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슬픈 가정사

해내리2023.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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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덧 제 나이도 40에 이른 지금 

 한번쯤 지나온 시간을 돌이켜보고 싶었습니다 

 실은 

 저희집 슬픈 가정사를 한번쯤 말해보고 싶었어요 

 우리 식구들 제외하곤 남들은 잘 모르는 

 결코 작지않은 그늘이자 상처를 말이죠 

 

 우선 저희는 대기업을 다니셨던 아버지와 

 방송국 합창단원을 지내신뒤 결혼후 전업주부로  

 아이키우는 일에만 전념하신 어머니 

 두분 사이에 3자매가 있었습니다 

 뭐 옛날에 솔직히 남존여비니 ‘대를이을 아들이 있어야 한다’느니 

 그런 말이 있던 시절에도 

 딸은 또 딸대로 키우는 재미고 있고 

 남들이 어떤 시샘과 부러움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없지는 않았습니다 

 

 가령 뭐 큰딸은 살림밑천이니  

 또 딸부잣집이니 뭐니 가령 한 70-80년대 드라마나 소설에도 

 딸이 한 서넛쯤 되는 집의 알콩달콩 사는 이야기가 

 소재로 만들어진걸 보면 

 그 시절에도 딸부잣집은 아들있는 집과는 또 별도의 

 사는 재미와 남들의 시샘과 부러움을 사는일 

 없지 않았나봅니다 

 

 정확히 제 밑으로 두 살 터울의 동생이 하나 있고 

 다시 그보다 세 살어린 막내 여동생이 있어요 

 그리고 전...어떻게 하다보니 초등학교때부터 운동에 취미를 붙여서 

 초등학교 5-6학년때는 탁구부원 생활을 하기도 했고 

 그러다 육상을 좀 하다 핸드볼 또는 펜싱부가 있는 학교를 

 잠시 다니기도 하는등 

 여하튼 학창시절엔 이런저런 운동 좀 많이 했습니다 

 근데 왜 한 종목에 치중하지 못하고 이 종목 저 종목 옮겨다녔냐면 

 이야기가 쓸데없이 길어지는게 싫어  

 이 자세한 내막까진 설명하기 망설였는데 

 천상 해명삼아 해야겠네요 

 

 이런것도 일종의 ‘비인기 종목의 설움’이긴 한데 

 가령 뭐 30년 명문 야구단이니 농구단이니 그런건 

 진짜 야구나 축구 농구같은 인기종목 학원스포츠 팀인 경우에나 가능한거고 

 올림픽때나 관심갖는 비인기종목들은 사정이 달라요 

 가령 국내대회 나가서 성적이 영 신통찮거나 

 또는 학교재정이 어렵고 그러면 

 창단한지 1-2년도 지나지 않아 해체되기도 하고 

 한 10년 가까이 운영되던 스포츠팀도 그러다  

 사정이 생겨 해체되기도 하고 그런거죠 뭐 

 거듭 말하지만 비인기 종목은 야구나 농구,배구 같은 인기스포츠와는 

 사정이 많이 달라요 

 가령 무슨 30년 명문구단 OO고 OO부 이런건 꿈도 못꾸는거고 

 그나마 한 10년정도 이어진 팀이 있다면 

 ‘어...그래도 저 학교 모 스포츠팀은 그래도 10년 가까이 꾸리고 있네’ 

 그렇게 인정받는 수준인거죠 뭐 

 사실 아무리 그래도...억지로 스포츠 만화 시나리오를 짜려고 해도 

 이렇게 막장으로 짜진 못할 것 같은데 

 공교롭게도 전 탁구부때도 이후 육상이나 핸드볼을 할때도 

 소속팀이 얼마안가 해체되는 그런걸 마치 무슨 징크스마냥 

 좀 여러번 겪었던 것 뿐입니다 

 

 그나마 제가 운동은 계속 하고 싶다는 의지를 밝히니까 

 때론 엄마가 계속 할수 있도록 배려를 해주시기도 했고 

 팀이 해체될 때 주변 다른 관계자나 선수의 추천으로 

 다른 스포츠팀이 있는 학교로 전학을 가거나 그런식으로 

 대충 고등학교때까진 꼐속 운동을 했던거죠 

 뭐...‘공부가 안되니까 대신 운동을 택한거냐 ?’는 식으로 물으신다면 

 지금와서 그걸 굳이 변명하지 않겠습니다 

 굳이 부인하고 싶지도 않으니까요 

 

 여하튼 그렇게 제가 학창시절 운동을 쭉 해온건 그렇다치고 

 그 뒤 성인이 된 뒤엔 그래도 4년제 대학을 겨우 나온뒤 

 지금은 헬스 트레이너로 일하고 있습니다 

 한편 제 두 살터울 지는 바로 밑 동생은 

 어릴때부터 그림쪽에 취미가 있었는지 그런쪽 일을 계속 희망하다 

 지금은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고 있고요 

 둘째와는 세 살터울 그러고보니 저와는 다섯 살 터울지는 막내는 

 그러고보니 막내가 딱 방송국 합창단까지 지낸 

 엄마 유전자를 빼닮았는지 

 어릴떄 방송국 합창단을 좀 하고싶다 조르더니 

 이후 대학 시절엔 실제로 방송국 합창단일을 좀 하다가 

 지금은 연예기획사에서 보컬 트레이너로 일하고 있답니다 

 

 그러고보니 전 헬스 트레이너 둘쨰는 일러스트레이터 

 막내는 보컬 트레이너 

 3자매가 제각기 음악,미술,체육 예체능 각기 한분야씩 

 제주를 같춘 절묘한 예쳬능 3자매네요 

 누구 유전자를 물려받았는지 모르겠지만 

 참 기가막히고도 산뜻한 그런 예술의 3자매랍니다. 

 

 그러고보면 70-80년대 일일극,주말극 같은데서 볼법한 

 밝고 경쾌한 분위기의 딸부잣집 3자매 이미지 설정으로도 

 좋을법한 그런 가족 구성원인데 

 도대체 무슨 문제가 있는거냐구요 ? 

 실은 원래 저희 3자매 외에 

 죽은 남동생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것도 아주 어릴적에 

 

 정확히 저와 둘째에겐 동생이고 

 막내에겐 한 살많은 오빠인 

 그런 남동생이자 오빠인 ‘남자형제’가 

 하나 더 있었어요 

 다만 어릴적 죽은 동생의 사고를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던건 

 당시 여섯 살이던 저뿐 

 저보다 두 살 아래인 둘째는 아마 

 네살때라 그런지...아마 어렴풋이 

 ‘동생이 하나 더 있지 않았었나...’ 그 정도 기억으로만 있는 듯 했고 

 막내는 자기가 태어난지 돌도 채 되지 않아 그런 사고가 

 있었던것이기 때문에 

 저희가 말해주기전까진 

 자기 바로 위로 한 살위 오빠가 하나 더 있었다는 것은 

 전혀 알고있지 못했던 듯 합니다 

 

 사고가 정확하게 어떻게 난것인지는 

 사실 그날일을 그나마 3자매중에선 가장 정확히 

 기억하는 편인 저도 

 구체적으로 경위를 알진 못해요 

 다만 어느날...아마 외가쪽 친척들이 많이 

 저희집에 와 있었던걸로봐선 

 아마 추석같은 명절때가 아니었을까 싶은데 

 이래저래 저희집안 구체적인 내력도 

 좀 더 소개를 해야겠네요 

 실은 저희 아버지는 4형제중 막내셔서 

 저희가 친가쪽 사촌들중엔 가장 막내지만 

 친가쪽으론 저희 위로 사촌오빠,사촌언니가 

 몇분 계시고요 

 외가로는 저희 엄마가 5자매중 맏이라서 

 외가에는 전부 이종사촌‘동생’들 뿐이랍니다 

 

 헌데 그러고보면...그것도 제가 여섯 살 둘째가 

 네 살때면...다른 이모들은 아직 시집가기 전인 경우도 

 있을터이고 결혼한 이모라도 사촌이 저희보다도 어린 

 갓난아기일텐데 

 기억에 다른 아이들도 몇몇 더 있었던 것을 보면 

 외가쪽 식구 외에도 다른 손님이 몇분 더 와 있었던 것 아닌가 

 그렇게만 막연히 기억합니다 

 한가지 확실하게 기억하는 것은 동생이 방에서  

 높은곳에서 떨어진것뿐인데  

 솔직히 그땐 남동생이 두 살도 채 되기 전이니 

 동생도 이제 겨우 걸음마나 뗀 수준인데 

 어떻게 그 높은곳까지 – 그것도 방에서 - 

 올라갈수 있었던것인지는 

 저도 확실한 경위를 알수 없어요 

 

 여하튼 명절때였는지 아니면 다른 무슨 기념일이었는지 

 이모들이랑 이종사촌 외에도 다른 손님들도 몇몇 더 오신 것 같았던 

 그런 어느날 

 어른들은 거실에서 어른들끼리 

 술을 한잔 하시든 고스톱을 치시든 그렇게 어울리고 계셨고 

 저희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저희 방에서 따로 놀고 있었던건데 

 그러다 어떻게 어느 정신없는 순간 

 ‘아차 !!!’ 하는 순간 사고가 난 듯 합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동생이 어떻게 하다 높은곳에서 떨어진것인지 

 정확한 사고경위는 알지못해요. 

 - 일단 범인(?)이 저는 확실히 아니에요 

 만약 제가 실수나 사고로 그런일이 벌어졌다면 

 아빠나 엄마가 ‘너 때문에 우리 아들이 죽었다’며 저를 지금까지 

 수도없이 다그치시며 괴롭히셨겠죠 

 허나 사고 이후로 수십년 저희집안 분위기는 

 3자매 외에 분명 아들형제가 하나 더 있었는데 

 그 아이가 없는 빈자리로 인한 

 남모르는 어둡고 깊은 그늘이 좀 있는것뿐 

 그 외에 동생 사고에 대한 책임을 추궁하거나 그런 분위기는 

 확실하게 없었던 것을 보면 

 여섯 살난 저나 네 살난 둘째 책임은 

 분명 아니었던 듯 합니다 

 - 돌도 채 지나기 전인 막내가 아직 아장아장 기어갈수 있기도전에 

 그런 사고를 낼수 있는건 더더욱 불가능하고요 

 

 어쨌든 사고를 낸 범인이 누구인지 그 자체보다는 

 제 기억이 강렬히 남아있는건 그날의 트라우마일까 

 방안의 분위기입니다 

 전 갑작스럽게 일어난 사고로 기겁하여 사색이되어 

 거실에 엄마,아빠를 비롯한 어른들 계신곳으로 바로 

 사고를 알리기 위해 바로 달려갔고 

 네 살난 둘째는 아직 상황이 제대로 인지가 안 되는지 

 뭔가 두려우면서도 겁난 눈매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어요 

 막내야 아직 갓난아기라서 새근새근 잠들어있었지만 

 갑작스럽게 변한 방안 분위기 때문에 놀랐는지 

 어느새 깨서 겁이났는지 앙앙 울고 있었습니다 

 그 외 저희 외에도 – 거듭 말씀드리지만 저희 엄마가 5자매중 막내라서 

 저희가 여섯 살,네살 정도라면 다른 이종사촌 동생은 아직 태어나지 않았을 

 때입니다. 

 여하튼 그 외 다른 친척집 아이인지 아니면 엄마친구쪽 자녀인지 

 최소한 4-5명 정도의 아이가 저희 3자매 외에도 

 더 있었던것만은 분명한데 

 갑자기 일어난 사고에 다들 놀라 앙앙 울기도 

 하고 빽빽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어쩔줄 모르며 

 다들 안절부절 발만 동동구르고 있었어요 

 

 어디서 떨어진것조차 분명치 않은 저희 남동생은 

 - 저도 그 당시 방구조며 가구를 세세히 기억하고 있지는 못하는데 

 아직 여섯 살,네살 정도된 아이가 무슨 공부하는 책상이나 의자같은게 

 있을리는 만무하고 

 막연히 추정해볼수 있는거라면 옷장이나 이불장...- 그 시절에는 그냥 

 통털어서 ‘장롱’이라고도 불렀지만은 

 또는 다락으로 불리던 공간도 따로 있긴 했는데... 

 여하튼 두 살도 채 되지 않은 어린아이가 올라갈수 있는곳은 

 분명 아닙니다. 

 그럼 갑자기 무슨 발작이라도 일으키며 쓰러진건지 뭔지... 

 하지만 머리를 세게 부딪혔고 그로인해 

 크게 상처가 나고 동생이 정신을 잃은 것으로 봐선 

 무슨 발작상태나 혼절 그런건 분명 아니고 

 높은곳에서 떨어진게 분명한데 그 경위를  

 그때 그 방안에 있던 아이들중 경위를 정확히 알거나 

 기억하는 사람은 없는 듯 합니다 

 

 여하튼 동생은 정신을 잃고 방바닥에 쓰러져있었고  

 - 머리를 크게 다친채로  

 어른들이 급히 놀라서 달려와서는 바로 구급차를 부르고 

 기절한 동생이 바로 병원으로 실려갔지만 

 그렇게 정신을 잃은 동생은 그것을 마지막으로 

 영원히 깨어나지 못했습니다...... 

 

 시간이 흘렀습니다. 

 저희집의 일상은 대체로 큰 문제나 무리는 없이 

 평범하고 평온하게 지속되었습니다. 

 다만 원래는 4남매였던 것이 남동생이 죽어서 

 3자매가 된 것으로 인한 

 작고도 고요한 그리고 우울하면서도 깊은 

 그늘이자 슬픔이 존재하는 것 정도를 제외하곤 

 동생의 유골은 그 시절에 흔히 그랬듯이 

 북한강변 모처에 뿌리곤 했는데...  

 그리고 1년에 한두차례라도 엄마,아빠가 차로 

 동생의 유골을 뿌린 북한강변까지 데리고 가주시곤 했기 때문에  

 그렇게 동생의 존재는 

 존재하지는 않지만 잊히지는 않은 

 그런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다만 시간이 지나고 

 제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점차 자라면서 

 문득 궁금함이 일었어요 

 막내야 어차피 갓난아기때니 

 한 살위 오빠의 죽음과 사고를 알수야 없었을테지만 

 저와 두 살차이인 둘째는 

 죽은 남동생이 있다는 것을 

 동생의 사고에 대해 기억하는지 

 동생이 네 살때 있었던 그 일을 기억하는지 

 궁금해서 

 대략 제가 초등학교 5학년이 되었을 무렵 

 하루는 진지하게 두 살터울 둘째 여동생을 불러 

 조심스레 물어보았습니다 

 

 ‘너...영재(가명. 동생이름) 기억나니 ? ’ 

 처음엔 밑도끝도 없는 물음에 의아해하던 동생이 

 이렇게 물어보니 그제야 기억을 하는 듯 하는 반응을 보이더군요 

 ‘세정(막내 여동생 이름)이 말구...그 위로 죽은 남동생 하나 더 

 있잖아. 너랑 나한테는 동생이고 세정이한테는 오빠... 

 너 네 살...나 여섯 살때 일인데...’  

 그러자 동생의 눈빛이 살짝 흔들리는 듯 싶더니 

 좀 놀라긴 한 듯 허나 뜻밖의 침착한 어조로 

 이렇게 물어봤습니다 

 ‘그럼 그게...영재였던거야 ? 세정이가 아니고 영재 ? 

 사고로 죽인게 ?’ 

 

 그러고보니 사고당시 네 살이었던 동생은 

 확실히 그날 사고가 있었던것만은 기억하는데 

 다만 그렇게 죽은 동생이 남동생인지 여동생인지 

 아니 혹은 그 사고가 난 동생이 죽은건지 혹은 

 비록 중상을 입었던것일지언정 극적으로나마 

 살아남은것인지 

 정확한 기억은 못하는 듯 했었습니다 

 - 네 살때 일이니까요 

 이렇게 묻더군요 둘째는 

 ‘그러니까...동생이...남동생이 하나 더 있었다는 소리구나. 

 난 세정이가 사고를 당한걸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 

 

 그러고보니 지금까지 둘째가 

 막내를 유난히 챙기는 것 같았는데 

 - 가령 먹을걸 좀 더 챙겨준다던가 어디 아프지 않냐며 

 물어본다던가 

 전 그게 그래도 지도 언니라고 

 자기한테 동생인 막내를 끔찍이 챙기는걸로 알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라 네 살이던 동생의 

 일종의 기억오류였습니다 

 동생은 사고가 당한게 남동생 영재가 아니라 

 막내 세정(여동생)으로 오인하고 있었던거죠 

 확실하게 그날 사고는 분명히 있었고 

 하나든 둘이든 자기한테 동생이 있긴 있었던거니까  

 다만 남동생은 ‘그날 이후’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거니까 

 사고당시 네 살이었던 둘째는 

 사고가 난 것이 남동생 영재가 아닌 

 막내 세정이로 잘못 알고 있었던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뒤늦게나마 동생의 기억오류를 수정해주었죠 

 그게 아니라 니 밑으로 남동생이 하나 더 있었던거야 

 세정이한테는 한 살위 오빠가 되는거고 

 그제야 둘째는 모든 것을 이제야 알았다는 

 그리고...여지껏 남동생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는 점에 대한 

 어떤 죄책감이라도 왈칵 치밀어 오르는지 

 울더군요... 

 전 우는 동생을 달래주었고 

 아빠,엄마 몰래 그 주 주말에 차비를 좀 챙겨서 

 동생을 뿌린 북한강변까지 가보았습니다 

 - 아직 전철은 생기기 전이었지만 시외버스는 다니던 시절이었으니까요 

 (* 그러고보니 요즘 말많고 탈많은 그 양평 고속도로인가 뭔가 

 그런게 놓이기로 한 길목 부근... - 북한강변 – 어디인가본데) 

 여하튼 5학년인 제가 길과 버스노선만 정확히 알고 있다면 

 두 살어린 동생을 인솔하고 작정하고 찾아가면 

 못 찾아갈곳은 분명 아닙니다 

 무엇보다 1년에 한두번 정도는 아빠,엄마가 차를 몰고 

 함께 찾아가곤 하던 그곳이니까요 

 다만 어쨌든 그러고보니 지금까지 둘쨰는 물론 막내까지도 

 거기가 동생의 유골을 뿌린곳이라 

 일종의 제사 비슷하게 그렇게 지내며 죽은 동생에게 인사하러 오는곳 

 그걸 지금껏 몰랐던거네요 

 

 동생 유골을 뿌린곳까지 오자 제가 말했죠 

 ‘영재야, 그간 잘있었니 ? 오늘은 작은누나랑 함께왔어. 작은누나도 

 벌써 3학년이야.’ 

 제가 이렇게 말하자 여린 동생은 

 벌써 어떤 감정이라도 북받치는지 왈칵 울음 솟구치며 

 이렇게 말하더이다 

 ‘영재야...누나 왔어...그동안 모르고있어 미안해. 하지만 이젠 알았으니까 

 앞으로 자주 찾아올게...춥지는 않니 ? 우리 착하고 귀여운 

 남동생 영재...’ 

  

 시간이 좀 더 지난뒤 

 드디어 막내에게도 이야기를 해주기로 했습니다 

 지(막내 세정이)한테도 어릴 때 죽은 

 한 살터울 손윗오빠가 있었다는 사실을 

 그게 세정이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어느덧 저는 중2, 둘째는 초등학교 5학년으로 자랐을때네요 

 다만 네 살때 사고가 있어서 어렴풋이 어쨌든  

 그런 사고가 있었다는 것 정도는 기억하는 둘째와 달리 

 막내는 갓난아기때라 전혀 알 수 없는 일이라서인지 

 막상 저희가 이야기를 해주니 

 그냥 담담한 표정으로 이렇게 묻더이다 

 ‘오빠가...있었다구 ?’ 

 둘째가 막내를 한번 감싸안아주기까지 하면서  

 ‘난 그때 사고로 다친게 넌줄만 알았어. 그런데 그게 

 아니라 그날 그렇게 죽은 동생이 한명 더 있었던거라구...’ 

 저랑 둘쨰에겐 동생 막내에겐 오빠 

 그렇게 중간에 오빠 한명이 더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야 안 막내 

 

 그리고 하루는 다시 날 잡아서 

 동생 유골을 뿌린 그곳에 

 드디어 막내까지 저희 3자매 다 함께 

 북한강변을 찾았습니다 

 다만 동생에 대한 기억이 어렴풋이라도 있는 저희랑 달리 

 막내는 도무지 알수없는일이라서인지 

 그저 멍한 눈빛으로 제 오빠 유골이 뿌려졌다는 그곳을 

 말없이 바라보더이다 

 저희가 ‘오빠, 그동안 모르고 있어서 죄송해요.’라고 

 사과인사라도 한번 하라 권했더니 

 그제서야 꾸벅 절은 한번 올리더군요 

 

 남동생의 죽음을 뒤늦게야 알고 울컥 치밀었던 둘째와 달리 

 덤덤하던 막내 

 다만 막상 그렇게 우리집안 가정사의 비밀을 알고는 

 간혹 이렇게 묻더이다. 

 ‘만약 오빠가 살아있었다면 우리집안 분위기가 어땠을까 ?’ 

 ‘오빠가 죽지않고 자랐다면 지금쯤 어떤 모습일까’ 

 그러한 동생의 분위기는 흡사 

 어...아마 90년대 중반이던가 후반에 

 당시 한참 잘나가던 방송국 인기 여성 아나운서가 

 수기를 하나 펴낸일이 있는데 

 거기 어릴 때 사고로 죽은 오빠가 한명 있었다면서 

 비록 어릴때라 기억은 어렴풋하지만 

 ‘오빠가 살아있었더라면...’ 그런대로 우리집에 또는 동생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 아쉬움과 애틋한 감정을 드러내던 수기... 

 마치 그 수기의 톤과 비슷한 느낌이었다고나 할까요 

 단순비교가 가능한 일인지는 모르곘지만요... 

 

 사실... 

 막상 그렇게 동생이 죽고나서 부모님은 

 가급적 그 일을 더 이상 입에담지 않으려는 분위기였습니다 

 혹... 

 너무 아들이 일찍 죽은것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내면 

 이 또한 또다른 남녀차별로 받아들여 

 딸들인 저희가 서운해할까봐 저희에 대한 배려심으로 그러신것인지 

 아니면...부모님도 부모님 나름대로 그렇게 

 아들 하나를 어릴 때 떠나보낸게 상처로 남았기에 

 가급적 그 상처를 말하지 않으려 하시는것인지 

 아니면...가급적 언급을 꺼리는 저희가 짐작 못하는 

 또다른 어떤 속사정이 있는것이기까진 모르겠지만 

 실제...원래 부모님이 1년에 한두번정도는 그래도 

 동생 유골 뿌려진 북한강변에 저희 3자매 데리고 가시고 할 때 

 그때도 사실 그때 구체적으로 누구 유골이 뿌려진곳인지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저야 동생이 죽은 것을 알고...둘째는 조금 미심쩍어 하는 

 그 정도 분위기였지만 

 막내의 경우엔 아마 저희가 말해주기전까진 아마 거기서 

 아빠나 엄마쪽 친척 동생이나 누가 죽거나 사고가 난 것으로 

 그런것인가 그렇게 지레짐작 했었다네요 

 물론 막내 3학년때 저희가 모든 것을 말해주고 나서는 

 그때부턴 태도가 좀 달라지긴 했지만 

 

 시간이 좀 지나서... 

 어느덧 저랑 둘쨰는 대학생이 되고 막내가 고등학생일 때 

 저희들끼리 나름대로 백분토론(?)비슷한 

 장시간 좀 왈가왈부를 했었어요 

 만약 동생이(저랑 둘째 입장에서) 혹은 오빠가(막내 입장에서) 

 죽지않고 그냥 살아서 우리랑 함께 

 계속 그냥 자랐더라면 

 과연 어떤 모습일지 

 그렇게 남자형제 한명이 더 있는 4남매가 

 어떻게 지내며 자랐을것이묘 

 남동생은...오빠는 과연 어떻게 자라고 살았을지 

 저희 나름대로의 상상의 살을 덧붙져 

 좀 부질없는 장시간 토론(?)을 가진적도 

 있었답니다. 

 

 세월이 좀 더 흘렀습니다 

 부모님은 어느덧 연세가 드셔서 돌아가시고 

 부모님 유품을 저희 3자매가 정리하려 할때였습니다 

 그러다 뜻밖의 물건을 발견했어요 

 그러고보니 저희 동생 아무리 그래도 

 두 살 남짓때 죽었으면 

 그보다 더 어릴 때 사진은 분명 남아있어야 정상인데 

 요즘이야 뭐 유튜브로 너도나도 육아영상이다 하며 

 자기네 귀여운 애기 자라는 모습 찍어 올리고 난리지만 

 우리때야 자라나는 애기 귀여운 모습 남기는 법은 

 사진촬영밖에 없던 시절이니 

 오히려 그래서 식구끼리 어디 조금만 놀러가도 

 귀여운 갓난아기 사진 몇장이라도 더 찍어 남겨놓으려 

 난리던 시절인데 

 저나 둘째 그리고 막내 세정이 사진까진 모두 다 있는데 

 두 살때 죽은 남동생 영재 사진만 

 유독 없더라구요 

 저희 부모님 평상시 성정으로 볼 때 

 그보다 더 어렸을 한참 귀여운 막내아들 사진 

 한 장이라도 더 찍어두셨으면 찍어두셨지 

 그러지 않으실분들은 아닌데 

 일절 동생 사진이 보이지 않았던거에요 그동안 

 굳이 유츄해석해볼게 있다면 

 그래도 저희 3자매 어릴적 앨범은 다 있는데 

 거기 보면 이따금...원래 붙어있던 사진을 누가 의도적으로 

 떼어낸듯한 흔적이 있더이다 

 그래서 혹시 

 아빠가 저희가 죽은 동생을 너무 그리워 사무쳐할까봐 

 잊히게 하기 위해서라도 일부러 동생 사진을 

 그런식으로 모두 떼버리신건 아닐까 

 그런 짐작은 해봤었는데 

 

 아... 

 아빠,엄마 방에서 나온 작은 사물함을 꺼내봤을테 

 저흰 안타까운 탄성을 지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만 사진이 그리 많지는 않아셔 열장 좀 넘게 

 스무장이 채 안되는 

 발견한건 그렇게 방구석 사물함에 돌아가실때까지 고이 모셔놓은 

 죽은 동생의 어릴적 사진이었어요 

 그러고보면 아버지,어머니는 

 저희가 죽은 동생을 지나치게 그리워할까봐 저희 앨범에선 모두 

 떼버리셨으면서 

 정작 부모님은 그렇게 방 한구석에 그렇게 떼놓은 사진을 

 한데 모아놓고 평생을 그리움에 시달리셨으면서도 

 그 감정조차 남몰래 감추시며 

 그렇게 살다 가셨구나 

 그 심정을 생각하니 또 한바탕 왈칵 울음이 

 솟구쳐올랐습니다 

 

 저랑 둘쨰는 일단 여섯 살,네살 그때보다 더 어릴 때 

 물론 그보다 더 어린 갓태어나 한 돌 좀 지날 무렵까지의 

 누나들이랑 함께 찍은 남동생 사진을  

 그렇게 보니...오랫동안 잊어버리고 있었던 

 어릴적 동생얼굴도 기억이 다시 

 떠올려질 것 같더이다 

 다만 그 와중에도 막내는 

 자기만 제 오빠랑 찍은 사진이 없다며 

 새삼 아쉬워하더이다 

 아무리 그래도 오빠가 죽었을 때 자신도 한 생후 몇 개월이었든 

 이미 세상에 태어난 존재였다면 

 그런 막내 세정이까지 모두 4남매 온전히 찍힌 사진이 

 한두장이라도 있어야 정상인데 

 일단 누나인 저희 둘 혹은 부모님과 

 혹은 동생 혼자의 독사진 그런식의 기념사진은 있어도 

 막내 세정이까지 합쳐서 찍은 4남매 완전체(?) 사진은 없더라구요 

 그땐 혹시 여건이 안 되었는지 아니면 다른 사정이 있었는진 몰라도 

 어쨌든...누나들이랑 찍은 사진은 있어도 

 막내 여동생까지 합해서 찍은 사진은 없는 

 죽은 남동생의 사진 

 저는 저대로 둘쨰는 둘쨰대로 막내는 막내대로 

 한참을 착잡하게 바라보며 

 울고...또 울었습니다... 

 

 문득 다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동생이 죽지않고 살아서 

 저희랑 계속 같이 살았더라면 

 동생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자라났을까요 ? 

 또 저희 가정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 

 동생은 늠름하고 씩씩한 청년으로 자랐을까요 ? 

 혹 아빠를 닮아서 공부잘하고 똑똑한 그런 청년이 되었을까요 

 아니면 엄마를 닮아서 배려심있고 불쌍한 사람 도울줄도 알고 

 노래도 잘 부르는 그런 사람이 되었을까요 ? 

 그러고보면 저희 3자매 

 저는 헬스 트레이너, 둘쨰는 디자이너, 셋째는 보컬 트레이너 

 그렇게 체육,미술,음악 각기 예체능 한분야씩 

 그런대로 재주를 갖춘 그런 특기있는 3자매인데 

 동생은 또 어떤 재주나 재능을 갖춘 

 그런 인물로 자랐을까요 ? 

 그리고 그런 동생과 사는 저희 4남매의 모습은 

 어떤 형태였을까요 ?  

 그러고보면 ‘둘만낳아 잘기르자’니 둘도 많으니 하나씩만 낳자느니 

 그런말 한참 있을 때 

 그래도 ‘대 이을 아들 하나는 있어야 한다’는게 

 그 시절 어른들 보편적 사고방식이라 

 보통 위로 딸이 둘이나 셋 있고 막내가 사내아이인 

 그런 경우를 저희 세대 주변에선 흔하게 보는데 

 위로 여자아이 둘 그리고 밑으로 남자아이 

 그리고 또 밑으로 여자아이가 하나 더 있는 

 그런 4남매는 흔하게 볼 수 있는 구조는 아니잖아요 

 여하튼 그런 4남매로 동생도 함께 같이 살았더라면 

 우리 4남매 사는 모습은 과연 어떠했을지 

 또 우리 가족 사는 모습은 어떠헀을지 

 쉽게...상상이 가지 않네요 

 

 어차피 어느덧 40년전 일 

 그때 두 살나이로 사고로 죽어 

 그 이후로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동생을 두고 

 부질없는 상상 하는것이긴 하지만 

 가끔은 그렇게 허망한 서녘하늘 노을 바라보면서 

 어디선가 유령처럼 떠도는 영혼처럼 저 허공 어딘가를  

 떠돌고 있을지도 모를 

 동생에 대한 아쉬움과 탄식을 

 그렇게 혼자 눈물지어보이곤 한답니다 

 아, 참 그리고 마지막으로 

 진짜 궁금한 것 한가지 

 만약 그렇게 동생이 죽지않고 살았더라면 

 그래서 같이 살았더라면 

 저희 부모님은 과연 행복하셨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