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아버지한테 아픈 손가락이 아니었나봅니다.

ㅇㅇ2023.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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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감기로 한참을 정신도 못차리고 아프다가 이제 막 괜찮아졌어요
아픈 아이 보면서 내가 대신 아팠으면 좋겠다 생각했고 잠도 못자고 밤새 아이 몸 닦아주고 약 먹이고 하느라 정신 없었거든요

남편은 새벽 출근해야하는데도 저보고 눈 좀 붙이라고 자기가 애 보겠다고, 내 앞에서 한번을 안울던 사람이 아이 아프다고 베란다에서 우는 모습을 보며 문득 제 어린시절이 생각 났습니다

친할머니께서 작게 보육원을 운영하셨고 아버지랑 어머니 그리고 외동딸이던 저도 자연스레 보육원에서 지내는 일이 잦았어요
그때 아버지는 청년회장에 막 부임하셔서 보육원 아이들도 챙기고 마을 어르신들도 챙기느라 굉장히 바쁘셨던걸로 기억해요

한번은 그게 서운해서 아빠 밉다고 울었다가 호되게 혼난적도 있죠
그리고 할머니가 그러셨어요
니 아버지는 마을 모두의 아버지다, 너만의 아버지가 아니니 어린 아이처럼 굴면 안돼. 라고요

보육원에서 애들이랑 어울려 놀던 기억속에서 아버지가 한명씩 다 안아주고도 저만 안아주지 않으셨던거, 다른 아이들이 부르면 쏜살같이 달려가면서도 제가 뭐 하나 해달라고 하면 떼쓰지 말라고 으름장 부터 놓으시던거
서러운 기억은 잔뜩 있지만 그중에서도 제가 정말 크게 아파서 생사를 오갔을때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뭐 때문인지는 몰라도 엄청 아팠어요 귀에서 계속 이상한 소리가 들리고 정신이 오락가락하고 어머니가 제 뺨을 치며 정신 차리라고 소리 치던거 할머니가 굿을 해야한다고 했던거 그러다 결국 병원에 갔는데 상태가 너무 안좋아서 의사가 마음의 준비를 하라 그랬대요
어머니가 태어나 신을 믿어본적이 한번도 없으셨는데 그때만큼은 세상에 모든 신을 찾으며 비셨다고 했어요

기적인지 뭔지 일주일을 꼬박 앓고 병원에서 정신 차렸는데 눈뜨자마자 제가 아버지부터 찾았대요
그런 저에게 어머니는, 아픈 제 곁에 아버지도 계속 계셨다가 잠시 바빠서 보육원에 가셨다고 하셨어요
어린 마음에도 그게 거짓인걸 알았나봐요
딸이 사경을 헤매고 있는데 잠시 바빠서 자리를 비운다는게 말이 안되긴 하잖아요

그와중에 제가 의사 선생님 붙잡고 우리 아버지 본적 있냐고 집요하게 물어봤어요
의사선생님이 아버지가 병원에 안와서 서운하냐고 물어보셨고 저는 아버지가 한번도 병원에 오지 않았다는걸 확신했어요

퇴원하고 집에 갔는데 집에도 안계셨어요
할머니한테 여쭤보니 멧돼지가 내려와서 보육원 아이들이 다칠뻔 했다며 산에 멧돼지 잡으러 가셨대요

그래서 아 나는 어딘가에서 주워온 아이구나 생각했고 조금 더 커서는 어머니가 혹시 어디에서 불륜으로 나를 낳아와서 아버지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건가? 하는 이상한 상상도 했었죠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웃기죠
저는 어릴적부터 지금까지 아버지 판박이거든요

할머니나 마을 사람들은 늘 저를 혼냈어요
아버지는 좋은 사람이니 너도 본받아야한다, 너만의 아버지가 아니다, 아버지를 욕심 내고 질투하지말아라 등등

저는 할머니도 마을 어른들도 보육원 아이들도 너무 싫었어요
언제나 그 사람들이 우선인 아버지는 더 싫었고요

그래서 성인이 된 이후로는 아버지랑 거의 안보고 지냈어요
대학 등록금도 제가 벌어서 갔구요

그러다 제가 결혼하면서 간간히 연락을 하고 지냈는데 아버지가 어느날은 저에게 아직도 자신을 미워하냐 하셨어요
보육원 아이들은 부모사랑을 모르는 아이들이라 그 애들이 상처 받을까봐 저를 일부러 안아주지 않으셨다며 사실은 저를 세상에서 제일 아끼고 사랑했대요
공부도 잘하고 혼자서도 잘 살아가는게 너무 기특했대요

저도 결혼하고 나름 스스로를 어른이라고 생각했던 때라 그래. 아버지도 힘드셨겠지. 마을 사람들의 기대와 부모를 잃은 어린 아이들을 외면하지 못하셨겠지 라며 스스로를 다독이고 아버지를 이해하려고 했고 아버지가 표현을 안하셔서 그렇지 그 누구보다 나를 아끼고 사랑하셨을거라 믿고 싶었어요

보통은 부모가 되면 부모를 이해한다고 하죠?
그런데 저는 반대에요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아버지를 더 이해할 수 없게 되었고 아이가 아프니 아무것도 다 필요없고 보이지도 않고 정신없이 아이한테만 매달리는 저를 보고 아버지는 나를 사랑하지 않으셨구나. 아버지에게 나는 우선순위가 아니었고 아버지에게 나는 아픈 손가락이 아니었구나를 깨달았습니다

내 자식이 조금만 다쳐도 마음이 쓰이고 내가 다신 아팠으면 하는게 부모 마음이라고 생각해요

딸에게 할아버지를 뺏은거 같아 좀 미안하지만 저는 앞으로 아버지를 볼 자신이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