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찬 뒤적거리지마라, 집 어지르지 마라, 먹은 그릇은 싱크대에 담궈놔라, 안쓰는 전기 플러그는 뽑아놔라, 전등 끄고 다녀라
항상 잔소리만 하시는 할머니가 너무 미웠다.
평소에 손녀 도리를 다 못했던 나는
할머니가 가시는 마지막 순간까지 내 눈에 보이는 것들도, 할머니의 모습도 그 모든것 들이 마지막이 아닐꺼라 생각했다. 여러 기계에 의해 간간히 숨을 붙이고 계시던 할머니는 들을 수 있지만, 볼수는 없고, 말할수도 없다고 했다.
이젠 그럴 힘 조차 없으시다고...
하지만 할머니는 언니와 내가 꼭 보고싶으셨는지 기적적으로 힘겹게 눈을 떴다가 이내 눈을 꼭 감으셨다.
지은 죄가 많았던 나는 할머니 방이 무서워서 1년동안 들어가질 못했다.
그리고 주구장창 엄마를 따라 다녔던 할머니 산소에도 바쁘다는 이유로 혹은 멀다는 이유로 고등학교 이후로 발길을 끊었다.
그리고 바로 오늘, 꿈에 할머니가 나왔다.
눈처럼 새하얀 밍크 코트를 입고 나타나신 우리 할머니는 내가 어렸을때 품에 쏙 안기던 그때 그 모습이었다. 꿈 속에서 언니의 결혼식을 조용히 앉아서 지켜보시던 할머니는 이제 가도 되겠다고 하셨다.
정말 그 모습이 마지막이라도 될까 싶어서 나는 울면서 다급하게 할머니에게 얘기 했다.
"할머니, 나 다음생에도 할머니 손녀 할래요."
눈앞에서 꿈처럼 사라져 버린 할머니는 나의 눈물 때문에 깨버린 꿈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할머니와 함께 살았기 때문에 인사하는 버릇이 몸에 배여 있던 나, 어느 집에 가서 밥을 먹건 싱크대에 그릇을 담는 버릇이 몸에 배여 있던 나, 윗 사람이 숟가락을 들기 전엔 밥을 먹지 않는 습관이 이미 몸에 배여버린 나, 언니와 싸우기만 했었던 학창시절의 나는 이제 결혼한 언니의 자리가 허전해 괜시리 눈물이 날 정도로 언니와 사이가 좋아졌다. 할머니가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늘 강조하시던 어른 공경과 형제간의 우애를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내가 한개의 사랑을 드리면, 열개의 사랑을 받은 것처럼 기뻐하시고 백개의 사랑을 주시던 당신.
따지고 보면 손녀로써 제대로 해드린 것도 없는데 생각 할수록 내 스스로에 대한 원망만 자책만 커질뿐이다.
그래서 주위 사람에게 평소에 잘하라는 말이 있는것 같은데 부모님에게 대하는 나의 태도 또한 하루아침에 바뀌기는 쉽지 않다. 새해가 되고, 한살 더 먹었으니 주위 사람들에게 잘하려는 노력이라도 해봐야겠다.
할머니, 나 다음생에도 할머니 손녀 할래요.
반찬 뒤적거리지마라, 집 어지르지 마라, 먹은 그릇은 싱크대에 담궈놔라, 안쓰는 전기 플러그는 뽑아놔라, 전등 끄고 다녀라
항상 잔소리만 하시는 할머니가 너무 미웠다.
평소에 손녀 도리를 다 못했던 나는
할머니가 가시는 마지막 순간까지 내 눈에 보이는 것들도, 할머니의 모습도 그 모든것 들이 마지막이 아닐꺼라 생각했다. 여러 기계에 의해 간간히 숨을 붙이고 계시던 할머니는 들을 수 있지만, 볼수는 없고, 말할수도 없다고 했다.
이젠 그럴 힘 조차 없으시다고...
하지만 할머니는 언니와 내가 꼭 보고싶으셨는지 기적적으로 힘겹게 눈을 떴다가 이내 눈을 꼭 감으셨다.
지은 죄가 많았던 나는 할머니 방이 무서워서 1년동안 들어가질 못했다.
그리고 주구장창 엄마를 따라 다녔던 할머니 산소에도 바쁘다는 이유로 혹은 멀다는 이유로 고등학교 이후로 발길을 끊었다.
그리고 바로 오늘, 꿈에 할머니가 나왔다.
눈처럼 새하얀 밍크 코트를 입고 나타나신 우리 할머니는 내가 어렸을때 품에 쏙 안기던 그때 그 모습이었다. 꿈 속에서 언니의 결혼식을 조용히 앉아서 지켜보시던 할머니는 이제 가도 되겠다고 하셨다.
정말 그 모습이 마지막이라도 될까 싶어서 나는 울면서 다급하게 할머니에게 얘기 했다.
"할머니, 나 다음생에도 할머니 손녀 할래요."
눈앞에서 꿈처럼 사라져 버린 할머니는 나의 눈물 때문에 깨버린 꿈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할머니와 함께 살았기 때문에 인사하는 버릇이 몸에 배여 있던 나, 어느 집에 가서 밥을 먹건 싱크대에 그릇을 담는 버릇이 몸에 배여 있던 나, 윗 사람이 숟가락을 들기 전엔 밥을 먹지 않는 습관이 이미 몸에 배여버린 나, 언니와 싸우기만 했었던 학창시절의 나는 이제 결혼한 언니의 자리가 허전해 괜시리 눈물이 날 정도로 언니와 사이가 좋아졌다. 할머니가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늘 강조하시던 어른 공경과 형제간의 우애를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내가 한개의 사랑을 드리면, 열개의 사랑을 받은 것처럼 기뻐하시고 백개의 사랑을 주시던 당신.
따지고 보면 손녀로써 제대로 해드린 것도 없는데 생각 할수록 내 스스로에 대한 원망만 자책만 커질뿐이다.
그래서 주위 사람에게 평소에 잘하라는 말이 있는것 같은데 부모님에게 대하는 나의 태도 또한 하루아침에 바뀌기는 쉽지 않다. 새해가 되고, 한살 더 먹었으니 주위 사람들에게 잘하려는 노력이라도 해봐야겠다.
인생이란, 당장 내일이 어떻게 흘러갈지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