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둥이의 딸5

진성2004.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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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입대하기 전 날 밤.세상 모든 별들이 다 모여든 듯 그렇게 고향의
밤하늘은 아름다웠고 바다는 고요했다.동백마을이라는 마을이름답게
동백이 지천으로 피어 있었고 그 날 밤 나는 처음으로 동백꽃이 너무
붉어 슬퍼보인다는 생각을 했다.

지나온 아픔을 얘기하고 우리가 살아갈 내일을 얘기하면서 그렇게 밤을
세웠다.검은 바다가 서서히 푸른 빛을 되찾아가고 있었고 노오란 태양이
바다 위에 선명히 황금빛 길을 만들고 있었다.동백처럼 빨간 그녀의 입술
이 유난히 슬퍼보였다.나는 그녀의 슬픔을 다 삼킬 듯 첫 키스를 했고,사
랑한다고 말했다.그녀는 아무 말없이 눈물만 흘렸다.

그녀는 다른 사람과의 신체 접촉을 극도로 꺼렸다.태어나서 부터 부모들
의 손 한 번 잡아본 기억이 없었고,할머니 외에 다른 사람들과는 언제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살아온 탓이기도 했지만,나병이 유전되지 않는
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있는 그녀였지만,자신이 문둥이의 딸이라
는 사실을 누구보다 괴로워했고 자신에게 문둥이의 피가 흐르고있을지
도 모른다는 망상에 빠져 자신의 지나친 아름다움이 저주일 지도 모른다
고 말하곤 했었다.

그러나,그녀는 그런 만큼 지쳐있었고,사람의 따뜻한 손길을 그리워하고
있었다.우리의 입맞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녀와 함께 했던 오랜 시간 동안 쌓이고 쌓인 감정들이 도저히 억누를
수 없는 순간에 폭발하 듯 터져나왔고,난생처음 느끼는 감정이었지만
그것이 사랑이라는걸 나는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내 사랑 고백이 가져올
엄청난 일들을 모두 예상하진 못햇지만,많은 어려움이 있을거라는걸 어
렴풋하게나마 인식하고 있었다.

아침바다는 한없이 고요했고 평화로웠지만 그녀는 이 사랑이 가져 올
엄청난 고통을 미리 슬퍼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군복무를 하고있는 내내 그녀는 그동안 살아왔던 힘겨웠던 삶을
작정이나 한 듯 하나씩 하나씩 편지로 보내왔다.그녀의 수 많은 편지
중에 마지막 편지에는 사랑과 희망의 두 단어만이 쓰여져있었다.나는
그녀의 유일한 희망이자 사랑이었다.

나는 제대를 해서 다시 고향으로 돌아 왔고,우리는 다시 만났다.힘겨운
하루 하루를 살아 가고 있었지만 그녀는 조금씩 세상에 적응하고자 노
력했고,가슴 속에서는 불안한 희망을 키워 나가고 있었다.드디어 나는
모든 걸 부모님들께 말씀 드리기로 결심했다.