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

익명2023.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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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넘는 평생 살면서 아무한테도 얘기한 적 없는지난날의 얘기를 털어버려야 될 것 같아서 여기다 하소연 합니다. 과거는 곱씹지 않으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자꾸 그안에서 허우적 거리기만 하는 나를 이제 놓아주려 합니다. 저는 별로 화목하지 않은 집안에서 온갖 폭력에 노출되어 자랐어요. 그 누구 하나 올바른 어른이 없었고 가정의 따뜻함이라고는 단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습니. 특히 어린시절 아빠의 학대와 폭언으로 항상 눈치보는 아이가 되어버렸고 엄마의 우울증 분풀이 대상이 되면서 제 원래 성격이 어떤사람인지도 모르고 불안하게 자라버렸습니다. 하지만 밖에서는 티를 안내려고 노력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누구한테라도 도움을 요청했으면 이 지경까진 안됐을 거 같아요. 저희아빠는 저한테 그렇게도 윽박지르고 폭언하고 정신적 학대를 하면서 부모자격도 없었어요. 제가 초등학교에 가기 전 아빠한테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이 잠지 한번 만지자 였어요 밥상에 짠지가 안올라와서 그것 좀 먹자고 엄마한테 하는 소리를 제가 지금 만지겠다고 하는 줄 잘못들었던 초1때 기억이 생생합니다. 본인이 부모에게 사랑받은 적이 없어서 그렇다고 이해하기엔 인간이기에 지켜야 할 선도 없는 짐승입니다. 제가 3학년부터 일찍 2차 성징이 왔는데 항상 긴장되고 걱정하던 어느날 제가 배탈이 났어요. 아빠라는 인간이 제 웃통을 까더니 가슴은 주물럭거렸습니다. 그전부터 제가 가슴이 나오기 시작하니까 만지려고 벼르고 있던걸 배 아픈데 소화되게 해주겠다며... 그렇게 저에게 애틋하고 관심많은 부모였는지 그날 처음 알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일이 있을 줄 예상했습니다. 어린나이고 너무 수치스러웠지만 옆에서 말려주는 이 하나 없었고 엄마랑 2살 터울 언니가 옆에 서서 웃고있었어요. 누가보면 화목한 집안처럼.... 맨날 고딴 것만 신경쓰는 게 느껴졌고 한번은 당할 줄 알았거든요. 딸한테 한다는 소리가 그때 당시 초딩이 뭘 알겠어요, 저한테 가슴이 커서 좋겠다느니 오리궁뎅이라 좋겠다.등등 성적이 얘기들이 많았거든요. 중.고등학생이되자 어떻게든 한번 만져볼라고 별별 시도 다했습니다. 특히 목욕할 때 문 열어서 훔쳐보고 별 시덥지 않은 짓거리 많이 하더군요. 진작에 부모로 정떨어졌습니다. 언니 얘기는 하지 않을게요. 입에 올리기도 싫어서요. 엄마는 지금 생각해 보면 나르시스트였던 거 같아요 자식보다 항상 자신이 먼저였고 아빠가 사업 망하고 여자들 만나는 모든 스트레스를 저한테 풀었어어요. 애들학원보내돈은 없어도 자기 밍크사고 가구바꾸고 그릇살돈은 있었습니다. 나중에 제가 성인되자마자 참고 살았던 게 우울증이 너무 세게 와서 20살에 재수하면서 말만 재수지 집에서 쉬다가 아빠랑 언니가 마음대로 결정해 버려서 어떤 직업학교에 가게됩니다. 그때가 제 인생에서 최악이었어요. 우울증 너무 심해서 맨날 자살만 생각하는데 또 저만 낯선 환경에 갖다 버렸거든요. 제 의사는 묻지도 않고 학창시절에도 초등학교 빼고는 동네에서 학교 다녀본적 없어요. 저는 항상 멀리서 다녀서 동네 친구 한명없습니다. 저희엄마도 자식들 공부하는 거에 완전 관심없고 특히 저는 자기 장난감으로 키웠습니다. 어렸을때부터 항상 저한테 'oo은 oo~?"저한테 이렇게 시켰어요 그럼 제가 "장난감~"이렇게 대답하라구요. 초등학교때는 몇번 학원 보내주긴했지만 그냥 다른 아줌아들 말듣고 보낸거지 자기가 자식교육 생각하고 한 행동은 아니에요. 그리고 초등학교때 제가 잠이 많았는데 제가 아침에 잘 못일어나자 귀찮아서 항상 풀스윙으로 뺨후려쳐서 깨웠어요. 겉보기에만 부모지 부모같지 않은 인간들입니다. 저 학교다닐때 집에와서 따로 공부하거나 열심히 하지 않았지만 성적 중간이상 나왔습니다.근데 중학교 갈때 결심했어요. 나는 졸업만해도 잘하는 거다. 정말 집에 있으면 하루도 빼놓지않고 부부싸움해댔어요. 그래서 학교다닐때 아이큐 검사하면 선생님들이 너 머리 좋은데 왜 공부 안하니 이소리 많이 들었고 저도 알았지만 공부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어요 그때 머리가 많이 망가진 거 같아요. 정말 이틀에 한번은 펑펑 울었던 거 같아요. 본인은 정작 그따위로 살면서 예민한 애들 그냥 좀 놔두지 사이좋게 지내라고 맨날 붙여놔요. 그럴땐 차라리 밬으로 돌려야되는데 저는 통금시간 8시였는데 조금이라도 늦으면 졸업앨범뒤에 모르는 친구들 집에 전화해서 저 막 찾고 늦으면 많이 맞았어요. 집에 같이 있으면 싸움밖에 안나는데.. 진짜 모자란 어른이에요. 그때는 또 장녀위주라 언니 학교 배정대는대로 그렇게 이사를 다녔어요. 진짜 맨날 불안정하게 살고 그와중에 집이 부자는 아니더라도 찢어지게 가난한것도 아닌데 가만히만 있어도 본전은 찾을걸 저희엄마가 투자가 기가막히게 똥손이라 사는 거마다 손해를 봐서 버는것에 비해 진짜 궁핍하게 살았어요. 돈만생기면 자꾸 그지같은 빌라,그린벨트 묶인 땅을사서 뭐라 하면 자기돈이니까 관심 끄래요.가만히 갖고 있으면 몇배는 더 버는데 그렇게 제일 중요한 학창시절에 학원 가보지도 못하고 집에서 부부싸움에 경찰차 맨날 들락거렸어요. 진짜 진안에 피가 흥건한게 한두번이 아니에요. 성인되서 우울증 검사겸 적성검사하는데 불안도 굉장히 높게 나왓어요. 초1때도 학교에세 적성검사 아이큐 감사한 거에 엄마의 영향으로 불안도 높다고 나왔구요.머리는 상위 3%였는데 불안도가 높아서 집중할 수 없었던 거에요. 진짜 부모자격 없고 자식 키울 생각없는 사람들은 자식 안낳으면 좋겠어요. 남들은 못난자식도 케어해서 어떻게든 직업 만들어 주려고 하는데 멀쩡한 자식도 망치는 부모엿어요. 제가 기술이라도 배우게 돈 빌려달랬더니 그런거 와 배우냐면서 공장다녀서 돈벌래요. 사는내내 이혼해달라고 그럼 내가 잘되서 양쪽에 잘할 자신 있댔는데 기어코 안하더니 언니 결혼하니 서류상 이혼하네요. 아무감정도 안들어요. 자라는 내내 고아원 안 보낸 거 감사하라는 엄마 죽이고 싶었어요. 크면 생활비 얼마줄거냐고 자라는 내내 물어봤어요. 150준다니까 흡족해 하더군요. 물론 안줄겁니다. 저 편입하라더니 다 쌩까고 금전적으로 도와준거 하나도 없어요 고등학교 시험봐서 인문계 가야되는데 인문계 가지말로 상고 가서 돈벌어오랬어요. 제또래 그런 세대 아니고 상고 가는 애들도 대학가는 세대였어요. 대학못가고 첫칙장 들어갔을 때 월급 90인데 월급 다 맡기래요. 엄마한테 돈 맡겼다 돌려받아본적 없습니다. 자식위해 희생한적도 없으면서 자라는 동안 맨날 너네 안 낳았으면 나 이렇게 안살았다고 지랄했어요. 안 맡긴다니 생활비 내래서 25만원 따박따박 내고 살았습니다. 성인되기전 장염에 응급실간 거 말고 아파서 병원 다녀본적 없어요. 충치도 성인되서 제가 돈벌어서 치료하고 어려서부터 위가 안좋았는데 배아프다고 계속말해도 병원 안 데려가서 너무 오래되니까 결국 엄마가 거의 다 나아서 병원데려갔더니 위궤양인데 지금 거의 나았다고 의사선생님이 어떻게 참아냐고 하더라구요. 통증이 심했을거라고..저 공부하고 싶어서 이것저것해보다 다 안됐어요 그냥 대학다니고 공부하고 싶었는데. 엄마 앞에서는 아빠욕 같이 하지만 제마음속 진짜 악마는 엄마에요. 엄마한테 가스라이팅 당한 거 생각하면 천불이 나요. 늙으면 착한 나랑 살고싶다는데 토악질이 납니다. 너 결혼해서 애기 낳으연 봐주겠다는데 소름끼쳐요. 나랑같이 살고싶다는데 사이코패슨가 싶네요.어떻게 그렇게 자기자신만 알까요? 나는 부부싸움보고 자라느라 내가 소멸된 느낌인데 그래서 결혼도 안할생각으로 살았는데 멀쩡한 부모인척 정말 모르고 그러는 걸까요? 최근에 아빠가 쓰러졌는데 나한테 처음 있는 일이라 놀랍고 보살펴주고 싶다가도 그 인간 눈을 보니 어린시절 트라우마가 떠올라 다가가지 못하겠더라구요. 제가 20대내내 우울증 달고 살았고 매날 자살충동느꼈어요. 25살때 엄마란 인간이 제 상태가 너무 안좋으니까 위로랍시고 해준단 말이 너네아빠 어렸을 때 사고쳐서 아들 입양보냈다였어요. 그걸위로랍시고.. 그런인간이니까 이해하란 뜻이었는데 정말 한개도 기대할수 없구나 라는 실망감에 너무 좌절스러웠습니다. 그런 과거가 있으면 다시 가정 꾸렸을때 더 잘살아야지 라는 다짐을 왜 못할까요? 정말 지금 연락도 안하지만 좋은 반전은 하나도 없네요. 이제 자살생각 그만하고싶고 남은인생 이딴 과거에 얽매이기 싫어 여기에 털어놓습니다. 다시는 뒤돌아보지말고 저만 생각하고 싶어서요. 누가 보든 안보든 털어놓으니 후련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