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근예비역 시절

후니훈2023.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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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2011년 3월부터 2012년 12월까지 해병대 상근예비역으로 복무했습니다. 현역과 함께 훈련을 받고 그 후에는 출퇴근을 하는 식이었습니다. 훈령병일 때도 과업을 하지 못해 동기들에게 욕을 많이 먹었습니다. 본격적으로 이병 때 부터는 시설관리 쪽으로 빠지게 되었습니다. 불안한 예감은 왜 틀리지는 않는지... 저는 최선을 다했지만 항상 어딘가 모자란 듯 어리버리하다는 이유로 선임들에게 불려가 욕도 먹고 심지어는 맞을 때도 많았습니다. 저 때문에 3번이나 집합해 기합을 받았다는 이유로 맞았던 날들도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이런 날들이 많아지다 보니 저도 위로를 받을 곳이 필요했습니다. 하소연하는 마음, 위로를 받고 싶다는 차원으로 병영상담카페에 지금까지 있었던 사실들을 글로 적어 올렸습니다. 신고할 생각까지는 없었는데 제 생각보다 일이 커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헌병대에서 저를 불러 조사를 했습니다. 사건 전말이 밝혀지고 나서는 선임 두 명이 영창까지 가는 일이 생겼습니다. 그 뒤는 말하지 않아도 아실 겁니다... 저는 항상 기수열외를 당하고 시설관리에서 충무식당으로 보직까지 변경이 되었습니다. 충무식당에서는 상근예비역 1달 선임과 현역 6명이 함께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당연한 수순으로 처음에는 일을 너무 못 한다는 이유로 엄청나게 까이기 시작했습니다. 현역 분대장 선임 앞에서 30분 간 경차렷 자세로 정신 교육을 받은 적도 있었습니다. 과업을 할 때 거슬리지만 않으면 넘어가겠다는 경고와 함께. 마음 같아서는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기에 시키는 대로 제 나름 최선을 다해 일과를 수행해 나갔습니다. 보통 상근들은 밖에서는 형, 동생이라 편하게 부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당연히 부대 안에서는 내부 규정을 따르고 있고요. 어느 날은 저희 상근들은 ‘예’, ‘까’ 라는 말을 사용하면 안 되는 걸 잠시 망각하고 선임에게 ‘예’ 라고 대답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제 대답을 듣고 선임은 ‘개XX야’ 라고 받아쳤습니다. 저도 지금까지 꾹꾹 눌러왔던 감정이 터져서인지 좋은 말이 나가지 않았습니다. 결국에는 싸움으로 번졌는데 이게 부대 안에 소문이 퍼지고 말았습니다. 저는 한순간에 하극상을 일으켰다는 이유로 일방적인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후임들도 저를 만만하게 생각했습니다. 자기들끼리 모여 제 말투를 따라하며 놀리고, 제가 질문이라도 하는 날에는 얼굴 표정을 싹 굳히고 화를 내는 경우들도 많아졌습니다. 저도 참고 있을 수만은 없어 후임의 휴대폰 번호를 알아내 몰래 전화를 걸어 욕설을 퍼붓기도 했습니다. 결국엔 대화로 잘 풀며 해프닝 처럼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어느덧 저도 고참이 되었습니다. 이 때 쯤이면 더 편하게 생활할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지금 돌이켜 보면 이병 때와 견줄 수 있을 정도로 힘든 나날들이 이어졌습니다. 상근 시설 사람들은 저만 보면 잘 만났다는 듯 집요하게 괴롭히는 것이 변하지 않았습니다. 일병 때 동기들 중 친하게 지냈던 사람들이 있었는데, 함께 어울리다 이상한 곳에 가자며 꼬드긴 후 제 돈을 떼먹고 잠수를 타는 일도 있었습니다. 행정관에게 보고하려 하였지만 그 때는 부모님이 뜯어 말리는 탓에 참고 넘어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상, 병장 때 가장 최악인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당시에 저는 위병소에서 9개월 상근 후임과 함께 지내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사이가 나쁘지 않았는데 편하게 대해주니 시간이 갈 수록 저를 만만하게 생각한 건지 욕을 하거나 트집을 잡을 때가 늘어났습니다. 그런 대우가 반복해서 일어나 어느 날은 제가 그 후임을 밀치고 말았습니다. 후임도 지지 않겠다는 듯 저를 밀쳤고 몸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저도 참을 수가 없어서 후임 얼굴을 주먹으로 쳤고 치아를 다치게 까지 해버렸습니다. 욱하는 마음에 중대장에게 이 사건에 대해 보고했습니다. 행정관 귀에까지 이야기가 들어갔고... ’후임을 때려 다치게 까지 했으면서 뭘 잘했냐‘ 며 되려 저를 나무라셨습니다. 욱하는 마음에 중대장님께 먼저 말씀 드렸던 제 잘못도 있겠지만, 제가 이병일 때 처럼 동일하게 후임의 하극상으로 봐주시지 않으신다는 부분이 굉장히 억울했습니다. 게다가 같은 상근 사람들도 제게 이 일에 대해 따져 물으며 일방적으로 화를 냈습니다. 영창까지 가지는 않았지만, 대대장의 지시로 며칠 내내 주구장창 노동을 해야 했고 휴가 제한 처분까지 받아야 했습니다. 그 후로도 후임이 장난으로 제게 욕을 하기에 저도 욕으로 맞받아친 적도 있었습니다. 큰 싸움이 될 뻔 했지만, 그 때는 제가 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미안하다고 끝낸 적도 있었고. 맞선임에게 군화를 빌려 주었는데 시간이 지나도 돌려주지 않아 결국엔 저희 아버지께서 연락을 해 반납을 요구해 돌려 받기도 하였습니다. 그 선임은 군화를 돌려준 후로 모든 후임들에게 제게는 경례를 하지 말라고 시키기도 했습니다. 이런 선임들이 전역을 한 다음에 저는 휴대폰 번호를 바꿔가며 욕설을 담은 문자를 보냈습니다. 선임도 전역을 했지만 행정관에게 제게 이런 짓을 하지 못하도록 해달라고 말하는 바람에 크게 혼이 났었던 적이 있기도 했습니다. 수많은 일들... 저에게 대한 무시와 모욕을 받으면서도 버티고 버텨 무사히 전역까지 할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제 인생에서 가장 큰 한계점을 넘어 온 인간승리 그 자체였던 시기였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