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환자의 이야기

쓰니2023.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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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28살 남성입니다.우선 이야기가 길어집니다 이야기가 하고 싶은데 일대기를 적어야 합니다.부모님도 친구에게도 이야기가 하기 힘들어서 이렇게 적어봅니다.현재 저는 우울증으로 인하여 정신병원에 다니고 있고 수면제가 없으면 잠을 자지 못하며검사결과만 보았을 때 자해나 자살시도를 하게 되면 입원을 해야 하는 수치라고 합니다.나보다 더 힘든사람이 있을꺼다 나는 사지가 멀쩡한데 나보다 더 불행한 사람이 있을거다.항상 이렇게 살아왔는데 불면증으로 인해 수면제를 처방 받기 위해 병원을 내원 하였지만 검사로 인해 제 속 마음이 나오게 된 후부터 하루하루가 너무 힘이 듭니다.
저는 5살때 부터 11살까지 부모님이 맞벌이로 인해 부모님과 떨어져 이모에게 자라왔습니다.12살이 되는 해 부모님과 같이 지내게 되었고 집안사정이 어려워 15살부터 부모님의 동의를 얻고 아르바이트로 용돈벌이을 하며 지냈습니다.고등학교를 진학할때 빨리 취직을 해 돈을 벌고 싶다는 마음에 특성화고등학교 조리학과를 지원해 진학을 했습니다 학교 거리도 있다보니 알바를하며 차비와 용돈을 쓰고 있었는데 학교가 조리학교다 보니 재료비도 들어가고 또한 학교에서 저보다 가정환경이 어려운 가족이 많아 급식비를 지원받지 못해 부모님이 급식비를 못 내주실 때 저에게 독촉을 하여 제가 대신 내면서 다녔습니다. 조리학교다 보니 조리부가 있었는데 카빙부에 들어가 열심히 부 활동을 하며 어느덧 차장과 부장 자리를 맡게 되었고 대회도 나가게 되어 준비를 하게됩니다.카빙은 과일에 조각칼로 조각하여 그림 혹은 모형을 만드는데 거의 수박을 사용했습니다.하지만 그 해에 수박값이 4배로 오르고 알바로 대회준비 재료를 사던 저는 대회를 포기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커피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어 세계 커피대회에서 테이스팅 무소속으로 입상하신 선생님의 재능기부로 커피도 배우게 되었는데 나름 재능이 있어 같이 대회 가보지 않겠냐고 제안을 받았고무소속이다 보니 어디에서 지원도 받을 수 없어 오로지 사비로 진행해야 하는데 그게 외국이기도 하고 비용도 만만치 않아 포기하게 되었습니다.부모님께 저의 애매한 재능으로 부담감을 가지게 해드리고 싶지 않았습니다.6개월차에 정식 월급을 받기 시작할 때 제 상사 분들이 줄줄히 퇴사를 하기 시작하였고 20살이 되던 해에 주임이라는 직급을 달았습니다.하지만 그 회사는 취직생 신분으로 싼값에 직원을 돌려가는 회사였고 저 처럼 요리를 전공하는게 아닌 요리가 하고싶어서 취미로 신청하는 취업생들이 많았고 그 취업생들에 인한 실수는 오로지 저에게 비난이 왔습니다.또한 매장을 두 곳 도곡점과 잠실점을 관리를 해야했던 저는 쉬는날 까지 반납하며 매장을 돌아다니며 관리를 하였고 너무 지친 나머지 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3주뒤에 다른 곳 으로 취직하게 되었고 특정 지점에서 근무를 하다가 다른 매장을 이전을 해 오픈 할 예정인데 같이 근무하는 친한 누나와 함께 일하라고 부 주방장과 연봉 인상을 약속을 받고 지점 이동을 했습니다.주방과 홀 설거지를 포함해 정말 누나와 단 둘이서 영업을 하였고 두명에서 정말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하지만 매출은 오르지 않고 두명은 점점 지쳐갔지만 매출이 오르지 않았단 이유로 연봉인상은 취소되었고 매출인상후엔 연봉인상을 약속 받았습니다.정말 쉬는날 에도 최소한의 재료비를 줄여보려 인터넷과 거래업채 미팅을 하고 신메뉴 개발까지 했습니다. 신 메뉴 개발과 원재료 가격인하로 인해 매달 매출이 20%씩 상승을 했지만 직원은 여전히 두명이였고 많이 지쳐갔을 때 알바생에게 전화가 오더라구요 (너무 바쁜시간 3시간 파트타임 알바를 고용) 대표님 께서 제 짐을 뒤져 레시피노트(거래업체 번호 와 학생때 부터 적어온 노트)를 가져갔다가 잠시후에 다시 넣어 놨다고너무 큰 배신감을 느낀 저는 같이 일하던 누나와 퇴사를 하게 되었고 군 입대를 했습니다.군대에서 전역일이 가까워 질수록 사회가 너무 무섭다고 느낀 저는 전문하사에서 단기하사로 넘어가자 라는 생각을해 전문하사 시험과 체력단련을 모두 합격하고면접만 남은 상태였습니다.하지만 정권이 바뀌며 군인 축소와 전문하사 폐지소식에 저의 면접은 그대로 취소되었고전역하게 되었습니다.전역을 하게 되자 친구의 사촌형이 창업을 하는데 도와 달라는 연락을 받고 열심히 일했습니다.생선을 팔다 보니 새벽에 노량진을 가서 경매해서 가지고 온 뒤 손질후 퇴근하고 정말 열심히 일했지만 급여가 점점 안들어 오더니 결국 급여를 받지 못 했습니다.신고 할거면 신고 해봐라 라고 배짱을 부리자 정말 저는 노동청에 신고를 하였고노동청에서는 급여 미입금을 인정하였으며 출석을 요구하자 출석을 하지 않아 고소를 진행해야 하는데 직접 해야 한다 노동청에서 해줄 수 있는게 없다. 라는 답변을 듣고시간도 아깝고 3개월치 급여지만 선임비용도 아까워 포기했습니다.요리라는 세계에 경멸을 느낀 나머지 이모부의 권유로 전기 공부를 하게 마음을 먹었습니다.4대 보험을 들지 않는 곳에서 아르바이트와 공부를 병행했으며직업학교에 면접을 보고 합격통보를 받아 내일배움카드를 제출하면 입학하는 단계까지 갔습니다.내일배움카드가 제가 살고있는 지역구는 실업자 3개월 유지후 발급이 가능했는데 아르바이트 한 곳이 4대보험중 고용보험만 가입이 되어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면접을 진행한 매니저도 모르고 있던 상황) 그로 인해 발급이 매우 늦어지다 보니 입학취소를 당하게 되었습니다.그 후 다음년엔 퇴사후 바로 발급으로 정책이 바뀌었습니다.공부한게 아까워 소방2급 안전관리자 자격증과 위험물 안전 관리자격증을 취득후에 건물관리 회사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3교대로 인한 주간 당직 비번근무였고 당직때 학점은행제를 통해 공부를 병행 했습니다.건물이 너무 노후화 되어있어 소방설비 오작동으로 인해 자주 잠을 자지 못하기도 했고 또한 같이 일하는 불량 근무자로 인해 나이가 가장 어리다는 이유로 모든 대체 근무에 제가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때 저의 몸은 완전 박살이 나기 시작했고 급격하게 오른 체중과 피로로 인해 잇몸에 염증이 생기고 그 염증이 고름으로 변해 잇몸을 녹여 임플란트 중입니다.회사를 다니던 중 할아버지의 병원 입원으로 인해 돈 문제가 심각히 발생하였고외 가족끼리의 다툼을 지켜보는 저는 천만원 가량 대출을 받아 200만원을 뺀 800만원을 부모님께 드렸습니다.그 돈으로 병원비며 간병인이며 해결했습니다.회사 생활을 하던 와중 친구와 자영업을 결심을 했지만 수중에 가지고 있는 돈이 있지 않아부모님께 상담을 했습니다.어머니께서 할아버지 일도 있고 저에게 2천만원을 주시겠다고 해보는게 좋지 않냐고 이야기를 해친구는 다른지점에 저는 동내에서 장사를 하기로 결심을 합니다.망하면 공장에 들어가서 빚을 갚던 원양어선을 타던 30대 전에 시작해야 다시 일어설수 있다는 마음으로요어머니께서 시간이 좀 걸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배달음식 장사이다 보니 거리두기 해제전에 자리를 잡자 라는 심정으로 2200만원 대출을 받고 가게를 계약후에 회사에 사직서를 내고 근무기간의 휴무날 마다 가게에 나와 직접 공사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전기배선 공사며 후드며 모든 것을 중고로 구매해 동선부터 페인트칠까지 직접 하게되었습니다.기대하던 오픈 하던 달에 코로나 거리두기 해제 소식과 러시아 전쟁이 터졌습니다.그 후에 어머니가 주시겠다고 했던 2천만원의 소식은 어머니가 다단계 코인으로 인한 돈인걸 알았습니다.2천만원을 못 받는다는 사실보다는 너무 위험한 일이다 보니 어머니를 말렸고 결국 2천만원은 휴지가 되었습니다.오픈전에 제가 받았던 2200으로 인한 공사비 및 보증금으로 나갔고 유지비라고 생각했던 2천만원이 없어그래도 열심히 해보자는 마음으로 버텼습니다.공격적인 광고도 해보고 한가한 시간대에 근거리 배달은 직접해 배달비도 낮춰보고별점과 평점 단골 수는 매우 높지만 하루하루 매출이 좋지가 않습니다.광고비는 광고비대로 나가고 물가는 너무 오르고 또한 식재료비 만큼의 배달비까지한번 판매하는데 15000원에 판매를 하면 결제 수수료, 광고비, 중계비, 배달비, 원자재비까지 빼면 3~5천원 사이 법니다.개인업장이다 보니 광고를 하지 않으면 주문도 들어오지 않고 빠르게 포기하라 했지만 애매하게 포기하게 되면 제가 또 시도를 할거 같아 후회없이 하려고 추가대출까지 2번 더 받았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대출이 불가능 합니다.거의 본전을 유지하며 운영을 하던 와중 몸 건강이 악화되어 병원비와 등 비용이 그대로 마이너스가 되기 시작합니다.매출은 점점 더 안 좋아지기 시작하는데 이건 제 음식에 문제가 아닌 현저히 줄어들고 있는 배달시장으로 인한 매출 감소입니다.

지금까지가 지금 상황입니다.누군가는 포기를하고 다른 일을 하라고 합니다.저는 이것 마저 포기하게 된다면 다른 무언갈 할 자신이 없어졌습니다.처음 시작시 생각했던거와 달리 이것 마저 포기하게 되면 제가 모든걸 포기 해버릴거 같아꾸역꾸역 유지하고 있습니다.이 모든 일들을 큰 사건 말고는 부모님도 거의 모릅니다.친한 친구들도 모릅니다,그냥 나보다 더 불행한 사람 더 힘든사람이 있다 라는 생각으로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하지만 최근에 병원을 다녀오고 나서 부터 병원에서 부모님께 꼭 이야기를해 관리가 필요하다고 해 부모님께 검사결과를 알려드렸더니 세상 살면 다 그렇다 자신도 하루하루 죽고싶다. 라는 말씀을 하셨고 제 2의부모님 이라고 생각하는 이모도 지금 그냥 상황이 좋지 않아서 그렇게 생각 하는거다. 다 똑같이 산다 라고 이야기를 합니다.맞습니다.세상은 원래 계획대로 되지 않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고 나만 힘든게 아닙니다.그렇기에 알리지 않았고 그렇게 저의 우울증은 중학생때 부터 지금까지 진행되다 장사로 인해 터저버린거죠중학생 때는 내가 사춘기여서 고등학생 때는 사춘기다.20대 초반에는 원래 20대 초반에 고생해야지전역 후에는 전역 후는 뭐든지 해야지 이 생각으로 누구에게도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다 힘드니까 힘드는게 당연한거야제 상태는 부모님도 아닌 친구들이 먼저 알아 병원을 끈질기게 권유 하였고 내원을 하게 된겁니다.평생을 꾹꾹 눌러담아 왔는데 한번의 심리상담으로 인해 제가 담아왔던게 터져버리게 됩니다.친구들의 안부 전화와 이모의 매일마다 해주시는 전화다 저를 위해서 해주는거 누구보다 잘 압니다.하지만 지금은 그게 제일 힘듭니다.병원을 내원하고 나서 이 모든 일들을 다 아는 친구가 딱 한명 있는데 그 친구에게 안부전화가 왔을때 이 정도면 세상에서 나를 살지 말라고 하는데 내가 살아 가는게 내가 태어난게 죄가 아닐까 하며 울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가게에 있는 노트북으로 이렇게 글을 적고 있습니다.자살생각을 하루에도 수도 없이 많이 합니다.죽고싶은 이유는 그냥 편해지고 싶은 게 답니다.머리속에 너무 슬퍼할 아버지와 이모가 머리속에 그려집니다 그래서 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하게 되면 편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너무 나도 말하고 싶지만 또 주변사람들이 신경쓸까 여기에다 적어봅니다.
내일이 너무 무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