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평균 3-4개, 많게는 10개 이상의 학원을 다니고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공부한다. 수면시간은 다른 나라 아이들에 비해 턱없이 낮다.
이 현상과 한국인이 게임을 잘하는 것, 한국의 아이돌이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것이 무슨 관련이 있는가하면, 바로 자기통제력과 자아효능감이 그 인과관계의 중심에 있다. 자기통제력은 인간이 자기 스스로 노력을 투입하고 노력할 수 있는 능력이고 자아효능감은 그 투입한 노력 대비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었을 때 행복감을 느끼는 인간의 생존에 있어 본질적인 기능이다. 지금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이 게임을 잘하는 한국인들은 평균적으로 90년대-00년대생의 우리나라 사람, 즉 이젠 질리도록 언급되는 ‘mz세대’를 칭한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지나치게 높은 학구열은, 학생들에게 너무나도 높은 기준에 자신을 맞출 것을 요구한다. sky, 인서울, 지잡대 등등 대학교에 관해 묘사하는 신조어들이 많다.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들을 보면 그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의 가치관이 어떨 지 알 수 있는 법이다. 우리 사회에서 Sky, 명문대는 하늘과 같은 신적인 학교이고, 지방대는 같은 대학교임에도 같지가 않다. 잡스러운 학교다. 우리 사회에서 명문대를 나온다는 것은 곧 좋은 직장, 높은 보수, 안정적인 노후, 보장된 인생을, 지방대를 나오거나 혹은 대학 진학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렇지 못한 것들을 의미한다. 공부를 못하면 거의 인생을 말아먹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것 같다. 당장 필자도 독자도 비슷한 나이대일테니 한 번 생각해보자. 어린 시절 우리는 한번쯤 ‘나는 서울대 무조건 가지’ 이런 생각을 해보았지 않는가?
이렇게 mz세대는 부모님의 세대로부터 단일화된 가치를 주입받았다. 그 방식은 다양하다. ‘공부해라’. ‘옆집 누구는 명문대에 갔다더라.’ 그리고 좋은 성적을 받지 못한 나에 대한 시선.
그래서 우리는 공부했다. 가장 어린나이부터 받아쓰기를 공부했고 구구단을 공부했고 파닉스를 뗐다. 그리고 초등학교에 입학. 엄마들의 치맛바람 틈에서 인정받으려 공부한다. 해가 떠있을 떄는 학교에서 공부하고 해가 지면 학원에서 공부한다. 나이는 9살이다. 각종 경시대회는 물론이거니와 이유를 불문하고 무작정 한자를 외운다. 금, 은, 동상을 탄다. 금상을 타고 집에 가면 역시 우리딸, 우리아들, 뭐갖고싶니, 뭐먹고싶니, 세상의 왕이 된 것처럼 대우를 받는다. 은상을 타고 집에 가면 그래도 잘했다, 노력했구나, 다음엔 더 잘해보자. 조금 부족한 대우를 받는다. 동상과 장려상은 거의 없는 상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중학교, 고등학교에 간다. 살면서 처음 받아보는 점수를 받는다. 그리고 집에 가면 전쟁이 난 것마냥 난리가 나거나 무서우리만큼 조용하고 싸늘하다. 그러나, 모든 시험에서 우리의 노력, 나의 노력의 양은 달라진 적이 없었다. 항상 노력했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더 노력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실패했다. 나의 노력은 실패했다.
우리 세대의 자기통제력과 자아효능감은 그래서 다음 타겟을 찾는다. 나의 노력과 시간이 보상 받을 수 있는 곳. 내가 얻고자 했던 것들을 얻을 수 있고 내가 원하는대로 할 수 있는 곳. 공부해야하는 현실이 아닌 다른 세상을 찾는다. 외모를 꾸미는데 치중한다거나, 유행에 민감해지고, 춤이나 운동, 게임에 빠진다거나 심지어는 학교폭력의 가해자가 된다. 이런 행동들의 공통점은 하나다. ‘내가 하고싶은대로 일이 쉽게 풀리는 세상’으로의 일탈이다. 공부를 하면서 얻게된 인내심과 노력, 몰입력, 각종 능력들을 전부 그 세상에서 발휘한다. 억압을 많이 받았던 아이들은 그만큼 다른 세상에서 보상받고 인정받기위해 더 큰 노력을 하고 아주 높은 성과를 거둔다. 또 그 세상들 속에서도 서로 경쟁하고 발전한다. 그리고 그 세상들 중 우리 사회에서 인정받고 성장하고있는 분야가 아이돌문화와 스포츠게임이다.
여기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mz세대의 ‘공부를 요구받는 사회’로부터 일탈과 아이돌-게임 분야에서의 경쟁이 있었다. 쉽게 말하면, 점심시간, 쉬는시간마다 춤추고 화장하기. 야자째고 친구들이랑 피시방가기. 이런 것들이다. 춤추고 꾸미기를 좋아하는 무리는 그 중에서도 더 매력적이고 더 예뻐지길 원한다. 게임하기를 좋아하는 무리는 골드, 플래티넘을 넘어서 다이아를 꿈꾼다. 이들은 그 세상속에서 기쁘다. 열심히 하면 되고, 모두의 부러움을 살 수 있으니까. 자신의 행복을 찾을 수 있다. ‘공부를 요구받는 세상’에서 보다는 훨씬 쉽게 말이다. 우리 부모님세대의 분들은 그런 우리를 못마땅한 시선으로, 뭔가에 홀린 것 같다는 선입견으로 바라본다. 잔소리를 한다. mz세대를 꾸짖는다. 그러나 mz세대는 말을 듣지 않고 반항한다. 부모님세대는 나의 자아를 존중해주지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지 않고, 행복하게 해주지 않기 때문에.
그러나 사실 말안듣고 반항하면 다행이다. 이러한 다른 세상으로의 도망이 ‘삶’의 안에 있다면. 하루에 11명의 20-30대 청년이 고독사한 채로 발견된다. 하루에 10만명당 2.7명의 아동 및 청소년들이 자살로 목숨을 잃는다. 그들은 고분고분, 착하게 크다가 자신을 비관하며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가장 소중한 자신의 목숨을 잃는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이 있는데 자살은 절대 선택이 아니다. 사회 분위기의 ‘성공’을 가장한 심리적인 억압과 감당하기 어려운 스트레스, 눈뜨고 있는 모든 시간 느끼는 너무나 커진 불행과 고통으로 인해 사망하는 것이다. 이건 갑작스레 터지는 사건이 아닌 만성적인 질병과 다름없다. 그것도 사회 전체적으로 유행병처럼 돌아다니는.
결론은 이렇다. 아이돌문화, 스포츠게임분야의 비약적인 성공과 발전은 좋게만 볼 것이 아니다. mz세대의 이러한 성과는 오히려 우리 사회의 젊은이들이 얼마나 병들어 있는지, 우리 사회의 윗세대에서 공부와 성공이라는 이상적인 말로 얼마나 많은 가치와 다양성을 억압하고 획일화시켰는지, 그 과정에서 깊어진 상처가 얼마나 깊었길래 그만큼 커진 보상으로서 전 세계적인 성공과 발전을 거둔 것인지를 보여주는 단초다. 오히려 그 성과의 정도는 한국 청년의 자살률과 같은 방향의 척도로 보아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말하고싶다. 우리 세대를 포함해 지금도 자라고있는 청소년과 아이들에게, 윗세대의 그늘에 가려 외롭고 힘들게 혼자 싸우지 말라고. 너는 태어난 그대로 소중하고 한없이 자유롭다고.
아이돌, 게임, 자살률
한국은 학구열이 과도하게 높다.
아이들은 평균 3-4개, 많게는 10개 이상의 학원을 다니고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공부한다. 수면시간은 다른 나라 아이들에 비해 턱없이 낮다.
이 현상과 한국인이 게임을 잘하는 것, 한국의 아이돌이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것이 무슨 관련이 있는가하면, 바로 자기통제력과 자아효능감이 그 인과관계의 중심에 있다. 자기통제력은 인간이 자기 스스로 노력을 투입하고 노력할 수 있는 능력이고 자아효능감은 그 투입한 노력 대비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었을 때 행복감을 느끼는 인간의 생존에 있어 본질적인 기능이다. 지금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이 게임을 잘하는 한국인들은 평균적으로 90년대-00년대생의 우리나라 사람, 즉 이젠 질리도록 언급되는 ‘mz세대’를 칭한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지나치게 높은 학구열은, 학생들에게 너무나도 높은 기준에 자신을 맞출 것을 요구한다. sky, 인서울, 지잡대 등등 대학교에 관해 묘사하는 신조어들이 많다.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들을 보면 그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의 가치관이 어떨 지 알 수 있는 법이다. 우리 사회에서 Sky, 명문대는 하늘과 같은 신적인 학교이고, 지방대는 같은 대학교임에도 같지가 않다. 잡스러운 학교다. 우리 사회에서 명문대를 나온다는 것은 곧 좋은 직장, 높은 보수, 안정적인 노후, 보장된 인생을, 지방대를 나오거나 혹은 대학 진학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렇지 못한 것들을 의미한다. 공부를 못하면 거의 인생을 말아먹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것 같다. 당장 필자도 독자도 비슷한 나이대일테니 한 번 생각해보자. 어린 시절 우리는 한번쯤 ‘나는 서울대 무조건 가지’ 이런 생각을 해보았지 않는가?
이렇게 mz세대는 부모님의 세대로부터 단일화된 가치를 주입받았다. 그 방식은 다양하다. ‘공부해라’. ‘옆집 누구는 명문대에 갔다더라.’ 그리고 좋은 성적을 받지 못한 나에 대한 시선.
그래서 우리는 공부했다. 가장 어린나이부터 받아쓰기를 공부했고 구구단을 공부했고 파닉스를 뗐다. 그리고 초등학교에 입학. 엄마들의 치맛바람 틈에서 인정받으려 공부한다. 해가 떠있을 떄는 학교에서 공부하고 해가 지면 학원에서 공부한다. 나이는 9살이다. 각종 경시대회는 물론이거니와 이유를 불문하고 무작정 한자를 외운다. 금, 은, 동상을 탄다. 금상을 타고 집에 가면 역시 우리딸, 우리아들, 뭐갖고싶니, 뭐먹고싶니, 세상의 왕이 된 것처럼 대우를 받는다. 은상을 타고 집에 가면 그래도 잘했다, 노력했구나, 다음엔 더 잘해보자. 조금 부족한 대우를 받는다. 동상과 장려상은 거의 없는 상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중학교, 고등학교에 간다. 살면서 처음 받아보는 점수를 받는다. 그리고 집에 가면 전쟁이 난 것마냥 난리가 나거나 무서우리만큼 조용하고 싸늘하다. 그러나, 모든 시험에서 우리의 노력, 나의 노력의 양은 달라진 적이 없었다. 항상 노력했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더 노력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실패했다. 나의 노력은 실패했다.
우리 세대의 자기통제력과 자아효능감은 그래서 다음 타겟을 찾는다. 나의 노력과 시간이 보상 받을 수 있는 곳. 내가 얻고자 했던 것들을 얻을 수 있고 내가 원하는대로 할 수 있는 곳. 공부해야하는 현실이 아닌 다른 세상을 찾는다. 외모를 꾸미는데 치중한다거나, 유행에 민감해지고, 춤이나 운동, 게임에 빠진다거나 심지어는 학교폭력의 가해자가 된다. 이런 행동들의 공통점은 하나다. ‘내가 하고싶은대로 일이 쉽게 풀리는 세상’으로의 일탈이다. 공부를 하면서 얻게된 인내심과 노력, 몰입력, 각종 능력들을 전부 그 세상에서 발휘한다. 억압을 많이 받았던 아이들은 그만큼 다른 세상에서 보상받고 인정받기위해 더 큰 노력을 하고 아주 높은 성과를 거둔다. 또 그 세상들 속에서도 서로 경쟁하고 발전한다. 그리고 그 세상들 중 우리 사회에서 인정받고 성장하고있는 분야가 아이돌문화와 스포츠게임이다.
여기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mz세대의 ‘공부를 요구받는 사회’로부터 일탈과 아이돌-게임 분야에서의 경쟁이 있었다. 쉽게 말하면, 점심시간, 쉬는시간마다 춤추고 화장하기. 야자째고 친구들이랑 피시방가기. 이런 것들이다. 춤추고 꾸미기를 좋아하는 무리는 그 중에서도 더 매력적이고 더 예뻐지길 원한다. 게임하기를 좋아하는 무리는 골드, 플래티넘을 넘어서 다이아를 꿈꾼다. 이들은 그 세상속에서 기쁘다. 열심히 하면 되고, 모두의 부러움을 살 수 있으니까. 자신의 행복을 찾을 수 있다. ‘공부를 요구받는 세상’에서 보다는 훨씬 쉽게 말이다. 우리 부모님세대의 분들은 그런 우리를 못마땅한 시선으로, 뭔가에 홀린 것 같다는 선입견으로 바라본다. 잔소리를 한다. mz세대를 꾸짖는다. 그러나 mz세대는 말을 듣지 않고 반항한다. 부모님세대는 나의 자아를 존중해주지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지 않고, 행복하게 해주지 않기 때문에.
그러나 사실 말안듣고 반항하면 다행이다. 이러한 다른 세상으로의 도망이 ‘삶’의 안에 있다면.
하루에 11명의 20-30대 청년이 고독사한 채로 발견된다. 하루에 10만명당 2.7명의 아동 및 청소년들이 자살로 목숨을 잃는다. 그들은 고분고분, 착하게 크다가 자신을 비관하며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가장 소중한 자신의 목숨을 잃는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이 있는데 자살은 절대 선택이 아니다. 사회 분위기의 ‘성공’을 가장한 심리적인 억압과 감당하기 어려운 스트레스, 눈뜨고 있는 모든 시간 느끼는 너무나 커진 불행과 고통으로 인해 사망하는 것이다. 이건 갑작스레 터지는 사건이 아닌 만성적인 질병과 다름없다. 그것도 사회 전체적으로 유행병처럼 돌아다니는.
결론은 이렇다. 아이돌문화, 스포츠게임분야의 비약적인 성공과 발전은 좋게만 볼 것이 아니다.
mz세대의 이러한 성과는 오히려 우리 사회의 젊은이들이 얼마나 병들어 있는지, 우리 사회의 윗세대에서 공부와 성공이라는 이상적인 말로 얼마나 많은 가치와 다양성을 억압하고 획일화시켰는지, 그 과정에서 깊어진 상처가 얼마나 깊었길래 그만큼 커진 보상으로서 전 세계적인 성공과 발전을 거둔 것인지를 보여주는 단초다. 오히려 그 성과의 정도는 한국 청년의 자살률과 같은 방향의 척도로 보아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말하고싶다. 우리 세대를 포함해 지금도 자라고있는 청소년과 아이들에게, 윗세대의 그늘에 가려 외롭고 힘들게 혼자 싸우지 말라고. 너는 태어난 그대로 소중하고 한없이 자유롭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