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이루는 가장 기본 자원, '초기'가 있다.(필자가 임의로 정한 이름이다. 양해바란다.)이 단순한 것 하나에 계산과 규칙이 적용돼 지금처럼 다채로운 세상이 만들어졌다.마치 1과 0으로만 이루어진 컴퓨터 프로그램처럼.
초기로 어떠한 성질이 만들어지면 다른 것과 구분되는 한계, 즉 경계성이 생긴다. 여기서 다시 결합과 상충 그리고 중첩같은 현상이 더해져서 보다 복잡한 형태가 만들어진다. 세상과 인간사의 법칙까지.법칙 중에서 인간사에 직접적인 영역은 감정, 의식, 물질, 기운, 기록이다.이 다섯가지는 서로 연동되어 영향을 주고 받는다.주로 감정과 의식이 이를 자동으로 감지하고 반응한다.이런 반응이 있는 근본적 원인은 '초기본능'에 있다.이는 '초기'의 성취에 대한 갈망과 훼손에 대한 불쾌 혹은 고통이 인간에게 본능으로 내재돼 있는 것을 말한다. 이는 인간의 분명한 한계인데, 좋고 나쁨이 수동으로 느껴지기 때문에 행과 불행이 이에 크게 좌우된다.인간이 자기중심적이기 쉬운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그래서 삶의 지침도 자신의 안녕에 대한 욕구에서 출발하는 게 가장 효율이 좋다. 본능은 억누른다고 사라지는 게 아니니깐.
먼저 우리가 인지가능한 영역인 물질부터 생각해보자.우린 어쩔 수 없이 배고픔이나 피곤함을 느끼고 삶을 연명하기 위해 음식물이나 수면을 취해야만한다.이 부분에서 마음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부분이 분명 존재함을 강조하고 싶다.인간은 물질에 어느정도 종속되게끔 설계된 존재다.우리의 외형, 육신의 건강, 돈, 음식, 약, 편의를 돕는 각종 기계, 아름다운 경관, 향기 등등.이 사실을 어느정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본능을 부정하면 모순에 빠지게 돼 혼란이 생기고 이런 사고는 오히려 올바른 판단을 하는데 방해가 된다.외적인 부분도 하나의 가치가 되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다만 물질적인 영역만으로 사람의 모든 가치를 규정하거나, 거리낌없이 잣대질하는 무례가 문제일뿐.
기운의 영역은 사람의 내부와 사물, 그리고 시간에도 존재한다.이는 인간사를 운영하는 큰 틀로 기능한다.사람은 태어나면서 자신의 시간을 갖는다.세상 모든 건 복잡하게 맞물려져 있고 그 수많은 이음 중 하나가 본인인 것이다.개인의 시간은 세상의 시간과 치밀한 계산 하에 나온 결과고.세상은 복합적 설계다.사주만으로 인생을 확신할 수 없는 이유는 그 외에도 삶에 적용되는 요소가 많기 때문이다. 현재 나와 상생되는 사람과 주변 환경, 전생인연의 갚힘, 선택과 노력의 정도 등등.총체적으로 봐야 바른 판단에 이를 수 있다.시간이라는 기운은 하나뿐인 연료와 같다. 정말 그때뿐인 자신만의 자원.기운의 형태도, 사람마다 한 때의 가치도 정말 많이 다양하다.
기운은 기운에, 그리고 다시 감정과 의식에 영향을 준다. 내 기운에 나도 타인도 반응해, 그 기운에 따라 나의 삶이 판이하게 달라진다.그리고 자신이 무엇과 조합돼있느냐에 따라 그 반응이 달라진다. 전공, 주변 사람. 직업. 이름 등등나 이외의 기운에 영향을 받아 내 기운이 변한다는 뜻이다.지구가 달과 태양의 영향을 받아 지금의 형태가 된 것처럼.
이 글이 못 미덥더라도 이름만큼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니 작명소에서 바꾸길 바란다.인터넷에 검색해보면 작명소는 10만원이면 하고 개명 신청도 온라인으로 가능해서 그리 어렵지 않다.제발 자식 이름 장난스럽게 아무렇게나 짓지 좀 마라!!자식한테 줄 수 있는 선물 중 가장 큰 선물일 수 있다. 필자 지금 대단히 진지하다.
인간은 환생을 거듭한다.당신이 태어난 지역, 부모. 모두 이유가 있다.당신이 전생에 행한 일이 입력돼 있는 영혼 안의 기록들.현생은 이것이 정산된 결과다.영혼.쉽게 정의하자면 개개인의 고유한 암호, 컴퓨터에 있는 각각의 폴더와 비슷하다.나의 순간, 말, 행동, 생각, 등이 서려있는.영혼 안에 입력돼 있는 것, 이것을 기록의 영역이라 하자. 물론 감정과 의식, 기운 등을 묶어 영혼이라 할 수 있겠지만, 편의상 이렇게 하자.기록은 전생, 현생, 즉 자신이 겪어온 모든 생의 장부다.이 기록들은 앞서 언급한 초기로 변환해 다양한 영역과 상황으로 치환이 가능해진다. 하지만 세상 전반의 계산적 한계로 현생에서 모두 이용되는 건 아니다.종교에서 흔히 업, 카르마라고 표현하는 이 기록의 영역은 인간사를 운영하는 법칙 중 하나로 쓰이며, 이를 통해 갚힘현상이 나타난다.인간에게 일어나는 통증, 갈등, 상처 중에는 피하라는 신호 또는 갚힘현상인 경우가 있다.갚힘은 자신에게 맞아 좋은 선로, 사람, 감정, 의식, 육신, 성별, 이름, 물질 등이 방해되는 것으로 나타난다.기운과 기록 등의 원리는 세상을 예측 가능하게 만든다. 이 예측을 통해 기존 형태에 관여해 성질을 바꿀 수도 있고.실제로 그렇게 하는 존재들이 있다. 인도령, 또는 수호령이라 한다.앞으로 이들이 인간사에 관여하는 행위를 '인도적관여'라 하겠다.이들이 하는 일을 보면 그들의 이런 행위는 세상과 인간을 '계산에 맞춘다'고 표현하는 게 적합할 것 같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부분을 아는 존재라는 것일 뿐, 맹목적으로 신을 믿고 숭배하라는 것은 아니다.그들의 행위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 그러니 스스로의 운명을 위해 잘 활용해보자.그들도 완벽하지 않기에 틀릴 수도 있고 나에게 좋은 쪽이 아닌 갚힘으로 이끌 수도 있다. 그래도 이 글을 보는 당신은 이 사실을 통해 자신에게 가장 좋은 방향성을 찾길 필자는 바란다.보통의 인간이 '인도적관여'를 느낄 수 있는 방법은 꿈과 느낌이다.꿈은 자신이 가진 기운, 기록, 감정, 의식 등 다양한 영역이 세상의 법칙과 맞물려 영적인 상영이 이루어지는 것이라 생각하면 쉽다.인도령의 개입은 보통 꿈에서 깨기 직전에 많이 일어난다.특히 시각적 동반이 있든 없든 누군가 직접적으로 내게 하는 말이 그렇다.자기 전에 자문하면 응답해주기도 하니 잘 써먹어 보자.
감정체를 이용해 인도하는 경우도 있다. 느낌.이때 사람이나 자신의 진로 등에서 좋은 선택으로 인도할 시 끌림, 기분 좋음 나아가 황홀감같은 것이 든다.이를테면 지방직 공무원을 준비 중인데 나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전공과 지역에서 이끌림, 좋은 느낌, 황홀감을 받고 거기에 더해 연관된 꿈을 꿨다면, 그 곳에 좋은 인연, 특히 인생을 바꿀만한 핵심이되는 귀인이 있거나, 살면서 몰랐지만 일을 했을 때 나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직업군일 수 있다.그 지역이 전생에 연이 있는 지역이였을 가능성도 매우 높은데, 그 만큼 좋은 인연도 많을 수 있다. 반대로 반드시 피해야만 하는 지역도 있다.공무원 얘기를 해서 말이지만 찍신이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아무리 열심히 해도 안 될 수도 있고 외려 엄청 짧은 기간 공부한 사람이 될 수도 있다.신적 존재는 기운의 총량이 우세한 쪽으로 더 쏠린다.합격한다고 무조건 다 좋은 것도 아니고. 선택 실패 또는 갚힘.그 안에 있는 사람이 엿같으면 합격이 곧 불행이다.기운(사주팔자)과 터, 등 계산에 이용되는 요소를 통해 어떤 상황에서 어떤 사람이 어떻게 모이게 될지, 아니 모여야할 지 예측이 가능해진다.잘못된 선택으로 계산이 맞지 않으면 아무리 자신해도 망한다.세상엔 인간이 볼 수 없는 그 너머의 것이 있다.고집, 선입견을 버리는 게 더 유익한 직접적 이유 중 하나다.
주변 사람의 말에도 인도적관여가 있다. 이는 잘 구분하기 어려우므로 꿈과 느낌을 같이 연동해서 판단하는 게 좋다.의식체에 있는 정보 중에 필요한 것을 꺼내 상대에게 전달하도록 하는 방식인데, 역시나 좋은 쪽으로도 갚힘으로도 나타난다. 모든 일에 그런 건 절대 아니지만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서 특히 많이 보인다. 물론 인간은 이를 잘 인지하지 못하고 내부에서 일어나는 그저 주도적인 현상으로 착각하지만.모든 이 앞에서 겸손할 필요가 있는 이유 중 하나다. 그게 누구라도 당신과 또 다른 이에게 어떤 소중한 정보를 전해줄 지 모르기 때문이다.연결지어서 내게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 순간적으로 이목이 끌리는 지점에서도 이런 인도적 관여가 있기도 한다.어떠한 정보를 얻든, 위험을 피하게 되든, 갚힘으로 오히려 위험에 처하게 되든.명상할 때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에서도 이런 경우가 있지만, 이건 분별하기 매우 어려우므로 이런 사실이 있다 정도만 알아두자.
꿈과 비슷한 개념으로 화경이라는 게 있다. 보통은 무속인들이 신적 존재의 관여로 생시에 접할 수 있는 현상인데, 생생한 꿈이 눈 앞에 잠시 펼쳐진다 생각하면 쉽겠다.예를들어 서로 상충이 있는 연인이 그들의 관계를 묻는다면 눈 앞에 서로 싸우는 모습이 잠깐 비치는 식이다.그 외에도 이들은 강한 느낌이나 내면에서 들리는 말로 정보를 전달받는다.사기로 무속인 행세는 하지말자. 진짜 크게 본인의 운명을 망친다.
무속인이든 일반인이든 자신의 기운, 덕이 아닌 신적인 존재가 가진 것을 누리며 사는 경우도 있다. 우리가 잘 인지하지 못 할뿐.감사하는 것이 의식과 감정, 그리고 기록상 좋은 것도 있겠지만, 이들이 자신에 대한 감사를 좋아해서 배푸는 게 더 크다.그렇다고 감사가 전부인 건 절대 아니다. 아무리 이들이 도와준다해도 분명 세상의 규칙 안에서 한계가 있다.
나만의 나는 없다.감정, 의식, 기운, 물질 등은 모두 세상과 공유적 결합을 이루고 있다.세상과 내가 맞물려져 있기 때문에 나 혼자만 놓고 판단하는 건 자칫 위험할 수 있다. 지금 자신에게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크게 고려해서 더 현명하게 살았으면 한다.
세상의 규칙에 잘 맞으면 융화돼 순조롭고, 상충되면 힘든 반응이 나타난다. 물질, 사람, 상황, 육신 등에서.앞서 말했듯, 인도적 관여로 기운의 조화와 상충, 기록의 갚힘 등이 활용되는 모습을 통해서 이런 현상을 알아갈 수 있다.통증은 전, 현생, 지금하는 일, 선택, 사람, 등과의 상충에서 발생한다.선택이 정말로 중요한 이유다.굳이 갚힘적 성격의 고통을 나의 잘못된 선택으로 겪을 필요가 없지 않은가.대학, 전공, 직장, 생활지역을 선택할 때 그 안에 있는 나와 맞는 사람, 기운을 고려하는 게 좋다.공부도 종류가 굉장히 많다.나의 선로에서 맞는 열쇠가 있다는 뜻이다. 나의 현재, 미래, 그리고 자신이 어느 정도의 사람이 될 수 있는 지 스스로 함부로 예단하지 않길 바란다.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겉으로 보기엔 같은 상황처럼 보일지라도 세부적으론 극명하게 다를 수 있다. 지금 당장 하는 일이 나에게 진짜 좋은 일인지, 그 이유가 뭔지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실패는 쓰다. 이 사실을 미련으로 현재를 망치지 않고자 좋은 경험쯤으로 넘기고 살면 당장은 좋을 수 있다.허나 그런 사고를 현재의 선택에까지 확장해 판단한다면 자기과신에 빠져 외려 좋은 기회를 잃게 만들 수도 있다.그로인해 인생에 고통이 따르기도 하고.자신이 하고 싶은 것보다 스스로에게 진짜 좋은 쪽을 택하길 바란다.생각해보자. 아무도 좋아해주지 않는 걸 넘어, 갈등이나 위협에 놓이게 될 일이라면 당연히 피해야한다.지나간 시간은 정말로 되돌릴 수 없다.이 세상 모든 영혼의 기록을 되돌려야 가능한 일이니깐.물론 그때를 체험해 볼 수는 있겠지만, 절대로 바꿀 수는 없다.그래서 지나간 것에 대해 '지금이라도'는 무의미하다.과장이 아니다. 한번의 선택으로 평생, 아니 다음, 그 다음생까지 좌우될 수도 있다.그러니 자신만의 자원을 헛되이 쓰지도, 잃지도 않길 바란다.
인도적관여 중에서도 한쪽으로만 치우쳐져, 전체적으로 손해를 보게 하는 경우도 꽤나 있다.나의 선로와 맞지 않으나 귀인이나 악연이 있는 경우.선로도 귀인도 갚힘도 그 외에 어떠한 경우라도, 필자는 모두 자신에게 좋은 쪽으로 갔으면 한다. 그럴 수 있다. 악연인 관계는 선로, 감정, 육신적 위협, 경제적 손실 등으로 치환되게 만든다.물론 결과적인 부분만으로 갚힘의 유무를 판단할 순 없다. 선택 등의 다양한 이유가 또 있으니까.그야말로 세상은 변수덩어리다. 인도적 관여가 그렇게나 완벽한 것도 아니고, 모든 일에서 다 일어나는 것도 아니며 거기에 더해 인간 자체의 변동성까지.지금의 말과 행동으로 아무리 좋거나 나쁜 관계도 달라질 수 있으니깐. (나쁜 관계가 변하는 건 솔직히 어렵지만 좋은 관계가 작살나긴 쉽다.)노력하지 않고 막 살면 가진 것도 허물어질 수 있고.
성별의 경우, 현생에서 남자가 다음 생에 여자로, 혹 그 반대로 태어날 수도 있다.이 자체만으론 문제가 안 되지만 기운적 성별과 물질적 성별이 상충할 땐 문제가 되곤 한다. 그 상충을 본인이 느껴 동성애로 나타나기도 하고. 물론 스스로 인지하지 못 하고 보통의 이성애로 살아가기도 한다. 동성애가 나쁘다는 말은 절대로 아니다. 성별의 상충이 인생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게 만들 수 있다는 의미다. 이성애든 동성애든.이는 갚힘의 한 종류로 쓰이는데, 사주상 성별이 바뀌었을 때 더 좋은 경우 해당될 가능성이 높다.
몸이 아픈 것 중에서도 갚힘이 있지만, 모든 건강상의 문제가 그런 것은 아니다.하루에 소주3병을 365일 마신다면 병나지 않을 사람이 드문 것처럼.이유 중 하나일 수 있고 극복할 방법, 대체할 방법을 묻는 게 좋다. 인도적 관여 활용, 꿈. 단적인 예로 기부를 한다든지.초기의 치환이 이뤄져야한다. 안 좋은 게 좋은 쪽으로.
자살의 징후 중 하나가 몸의 통증을 호소하는 것이란 심리전문가의 글을 본 적이 있다.병원에 가면 신체적으로 별다른 이상이 없는데, 이는 정신적 고통을 육체적인 것으로 착각해 생긴 현상이란 주장이었다.이런 증상이 감정체의 중심인 심장 부근, 그러니깐 왼쪽 등을 기준으로 강한 떨림, 뭉침, 어깨 결림 등의 통증, 거기에 더해 괴로운 과거의 회상과 감정이 같이 수반된다면 좀 다르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선택을 잘못해서 기운의 끊어짐이 강한 경우 즉, 큰 기회나 마지막 기회를 놓쳤을 때, 다른 요소에서 기운의 상충이 클 때, 이런 증상이 보일 수 있다.
미숙한 무속인일 경우 이를 단순 신병으로 혼동하기도 한다.무조건 신을 받는다고 좋아지거나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게 아니다. 절대로.함부로 판단해선 안 된다.
세상에는 수많은 가치가 있다. 시간, 건강, 외모, 재력, 명예, 감정, 의식 등등.단편적인 모습이 본인의 전부가 아니다. 타인도 그렇고. 우리가 겸손해야하는 이유다. 겸손은 내가 절대로 알 수 없는 부분이 있음을 인지하는 것이다.자신이 모르는 부분은 당연히 인지하기 어렵고 편견도 생기기 쉽다.나를 포함해 그 누구도 단정할 수 없으니, 누군가의 결함을, 갚힘을 함부로 판단하지 말자.다채로운 가치 중 하나에만 매몰돼 사람을 평가하면 다양한 가치, 기회를 놓치기 쉬워진다. 무조건 나에게 집중해야만 한다. 내 안에 뜨는 나의 모습들. 감정, 생각, 말, 행동같은.나 자신을 위해서.
사람이라면 대부분 스스로가 좋은 가치를 지닌 존재이길 갈망한다.그래서 흔히 타인에게 자신을 드러내고 인정받아 자신의 정도를 확인하고 싶어한다.허나 인간의 궁극적인 가치는 본인 안에 기록돼있는 진실된 모습이란 걸 잊지말자.스스로 가장 잘 알기에 절대 부러지지 않는 자부심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기운이나 다른 원리들을 알아서 활용하는 이유도, 내가 나의 가치를 높여 더 안정된, 나아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다.잠깐 언급하자면 행복은 자신을 둘러싼 모든 영역에서 평안을 느끼고, 나아가 풍요가 있는 상태라 생각한다.
이성뿐 아니라 친구, 동료, 등. 사람이란 존재는 인생에서 괴로움도 즐거움도 크게 좌우하므로 굉장히 중요하다.인간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다양하다.기록, 기운, 노력, 금전, 지위, 외적요소, 사회적으로 학습된 의식과 감정 등등.삶에 영향을 미치는 건 참 많다. 머리 아프게도. 하지만 모두 인생에 영향을 미치므로 스스로도 어떤 요소를 배제하지도, 그렇다고 하나에만 매몰되지도 않으려 노력할 필요가 있다.
원칙적으로 귀인의 정의는 기운이 나를 돕는 사람이다.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 겉으로 드러나는 게 없더라도.감정이 연동돼 특별히 아끼는 마음이 드는데, 이는 사랑으로 이어진다. 이성이든 친구든.마음의 가치는 생각보다 훨씬 크다. 삶이 바뀔 수 있을 만큼.어떤 사람과 가까이 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 물질, 나에게 반응하는 사람들의 감정, 태도, 등등.사랑은 간단히 말하자면 어떤 대상의 기운체에 대한 강렬한 갈망과 이끌림으로 자신의 감정체가 압도되는 현상이다. 단순한 소유욕이나 자기만족이 아니다.명품에 대한 열망을 사랑이라할 수 없듯.그저 자신의 만족과 욕구를 채우기 위한 것을 사랑이라 착각하고 다가오는 사람이라면 이성이든 친구든 오히려 위험할 수 있다.아, 물론 본인 또한 상대에게 그럴 수 있는데, 이 역시 도리어 자신에게 해가 될 수도 있다.악인연, 혹은 서로 상충하는 기운이라도, 그때의 자신 혹은 상대의 기운이 좋으면 순간은 좋아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사랑은 내가 그 대상의 행복을 바라며 행할 수 있는 커다란 노력의 정도다.
남들에겐 아무리 하찮아보여도 나에겐 귀인일 수 있다.지구에 비해 볼품없는 달이 사라진다면 지구의 지금은 없는 것처럼.정보제공은 일반적인 관계라도 의식체를 활용한 인도적 관여에 의해 일어날 수 있다.허나 인간들의 대화에 대부분은 그냥 개인적인 의견 혹은 갚힘, 기운간의 상충, 등에 의한 것이므로 잘 가려야 한다.
진짜 귀인은 대부분 기운의 영향을 받으므로 시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즉 동일인물이라도 때에 따라 작용이 달라진다는 말이다. 그 때가 정말 중요하다.귀인이라고 마냥 좋은 일만 있는 것도 아니다.현재의 말과 행동의 변수로 서로를 싫어하게 될 수도 있다.귀인은 내가 더 잘 대하고 집중해야 할 존재임을 명심하자.관계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그럴만한 요소와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반대로 아무리 노력해도 마이너스가 되는 관계도 있다.즉, 반드시 잃어야만 하는 존재가 있다는 뜻이다. 그 대상이 설령 가족일지라도.물론 천륜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부부, 부모자식, 형제자매, 연인, 친구, 등. 기대가 높은 관계일수록 반응과 입력의 가치도 커진다. 같은 행동으로도 어떤 관계냐에 따라서 내게 쌓이는 덕과 업의 무게가 달라진다는 의미다.나에게 더 큰 기회를 고려하며 나의 최선을 조절하는 게 좋다.우선 자신을 지키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다.더이상 나에게 상처를, 나아가 서로에게 업을 남기지 않도록 일단은 피하는 걸 추천한다. (일반적인 가정이나 관계를 말하는 게 아니다.)가족도 똑같은 인간관계다. 부모자식, 형제 간 도리를 지나치게 강조하거나 당연시 하는 건 옳지 않다.가족에 대한 환상만 부각될 시 기대감만 고조되어 외려 갈등을 키우는 부작용이 생긴다. 그 환상이 더 해결점을 찾지 못하게 만든다.당연하다 여겨지는 게 충족되지 않았을 때 느껴지는 불쾌감은 불화의 씨앗이 된다.자신, 나아가 주변인의 삶을 불안정의 연속에 놓이게 만드는 지름길이다.상대가 하는 혹은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노력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말자. 인간관계 전반에서.
좋아보이는 모습은 절대 당연한 게 아니다. 어려운 것이다.그 기준에 충족되지 못 하면 나쁘다고 오인하기 쉽다.허나 본능적으로 생길 수 밖에 없는 감정과 그에 수반되는 생각처럼, 당연한 것이 잘못으로 인식돼 불쾌감이 들면 비극이 된다.늘 힘들어질 수 밖에 없다. 서로가 그리고 스스로가.
현재 자신이 행할 수 있는 최선의 상태가 있다. 상처와 아픔을 품고 높은 단계에 있는 기회를 얻을 만한 모습을 실행한다는 건 무리를 넘어 학대일 수 있다.인간에겐 당연히 드는 감정 반응이 있다. 그래서 감정이 어느정도 정리가 돼야 그 다음 단계도 가능해진다.자신의 감정이나 의식이 좋지 않음에도 밖으로 내놓지 않으려는 노력만으로도 충분히 스스로 칭찬할만 한 일이다.한편으론 사회적으로 바로 잡아야하는 모습도 분명 있을 터다. 복수라는 마음보다 우선하는 사회적 정의같은.
인간관계에서 인도적관여와 세상법칙을종합적으로 고려해보고, 나에게 오는 존재들과 그들의 말에 이유를 잘 생각해보길 바란다. 내 선택, 인도적 관여, 좋은 혹은 나쁜 전생, 기운의 상충 또는 조화.전생인연만 운운되지만 현생에서 지나간 인연도 과거인연이 된다는 사실도 기억해두자.
자기 스스로를 책임지지 못하는 상황에서 자신의 공허를 달래고자 연인, 더 나아가 결혼과 자녀를 바라는 경우도 많은데, 결코 좋을 리가 없다.결핍이 있는 당신은 주는 게 당연히 버거울 것이다. 경제적 여유뿐아니라 감정과 의식까지.되려 상대가 내게 만족을 주지 않음에 불만을 가지기 쉽다.
아이가 생겼다고 낳는 게 책임을 다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지금 삶이 충만하지 않으면서 아이를 낳는 건 학대다.스스로 채워넣지 못한 만족을 가장 손쉽게 아이에게서 얻으려들테니.감정이든 의식이든 미래에 대한 희망이든.
자녀를 자신의 소유로 오인하면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적 가치에 충족되지 못 할 때 드는 불쾌감으로 어리석은 행위나 판단에 이를 수 있다.아무리 자식이라도 그의 다양한 영역을 모두 알 수는 없다.잘못된 선택으로 종용해 부모가 자식에게 업을 지을 수도 있고.
내부와 외부에 반응하는 게 주된 역할인 감정은 그 자체만으로도 힘이 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그 힘에 반응한다.우리가 권력, 명예, 성공을 갈망하는 이유, 더 나아가 돈의 속성까지도 이 감정의 힘이 핵심이다.사람의 마음은 보이지는 않지만 그 가치만큼은 생각보다 훨씬 크다.한 나라의 대통령도 따지고 보면 사람의 마음으로 얻은 권력아니던가.
다들 알겠지만 세상에는 물리적인 훼손만 있는 게 아니다.인간은 감정적, 의식적 가치의 훼손에도 크게 영향을 받는다.이는 스스로 가치를 지닌 존재이길 갈망하는 인간의 본성과 만나 자신의 존재적 가치가 손상되는 것에 예민성과 거부감이 들게 한다.이 거부감이 너무 커지거나 의식과 감정에 잘못 내재되면 자신의 삶과 운명에 큰 장애가 된다.동일한 자극에도 외부공격처럼 느껴져 과민반응을 하게 되고 분노나 폭력성으로 이어지게 되니깐. 본인 또는 사회가 정한 가치에서 배제된 상실감, 외부를 통해 자신을 확인할 때 드는 부족감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인간은 당연히 자신의 육신, 정신, 감정이 편한쪽에 머물려한다.그래서 자신에게 유리한 근거를 옳다고 판단하기 쉽다. 불편한 감정, 상황도 자신이 편한쪽으로 해소하기 쉽고.감정, 의식, 육신의 반응은 자연히 같은 선으로 이끌린다.그래서 감정이 먼저 반응한 후 거기에 연동돼 오는 의식을 진짜 원인이자 답이라 착각할 수도 있다.감정과 의식은 사회적으로도 학습이 된다. 사회, 대다수의 사람이 옳다 혹은 그르다 규정한 기준에 이끌려 반응하는 모습이 그렇다.나 또는 사회적 거부감이 서려진 사람, 사상 등에 저항하고 거기서 자신을 배제하려는 모습도. 자칫 이런 모습에서 얻어질 수 있는 쾌락과 우월감을 조심해야한다.이런 반응에 속아 진짜 자신을 위한 모습과 가치를 스스로 잃거나 망치는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이를 인식하고 자신의 반응을 미리 예견하며 사는 게 좋다.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모습이 감정과 의식 안에 학습돼 나를 이루는 부분이 되기도하므로, 내게 올 것을 스스로 잘 선택해주는 것 또한 인생에서 중요하다.부모의 세상과 사회, 그리고 본능적 욕구는 어쩔 수 없이 내 안에 있을 수밖에 없다.나만의 나는 없다. 감정마저도.앞서 인도적관여를 생각해보면 왜 감정도 나만의 것이 아닌 지 알게 될 것이다.
지금 상태가 있기까지는 분명 과거가 있다. 이 과거는 확실히 현재의 원인이고.그래서 현재에, 그리고 미래에 온전히 집중하려면 반드시 과거를, 진짜 나의 원인을 잘 돌아볼 필요가 있다.
긍정 또는 부정적인 경험은 의식과 감정에 내재돼 쾌감, 불쾌감으로 삶을 억압, 통제한다. 우리가 겪어온 일들은 현재 나의 생각, 감정, 행동, 말 등에까지 영향을 준다는 뜻이다.통제의 정도가 커질수록 공황은 강해지고 자력은 약해진다.따라서 자신도 모르게 의도하지 않은 행동과 말을 하게 되기 쉽다.그런 자신의 모습에 스스로에 대한 혐오가 생기기도 쉬워지고. 내가 왜 그랬지. 자책하며 괴로워하는.스스로 미숙해보이기 싫은 건 어느정도 당연하다. 내부에서 좋은 가치를 원하니까.허나 이런 감정이 나를 망치도록 두진 말자.각자가 느끼는 감정, 생각, 행위 등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것이 옳든 그르든.우선은 자책하지 말고 그 원인을 겪어온 스스로를 위로해주길.
타인의 말, 시선, 행위 등에 상처를 받거나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는 본능임을 인지하고 인정해주는 편이 자신의 내부 혼란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된다.자신의 감정과 의식을 인지해주는 것만으로도 어느정도 정리가 되어 불안감을 낮추고 더 확장되는 것도 막을 수 있다.원인을 모르면 갈피를 못 잡아 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으니까.그래서 자신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반응을 스스로 가장 잘 알아야한다. 알아줘야만 한다.본인의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자신뿐이니까.사람을 이루는 구조와 본성, 인간이 외부에 반응하게 되는 원리, 자신이 자라온 환경, 과거의 기억, 가지고 태어난 기질 등. 나에 대한 온전한 이해와 관찰이 필요하다.이를 외부에서 기대하면, 대부분 몰이해로 돌아와 외려 아프다.의존성은 스스로의 안정을 방해할 뿐이다. 그만큼 외부에 휘둘리기 수워지니깐.내부적으로 자립을 이뤄야한다.자신의 감정과 생각, 말, 행위 등에 어떠한 판단이나 통제, 숨김없이, 있는 그대로 내 안에서 표출하고 원인을 봐줄 필요가 있다.인간에게 자연히 생길 수밖에 없는 감정이나 욕구를 선악의 기준으로 판단하고 억압하면 그 기준과 반대되는 것에 거부감이 들게 되어 정신적 강박으로 이어진다.무조건 긍정도 같은 이유로 바람직하지 못하다.
사회나 종교에서 바라는 이상적 도덕성은 그렇게 되면 대단하고 좋은 거지 반드시 그래야하는 당연함이 아니다. 정답도 아니고.그 기준에 충족되지 못함이 무조건 틀린 것도, 악한 것도 아니고.그 어려운 걸 일반화시키니 나도 너도 괴롭다. 단순히 부정하거나 강제한다고 그렇게 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절대로.이런 강제나 질타하는 식의 접근은 가치를 갈망하는 본능과 상충하여 언젠가는 그 방향성이 뒤틀린다.나는 잘 되지 않아 내 모습을 정당화하지만 상대를 판단하는 기준치만큼은 더 높아진다.내부적인 오염만 가중되는 꼴이다.
인간은, 인간의 본능은 절대 악이 아니다.본능을 스스로 제어하지 못함이 이 세상의 법칙 안에서 나에게 그리고 세상에 좋지 않을 뿐.합리화를 하라는 뜻이 결코 아니다.물론 진짜 죄도 있고 악행도 있지만.정말로 악을 행한 자는 되돌아가야할 길을 스스로 만들었으니, 옳지 않은 부분이 내게 있음을 인지한 후 나를 위한 방향성을 다시 설정하는 게 본인에게 좋다.자신에게 안 좋은 걸 버리고 좋은 걸 다시 채워 넣겠다는 생각.용서는 구할 수 있을 때 하는 게 원리 상 스스로에게 가장 좋다.죄책감으로 인성을 바꾸기란 어렵다. 오래 지속하기에도, 다수의 삶에 방식으로 적용하기에도.사람의 감정이 그렇다. 인간의 본능이 잘 다루어질 수 있는 방법으로 성숙해 나가는 편이 옳다.
우리의 감정, 생각, 등은 축적된 데이터가 연동돼 자동산출되는 방식이라, 너무나 당연하게 그 근원을 잘 모를 수밖에 없다.감정, 의식에서 불편이 느껴질 때 우발적으로 휘둘려 손해를 보지 않도록 그 안에 있는 진짜 이유를 살피는 게 좋다.나를 찾는 일은 나와 연관돼 있던 그리고 있는 세상을 찾는 일이다.습관으로 자리잡은 나의 의식, 감정, 사회적 학습, 등.
인간은 가치에 예민해서 좋은 것에 이끌리고 나쁜 것은 배척하려 한다. 악에 예민하고 선에 호응하는 모습처럼.더불어 인간은 자신의 기준에서 벗어난 것에 거부감을 느낀다.악과 선, 그리고 거부감이 잘못된 고정관념으로 자리잡아 나의 기준을 타인에게 강요하고 잣대질하는 게 되면 문제가 된다.비난은 자신의 거부감에 대한 해소정도밖에 되지 않는다.타인이 어떠한 물의를 일으킨 게 아님에도 자신의 잣대를 세우고 비판, 비평을 하는 건 외려 상대의 감정과 삶의 권리를 무시한 무례다.스스로에게 나쁜 가치를 쌓는 것이다. 자칫 좋은 기회를 잃게 될 수도 있고.나의 권리가 아닌 것에 메여있다면 반드시 내 안에서 강박을 찾아야한다. 자신의 안정을 지키기 위해서. 외려 자신의 기준이 어떠한 거부감으로 얼룩진 결과는 아닐지.
스스로가 외부, 타인, 세상을 마주할 때 드는 생각, 판단, 감정을 통해 내 안에 잠재돼 있는 것을 봐야 한다. 외부에 이끌려 집착하고 판단하는 게 아니라, 외부나 내부적 자극에 나의 내부가 어떻게 반응하는 지를 보며 나를 이룬 것을 찾고 또 만들어야한다. 자신을 알아야 스스로를 조절할 수 있고, 그래야 불행에 메이지 않고 현명해질 수 있다.
인간은 어느정도 고통을 느낄 수밖에 없도록 설계돼 있다.나의 내면을 볼 때도, 타인을 볼 때도 어쩔 수 없이 갈등이 있을 수 밖에 없으며 이를 외려 당연시 여기는 게 좋다.
나를 위해서 상대의 심리상도 이해해두는 편이 좋다. 상대의 영역과 나를 구분해서 상처를 덜 받을 수 있으니까.개개인마다 입력돼 있는 일그러진 감정과 기억들. 상충하는 기운. 등등.
사람의 마음은 예민하다. 마치 우리 안에 있는 장기처럼 실제하며 그 속에 품고 있는 걸 내놓는다.자신의 삶이 이 감정에 맹목적으로 이끌려 가지 않도록 그 안에 담겨져 있는 것을 잘 조절하는 능력이 필요하다.마음이 우발적으로 나를 해하는 반응을 하지 않도록.그 반응이 밖을 향하건, 나의 내면을 향하건.
억압, 통제, 고통받은 기억은 내재된 그 자리에 남아 계속 내면을 괴롭게 만든다.그래서 시각화(=내면아이치료)를 해주는 게 좋다.이는 내가 의식까지 들어가서 학습된 반응작용을 재조정해주는 방법이다.우선 기억을 떠올려 그때 느꼈던 감정과 의식을 꺼내야한다.트라우마가 클 경우에는 그 기억을 다시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어렵다.허나 절대 그 기억을 피하거나 외면해선 안 된다. 바로 그 기억이 발목을 잡고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트라우마의 경우 안정된 공간에서 의식과 감정을 꺼낸 후 그때 의식 속 나를 안고 현재로 대려와주는 것을 반복하는 게 도움이 된다.눈을 감고 기억과 감정을 떠올리고 눈을 뜰 때 나를 안으면서 현재의 공간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와 동시에 이렇게 말해주어야한다. 내가 너와 같이 있어, 이제 괜찮아. 그 기억을 정말 또렷하게 마주할 수 있을 때까지. 그리고 그들을 마주하며 기억 속 나의 손을 내가 잡고 말해주어야한다. 거봐 지금 너네는 나를 못 건드려. 너네가 그래도 지금 나는 멀쩡해.그 기억 속에서 자력이 생겨야한다. 무의식 속에서 그 기억과 감정의 지배에서 벗어나려면.
나의 의식과 감정을 불편하게 하는 요소를 피하지 않고 대면하고 원인을 찾아 정리해주는 게 좋다. 트라우마, 선입견, 고정관념.이는 살면서 스스로 불편함을 덜 느껴 심적, 정신적으로 안정을 높이고, 자신의 기록, 가치에 좀 더 유리하게 대처할 수 있게 만든다.
모든 것에 너무 부담 갖진 말자.현재 스스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 된다. 생각이든 행위든 그게 무엇이든.자신을 알아갈수록 자칫 더 혼란스러울 수 있다. 너무 쌓인게 많아서. 좀 지치고 짜증이 날 수도 있지만 스스로에게 강압적이지 않게 친절히 잘 다가가며 이겨내보자.
이 시점에서 필자가 말하고 싶은 자기애는 연민이다. 자신의 상황을 부정으로만 몰아가는 건 연민이 아닌 회피지만.만약 지금 당신의 눈앞에 학대받고 굶주린 어린아이가 있다면 어떻게 하겠는가?'너는 환경이 그러니 당연히 굶고 맞을 수 밖에 없어'하며 내버려둘텐가?아니다. 대부분은 아이를 도우려할 것이다.당장 밥을 주든, 보호받을 수 있는 시설을 알아봐주든.필자가 말하는 연민은 이런 것이다.스스로를 안타깝게 생각하여 지키고 돌봐주어 현재보다 더 나은 상황을 주려는 '노력'.그것이 정서적, 외부적, 그 외 어떤 요인이든.그리고 그런 노력들에 스스로 애정을 느꼈으면 좋겠다. 사람이라고 모두 소중한 게 아니다.단순히 스스로를 귀하게 여긴다고 그렇게 되는 것도 아니고.스스로 귀한 모습을 만들고, 그 모습이 모여서 귀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끌어당김 법칙에 대해서도 언급해보겠다.일각에서 인생을 단순히 끌어당김의 법칙이나 경험이라는 주장이 있는데, 이는 일부로 전체를 확대해석한 기이한 발상이라고 생각한다.세상은 결코 그렇게 단조롭지 않다. 극명한 한계를 갖고 있다.휴지를 진짜 나무라고 굳건히 믿는다고 해서 다시 광합성을 하는 나무가 될 순 없지 않은가. 나라는 하나의 존재가 이 거대한 구조를 바꿀 수 있다는 발상은 선을 넘은 것이다.긍정적으로 사는 건 좋은 일이다.다만, 자신의 현실에 맞지 않는 성과를 바라며 좋은 쪽으로 생각하고 말한들, 그것을 긍정이라 할 순 없다.생각이든 말이든 상상이든 그것이 무엇이든, 진짜로 스스로에게 좋도록 만드는 게 긍정이라고 생각한다.
삶을 단순한 학습으로 보기에도 석연치 않다.이유와 해결 방식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고통만으로 학습이 될까?당신에게 자녀가 있다면 그렇게 교육할 것인가?그런 방식은 그저 학대다. 능력부족이고.인생을 그저 배움으로 보기엔 너무 많은 것이 좌우된다. 무서울정도로.
끝으로 이 글을 자기식대로 함부로 오역해서 전파하는 일이 없길 바란다.필자가 이렇게 글로만 남기는 이유, 이 글로 수익창출을 전혀 하지 않으려는 이유가 있음을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그럼 부디 이 글로 당신이 사는 동안 조금이라도 덜 아프길 바라며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