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연인을 보고 사랑에 대한 고찰

보미사랑2023.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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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 드라마를 본 소감입니다.
많은 분들이 파트 1 마지막에 야반도주하여 주막에서
하룻밤 보내면서 끝나도 좋겠다 하셨는데 길채가 이장현을
버리고 가족에게 돌아가면서 많이 실망했죠.
저도 아쉬웠었어요.

유튜버들은 한 달 동안 길채가 혼인을 한다 안한다
갑론을박을 벌이며 그때 까지만 해도 보편적인 사랑을
생각했는데 작가는 사랑의 끝판왕을 보여준다 하였으니...
파트 1은 사실 상 드라마의 시작인겁니다.
길채가 아직 사랑할 준비가 안된거죠.

파트2 길채가 심양에서 왜 이장현을 외면하였는가
살펴보면 길채는 장현의 사랑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서
그런 겁니다. 그건 장현이 화살을 맞은 이후 둘의 대화에서 알 수 있는데 "왜 나를 버린거요?" 하였을 때
"나으리는 나없어도 살 수 있지만... " 이었어요.
길채는 이때 까지도 장현의 사랑을 이해 못합니다.
생명의 은인이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어요.
내가 이장현이면 정말 섭섭할 표현인데 길채는
은혜를 베푼 사람으로 장현을 대합니다.
분명 사랑하는 마음은 있지만 그게 전부가 아닌 여자였죠.
유부녀라는게 길채에게는 거리낌이된 겁니다.
(장현은 상관없었죠. 그냥 길채면 돼)

그건 심양에서 돌아와 구원무한테 '이역관에게
마음을 줬다'고 이혼사유를 말하는 부분에서
알 수 있습니다.

파트 1의 길채 입장에서 보면 이장현은 다재다능한
이방인으로 자신을 이용할까 의심스러운 존재였죠.
주막에서의 대화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내 서방이 되실건가요?"

왜냐하면, 길채가 처음 이장현을 만났을 때 난봉꾼이라는
선입관을 가지고 마음에 선을 그었죠.
그때도 좋아하는 마음은 있지만 믿지는 않은거예요.
야반도주 이후 길채가 차마 떠나지 못한 이유가
능군리는 길채에게 고향이자 전부였어요.
이장현을 택하면 자기의 모든 것을 버려야했는데
거기까지는 아닌 거였죠.

그런 생각이 깨지는 사건은 바로 량음이 은장도를
보여주었던 장면입니다. 거기서 길채는 장현이라는 사람을 비로소 믿게됩니다. 그래도 장현을 밀어내는건 가족 때문인데 "길채에게는 가족이 있었지 "
장현은 길채가 전부이지만 길채는 장현말고도 아직 많은 것이 있었어요. 장현은 오직 길채뿐인데 길채는 복잡했어요.
둘의 관계가 여전히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는걸 알 수 있죠.

우리는 이장현이라는 인물을 알고 시청하니까
오해가 없지만 길채는 장현을 좋지않은 시선에서
보고 시작했기 때문에 자기 의(義)를 꺾지 못합니다.
사실상 길채도 유교걸인거죠.

그래서 이혼후에도 장현을 만났을 때 임신한 연기를 하는데
자기가 흠결있는 여자라서 밀어내는거죠.
그렇기 때문에 우심정에서 길채는 웁니다.
길채의 사랑이 처음보다 많이 자랐지만 아직도 부족해요.
길채 입장에서는 납득이 가지만...
그건 이장현이 정의하는 사랑에는 한 참 못미칩니다.

바로 17회차 '안아줘야지 괴로웠을 테니'에서
길채와 장현이 비로소 동등해집니다. 사랑은 서로 동등해지는 것이예요. 이전에는 길채가 장현을 대할 때 빚진 사람의 모습이었고 은혜를 입었기에 그걸 갚아야한다고 여겼으니
어리석은 사랑이었죠.
심양 포로로 있을 때 "나는 은혜를 갚을 수가 없어요"라고
말한 것을 보면 알 수 있어요.
그리고, 씩씩하게 화려하게 길채처럼의 뜻도 오해하므로
길채는 장현앞에 떳떳하지 못하죠.
이장현이 초반 배에서 "난 그들과 달라요"라고 말한 건
남들과 사랑의 차원이 다르다는 거였어요.
길채는 못알아듣죠.

그러나, 17회차에서 길채는 장현의 바다같은 사랑을
드디어 본거예요. 참 사랑을 온 몸으로 받은 겁니다.
가족도 환향녀라고 외면하고 남편도 저버린 여자.
이제는 볼품없는 여자인데 여전히 날 사랑한다고?
길채는 장현의 사랑을 아직도 의심합니다.
'내가 심양에서 오랑케에게 욕을 당한 여자라는걸
모르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는 걸거야.
알면 당신도 나를 멀리 할걸?'
(난 그들과 달라요)

시청자들이 오히려 부정하고
유튜버들도 길채는 안당했을거야.... 하였으나

이장현은 " 말하고 싶으면 하시오. 난 상관없소.
아직도 날 모르겠소? 내 마음을 그리도 모릅니까?"

가난한 길채, 돈 많은 길채, 발칙한 길채, 유순한 길채,
날 사랑하지않은 길채, 날 사랑하는 길채.
그 무엇이든 난 길채면 돼.

마지막 관문이 남았습니다.
"좋아요. 허면 오랑케에게 욕을 당한 길채는?"
채념하듯 길채는 묻습니다.
사실 이건 길채가 감추고싶은 것이었죠. 어떤 분이
길채가 이 말 하기까지 무려 13초를 망설였다고 하네요.
그런데 여기서 이장현은 "안아줘야지. 괴로웠을테니"
이 대사는 남궁민 배우도 가장 명 대사라고 하였죠.

진정한 사랑을 확인하였으니 여기서 끝나도 좋았겠다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사랑의 완성은 여기서 이루어집니다.
그렇기에 그 긴 시간을 돌고돌아 드디어
사랑을 나누게 됩니다. "오늘 당신을 안아도 될까?"
드디어 둘은 동등한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행복하게 살면 되는데 아직도 남은 숙제가
있어서 맡은 일을 해결하려다 기억상실증에 걸리고
어찌 어찌하여 20회차가 되어서야 "서방님"소리를 하고
장현은 듣습니다.
10화에서 본인이 묻고 20화에선 본인이 말합니다.
나으리에서 서방님으로 그건 누가 인정해서가 아니라
진짜 서방이 된겁니다.

그러면, 21회차가 왜 명작으로 남는 회차인가하면
사랑이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정확히 정의하는
회 차이기 때문입니다.
이전의 사랑도 사랑이지만 마지막 회차의 사랑은
인지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을
구분 짓지 않습니다. 미국 사람들은 좋아하는 것도 Love라고
씁니다. 그러나, 좋아하는 것은 내 관점이고 사랑은 내 관점
이 아닙니다. 마지막 21회가 그것을 보여줍니다.

19회차의 기억상실이 어린시절로 돌아간 상태의 기억상실이라면 21회차는 쉽게 말해서 온전한 정신이 아닌 치매에 걸린 상태입니다. 전혀 다른 병증이죠. 둘 다 기억상실로 치부하면 안되는게 다른 양상인겁니다.

가까운 사람의 얼굴도 못 알아보는 치매상태.
그런데 이런 병증을 가진 사람들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평소에 자신이 아끼거나 사랑한 특별한 것을 본능적으로 습성적으로 갖고있어요.
무의식적인 것인데 왜 감동적인가 하면 19회차에서는
길채가 장현의 기억을 되살리려고 지극정성을 다하고
반지에서 기억을 찾습니다.
21회차에서는 그 반지를 봐도 반응하지 않아요.

다시 말해서 이장현은 오직 길채가 사랑한 것,
길채가 좋아한 것만 의식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어서
길채가 살던 집을 찾아가고, 길채가 살고 싶다는 바램,
길채가 그리던 것을 이루어줍니다.
왜냐하면 장현에게 길채는 전부니까,
장현의 고향이 길채이니까

21회는 이장현의 길채를 향한 사랑을 길채가 따라가면서
확인하는 회차였던겁니다. 방안에 걸린 댕기를 보는 순간
길채의 마음이 어떠했을지는 짐작이 가죠?
바닷가에서 둘의 대화를 보면 사랑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다른 사람들은 자기자신을 가장 사랑하여 자기를 지키려고
몸부림치는데 이장현은 온 몸이 부서지고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오직 길채였던 거죠.

가난한 길채.
돈 많은 길채
유순한 길채.
발칙한 길채
나를 사랑하지않는 길채
나를 사랑하는 길채
그 무엇이든 난 길채면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