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성 독감

럽이2006.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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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성 독감

한혜영



지독한 유행성 감기가 한바퀴 돌았어
남편은 한바탕 熱을 올리며 일을 치르고
난 그와 등을 지고 밤마다 잠이 들었지
죽음이란 결국 이렇게 돌고 도는 유행성 病이라지?
등 돌리고 누운 내 목덜미도 불쑥 잡아 흔들

언젠가 죽음은 도둑처럼 담을 넘어올 거야
난 생각만 해도 벌써 비굴해져
가정 파괴범처럼 나를 범해도 목숨만은 살려달라고
더러운 몸뚱이를 벌거벗어 보이며 사정사정하겠지
내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오늘 밤도 문단속을 잘해야겠어
아, 나는 왜 이렇게 어리석을까?
밤중보다 대낮 강도가 더 무섭다는 걸 모르는 사람처럼
도처에 깔린 주검을 아무렇지 않게 우리는 넘어 다니고 있어
섹스를 치르듯 은밀하게
죽음은 칸막이 뒤에서만 벌어지는 게 아니야
아이들이 잡아다 넣은 유리병 속의 여치처럼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죽음을 보여주고 있어
그걸 모르는, 아 어리석어라 우리
사이비 종교에 빠진 사이비 신자처럼
세상은, 삶은 영원하다고 믿는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