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절강해2(막8 31 35 유튜브 교회 #활공교회, 설교원본-BAND: 활공교회)
https://youtu.be/Zr6AVFPFeVY
말씀:
31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만에 살아나야 할것을 비로소 저희에게 가르치시되
32 드러내놓고 이 말씀을 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매
33 예수께서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가라사대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34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3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막8:3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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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483 구름같은 이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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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절강해1 전편 이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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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절, 드러내놓고 이 말씀을 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매
-> 베드로의 이 행동은 십자가를 지기 싫어 하는 인간의 인간적 사단적 습성을 대표합니다. 예수님은 공의의 메시아와 고난의 메시야 로서 다음과 같이 구약에 예언이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공의의 메시아 만을 기억하여 무력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고만하고 싶어 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다음 구절 보겠습니다.
공의를 행하는 메시아
4 공의로 빈핍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5 공의로 그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몸의 띠를 삼으리라
(사11
/
고난의 메시아
11 가라사대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
12 이러므로 내가 그로 존귀한 자와 함께 분깃을 얻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사53
이 두가지 예언 중에 메시야께서 고난의 메시야 인 것을 보았다면 공의의 메시아도 추측 해 볼 수 있으나 처움부터 심판의 메시야만을 베드로는 적용 합니다. 현대의 지금은 이제는 주님은 고난의 메시야로서 당하 셨기에 공의의 메시야로서 지상 재림시에 그 무서운 심판의 능력을 보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이 이러한 공의의 날 전에는 우리 또한 수난의 길을 같이 걸어야 할 것입니다. 전라도 지역에 많은 목회자들이 북한군의 포행을 겪었던 것이 사실이고 복음이 전해 오기전 유럽과 이슬람에서 이 수난의 고행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이런 수난을 생각지 않는 다면 푸틴과 같이 작은 유익을 위해서라고 남을 무력으로 다스리려하는 누를 범할 것입니다. 수난의 십자가는 겸손과 이웃 사랑입니다. 폭거의 십자가는 아닙니다.
/
33절, 예수께서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가라사대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
예수님은 아버지의 명령을 위해 고난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일은 보복하는 것이요 같이 무력을 유도하는 것이요 예수님과 친하니 그가 지어야 할 고통을 지지 못하게 하려는 인간적인 동료애입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명령은 이것보다 승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명령을 위해 자신의 손과 발을 못 박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명을 위해 손과 발을 못 박을 수 있는 용기가 있습니까?
/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갈6 14
세상의 방법을 위해 손과 발이 풀려 있지는 않습니까? 영적인 거룩함을 위해 우리의 손과 발을 묶이어 그러한 방법에는 닫혀 있어야 합니다. 푸틴이 각종 포화를 이용해 민간인을 학살하는 방법은 손과 발이 박혀 생각지 않아야 합니다. 가정과 회사에서도 우리는 강압과 다툼, 교만을 통해 이웃에게 고통을 가해서는 아니되며 가정에서도 아내에 대한 사랑도 언제나 사랑을 위해서는 풀려 있고 악행을 위해서는 생각이 완전 닫혀 있어야 합니다.
/
34절,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
자기를 부인 한다 함은 소극적으로는 자기주장, 생각, 욕심을 변과 같이 버린다는 것입니다.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드려 불법에 이른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
(롬6:19
이는 우리의 삶에서 크고 작은 생활 가운데 있습니다. 각자 내 삶에 작은 것에 부정과 불법이 무엇이며 이를 의의 종으로 자부하여 거룩함의 길을 가는 것이 무엇인지 돌아 봅시다.
/
적극적으로의 십자가 길은 엄숙한 죽음의 십자가형을 의미합니다. 이는 예수님과 그 제자로 반기독교 권에서 역사적을 이루어져 왔으나 지금 우리 한국에서는 참 행복한 상태가 아닌가로 여겨집니다. 누가 예수님을 시인한다고 죽이며 불이익을 주겠습니까 오히려 기독인 상사가 있으면 더 대우를 받는 것이 회사에서의 즐거운 십자가 생활입니다. 저나 여러분의 평안의 생활입니다. 다만, 이러한 행복 속에 우리는 마음껏 전도함으로 그 숙제를 늘려야 겠습니다
저도 그 숙제가 사실 적지는 않습니다. 남들은 주일 한번 예배 드리고 자기 놀이에 푹 빠져 살아도 되나 저는 설교를 준비하고 녹화하고 신설된 short 켄텐츠도 준비하고 룸프레이징도 준비하고 더 나아가 버스킹도 이제 준비해야 합니다. 또 매주 하루는 금식을 하기에 금식하는 하루는 사실 힘이 없어 아무것도 못합니다. 하지만 이 바쁜거 같은 날에도 사실 게으른 느낌이 있습니다. 더 하나님의 의를 위해 저는 손과 발을 십자가에 못 박지 못하고 더 하나님을 위해 손과 발이 풀려 주님을 위해 일하지 않는 부족함을 느낍니다.
이것이 성화의 과정인둣 합니다.
/
35절,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 주님께서는 하나님을 위해 죽는 것이 목숨을 얻는 것이라 합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생명의 주인이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생명의 주인이시기에 자신을 위해 충성한 자에게 그 댓가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는 포도나무가 되시는 주님과 붙어 있는 삶을 상징하고 그 주님과 붙어 있는 자는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자꾸 푸틴 예를 들어 미안합니다. 너무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반십자가의 삶을 산 사람이라요 그가 만약 소련 시절 폭력으로 얻은 나라를 많이 풀어 주었을 때 그것이 나라들의 본 모습이 아니던가요
그런데 다시 얻겠고 나토와의 거리도 더 거리를 두겠다라고 하지만 그 사랑없는 반십자가 행동은 핀란드를 국경으로 모스크바 코앞에 핵무기를 둘 수 있는 상황까지 이르고 자신의 모든 자원 부국과 이웃의 첨단제품을 포기하고 더 자신 국가의 멸망의 길을 초래하고 맙니다. 예수님을 등지고 살려 하였으나 하지만 지금은 푸틴이 죽어야만하는 때가 되고 말았습니다. 최대한 그가 빨리 죽고 지옥을 가야지만 세계의 평화가 앞당겨지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생명의 주인 예수님을 등지다가 오히려 생명을 잃어 버리는 꼴을 금생과 이생에 당하게 됩니다.
/
2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11:25-26
1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2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요15:1-2
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함이니라
12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요15:11-13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롬8:17
/
지금 한국에서 십자가의 죽음이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면 우리 한국에서의 십자가의 손발의 못 박히는 삶은 무엇일까요 바로 친구를 위한 사랑이라고 본문은 이야기 합니다. 직장의 상사는 하급자라 무시하고 포학하게 일을 시키지 않고 그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평안히 일 할 수 있도록 도와 주어야 합니다. 하급자는 상사를 존중하고 주님안에서 따라야 할 일은 순종하며 잘 따라야 합니다. 그러나 불의한 일을 하라 할 때는 십자가 지둣 반대는 할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도 무당방언 시키는 목회자가 수두룩 합니다. 많은 교회에서 당했지만 무당방언 나쁘다면 대번 전도사는 쫓겨납니다. 이를 십자가를 지는 저의 삶이기도 합니다. 처움 교회인 모태교회에서 쫓겨 났고 목회자도 나가라 했습니다. 겨우 새벽예배나 거짓으로 인정한다 가끔 나가고 있습니다. 정든 모태교회라 아예 끊을 수도 없지요 그래서 주간 예배는 사실상 드리기 힘들어 저는 온라인 교회를 설립한 것입니다. 기독 방송도 상당수 목회자가 무당방언을 하라기에 옮기며 방송을 듣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건 저와 같은 이름의 두레교회 김진홍 목사님도 하지는 않지만 반대하지 않는 무지함을 나타 냅니다.
/
날기새도 열심히 들었지만 그 분도 부자가 같이 무당방언 받고 자랑하는거에 기겁하고 나왔습니다. 모교회를 비롯하여 저들에게 충성하고 열심 내다 무당방언 받어 직분 받으라 하고 또 다른 자에게 마귀 방언의 제자들 만들라는 수두룩한 마귀 제자 양성은 오늘의 기괴한 사회 현상을 낳았습니다. 무당방언 전광훈 목사는 알박기(미개한 중국에나 있을 법한) 대명사로 갖은 여러 사람을 향한 모함과 하나님 모욕으로 한국 교회의 골칫러리 난봉꾼을 양성되었고 서세원 목사는 무당방언(그가 무당 방언하는 것을 검색해 보세요)을 하며 타락을 진행하다 아내를 패고 딸같은 여자와 바람이 났고 마약을 투약하다 외딴 곳에서 홀로 죽음을 맞이 했습니다.
무당방언 안하는 교회를 세우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 가급적 아름다운 환경에서 새벽예배를 드리고 버스킹도 울산바위나 토왕성 폭포에서 주님의 자연을 찬양하며 부르기를 원합니다. 속초 일출을 보며 새벽예배도 라이브로 녹화해 보고 싶습니다. 오프라인 교회를 통해 근방에 못 새우면 온라인이라도 방을 구해 실행해 보고 싶습니다. 이것이 지금은 힘들지만 노후에 저의 활공교회를 통한 비젼입니다.
/
열심히 무당 방언하는 교회서 일하다(저는 소름이 끼칩니다.) 그 새 교인이 성장하여 무당방언 받고 타락하고 또 다른 무당방언 교회를 새우는 지금 한국교회의 타락한 좀비 메카니즘은 하루 속히 변해야만 한국과 북한과 세상이 비젼이 있습니다. 대부분이 좀비 교회인 한국교회에 무당방언 타파의 회복이 있어야만 합니다. 우리 활공교회가 부디 거룩의 십자가의 길을 가며 성장 부흥 할 수 있도록 다같이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가정도 아내를 사랑함으로 십자가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그들의 마음을 이해해 주고 쓸 것을 채워 주어야 합니다. 신랑은 그 아내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헌신도 물론 있어야 만 합니다. 그것이 주님의 가지에 붙어 있는 삶이며 말씀과 기도에 붙어 있는 자의 자연스러운 십자가 길의 따름이 따라 올 것입니다. 그리고 자녀에게도 하나님 아버지와 같은 아들 사랑이 있어야 만 합니다. 그들의 충성이 따라 올 때 그의 권세를 나눌 수 있는 헌신이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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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지금은 십자가의 죽음이 없는 한국의 환경이옴에 감사를 드립니다. 하지만 십자가의 자신의 주장을 죽이는 거룩의 삶을 원하시는 것이 자유주의 진영의 삶입니다. 주님의 의만을 드러내는 하나님과 이웃 사랑의 십자가를 주님의 가지에 붙어 있으며 동행 하기를 원합니다. 타락한 무당방언의 썩은 가지 썩은 교회가 아닌 순수한 말씀과 기도를 통한 교회를 이루기를 원합니다. 이런 거룩한 십자가의 도를 따르는 사랑이 넘치는 직장, 교회, 가정, 나라를 이루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우리나라 대통령에게도 강한 은혜를 주시옵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구절강해2(막8 31 35 유튜브 교회 #활공교회, 설교원본-BAND: 활공교회)
https://youtu.be/Zr6AVFPFeVY
말씀:
31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만에 살아나야 할것을 비로소 저희에게 가르치시되
32 드러내놓고 이 말씀을 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매
33 예수께서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가라사대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34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3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막8:3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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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483 구름같은 이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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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절강해1 전편 이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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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절, 드러내놓고 이 말씀을 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매
-> 베드로의 이 행동은 십자가를 지기 싫어 하는 인간의 인간적 사단적 습성을 대표합니다. 예수님은 공의의 메시아와 고난의 메시야 로서 다음과 같이 구약에 예언이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공의의 메시아 만을 기억하여 무력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고만하고 싶어 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다음 구절 보겠습니다.
공의를 행하는 메시아
4 공의로 빈핍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5 공의로 그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몸의 띠를 삼으리라
(사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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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의 메시아
11 가라사대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
12 이러므로 내가 그로 존귀한 자와 함께 분깃을 얻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사53
이 두가지 예언 중에 메시야께서 고난의 메시야 인 것을 보았다면 공의의 메시아도 추측 해 볼 수 있으나 처움부터 심판의 메시야만을 베드로는 적용 합니다. 현대의 지금은 이제는 주님은 고난의 메시야로서 당하 셨기에 공의의 메시야로서 지상 재림시에 그 무서운 심판의 능력을 보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이 이러한 공의의 날 전에는 우리 또한 수난의 길을 같이 걸어야 할 것입니다. 전라도 지역에 많은 목회자들이 북한군의 포행을 겪었던 것이 사실이고 복음이 전해 오기전 유럽과 이슬람에서 이 수난의 고행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이런 수난을 생각지 않는 다면 푸틴과 같이 작은 유익을 위해서라고 남을 무력으로 다스리려하는 누를 범할 것입니다. 수난의 십자가는 겸손과 이웃 사랑입니다. 폭거의 십자가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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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절, 예수께서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가라사대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
예수님은 아버지의 명령을 위해 고난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일은 보복하는 것이요 같이 무력을 유도하는 것이요 예수님과 친하니 그가 지어야 할 고통을 지지 못하게 하려는 인간적인 동료애입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명령은 이것보다 승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명령을 위해 자신의 손과 발을 못 박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명을 위해 손과 발을 못 박을 수 있는 용기가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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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갈6 14
세상의 방법을 위해 손과 발이 풀려 있지는 않습니까? 영적인 거룩함을 위해 우리의 손과 발을 묶이어 그러한 방법에는 닫혀 있어야 합니다. 푸틴이 각종 포화를 이용해 민간인을 학살하는 방법은 손과 발이 박혀 생각지 않아야 합니다. 가정과 회사에서도 우리는 강압과 다툼, 교만을 통해 이웃에게 고통을 가해서는 아니되며 가정에서도 아내에 대한 사랑도 언제나 사랑을 위해서는 풀려 있고 악행을 위해서는 생각이 완전 닫혀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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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절,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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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를 부인 한다 함은 소극적으로는 자기주장, 생각, 욕심을 변과 같이 버린다는 것입니다.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드려 불법에 이른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
(롬6:19
이는 우리의 삶에서 크고 작은 생활 가운데 있습니다. 각자 내 삶에 작은 것에 부정과 불법이 무엇이며 이를 의의 종으로 자부하여 거룩함의 길을 가는 것이 무엇인지 돌아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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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극적으로의 십자가 길은 엄숙한 죽음의 십자가형을 의미합니다. 이는 예수님과 그 제자로 반기독교 권에서 역사적을 이루어져 왔으나 지금 우리 한국에서는 참 행복한 상태가 아닌가로 여겨집니다. 누가 예수님을 시인한다고 죽이며 불이익을 주겠습니까 오히려 기독인 상사가 있으면 더 대우를 받는 것이 회사에서의 즐거운 십자가 생활입니다. 저나 여러분의 평안의 생활입니다. 다만, 이러한 행복 속에 우리는 마음껏 전도함으로 그 숙제를 늘려야 겠습니다
저도 그 숙제가 사실 적지는 않습니다. 남들은 주일 한번 예배 드리고 자기 놀이에 푹 빠져 살아도 되나 저는 설교를 준비하고 녹화하고 신설된 short 켄텐츠도 준비하고 룸프레이징도 준비하고 더 나아가 버스킹도 이제 준비해야 합니다. 또 매주 하루는 금식을 하기에 금식하는 하루는 사실 힘이 없어 아무것도 못합니다. 하지만 이 바쁜거 같은 날에도 사실 게으른 느낌이 있습니다. 더 하나님의 의를 위해 저는 손과 발을 십자가에 못 박지 못하고 더 하나님을 위해 손과 발이 풀려 주님을 위해 일하지 않는 부족함을 느낍니다.
이것이 성화의 과정인둣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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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절,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 주님께서는 하나님을 위해 죽는 것이 목숨을 얻는 것이라 합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생명의 주인이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생명의 주인이시기에 자신을 위해 충성한 자에게 그 댓가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는 포도나무가 되시는 주님과 붙어 있는 삶을 상징하고 그 주님과 붙어 있는 자는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자꾸 푸틴 예를 들어 미안합니다. 너무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반십자가의 삶을 산 사람이라요 그가 만약 소련 시절 폭력으로 얻은 나라를 많이 풀어 주었을 때 그것이 나라들의 본 모습이 아니던가요
그런데 다시 얻겠고 나토와의 거리도 더 거리를 두겠다라고 하지만 그 사랑없는 반십자가 행동은 핀란드를 국경으로 모스크바 코앞에 핵무기를 둘 수 있는 상황까지 이르고 자신의 모든 자원 부국과 이웃의 첨단제품을 포기하고 더 자신 국가의 멸망의 길을 초래하고 맙니다. 예수님을 등지고 살려 하였으나 하지만 지금은 푸틴이 죽어야만하는 때가 되고 말았습니다. 최대한 그가 빨리 죽고 지옥을 가야지만 세계의 평화가 앞당겨지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생명의 주인 예수님을 등지다가 오히려 생명을 잃어 버리는 꼴을 금생과 이생에 당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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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11:25-26
1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2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요15:1-2
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함이니라
12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요15:11-13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롬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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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국에서 십자가의 죽음이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면 우리 한국에서의 십자가의 손발의 못 박히는 삶은 무엇일까요 바로 친구를 위한 사랑이라고 본문은 이야기 합니다. 직장의 상사는 하급자라 무시하고 포학하게 일을 시키지 않고 그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평안히 일 할 수 있도록 도와 주어야 합니다. 하급자는 상사를 존중하고 주님안에서 따라야 할 일은 순종하며 잘 따라야 합니다. 그러나 불의한 일을 하라 할 때는 십자가 지둣 반대는 할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도 무당방언 시키는 목회자가 수두룩 합니다. 많은 교회에서 당했지만 무당방언 나쁘다면 대번 전도사는 쫓겨납니다. 이를 십자가를 지는 저의 삶이기도 합니다. 처움 교회인 모태교회에서 쫓겨 났고 목회자도 나가라 했습니다. 겨우 새벽예배나 거짓으로 인정한다 가끔 나가고 있습니다. 정든 모태교회라 아예 끊을 수도 없지요 그래서 주간 예배는 사실상 드리기 힘들어 저는 온라인 교회를 설립한 것입니다. 기독 방송도 상당수 목회자가 무당방언을 하라기에 옮기며 방송을 듣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건 저와 같은 이름의 두레교회 김진홍 목사님도 하지는 않지만 반대하지 않는 무지함을 나타 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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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기새도 열심히 들었지만 그 분도 부자가 같이 무당방언 받고 자랑하는거에 기겁하고 나왔습니다. 모교회를 비롯하여 저들에게 충성하고 열심 내다 무당방언 받어 직분 받으라 하고 또 다른 자에게 마귀 방언의 제자들 만들라는 수두룩한 마귀 제자 양성은 오늘의 기괴한 사회 현상을 낳았습니다. 무당방언 전광훈 목사는 알박기(미개한 중국에나 있을 법한) 대명사로 갖은 여러 사람을 향한 모함과 하나님 모욕으로 한국 교회의 골칫러리 난봉꾼을 양성되었고 서세원 목사는 무당방언(그가 무당 방언하는 것을 검색해 보세요)을 하며 타락을 진행하다 아내를 패고 딸같은 여자와 바람이 났고 마약을 투약하다 외딴 곳에서 홀로 죽음을 맞이 했습니다.
무당방언 안하는 교회를 세우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 가급적 아름다운 환경에서 새벽예배를 드리고 버스킹도 울산바위나 토왕성 폭포에서 주님의 자연을 찬양하며 부르기를 원합니다. 속초 일출을 보며 새벽예배도 라이브로 녹화해 보고 싶습니다. 오프라인 교회를 통해 근방에 못 새우면 온라인이라도 방을 구해 실행해 보고 싶습니다. 이것이 지금은 힘들지만 노후에 저의 활공교회를 통한 비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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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무당 방언하는 교회서 일하다(저는 소름이 끼칩니다.) 그 새 교인이 성장하여 무당방언 받고 타락하고 또 다른 무당방언 교회를 새우는 지금 한국교회의 타락한 좀비 메카니즘은 하루 속히 변해야만 한국과 북한과 세상이 비젼이 있습니다. 대부분이 좀비 교회인 한국교회에 무당방언 타파의 회복이 있어야만 합니다. 우리 활공교회가 부디 거룩의 십자가의 길을 가며 성장 부흥 할 수 있도록 다같이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가정도 아내를 사랑함으로 십자가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그들의 마음을 이해해 주고 쓸 것을 채워 주어야 합니다. 신랑은 그 아내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헌신도 물론 있어야 만 합니다. 그것이 주님의 가지에 붙어 있는 삶이며 말씀과 기도에 붙어 있는 자의 자연스러운 십자가 길의 따름이 따라 올 것입니다. 그리고 자녀에게도 하나님 아버지와 같은 아들 사랑이 있어야 만 합니다. 그들의 충성이 따라 올 때 그의 권세를 나눌 수 있는 헌신이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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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지금은 십자가의 죽음이 없는 한국의 환경이옴에 감사를 드립니다. 하지만 십자가의 자신의 주장을 죽이는 거룩의 삶을 원하시는 것이 자유주의 진영의 삶입니다. 주님의 의만을 드러내는 하나님과 이웃 사랑의 십자가를 주님의 가지에 붙어 있으며 동행 하기를 원합니다. 타락한 무당방언의 썩은 가지 썩은 교회가 아닌 순수한 말씀과 기도를 통한 교회를 이루기를 원합니다. 이런 거룩한 십자가의 도를 따르는 사랑이 넘치는 직장, 교회, 가정, 나라를 이루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우리나라 대통령에게도 강한 은혜를 주시옵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