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절강해1(막10 32 34 유튜브 교회 #활공교회, 설교원본-BAND: 활공교회)
https://youtu.be/ZwbH_T1DQAE?si=0fNN6Y8MFFhvc43F
말씀:
32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예수께서 그들 앞에 서서 가시는데 그들이 놀라고 따르는 자들은 두려워하더라 이에 다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자기가 당할 일을 말씀하여 이르시되
33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겠고
34 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니라
(막10:3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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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255 너희 죄 흉악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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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맥읽기: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
1. 고난의 길
(출3 17
내가 말하였거니와 내가 너희를 애굽의 고난 중에서 인도하여 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땅으로 올라가게 하리라 하셨다 하면,
사48 10
보라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 은처럼 하지 아니하고 너를 고난의 풀무 불에서 택하였노라,
행26 23
곧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전하시리라 함이니이다 하니라)
/
-주품이 주석:
가나안과 예루살렘은 천국과 주님의 몸되신 성전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한번에 그 천국과 성전을 쉽게 향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그것은 우리 인간중심적인 생각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길에 시험과 연단의 길을 두셨습니다. 참된 성도로서 구별되며 참된 성도로서 자격을 얻기 위함인 것입니다. 어느 누가 자신의 집을 초대하거나 신부로서 신랑의 집을 가는데 아무나 결혼하여 초대 받아 오겠습니까? 철저한 검증과 시험과 연단 속에 입성을 할 수 있는 겁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집이겠습니까
/
자기가 하나님인줄 아는 인간들은 갑자기 하나님이 자기에게 나타나 바로 천국 보내 줘야지 안 보내주니 나는 하나님 안믿고 자기를 믿는 다는 것이 불신자들의 편견입니다. 세상에 힘든 일이 일어나거가 성도에게 일어나면 하나님 안 계신다 합니다. 이는 하나님 보시기에 자격시험이지만 자기를 하나님으로 아는 인간들은 하나님이 없다 단정을 짓습니다. 제가 최근 시험을 당한 일을 보아도 이를 비아냥 대며 하나님 없다 하는자가 분명 있을 것입니다. 시험은 하나님 보시기에 천국 입성을 위한 누구에게나 있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을 부인하며 단정 짓는 자는 비아냥 대는 가운데 저급한 존재로 낙인 찍히어 시험에 통과도 못하고 영벌을 취할 날만이 있을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 중심적인 시각을 하루 속히 눈을 떠야 합니다. 아멘!
/
2.십자가의 길
(요19 6
대제사장들과 아랫사람들이 예수를 보고 소리 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하는지라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가 친히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노라,
갈3 1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엡2 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
- 주품이 주:
고난의 길과 다른 십자가의 길이란 최고의 수치를 일컫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구속의 길이 잠간 운동하기로 끝나지 않고 십자가의 최고의 수치와 죽음까지 이르신 것은 무엇 때문인가요 쉽게 고난을 당하시고 백성의 죄를 용서하면 참 쉬워 보이고 좋지 않나요 하지만 우리는 예수님의 아버지 성부 하나님께서는 영벌지옥의 공의의 불의 심판의 하나님이신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두려운 우주보다 크신 하나님은 죄를 절대 간과하지 않으시고 영불지옥으로 심판하시는 천문학적인 범주를 넘는 너무나도 무서운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 공포의 공의대로 하나님은 대신 벌 받으심을 최악의 고통 가운데 두신 것입니다. 다음 우리는 이 대속의 믿음을 장난으로 받게 하시나요 아닙니다. 그 믿음을 지키기 위해선 목숨을 포기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 남을 향한 우리의 전도도 장난으로 전도하나요 아닙니다. 이 엄청난 은혜를 나누기 위해서는 아내, 가족, 친척, 이웃을 향한 목숨을 다한 심각한 사랑이 있어야만 전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좁은 길을 걷다가 우리는 실족하지만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다시 일어나 그 십자가 최악의 수치의 목숨을 다한 길을 걸어야만 합니다. 아멘!
/
3.부활의 길
(막12 23
일곱 사람이 다 그를 아내로 취하였으니 부활 때 곧 그들이 살아날 때에 그 중의 누구의 아내가 되리이까,
고전15 42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벧전3 2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실을 봄이라)
/
-주품이 주:
아내와 결혼하고 이땅에 여러 다사다난한 인생의 길을 성도는 걷습니다. 하지만 그 고난의 길, 최악의 수치의 십자가의 길을 걸을 때 그 고생은 썩어서 믿음의 씨앗의 거름이 되는 것입니다. 나의 교만과 거짓과 불신을 다 태워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실로 나아갈 때 그는 생명의 부활의 열매로서 하나님의 성전 앞에 설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새하늘과 새땅의 성부의 나라 이전 예수님의 이 땅의 천년왕국의 정치 나라가 있다고 봅니다.
철저히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사회적 정치적 사법적 형벌로 죽임을 당하셨으면 이 땅에서 사회적 정치적, 사법적으로 이 땅을 다스리는 정치적 메시야로 다시 오실 것을 믿습니다. 가룟유다가 대속의 메시야를 정치적 메시야로 잘못 알아 망한거처럼 이제 예수님은 정치적 메시야로서 올것이라 예상하며 타이밍을 잘못 안다면 망하고 실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날은 많은 기독교 국가들이 착각하여 자신의 군사적 힘으로 이르려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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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터치의 죄악만 번성하게 할 것입니다. 우리 기독인도 어리둥절하여 예수님의 나라를 이룰 수 없습니다. 7년 대환란 전 그 기독인의 힘으로 이룰 것 같은 지구는 부분적으로 파괴 될 것입니다. 성도는 자신의 힘으로 이루지 못한 어설픈 나라를 두고 휴거 될 것입니다. 그 날은 오직 예수님께서 재림하셔 예루살렘 감람산에 다시 임하시고 정치적 메시야로 이 땅을 천년간만 통치 하시고 새하늘의 아버지 나라가 그 이후 오게 될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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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보기:
예루살렘:
@Ierosovluma(2414, 히에로솔뤼마)
예루살렘 Jerusalem (지)
히에로솔뤼마는 예루살렘을 뜻하며, 신약성경에서 이 명칭은 다른 곳에서 히에루살렘(@Ierousalhvm, 2419: 마 23:37)으로 표기되어 있다. 분명히 후자는 히브리어 및 갈대아어 표기와 대단히 유사하다. 히브리어로는 예루살렘과 예루살라임, 갈대아어는 예루살렘이다. 이것은 예루쉬(소유)와 살렘(평화)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따라서 *'평화의 소유, 평화의 거주'를 의미한다고 많은 이들은 생각한다.
다윗 시대 이후 팔레스타인의 수도가 되었으며, 베냐민 지파와 유다 지파의 경계에 위치하며, 또 고지대에 있으므로 '올라가다'라는 단어로 타 지역으로부터 예루살렘으로의 접근을 묘사하기에 적절하다.
이 이름은 신약성경에서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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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도시 그 자체나, 마 2:1; 막 3:8; 요 1:19, 기타; 또는 그 주민들을 의미하는 경우, 마 2:3; 마 3:5; 마 23:37; 눅 13:34.
(b) "지금 있는 예루살렘", 현재의 종교적 제도 즉 모세의 제도를 가진 예루살렘, 그곳의 일차적인 외적 위치로 인해 이와 같이 지칭되었다.
위와 문구와 대조되는 이름으로 "위에 있는 예루살렘", 즉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 이 예루살렘의 모형에 따라 지상의 예루살렘이 건설된다고 생각하였다(갈 4:25). 즉 은유적으로, *'그리스도에 의해 건설된 하나님의 성', 지금은 '교회'의 형태를 입고 있으나 그리스도의 재림 후에는 완성된 메시야 왕국의 형태를 띠게 된다(갈 4:26).
*"하늘의 예루살렘", 즉 하나님, 그리스도, 천사들, 지극한 행복 중에 있는 인간들(그리스도인들은 물론 구약의 성도들까지)의 하늘에 있는 거처, 그리고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아직 지상에 사는 동안에도 하늘의 예루살렘의 시민으로 간주된다(히 12:22).
"새 예루살렘", 계시자 요한의 환상 중에 나오며, '새 예루살렘', 세계의 갱신 이후에 하늘로부터 내려올 찬란히 빛나는 가시적 도시로서 은총 입은 자들의 미래 거처이다: 계 3:12; 계 21:2; 계 21:10.
(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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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품이 주:
예루살렘은 평화의 거주를 의미하며 이스라엘의 지금의 성이나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의 공동체나 교회, 하늘의 예루살렘등을 의미 할 것입니다. 이는 대속의 피로 사신 예수님의 은혜로 예수님의 은혜가 임한 거주지, 성도, 예수님의 은혜가 임한 예루살렘, 장차 통치하게 될 지상 예루살렘, 하늘의 예루살렘, 하늘에서 내려 오는 예루살렘은 예수님의 피로 사시었기에 평화가 임하는 것입니다. 그 은혜의 범주는 한이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만이 진정한 평화가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임하시는 가족, 배우자, 지인, 직장이 되어 그곳을 가장 평화로운 곳으로 인도할 권능이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 날마다 말씀과 기도로서 하나님의 평화의 나라를 이루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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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dwvdeka(1427, 도데카)
열 둘, 십 이 twelve.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기수 도데카(Homer 이래)는 '열 둘'을 의미한다. 열 둘이라는 수는 그 상징적 의미를 열 두 달에서 얻었다. 따라서 이 단어는 본래 천문학에 사용되는 수였다.
2. 구약 및 70인역본의 용법
도데카는 약 120회 나타난다. 이 숫자는 한 해를 12달로 구분하기 때문에, 그리고 이스라엘에서는 거룩한 연합인 열 두 지파가 존재하기 때문에 매우 중시되었다. 이 열 두 지파는 몇 몇 지파들이 사라지고 다른 지파들이 하나의 정치적인 사회로 융합되고 난 후에도 신학적인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
(f)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열 둘의 용법은 하나님의 백성을 구성하는 12지파에 관한 구약성경적 개념과 결합되었다.
계 12:1의 열 두 별은 그 여인을 시온의 딸에 대한 상징으로 특징짓는다. 이 열 둘이란 수는 별의 종교적 의미를 반영한다. 여인은 시온의 딸의 상징이며, 면류관의열 두 별은 열 두 지파를 의미한다. *곧 이들은 하나님의 구약의 백성으로 그들에게서 메시야가 나오시며, 또한 예수님의 이름을 고백하는 자들은 그들에게 속한 자들인 것이다(계 12:17).
[개역개정][계 12:17]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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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유사하게 유대인과 이방인들로 이루어진 하나님의 신약 백성들은 계 7:4이하에서 이스라엘의 각 지파들 중에서 인 맞은 사람으로 묘사된다. 인 맞은 사람은 일만 이천명(12×12,000=144,000)이다.
"열 둘"이라는 숫자는 *하나님의 근본적인 구원 의지의 계속성을 강조하며 "천"은 *공동체의 크기를 강조하며, 이 숫자 전체는 하나님께서 신적인 구원 방법을 추구하고 성취할 때 *질서와 완성의 요소를 나타낸다. 이들은 단순히 유대인 신자들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 기자는 관습적인 목록을 변경시켜 **단 지파를 빠뜨리기 때문이다. 관심의 초점은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과 백성들에게 성실하게 영적인 이스라엘인 공동체 안에서 자기목적을 이루실 때의 구원 역사의 목적론에 있다.
십 사만 사천은 인맞은 자들의 숫적 제한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 마지막으로 *완전히 찼음을 상징하는 것이다(참조: 계 7:9).
[개역개정][계 7:9]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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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품이 주:
열두별의 면류관을 쓴 여인의 존재는 이스라엘의 열두지파와 예수님을 시인하는 교회와의 완전한 연관성을 의미합니다. 어느 목사님이 이스라엘의 축복하는 찬양을 듣고 우리 성도와는 상관이 없다고 부르지 말라고 비판하시는데 성경을 좀 더 이해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이미 2000년 전 이 이스라엘이 신약의 우리 성도들과 아주 연관이 있음을 진리로 증거를 하였는데 아직도 연관이 없다고 한다면 심각한 무지에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크리스찬과 예루살렘은 교회와 연관이 있는 것입니다.
/
다음, 144000을 사이비 이만희가 그 개념을 버려 놓았는데 여기서 단 지파가 빠진 것은 구약 이스라엘의 12지파만을 의미 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뭔가 초점을 다르게 보라는 하나님의 싸인인 것입니다. 12은 하나님의 완벽하고 지속적인 구원을 의미하고 1000 천의 단위는 단지 허다한 숫자인 것입니다. 즉, 허다한 숫자의 백성들을 완전히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열정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즉, 12지파의 이스라엘, 12완전한 이방인의 숫자, 1000 허다한 무리 = 12*12*1000= 144000 가 되는 것입니다. 셀 수 없는 허다한 무리의 이스라엘과 이방인의 연합체가 해당이 되겠지요.
(a) 이 단어는 헤로도투스(Herodotus)가 고대 애굽의 우두머리 제사장을 가리키는 말로 처음 사용했으며, *서열상 왕의 바로 밑의 지위를 갖고 있었다(Hdt. 2, 142). 그의 조상이 그의 일생동안 신전들에 세워져 있었다. 페니키아 문서에는 두로와 관련되어 있는 우두머리 제사장에 대해 언급했다(Jos. Ap., 1, 157).
- 주품이 주:
대제사장을 원어보기로 잡은 것은 다 아시는 대제사장만을 알게 하려 한 것이 아닙니다. 대제사장이 권력서열의 2인자인것과 통치자의 의미도 있는 것은 지금의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 즉, 권력의 핵심 모두가 예수님을 부인 하였음을 알려 드리려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들로부터 공격을 받고 이들을 주님의 피로 사시었으므로 이 모두는 주님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즉, 현존의 권력이 예수님 안에 있으면 사는 것이요 없으면 망하고 결국 장차 이 모든 권력은 주님의 것으로 지상 재림 시 다 주님께서 다스리시는 나라가 됩니다.
명사 그람마튜스(Thu., Xenoph. 이래)는 그람마(gravmma, 1121: 글자)에서 유래했으며,
(a) 아테네와 그 외의 나라에 있던 비서와 기록 계원에서부터 성직자에 이르기까지의 공직자에게 붙여진 명칭이다. 그람마튜스 삽헤스(문자적으로 '정확한 기록자')는 학자를 지칭할 때 사용되었으나(아리스토텔레스) 경멸의 뜻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올레드로스 그람마튜스:귀찮은 서기관 Dem),
(b) 은유적으로 '기억, 기록자'(플라톤)에 대해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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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품이 주:
기록자를 귀찮은 서기관으로 묘사가 된 것은 그들이 사회적 영향력을 끼치는 기록 기자(오늘날에는 예를 들면 kbs 기자)였다는 것입니다. 또한 성서 학자, 지금의 대학 교수, 성직자 로서 사회적인 권력 영향력을 의미 합니다. 제가 여기에 다시 이를 언급한 것은 이 사회적 권력에 해당하는 자가 예수님을 부인 하였고 예수님은 이를 위해 피를 흘리어 이들을 사하시고 주님의 것이 되었다는 것을 말씀 드리기 위한 것입니다. 이런 사회적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 예수님을 위한 것이라면 그는 살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망할 것입니다.
주님의 통치의 나라에서는 사법적, 입법적, 행정적, 사회적등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요 주님을 위한 것이요 주님에 의한 나라가 될 것입니다. 어제 오늘 지금부터 늘 오직 하나님의 나라에 협력하고 위한 것이 개인과 공동체와 나라가 오직 사는 비결입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망하는 사이비 김일성교 북한을 보면 그 예시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할렐루야!
명사 에드노스(Homer 이래)는 에도스(e[qo", 1485: 습관, 관습)에서 파생했으며, 따라서 여러 관습으로 인하여 함께 모인 `집단, 씨족'을 의미하며, `군중, 백성, 무리, 떼'를 의미하게 되었다. 이 단어는 순수한 그리이스 사람이 헬라 사람이 아닌 외국인들을 가리키는데 사용되었다(Aristotle, pol.)
이 용법은 에드노스에 하위라는 어감을 주게 되었으며, 이 단어는 바르바로스(bavrbaro", 915: 비그리이스인, *야만인)에 가까운 의미를 지닌다. 후에 에드노스는 피지배계급의 백성을 묘사하는데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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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품이 주:
이방인이 야만인이라는 사실이 예수님의 처참함을 잘 나타내며 우리 또한 그런 야만인이라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야만의 죄성을 지금도 여러분들과 제가 가지고 있다는 것은 부인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이런 야만인인 저를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 가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보혈로 신사적인 인간으로 늘 살며 야만인 같은 이웃을 경멸하지 말고 그 주님의 은혜로 늘 개화 시키도록 기도해야하고 수도원같이 혼자만 거룩히 사는 것이 아니고 그들에게 다가가서 함께하고 도와야 하는 것입니다. 아멘!
동사 마스티고오(Hdt. 이래로)는 마스틱스(mavstix, 3148: 채찍, 매질)에서 유래했으며, 문자적으로 '채찍질하다, 채찍으로 때리다'를 의미하며, 그 다음 비유적으로
(a) *'말로 채찍질하다' ,
(b) '고문하다, 괴롭히다'를 의미한다.
이 단어는 더욱 가혹한 형태의 처벌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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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품이 주:
말로 언어로 남을 비난한는 것은 그를 채찍질하는 것입니다.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봅니다. 얼마나 예수님께서 조롱 당하는 것을 압니다. 우리도 남을 그와같이 말로라도 채찍질하는 것은 우리 주님을 다시 채찍질하는 거와 무엇이 다른가요 우리의 언어 중에 상대를 비난하고 있음을 주님을 내가 채찍질하고 있음을 상상하고 반성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이들을 위해 돌아 가셨고 용서 하시었으며 이들을 주님의 피로 사시었습니다.
주님의 것이 된 우리는 우릴 비난하는 남을 용서하고 복음으로 피로 사서 그들을 하나님께 드리어야 겠습니다. 최근 외국인의 눈 sns 사기에 놀아나는 일이 제게 있었습니다. 금전적 피해는 없었으나 얼마나 심적 피해가 있었는지 모릅니다. 그를 용서하고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인내 가운데 그를 복음으로 예수님 이름으로 피로 사서 그들을 구원하기를 원합니다. 그 이상한 분이 뭔가 예의가 있는 것은 제가 금전적 피해를 보지 않도록 자기도 모르게 나를 막았다는 것입니다.
많은 분들의 그 사기꾼을 위한 예수님 피의 기도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거룩한 화로가 타는 주님의 살아 있는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 향기가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아멘!
다음 주에 구절 강해 완편을 나누겠습니다. 오늘은 이만하겠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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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야만인으로 나의 죄 이웃의 죄가 참으로 흉악합니다. 어느 인간도 사할 능력이 없습니다. 다만, 아들 예수님을 인한 용서만이 가능할 뿐입니다. 그 피로 우리를 용서하옵시며 정결한 샘의 맘이 되어 평화의 제자들, 정결한 제자들이 되어 세상에 담대히 나가 그 샘을 전하고 나누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원수이었던 외국이 사기꾼도 용서 하옵시오며 더블어 같이 구원의 날 기뻐하며 천국의 나라를 동행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구절강해1(막10 32 34 유튜브 교회 #활공교회, 설교원본-BAND: 활공교회)
https://youtu.be/ZwbH_T1DQAE?si=0fNN6Y8MFFhvc43F
말씀:
32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예수께서 그들 앞에 서서 가시는데 그들이 놀라고 따르는 자들은 두려워하더라 이에 다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자기가 당할 일을 말씀하여 이르시되
33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겠고
34 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니라
(막10:3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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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255 너희 죄 흉악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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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맥읽기: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
1. 고난의 길
(출3 17
내가 말하였거니와 내가 너희를 애굽의 고난 중에서 인도하여 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땅으로 올라가게 하리라 하셨다 하면,
사48 10
보라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 은처럼 하지 아니하고 너를 고난의 풀무 불에서 택하였노라,
행26 23
곧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전하시리라 함이니이다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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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품이 주석:
가나안과 예루살렘은 천국과 주님의 몸되신 성전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한번에 그 천국과 성전을 쉽게 향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그것은 우리 인간중심적인 생각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길에 시험과 연단의 길을 두셨습니다. 참된 성도로서 구별되며 참된 성도로서 자격을 얻기 위함인 것입니다. 어느 누가 자신의 집을 초대하거나 신부로서 신랑의 집을 가는데 아무나 결혼하여 초대 받아 오겠습니까? 철저한 검증과 시험과 연단 속에 입성을 할 수 있는 겁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집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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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하나님인줄 아는 인간들은 갑자기 하나님이 자기에게 나타나 바로 천국 보내 줘야지 안 보내주니 나는 하나님 안믿고 자기를 믿는 다는 것이 불신자들의 편견입니다. 세상에 힘든 일이 일어나거가 성도에게 일어나면 하나님 안 계신다 합니다. 이는 하나님 보시기에 자격시험이지만 자기를 하나님으로 아는 인간들은 하나님이 없다 단정을 짓습니다. 제가 최근 시험을 당한 일을 보아도 이를 비아냥 대며 하나님 없다 하는자가 분명 있을 것입니다. 시험은 하나님 보시기에 천국 입성을 위한 누구에게나 있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을 부인하며 단정 짓는 자는 비아냥 대는 가운데 저급한 존재로 낙인 찍히어 시험에 통과도 못하고 영벌을 취할 날만이 있을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 중심적인 시각을 하루 속히 눈을 떠야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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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십자가의 길
(요19 6
대제사장들과 아랫사람들이 예수를 보고 소리 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하는지라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가 친히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노라,
갈3 1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엡2 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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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품이 주:
고난의 길과 다른 십자가의 길이란 최고의 수치를 일컫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구속의 길이 잠간 운동하기로 끝나지 않고 십자가의 최고의 수치와 죽음까지 이르신 것은 무엇 때문인가요 쉽게 고난을 당하시고 백성의 죄를 용서하면 참 쉬워 보이고 좋지 않나요 하지만 우리는 예수님의 아버지 성부 하나님께서는 영벌지옥의 공의의 불의 심판의 하나님이신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두려운 우주보다 크신 하나님은 죄를 절대 간과하지 않으시고 영불지옥으로 심판하시는 천문학적인 범주를 넘는 너무나도 무서운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 공포의 공의대로 하나님은 대신 벌 받으심을 최악의 고통 가운데 두신 것입니다. 다음 우리는 이 대속의 믿음을 장난으로 받게 하시나요 아닙니다. 그 믿음을 지키기 위해선 목숨을 포기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 남을 향한 우리의 전도도 장난으로 전도하나요 아닙니다. 이 엄청난 은혜를 나누기 위해서는 아내, 가족, 친척, 이웃을 향한 목숨을 다한 심각한 사랑이 있어야만 전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좁은 길을 걷다가 우리는 실족하지만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다시 일어나 그 십자가 최악의 수치의 목숨을 다한 길을 걸어야만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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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활의 길
(막12 23
일곱 사람이 다 그를 아내로 취하였으니 부활 때 곧 그들이 살아날 때에 그 중의 누구의 아내가 되리이까,
고전15 42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벧전3 2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실을 봄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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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품이 주:
아내와 결혼하고 이땅에 여러 다사다난한 인생의 길을 성도는 걷습니다. 하지만 그 고난의 길, 최악의 수치의 십자가의 길을 걸을 때 그 고생은 썩어서 믿음의 씨앗의 거름이 되는 것입니다. 나의 교만과 거짓과 불신을 다 태워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실로 나아갈 때 그는 생명의 부활의 열매로서 하나님의 성전 앞에 설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새하늘과 새땅의 성부의 나라 이전 예수님의 이 땅의 천년왕국의 정치 나라가 있다고 봅니다.
철저히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사회적 정치적 사법적 형벌로 죽임을 당하셨으면 이 땅에서 사회적 정치적, 사법적으로 이 땅을 다스리는 정치적 메시야로 다시 오실 것을 믿습니다. 가룟유다가 대속의 메시야를 정치적 메시야로 잘못 알아 망한거처럼 이제 예수님은 정치적 메시야로서 올것이라 예상하며 타이밍을 잘못 안다면 망하고 실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날은 많은 기독교 국가들이 착각하여 자신의 군사적 힘으로 이르려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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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터치의 죄악만 번성하게 할 것입니다. 우리 기독인도 어리둥절하여 예수님의 나라를 이룰 수 없습니다. 7년 대환란 전 그 기독인의 힘으로 이룰 것 같은 지구는 부분적으로 파괴 될 것입니다. 성도는 자신의 힘으로 이루지 못한 어설픈 나라를 두고 휴거 될 것입니다. 그 날은 오직 예수님께서 재림하셔 예루살렘 감람산에 다시 임하시고 정치적 메시야로 이 땅을 천년간만 통치 하시고 새하늘의 아버지 나라가 그 이후 오게 될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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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보기:
예루살렘:
@Ierosovluma(2414, 히에로솔뤼마)
예루살렘 Jerusalem (지)
히에로솔뤼마는 예루살렘을 뜻하며, 신약성경에서 이 명칭은 다른 곳에서 히에루살렘(@Ierousalhvm, 2419: 마 23:37)으로 표기되어 있다. 분명히 후자는 히브리어 및 갈대아어 표기와 대단히 유사하다. 히브리어로는 예루살렘과 예루살라임, 갈대아어는 예루살렘이다. 이것은 예루쉬(소유)와 살렘(평화)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따라서 *'평화의 소유, 평화의 거주'를 의미한다고 많은 이들은 생각한다.
다윗 시대 이후 팔레스타인의 수도가 되었으며, 베냐민 지파와 유다 지파의 경계에 위치하며, 또 고지대에 있으므로 '올라가다'라는 단어로 타 지역으로부터 예루살렘으로의 접근을 묘사하기에 적절하다.
이 이름은 신약성경에서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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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도시 그 자체나, 마 2:1; 막 3:8; 요 1:19, 기타; 또는 그 주민들을 의미하는 경우, 마 2:3; 마 3:5; 마 23:37; 눅 13:34.
(b) "지금 있는 예루살렘", 현재의 종교적 제도 즉 모세의 제도를 가진 예루살렘, 그곳의 일차적인 외적 위치로 인해 이와 같이 지칭되었다.
위와 문구와 대조되는 이름으로 "위에 있는 예루살렘", 즉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 이 예루살렘의 모형에 따라 지상의 예루살렘이 건설된다고 생각하였다(갈 4:25). 즉 은유적으로, *'그리스도에 의해 건설된 하나님의 성', 지금은 '교회'의 형태를 입고 있으나 그리스도의 재림 후에는 완성된 메시야 왕국의 형태를 띠게 된다(갈 4:26).
*"하늘의 예루살렘", 즉 하나님, 그리스도, 천사들, 지극한 행복 중에 있는 인간들(그리스도인들은 물론 구약의 성도들까지)의 하늘에 있는 거처, 그리고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아직 지상에 사는 동안에도 하늘의 예루살렘의 시민으로 간주된다(히 12:22).
"새 예루살렘", 계시자 요한의 환상 중에 나오며, '새 예루살렘', 세계의 갱신 이후에 하늘로부터 내려올 찬란히 빛나는 가시적 도시로서 은총 입은 자들의 미래 거처이다: 계 3:12; 계 21:2; 계 21:10.
(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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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품이 주:
예루살렘은 평화의 거주를 의미하며 이스라엘의 지금의 성이나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의 공동체나 교회, 하늘의 예루살렘등을 의미 할 것입니다. 이는 대속의 피로 사신 예수님의 은혜로 예수님의 은혜가 임한 거주지, 성도, 예수님의 은혜가 임한 예루살렘, 장차 통치하게 될 지상 예루살렘, 하늘의 예루살렘, 하늘에서 내려 오는 예루살렘은 예수님의 피로 사시었기에 평화가 임하는 것입니다. 그 은혜의 범주는 한이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만이 진정한 평화가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임하시는 가족, 배우자, 지인, 직장이 되어 그곳을 가장 평화로운 곳으로 인도할 권능이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 날마다 말씀과 기도로서 하나님의 평화의 나라를 이루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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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dwvdeka(1427, 도데카)
열 둘, 십 이 twelve.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기수 도데카(Homer 이래)는 '열 둘'을 의미한다. 열 둘이라는 수는 그 상징적 의미를 열 두 달에서 얻었다. 따라서 이 단어는 본래 천문학에 사용되는 수였다.
2. 구약 및 70인역본의 용법
도데카는 약 120회 나타난다. 이 숫자는 한 해를 12달로 구분하기 때문에, 그리고 이스라엘에서는 거룩한 연합인 열 두 지파가 존재하기 때문에 매우 중시되었다. 이 열 두 지파는 몇 몇 지파들이 사라지고 다른 지파들이 하나의 정치적인 사회로 융합되고 난 후에도 신학적인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
(f)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열 둘의 용법은 하나님의 백성을 구성하는 12지파에 관한 구약성경적 개념과 결합되었다.
계 12:1의 열 두 별은 그 여인을 시온의 딸에 대한 상징으로 특징짓는다. 이 열 둘이란 수는 별의 종교적 의미를 반영한다. 여인은 시온의 딸의 상징이며, 면류관의열 두 별은 열 두 지파를 의미한다. *곧 이들은 하나님의 구약의 백성으로 그들에게서 메시야가 나오시며, 또한 예수님의 이름을 고백하는 자들은 그들에게 속한 자들인 것이다(계 12:17).
[개역개정][계 12:17]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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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유사하게 유대인과 이방인들로 이루어진 하나님의 신약 백성들은 계 7:4이하에서 이스라엘의 각 지파들 중에서 인 맞은 사람으로 묘사된다. 인 맞은 사람은 일만 이천명(12×12,000=144,000)이다.
"열 둘"이라는 숫자는 *하나님의 근본적인 구원 의지의 계속성을 강조하며 "천"은 *공동체의 크기를 강조하며, 이 숫자 전체는 하나님께서 신적인 구원 방법을 추구하고 성취할 때 *질서와 완성의 요소를 나타낸다. 이들은 단순히 유대인 신자들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 기자는 관습적인 목록을 변경시켜 **단 지파를 빠뜨리기 때문이다. 관심의 초점은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과 백성들에게 성실하게 영적인 이스라엘인 공동체 안에서 자기목적을 이루실 때의 구원 역사의 목적론에 있다.
십 사만 사천은 인맞은 자들의 숫적 제한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 마지막으로 *완전히 찼음을 상징하는 것이다(참조: 계 7:9).
[개역개정][계 7:9]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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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품이 주:
열두별의 면류관을 쓴 여인의 존재는 이스라엘의 열두지파와 예수님을 시인하는 교회와의 완전한 연관성을 의미합니다. 어느 목사님이 이스라엘의 축복하는 찬양을 듣고 우리 성도와는 상관이 없다고 부르지 말라고 비판하시는데 성경을 좀 더 이해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이미 2000년 전 이 이스라엘이 신약의 우리 성도들과 아주 연관이 있음을 진리로 증거를 하였는데 아직도 연관이 없다고 한다면 심각한 무지에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크리스찬과 예루살렘은 교회와 연관이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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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144000을 사이비 이만희가 그 개념을 버려 놓았는데 여기서 단 지파가 빠진 것은 구약 이스라엘의 12지파만을 의미 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뭔가 초점을 다르게 보라는 하나님의 싸인인 것입니다. 12은 하나님의 완벽하고 지속적인 구원을 의미하고 1000 천의 단위는 단지 허다한 숫자인 것입니다. 즉, 허다한 숫자의 백성들을 완전히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열정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즉, 12지파의 이스라엘, 12완전한 이방인의 숫자, 1000 허다한 무리 = 12*12*1000= 144000 가 되는 것입니다. 셀 수 없는 허다한 무리의 이스라엘과 이방인의 연합체가 해당이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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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제사장:
ajrciereuv"(749, 아르키에류스)
대제사장 high priest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아르키에류스는 아르케고스(ajrchgov", 747: 통치자, 지도자)와 히에류스(iJereuv", 2409: 제사장)에서 유래했으며, '대제사장'을 의미한다.
(a) 이 단어는 헤로도투스(Herodotus)가 고대 애굽의 우두머리 제사장을 가리키는 말로 처음 사용했으며, *서열상 왕의 바로 밑의 지위를 갖고 있었다(Hdt. 2, 142). 그의 조상이 그의 일생동안 신전들에 세워져 있었다. 페니키아 문서에는 두로와 관련되어 있는 우두머리 제사장에 대해 언급했다(Jos. Ap., 1, 157).
- 주품이 주:
대제사장을 원어보기로 잡은 것은 다 아시는 대제사장만을 알게 하려 한 것이 아닙니다. 대제사장이 권력서열의 2인자인것과 통치자의 의미도 있는 것은 지금의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 즉, 권력의 핵심 모두가 예수님을 부인 하였음을 알려 드리려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들로부터 공격을 받고 이들을 주님의 피로 사시었으므로 이 모두는 주님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즉, 현존의 권력이 예수님 안에 있으면 사는 것이요 없으면 망하고 결국 장차 이 모든 권력은 주님의 것으로 지상 재림 시 다 주님께서 다스리시는 나라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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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관:
grammateuv"(1122, 그람마튜스)
서기관, 성직자, 비서, 성서 학자, 모세 율법 교사.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명사 그람마튜스(Thu., Xenoph. 이래)는 그람마(gravmma, 1121: 글자)에서 유래했으며,
(a) 아테네와 그 외의 나라에 있던 비서와 기록 계원에서부터 성직자에 이르기까지의 공직자에게 붙여진 명칭이다. 그람마튜스 삽헤스(문자적으로 '정확한 기록자')는 학자를 지칭할 때 사용되었으나(아리스토텔레스) 경멸의 뜻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올레드로스 그람마튜스:귀찮은 서기관 Dem),
(b) 은유적으로 '기억, 기록자'(플라톤)에 대해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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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품이 주:
기록자를 귀찮은 서기관으로 묘사가 된 것은 그들이 사회적 영향력을 끼치는 기록 기자(오늘날에는 예를 들면 kbs 기자)였다는 것입니다. 또한 성서 학자, 지금의 대학 교수, 성직자 로서 사회적인 권력 영향력을 의미 합니다. 제가 여기에 다시 이를 언급한 것은 이 사회적 권력에 해당하는 자가 예수님을 부인 하였고 예수님은 이를 위해 피를 흘리어 이들을 사하시고 주님의 것이 되었다는 것을 말씀 드리기 위한 것입니다. 이런 사회적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 예수님을 위한 것이라면 그는 살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망할 것입니다.
주님의 통치의 나라에서는 사법적, 입법적, 행정적, 사회적등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요 주님을 위한 것이요 주님에 의한 나라가 될 것입니다. 어제 오늘 지금부터 늘 오직 하나님의 나라에 협력하고 위한 것이 개인과 공동체와 나라가 오직 사는 비결입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망하는 사이비 김일성교 북한을 보면 그 예시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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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e[qno"(1484, 에드노스)
국민, 민족 nation, 백성 people, *이교도 heathen, pagans, 이방인 Gentiles.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명사 에드노스(Homer 이래)는 에도스(e[qo", 1485: 습관, 관습)에서 파생했으며, 따라서 여러 관습으로 인하여 함께 모인 `집단, 씨족'을 의미하며, `군중, 백성, 무리, 떼'를 의미하게 되었다. 이 단어는 순수한 그리이스 사람이 헬라 사람이 아닌 외국인들을 가리키는데 사용되었다(Aristotle, pol.)
이 용법은 에드노스에 하위라는 어감을 주게 되었으며, 이 단어는 바르바로스(bavrbaro", 915: 비그리이스인, *야만인)에 가까운 의미를 지닌다. 후에 에드노스는 피지배계급의 백성을 묘사하는데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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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품이 주:
이방인이 야만인이라는 사실이 예수님의 처참함을 잘 나타내며 우리 또한 그런 야만인이라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야만의 죄성을 지금도 여러분들과 제가 가지고 있다는 것은 부인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이런 야만인인 저를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 가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보혈로 신사적인 인간으로 늘 살며 야만인 같은 이웃을 경멸하지 말고 그 주님의 은혜로 늘 개화 시키도록 기도해야하고 수도원같이 혼자만 거룩히 사는 것이 아니고 그들에게 다가가서 함께하고 도와야 하는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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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찍질하고:
mastigovw(3146, 마스티고오)
매질하다, 채찍질하다, 징계하다, 응징(징벌)하다.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동사 마스티고오(Hdt. 이래로)는 마스틱스(mavstix, 3148: 채찍, 매질)에서 유래했으며, 문자적으로 '채찍질하다, 채찍으로 때리다'를 의미하며, 그 다음 비유적으로
(a) *'말로 채찍질하다' ,
(b) '고문하다, 괴롭히다'를 의미한다.
이 단어는 더욱 가혹한 형태의 처벌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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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품이 주:
말로 언어로 남을 비난한는 것은 그를 채찍질하는 것입니다.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봅니다. 얼마나 예수님께서 조롱 당하는 것을 압니다. 우리도 남을 그와같이 말로라도 채찍질하는 것은 우리 주님을 다시 채찍질하는 거와 무엇이 다른가요 우리의 언어 중에 상대를 비난하고 있음을 주님을 내가 채찍질하고 있음을 상상하고 반성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이들을 위해 돌아 가셨고 용서 하시었으며 이들을 주님의 피로 사시었습니다.
주님의 것이 된 우리는 우릴 비난하는 남을 용서하고 복음으로 피로 사서 그들을 하나님께 드리어야 겠습니다. 최근 외국인의 눈 sns 사기에 놀아나는 일이 제게 있었습니다. 금전적 피해는 없었으나 얼마나 심적 피해가 있었는지 모릅니다. 그를 용서하고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인내 가운데 그를 복음으로 예수님 이름으로 피로 사서 그들을 구원하기를 원합니다. 그 이상한 분이 뭔가 예의가 있는 것은 제가 금전적 피해를 보지 않도록 자기도 모르게 나를 막았다는 것입니다.
많은 분들의 그 사기꾼을 위한 예수님 피의 기도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거룩한 화로가 타는 주님의 살아 있는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 향기가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아멘!
다음 주에 구절 강해 완편을 나누겠습니다. 오늘은 이만하겠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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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야만인으로 나의 죄 이웃의 죄가 참으로 흉악합니다. 어느 인간도 사할 능력이 없습니다. 다만, 아들 예수님을 인한 용서만이 가능할 뿐입니다. 그 피로 우리를 용서하옵시며 정결한 샘의 맘이 되어 평화의 제자들, 정결한 제자들이 되어 세상에 담대히 나가 그 샘을 전하고 나누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원수이었던 외국이 사기꾼도 용서 하옵시오며 더블어 같이 구원의 날 기뻐하며 천국의 나라를 동행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