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늦지 않았어요

새드니스2023.05.04
조회835
긴글이 될 수 있어서 간략한 체로 쓰겠음.

오늘.. 한..4년? 만에 친정아빠랑 통화를 했다.

엄마가 뇌수술를 한다는데 갑자기 말해서 오빠한테 연락을 했고 오빠는 나에게 나는 확인차 아빠에게 .. 전화를 했는데..

그 놈의 가족이 뭔지.. 부모가 뭔지..

잠시 걱정하는 마음이 들었던게 죽고싶을정도로 화가 났다..

내가 지금 이렇게 글을 쓰는건 혹시나 나와 비슷한 상황이거나..

부모와의 가족간의 관계에서 어려움이 있으신 분들에게

어떤 결정을 내리는데 도움이 되고파서..

그리고 아직.. 어린데 이런 상황이라면.. 나처럼은 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어서.. 없는 글재주에 써보기로 했다. .

내 인생의 최초의 기억은 시골집에서 지내던 6살 즈음이다.

유치원을 7살 1년만 다녔기 때문에 6살까지는 난 자연인이었다.

80년대 다들 알잖아? 대충 동네에서 또래들이랑 놀다가 집에 들어가고 필요하면 엄마들이 소리쳐서 부르면 돌아가는 시스템.

다른건 기억 안나지만 이미 그때부터 엄마한테 맞고 있었던건 기억남. 늦게 들어왔다는 이유로 잠자리채로 옛날엔 잠자리채도 대나무 비슷한 얇은 막대기 같은거로 맞고 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두번째는 동네에서 남자애랑 놀다가 어떤 아저씨가 사탕준다고 우리를 산으로 데려가서 성추행을 했는데 더 진행되기 전에 동네사람한테 발견되서 구조가 되었는데.. 엄마는 생각보다 적극적으로 그 사건에 대해 행동하지 않았던것.. 근데 이때 당한게 40대인 지금도 느끼까지 생생하게 기억남 ..

그렇게 학교 들어간후 서울로 상경을 했는데 우리엄마가 교육열이 있는 사람임. 교육열만...

엄마는 5남매중 둩째였고 여자형제중 첫째였어.

할머니는 지독한 남아선호사상을 가지고 계셨지 특히 첫째삼촌한테 몰빵..

그래서 자기가 하고픈데로 다 하지 못하고 산게 늘 한이라고 우리한테 대신 실현해주길 바랬고 자기도 차별이 어떤지 알기에 자긴 안그런다고 누누이 말했지만 그밥에 그나물..

오빠 친구들은 이름까지알고 밖에서 만나면 반갑게 인사도 하고 그랬고 나는 친구도 못만나게 가둬둠..

학교에서 친구만나면 됐지 하교후에 왜 노냐 주말에 왜나가냐 하며 집에 가둬만 둠.

내친구들 전화오면 애들 혼내고 윽박질러서 나의 학교생활에서 잘못된 잠에 대해 캐내기 바빳음.

우리엄마가 욕을 잘함. 집에서 보는게 그거니 나도 나가서 욕이 잘나왔음.

초딩때 친구가 우리집에 전화했다가 엄마의 추궁에 내가 욕을 잘한다고 말해줬고 통화종료 후 ... 나는 세상에서 가장 불량한 동네 양아치가 되어있었음

자기가 몸이 힘들거나 스트레스 받는날은 어김없이 화풀이를 집에와서 했고 집에 있는건 오로나 나 뿐이니 별 이유도 안되는 이유들로 욕먹고 쳐맞기 일쑤였음. 이런건 너무 흔해서.. 특별한 에피소드도 딱히 없으정도


어린애한테도 욕은 가차없었음 .. 직접적 표현이 기억잘안나지만 뉘앙스로 말하지만 듣고나면 내 존재의 의미가 없어지는 느낌.
나란 사람은 악의축이고 멍청하고 매번 자길 힘들게 하며 인간말종도 저렇겐 안한다는... 그런데 이런욕을 아빠 오빠 나 다 비슷하게 듣고 삼.. 집안이 엄마위주로 돌아가다보니 이런 상황이 자주 발생하고 우리는 자기를 불행하게 만드는 존재라고 늘 입버릇처럼 말함.

그러니 내가 보든 안보든 수시로 부부싸움 주제는 무능한 아빠때문에 불행하다. 내가 만족할만큼 돈 안벌어온다. 맨날 돈만 까먹어서 날 힘들게한다. (하지만 지금보면 못사는것도 아니었고 서초구살고 큰빚고 없었으면 그정도면 괜찮은거 아닌가?) 우리가 그때 11평 빌라에서 살았으니 얼마나 집에 또 아담했을까.. 실시간 부부싸움이 이틀에 한번꼴로 일어났었다.

돈을 잘 버셨다 한창 때 90년대인데 월천벌때도 있었으니 못번게 아닌데 늘 부족하다고 하셨고 남편.. 특히 자식들한테 아니 나인테 정말 인색하셨다

본인은 일하니 좋은옷 좋은화장품 쓰면서 나한테는 로션한번 사준적이 없었고 특히 옷사는거에 극혐.. 신발1개 작아지던가 떨어져야 사주고 옷도 두세벌? 그것도 평상복으로도 못입을 자기 취향옷사주고 땡.. 어느정도 컷을때는 계속 돌려입기.. 속옷도 매일 갈아입어야한다는것도 몰랐다.. 브래지어 두개로 고등학교 내내 버티고 짝맞춰서 입으면 남자랑 붙어먹는 날라리라고 생각하시니 당연히 짝맞춰서 사서 입는다는게 뭠지도 몰랐다.
본인 맘에 안드는 옷입으면 친구랑 약속이 있어도 연락도 안되던 시절에 그냥 약속 파토내게 나가지도 못하게 했음. 그럼 나는 월요일에 학교가서 대역죄인이 되어있는것임.

우리엄마 특이 있는데 자기가 아무것도 말안해도 알아서 다 해주길 바라는게 있음.. 우리는 관심법을 못쓰는데도..

그런게 양육태도에도 그대로 묻어나 있어서 위에 줄줄이 쓴것도 역시 다른애들은 알아서 다 하는데 왜 너는 못하냐...늘 비난당함

알아서 잘하는애들도 엄마가 그만큼 잘 보여주고 하는게 있으니 잘하는거겠지 제로베이스에서 아무것도 안주고 가둬두고 그냥 해 라고 하면 제대로 해내는 어린이 청소년이 몇이나 될까??

내가 아이를 낳아보니 이부분은 진짜 이해가 안갔음.

치마를 입을때 속바지도 안입혀 보내서.. 챙피당한일도 있었음..

속옷도 몇년씩 돌려입어서 하얗지도 않은데 속바지도 안입혀보내니.. 겉만 멀쩡하면 속이 어떻든 본인은 만족했나봄..

중학교 올라가서 첫시험을 봤는데 중간정도였는데 보여주면 어떻게 될지 너무 잘 아니 두려워서 몇일 안보여주다가 걸렸었는데..

그걸 그후 20년넘게 무슨 일만 있음 저년이 중학교올라가서 첫시험부터 자기 속이고 기만하고 아주 날라리였다고..... 사골도 아닌데 너무 우려먹음. 이런식의 리바이벌 레파토리 무궁무진함.

그럼애도 그때까지는 엄마를 사랑했나봄 어린나이에 엄마 힘들게 한다고 속으로 아빠를 어찌나 미워했는지..

가족의 정은 없었는데 그래도 기댈곳은 부모라고 일말의 기대는 한거 같음.

오빠랑은 3살터울인데.. 집에서는 동네북처럼 엄마가 맨날 나는 뒷전에 병신취급을 하니 이놈도 그래도 되나보다 했나봄.

엄마없으면 자기가 엄마처럼 군림해서 간간히 때리고 자기 수발들게 함. 어느날은 자기 양말도 나보고 벗기라고 해서 벗겨준일도 있음.

이건.. 누구한테도 한적 없는데..

초등학교때 한 5학년 6학년? 오빠는 중학생일때 그새끼가 가끔 밤에 자는데 내방에 들어와서 바지내리고 자기 곧휴를 내 허벅지에 비비던 짓거리를 몇번 한적이 있었는데 그새낀 나 자는줄 알았을텐데 .. 무서워서 자는척 하고 있었던 거임.

근데 이것도 말을 못함 엄마는 오빠를 더 사랑하고 내가 말하면 집안에 불난일으키는거라 생각해서 평생의 비밀로 입다물었음..

이 오빠놈은 고등학교때도 운동을 빙자해 그런 자세를 나에게 취하게하는 짓거리도 했었는데 이건 내가 더 크고 나서 그게 그거였단걸 알게되었다 개신발놈.. 나 다 알고 있다고 이새끼야...


나는 지금도 대인관계가 안좋다.. 친구라고 할만할 사람이 진짜 단 한명도 없다.

이건 내 탓도 있는듯 워낙 꼬여있던데다가 어릴때부터 제대로 친구관계를 맺어보질 못했더니 이런 어른이 되어버렸다.

초등학교때까지는 그럭저럭이었는데 중학교 이후부터는 거의 왕따생활..

특히 중학생때는 심했다.

좋아하는 친구들도 어느 시점이 되면 내가 너무 그들한테 의지하고 독점하려고 하고 멋대로 구는데다가 엄마마저 저래버리니 관계를 제대로 이어가지 못하기 일쑤였고 애들이 왜 너를 싫어하는줄 아냐 너가 싫은거40 너네엄마때문이 60이다 라는 소리를 듣는 지경까지 가게됨.

그 소리듣고 저항도 못하고 그렇게 그렇게 왕따생활로 중학교 3년을 마무리함.

나중에 커서 엄마한테 맣했더니 니가 친구관계 똑하로 못맺고 왜 내탓하냐는 소리 들음.

고등학교들어가서는 더 가관임.

인문계가도 되었지만 실업계가는게 더 낫지 않겠냐는 담임 설득에 상고진학을 함.

난 3년동안 홍길동이 됨 친척모임있으면 나는 집근처 인문계고 학생이 됨... 쪽팔리다고 말못하게함.

그러다가 사춘기가 오게되었는데 이때부터는 뭐.. 롤러코스터급으로 망가짐

사춘기가 와도 너무 쎄개온데다 지금와 생각해보면 우울감도 꽤 깊었던거 같다.. 매일이 죽고싶고 자해하고 그랬으니 맑은날 청명한 하늘만 봐도 불안했고 가을에 선선한 바람이 불면 두려웠다..

집에 들어가기가 싫었지만 억지로 들어갔고 머리컷다고 봐주는것도 없었다.
상고를 가도 공부는 하라는데 문제집 하나 사주지도 않고 공부만 하란다 자기는 그렇게 다 했다며..

한번 어긋나기 시작하니 도둑질도 하고 담배도 하고 남자도 했다

나를 파괴하지 않으면 가슴속에 응어리들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가출도 해봤다.. 집이 아니니 너무 편했지만 한편으로 불안감은 지울 수 없었다..

미성년자니 금방 잡혀오긴 했다..

집에 오자마자 엄마는 날 산부인과로 데려갔다..

임신여부를 확인한다고... 그것만 걱정했다..

어서 독립하고 싶었더 어른이 되어서 탈출하고 싶었다

그래도 대학은 가여한다며 공부도 못하던 나를 지방 전문대에라도 보냈다.

기숙사 생활 좋았다 하지만 연락이 잠시라도 안되면 기숙사로 전화해서 난리쳐놓고 오지는 않으면서 여기저기 전화돌려서 어떻개든 수소문해서 나에게 연락을 해댔다.

완벽한 분리가 아니다 보니 엄마 전화만 와도 이상하게 블안감이 스치고 무언갈해도 끝맺음이 늘 어려웠다..

대학졸업 후 견디다 못해 맨몸으로 나왔다.

돈 한푼없이 나와서 생활은 너무 힘들었지만 오롯이 혼자인것은 좋았다...

뭏론 그때도 몸이 나왔다고 모든게 다 나온건 아니었다

만남은 회피핳순 있어도 전화연락은 매번 피하기가 어려웠다

전화오면 원망과 비난 .. 그당시엔 나도 나와있지만 오빠새끼고 전도사한답시고 신학공부하다가 사이비에 빠져가지고 에휴..

아들하고 연락도 안되니 딸한테 기대고 싶은데 그 방식이 원망과 비난.. 날카로운 비수뿐이니 본인은 스트레스라도 풀겠지만 그시절 나에게는 뜻모를 죄책감만 안겨줬죠..

가정내에서 속편히 지내지도 못하고 나와서도 되는일 없고 늘 불안감과 와로움애 싸우며 나 자신도 찾지못하고 허송세월만 보냈는데 이것만큼 후회되는게 없었음. 누군가의 사랑을 찾도 마음 기댈 사람을 늘 갈구하고 그거에 몰두하여 나를 버리고 찾은건 없고 마음 채우지도 못하고 그저 실패 실패 실패... 부모한테 받지 못한 사랑 다른데서 찾으려니 아무것도 똑바로 하지 못하였음..

그러다 다행히 결혼은 하였음..

결혼을 하자니 새로운 시련이 찾아옴

결혼날짜도 자기 멋대로 정해버리고 와서 통보하고 왜그러냐 했더니 니가 그때하고싶다고 하지 않았냐며 내탓...

2달만에 결혼준비하고 식올림..;;;

식준비중 도저히 못버티고 신혼집으로 도망침.

결혼식날 네일숍에서부터 네일숍사장님 잡들이해서 시술 다 끝내지도 못하고 떠밀려나와 메이크업샵 갔는데 거기서 쓰러져서 식 끝나갈때쯤 옴. 물론.. 그건 건강상 문제가 있었던 거라 뭐라 하고싶진 않지만 아프니 주변사람들 더 힘들게함.

결혼날 온 아들내미한테 수고했다고 몇십만원 수고비 줌

그런다음 당일 결혼식 비용 신랑한테 전가함. 이것도 몇년후에 들음.. 그날 축의금으로만 천만원 넘게 들어옴.

혼수 안해줌. 40만원짜리 그릇세트만 해서 보냄 아 내가 쓰던 침대는 들고감.. 좋은 집 사서가면 그때 혼수해주겠다며.. 물론 그때까지 아무것도 못모은 내가 죄인이지요

그러고 2년후에 집사서 이사했지만 200만원주고 끝...

결혼 후에는 신랑봐서라도 잘하고 지내야지 했는데..

본인 맘에 안들면 사위라고 봐주는거 없음 영문도 모르고 욕먹는 신랑도 참지못해 소리지르고 한마디 한걸로 그 뒤에 일만 생기면 자기한테 썅욕한 새끼라고 불림.

나 결혼하고 딱 일년만에 아들놈 결혼 나 그때 만삭 예정일 1주일 남기고 가서 일도움 그러고 난 아무것도 안주고 입싹 닦길래 부득부득 우겨서 수고비받아옴.. 진짜 아들딸 차별 뭐같음..

애낳고 신랑이 힘들다하여 친정서 산후조리했는데 신랑이 수고비 드렸고 그래도 받았는데 고맙다고 한마디 해주라는 말했다가 쫓기듯 집으로 돌아옴..

명절때도 시댁먼저가면 아주 기분나빠함 시댁가서는 잠도 안자는데 자기한테 먼저와서 자기한테 더 잘해야한다는데 저볌에 깔려있음 일박안하고 점심도 안먹고 가면 삐짐. 삐지는것도 사람 피말리게 삐짐..

살아오면서 정확히 엄마 아부지 생일 모르고 삼 늘 수수께끼처럼 제대로 알려준적 없음 옛날분들이라 호적상 생일하고 음력챙기는 날짜도 달랏는데 늘 그거 못알아내서 자기 생일 알아주지도 않는다고 그때만 다가오면 매해 큰 싸움만 했음. 그러니 생일이라고 가족끼리 기쁘게 서로서로 챙겨주는 분위기?? 절대 없음 .

그런데도 자기 생일이 음력 7월 말이면 7월1일부터 아는척안하고 이것도 안해주고 저것도 안해준다고 혼자 속으로 쌓아두다가 나음 미리 일정 이야기하면 그건 귀에도 안들어오고 자기 생각 몰라줬다고 썅욕을 퍼부움.. 결혼했으니 이제 신랑한테도 똑같이 욕함.

한때는 진짜 내가 궁예였음 했음 제발 알고 싶다 그 마음.

그렇다고 나머지 가족들 생일날 그렇게 해주는것도 아님..

진짜 억지로 해주는 느낌 많이 받음. 그냥 생일이니까... 그러면서 꼭 자기생일도 안해주는데 나는 해준다는 이야기 꼭 달음.

그냥 안받고 안해주고 싶은데 안받은건 되도 안해주는건 안됨.

그러다 시어머니가 아프기 시작하심

처음엔 폐렴으로ㅠ시작되었는데 원래 심장도 안좋으시고 골다공증도 심하셨다. 허리쪽에는 10여년전에 핀박는 수술 두번이나 하시고 류마티스도 있어서 전반적으로 건강하신 편은 아니었는데 폐렴을 몇번 앓으시면서 1년 2년 겨울만 되면 계속 안좋으셨다.

그러다가 우리랑 같이 사시는 것도 아니고 사정이 있어서 함께 사시는건 어려워서 요양원을 알아보던 중에 아프시니 대학병원가셨다 종합병원가셨다 요양병원으로 옮기며 몇달을 병원생활 하시몀서 식사를 전혀 못하시고 소화도 못시키는 상황이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새벽에 심정지 오셔서 중환자실에서 반나절 못버티고 떠나셨어요..

그때는 위의 생일이슈때문에 엄마랑 몇달째 연락 안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사돈이고 큰일이기에 알리기 위해서 연락을 했더니..

자기 기분은 안풀어주는 마당에 너네 시어머니 죽었다고 나한테 울면서 전화하냐 더라구요...

자기한테 잘못했다고 안풀어주고 너네 시어머니 죽은게 더 슬프냐며..

하.. 정말.. 인간인가 싶더라구요..

그때가 사망선고받고 신랑한테 연락받고 시어머니 집에 서류챙기라 가던길이니 30분도 안되었을때였음

나를 자식취급 안하고 사위라고 제대로 대접안해주는것도 늘 죄인같은 마음으로 나는 그 미안함에 신랑앞에서 제대로 나를 드러내지도 못하는데... 내 어미라는 사람은 사람의 생사앞에서도 자기자신밖에 모르는구나 싶었음.
썅욕를 퍼붓고 이제 나한테는 어미가 없으니 연락하지말라고 끊음.

그러고선 바로 신랑한테 전화해서 뭐 그리 대단한일이냐며 내가 가야되 말아야해? 라는 전화를 함... 내욕할라고 자기어머니 돌아가신지 1시간도 안된 사람한테 전화해서 패악을 부렸음...

그뒤로 연락을 안학고 사는중인데.. 1.2년정도는 신랑한테 더 바짝 엎드려살았음.. 닌 죄인의 딸이니...

그러다가 오늘 오빠새끼한테 엄마 수술하는데ㅜ아는거 있냐는 전화를 받았고 아빠랑 통화하는데 장례식 안오거로ㅠ여태 그러는가냐는 소리를 듣고ㅠ아.. 진짜 끝이구나라는 생각을 다시 하며 여기에 글을 적은것임.




두서없이 이야기 썻지만 가장 하고싶은 말은 부모라고 다 같은 부모도 아니고.. 자식을 자신의 도구정도로 생각하는 부모하고는 굳이 어렵게 연을 이어가는것에 깊게 생각해보길 바래서이다

어릴때는 그 부모가 아니면 내가 죽고살고가 결정되니 내가 선택할 수 있는것도 없지만 어느순간 부모도 나도 서로에게서 독립된 존재라는것을 인정해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그 이상이하고 아닌 사람이 되길 바라는 부모들도 있을거다..

언젠가 서로에게 부족한 부분을 깨닫고 노력하면 너무나 다행이지만 나같이... 그런 유년기를 거치고 그 때의 괴로움이 인생 전반에 걸쳐서 발목을 잡고 그 그림자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결국은 나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는 방법을 알지못하는 사람이 되는거다..

가족이 먼저이기보다 내가 바로 서고 평안함을 가지고 살아야 가족안에섣 올바른 위치에 설 수 있다고 본다.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누구도 날 사랑해주지 않는다..

결혼 후 가장 후회하는게 내가 내 자신에게도 확신이 없고

마음한켠 기댈 누군가를 찾다가 결혼을 하니

내가 자신감있게 대등하게 신랑과의 관계를 가져가지 못한다는게

가장 후회됩니다.

남자에게 기대지 않고 더 내실있는 시간을 보내지 못한거...

부디 이런 비슷한 아픔 있으신 분들.. 늦지않게

자기자신을 오롯이 돌아보고 아껴줄 수 있는 시간을 갖고

나를 괴롭게 하는 이유들로 부터 해방되길 바라며..

글을 마쳐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