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누가 읽어줄지는 모르겠지만 속이 답답해서 여기다 쓰고 감..긴 글이 될 거 같아서 읽어주는 사람한테 미리 고마워. 학창시절 내내 학폭 당했지만 이겨내겠단 마음으로 늘 살고 있다가 더글로리가 유행이라길래 보기 시작함. 학폭까진 어떻게든 봤지만 친모가 나타나는 모습에서 미쳐버릴거 같아서 더이상 못 보게 됨..사람마다 인생의 굴곡은 있다지만 난 왜 이렇게 지옥 같은지 모르겠음. 어떻게든 천국인 척 밝게 살려고 하는데 잊을만하면 꿈에서 자꾸 학폭 당하면서 지나온 그 얼굴들이 자꾸 떠오름.나도 어렸을 때 저렇게 누군가 지켜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싶음.30살이나 됐는데 아직도 윗줄 같은 생각하면 내가 어떻게 할 새 없이 눈물부터 주르륵 남. 어쩌면 난 시작부터 잘못이었는지 모르겠음.내 생모는 정상적이지 않았다고 함. 결혼을 이미 한번 했는데 그 뒤에 아빠를 또 만났던거지. 날 임신하니까 그 사실을 그 때서야 이 사실을 얘기함.둘이 자꾸만 싸웠다고 함.아빠는 애를 가졌으니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했는데 집에도 잘 못 들어갔다고 함.아직까지 타일 도배공 기술자로 일하고 계심. 근데 생모는 일하고 들어오면 더럽다면서 냉장고에서 물도 못 꺼내게 마시게 하고 별 ㅣ랄을 다 떨었다고 함.자기가 문 열어 물을 줘야하고 그게 아니면 물도 못 마심. 그러다 돌 전에 사단이 났음.아빠가 일하고 집에 돌아와서 분위기가 쎄했다고 함. 집을 둘러보는데 신생아였던 내가 화장실 변기 위에 뒤집혀서 얼굴이 새파랗게 울지도 못 하고 죽기 직전처럼 질려있었음. 아빠가 다시 안아주니까 울기 시작했다고 함.아빠는 생모 얘기 나올 때면 계속 이 얘기를 함. 진짜 내가 죽는 줄 알았다고.그래서 아빠는 소송 이혼을 하고 친권을 가져옴. 아빠는 책임감이 강한 편이라서 날 시설에 보내고 싶지 않았다고 함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엔 동네 애키워주는 남의 집에서 맡겨지거나, 큰집도 전전하면서 자람.유년기 시절 가장 기억나는 것들에 행복한건 크게 없음. 얼굴 잘 모르는 여자가 보일러실에 걸쳐앉아서 담배 뻑뻑 피고 나랑 비슷한 이쁜 남자애가 방 안에 서서 날 쳐다보고 있던 것.유치원도 못 간 나한테 맥주를 맛있는거라며 수저에 떠서 자꾸 주려고 한 것자기 생ㅅ기를 거울로 비춰보는데 나한테도 늘 확인해봐야한다고 한 것어린 나한테 화장을 해준 것.처음 보는 아줌마들이 있는 곳에 날 데려가서 방치 한 것.큰집에 잠깐 맡겨졌을 때는 사촌동생한테 맨날 괴롭힘 당해서 기죽고 운 기억밖에 없음.그렇게 크고 8살 쯤 학교 갈 시기가 되니 애가 심하게 아픔. 감기 한번 걸리면 천식에 폐렴에 죽을 고비 여러번 넘김. 집에 요양하는 시간이 길다보니 한 학년을 다시 다니게 됨.다시 학교에 가야해서 초등학교 1학년에 얼굴도 기억 안 나는 애들 사이 담임에게 난 뺨따구 후려 맞음. 얼굴이 팍 돌아갔는데 아픈 것보다 '잘 못 했어요'라는 말이 먼저 나옴.학교생활도 평탄하지만은 않음. 아빠는 늘 일하느라 바빴고, 난 늘 방치되어 있었음.옷도 매일 똑같은 옷 입고 씻는것도 잘 못 했음. 왜 씻어야되는지 이해를 못 했음.공부머리는 있는건지 초등학교 저학년때는 곧잘 공부 했으나 가장 친하게 지낸 친구한테 뒤통수 맞고 그 때부터 왕따를 당하게 되면서 성적이 중간 이상으로 올라가질 못 함.그 와중에 아빠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이래야되고 저래야되고 수상한 사람은 없었냐 아무것도 못 하게 함. 아무래도 그 생모가 계속 찾아왔던 것 같고 집에 오면 몇시에 들어오든 마중을 나가야했음. 새벽에도. 이유를 설명해주고 그만큼 정서적인 사랑이라도 받았으면 아빠와 딸이라는 유대감이 생겼을 것 같은데 이것조차 배우지 못 해서 이해 못 하고 너무 답답했음. 그 와중에 생모는 우리 집을 감시하듯 찾아왔다 가고 편지를 보냄. 하지만 난 그것보다 나도 살아야되기에 학폭에서 벗어나고 싶었음.아빠한테 수십번 전학 보내달라 울면서 여러 번 요청했지만 내 의견이 받아들여진 적은 한번도 없었음. 친구들한테 사근사근 대해라는 말 뿐이었고, 공감 받아보지 못 함. 성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음. 차라리 지금의 내가 그때로 돌아간다면 나 혼자서라도 자퇴서든 전학이든 밀고 나갔을텐데... 운동장에 있으면 공들이 날라오고, 계단을 올라가면 우유를 떨어트리고, 자리에 앉아있으면 내 주변으로 몰려와서 쉬는시간마다 내 옆에서 아무것도 못 하게 'ㅇㅇㅇ 병ㅅ' '자는척하냐'. 지나가면 내 등을 토닥이는척 하면서 욕하는 종이를 붙임. 수업 듣는 시간보다 쉬는 시간이 가장 괴로웠음.다 같은 교복을 입은 웃으며 지나가는 무리 바깥에서 혼자 가는 급식실아무말 하지 않고 혼자 걷는 차가운 복도나 혼자 있으면 '아무도 없네?' 불 끄고 가버리는 기숙사 룸메이트들그 때 시험기간이었는데 그 다음날 시험은 손이 안 잡혀서 제대로 공부도 못 한채 치게 됨불쌍하다며 손은 뻗는 애들도 있었지만 불쌍해서 잠깐 끼워주는 것 뿐이었음절대 동급으로 올라가지는 못 하는 그런 동물적인 서열을 체감하면서 난 늘 밑자리에 있었음 10살부터 시작된 학폭은 26살까지 사내괴롭힘으로 이어졌음. (학교는 졸업했지만 그 이후 사회생활에서도 계속 엮여야 하는 사정이 있어 벗어날 수 없었음.)정도의 차이가 있었을 뿐 결국 항상 혼자였음. 고깃집에 가서 외식 해본 것도 20살 회식자리에서 처음이었고 횟집, 쭈꾸미, 이런 것도 다 성인 되어서 가보기 시작함.당연히 난 사람들 사이에 있어도 스몰톡 하나 하지 못 했음.그리고 동기들도 학교에서 올라온 그대로이니 회사생활도 쉽지 않았음.같은 팀원 몇몇은 술 들어가면 성희롱에 음담패설에 정말 정신줄 잡으면서 회사 다녔음.중간중간 곁에서 위로해주는 사람이 있었지만 그런 사람들은 멀리 있거나, 오래 가지 못 했음. 내가 바뀌려면 배워야하는데 인터넷으로 배우는건 예민함만 커져갔음.기질이라도 뻔뻔하게 타고났으면 좋았을텐데 내성적이어서 쉽지 않았음.퇴사하고 싶지만 '대기업'에 다니는 딸을 두고 있으니 어떻게든 다니라고 하는 아빠를 보면서 상처 받지만 착한아이컴플렉스 때문에 7년을 악으로 버텼음. 계기가 생겨 퇴사하게 되고 드디어 자유가 됐음. 지금도 엄청 좋아진 상황은 아님. 자꾸 일어나려고 해도 뭔가가 잡고 끌어내리는 것처럼 무너짐. 3년 전부터 온라인 쇼핑몰을 시작했는데 반응도 매출도 괜찮았으나, 유독 도를 넘는 경쟁사의 공격과, 다해달라하는 고객들을 만나면서 우울증에 걸림. 우울증이라는 병명을 판정 받기 위한 용기가 이 때는 생겼었던 것 같음. 동종업계나 같은 쇼핑몰 대표 등 오래 지켜봐온 분들은 간단하게만 얘기해도 'ㅇㅇ씨는 유독 왜 그래요? 굿 해야하는거 아니에요?' 소리까지 들음. 고난이 트로피도 아니고.. 결국 작년 6개월은 우울증약, 수면제들을 먹음. 하지만 약을 바꿔봄에도 낫는 느낌도 없고 부작용만 잔뜩 겪으면서 결국 단약함. 예전의 괴롭고 외로운 상황들이 자꾸 꿈에서 나타남.과거 꿈꾸기 싫어 몸을 혹사시키기도 해봤으나 반복됨.수면제하고 다른 약들은 아무것도 못 하게 만드는 것도 그렇고, 이제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나는 다시 약 먹기 쉽지 않을 것 같음.운동, 햇빛보기, 명상, 종교 다 해봐도 내가 진짜로 뭘 원하는지 모르겠음.생모가 그만 보이면 좋겠고학폭 당하던 꿈도 그만 꾸면 좋겠고 마음이 제발 평범해지면 좋겠음.
더글로리시즌2 보다가 학폭에 친모훼방 ptsd 옴..
누가 읽어줄지는 모르겠지만 속이 답답해서 여기다 쓰고 감..긴 글이 될 거 같아서 읽어주는 사람한테 미리 고마워.
학창시절 내내 학폭 당했지만 이겨내겠단 마음으로 늘 살고 있다가 더글로리가 유행이라길래 보기 시작함. 학폭까진 어떻게든 봤지만 친모가 나타나는 모습에서 미쳐버릴거 같아서 더이상 못 보게 됨..사람마다 인생의 굴곡은 있다지만 난 왜 이렇게 지옥 같은지 모르겠음. 어떻게든 천국인 척 밝게 살려고 하는데 잊을만하면 꿈에서 자꾸 학폭 당하면서 지나온 그 얼굴들이 자꾸 떠오름.나도 어렸을 때 저렇게 누군가 지켜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싶음.30살이나 됐는데 아직도 윗줄 같은 생각하면 내가 어떻게 할 새 없이 눈물부터 주르륵 남.
어쩌면 난 시작부터 잘못이었는지 모르겠음.내 생모는 정상적이지 않았다고 함. 결혼을 이미 한번 했는데 그 뒤에 아빠를 또 만났던거지. 날 임신하니까 그 사실을 그 때서야 이 사실을 얘기함.둘이 자꾸만 싸웠다고 함.아빠는 애를 가졌으니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했는데 집에도 잘 못 들어갔다고 함.아직까지 타일 도배공 기술자로 일하고 계심. 근데 생모는 일하고 들어오면 더럽다면서 냉장고에서 물도 못 꺼내게 마시게 하고 별 ㅣ랄을 다 떨었다고 함.자기가 문 열어 물을 줘야하고 그게 아니면 물도 못 마심. 그러다 돌 전에 사단이 났음.아빠가 일하고 집에 돌아와서 분위기가 쎄했다고 함. 집을 둘러보는데 신생아였던 내가 화장실 변기 위에 뒤집혀서 얼굴이 새파랗게 울지도 못 하고 죽기 직전처럼 질려있었음. 아빠가 다시 안아주니까 울기 시작했다고 함.아빠는 생모 얘기 나올 때면 계속 이 얘기를 함. 진짜 내가 죽는 줄 알았다고.그래서 아빠는 소송 이혼을 하고 친권을 가져옴. 아빠는 책임감이 강한 편이라서 날 시설에 보내고 싶지 않았다고 함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엔 동네 애키워주는 남의 집에서 맡겨지거나, 큰집도 전전하면서 자람.유년기 시절 가장 기억나는 것들에 행복한건 크게 없음. 얼굴 잘 모르는 여자가 보일러실에 걸쳐앉아서 담배 뻑뻑 피고 나랑 비슷한 이쁜 남자애가 방 안에 서서 날 쳐다보고 있던 것.유치원도 못 간 나한테 맥주를 맛있는거라며 수저에 떠서 자꾸 주려고 한 것자기 생ㅅ기를 거울로 비춰보는데 나한테도 늘 확인해봐야한다고 한 것어린 나한테 화장을 해준 것.처음 보는 아줌마들이 있는 곳에 날 데려가서 방치 한 것.큰집에 잠깐 맡겨졌을 때는 사촌동생한테 맨날 괴롭힘 당해서 기죽고 운 기억밖에 없음.그렇게 크고 8살 쯤 학교 갈 시기가 되니 애가 심하게 아픔. 감기 한번 걸리면 천식에 폐렴에 죽을 고비 여러번 넘김. 집에 요양하는 시간이 길다보니 한 학년을 다시 다니게 됨.다시 학교에 가야해서 초등학교 1학년에 얼굴도 기억 안 나는 애들 사이 담임에게 난 뺨따구 후려 맞음. 얼굴이 팍 돌아갔는데 아픈 것보다 '잘 못 했어요'라는 말이 먼저 나옴.학교생활도 평탄하지만은 않음. 아빠는 늘 일하느라 바빴고, 난 늘 방치되어 있었음.옷도 매일 똑같은 옷 입고 씻는것도 잘 못 했음. 왜 씻어야되는지 이해를 못 했음.공부머리는 있는건지 초등학교 저학년때는 곧잘 공부 했으나 가장 친하게 지낸 친구한테 뒤통수 맞고 그 때부터 왕따를 당하게 되면서 성적이 중간 이상으로 올라가질 못 함.그 와중에 아빠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이래야되고 저래야되고 수상한 사람은 없었냐 아무것도 못 하게 함. 아무래도 그 생모가 계속 찾아왔던 것 같고 집에 오면 몇시에 들어오든 마중을 나가야했음. 새벽에도. 이유를 설명해주고 그만큼 정서적인 사랑이라도 받았으면 아빠와 딸이라는 유대감이 생겼을 것 같은데 이것조차 배우지 못 해서 이해 못 하고 너무 답답했음. 그 와중에 생모는 우리 집을 감시하듯 찾아왔다 가고 편지를 보냄. 하지만 난 그것보다 나도 살아야되기에 학폭에서 벗어나고 싶었음.아빠한테 수십번 전학 보내달라 울면서 여러 번 요청했지만 내 의견이 받아들여진 적은 한번도 없었음. 친구들한테 사근사근 대해라는 말 뿐이었고, 공감 받아보지 못 함. 성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음. 차라리 지금의 내가 그때로 돌아간다면 나 혼자서라도 자퇴서든 전학이든 밀고 나갔을텐데...
운동장에 있으면 공들이 날라오고, 계단을 올라가면 우유를 떨어트리고, 자리에 앉아있으면 내 주변으로 몰려와서 쉬는시간마다 내 옆에서 아무것도 못 하게 'ㅇㅇㅇ 병ㅅ' '자는척하냐'. 지나가면 내 등을 토닥이는척 하면서 욕하는 종이를 붙임. 수업 듣는 시간보다 쉬는 시간이 가장 괴로웠음.다 같은 교복을 입은 웃으며 지나가는 무리 바깥에서 혼자 가는 급식실아무말 하지 않고 혼자 걷는 차가운 복도나 혼자 있으면 '아무도 없네?' 불 끄고 가버리는 기숙사 룸메이트들그 때 시험기간이었는데 그 다음날 시험은 손이 안 잡혀서 제대로 공부도 못 한채 치게 됨불쌍하다며 손은 뻗는 애들도 있었지만 불쌍해서 잠깐 끼워주는 것 뿐이었음절대 동급으로 올라가지는 못 하는 그런 동물적인 서열을 체감하면서 난 늘 밑자리에 있었음
10살부터 시작된 학폭은 26살까지 사내괴롭힘으로 이어졌음. (학교는 졸업했지만 그 이후 사회생활에서도 계속 엮여야 하는 사정이 있어 벗어날 수 없었음.)정도의 차이가 있었을 뿐 결국 항상 혼자였음.
고깃집에 가서 외식 해본 것도 20살 회식자리에서 처음이었고 횟집, 쭈꾸미, 이런 것도 다 성인 되어서 가보기 시작함.당연히 난 사람들 사이에 있어도 스몰톡 하나 하지 못 했음.그리고 동기들도 학교에서 올라온 그대로이니 회사생활도 쉽지 않았음.같은 팀원 몇몇은 술 들어가면 성희롱에 음담패설에 정말 정신줄 잡으면서 회사 다녔음.중간중간 곁에서 위로해주는 사람이 있었지만 그런 사람들은 멀리 있거나, 오래 가지 못 했음. 내가 바뀌려면 배워야하는데 인터넷으로 배우는건 예민함만 커져갔음.기질이라도 뻔뻔하게 타고났으면 좋았을텐데 내성적이어서 쉽지 않았음.퇴사하고 싶지만 '대기업'에 다니는 딸을 두고 있으니 어떻게든 다니라고 하는 아빠를 보면서 상처 받지만 착한아이컴플렉스 때문에 7년을 악으로 버텼음.
계기가 생겨 퇴사하게 되고 드디어 자유가 됐음. 지금도 엄청 좋아진 상황은 아님. 자꾸 일어나려고 해도 뭔가가 잡고 끌어내리는 것처럼 무너짐. 3년 전부터 온라인 쇼핑몰을 시작했는데 반응도 매출도 괜찮았으나, 유독 도를 넘는 경쟁사의 공격과, 다해달라하는 고객들을 만나면서 우울증에 걸림. 우울증이라는 병명을 판정 받기 위한 용기가 이 때는 생겼었던 것 같음. 동종업계나 같은 쇼핑몰 대표 등 오래 지켜봐온 분들은 간단하게만 얘기해도 'ㅇㅇ씨는 유독 왜 그래요? 굿 해야하는거 아니에요?' 소리까지 들음. 고난이 트로피도 아니고.. 결국 작년 6개월은 우울증약, 수면제들을 먹음. 하지만 약을 바꿔봄에도 낫는 느낌도 없고 부작용만 잔뜩 겪으면서 결국 단약함.
예전의 괴롭고 외로운 상황들이 자꾸 꿈에서 나타남.과거 꿈꾸기 싫어 몸을 혹사시키기도 해봤으나 반복됨.수면제하고 다른 약들은 아무것도 못 하게 만드는 것도 그렇고, 이제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나는 다시 약 먹기 쉽지 않을 것 같음.운동, 햇빛보기, 명상, 종교 다 해봐도 내가 진짜로 뭘 원하는지 모르겠음.생모가 그만 보이면 좋겠고학폭 당하던 꿈도 그만 꾸면 좋겠고 마음이 제발 평범해지면 좋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