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뗀 굴뚝에는 연기가 나지 않는다' 와 '삼인성호' 중 어느 쪽인지 구별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정신병을 판단하는 방법은 대체적으로는 신뢰성이 높겠지만, 다수의 사람들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댓글을 읽고, 조현병의 후기에 대해 찾아보니, 제가 느끼는 증상과 유사했습니다. 저는 위층에서 A가 안받아주면 xx하겠다 라는 소리를 수시로 듣고 있으며, 아파트 밖에서는, 저에대한 비방과 죽여버리겠다는 협박을 지속적으로 듣고있습니다. 제가 조현병 환자인지 스토킹 피해자인지 하나씩 풀어가려 합니다.저는 22살에 대학을 휴학하고, 노량진에서 1년간 수험생활을 했었습니다. 저는 어린시절부터 앓던 지병이 있어, 군 면제판정을 받았었습니다. 그래서 동갑내기들이 군생활하는 동안, 저는 수험기간을 보냈습니다. 노량진에 있을 당시, 국민의 4대 의무인 국방의 의무도 수행하지 않으면서, 공직시험을 준비한다고 욕을 많이 먹었습니다. 심지어 군대를 안가는 여자들도 저를 욕했습니다. 남들 다 가는 군대, 내가 안가는 이유 주저리주저리 떠들면서 변명하기 싫어, 무시로 일관했습니다. 되받아치면서 드잡이질 할까도 생각을 했지만, 공직시험을 준비하는게 제 발목을 잡았고 열심히 공부해서 보란듯이 합격하는게 이기는 길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한편으론, 합격하고 30이 되기전 현역으로 군입대를 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했지만, 입밖으로 내지는 않았습니다. 욕을 덜먹기 위해 면피용으로 얘기하고 싶지 않았습니다.10년 넘게 병원에 정기적으로 다니며, 약을 먹고있는 상태여서 갈수 있을지 못갈지도 불투명했으니까요.
다른 사무실로 인사이동발표가 난 후, 화를 주체 할 수가 없었다. 점심 때 밥을 안먹어서, 싸우지 말까 잠깐 고민했지만, 그딴 생각은 집어치우고 나를 왕따시켰던 주범 B가 내려올떄까지 밖에서 기다렸다. 내가 5개월간 B의 선후배, 가족, 친인척, 지역주민들, 공무원들이 매일매일 찾아와서 했던 협박, 괴롭힘을 생각하니 치가 떨려온다. B가 내려오길 기다렸고, 한판뜨자고 했다. 치고박고 싸웠다. 사람들은 옥상에서 싸우는 모습을 구경했다. 1명만이 달려와 뜯어말렸다. 나는 사무실로 다시 올라가 짐을 챙겨 다시 내려왔다. 1층 화장실에 갔고 마침 B가 먼저 소변을 보고 있었다. 무시하고, B를 지나가 소변을 봤다.B는 나를 보더니, 소변을 마치고, 자기 옷매무새를 차분히 점검하고 바로 내 눈두덩이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눈에는 피가 철철 흘렀고, 앞이 안보였던 난, B에게 뒤지게 맞았다. 피를 닦은 후, 다시 B에게 달려들려 했을 때, 직원들이 나타나 말렸다. 나는 병원으로 가 눈 위를 여러바늘 꼬메야 했다. 치고박고 와 한쪽눈에 멍이 든 신규를 반기는 곳은 아무데도 없을 거다. 처음에는, 또라이라고 배척받고 업무를 알려줄 사람도 없었다. 그나마 동기가 한명있어, 이것저것 많이 도와주었다. 상황은 여기가 훨씬 나았다. 전 사무실처럼 매일 사람들이 찾아와서 윽박지르거나, 그만두게 하라고 난리를 피우는 사람들이 없었다. 점심시간에 직원들과 밥을 먹으면 ,옆자리 테이블에서 쌍욕이 날아오지도 않았다. 새로 옮긴 사무실 직원들도 왕따시켰지만, 그 강도는 전사무실 직원들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힘들었지만, 그게 없다는 것만으로도 할만하다고 생각했다. 동기 한명이 있는데, 나에게 잘해주려 노력한다. 밥도 같이 먹고 사무실 분위기도 배우고 있다. 동기가 나한테 잘해주는걸 탐탁지 않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와 엮이지 말라고 한다. 전 사무실에서, B와 트러블이 있은 후, 직속계장만은 유일하게 내 편을 들어주었다. 나와 유일하게 밥을 같이 먹어주는 사람이었지만, 밥 먹을 때마다, 옆 테이블에 있던 지역주민들에게 여러소리를 들었다. 그 뒤로, 미안해진 나는 혼자 밥을 먹거나 굶거나 했다. 그리고 직속계장님은 얼마 안있어 인사이동으로 다른 사무실로 발령이 났다. 계장급도 내 편을 들어주다 욕을 먹고 '자기를 이용한다 어쩐다 하며' 질려 떨어져 나갔는데, 신규인 내 동기는 어떻게 될지 안봐도 뻔하다. 거기다 나와 엮이지 말라는 말도 마음에 걸린다. 내가 이런 취급을 받으면서 계속 일해야 하나 자존심이 상하고, 자존감이 밑바닥까지 떨어졌다. 단톡방에 곧 동기모임이라고 올라온다. 동기모임에 나가면 A를 볼텐데, A와는 마주치고 싶지 않다. 동기모임에 나가지 않으면 A때문에 나가지 않는다고 떠들어 댈게 뻔하다. 동기에게도 더이상 폐를 끼치지 않고, A도 도마위에 오르지 않으면서 원만하게 넘어갈 방법이 있을까? 동기와 트러블이 있는 척 했다. 동기와는 사이가 멀어졌다. 동기와 트러블이 있어 동기모임에 나가지 않는 모양새가 됐다. 내가 속한 곳은 총무계이다. 여기서 내가 맡은 일은 주민등록업무와 회계업무이다. 서무인 C, 주민등록창구를 봐주는 계약직 사원 D, 계장 P가 있다. 사무실에는 정규직 사원과 계약직 사원이 있고 이 문제에 대해 예민했다. 사회생활이 처음이었던 나는 이것에 대해 무지했었다. 회계 업무를 맡고, 계약직 급여를 관리하고 나서야, 사무실에는 보이지 않는 차별이 존재한다는걸 깨달았다. B가 왜 그랬는지 이해가 됐다. D는 몇년 된 계약직 사원이고 애가 있는 유부녀이다. 과장님에게 정규직 전환을 해달라고 졸라댄다. 오래 근무하면 정규직 전환이 될수있나보다 했다. 전 사무실에서도 무기계약직 인원들이 시험을 준비하면서도, 정규직 전환을 꿈꾸곤 했으니까.계장 P는 유명했다. 식당 장부에 보통 20~30만원씩 달곤했다. 시내로 나갈 때면, 한번에 결제하곤 했다. 회식비 명목으로. 미수금을 오래 못받은 식당은 전화가 오기도 했다. 계장 P가 이전 사무실에 있을때는 몇천만원을 갚았느니 실무자들끼리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한다. 겪어보니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다. 허위출장을 달아 출장비를 현금으로 뽑고, 업무추진비 및 여러 예산과목들 중 충당할 수 있는 부분을 회식비 명목으로 꾸며내 외상값을 메꾸곤 했다. 왜 알면서도 스탑을 안시키는지 모르겠다. 정말 업무적으로 술을 먹는게 맞는걸까. 업무시간에 치킨집에서 술먹고 달아두는 걸 봤다. 몇만원 안되는 금액이라 내 사비로 결제했다. 내가 사비로 결제한건 이번뿐이 아니다. 다 합치면 50만원 가량이다. 아버지뻘들과 노래방에 가서 35만원, 내 번호로 전화가 와 주소찍고 가보니 노래방 외상값 몇십만원이 달려있어 그 중 내 사비로 10만원, 45만원을 사비로 메꿨다. 자괴감이 들고 허탈하다. 과연 이일을 계속 하는게 맞는걸까. 다른지역, 다른공무원들도 다 이렇게 하나? 다 눈감고 사나? 같은계 직원 c는 서무였다. 군의원 아들로, 무기계약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이 된 사람들 중 한명이었다. D가 정규직으로의 전환을 꿈꾸는 원인 중 하나가 바로 C인거 같다. C는 이상하게도 직급이 낮은데 파워가 제일 센 실세였다. 업무시간에 게임을 해도 계장들은 물론이거니와 과장급도 건드리지 못하는 실세였다. 한번은 군부대 회관에서 다같이 점심을 먹는데, 이미 취해있던 다른계 계장이, D의 와이프 얘기를 꺼내자,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의 쌍욕을 D가 그 계장에게 퍼부었다. 군부대 회관이라 지켜보는 군인들이 많았고, '정말 개판이네' 소리를 들었었다. 3개월 정도 지났을떄, 업무가 할만했다. 처음에는 엄두도 안났던 회계업무가 익숙해졌다. 이 즈음 과장과 계장P가 인사이동으로 다른 부서로 발령이 났다. 그 이후, D도 다른 부서로 발령이 났다. 그동안 서무공백은 나와 새로온 계장이 메꿔야 했다. 새로 온 계장은 이제 막 계장으로 승진한 분이었고, 행정적인 업무는 처음이었다. 서무일은 내가 전부다 할 수 밖에 없었다. 해외에서도 2년간 일했었지만, 이때처럼 막막하진 않았다. 해외에서는, 언어적인 부족함, 엑셀능력의 부족함, 전문지식의 부족함으로 내 능력을 벗어난 일들이 닥치며 힘들었었다. 이때는, 내가 할 수는 있지만, 일이 너무너무너무 많아서, 도저히 다 처리할수가 없었다. 하필이면 내가 서무를 맡을때, 4년에 한번있는 선거와 5년에 한번있는 통계청 조사가 겹친 해였고, 지역 내 가장 큰 행사가 코앞이었다. 회계와 주민등록만해도 벅찼었는데, 감당이 되지 않았었다. 처음에는 초과근무를 풀로 달았다. 9AM~11PM. 어차피 나는 월~일 일해야 하니, 당직자들 근무를 다 내가서기 시작했다. 8AM~11PM. 전 사무실 일로 그만두라는건가 생각이 들정도로 너무 막막했다. 이 당시에, 속으로 운다는게 무슨말인지 깨달았다. 그렇게 아침 8시부터 밤 11시까지 주 7일 몇개월간 일했다.하루종일 앉아만 있다보니, 체력적으로 너무 후달려서, 밤 10시 30분에는 사무실 문을 전부 잠가두고 위층에 있는 주민전용 헬스장에서 30분정도 런닝을 하고 밤 11시에 퇴근했다. 어차피 밤 10시 이후에는 이용하는 주민들이 없었다.D는 퇴근할때 C와 같이 퇴근했었다. 사무실이 중심가에서 45분~50분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C가 인사이동을 한 후, D는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했고 막차 버스시간에 맞춰 1시간 일찍 퇴근하고 싶어했다. 알겠다고 하고, 창구마감은 내가 하기 시작했다. 이 즈음, 정규직 전환이 불가능하다고 여겼는지, D는 짬짬이 공부를 하고 싶어했다. 점심시간 때, 2시간 정도 자리를 비울수 있게 배려해주었다. 나도 시험준비했을때 막막함과 절박함을 경험했었으니까. 실업급여 받으며 공부하란 주변의 권유가 있었지만, 아이가 있어 공부가 힘들다고 한다. 서무의 바쁜 일들이 끝나가고, 농림어업조사로 넘어갈 즈음, 신규 2명이 들어왔고, 서무자리에도 다른계 직원 1명이 넘어왔다. 인구조사 때 조사원 E를 농림어업조사장으로 하고, 수월하게 업무를 이어갔다. 대학때 친구가 명문대에 합격했다는 얘기를 듣고 연락을 했다.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기도 했고,합격비결이 궁금했었다. 그 친구와 만나서, 카페에서 근황에 대해 얘기하고, 헤어지기 아쉬워 양꼬치 집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오르막길을 올라가고 있었고, 거기서 나를 왕따시켰던 주범 B를 마주쳤다. 친구로 보이는 3명과 같이 있었고, 나를 보자마자 시비를 걸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폐를 끼치기 싫어, 그냥 무시하려 했고, 친구로 보이는 사람들도 B를 말려 유야무야 지나갔다. 나는 그 친구에게 내 고민을 얘기했다. 나는 의대진학을 하고 싶었고, 그 친구에게 공부방법에 대해 조언을 구했다. 그 친구는 일을 계속 하면서 전과목 2등급으로 맞춘 후 올인을 해보라고 한다. 그 친구 말대로 하려하지만, 업무는 너무 과중했고, 집에 도착하면 책상에 앉기보단 침대에 누워 곧장 잠들기 일쑤였다. 그만두고 새로운 길을 찾는게 낫겠다 싶었다.
9년전 직장동료가 결혼하자고 합니다. 2편
다른 사무실로 인사이동발표가 난 후, 화를 주체 할 수가 없었다. 점심 때 밥을 안먹어서, 싸우지 말까 잠깐 고민했지만, 그딴 생각은 집어치우고 나를 왕따시켰던 주범 B가 내려올떄까지 밖에서 기다렸다. 내가 5개월간 B의 선후배, 가족, 친인척, 지역주민들, 공무원들이 매일매일 찾아와서 했던 협박, 괴롭힘을 생각하니 치가 떨려온다. B가 내려오길 기다렸고, 한판뜨자고 했다. 치고박고 싸웠다. 사람들은 옥상에서 싸우는 모습을 구경했다. 1명만이 달려와 뜯어말렸다. 나는 사무실로 다시 올라가 짐을 챙겨 다시 내려왔다. 1층 화장실에 갔고 마침 B가 먼저 소변을 보고 있었다. 무시하고, B를 지나가 소변을 봤다.B는 나를 보더니, 소변을 마치고, 자기 옷매무새를 차분히 점검하고 바로 내 눈두덩이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눈에는 피가 철철 흘렀고, 앞이 안보였던 난, B에게 뒤지게 맞았다. 피를 닦은 후, 다시 B에게 달려들려 했을 때, 직원들이 나타나 말렸다. 나는 병원으로 가 눈 위를 여러바늘 꼬메야 했다. 치고박고 와 한쪽눈에 멍이 든 신규를 반기는 곳은 아무데도 없을 거다. 처음에는, 또라이라고 배척받고 업무를 알려줄 사람도 없었다. 그나마 동기가 한명있어, 이것저것 많이 도와주었다. 상황은 여기가 훨씬 나았다. 전 사무실처럼 매일 사람들이 찾아와서 윽박지르거나, 그만두게 하라고 난리를 피우는 사람들이 없었다. 점심시간에 직원들과 밥을 먹으면 ,옆자리 테이블에서 쌍욕이 날아오지도 않았다. 새로 옮긴 사무실 직원들도 왕따시켰지만, 그 강도는 전사무실 직원들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힘들었지만, 그게 없다는 것만으로도 할만하다고 생각했다. 동기 한명이 있는데, 나에게 잘해주려 노력한다. 밥도 같이 먹고 사무실 분위기도 배우고 있다. 동기가 나한테 잘해주는걸 탐탁지 않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와 엮이지 말라고 한다. 전 사무실에서, B와 트러블이 있은 후, 직속계장만은 유일하게 내 편을 들어주었다. 나와 유일하게 밥을 같이 먹어주는 사람이었지만, 밥 먹을 때마다, 옆 테이블에 있던 지역주민들에게 여러소리를 들었다. 그 뒤로, 미안해진 나는 혼자 밥을 먹거나 굶거나 했다. 그리고 직속계장님은 얼마 안있어 인사이동으로 다른 사무실로 발령이 났다. 계장급도 내 편을 들어주다 욕을 먹고 '자기를 이용한다 어쩐다 하며' 질려 떨어져 나갔는데, 신규인 내 동기는 어떻게 될지 안봐도 뻔하다. 거기다 나와 엮이지 말라는 말도 마음에 걸린다. 내가 이런 취급을 받으면서 계속 일해야 하나 자존심이 상하고, 자존감이 밑바닥까지 떨어졌다. 단톡방에 곧 동기모임이라고 올라온다. 동기모임에 나가면 A를 볼텐데, A와는 마주치고 싶지 않다. 동기모임에 나가지 않으면 A때문에 나가지 않는다고 떠들어 댈게 뻔하다. 동기에게도 더이상 폐를 끼치지 않고, A도 도마위에 오르지 않으면서 원만하게 넘어갈 방법이 있을까? 동기와 트러블이 있는 척 했다. 동기와는 사이가 멀어졌다. 동기와 트러블이 있어 동기모임에 나가지 않는 모양새가 됐다. 내가 속한 곳은 총무계이다. 여기서 내가 맡은 일은 주민등록업무와 회계업무이다. 서무인 C, 주민등록창구를 봐주는 계약직 사원 D, 계장 P가 있다. 사무실에는 정규직 사원과 계약직 사원이 있고 이 문제에 대해 예민했다. 사회생활이 처음이었던 나는 이것에 대해 무지했었다. 회계 업무를 맡고, 계약직 급여를 관리하고 나서야, 사무실에는 보이지 않는 차별이 존재한다는걸 깨달았다. B가 왜 그랬는지 이해가 됐다. D는 몇년 된 계약직 사원이고 애가 있는 유부녀이다. 과장님에게 정규직 전환을 해달라고 졸라댄다. 오래 근무하면 정규직 전환이 될수있나보다 했다. 전 사무실에서도 무기계약직 인원들이 시험을 준비하면서도, 정규직 전환을 꿈꾸곤 했으니까.계장 P는 유명했다. 식당 장부에 보통 20~30만원씩 달곤했다. 시내로 나갈 때면, 한번에 결제하곤 했다. 회식비 명목으로. 미수금을 오래 못받은 식당은 전화가 오기도 했다. 계장 P가 이전 사무실에 있을때는 몇천만원을 갚았느니 실무자들끼리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한다. 겪어보니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다. 허위출장을 달아 출장비를 현금으로 뽑고, 업무추진비 및 여러 예산과목들 중 충당할 수 있는 부분을 회식비 명목으로 꾸며내 외상값을 메꾸곤 했다. 왜 알면서도 스탑을 안시키는지 모르겠다. 정말 업무적으로 술을 먹는게 맞는걸까. 업무시간에 치킨집에서 술먹고 달아두는 걸 봤다. 몇만원 안되는 금액이라 내 사비로 결제했다. 내가 사비로 결제한건 이번뿐이 아니다. 다 합치면 50만원 가량이다. 아버지뻘들과 노래방에 가서 35만원, 내 번호로 전화가 와 주소찍고 가보니 노래방 외상값 몇십만원이 달려있어 그 중 내 사비로 10만원, 45만원을 사비로 메꿨다. 자괴감이 들고 허탈하다. 과연 이일을 계속 하는게 맞는걸까. 다른지역, 다른공무원들도 다 이렇게 하나? 다 눈감고 사나? 같은계 직원 c는 서무였다. 군의원 아들로, 무기계약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이 된 사람들 중 한명이었다. D가 정규직으로의 전환을 꿈꾸는 원인 중 하나가 바로 C인거 같다. C는 이상하게도 직급이 낮은데 파워가 제일 센 실세였다. 업무시간에 게임을 해도 계장들은 물론이거니와 과장급도 건드리지 못하는 실세였다. 한번은 군부대 회관에서 다같이 점심을 먹는데, 이미 취해있던 다른계 계장이, D의 와이프 얘기를 꺼내자,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의 쌍욕을 D가 그 계장에게 퍼부었다. 군부대 회관이라 지켜보는 군인들이 많았고, '정말 개판이네' 소리를 들었었다. 3개월 정도 지났을떄, 업무가 할만했다. 처음에는 엄두도 안났던 회계업무가 익숙해졌다. 이 즈음 과장과 계장P가 인사이동으로 다른 부서로 발령이 났다. 그 이후, D도 다른 부서로 발령이 났다. 그동안 서무공백은 나와 새로온 계장이 메꿔야 했다. 새로 온 계장은 이제 막 계장으로 승진한 분이었고, 행정적인 업무는 처음이었다. 서무일은 내가 전부다 할 수 밖에 없었다. 해외에서도 2년간 일했었지만, 이때처럼 막막하진 않았다. 해외에서는, 언어적인 부족함, 엑셀능력의 부족함, 전문지식의 부족함으로 내 능력을 벗어난 일들이 닥치며 힘들었었다. 이때는, 내가 할 수는 있지만, 일이 너무너무너무 많아서, 도저히 다 처리할수가 없었다. 하필이면 내가 서무를 맡을때, 4년에 한번있는 선거와 5년에 한번있는 통계청 조사가 겹친 해였고, 지역 내 가장 큰 행사가 코앞이었다. 회계와 주민등록만해도 벅찼었는데, 감당이 되지 않았었다. 처음에는 초과근무를 풀로 달았다. 9AM~11PM. 어차피 나는 월~일 일해야 하니, 당직자들 근무를 다 내가서기 시작했다. 8AM~11PM. 전 사무실 일로 그만두라는건가 생각이 들정도로 너무 막막했다. 이 당시에, 속으로 운다는게 무슨말인지 깨달았다. 그렇게 아침 8시부터 밤 11시까지 주 7일 몇개월간 일했다.하루종일 앉아만 있다보니, 체력적으로 너무 후달려서, 밤 10시 30분에는 사무실 문을 전부 잠가두고 위층에 있는 주민전용 헬스장에서 30분정도 런닝을 하고 밤 11시에 퇴근했다. 어차피 밤 10시 이후에는 이용하는 주민들이 없었다.D는 퇴근할때 C와 같이 퇴근했었다. 사무실이 중심가에서 45분~50분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C가 인사이동을 한 후, D는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했고 막차 버스시간에 맞춰 1시간 일찍 퇴근하고 싶어했다. 알겠다고 하고, 창구마감은 내가 하기 시작했다. 이 즈음, 정규직 전환이 불가능하다고 여겼는지, D는 짬짬이 공부를 하고 싶어했다. 점심시간 때, 2시간 정도 자리를 비울수 있게 배려해주었다. 나도 시험준비했을때 막막함과 절박함을 경험했었으니까. 실업급여 받으며 공부하란 주변의 권유가 있었지만, 아이가 있어 공부가 힘들다고 한다. 서무의 바쁜 일들이 끝나가고, 농림어업조사로 넘어갈 즈음, 신규 2명이 들어왔고, 서무자리에도 다른계 직원 1명이 넘어왔다. 인구조사 때 조사원 E를 농림어업조사장으로 하고, 수월하게 업무를 이어갔다. 대학때 친구가 명문대에 합격했다는 얘기를 듣고 연락을 했다.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기도 했고,합격비결이 궁금했었다. 그 친구와 만나서, 카페에서 근황에 대해 얘기하고, 헤어지기 아쉬워 양꼬치 집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오르막길을 올라가고 있었고, 거기서 나를 왕따시켰던 주범 B를 마주쳤다. 친구로 보이는 3명과 같이 있었고, 나를 보자마자 시비를 걸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폐를 끼치기 싫어, 그냥 무시하려 했고, 친구로 보이는 사람들도 B를 말려 유야무야 지나갔다. 나는 그 친구에게 내 고민을 얘기했다. 나는 의대진학을 하고 싶었고, 그 친구에게 공부방법에 대해 조언을 구했다. 그 친구는 일을 계속 하면서 전과목 2등급으로 맞춘 후 올인을 해보라고 한다. 그 친구 말대로 하려하지만, 업무는 너무 과중했고, 집에 도착하면 책상에 앉기보단 침대에 누워 곧장 잠들기 일쑤였다. 그만두고 새로운 길을 찾는게 낫겠다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