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예수님께서 헌금함 맞은쪽에 앉으시어,사람들이 헌금함에 돈을 넣는 모습을 보고 계셨다. 많은 부자들이 큰돈을 넣었다. 42 그런데 가난한 과부 한 사람이 와서 렙톤 두 닢을 넣었다.그것은 콰드란스 한 닢인 셈이다. 43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저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돈을 넣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44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 넣었지만,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진 것을, 곧 생활비를 모두 다 넣었기 때문이다.” ㅡ 마르코복음.12장41-44절 가난한 과부가 돈을 다른 부유한 사람들보다는 못 미치게 훨씬 조금밖에 안넣었지만,성경에서는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고 하십니다.궁핍한 가운데 생활비를 전부 다 넣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면, 돈의 액수는 중요하지 않다고 하시는 것을 알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성경구절도 더 살펴보아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이 정보로는 상식으로는 전혀 이해가 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른 성경구절을 살펴보았습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ㅡ 마태복음 23장 23절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이 말을 바꾸면, “십일조도 드리며 동시에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라는 뜻으로도 바꿀 수 있지 않겠습니까. 십일조를 내라고 한다면, 가난한 사람은 자기가 바치는 돈의 액수가 너무 적어서 하느님의 은총 또한 적게 받지 않을거라며 울먹거릴수가 있습니다만..... . 그러나 십일조라는 측면에서만 본다면,가난한 자의 1/10이든 부유한 자의 1/10이든, 성경에서 바치라고 하는 1/10 인 것은 변함이 없습니다. 구약성경이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에서나,십일조는 중요하다고 하셨지, 중요하지 않다고는 말씀하신 적은 한번도 없다고 하십니다. 요약해보면,돈에 관한 성경내용들 중, 핵심인 이 두 개만 연결해서 본다면, 십일조라면 액수에 상관없이 하느님께 정성을 다한 것이 되지 않을까 하는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개신교에서 믿는 것이라서 무조건 배척하기보다는방언을 중요시 여겼던 개신교처럼 거대한 성경이라는 망대한 바다에서어떻게든 찾으려고 이미 표류하고 있던 “개신교 교리들”도 막 건들다보면 배울 것을 찾을 수 있고, 배울 것은 배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쩌면, 개신교가 핵심을 잡았을 수도 있기 때문이라는 것은 ”방언“과 ”십일조“가 이미 보여주었습니다. 11
지혜와 함께 사는 사람만 사랑하신다. ㅡ 지혜서 7장28절.(십일조)
41 예수님께서 헌금함 맞은쪽에 앉으시어,
사람들이 헌금함에 돈을 넣는 모습을 보고 계셨다.
많은 부자들이 큰돈을 넣었다.
42 그런데 가난한 과부 한 사람이 와서 렙톤 두 닢을 넣었다.
그것은 콰드란스 한 닢인 셈이다.
43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돈을 넣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44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진 것을,
곧 생활비를 모두 다 넣었기 때문이다.”
ㅡ 마르코복음.12장41-44절
가난한 과부가 돈을 다른 부유한 사람들보다는 못 미치게
훨씬 조금밖에 안넣었지만,
성경에서는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고 하십니다.
궁핍한 가운데 생활비를 전부 다 넣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면, 돈의 액수는 중요하지 않다고 하시는 것을
알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성경구절도 더 살펴보아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이 정보로는 상식으로는
전혀 이해가 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른 성경구절을 살펴보았습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ㅡ 마태복음 23장 23절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이 말을 바꾸면,
“십일조도 드리며 동시에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라는 뜻으로도 바꿀 수 있지 않겠습니까.
십일조를 내라고 한다면,
가난한 사람은 자기가 바치는 돈의 액수가 너무 적어서
하느님의 은총 또한 적게 받지 않을거라며
울먹거릴수가 있습니다만..... .
그러나 십일조라는 측면에서만 본다면,
가난한 자의 1/10이든 부유한 자의 1/10이든,
성경에서 바치라고 하는 1/10 인 것은 변함이 없습니다.
구약성경이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에서나,
십일조는 중요하다고 하셨지,
중요하지 않다고는 말씀하신 적은
한번도 없다고 하십니다.
요약해보면,돈에 관한 성경내용들 중,
핵심인 이 두 개만 연결해서 본다면,
십일조라면 액수에 상관없이
하느님께 정성을 다한 것이 되지 않을까 하는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개신교에서 믿는 것이라서 무조건 배척하기보다는
방언을 중요시 여겼던 개신교처럼
거대한 성경이라는 망대한 바다에서
어떻게든 찾으려고
이미 표류하고 있던 “개신교 교리들”도 막 건들다보면
배울 것을 찾을 수 있고,
배울 것은 배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쩌면, 개신교가 핵심을 잡았을 수도 있기 때문이라는 것은
”방언“과 ”십일조“가 이미 보여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