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생 처음으로 글을 써보는 것 같습니다.
다들 이런 기분이셨을 것 같아요.
누나 아이디를 빌려 부끄럽지만 속 시끄러워 조언을 구합니다.
독립을 한지 벌써 1년이 다되어 갑니다.
부모님 곁에 있다가 혼자 살아가다보니 답답했던 가정 분위기 속에서 탈출한 것 같아 속도 시원하고 혼자 사는 재미를 느껴가고 있습니다.
이렇다보니, 뭔가 과거의 저편으로 묻어두었던 상처와 기억들이 하나 둘씩 올라오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정말 요즘 생각이 많아지면서 그 과거의 기억과 상처로 다시 상처 입고 피해의식이 점점 심해지는 것 같아 머리속이 복잡합니다.. 혹시나 저와 같은 분들이 있으실까 공감을 구하고 싶네요.
집은 굉장히 엄했고, 아버지는 가부장 적이셨고 요즘 대부분의 5060 세대와 같이 식탁 위에서 어머니가 바삐 수발을 들면 정말 숟가락 하나 가져오시는 것 까지, 물한잔 떠오시는 것 까지 손하나 까딱 안하시던 분이셨습니다. 어렸을 땐 태산같던 아버지였고, 가정을 위해 밖에서 열심히 사회생활을 하셨죠. 그런 덕분에 매일 같이 술을 드시고 들어오시고, 사춘기 시절의 저와 어머니의 전쟁으로 매일 같이 한숨쉬시던 기억 밖에 없네요.. 본인도 집에 돌아오면 지옥이니 끔찍하셨겠죠.
어머니는 여느 어머니와 다를게 없었습니다. 가정에 헌신하시고 자식들의 성장이 본인의 행복이라고 생각하시던 분이셨으니까요.
다만 저는 기질이 예민했던 아이였고, 까다롭고 자기공간이 확실했던 아이였지만 부모님은 이해를 하시기 보다는 본인의 뜻대로 누르시는 방식을 택하셨습니다.
아마 그 당시 대부분의 가정들이 다 그랬을지도 모릅니다..
매일 같이 전쟁이였고, 폭력에 가까운 훈육이 하루도 빠짐없이 있었으며 서로에게 너무 지옥같은 유년기 시절을 보냈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로 다시는 돌아가고싶지않아요.
기억이 울고 맞고 죽고싶었던 기억밖에 없거든요.
위축되고 자존감이 떨어진 청소년기에 학교에서도 그런 기질은 따돌림까지 이어졌습니다.
수학여행을 갔는데 정말 누구하나도 같이 다닐 친구가 없더라구요...
학교 화장실에서 혼자 커터칼로 손목을 그으려고 하는데 진짜... 그것도 쉽지않아요.. 막상 죽음이 눈앞에 있으니 무서웠습니다.
이런 결과까지 온 이유는 부모님은 자식이 공부를 해서 대학을 가는것으로 명확했는데 저는 공부가 너무너무 하기가 싫었습니다..
그렇게 반항과 눈물젖음으로 사춘기를 보내고 고등학교 때 즈음 제가 항상 친척들의 비교에 매일 같이 가슴치는 어머니를 대신하여 한번쯤은 이름을 들어본 대학에 진학해보겠다 노력합니다.
그것도 부모님을 위한 것이었던 것 같아요.
지금 사회에 나와보니 쓸모없는 대학 졸업장 그 시간에 한푼이라도 더 벌걸.. 이런 생각도 들 지경입니다.
헌신을 다하셨고, 부모님의 마음은 십분 이해하나 저는 아직도 과거의 아픔 속에서 벗어나지를 못하는 것 같아요.
장남이기 때문에 더 부모님의 기대를 받을 수 밖에없었고, 그게 비틀린 방식으로 표현이 된 것 같습니다.
이런 피해의식으로 뭍힌 상태에서 아이를 사랑으로 키울 자신이 없어서 여자친구와 상의 끝에 딩크를 계획 중입니다.
평생 부모의 마음은 공감 못하겠지요.
전 그래서 부모님을 의무적으로 보러가야하는 상황이 된 것 같아 그것 또한 자괴감이 듭니다.
이제서야 자식과 뒤늦은 관계를 원하시며 연락을 하기를 바라시는 아버지도 사실 너무 낯설고 불편하며, 여전히 본인의 감정이 뜻대로 되지 않으면 낮이고 저녁이고 저를 감정 쓰레기통 마냥 부정적인 감정을 쏟아내시는 어머니도 너무 힘듭니다..
이러한 생각 조차 세상 최고의 불효자가 된 기분이고, 다들 있을 때 잘하라는데 사실 그 문구 하나가 족쇄가 된 느낌입니다..
제가 어리석은 건지.. 피해의식에 쌓여서 눈이 흐릿해져 그 앞을 못보는건지 알고싶습니다..
부모님과의 기억 그 피해의식은
다들 이런 기분이셨을 것 같아요.
누나 아이디를 빌려 부끄럽지만 속 시끄러워 조언을 구합니다.
독립을 한지 벌써 1년이 다되어 갑니다.
부모님 곁에 있다가 혼자 살아가다보니 답답했던 가정 분위기 속에서 탈출한 것 같아 속도 시원하고 혼자 사는 재미를 느껴가고 있습니다.
이렇다보니, 뭔가 과거의 저편으로 묻어두었던 상처와 기억들이 하나 둘씩 올라오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정말 요즘 생각이 많아지면서 그 과거의 기억과 상처로 다시 상처 입고 피해의식이 점점 심해지는 것 같아 머리속이 복잡합니다.. 혹시나 저와 같은 분들이 있으실까 공감을 구하고 싶네요.
집은 굉장히 엄했고, 아버지는 가부장 적이셨고 요즘 대부분의 5060 세대와 같이 식탁 위에서 어머니가 바삐 수발을 들면 정말 숟가락 하나 가져오시는 것 까지, 물한잔 떠오시는 것 까지 손하나 까딱 안하시던 분이셨습니다. 어렸을 땐 태산같던 아버지였고, 가정을 위해 밖에서 열심히 사회생활을 하셨죠. 그런 덕분에 매일 같이 술을 드시고 들어오시고, 사춘기 시절의 저와 어머니의 전쟁으로 매일 같이 한숨쉬시던 기억 밖에 없네요.. 본인도 집에 돌아오면 지옥이니 끔찍하셨겠죠.
어머니는 여느 어머니와 다를게 없었습니다. 가정에 헌신하시고 자식들의 성장이 본인의 행복이라고 생각하시던 분이셨으니까요.
다만 저는 기질이 예민했던 아이였고, 까다롭고 자기공간이 확실했던 아이였지만 부모님은 이해를 하시기 보다는 본인의 뜻대로 누르시는 방식을 택하셨습니다.
아마 그 당시 대부분의 가정들이 다 그랬을지도 모릅니다..
매일 같이 전쟁이였고, 폭력에 가까운 훈육이 하루도 빠짐없이 있었으며 서로에게 너무 지옥같은 유년기 시절을 보냈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로 다시는 돌아가고싶지않아요.
기억이 울고 맞고 죽고싶었던 기억밖에 없거든요.
위축되고 자존감이 떨어진 청소년기에 학교에서도 그런 기질은 따돌림까지 이어졌습니다.
수학여행을 갔는데 정말 누구하나도 같이 다닐 친구가 없더라구요...
학교 화장실에서 혼자 커터칼로 손목을 그으려고 하는데 진짜... 그것도 쉽지않아요.. 막상 죽음이 눈앞에 있으니 무서웠습니다.
이런 결과까지 온 이유는 부모님은 자식이 공부를 해서 대학을 가는것으로 명확했는데 저는 공부가 너무너무 하기가 싫었습니다..
그렇게 반항과 눈물젖음으로 사춘기를 보내고 고등학교 때 즈음 제가 항상 친척들의 비교에 매일 같이 가슴치는 어머니를 대신하여 한번쯤은 이름을 들어본 대학에 진학해보겠다 노력합니다.
그것도 부모님을 위한 것이었던 것 같아요.
지금 사회에 나와보니 쓸모없는 대학 졸업장 그 시간에 한푼이라도 더 벌걸.. 이런 생각도 들 지경입니다.
헌신을 다하셨고, 부모님의 마음은 십분 이해하나 저는 아직도 과거의 아픔 속에서 벗어나지를 못하는 것 같아요.
장남이기 때문에 더 부모님의 기대를 받을 수 밖에없었고, 그게 비틀린 방식으로 표현이 된 것 같습니다.
이런 피해의식으로 뭍힌 상태에서 아이를 사랑으로 키울 자신이 없어서 여자친구와 상의 끝에 딩크를 계획 중입니다.
평생 부모의 마음은 공감 못하겠지요.
전 그래서 부모님을 의무적으로 보러가야하는 상황이 된 것 같아 그것 또한 자괴감이 듭니다.
이제서야 자식과 뒤늦은 관계를 원하시며 연락을 하기를 바라시는 아버지도 사실 너무 낯설고 불편하며, 여전히 본인의 감정이 뜻대로 되지 않으면 낮이고 저녁이고 저를 감정 쓰레기통 마냥 부정적인 감정을 쏟아내시는 어머니도 너무 힘듭니다..
이러한 생각 조차 세상 최고의 불효자가 된 기분이고, 다들 있을 때 잘하라는데 사실 그 문구 하나가 족쇄가 된 느낌입니다..
제가 어리석은 건지.. 피해의식에 쌓여서 눈이 흐릿해져 그 앞을 못보는건지 알고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