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역사>를 훑어보면, 아담 이후 ‘완전하게 행하는 자, 노아’는 1600년 만에 나타났습니다. 1600년 만에 노아 하나가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노아로부터 시작해서 아담 때 못한 역사를 하시는데,<노아의 아들, 함>이 또 온전하게 하지를 못했습니다. <노아>는 노아대로 역사를 해 나갔지만,<함>이 온전치 못함으로 인해 책망을 받고,그 가정이 ‘온전치 못한 가정’으로 남아졌습니다. * 하나님은 ‘개인의 온전함’을 보시고,또, ‘가정 단위’로 그 가정의 온전함을 보십니다. 왜요? 하나님이 ‘가정 전체’를 보고 섭리하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시대도 가정에서 <일부>는 하나님을 믿고 온전하게 행하고, <일부>는 온전하지 못하면, <그 가정 전체>를 ‘온전치 못한 가정’으로 보십니다. 한 가정 안에서도 아벨과 가인으로 서로 갈리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고로 하나님은<보다 온전한 자, 믿고 따르는 자>를 ‘아벨’로 보시고<온전치 못한 자>를 ‘가인’으로 취급하셨습니다. 그리고 <온전치 못한 자>는 ‘구시대’에 있게 하시고<보다 온전히 믿고 따른 자>만 ‘새 시대’에 와서 행하게 하셨습니다. * 하나님 앞에 ‘가정’이 온전해지는 것이 어렵습니다.시대마다 ‘중심 가정’도 그러했습니다. 만일 <함>이 신앙생활을 제대로 했다면, 하나님이 아버지 노아를 통해 역사하시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함은 그것을 모르고, 아버지 노아를 부끄러워하고 믿어 주지 못했습니다. 온전치 못한 상태에서 발생한 일입니다. <함>이 하나님을 온전히 믿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해야 “온전하다.”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자기가 온전하게 행했어도,하나님의 뜻을 떠나서 하면 절대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 <노아> 이후 400년 후에 또 온전한 사람이 나타났으니, 곧, <아브라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이 온전한 아브라함>을 칭찬하시고, 그를 통해 역사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게 되었던 것을 보면, 처음부터가 아닙니다.그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살던 갈대아 우르는 짐승까지도 우상화하면서 미신을 섬기며 사는 것이 극에 달했던 곳이었습니다. 그런 세계에서 아브라함은 삶 가운데 스스로‘이것은 절대자 신을 섬기는 삶이 아니다.’ 함을 깨달았습니다. 아브라함이 이를 깨달으니,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은 예정해서 부르신 것도 되지만,그 시대 사람들이 절대신 하나님을 섬기며 살지 못함을 아브라함이 깨달았기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부르신 것입니다. 그는 그 당시 사람들과는 다른 생각과 사상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결국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에서 나와 <가나안 땅>으로 오게 됐습니다. 하나님은 여건을 틀어 주시고, 환경을 옮겨 주심으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뜻이 있는 곳>으로 오게 하셨습니다. 그 후 아브라함은 <온전한 삶,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온전히 행하며 하나님을 절대 믿고 사니,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믿음의 조상’으로서 축복을 주시고, 그의 아들 이삭과 이삭의 아들 야곱, 야곱의 아들 요셉까지 총 4대를 축복해 주셨습니다. 이들은 모두하나님을 사랑하며 온전하게 산 자들입니다.출처 : 2018년 12월 5일 JMS 정명석 목사님의 수요말씀 중에서 ... 1
하나님을 사랑하며 온전하게 산 자들
<성경의 역사>를 훑어보면,
아담 이후 ‘완전하게 행하는 자,
노아’는 1600년 만에 나타났습니다.
1600년 만에 노아 하나가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노아로부터 시작해서
아담 때 못한 역사를 하시는데,
<노아의 아들, 함>이 또 온전하게 하지를 못했습니다.
<노아>는 노아대로 역사를 해 나갔지만,
<함>이 온전치 못함으로 인해 책망을 받고,
그 가정이 ‘온전치 못한 가정’으로 남아졌습니다.
* 하나님은 ‘개인의 온전함’을 보시고,
또, ‘가정 단위’로 그 가정의 온전함을 보십니다.
왜요?
하나님이 ‘가정 전체’를 보고 섭리하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시대도
가정에서 <일부>는 하나님을 믿고 온전하게 행하고,
<일부>는 온전하지 못하면,
<그 가정 전체>를 ‘온전치 못한 가정’으로 보십니다.
한 가정 안에서도
아벨과 가인으로 서로 갈리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고로 하나님은
<보다 온전한 자, 믿고 따르는 자>를 ‘아벨’로 보시고
<온전치 못한 자>를 ‘가인’으로 취급하셨습니다.
그리고 <온전치 못한 자>는 ‘구시대’에 있게 하시고
<보다 온전히 믿고 따른 자>만
‘새 시대’에 와서 행하게 하셨습니다.
* 하나님 앞에 ‘가정’이 온전해지는 것이 어렵습니다.
시대마다 ‘중심 가정’도 그러했습니다.
만일 <함>이 신앙생활을 제대로 했다면,
하나님이 아버지 노아를 통해 역사하시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함은 그것을 모르고,
아버지 노아를 부끄러워하고 믿어 주지 못했습니다.
온전치 못한 상태에서 발생한 일입니다.
<함>이 하나님을 온전히 믿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해야
“온전하다.”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자기가 온전하게 행했어도,
하나님의 뜻을 떠나서 하면
절대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 <노아> 이후 400년 후에 또 온전한 사람이 나타났으니,
곧, <아브라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이 온전한 아브라함>을 칭찬하시고,
그를 통해 역사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게 되었던 것을 보면,
처음부터가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살던 갈대아 우르는 짐승까지도 우상화하면서
미신을 섬기며 사는 것이 극에 달했던 곳이었습니다.
그런 세계에서 아브라함은 삶 가운데 스스로
‘이것은 절대자 신을 섬기는 삶이 아니다.’
함을 깨달았습니다.
아브라함이 이를 깨달으니,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은
예정해서 부르신 것도 되지만,
그 시대 사람들이 절대신 하나님을 섬기며 살지 못함을
아브라함이 깨달았기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부르신 것입니다.
그는 그 당시 사람들과는
다른 생각과 사상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결국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에서 나와
<가나안 땅>으로 오게 됐습니다.
하나님은 여건을 틀어 주시고, 환경을 옮겨 주심으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뜻이 있는 곳>으로
오게 하셨습니다.
그 후 아브라함은
<온전한 삶,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온전히 행하며 하나님을 절대 믿고 사니,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믿음의 조상’으로서 축복을 주시고,
그의 아들 이삭과
이삭의 아들 야곱,
야곱의 아들 요셉까지
총 4대를 축복해 주셨습니다.
이들은 모두
하나님을 사랑하며 온전하게 산 자들
입니다.
출처 : 2018년 12월 5일 JMS 정명석 목사님의 수요말씀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