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네이트판 읽고 이렇구나 저렇구나만 하다가 저도 이렇게 글을 쓰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저는 용기를 내어 오늘 저희 부모님의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저희 부모님은 초등학교 교사이십니다.
가끔씩 너무 보수적이어서 짜증이 나기도 했지만 저는 부모님이 교사로서 프라이드를 가지고 아이들을 가르치시는 마음가짐을 항상 자랑스럽게 생각했고 또 그런 직업적 마음을 굳건히 가지지 못하는 제 자신을 생각하면 부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공주처럼 왕자처럼 그려진 부모님의 모습의 그림을 정말 아이처럼 좋아하시며 자랑하시던 모습, 부족하지만 그럼에도 착한 마음씨로 서로를 대하는 병아리같은 아이들, 부모님의 수업을 들으며 열심히 손들고 참여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늘어놓으시는 저녁 시간은 제가 학교생활을 거쳐 직장인이 되어도 항상 기다려지는 시간들입니다.
어느 초등교사와 마찬가지로 저희 부모님께서도 평생 28년 동안 교직에 계시면서 정말 아이들을 위해 고민도 많이 하시고, 이런 시도 저런 시도, 서로 매일 저녁을 드시면서 토론을 통해 더 나은 방법으로 교육하는 것을 연구하시고 계십니다. 한 때 그 모습을 지켜 보며 자라 온 저에게 한 동안 교사의 꿈을 가지고 공부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습니다.
어떻게 항상 좋은 일만 있겠습니까?
퇴근 후 고요해야하는 저녁은 한 동안 한 학부모에 의해 시끄럽기도 했으며, 또 다른 일 년은 문제가 되는 아이때문에, 아이가 어떻게하면 상처받지 않고 다른아이들과 동화될 까 고민하는 이야깃 거리로... 때로는 앞에서 욕하며 예의 없는 행동으로 찾아오는 학부모에 학교 출근을 겁내하시는 저희 엄마, 저희 아빠를 지켜보아왔습니다.
매해 신학기는 아이들만 겁내하는 순간이 아닙니다. 저희 부모님도 긴장하시는 순간입니다.
초등 1학년은 이제 새로 들어오는 신 데이터로인해서, 2학년 위 부터는 쌓인 데이터에의한 진상 부모 혹은 학생으로 인해서 한 동안은 저희 엄마의 눈물샘이 마를 날이 없었고, 저희 아빠의 한숨이 끊기는 날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엄마가 두부같은 사람이라서, 아빠가 우유부단한 사람일것 같아서 그래서 정제되어 전해오는 이야기들을 그저 단순하게 치부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눈 앞까지 다가 온 폭력은 사람의 인생마저 망가뜨릴 수 있었구나, 사람이란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 가를 느끼기도 했습니다.
또한 저는, 교사로서의 노고를 이번 일을 통해 더욱 생생하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물론 직업적 노고를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 드는 노고가 아닌, 학부모가 요구하는 ‘서비스’에 대응하기 위한 노고를 말 하는 것 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선생님은, 아이들의 부모가 아니고 보육자가 아닙니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사회의 매커니즘을 가르치는 역할을 하는 사람입니다. 아이들의 인성, 습관, 태도, 양심, 배려는 ’부모의 가정교육‘에서 나옵니다.
아이들의 인지능력은 모방을 통해 발달됩니다. 모방? 당연히 부모를 통해 습득하게 됩니다. 인성이 제대로 발달하지 못한 부모에게서 자라는 아이는 역시나 인성적으로 문제가 있겠죠?
왜?? 내 아이만 중요할까요? 저희 엄마가 어느 날 너무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였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우리집, 우리엄마, 우리 아빠, 혹은 우리 동생이 가장 익숙하고 습관화된 저에게도 역시나 놀라운 일이었는데, ‘내 집, 내 엄마, 내 아빠, 내 동생’ 이라는 ‘나의’ 라는 소유격을 더 많은 아이들이 쓰기시작했던 것입니다.
개인주의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고 저는 해석했습니다. ‘개인주의’? 나쁘지 않습니다. 문제될 것도 없고요. 다만 개인주의를 ’이기주의‘와 동급으로 ’착각‘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세상에 안 중요한 사람이 어디있을까요? 이 세상에 태어났는데 왜 중요하고 중요치 않은 그런 구분은 누가 만드는 걸까요?
나의 아이가 중요하면 다른 아이, 더 넓게는 다른 어른을 포함한 다른사람도 중요하다는 겁니다.
9월 4일의 집회는 따라서 너무 중요한 집회입니다.
하지만, 교장선생님이 되신 저희 아빠는 단체행동 방조에대한 교육부의 압박과 선생님들의 무단 결근을 막기 위한 선택으로 계속해서 답을 찾고 엄마와 토론하시고, 선배 교장선생님께 자문을 구하고 계십니다.
한 학교의 책임자로서 교육부의 징계 압박과 선생님들 개개인의 징계를 막기 위해서는 저희 아빠는 무슨 선택을 해야할까요?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
잘 아시는 문장일 겁니다.
그 동안 선생님들은 교육자와 보육자 라는 경계선에서 이리저리 끌려다녀왔습니다. 선생님들이 직업적 권리를 되찾게 도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선생님들이 징계받지 않고 권리를 호소하는 집회,
9월 4일 집회가 잘 성사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어떤 것이 좋은 선택일까요?
저는 용기를 내어 오늘 저희 부모님의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저희 부모님은 초등학교 교사이십니다.
가끔씩 너무 보수적이어서 짜증이 나기도 했지만 저는 부모님이 교사로서 프라이드를 가지고 아이들을 가르치시는 마음가짐을 항상 자랑스럽게 생각했고 또 그런 직업적 마음을 굳건히 가지지 못하는 제 자신을 생각하면 부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공주처럼 왕자처럼 그려진 부모님의 모습의 그림을 정말 아이처럼 좋아하시며 자랑하시던 모습, 부족하지만 그럼에도 착한 마음씨로 서로를 대하는 병아리같은 아이들, 부모님의 수업을 들으며 열심히 손들고 참여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늘어놓으시는 저녁 시간은 제가 학교생활을 거쳐 직장인이 되어도 항상 기다려지는 시간들입니다.
어느 초등교사와 마찬가지로 저희 부모님께서도 평생 28년 동안 교직에 계시면서 정말 아이들을 위해 고민도 많이 하시고, 이런 시도 저런 시도, 서로 매일 저녁을 드시면서 토론을 통해 더 나은 방법으로 교육하는 것을 연구하시고 계십니다. 한 때 그 모습을 지켜 보며 자라 온 저에게 한 동안 교사의 꿈을 가지고 공부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습니다.
어떻게 항상 좋은 일만 있겠습니까?
퇴근 후 고요해야하는 저녁은 한 동안 한 학부모에 의해 시끄럽기도 했으며, 또 다른 일 년은 문제가 되는 아이때문에, 아이가 어떻게하면 상처받지 않고 다른아이들과 동화될 까 고민하는 이야깃 거리로... 때로는 앞에서 욕하며 예의 없는 행동으로 찾아오는 학부모에 학교 출근을 겁내하시는 저희 엄마, 저희 아빠를 지켜보아왔습니다.
매해 신학기는 아이들만 겁내하는 순간이 아닙니다. 저희 부모님도 긴장하시는 순간입니다.
초등 1학년은 이제 새로 들어오는 신 데이터로인해서, 2학년 위 부터는 쌓인 데이터에의한 진상 부모 혹은 학생으로 인해서 한 동안은 저희 엄마의 눈물샘이 마를 날이 없었고, 저희 아빠의 한숨이 끊기는 날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엄마가 두부같은 사람이라서, 아빠가 우유부단한 사람일것 같아서 그래서 정제되어 전해오는 이야기들을 그저 단순하게 치부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눈 앞까지 다가 온 폭력은 사람의 인생마저 망가뜨릴 수 있었구나, 사람이란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 가를 느끼기도 했습니다.
또한 저는, 교사로서의 노고를 이번 일을 통해 더욱 생생하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물론 직업적 노고를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 드는 노고가 아닌, 학부모가 요구하는 ‘서비스’에 대응하기 위한 노고를 말 하는 것 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선생님은, 아이들의 부모가 아니고 보육자가 아닙니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사회의 매커니즘을 가르치는 역할을 하는 사람입니다. 아이들의 인성, 습관, 태도, 양심, 배려는 ’부모의 가정교육‘에서 나옵니다.
아이들의 인지능력은 모방을 통해 발달됩니다. 모방? 당연히 부모를 통해 습득하게 됩니다. 인성이 제대로 발달하지 못한 부모에게서 자라는 아이는 역시나 인성적으로 문제가 있겠죠?
왜?? 내 아이만 중요할까요? 저희 엄마가 어느 날 너무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였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우리집, 우리엄마, 우리 아빠, 혹은 우리 동생이 가장 익숙하고 습관화된 저에게도 역시나 놀라운 일이었는데, ‘내 집, 내 엄마, 내 아빠, 내 동생’ 이라는 ‘나의’ 라는 소유격을 더 많은 아이들이 쓰기시작했던 것입니다.
개인주의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고 저는 해석했습니다. ‘개인주의’? 나쁘지 않습니다. 문제될 것도 없고요. 다만 개인주의를 ’이기주의‘와 동급으로 ’착각‘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세상에 안 중요한 사람이 어디있을까요? 이 세상에 태어났는데 왜 중요하고 중요치 않은 그런 구분은 누가 만드는 걸까요?
나의 아이가 중요하면 다른 아이, 더 넓게는 다른 어른을 포함한 다른사람도 중요하다는 겁니다.
9월 4일의 집회는 따라서 너무 중요한 집회입니다.
하지만, 교장선생님이 되신 저희 아빠는 단체행동 방조에대한 교육부의 압박과 선생님들의 무단 결근을 막기 위한 선택으로 계속해서 답을 찾고 엄마와 토론하시고, 선배 교장선생님께 자문을 구하고 계십니다.
한 학교의 책임자로서 교육부의 징계 압박과 선생님들 개개인의 징계를 막기 위해서는 저희 아빠는 무슨 선택을 해야할까요?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
잘 아시는 문장일 겁니다.
그 동안 선생님들은 교육자와 보육자 라는 경계선에서 이리저리 끌려다녀왔습니다. 선생님들이 직업적 권리를 되찾게 도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선생님들이 징계받지 않고 권리를 호소하는 집회,
9월 4일 집회가 잘 성사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