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친구얘기입니다 조언 좀 부탁드려요

아아2023.06.10
조회504
제친구 얘기인데 일본에 살고있어요
대신 올려달라고해서 올립니다

안녕하세요 제가 겪은 외가집
스토리를 올려볼까 해요 상속 분할 재산 협의서 도장 찍어줘야 할까요..? 본문으로 가기전에 음슴체로 작성할테니 이해 해 주세요

본인 35살 누나 40살임
외가집 스토리에 앞서 제가 살아온 환경 및 저희 어머니의 상태를 먼저 얘기하고 보시면 제 심정이 더 이해가 가실거라 판단하여 어릴적 자란환경 간략하게 설명해 봄

내가 기억하는 부모님의
기억은 매일싸우고 아버지가 얻어맞는 모습에
엄마는 싸우면 집을 나가서 동네 다리밑에서 박스깔고 몇칠씩누워자고 아버진 또 그걸 찾아서 달래서 집으로 데려오는 무한반복의 기억밖에 없음 아무튼
본인 6살 아버지 돌아가심 어릴적 희미하게 기억에
남은 아버지는 허리가 굽은 곱추에 알콜중독 및 담배에
쩔어 사는 골초였음 물론 일도 안하심 지금 생각하면 본인이
제일 괴로워서 그랬던거 같음 그 트라우마로 본인은 아직 술 담배 안함 술은 일년에 한두번 맥주 한두캔 먹는정도
그리고 나서 내가 초등학교 입학 할때쯤 어머니가 정신적으로 조금 모자라는걸 알아차림 그래서 그런지 어릴때 저는 씻는법도 모르고 팬티도 없고 항상 꾀재재하게 다님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었음 아직도 기억에 남는 사건은 유치원때 신체검사 하는데 옷 다 벗는데 나만 노팬티라 고추 내 놓고 신체검사 받음 부끄러웠음 암튼 아버지 돌아가시고 한 일이년 후 친척할머님이 자주 돌봐주심 같은 동네라 생활보호 대상자 신청도 해주시고 통장관리및 돈 관리 다 해주셨음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평생 은인이고 친 할머니로 생각하기로 함

지금 생각하면 아마 시골동네라 둘 다 장애를 가지고 있어서 결혼시킨듯 함
아버지 돌아가시고 빚 2000만원이 남음 집에 빨간딱지 붙음
몇년 뒤 큰아버지께서 다 갚아주심 아직도 감사함

그렇게 시작한 초등학교 생활 찢어지게 가난했지만 누나 나 엄마 셋이서 어떡게 살아가 봄 생보자 되기전엔 돈 없어서 안성탕면만 몇달을 먹음 한봉지 사서 누나랑 나눠먹고 밥도 같이 말아서 나눠먹음 다행이 시골이라 동네 사람들이 우리가 불쌍해서 김치도 주고 그러셨음 암튼 그때 안성탕면 냄새만 맡아도 구역질 날 정도로 먹음 그래서 그 때 이후론 지금도 안성탕면 안먹음

그리고 그 시절 초등학교 시절은 꼭 가정통신문 부모님 직업 양친 살아계신지 적는 종이 항상 받음 제일 싫었음 엄마 장애인인거 부끄러워서 아버지는 사망 어머니는 그냥 남의집 허드렛일 하면서 돈번다고 거짓말로 항상 적어냄 그리고 그걸 정리하는건 꼭 반친구가 컴퓨터로 정리함 486컴터로 정리할때 잘 모르면 선생님한테 물어보는데 그때 선생이 짜증나는 표정으로 ㅇㅇ이 아빠 사망 사망으로 적음 됌 이렇게 그 친구한테 반친구들 다 있는데서 얘기하는거 보고 개상처받음 안그래도 가난하고 돈없고 서러워서 눈치보고 다니는데 그런소리 듣고 더 소심해지고 남의 눈치를 보게됌 근데 다행인건 친구들이 착해서 나랑 잘 놀아줌 그리고 어느날은 다른 남자애가 지
좋아하는 여자애 괴롭혔는데 그 남자애가 내가 그랬다고 거짓말함 그러니 그 여자애가 나보고 아빠도 없는게 뭐라뭐라함 개상처 받음 아직도 이름 생각남 이다 뭐기기 분명 걔도 나중에
내가 한거 아닌거 알았는데도 사과 안함

아 그리고 공부도 지지리 못함 의욕도 없었고 옆에서 바로 잡아줄 사람도 없었음 그래서 자연스레 학업이랑 멀어지게 됌

운동회도 너무 싫었음 난 다섯살 차이나는 누나도 나랑 같겠지만 우린 부모님이 안와서 항상 김밥 사서 먹어야했고 부모님이랑 뛰는 2인3각 항상 다른 어른분이 해주심 초등학교 6년 내내

그렇게 시간이 흘러 중 고 졸업하고 공장 들어가서 일함 그리고 24살이 병역특례만기제대 함

이 긴 세월동안 외가에서 연락조차 없었고 학창시절 친구들은 외가집 간다 어쩐다 할땐 나는 왜 우리집은 아무 연락없고 소식 없을까 의문만 남긴채 시간이 지나감 당연히 우리 친가 친척들도 언급이 없었음 내가 물어보면 가끔 큰 아버지가 역정내며 외가집 욕하심 그래서 더 물어보질 않음
암튼 제대하고 나서 엄마 병원데려가 제대로 검사 받아봄
결과 정신지체장애3급판정 6살지능이라 함 마음속으로 알고 있었고 지금까지 엄마가 공식적으로 장애 판정 받는게 싫었지만 다 내려놓으니 맘이 편해짐 그리고 나서 엄마가 가끔 어디어디에서 오빠 둘이랑 살았다 라는 얘기를 유추해서 엄마 가족을 무작정 찾아보기로 함

그리고 찾았음 내가 살던곳에서 1시간 떨어진 거리였음
처음엔 양측에서 울고불고 난리났음 만나자마자 큰
외삼촌이 죽은줄 알았다고 함 그래서 난
그걸 그대로 믿었음 근대 지금 생각하면 큰외삼촌 부부 작은외삼촌 부부 말고는 그 밑에 자식들은 우리엄마 존재를 다 몰랐음
그렇게 한 반년정도 서로 연락하고 지냈음
그러던 어느날 자기 아들 결혼한다고 우리엄마 장애있는거 상대집안에서 알면 안돼니 더 이상 연락하지 말자고 돈 몇만원 주고 연끊자 하심 본인 누나 충격먹음 근데 그 당시 누나가 저도 자식키우는 입장이라 이해가 돼요 하고 연락 끊음
그 후 가끔 엄마가 오삐보러 가고싶다 할때마다 우린 거짓말하며 못간다고 함 마음이 너무 아팟음

그러다 몇년뒤에 그쪽에서 우리 족보에 올려도 돼냐고 연락옴 본인은 절대 올리지마라고 전화끊음

그리고 한 8.9년쯤 지났나? 외할아버지가 유언없이 돌아가심
우리는 그걸 몰랐음 갑자기 누나에게 외가측에서 카톡이 옴
뭐 땅을 누구명의돌리고 뭐하고 시간이 많이
들었다 그러고 다짜고짜 도장찍어달라고 상속 재산 분할 협의서 사진찍어서 우리에게 보냄
처음엔 그냥 찍어 줄려 했음 근데 그 사람들이 우리에게 말도 안하고 시골에 있는 장애있는 엄마 몰래 찾아가서 강업적으로 도장찍으려 했던 정황을 누나가 포착함
면,리 단위의 시골이라 면사무소에 우리 엄마 오빠라는
사람이 찾아와서 우리엄마 주소 알려달라고 함
수상하게 여긴 면사무소 직원이 전화로 우리엄마 사는 마을
동장에게 전화함 동장이 우리누나에게 전화함 ㅎㅎ
결국 주소 못 알아낸 작은외삼촌이 어쩔 수 없이
우리누나에게 상숙재산분할협의서 내용 카톡으로 보낸거 같음 물론 이때까진 난 모르고 있었음 그날 밤에 누나와
통화를 함 본인도 얘기듣고 어처구니가 없었음

나는 누나에게 이렇게 얘기함
1.외할아버지 돌아가셨으면 먼저 우리에게 연락하고 장례식장
가는게 맞는데 연락도 없는거 보면 아직 우리엄마 존재를 누군가에게 알리고싶지 않아함(결혼한 지내 아들 사돈)
2.먼저 연락끊자하고 다짜고짜 도장찍어달라는건 기본도 안돼있다. 말 그대로 상속재산분할협의서인데
자기내끼리 다 협의하고 도장찍어달라는게 무슨경우냐
3.외할아버지 그 많은땅 형제
둘이서 나눠가지고 유언없이 돌아가셔서 명의이전 못한땅까지
다 둘이서 먹으려고 하는거다 우리엄마도 그집 자식인데 30여년을 먼저 연락도 안하고 찾지도 않던 사람들이 이제와서 땅때문에 연락오는건 경우가 없다 아마 엄마가 장애가 있으니 결혼과 동시에 버린거라 생각이 된다 판단함

이 세가지 이유로 본인이 도장찍어주지 말라함
그리고 본인이 그쪽 사람이랑 통화함 우린 찍어줄 생각없는쪽으로 의사전달합니다 함

너무너무 긴글인데 두서없고 핸드폰으로 적느라 오타도 꽤 있을거라 생각하지만 너그러이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도장 찍어줘야 할까요? 여러분?

추신)본인은 현재 일본인이랑 결혼해서 일본거주중
도장은 누나가 가지고 있고 엄마도 누나가 보살펴
주고있음 적다보니 신세한탄같네요..죄송합니다

그리고 의문이 있음 작년 12월에 98세의 나이에
돌아가셨고 돌아가시기 반년전까진 정정하다가 그 이후로 기력이 쇄하셔서 누워만 지내셨다함 그러면 그
사이 충분히 토지명의이전 할 수 있었는데 왜 유언도 안하시고 돌아가셨는지 그리고 왜 6월달인 지금에서야 연락이 온건지 의문입니다..

참고로 도장은 안찍을거라고 하는데요. 법적으로 잘아시는 분 자문 구해보려고 한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