걸렸었는데 혹시나 해서 임태기를 사서 테스트를 해보니 두줄이 나왔어 잘못 나왔을 수도 있으니까 산부인과에서 검사를 해보니까 4주 차라고 하더라고 나는 정말 몰랐어
몸에 이상이 있다거나 그런 것도 내가 못 느꼈었던 것 같아. 어떻게 할까 고민했는데 그때 당시 남자친구는 공시생이었고 나도 취준생이었기 때문에 중절을 결심했어. 돈이 둘 다 없을 땐데 남자친구가 중절 수술 비용을 다 내겠다고 이야기를 했고, 내가 이곳 저곳 산부인과를 다 돌아다녔는데 제일 저렴하게 해주신 곳이 현금으로 65만 원이었어 근데 본인은 30만 원밖에 없대. 충격이지만 어쩔수가 없잖아.. 그래서 내가 돈이 없는데 당시 외항사 과외를 하고 있었고 그 과외비로 충당을 해서 결국 중절을 하게 됐어 그때당시 중절은 불법이었고 나는 커뮤니티라는 곳을 전혀 몰랐기때문에, 내가 겨우 찾아 낸곳이 너무너무 허름하고 너무 오래된 산부인과고 중절 위주로 몰래 하던 곳이었던 것 같아
수술은 세상에 생각 이상으로 너무 고통스러웠고 아팠고 중간에 계속 울면서 ‘그만할게요 그만할게요’ 라고 소리를 지르기 까지 했어. 참고로 이 의사선생님은 처음에는 우리 보고 아기를 낳으라고 계속 설득을 시켰어. 둘이 지금 너무 보기좋고 아기가 정말 이쁠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절을 하게 되면 여자 몸에 너무안 좋기 때문에, 그리고 아기 심장 소리가 들린다고 얘기했어 생명의 소중함을 이야기하려고 했던 거지.
이것에 대해 불편하다면 스루 해줘. 그 의사분이 정말 우리를 생각해서 말한 거라서... 하지만 일단 나는 수술대 위로 올라갔고 그 고통이 너무 끔찍했고 그만해 달라고 울면서 소리 질렀던 게 기억이 나
이게 내 세번째 큰일이야.
2016년 남자친구를 만나기전까지의 나는 정말 활발하고 에너지가 넘치던 사람이었어. 물론 내가 양극성 장애가 있어서 그 기분에 고저가 좀 있는 편이긴 했지만 2016년도에는 취준생이었고 패기가 있었지. 그런데 그렇게 중절 수술을 받고 몸도 제대로 돌보지 못한 채로 나는 서울에 면접을 보러 가게 됐고(부산사람이야) 안타깝게도 1대1 면접에서 떨어지게 됐어 그 이후에도 사실 여러 번 지원을 해봤지만
서류가 된다고 하더라도 토론이나 면접에서 계속 떨어지는 일이 생기고 나는 너무 지치고 돈을 벌고 싶었어. 그렇게 해서 이제 회사 해외 영업팀으로 들어가게 돼 내 수중에 돈이 있으니까 여유롭고 좋더라고... 그때도 남자친구는 공시생이었어
근데 내가 앞에서 이야기 하지 않았던 얘기가 하나 있어 임신 중절을 하고 내가 싱가포르 항공사에서 떨어지고 그리고 그 남자친구는 고시원에 있었어 그때 남자친구의 어머니랑 시누가 우리 사이에 대해서 이상한 말을 밉게 오해하게 조금 자주 하는 것 같았고 그걸 중재하지 못하는 남자친구가 되게 미웠던 것 같아 그게 쌓이고 쌓여서 같은 고시원에 있는 나랑 친한 친구한테 이야기를 했는데, 그 친구가 충격적인 이야기를 했어.
친구가 말하기를 내가 너무 상처를 받을까 봐 내가 너무 충격을 받을까 봐 말을 하지 못했는데 지금에서야 말을 한다고 하면서 이야기를 꺼냈어
남자친구는 그 고시원에서 총무 였는데
CCTV로 여자들 방을 보고 어느 비어있는 여자 방을 들어갔다가 나왔다고 하더라고 안에서 무슨 행동을 했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인데 그 장면을 고시원에 있는 다른 여자가 보게 되었고 그 이야기를 내 친구에게 해준 거야. 나는 이 모든 상황들이 내가 남자친구를 만나고 임신 중절을 하고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몸살을 앓고 취업에서도 낙방을 한 상태에서 그 이야기를 들으니까 너무 가슴이 찢어질 것 같더라고.. 끝낼 생각이었어 그래서 전화해서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있냐 남의 방에 왜 들어가냐 다른 여자 방에 왜 들어가냐 소리를 지르고 헤어지자고 이야기를 했는데 어느 날 장문의 편지가 왔더라고 그런데 이건 내가 등신같이서 욕이 나오겠지만 텍스트로 적지는 말아줘ㅠ 미안해
일단 내가 남자친구를 너무너무 좋아했고 부모에게 받지 못했던 사랑에 대한 결핍이 항상 있었는데 내가 의지하고 날 지탱해주고 나한테 많은 표현을 해줬던 그 남자친구를 잊을 수가 없는 거야. 나는 그 장문의 편지를 받고 다시 연락을 했고 우리는 다시 그렇게 만나게 됐어
그러다가 이제 남자친구는 공시를 그만두고 일을 하게 됐는데 그 일이 힘들어서 또 그만두고 공시 준비를 했어 그때 내가 회사에 취직이 됐었던 거야
남자친구는 나를 회사 앞까지 자주 데리러 왔었고 나한테 많이 힘이 되어 줬고 나는 그 남자친구가 정말 고맙다고 그렇게 느꼈어. 그러다가 내가 집 가까운 대학교에사 교직원을 뽑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쪽에 취직을 하게 됐고 남자친구는 나를 더 자주 보고 싶다라고 생각해서 남자친구 어머니가 내가 일하는 대학교 근처에 자취방을 잡아주셨어. 그러니까 우리는 거의 반 동거 상태였어.(참고로 시어머니는 당시에 모르셨대) 내가 조금힘들고 피곤하면 거기서 쉬고 가고 자주 자고
그 사실을 우리 엄마 아빠도 알고 있었고 그 때가 2018년도였는데 2018년도 7월부터 갑자기
우울증이 너무너무 심하게 왔어. 이유가 없었어. 남자친구랑 계속 싸우게 되고 나는 그냥 걷다가 길에 주저앉아서 울고.. 결국 나는 정신과에서 상담을 받게 됐고 약을 처방받게 됐어
그리고 많이 좋아졌어 이렇게 왔다갔다 하는 기분도 괜찮아졌어
그런데 어느 날 주말이었나? 남자친구 옆에서 자다가 눈을 떠보니 새벽인데 남자친구가 없더라고 근데 쎄한 거 있잖아...전화를 걸어도 연결이 안돼.. 그때가 새벽 대여섯시쯤이었나 했는데 한 8시 9시쯤에 남자친구가 집에 들어왔고 나는 전화도 안 받고 이게 뭐 하는 짓이냐고 이야기를 했는데 남자친구가 갑자기 무릎을 꿇었어 나한테...
내가 무슨 일이냐 왜 그러냐라고 물어보니까 경찰서에 갔다 왔다고 하더라고 나는 심장이 정말 철렁 내려앉을 것 같았고 도대체 뭐 때문에 경찰서에 갔다 왔냐고 이 새벽 시간에!! 하고 물어보니 옆집 여자를 불법 촬영했다고 하더라고 나는 충격이 너무 컸고 이전에 이런 일이 한 번 있었기 때문에 사람은 변하지 않는구나 그렇게 생각해서 헤어지자 했어
사랑했던 기억들이 계속 남아 있고 아프니까 나는 그냥 울면서 술로 지세웠어. 그러다가 이주뒤에 남자친구가 울면서 전화가 왔어. 자기가 다 잘못했다고 자기가 모든 걸 망쳤다고.. 내가 너무 보고 싶은데 본인이 염치가 없어서 전화도 못하고 울기만했다 라고 말하는 걸 내가 또 참지 못하고 다시 만났어.
사건 때문에 그 전셋방에서도 나와야 하는 상황이 된 거야 그 피해자 여자분이 그렇게 해달라고 했고. 미안해 내가 두서가 없지..
아무튼 그러고 방을 빼줬고 나는 우울증이 좀 더 심해졌어 정확하게 말하자면 양극성 장애가 조금 더 심해졌던 것 같아 그리고 불안장애가 생겼어 나는 요인은 여러 가지라고 생각해. 어릴 때 나를 닦달했던 엄마, 가정을 돌보지 않는 아빠, 성폭행 당했던일, 학교에서 수치 당한일 등등 여러 가지 요인이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남자친구와 만나면서 트리거가 됐던 것 같아. 그런데도 나는 정말 바보 같게도 아니 내 스스로 내가 등신이라는걸 알면서도 그 사람을 계속 만난 거야
내 빈곳을 채워줄 수 있는 사람이 그 사람밖에 없다고 생각했어
그 불법촬영 사건 이후에는 우리는 관계를 가지지 않았어 나는 의아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냥 그렇게 넘겼어 그러고 이 모든 상황을 다 겪고 나서도 이 사람과 결혼을 했어. 사실 우리 집이 가진 게 너무 없어서 그쪽에서 집도 해주고 혼수도 챙겨주고 그리고 필요시에 쓰라고 생활자금도 주시고 그랬어
나는 내가 가진 돈으로 혼수나 그 외 기타 등등을 메꾸려고 엄청 노력을 했지. 그런데 시어머니는 본인한테 재산이 있고 본인한테 건물이 있는데 그걸 나중에 아들한테 물려줄 생각이다. 그런데 아들이 매달 갚았다라는 증거가 없으면 증여세랑 뭐 상속세 때문에 법에 걸릴 수 있으니 남편이 월급을 타면 그걸 시어머니한테 주고 그리고 시어머니는 그걸 현금으로 찾아서 나한테 주는 방식으로 매달 생활비를 주셨어 남편 월급이 쥐똥만 했는데 한 260정도였고 나한테 주는 돈(우리생활비)은 청년저축 50만원이랑 110만원이었어
거기서 자기 엄마한테 주는 돈이 30 본인 용돈 40
내 생활비, 그러니까 두식구가 살아가는 생활비 한 달에 110만원, 그리고 나는 우울증이 너무너무 심해져서 일을 제대로 할 수가 없어서 시간적으로 여유로울 수 있는 일을 하게 됐고 그 일을 지금도 하고 있는데 그렇게 해서 우리가 서로 맞춰서 한 달에 200으로 생활비를 충당하는 거야 그런데 전기세 수도세 관리비 그 모든 것들뿐만이 아니라 한 달에 두 식구가 먹고 자고 그렇다고 뭐를 아껴서 재료를 가지고 요리를 할 수도 없는 상황이고 자주 시켜 먹기도 하고, 200만 원으로는 생활 하기가 적은 돈이었어 너무 힘들었어. 어느 순간부터는 시어머니가 결혼때 주신 돈으로 조금씩 메꾸다가 점점 펑크가 날 지경인거야.
그런데 나는 좀 위축감이 있었던 게 뭐냐면 내가 남자친구 쪽에서 받은 게 너무 많으니까.. 집도 받고 혼수도 많이 받았고 그렇기 때문에 내가 많은 것을 해오지 못했다는 생각에 어떻게든 그 200만 원을 200만 원 안에서 쓰려고 노력을 했는데 어느 순간 그걸 메꾸는게 너무 버거웠어
그리고 말을 안 한 게 있는데 내가 2019년도부터 독주를 마시기 시작했어
나는 술을 젛아하지 않아. 쓰고 먹기 싫어. 그런데 독주를 마셨던 이유는 내가 잡생각이나 하기 싫은 생각을 할 때 회피하는 내 도피처라고 생각해서 그랬어. 그걸 마시면 걍 기절할 수 있으니까 19년부터 계속 있어왔고 남편도 그 사실을 알았어. 그런데 남편이 보기엔 우리 부모님이 내 보호자가 되기는 힘들것 같고 자기가 보호자가 되겠다고 이야기를 해서 결혼을 하게 됐어.
나는 알코올 중독 상태였어. 맨날 마시는 건 아니었지만 너무 힘들고 어떤 잡 생각들이 날때 때 그걸 마시고 그냥 뻗어 버리는 거야
이 사건이 몇 번 있었고 그때마다 남편은 이혼을 하겠다 관두겠다 장모님이 와서 케어해라 등등의 연락을 계속 했었고 그러고나서 남편은 나를 정신병원에 보냈어. 물론 나는 거기서 꽤 잘 지냈어. 밥도 맛있었고 사람들도 다 좋았고 독주때문에 망가진 몸도 치유하고 말이야.
잘 지내다가 나와서 외래 진료를 받는데, 내가 병원에서 지낼때 IQ 테스트랑 뭐 심리 검사랑 이것저것 테스트를 많이 했는데 그 검사에 대한 결과가 나오는 날이었고 그걸 읽으니까 너무 마음이 힘들고 옛날 기억이 계속 생각이 나서, 독주를 끊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입원도 했었는데 그날 또 마셔버렸어. 그리고 남편이 예전에 술을 마시지 말고 차라리 담배를 피워라라고 얘기한 적도 있기 때문에 내가 담배도 사서 피웠어
그날 남편이 그걸 보고 우리 암마한테 전화해서
‘ㅇㅇ이가 위스키 마신것도 모잘라 담배까지 피네요’ 라고 하면서 못 하겠습니다. 관두겠습니다 라고 얘기를 했어 우리 부모님은 또 놀라서 달려왔는데 나는 술 취한 채로 집에서 쫓겨나서 사실 내가 어떤 상태로 쫓겨났는지는 잘 기억은 안 나는데 엄마 말로는 집 앞에서 맨발로 옷도 제대로 못 껴입고 집 앞에 앉아서 울고 있었다라고 얘기를 하더라고. 그러다가 이제 엄마랑 아빠가 화가 나서 오빠한테 간 거지
부모님의 말은 우리가 도와줄 수는 있겠지만 네가 보호자 역할을 하겠다 결혼 시켜달라고 우리한테 이야기를 했었는데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얘를 집 나가라고 얘기를 한다든가 아니면 우리한테 다 전화를 해서
그만하겠다라는 말로 협박을 한다던지 그런 부분들이 매우 실망스럽다.
이야기를 하니 남편은 본인도 할 말이 많은 건지, 그렇게 마시지 말라 했는데 먹고 정신병원까지 갔다.
갔다왔는데 이런다 이렇게 얘기했는데 아빠가 화가 밤에 밖에서 울고 았던 내 모습에 화가 많이 났있는 상태였어.
이 말까지 하려고 한 건 아닌데 나는 항상 내 딸 편을 안 들고 ㅇ서방 당신 편을 들었다.
그래 남자가 그럴 수 있지 그걸가지고 독주를 마셔서 사람을 힘들게 하냐 늘 딸한테 이렇게 얘기했는데 얘가 지금 이렇게 아픈것에 트리거가 된 건 네가 한 행동들이다 하고 소리를 쳤는데
남편은 ’제가 죗값은 다 받았는데요. 사회봉사도 하고 ‘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이렇게 된게 부모의 책임도 있는거 아니냐 이렇게 얘기했고 아빠가 화가 나서 ‘죗값을받았다고!?’ 하고 남편의 뺨을 때렸어. 그건 무조건 아빠잘못이야 아무리 화가 나도 선찌검을 하면 안됐었는데.. 나는 그와중에 남편의 맞은 뺨이 너무 걱정스럽고 너무 눈물이 나서 괜찮냐고 이렇게 얘기하고 남편은 바로 경찰을 불렀어
그 날은 아빠 엄마가 나보고 나가라고 하지 말고 ㅇ서방 네가 나가라고 얘기했고 그때 남편은 자기 엄마가 있는 집으로 간 거야 새벽이었나 어머니가 소리 소리 지르면서 전화가 왔어
땡땡이가 도대체 너에게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귀하게 키운 자식 손찌검 한번 한적 없는 애가 지금 뺨이 빨갛게 부어올라서 나도 지금 손이 떨리고 입술이 떨린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 하고 나한테 소리 치셨고 결국 그다음 날 가족들이 다 모였어 가족들 다 모이고 지금까지 있었던 부분들에 대해서 하나씩 다 얘기를 하고 있었던 거야
내가 임신 중절했던 이야기 그리고 동거했다는 이야기 그리고 여자 방에 몰래 들어갔던 이야기 그리고 여자 집에서 불법 촬영을 한 이야기, 신혼인데 섹스리스 뭐 그런 이야기들까지 그 이야기뿐만이 아니라 지금이 조선시대도 아닌데 왜 시어머니가 돈을 관리하고 그리고 관리해서 쓸 수 있는 돈도 아니다. 110만 원은 이런이야기..
한 달에 절대 그걸로 살 수가 없다.
그걸 얘기를 하니 이제 시어머니는 나를 보면서 그럴 거면 왜 결혼을 했는데 결혼을 왜 했어 하고 소리를 지르시더라고
나는 할 말이 없었어 내가 계속 옆에 같이 있고 싶으니까 결혼을 한 거라 정말 할 말이 없더라고
그러고 나랑 부모님은 집에서 나와서 본가로 들어갔고 나는 지금 일주일째 요양 중이야 독주를 많이 마셔서 몸살도 계속 있었고 근육통도 계속 있었고
너무 많은 약을 먹어야만 일상생활이 가능할 정도가 됐어 하지만 한 가지 탈출구가 있었어. 남편이 결혼을 하고 남편이 본인이 한 불법촬영 일 때문에 앞으로 관계는 절대 못할것 같다. 우리는 섹스리스 부부가 될 거다 라고 선언을 했어 내가 거기에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 라고는 자존심 때문에 얘기 못했던 것 같아 알겠다고 얘기했어. 그래서 우리 사이에는 아기가 절대로 태어날 수가 없어. 그런데 나는 그 중절에 대한 상실감이 있었고 대신 고양이를 데려와야겠다 해서 우리가 11월에 길고양이를 구조해서 입양했거든.
이 난장판이 일어나기 전에 시어머니가 전화가 와서 고양이 사람처럼 키우면 안 된다고 집에 고양이 용품이 이렇게 많냐고 사람 사는 집 같지 않다고 이제 나한테 화를 내셨어
그래서 일단은 나는 죄송하다고 하고 그냥 끊었는데 이 사단이 나고 나서 너무 몸이 아프고 약도 많이 먹지만 그나마 나의 비상구는 나의 고양이였어 지금도 내 옆에서 자고 있는데 너무 예쁘거든
나는 우리 가족 옆에 있어도 불안하고 남편이랑 있어도 불안해 너무 힘든 상태야 지금 주절주절 이렇게 써봤지만
쓰고 나니까 나 왜 이렇게 등신 같았지 나 왜 그렇게 살았지 우리가 7년을 사귀고 결혼을 했는데 그러니까 내가 바보였던 거야.. 그런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내가 결혼을 한 거니까
남편 어머니도, 우리 부모님도 이혼을 하라고 하고 나는 결혼 1년 만에 이혼 당하는 사람이 돼 버렸는데 그걸 생각하니 더 손이 떨리고 무섭더라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지가...
지금 사는 게 고통스럽고 생각하는 게 고통스러워
친구를 만나면 내가 또 조증이 있어서 너무 좋고 행복하고 재밌고 그렇게 해서 집에 돌아오면 또 남편은 게임하고 있고 남편이랑은 어떠한 대화도 안 되고 소통이 안 되고 공감을 바라도 공감하지 못하는 그런 모습들 로보트 같은 모습들이 있었는데 그냥 내가 어떻게 견디고 살았는지 잘 모르겠어 그리고 그런 허탈감과 상실감이 들 때마다 독주를 마시고 기절했었던 것 같아
남편은 술 담배를 아예 안 하는 사람이라서 그냥 술 먹는 모습조차 다 싫었던 거야
그리고 남편의 이혼 사유는 나의 알콜 중독이고 아빠한테 그 이혼 사유에 대해서 증거물이 있다고 내가 술 마시고 기절했을 때 모습을 찍어 놓은 그런 영상들이 있다고 아빠를 협박했다고 하더라고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나 어디서 부터 어떻게 해야할지, 지금의 내 상태는 약없이 일상이 불가능한데 약을 먹어도 고통스러운데 어떻게 해야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