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관계 이제는 다시한번 생각해볼때가 되었다

ㅊㅊ2023.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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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일간 외교문제로 갑론을박이 많다.
민주당 의원들과 그 지지자들이 외치는것처럼
윤석열 대통령은 대한민국을 일본에 팔아먹으려고
하는것이며, 이것은 굴종외교,굴욕외교 인가?
토착왜구,친일파,친일매국,윤완용 이런
감정적 용어가 실제 그 정당과 사람들에게 해당하는것인가?감정보다 실리는 보자 하면, 친일파로 몰아가는 사람들이
있고그래도 민족적 자존심이 매우 중요한 사람들이 많다.
그들이 꼭 이글을 보고 느끼는점이 있길 바란다.
결국 대한민국 대법원의 판결은 사법부의 판결이고 
일본에게 효력이 발생하거나 집행할수 없다.그럼에도 대한민국 법원은 일본제철의 한국내 주식 8만여주에대한 압류신청을 승인하면서 자산동결이되었다.일본은 한국에 수출규제,백색국가 지정해제를 했고, 한국은 일본제품 불매운동,WTO 제소같은 한일양국간 무역갈등이 시작되었다.우리 정부는 외교,경제 에 이어 군사협정인 지소미아 협정파기까지 하며 미국을 포함한 전세계가 한일간 갈등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우리 대한민국 헌법은 세계적으로 통용되는게 아니다.
제3국에서 보았을때 양국간 합법적으로 체결했던 한일기본조약 청구권조약이 뒤엎어질수 있을만큼 도덕*윤리*규범적으로 불법이거나 옳지 못했던 불평등조약이라는걸 공증하려면 유엔이나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해야하는데 승소할 확률은 아예 없다.
마찬가지로 일본이 독도는 자기네땅이라고 분쟁지역 소송을 하려 해도, 한국이 분쟁지역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유엔에 소송 자체도 걸수가 없다.

이 시점에서 우리나라가 할수있는게 무엇일까?
그렇다면 할수있는건, 한일간 "외교" 다

日韓交誼 善作紹介(일한교의 선작소개)
일본과 한국의 교의는 서로를 잘 아는 것에 있다.
-안중근-


현대 한국의 경제·외교적 영향력은 더 이상 국제적으로도 무시하기 어려운 수준이며, 군사적 능력 역시 조선 시대나 구한말 처럼 약하기는 커녕 세계 6위권에 무기수출능력은 세계 10위권의 무기 수출국으로 올라선 지 오래다.

즉, 우리가 과거와 같이 방어적 입장을 견지하는 입장일때
과거와 같이 일본이 한국을 직접적으로 침공할 역량은 없으며, 결정적으로 과거와는 다르게 오늘날 양국은 같은 진영에 속해 있기에 명분조차도 존재하지 않는다.

반면 한일 양국의 가상적국이자 적개심을 가감없이 드러내는 북한과 중국의 위협을 관리하는 것은 현실적인 과제이다.
수백년 넘게 싸워댄 영국과 프랑스조차도 독일의 위협 앞에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듯 역사적인 감정은 현실의 총칼 앞에서 무력화될 수밖에 없다.혐한이나 혐일감정 따위는 국제질서의 변화에 영향을 미칠 수 없는 마이너한 요소에 불과하다.

2차대전 직전 공산주의의 급속한 확산에 서로 견제하며 양숙이였던 영국*미국와 소련은 독일이라는 나치 히틀러의 발흥 앞에선 손잡았고, 피터지게 싸웠던 독일과 프랑스도 소련의 위협 앞에 불과 10년도 지나지 않아 결국 손을 맞잡았다.

그동안 한국과 일본의 정치인들이 반일•반한 정책을 펼친것은, 그 판단이 옳든 그르든 양국의 위정자들이 그러한 정책 방향성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일이 모두 생존을 위해 손잡을 수밖에 없는 위기에 내몰린다면, 그건 곧 중국의 팽창이 미국을 위시한 힘의 균형을 깨부순 준전시 상황을 의미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언론부터가 지금과는 달리 양국의 부정적인 면보다는 긍정적인 면을 보도하도록 검열될 것이다. 당장 2차대전 당시 미군은 영국과 프랑스 파견 부대에 해당국 국민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도록 문화교육을 시켰으며, 소련의 눈치를 보아 일시적으로 반공주의 선전물이 퍼지는걸 검열했던 것처럼 말이다.

외교를 결정하는 건 민주주의가 아니라 국제관계학이며, 감정이 외교를 지배하는 나라는 필연적으로 망할 수밖에 없다.장기적으로 볼 때, 외교란 본질적으로 과거의 진실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국익을 취하는 것이다.

예컨대 문재인 정부에서 6.25 전쟁이나 북한의 대남도발 대신 김정은의 인간적인 모습들을 부각시키는 반면 한일관계에서는 위안부 문제를 비롯하여 과거사를 끊임없이 들추는 것도, 결국 문재인 정부가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일본을 압박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대북외교에서 국민을 설득하기 가장 좋은 이미지와 대일외교에서 일본을 압박하기 가장 좋은 명분을 찾아 도구로 삼은 것에 불과하다.
이와 반대로 박근혜 정부가 북한의 비인간적인 면모를 부각시키는 한편 한일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이나 위안부 문제에서 지나치게 양보한다는 비판을 받아가면서까지 합의를 추진했던 것도, 박근혜 정부나 윤석열 정부 관점에서는 중국과 김대중 정부 이후 핵실험과 핵무기 개발로 우리를 배신한 북한을 견제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일본에 접근해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요점은 만일 과거의 진실보다 더 시급한 현재의 문제가 닥친다면 그에 걸맞는 명분을 찾고 그 후 그에 걸맞는 상대에게 적용하는 것이 곧 외교이며, 현재의 신냉전 구도 하에서 중국의 성장이 지속됨에 따라 패권의식과 내정간섭이 심해지고 북한이 붕괴되면서 중국이 개입하여 북한분할 같은 극단적인 안보 위기가 정말로 현실화된다면 국민적인 여론이란 자발적인 인식변화에 의해서든 통제와 검열에 의해서든 쉽게 뒤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외교란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고, 상대도 이만하면 그래도 설득할 수 있겠다 싶은 조건들을 찾으며, 그 조건들 가운데 우리에게 가장 유리한 조건을 제시하는 것이다. 한일관계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일본을 설득할 수 있는 조건 가운데 한국이 가장 유리한 조건을 찾아야 하고, 일본은 한국이 중시하는 기준들을 존중하며 일본의 이익을 최대화해야 한다.

그러려면 결국 서로의 버킷리스트에서 더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을 나누고, 필요하다면 양보해야 하는 것들을 양보하는 대신 상대도 받아들일 수 있는 몇 가지 조건을 덧붙이는 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물론 한일 각국이 독도와 과거사, 역사 교과서와 위안부 배상, 한일기본조약과 강제징용피해자 배상문제 등 온갖 현안들에서 어디에 중점을 더 둘지는 정부의 성향에 따라 달라지겠으나, 적어도 어느 쪽이든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으려 하면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다. 외교를 제로섬 게임으로 하려 들면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저 격언의 진정한 의미이다.


사실 우리는 피해자의 논리에 입각하여 일본이 잘못했으니 당연히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일본은 일단 잘못은 잘못인데 구체적인 청산은 어디까지나 도덕률이 아닌 외교논리 안에서 처리해야 한다는 쪽이다. 그러니까 한국 입장에서는 '당해보지 않은' 일본이 뻔뻔하게 오리발 내민다고 불평하지만, 일본 입장에서는 아무튼 현 시점에서 서로 국익을 두고 셈을 해보면 '좀 양보할 수 있을 만한' 문제들까지도 과거사를 이유로 양보를 안 하는 한국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이다.

사실 이건 누가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양국의 경험적 가치관에 따른 차이에 가깝다. 일본은 메이지유신 이후 서구적 외교, 즉 "국익을 최우선에 두고 다른 모든 명분은 이를 합리화하기 위한 도구로 이용하는" 외교로 20세기 전반기에 큰 성공을 거둔 역사적 경험이 있다. 반면 한국은 조선시대 500년을 지배해온 성리학적 관념의 영향으로 눈앞의 이익보다는 옳고 그름과 명분을 최우선에 두는 경향이 있다.즉 한국은 한국 나름대로 절대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이 있고, 일본도 일본 나름대로 자국이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극한 대립을 풀기 위해서는 양국 모두 한발짝 물러서서 양보가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현실적으로 상대가 절대 양보할 수 없다고 하는 부분까지 서로 양보하라고 강요하는 것 또한 외교적으로 바람직한 모습은 아니다.

한국 입장에서는 일본에 대해, 일본 입장에서는 한국에 대해 "쟤들은 이것도 양보를 못하나?"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각자의 기준으로 해석했을 때의 이야기이고, 진정으로 양국이 관계 개선을 원한다면 상대국의 입장과 자국의 입장은 완전히 다를 수도 있다는 현실을 서로 인정하고 그 속에서 각자 양보해야 할 부분은 물러서는 자세가 필요하다. 서로가 서로의 상황을 아예 이해하려 하지 않으면 불신만이 커질 뿐이며, 서로가 서로를 무조건 비정상적인 상대로 규정짓고 대화의 문을 닫아봤자 양국 간에 불필요한 감정만 소모되고 남는 것은 없다. 이 과정에서 어느 쪽의 입장이 옳으니 그르니를 따지는 것은 각자의 도덕적 평가의 영역은 될 수 있어도 외교적으로는 좀 거칠게 말해서 별 의미가 없다.

까놓고 말해서 그래봤자 서로 양보 못하겠다고 뻗대는 게 현실인데 뭘 어쩌겠는가? 외교란 현실을 타협해 나가는 과정이지 각자의 이상만을 고집하여 관철시키는 과정이 아니다. 서로가 도저히 각자의 이상을 양보하지 못하겠다면 계속해서 대립으로 가는 것이고, 반대로 조금씩 양보할 수 있다면 못 미더울 수는 있어도 관계 개선의 길로 가게 될 것이다. 사실 정답은 없다. 어느 한쪽이 양보를 안 하겠다고 해서 다른 한쪽이 이를 강제할 권리를 가진 것도 아니며, 반대로 양보를 한다고 해서 무조건 긍정적인 결과가 나온다는 보장도 없다. 다만 그 과정 속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불협화음들을 잘 관리하고 원만히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 바로 외교인 것이다.


이건 굳이 한일관계뿐만 아니라 한중관계, 남북관계 등 모든 외교에서 다 적용되는 이야기이다.많은 한국인들이 독일과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상대적인 반응을 예로들곤한다.

애초에 국제정치에서 도덕을 따지는 건 미련한 일이 맞긴 하다. 그러나 적어도 독일은 자국과 이해관계가 얽혔거나 손잡아야 할 국가들에게는 확실하게 양보를 했다. 냉정하게 말해 나미비아 같은 나라는 독일의 대 러시아 전선에 도움을 줄 수도 독일의 안보나 경제에 위협을 가할 능력도 없는 국가고, 그러니 과거사 반성과 청산도 지지부진할 수 했다.
그러나 최소한 폴란드나 이스라엘, 러시아는 적으로서든 동지로서든 영향력이 있는 국가이니, 독일도 매듭지을 건 지어야 미래를 도모할 수 있다는 실리적인 판단을 한 것이다일본은 광복 이후 내내 한국과의 관계 개선에 나름대로 의욕을 보여온 바 있으나 한일관계는 여전히 답보 상태이다.

일본 정계에서는 그 책임을 박정희 대통령 시절 한일기본조약과 박근혜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위안부 합의에도 불구하고 한국 국내의 정권교체를 이유로 이를 부정하거나 비판하는 말바꾸기, 그리고 이명박,문재인 전 대통령이나 문희상 의원의 천황 사죄요구 발언같은 무의미한 도발 등에 돌리는 편이며, 이런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한국과의 직접적인 우호 관계는 어렵다는 입장이 점점 힘을 받고 있다.

"한국이 정말 일본이 무시할 만한 수준의 국력을 가진 국가인가?", "일본이 단독으로 중국의 부상이라는 지정학적 위협을 막을 수 있는가?", "일본 주변에 한국을 대신할 만한 위치의 파트너가 있는가?"의 세 가지 질문 모두 결국 답변은 No 로 귀결된다는 것이 문제이다. 하다못해 한국이 가난한 후진국이던 50~60년대면 모를까 현 시점에서의 한국은 결코 일본이 무시할수있는 국가가 아니며, 그렇다고 적대 진영에 속한 국가도 아니다. 그렇다면 5~70년대에야 나몰라라 했더라도, 적어도 현 시점에서는 인식을 재고하는 것이 일본의 국익에도 진정 합리적인 판단이다.

일본의 외교 방식이 꼭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일본이 자국의 입장만 고집하며 한국을 국제사회의 비이성적인 플레이어로 몰아가는 것은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 기본 진리를 망각한 태도이다. 모든 교류가 그렇지만 외교 역시 서로를 이해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가난하고 낙후된 채 동맹 없이 고립된 북한의 안보 불안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파탄국가라고 으름장 놓는 것만으로 북핵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 자기 기만에 불과하듯, 민주국가인 한국을 상대하면서 한국인들의 가치관을 이해하지 못한 채 겉으로 드러나는 떡만 몇 개 던져주고 무조건 과거를 덮으라고 강요하는 것 역시 일본의 외교적 오판에 불과하다. 과거사가 국민정서에 직결된 만큼 도덕률을 떠나 해결하려는 행보는 오히려 한일관계에 있어서 개선의 지름길을 차단하는, 일본 스타일로 말하자면 "비합리적인" 실책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외교란 '상대국의 이익과 자국의 이익을 합치시키는 것'이라는 격언이 있다. "당연한 소리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속뜻은 "상대국이 양보할 수 없는 것은 애초에 요구하지 말라"는 것이다. 서로 복잡하게 얽힌 현대 국제 사회에서는, 아무리 강한 국가라도 상대방을 완전히 무시하면서 자국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강요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당장 위력을 동원해 원하는 것을 얻어낸다 할지라도, 상대국이 거기에 수긍하지 못하면 언제고 복수를 노릴 것이다.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처참히 무너졌던 프랑스나
제1차 세계대전에서 굴욕적인 결과를 받아든 독일은 패배와 처우에 수긍하는 대신 증오를 키우며 "다시 한 번 더"를 외쳤고,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가 그 후 양국이 유럽연합을 통해 공동 번영의 가능성이 제시된 뒤에야 비로소 증오의 연쇄를 끊을 수 있었다.


많은 국민들이 일본이 사과를 하지 않았다 혹은 진심어린 사과가 필요하다고 한다.일본을 대표하는 총리와 서열2위였던 관방장관까지 여러 차례 사과를 했다.피해자가 원할때면 계속해서 사과를 해야한다? 이것은 피해자의 요구나 희망사항이지상대, 특히 우리나라가 아닌 외국에게 우리의 잣대를 들이미는것도 당연한것이 아닌 일본에 대한 이다 무리한 요구 중 하나다. 

정권을 대표하는 총리가 바뀌었다고 그 사과가 없어지는건 아니지않는가?우리 정부가 체결한 조약이나 정부를 대표하는 대통령의 사과가, 정권교체로 무효가 될수도 있다면 세계 어느 나라가 우리나라와 협정을 맺고 조약을 맺으려 할것인가?  대한민국 대통령들도 일본을 용서하자며, 미래의 파트너로 가자고 외쳤다.

증오를 끊고 실리를 보자안보적 관점에선, 북한과 중국의 우리에게 군사적 위협을 가하는 한가장 저비용 고효율로 견제하기에 일본이 꼭 필요하다.북핵의 이제 한국에서만 요격해서 방어하기엔 한계점이 이르는 상황에 왔다.한국에 미군 병력이나 화력을 더 늘린다면, 미국과 함께 신냉전시대의 주인공이자 조중상호동맹을 맺고있는 중국이 가장 크게 반발할것이고, 이로인한 경제적 피해는 한국이 가장 크게 볼수밖에 없기에 미일동맹을 이용한 주일미군 화력을 증가시키는게 우리의 안보를 지키면서 경제적 손해도 최소화 할수있는 가장 최적의 선택이다경제적 관점에서 수출로 먹고사는 대한민국은 적대국은 없거나 적을수록 좋다문화적 동질성이 상호 유사하고, 가장 가까운 위치에있는 인구2.5배의 시장을, 수출주도형 경제체제국가인 대한민국이 역사적 감정과 과거사 사죄에 대한 불만족으로 관계를 파탄내거나, 불안한 관계를 유지한다? 이게 국익에 과연 도움이 되는 일일지 다시한번 생각해볼 일이다. 




김대중 대한민국 대통령, 1998년 10월 8일 일본 국회 연설
일본과 한국의 관계가 불행했던 것은 약 400년 전 일본이 한국을 침략한 7년과 금세기 초 식민지배 35년간 입니다. 50년도 안 되는 불행한 역사 때문에 1500년에 걸친 교류와 협력의 역사 전체를 무의미하게 만든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입니다.일본에게는 과거를 직시하고 역사를 두렵게 여기는 진정한 용기가 필요하고, 한국은 일본의 변화된 모습을 올바르게 평가하면서 미래의 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 1998년 10월 8일 일본 국회 연설식민지 지배로 인해 한국 국민에게 많은 손해와 고통을 안겨줬다는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면서 이에 대해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 사죄하겠다.



고노 요헤이 일본 내각관방장관, 1993년 8월4일
장기간 광범위한 지역에 위안소가 설치돼 수많은 위안부가 존재했다. 위안소는 당시 군 당국의 요청에 따라 마련된 것이며 위안소의 설치,관리,이송에 관해서는 옛 일본군이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관여했습니다. 위안부 모집에 관해서는 군의 요청을 받은 업자가 주로 이를 맡았으나 이런 경우에도 강압에 의하는 등 본인 의사에 반해 모집된 사례가 많았으며 관료들이 이에 직접 가담한 적도있다는게 밝혀졌습니다. 위안소 생활은 강제적인 상황하에 참혹했다.한반도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고 당시 한반도는 우리나라의 통치 아래에있어 본인 의사에 반해 이런 일들이 행해졌습니다.군의 관여 아래 다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입니다. 일본정부는 이번 기회에 다시 한번 종군위안부로서 많은 고통을 겪고 몸과 마음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에 대해 마음으로부터 사과와 반성의 뜻을 밝힙니다. 우리는 이런 역사의 진실을 회피하는 일이 없어야하고 역사 연구와 교육을 통해 같은 잘못을 절대 반복하지 않아야합니다.



무라야마 도미이치 일본 총리, 1995년 8월15일
우리나라는 멀지 않은 과거에,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많은 나라들, 특히 아시아 국가 여러분들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주었습니다. 저는 미래에 잘못이 없도록 하기 위하여 의심할 여지도 없는 이와 같은 역사의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여기서 다시 한번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진심으로 사죄의 마음을 표명합니다. 또 이 역사로 인한 내외의 모든 희생자 여러분에게 깊은 애도의 뜻을 바칩니다.



간 나오토 일본총리, 2010년 8월10일
100년전 한일합방이 발생했다.
3.1 독립운동 등 격렬한 저항에서 나타났듯이 한국인들은 그 뜻에 반하여 이루어진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의해 국가와 문화를 빼앗기고, 민족의 자긍심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 이런 식민지 지배가 초래한 다대한 손해와 아픔에 대해 재차 통절한 반성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죄의 심정을 표명합니다.



루트비히 에르하르트 독일 총리가 박정희 대통령에게,
1964년일본과 손을 잡아라. 독일은 프랑스와 16번을 싸웠다. 독일 사람들은 지금도 프랑스에 한이 맺혀 있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우리 콘라트 아데나워 총리가 프랑스 드골 대통령을 찾아가 악수했다. 한국도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 그것이 공산주의를 막는 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